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nscension Academy RAW novel - Chapter 21
21화 – 토너먼트(3)
대기실로 돌아온 서준은 자리에 앉아 장덕철과의 결투로 오른 강의 진행률을 확인했다.
효율만을 따지고 본다면 적게 오른 것은 아니긴 했다.
하지만 이런 경합의 장은 흔치 않았고 가뜩이나 사람들이 죄다 기권하는 바람에 결투 횟수도 적어진 지금.
이번 기회에 진행률을 확 올릴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사실 만티코어 때처럼 오를 것을 기대했던 서준의 입장에서는 꽤나 실망스러운 진행률이었다.
‘프리패스 기간도 계속 줄어드는데…’
서준은 현재 남아있는 프리패스 이용 기간을 확인했다.
처음 90일임을 생각하면 38일이 흐른 시점.
한 달을 조금 넘긴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성장이었지만, 지금 이대로라면 석가모니 강의는 물론 케이론과 항우의 강의마저 수료하기엔 부족한 시간이었다.
사실 기간 안에 둘다 수료한다 하더라도 석가모니 강의 때문에 프리패스 이용권은 계속 구매해야했다.
‘무기 사고 프리패스 이용권 재구매 하려면··· 돈이 빠듯하겠네. 이렇게 된거 확실히 우승 상금을 노려야겠다.’
서준이 남은 경우의 수를 계산해보자 다음 이철민과의 결투에서 이기면 서준은 결승에 갈 수 있었다.
그리고 서준은 딱 한 가지 경우만 제외하면 결승만 가도 우승이 확실시 되는 상황.
“혀, 형…?”
그 순간 어디선가 서준을 부르는 앳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서준은 고개를 돌릴 필요도 없이 그가 민기임을 알 수 있었다.
“형, 그렇게 강한 사람이었어요?”
아니나 다를까 민기가 놀란 눈을 뜨며 서준을 바라보고 있었다.
서준은 어깨를 한 번 으쓱이며 답했다.
“내가 언제 약하다고 한 적 있었나?”
“어···”
서준의 답에 민기는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혔다.
그러다 서준이 그런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멋쩍게 뒷머리를 긁적여보였다.
“아, 아무튼 진짜 최고였어요!”
서준은 그런 민기의 모습에 피식,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다음은 네 경기지? 가서 잘하고 와. 결승에서 보자.”
“…네.”
민기는 기어가는 목소리로 답했다.
그러다 조금 주저하는 듯 하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 형. 저도 할 수 있을까요?”
서준은 민기를 잠시 바라보다 말했다.
“왜 안 될거라 생각하는데?”
“그야··· 이준환은 재능 넘치고 강하지만 저같은 건 약하고 재능도 없고. 원래 안 되는 놈이고··· 또 사람들이 다 안될거라 하니까 또…”
서준은 이어지는 민기의 말을 가만히 들었다.
민기는 한 마디로 평범했다.
그나마 남들과 달랐던 점은 자연 각성자라는 것 정도였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민기의 재능은 특출나지 않았고 지금은 너도 나도 프로헌터가 되겠다고 몰려드는 시대.
평범이란 말은 재능이 없다는 말의 순화된 표현이었다.
그리고 그건 38일 전의 서준 또한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서준은 저도 모르게 물었다.
“너는 왜 프로 헌터가 되고 싶은건데?”
“네? 저요?”
서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너는 약하고 재능없고, 안될거라면서. 그런데 왜 굳이 프로 헌터가 되려는 건데?”
갑작스러운 서준의 질문에 민기는 입을 꾹 다물었다.
민기는 서준이 왜 저런 질문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가만히 자신을 바라보는 서준의 눈빛에는 그 어떠한 장난기나 농담이 섞여있지 않았다.
“그…미로에서 제게 10살 어린 여동생 있다고 말씀 드렸었죠?”
그래서 민기는 왜 자신이 이런 말을 하는지 또한 이해할 수 없었다.
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더하여 부모님을 일찍 여의었다는 말도 듣긴 했지만 서준은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민기는 살짝 시선을 내리며 말했다.
“사실··· 제 동생은 제가 헌터라고 알고 있어요. 저도 알아요. 헌터는 무슨. 그 발 끝에도 미치지 못하는 걸요. 그런데 동생 눈에는 제가 헌터로 보이나 봐요. 한 번은 동생이 친구들에게 자랑하는 걸 본 적이 있었어요. 그때 동생 친구들이 우와! 우와! 하면서 동생을 우러러보는데···”
민기는 쑥쓰러운 듯 고개를 푹 숙이며 말을 이었다.
“그게··· 그게 그냥 너무 좋더라고요···”
기어가는 듯한 민기의 말에 서준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런 서준의 모습에 민기는 부끄러운지 황급히 말을 이었다.
“그런데 하다보니 적성에도 맞는 것 같기도 해서요. 무엇보다 돈도 많이 벌 수 있잖아요. 그럼 제 동생은 하고 싶은거 다 하면서 살 수 있으니까요. 제가 조금 고생하면…”
그때였다.
“이민기 수강생! 이준환 수강생! 토너먼트 준비가 끝났습니다!”
대기실에 울려퍼지는 경합 관계자의 외침.
서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잘하고 와.”
“…네, 형.”
민기는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준은 그런 민기의 뒷모습을 묵묵히 바라봤다.
사람들이 프로헌터가 되고 싶은 이유는 각기 다르다.
돈을 많이 벌고 싶어서, 유명해지고 싶어서, 성공하고 싶어서. 아니면 그냥 하다보니까.
그러나 비슷한 이유는 있을지언정 똑같은 이유는 없을 것이다.
100명의 사람이 있다면 100가지의 이유가 있다.
그리고 그것은 비단 프로헌터라는 것에 국한되지 않는다.
100가지의 직업이 있다면 또 그것에 100가지의 이유가 있다.
‘그게··· 그게 그냥 너무 좋더라고요···’
치열한 경쟁 사회.
하루하루 발전하지 않으면 무능하다 평가받는, 쓸모가 없으면 버려지는, 필요가 없으면 모욕받는, 노력하고 성공하라 강요받는 이 시대.
옳고 그름을 따진다면 민기는 어느 쪽에 가까울까.
그리고 서준 본인은 어느 쪽에 서있는 것일까.
‘…’
서준은 민기의 싸움을 지켜보고 싶어졌다.
이준환은 지금 상당히 짜증이 나있었다.
다름 아닌 토너먼트 상대랍시고 눈앞에서 알짱거리는 애새끼 때문이었다.
젖살도 채 빠지지 않는 피부.
많이 쳐줘야 고등학생 정도 되었을까.
“후우···! 할 수 있어. 나도 할 수 있어.”
그리고 아까부터 뭐라뭐라 중얼거리는데 그것도 상당히 신경에 거슬렸다.
이준환은 언짢은 표정으로 알짱거리는 애새끼를 바라봤다.
그러자 자신을 바라보는 두려움의 눈빛.
이준환은 싸워보지 않고도 알 수 있었다.
저 놈은 피식자다. 그것도 잡아 먹히는 것밖에 할 줄 모르는 무능아.
바닥을 깔아주는 흔하디 흔한 존재.
반면에 자신은 포식자였다.
우월한 재능으로 남들을 밟고 일어서며 잡아먹는.
모두가 부러워하고 우러러보는 존재.
‘운 하나 좋아서 이 자리에 온 애새끼가.’
그래서 이준환은 더 짜증이 났다.
원래라면 1차 경합이든, 2차 경합이든 1등은 본인의 차지였어야 했다.
자존심 문제가 아니라 그냥 당연한 결과였다.
애초에 여기에 나오는 쓰레기들과 자신은 수준 차이부터가 달랐으니까.
그런데 웬 시덥지 않은 애새끼 하나가 자신보다 앞서가는 것이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그것도 운이라는 빌어먹을 요소 하나 때문에.
‘특히 그 새끼···’
이준환은 대기실에서 봤던 한 사내를 떠올렸다.
사실 처음 던전 돌파자가 나왔을 때, 이준환은 자신처럼 어쩔 수 없이 이 경합에 참가한 수강생이 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실제로 마주한 것은 어딘가 나사 하나 빠진 것처럼 어벙한 분위기의 놈팽이.
이준환은 실망을 했고, 후에 대다수의 수강생들이 기권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놈도 기권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지금 눈앞에서 알짱거리는 애새끼였다.
이준환은 다시 한 번 시선을 들자 애새끼는 자신의 무기인 검을 뽑아든 채 자세를 잡고 있었다.
설마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건가? 저딴 버러지 따위가?
‘씨발.’
이준환은 그냥 지금 모든 상황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이, 심판. 대체 언제 시작하는거지?”
“곧 사회자의 멘트가 있을 겁니다. 그 이후 바로 시작하니 미리 준비하시길 바랍니다.”
그런 심판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사회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고 뭐라뭐라 시끄럽게 떠들기는 했지만 이준환은 듣지 않았다.
이준환이 들은 것은 딱 한 마디.
바로 경기를 시작하겠다는 외침뿐이었다.
파박, 이준환은 사회자의 말과 거의 동시에 땅을 박찼다.
이준환의 몸이 쏘아지듯 나아가며 민기와의 거리가 순식간에 좁혀졌다.
이 같잖지도 않은 대회.
이준환은 시간 끌 것 없이 빠르게 끝낼 생각이었다.
쌔액!
그렇기에 이준환은 첫 공격부터 사정을 두지 않았다.
카앙!
“크윽!”
가까스로 막은 민기는 저도 모르게 신음이 새어나왔다.
사실 어떻게 막았는지도 잘 모르겠다.
민기가 인지한 것은 고작 한 번의 공격에 터져나간 손아귀와 덜덜 떨리는 몸뚱이였다.
그래서 민기는 바로 깨달을 수 있었다.
할 수 없다. 이길 수 없다.
그냥 상대가 되지 않았다.
조금은 버티고 대응할 수 있을거란 기대와는 달리 싸움은 일방적이었다.
캉!
“커윽!”
애초에 이것을 싸움이라 부를 수 있을까.
사자와 호랑이가 싸우면 장소, 시간, 컨디션등의 여러가지 변수로 승패가 갈린다.
하지만 사슴과 호랑이의 대결은 오로지 운에 의해서만 사슴이 승리할 수 있다.
지진으로 인한 산사태, 천둥 번개에 의한 감전.
하필 거기서 나무를 하고 있었던 S급 헌터 나무꾼.
여기서 민기는 사슴이었고.
“버러지면 버러지 답게 굴란 말이다!”
이준환은 호랑이였다.
“커헉!”
이어진 이준환의 공격에 민기는 결국 피를 토하며 무릎을 꿇고 말았다.
무릎 꿇은 시야.
터벅터벅, 다가오는 이준환의 발이 보였다.
절레절레, 고개젓는 심판의 얼굴이 보였다.
안되는 건. 안되는 것이다. 나는 할 수 없다.
민기는 고개를 떨구었다.
그리고.
민기는 대기실 입구에 서있는 서준을 볼 수 있었다.
‘서준이형···’
민기가 서준을 처음봤을 때 민기는 저도 모르게 서준에게 끌렸다.
동질감? 어떤 이끌림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민기는 서준에게서 어떤 친숙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기에 서준이 장덕철을 이겼을 때, 민기는 제가 이긴 것 마냥 기뻐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서준이 부러웠다.
‘우리 오빠는 헌터다! 머싰찌?’
‘헌터? 막 개물들 혼내주는 사람들?!’
‘그럼! 우리 오빠는 나쁜 사람들이랑 못된 개물들 혼내주고 사람들 지켜주는 영웅이야!’
‘우와! 너네 오빠 진짜 머싰따!’
나는 할 수 없는 것들이었으니까.
나는 안되는 것들이었으니까.
이것은 분명한 사실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데.
‘왜 안 될거라 생각하는데?’
대체 왜 방금 전, 서준의 말이 자꾸만 머릿속을 되뇌이는 걸까.
민기는 터덜터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민기 수강생. 더 하실 수 있으십니까?”
민기는 답을 하지 않았다.
한 번만. 딱 한 번만이라도 좋으니까.
손끝이라도 닿고 싶다.
“으아아아아아!”
민기는 검을 움켜쥐며 이준환에게 달려들었다.
카앙!
하지만 극기, 각성과 같은 만화적인 요소를 들이밀기에는 현실은 냉혹하고 또 참혹했다.
털썩.
민기는 결국 이준환의 공격을 받아내지 못하고 그 자리에 쓰러졌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역시 이준환이다!”
“아예 상대가 되질 않는구만!!”
승자 선언과 함께 터져나오는 함성소리.
‘방금 그건···’
하지만 이준환은 지금 당황스러운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스윽.
이준환은 손을 들어 자신의 얼굴을 매만졌다.
그러자 손끝으로 느껴지는 축축한 감촉.
어루만진 그 손끝에는 피가 살짝 묻어있었다.
‘닿았…다고?’
저 버러지가 감히 내게?
이준환은 와락,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쓰러져있는 민기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서준은 그 모든 상황을 묵묵히 바라보다가 등을 돌렸다.
“이 쓰레기 같은 놈이 감히···”
다시 우뚝.
문득 들려온 이준환의 말에 서준의 발걸음이 멈춰섰다.
“퉤.”
등을 돌리자 이준환은 꾸우욱, 민기의 얼굴을 짓밟은 채로 그 위에 침을 내뱉고 있었다.
그리고는 한껏 짜증난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고작 이런 놈 하나 이겼다고 난리는···”
씨발.
관중의 함성소리에 묻혔지만 서준은 그것을 들을 수 있었다.
“존나 짜증나네 진짜. 운 하나로 여기까지 올라온 것도 모자라 이딴 버러지들도 헌터 된답시고 깝치는게···”
서준은 가만히 그 광경을 지켜봤다.
“이런 놈들 하나하나 다 받아주는거 보면 이 병신 대회도 수준 나오지. 이러니까 4부 소리를 듣는거고 씨발.”
“이준환 수강생! 지금 뭐하는 겁니까!”
서준이 굳이 나설 이유는 없었다. 서준이 굳이 나서지 않아도 관계자들이 알아서 처리해 줄 터.
물론 이준환의 행동이 거슬리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어차피 이준환은 결승에서 만날 상대. 해묵은 감정은 그때가서 해결하면 그만인 일…
“진짜 존나 수준 낮아서 못 놀아주겠네. 어차피 우승도 글러먹은 거 같은데… 어이 심판, 나 더는 못 어울려주겠으니 그냥 기권할래. 삼촌한테는 나중에 대충 강사질 몇 번 해주면 되겠지.”
이준환은 비릿하게 웃으며 밟고 있는 민기를 내려다봤다.
민기는 기절한 것인지 아니면 손 하나 까딱할 힘이 없는 건지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이준환 수강생! 당장 그만두세요! 자꾸 그러면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습니다!”
“조치는 무슨. 나 기권한다니까? 그리고 심판. 당신도 짜증나지 않아? 이딴 애새끼 같은 놈이 헌터 된답시고 깝죽거리는 걸 봐야한다는게? 지들이 있어야할 위치도 모르고 기어오르는 게 말이야.”
꾸우우욱.
점점 더 거세지는 소리.
“이런 놈들은 그냥···”
그리고 거기까지였다.
캉!
서준이 이준환의 목소리를 들은 것은.
“어떤 새끼야?”
갑작스러운 서준의 공격이었지만 이준환은 어렵지 않게 그 공격을 막아내었다.
“너는…?”
그리고 서준의 존재를 확인한 이준환이 살짝 놀란 표정을 지어보였다.
마주하는 두 사람.
“생각이 바뀌었어.”
서준은 시릴 정도로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너는 지금 좀 맞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