Transcension Academy RAW novel - Chapter 198
198화 – 다가오는 종말
투타타타타타타─!
헬기의 둔탁한 프로펠러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퍼졌다.
서준은 그 헬기 안에 앉아 창문 너머를 바라보고 있었다.
서준은 케이론의 감각을 최대한으로 확장했다.
그러나 감각에 걸리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서준은 살짝 고개를 돌려 수연을 바라봤다.
수연의 주위에는 알 수 없는 마법진들이 떠올라있었다.
서준은 그런 수연에게 물었다.
“수연아, 특이한 점이나 수상한 곳이 있어?”
리치는 최상위 언데드 마법사였다.
그렇기에 마법적인 무언가가 있을거라 생각했지만.
“아니···.”
수연은 시무룩한 표정으로 천천히 고개를 저어보였다.
서준은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다시 창문 너머를 바라봤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미국의 풍경.
지금도 대격변의 영웅들이 미국 전역으로 흩어져 수색하고 있었다.
서윤을 비롯한 민율과 하윤 또한 리치를 찾아다니고 있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건만.
아직까지 리치의 존재를 찾지 못했다.
‘궁니르를 사용하면 좋긴 한데···.’
의성의 위치를 찾을 때와 같은 방법을 쓰면 수월할 수 있었다.
리치를 목표로 설정한 다음, 궁니르가 추적하는 곳을 따라가면 되었으니까.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서준이 감각으로 인지하는 것에 한하여 목표를 추적한다.
보이지도, 느껴지지도 않는 목표를 추적할 수는 없었다.
오딘이 가지고 있는 진품 궁니르라면 또 몰랐다.
초월급 병기라면 굳이 감각으로 인지하지 않아도 목표 추적하는 기능이 있을지도 몰랐다.
실제 신화 속에서도 궁니르는 그러했으니까.
괜히 필중(必中)의 창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건 오딘이 가지고 있는 것일 뿐.
서준이 소유한 것은 모조품이었다.
투타타타타타타─!
헬기의 둔탁한 프로펠러 소리만이 요란하게 울려퍼져왔다.
#
수색은 계속 이어졌다.
그러나 서준은 리치의 존재를 찾을 수가 없었다.
결국 서준은 내일을 기약하며 숙소로 돌아왔다.
그렇게 숙소로 돌아온 서준.
“어?”
서준은 숙소 앞에서 의외의 인물을 마주할 수 있었다.
“지금 돌아오는 길인가?”
다름 아닌 검성(劍星)이 서준의 방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아, 네.”
“찾았나?”
서준은 천천히 고개를 저어보였다.
반면에 검성은 고개를 끄덕이지도 그렇다고 가로젓지도 않았다.
답을 듣고자 물은 질문이 아니었으니까.
찾았다면 애초에 숙소로 돌아오지 않았겠지.
검성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제 어찌할 생각이지?”
서준은 답이 없었다.
검성은 그런 서준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현재 영웅들의 불만은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미국 언론에서도 서준의 행동을 비난하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소집 일정과 더불어 베세르크의 심장에 대한 허무맹랑한 가설 때문이었다.
이를 두고 불안감 조성이라느니.
일개 프로 헌터에게 미국이 놀아나고 있다느니.
여러 말들이 많았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검성 또한 서준의 말을 완전히 믿지는 않았다.
서준이 베세르크를 패퇴시켰다는 것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심장에 대한 건은 아니었다.
차라리 서준이 베세르크를 패퇴시킨 것이 아니었다.
베세르크는 아직 살아있다.
하지만 그 사실을 모르고 서준이 어설픈 판단을 내렸다.
이 모든 것들은 잘못된 정보에 기반한 일이다.
이 쪽이 조금 더 신빙성 있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지금의 상황 또한 그를 뒷받침하고 있었다.
미국 전역을 이잡듯이 샅샅이 뒤졌지만, 리치는 커녕 언데드조차 보이지 않고 있었다.
이대로 가다간 아무것도 아니게 되어버린다.
대격변의 영웅들은 물론이고, 전세계인들의 비난을 살 수도 있었다.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검성은 서준을 바라봤고,
들려온 서준의 답은 조금 의외였다.
“전 지금부터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야할 것 같습니다.”
“만일의 사태?”
서준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서준의 예상보다.
리치는 치밀하게 준비했다.
베세르크의 힘을 온전히 흡수할 때까지.
정확히는 서준을 이길 수 있을 힘을 얻을 때까지.
리치는 자신의 존재를 들키지 않았다.
어떤 방법인지는 모르겠다.
그걸 알았다면 진즉에 찾았겠지.
하지만 확실한 건 이로써 라이프 포스 베슬의 위치는 절대로 알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간단했다.
베세르크의 힘을 사용하는 불사(不死)의 리치.
그 말도 안되는 괴물의 탄생을 막을 수가 없다.
물론 완벽한 불사는 아니었다.
라이프 포스 베슬을 부수면 리치는 죽는다.
그런데 그 라이프 포스 베슬의 위치를 알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 또한 베세르크의 마력에 의해 보호받고 있다.
말 그대로 불사(不死)의 리치.
죽지도, 죽일 수도 없는 종말이었다.
그러나 딱 한 가지.
‘롱기누스의 창이 갖는 능력을 제대로 이끌어낼 수 있다면···.’
실체를 꿰뚫는 롱기누스의 창.
그 힘을 온전히 끌어낼 수만 있다면 리치를 죽일 수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발경(發勁)의 경지에 입문해야만 한다.
그래야 롱기누스의 창에 깃든 능력을 끌어낼 수가 있다.
적어도 그래야만 종말에 대항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자격이 갖추어진다.
현재 서준의 발력 진행률은 약 20%.
30%를 넘어야 발경에 입문할 수 있으니, 여기서 10%의 강의 진행률을 올려야 한다.
이탈리아 때 이후로 지금까지 20%를 올린 것을 생각하면 10%는 만만치 않은 진행률이었다.
다행히 루카스에게 받은 50조의 인과가 있었다.
그러니 빠르게 발력 강의 진행률을 올려야 한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서준은 검성을 스쳐 지나갔다.
“······”
그런 서준의 모습에 검성은 뭐라 할 말이 없었다.
‘뜻을 굽힐 생각은 없는건가.’
검성은 떠나가는 서준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오래 전, 처음 서준을 만났을 때만 해도.
이런 상황이 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애초에 서준 자체가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서윤의 마음을 뒤흔드는 놈팽이.
그 이상, 그 이하로도 생각하지 않았다.
실제로 서준이 보인 행동들 또한 그러했다.
멍하니 스마트폰만 쳐다보고 있질 않나.
별 시덥지도 않은 운동들을 하질 않나.
평소에는 나사 하나 빠진 것처럼 맹한 놈팽이에 불과했다.
솔직히 지금도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
예전에 비하면 조금 나아졌다 정도.
서윤이 서준의 이야기로 배시시, 웃을 때면 어딘가 언짢다.
괜시리 꼴보기 싫고, 어딘가 딱밤 한 대 때려주고 싶은 놈팽이인 것은 변함 없었다.
하지만 거짓말을 할 놈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정작 중요한 순간에는 언제나 믿음을 주는 놈이었으니까.
“옛날 생각이 나는군.”
과거 최후의 전투 당시.
당시에는 그 어떤 누구도 베세르크에 대적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검성. 우리들의 시대는 지나가고 있소이다. 어쩌면 벌써 지나가버린 것일지도 모르지.’
“나도 나이를 먹은 건가.”
검성의 시선이 굳게 닫힌 서준의 방 문에 머물러 있었다.
#
미국 애리조나 주에 위치한 그랜드 캐니언(Grand Canyon).
에리조나 주 북쪽 경계선 근처부터 시작해 약 443km에 달하는 절벽이 이어져있었다.
서울-부산 간의 거리와 비슷한 어마어마한 길이.
붉은 황토와 깎아지를 듯한 절벽이 장관인 이곳은 미국하면 떠오르는 관광지로 유명했다.
“하암···.”
노아는 그랜드 캐니언 국립 공원에 상주하는 미 프로 헌터였다.
그 등급만 무려 A등급으로 어딜 내놓아도 꿀리지 않는 실력자였다.
아무리 미국이라도 A등급 헌터는 귀한 인재였다.
대형 길드에 지원만 해도 바로 모셔가고자 하는 인재.
그럼에도 노아가 그랜드 캐니언 국립 공원에 있는 이유는 단순했다.
노아는 개인 길드가 아닌 미 프로 헌터 관리국 소속의 프로 헌터였고,
관리국으로부터 비상 상황에 대비하라며 이곳으로 발령 받았기 때문이었다.
“비상 상황은 무슨···.”
노아는 무료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이곳에 온지 벌써 며칠이 흘렀건만.
비상 상황은 커녕 몬스터의 털 끝조차 보지 못했다.
“베세르크의 심장이니 뭐니. 다 거짓말이라니까.”
노아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솔직히 말이 안되었다.
베세르크면 베세르크지 무슨 베세르크의 심장을 품은 리치란 말인가.
설령 그게 맞다고 치자.
그럼 진즉에 미국 전역으로 뒤틀림들이 폭주했어야 했다.
말로만 듣던 제 2의 대격변이 발생했어야만 했다.
그런데 저길 보라.
“여보! 나 여기 사진 좀 찍어줘!”
“앨런, 음료수 하나 사줄까?”
하하하하하.
저 평화로운 광경이 어딜 봐서 제2의 대격변이란 말인가.
“제 2의 대격변이 발생해도 딱히 상관 없을지도.”
노아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도 그럴 것이 과거 대격변 시절과 지금은 상황이 상당히 달랐다.
초기 대격변에는 헌터라는 개념이 없었다.
그 탓에 몬스터들과 싸울 수 있는 인원 자체가 적었다.
하지만 지금으로부터 약 50년 전.
각성에 관한 매커니즘이 밝혀지며 이제는 개나 소나 각성자가 될 수 있었다.
그에 따라 헌터 아카데미가 생겨나며 수많은 프로 헌터들이 양성되었다.
그리고 미국은 프로 헌터 최강국이라 불리는 나라.
솔직히 대격변이 발발해도 예전처럼 파국으로 치닫지는 않을 터였다.
“웬 동양인 놈 하나 때문에 이게 뭔 고생인지.”
하아아암.
무료한 하품만이 자꾸만 새어나와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이었다.
쩌저저저저저저적!
뭐라 형용할 수 없는 불길한 소리가 하늘에서 터져나왔다.
예고도 없이 터져나온 소리와 함께 하늘에 한 줄기 거대한 실선이 그어졌다.
그리고 마치 공간이 갈라지듯 양 옆으로 쩌억, 벌어졌다.
마치 거대한 검은 눈동자가 감았던 눈을 뜨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 눈동자에서는 설명할 수 없은 끔찍함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뭐, 뭐야?”
“갑자기 저게 무슨···?”
그 괴이한 현상에 사람들이 모두 하늘을 올려다봤다.
노아의 시선 또한 그곳으로 향했다.
이윽고 검은 눈동자 안에서 거대한 무언가가 천천히 걸어나왔다.
앙상한 뼈밖에 남지 않은 거대한 해골.
“리치···?”
아니, 저걸 리치라 할 수 있을까?
주위로 일렁이는 칠흑의 아우라.
번뜩이는 칠흑의 안광.
압도적인 존재감이 터져나왔다.
이런 존재감을 낼 수 있는 존재가 있었던가?
딱 하나 알고 있었다.
종말의 대괴수, 용제(龍帝) 베세르크.
하지만 눈앞에 보이는 것은 베세르크가 아니다.
베세르크는 드래곤이지 해골이 아니다.
그러니 리치는 분명하다.
그런데 리치가 아니다.
아크 엘드리치(Arch Aldrich).
“세, 세상에···.”
세상에 다시 없을 종말이었다.
“도, 도망쳐!!!”
“꺄아아아아아아!!”
관광객들이 비명을 지르며 달아나기 시작했다.
엘드리치는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고 있었다.
정확히는 노아의 눈에, 감각에 그렇게 보이고 느껴졌다.
파사사사삭!
일순간 검은 마력의 송곳들이 대지에서 솟아났다.
도망치던 사람들은 그 송곳에 꿰뚫려 절명했다.
수 백명의 사람들이 순식간에 죽어버렸다.
“마, 말도 안돼···.”
노아는 그 압도적인 광경에 넋을 놓고 말았다.
도망치든지, 반항하든지.
뭐라도 해야하지만 잠식하는 공포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번뜩.
이윽고 칠흑의 안광이 노아에게 향했다.
바짓가랑이 사이로 축축한 무언가가 적셔왔다.
[넌··· 그 녀석이 아니군.]“홀리···.”
콰직!
그것이 마지막 노아의 말이자 기억이었다.
#
리스베리는 그랜드 캐니언에서 발생한 소식을 빠르게 들을 수 있었다.
“피해 상황은?”
“지금 당장 파악하기가 불가능합니다.”
이어진 루카스의 답에 리스베리는 입을 꾹, 다물었다.
루카스의 답은 2가지의 상황을 내포하고 있었다.
말 그대로 지금 당장 피해를 파악하기 불가능하거나.
아니면 파악하기 불가능할 정도로 피해가 많다거나.
리스베리는 어느 쪽인지 굳이 묻지는 않았다.
“놈의 위치는?”
“그랜드 캐니언을 벗어나 에리조나 주, 피닉스 시로 향하고 있습니다.”
“벌써? 근처에 있던 영웅들이 막아─.”
리스베리는 다시 한 번 입을 꾹, 다물었다.
루카스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대격변의 영웅조차 상대가 되지 않았단 말인가?
꽈득.
리스베리는 저도 모르게 두 주먹을 움켜쥐었다.
사실이었다.
서준이 말한 것이 모두 사실이었다.
리스베리는 루카스에게 물었다.
“김서준은?”
“그것이···.”
루카스가 잠시 뜸을 들이더니 말을 이었다.
“시간을 벌어달라 하셨습니다.”
“시간을 벌어달라고?”
한시가 급하다고 할 때는 언제고 이제 와 시간을 벌어달라니?
리스베리는 설명을 요구하듯 루카스를 바라봤다.
하지만 루카스 또한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는 것 같았다.
리스베리는 금방 의문을 털어내었다.
지금 급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루카스, 전투 가능한 모든 프로 헌터들을 소집해. 영웅들에게는 내가 말하지.”
“네!”
루카스는 황급히 방 문을 나섰다.
리스베리는 반달 쌍달검을 움켜쥐었다.
저 괴물을 막지 않으면 미국은 끝장난다.
어쩌면 전세계가 끝장 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마치 과거 베세르크와의 최후의 전투 때처럼.
“옛날 생각이 나는군.”
리스베리는 곧장 방 문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