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nscension Academy RAW novel - Chapter 229
229화 – 초월자 학원(2)
서준은 그 자리에 벌러덩, 드러누워 움직이지를 않았다.
이리나는 순간적으로 할 말을 잃어버렸다.
자신 앞에서 저런 짓을 할 수 있는 존재가 있긴 하던가?
초월자도 아니고 한낱 초시생이?
아니, 초월자라도 불가능하다.
원장인 자신 앞에서 그럴 배짱과 용기가 있는 초월자는 없었으니까.
그런데 뭔···.
“솔직히 제가 오류를 악용한 것도 아니잖아요! 정당한 이벤트였고 정당한 방법으로 얻은 거잖습니까! 제가 그거 때문에 얼마나 머리가 빠개지는 줄 알았는데···.”
이리나는 무슨 이런 미친놈이 다 있나 싶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엄밀히 따지면 ‘악용’은 맞습니다만? 애초에 점수 계산하지 말라고 산정방식을 안 알려드립 겁니다.〕
“그럼 처음부터 공지 사항에 써놓으셨어야죠! 아니면 이벤트 1회 한정으로 제한을 걸던가요. 이벤트는 1번밖에 안된다. 이런 식으로요.”
〔초시생들에게 최대한 많은 혜택을 드리기 위해서 였어요. 조금이나마 인과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중복 허용을 가능하게 한 거였습니다.〕
“그래서 그 의도대로 최대한 많은 혜택을 얻었잖습니까. 그런데 그 최대 혜택이 너무 많다고 갑자기 ‘이건 좀···.’ 하면, 고생한 저는 뭐가 됩니까? 다른 대안이라도 주시던가요!”
이쯤 되자 이리나도 살짝 화가 난 것일까.
〔제가 이런 말까지는 안 드리려고 했는데···.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이리나가 눈썹을 찡그리며 소리쳤다.
〔김서준님 때문에 지금 학원이 얼마나 개판인 줄 아세요? 막말로 김서준님은 인과가 최소치로 적용되는 거 아시죠? 그 공백의 인과를 누가 부담했을까요?〕
“네? 그건 제 인과가 측정되어있지 않기 때문 아닙니까?”
〔그렇겠죠. 김서준님 입장에서는요!〕
이리나는 속사포처럼 말을 내뱉었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차원에 강의를 풀기 위해 지불해야하는 필연의 인과가 있어요. 보통은 초시생의 수강료에서 끌어오죠. 그런데 김서준님은 그게 안되네요?〕
〔어쩔 없는 인과의 공백이 생길 수 밖에 없어요. 그 공백을 채우지 않으면 관조자의 제약으로 강의를 풀 수가 없어요.〕
〔하지만 우리 학원의 초시생이 강의를 듣고 싶어 하네요? 결국은 저희가 꼬박꼬박 부담했어요!〕
〔그동안 김서준님이 받아가신 인과 혜택만 해도 어마어마해요! 그 때문에 인과가 거덜난 상황이라, 이번 한 번만 양보해달라 하는건데. 그게 그렇게 어렵나요!〕
“······”
서준은 처음으로 말문이 막혀버렸다.
하지만 금방 고개를 저어보였다.
이왕 얼굴에 아다만티움을 깐 것.
끝까지 간다.
“그, 그건 그거고! 이, 이건 이거죠!”
그러자 이리나가 인상을 와락, 일그러뜨렸다.
그리고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진짜 배를 째드릴 수도 있답니다. 여기가 어디라고 생각하시는 거죠?〕
그 순간.
흠칫.
공간을 지배하는 알 수 없는 존재감이 느껴졌다.
‘이, 이건···?’
생전 마주한 적이 없었던,
마주해보지도 못했던 차원이 다른 존재감이었다.
대체로 압도적인 존재 앞에서 느낄 수 있는 감정은 ‘공포’였다.
생존의 본능.
도망쳐 살아야 한다는 그 본능이 발현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가 않았다.
이 존재 앞에서는 생존의 본능이 발현되지 못하고 있었다.
살아남을 수 없음이 명백하니,
공포조차 느낄 수가 없다.
초월자 학원의 원장, 이리나.
현존하는 최강의 초월자.
[휘유, 아줌마 제대로 화가 났나 본데?]제천대성의 목소리만이 들려올 뿐이었다.
〔생떼 같은 건 그만 쓰시고 일어나시죠?〕
서준의 등으로 식은 땀이 주륵, 흘러내린다.
일초지적도 되지 않아 죽는다.
관조자와는 달리 이리나는 자신을 충분히 죽일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질 수는 없지!’
서준 또한 아무런 대책이 없는 건 아니었다.
정확히는 이리나가 자신을 죽이지 않을 거라는 것.
서준은 그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 이유는 단순했다.
이리나는 초월자 학원의 원장이자 두 번째 초월자였다.
전 우주를 통틀어 두 번째로 초월한 존재이자,
첫 번째 초월자에게 사사한 최초의 수강생이었다.
한 마디로 이리나는 최초의 초월자의 제자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난 번에 듣기로 최초의 초월자는 사라졌다.
그 이유는 알 수 없으며,
단지 인과의 기록이 삭제되었다고만 알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서준이 관조자를 처음 만났을 당시,
관조자는 분명 서준에게서 최초의 초월자 기운이 느껴진다 했었다.
그 이후로 관조자는 그에 대해 어떠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덩달아 이리나 또한 최초의 초월자가 서준에게 무언가를 한 것 같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 탓에 서준의 인과가 측정되지 않은 것 같다.
라는 말을 멘토에게서 들은 적이 있었다.
진실인지는 확신할 수 없다.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실하다.
최초의 초월자와 서준.
둘은 어떤 연관이 있다.
그리고 최초의 초월자는 이리나의 스승.
자신의 스승과 관련이 있을지 모르는 서준을 죽인다?
현재 이리나는 뻥카를 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서준은 이를 까득, 깨물었다.
그럼에도 존재감에 짓눌려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서준은 삼단전(三丹田)의 마력을 터트리면서까지 벗어났다.
“아, 몰라요!”
그렇게 서준은 끝내 벌러덩, 드러누울 수 있었다.
〔······!〕
[······!]그런 서준의 모습에 이리나와 제천대성의 두 눈이 부릅, 떠졌다.
그도 그럴 것이 방금 서준의 행동은 이리나의 압박을 벗어났다는 뜻이었으니까.
이리나의 존재감은 단순히 존재감으로 치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초월자 학원의 원장쯤 되면,
최강의 초월자 쯤 되면.
존재감만으로도 대상을 압살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리고 초월자 정도가 되어야 견딜 수 있는 수준.
초시생 따위가 견뎌낼 수 있는 수준은 결코 아니었다.
물론 이리나는 진심으로 존재감을 개방한 것은 아니었다.
서준의 예상처럼 죽일 마음이 전혀 없었으니까.
그럼에도 저렇게 벗어날 수 있다는 뜻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그 압박감에서 풀려나고 한다는 짓이,
“배째요!”
배째라는 거냔 말이다!
저 놈의 놈팽이는 어떻게 되먹은 게 한 마디도 안 진다!
협박, 회유, 설득, 강요.
그 모든 방법을 동원해도 통하질 않았다!
[푸하! 푸하하하하하!!]제천대성은 다시금 바닥을 나뒹굴었고,
멘토는 머리를 감싸쥐며 현실을 도피하고 있었다.
〔하아···.〕
이리니는 짙은 한숨을 내쉬며 상당히 난처한 기색을 표했다.
산들거리는 바람이 불어와 이리나의 태양빛과도 같은 금발을 스치며 지나갔다.
그리고 그런 이리나의 모습을 바라보던 서준.
서준은 왜인지 살짝 양심의 가책이 찔렸다.
그도 그럴 것이 관조자의 경우와는 상황이 달랐기 때문이었다.
차원의 인과를 관장하는 관조자.
초월자 학원의 원장, 이리나.
둘 모두 초월자 위의 초월자라고 할 수 있는 존재였다.
하지만 한 쪽은 서준을 이용해먹으려는 존재였고,
한 쪽은 서준을 도와주려는 존재였다.
애초에 서준이 지금까지 성장하기까지, 초월자 학원의 도움이 절대적이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렇기에 관조자 때처럼 무작정 배째라고 하기엔 양심에 찔렸다.
아무리 서준이 인과에 미쳐있다고는 하나,
양심의 형태는 아직 세모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이대로 무료 쿠폰을 뜯길 수는 없지.’
······ 아마도 말이다.
아무튼.
무료 쿠폰을 고집하자니 양심에 상당히 찔린다.
그렇다고 무료 쿠폰을 포기하자니 그건 또 억울하다.
이리나와 마찬가지로 서준 또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이걸 어떻게 해야하나···.
싶은 그때.
‘아!’
서준은 문득 괜찮은 생각 하나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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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이렇게 하는 건 어떨까요?”
갑작스러운 서준의 말에 이리나를 비롯한 제천대성과 멘토가 서준을 바라봤다.
서준은 모두의 시선을 받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말씀을 드리기에 앞서···. 혹시 두 분이서 싸우시면 누가 이기십니까?”
〔저랑 제천대성씨요?〕
“네.”
서준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이리나가 이긴다는 것쯤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서준이 묻고 싶은 것은 이리나가 ‘어떻게’ 이기느냐였다.
순수한 무(武)의 영역을 논하는 초월자들간의 싸움.
현존하는 최강의 초월자 수준은 대체 어느 정도인지 서준은 보고 싶었다.
〔그건 갑자기 왜 물으시는지 모르겠지만···.〕
이리나가 제천대성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제자분께서 한 번 보고 싶으시다는데, 어떻게 한 번 해볼까요?〕
서준은 기대 가득한 눈빛으로 제천대성의 답을 기다렸다.
그런데.
[싫엉.]제천대성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어보였다.
“······ 네?”
서준은 순간 고개를 갸웃거렸다.
전혀··· 예상치 못한 답변이었으니까.
제천대성이 맞짱을 거부하다니?
차라리 해가 서쪽에서 뜨는 것이 더 믿음직스러운 일이었다.
[저 아줌마랑은 싸우기 싫어. 괜히 쳐맞기 싫단 말이야.]이윽고 제천대성은 진절머리가 난다는 듯 몸을 부르르, 떨어보였다.
그리고는 손을 휘휘, 저으며 말했다.
[싫어. 안 싸워.]세상에나.
서준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투전승불(鬪戰勝佛)의 제천대성.
뜻 풀이 그대로 ‘싸우는 부처’라는 이름이었다.
그런 이름이 붙을 정도로 제천대성은 맞짱을 좋아했다.
서준을 볼 때마다 맞짱 내기를 하자던 모습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렇기에 상대가 강하다고 해서 맞짱을 뺄 인물 또한 절대로 아니었다.
‘그런데 무슨···?’
서준은 고개를 돌려 이리나를 바라봤다.
이리나는 싱긋, 웃으며 서준을 마주 바라보고 있었다.
현존하는 최강의 초월자.
서준은 마음을 굳힐 수 있었다.
“좋습니다. 모의고사로 얻은 무료 쿠폰을 모두 포기하겠습니다. 단!”
서준은 눈을 번뜩이며 말을 이었다.
“조건이 있습니다.”
〔조건이요?〕
“네. 제가 무료 쿠폰으로 배우려던 강의가 있었거든요. 그걸 원장님께서 제게 직접 가르쳐주시는 조건입니다.”
그러자 이리나는 고민도 없이 답을 해왔다.
〔그건 불가해요. 설명하자면 복잡한데···.〕
“관조자 때문인가요?”
이리나가 살짝 놀란 눈을 뜨며 말했다.
〔알고··· 계셨네요? 그럼, 초월자 학원에 제 강의가 없는 이유도 알고 계시나요?〕
“네. 알고 있습니다. 멘토님이 말씀해주셨거든요.”
서준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초월자 학원에 이리나의 강의는 존재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존재할 수가 없었다.
이리나의 경지가 초월적이기 때문이었다.
초월자들의 경지 또한 초월자이긴 하나,
이리나의 경지는 그들과 궤를 달리했다.
처음엔 반신반의 했지만···.
직접 마주하니 어느 정도 수긍이 되었다.
따라서 이리나가 가르치는 기술들 또한 다른 강사들과는 궤를 달리했다.
이리나의 강의에 부담되는 인과는 가히 초월적이었고,
그것을 부담할 수 있는 초시생은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원래대로라면 저는 초시생들과 어떤 만남도 가질 수가 없어요. 면담의 인과 부담 또한 어마어마하기 때문이죠.〕
그도 그럴 것이 말이 면담이지.
사실 이 만남은 어떻게 보면 단과 강의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었다.
강사가 서준의 차원으로 오는 것에서,
서준이 초월자 학원으로 가는 것.
그 차이만 있을 뿐이었다.
그렇기에 지금 소모되는 인과가 어마어마할 터였다.
석가모니의 단과 강의가 추정치로 시간당 경 단위.
이리나는 어쩌면 해 단위를 넘어설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리고 바로 이 부분에서.
“지금부터 제가 하는 말씀을 잘 들어주세요.”
서준은 한 가지 생각을 떠올릴 수 있었다.
일단.
앞선 이리나의 말을 미루어보면,
초월자 학원의 인과 재정 상황은 그리 좋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초월자 학원은 서준과 이리나의 만남을 성사시킬 수 있는 인과가 없다.
그게 있었다면 서준의 무료 쿠폰을 포기하라고 강요하지 않았겠지.
그럼 대체 누가 인과를 부담하는 걸까?
답은 간단했다.
“관조자가 뭐라고 하던가요?”
관조자.
지금 인과의 부담을 관조자가 부담하면 가능하다.
그 말은 즉.
서준을 부른 것은 이리나만의 의지가 아니다.
아마 관조자 또한 서준이 무료 쿠폰을 사용하는 것을 막고자 했을 터였다.
그 이유는 자세히 알 수 없었다.
관조자는 워낙 숨기는 것이 많았으니까.
다만 관조자는 서준이 무료 쿠폰을 쓰는 것을 막아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다 정도만 추측할 수 있었다.
‘내가 여기서 더 강해지는 것을 경계한다던가.’
지금 당장 떠오르는 것은 이 정도였다.
본래라면 서준을 경계의 공간으로 끌고 와 설득했을 터였다.
하지만 관조자는 그럴 수 없었다.
왜?
서준을 경계의 공간으로 부르면,
무료 쿠폰을 1장 줘야만 했으니까!
관조자는 고민에 고민 끝에.
어쩔 수 없이 지금과 같은 선택을 한 것이다.
자신과 같은 고민을 하는,
무료 쿠폰의 사용을 막아야만 하는 이리나를 앞으로 내세우면서.
인과의 부담을 대신 짊어준다는 명목 하에 말이다.
“아닌가요?”
이리나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무슨 계약 조건이라도 있는 것일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일까.
그건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들었던 제천대성과의 대화.
이리나는 관조자에게 어떤 빚을 지고 있는 뉘앙스였다.
게다가 지금 보이는 이리나의 침묵과 멍한 표정.
서준은 오히려 확신을 얻을 수 있었다.
결국 지금의 인과는 모두 관조자가 부담하고 있다.
이것을 다시 말하면.
“이리나님이 제게 가르치는 인과 모두가 관조자에게 부담되는 것 아닌가요?”
이러한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
한 마디로 여기서 똥을 싸도,
그 똥은 초월자 학원이 아닌 관조자가 치워야만 한다!
〔하,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관조자가 모를리가 없어요. 인과의 부담이 사라지는 건 아니니까요.〕
“알고 있습니다. 어떻게든 인과의 부담이 걸릴테니까요.”
이리나가 서준에게 가르치는 인과는 사라지는 게 아니다.
단지, 관조자가 전부 부담하는 것일 뿐.
당연히 관조자는 이리나가 서준을 가르쳤다는 사실을 알아챌 수 있었다
그런데.
“그게 무슨 상관이죠?”
그게 뭔 상관이란 말인가.
〔······ 네?〕
이리나는 순간 벙찐 표정을 지어보였다.
서준은 어깨를 으쓱이며 말을 이었다.
“원장님 말씀처럼, 이곳이 어디라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그야, 초월자 학원··· 서, 설마?!〕
이리나는 눈을 부릅, 뜨며 소리쳤다.
서준은 씨익, 웃음을 지어보였다.
이곳은 다름 아닌 초월자 학원이다.
경계의 공간과 마찬가지로,
차원 밖에 위치한 공간이라는 뜻이었다.
한 마디로 관조자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이다.
여기서 무슨 짓을 해도 관조자는 알 길이 없었다.
그 후에 결과만을 통보 받을 뿐.
서준이 이리나에게 배워 본래 차원으로 돌아가면 차원에 인과의 부담이 걸린다.
없던 기술이 생겨서 돌아왔으니 말이다.
당연히 해당 기술에 대한 어마어마한 인과의 부담이 걸린다.
그걸 관조자가 모를리가 만무했다.
이리나가 서준을 가르쳤다는 것을 쉽게 추론할 수 있었다.
그런데.
말했다시피 이곳은 차원 밖의 공간.
“직접 본 건 아니잖아요?”
관조자는 이곳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지 못한다.
“제가 스스로 깨달았는지. 훔쳐봤는지. 지랄 발광을 하면서 얻어냈는지. 관조자가 어떻게 안 답니까.”
본래는 초시생은 절대로, 절대로 올 수 없는 곳이었다.
오직 초월자들만이 올 수 있는 공간이다.
초시생이 온 경우는 태초 이래로 단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예외가 생겼고,
서준은 그 틈을 파고들었다.
그러니.
“관조자가 뭐라하면, 뭐가 문제냐고 말씀하세요. 무료 쿠폰을 포기하게 했는데 대체 뭐가 문제냐고.”
어쨌거나 서준이 무료 쿠폰을 포기한 것은 사실이니까.
“그래도 따지면 드러누우세요. 원장님은 모르는 일이라고.”
서준은 시범을 보이듯 바닥에 벌러덩, 드러누워보였다.
지난 날, 관조자 앞에서 배째던 그 자세 그대로!
“그리고 보아하니 원장님도 인과 떠넘기기 당하신 거 같은데. 이 참에 그대로 돌려주죠. 뭐, 수 천배로 돌려주는 것 같지만··· 알게 뭡니까?”
솔직히 알게 뭐란 말인가.
그건 관조자가 알아서 해야할 일이지.
서준은 씨익,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 웃음이 사탄보다 더 악독하게 느껴지는 것은 대체 왜일까.
이리나, 제천대성 그리고 멘토.
이 세 사람은 멍하니,
정말 멍하니 서준을 바라만 봤다.
그리고 정말 오랜 시간이 지나,
끝내 입에서 한 마디씩 튀어나와버렸다.
[와.]〔와.〕
진짜 상상도 못할 미친놈을 만난 표정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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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나는 정말 오랜 시간 동안 아무런 말이 없었다.
서준은 그런 이리나를 차분히 기다려주었다.
그렇게 다시 오랜 시간이 흘러.
〔멘토?〕
이리나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잠깐 내려가서 토트씨좀 불러주시겠어요?〕
그런 이리나의 말에 멘토가 기겁을 하며 답했다.
[정말로? 정말로 저 미친 짓에 동참한다고?]심지어 제천대성까지.
이리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별 수 있나요. 인과가 없으면 몸으로 떼워야죠.〕
그리고는 서준을 보며 싱긋, 웃음을 지어보였다.
어째··· 표현이 꽤나 이상했지만 아무튼.
〔올라올 때, 토트의 서를 꼭 챙겨오라고도 말해주세요.〕
멘토는 정신이 빠져버린 인형처럼 터덜터덜, 걸어나갔다.
그렇게 멘토가 사라진 뒤.
이리나가 다시 입을 열었다.
〔많은 것들을 가르쳐드릴 수는 없어요. 아무리 관조자에게 떠넘긴다고는 하나, 인과의 부담으로 자칫 차원이 무너질 위험이 있으니까요.〕
〔동시에 제천대성씨처럼 강의를 찍어드릴 수도 없어요. 이건··· 말씀드리지 않아도 아시겠죠?〕
서준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서준의 모습에 이리나가 다시 말을 이었다.
〔해서 개념과 이론만 가르쳐드릴게요. 그 이후로는 혼자 갈고 닦으셔야 해요. 하지만 어차피 제 도움은 필요 없을 거예요.〕
〔김서준님은 어느 정도 초월의 경지에 발을 디뎠고, 발을 디디면서 스스로가 확립한 무(武)의 세계가 있을 테니까요. 거기에 제가 간섭하면 되려 방해만 될 거예요.〕
이리나는 살며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천월유성창은 딱히 건드릴 건 없어요. 이건 저조차도 긴장할 정도의 초월기이니까요. 다른 것도 딱히··· 으음.〕
〔혹시 배우시려던 강의가 어떤 것이었나요?〕
서준은 바로 소리쳤다.
“므시네 강사님의 초감각지각과 청룡 스쿨의 용언 강의였습니다!”
〔 아, 그럼 감각 관련 기술이 좋겠네요. 용언은 저도 할 수 없는 거라.〕
“네? 용언을 하실 수 없으시다고요?”
〔그럼요. 보다시피 저는 엘프인걸요. 용언은 드래곤 종족만의 고유한 언령이에요. 언령은 가능하지만 용언은 불가능해요.〕
“아···. 원장님은 다 하실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설마요. 저는 누구와 다르게 인과의 한계를 가진 존재랍니다.〕
이리나는 싱긋, 웃음을 지어보였다.
〔아무튼, 멘토가 토트를 데려올 때까지. 어떤 것을 배울지 잠깐 보여드릴게요. 제천대성씨? 조금 도와주시겠어요?〕
그러자 제천대성이 기다렸다는 듯 폴짝, 뛰어올랐다.
[조금 센 걸로 가도 되겠지?]〔얼마든지요.〕
제천대성은 여의봉을 꽈득, 움켜쥐었다.
이어 제천대성의 전신으로 소름끼치는 마력이 터져나왔다.
인과의 제약이 없는 진정한 초월자의 힘.
콰콰콰콰콰콰콰콰콱!!!
“미, 미친..!!”
그건 정말 미친 수준이었다!
서준은 터져나오는 마력의 힘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리나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서준에게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므시네씨가 가르치는 초감각지각은 대상을 구성하는 외부의 환경까지 고려한 감각이에요.〕
〔므시네씨는 이것을 인지하는 것에 국한했지만 이걸 조금 확장하면, 인지를 넘어 대상의 환경을 지배할 수 있는 영역에 닿게 돼요.〕
〔한 마디로 감각이 닿는 주변의 모든 공간을 지배할 수 있는 거죠.〕
〔그리고 그런 지배의 감각이 궁극에 달하면, 이러한 것도 가능하답니다. 제천대성씨?〕
이리나의 부름에 제천대성이 크게 소리쳤다.
[지금 간다!]이윽고 제천대성의 전신으로 터져나오던 초월의 힘이 폭사했다.
일순간 하늘에서 번쩍! 하며 빛이 터져나왔다.
그것은 까마득한 점으로 보이는 그것은,
세상을 으스러뜨릴 듯한 힘을 품고 있었다.
그리고 찰나.
내리치는 제천대성의 여의봉과 함께 그것은 어마어마한 속도로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주한 것은 거대하다는 말로도 부족할 어마어마한 크기의 운석이었다.
천월유성봉(天月流星棒).
제 1형(第 一形).
유성낙하(流星落下).
.
.
“아니, 미친 거 아닙니까!!!”
서준은 기겁을 하며 소리쳤다.
그도 그럴 것이 다짜고짜 유성낙하를 쓰면 어떡하자는 거란 말인가!
“이게 무─.”
바로 그 순간.
서준은 일순간 기묘한 감각을 느낄 수 있었다.
마치 목덜미에 수 천개의 칼날이 들이친듯한 느낌?
그것도 아니다.
뭐라 설명할 수 없는,
마치 지금 서있는 공간 자체가 대적이 되어있는 것만 같았다.
남의 집에 들어온 듯한.
발을 내딛는 움직임조차,
숨을 쉬는 그 행동조차.
누군가의 허락을 받아야만 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제천대성의 유성낙하는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지금이라도 도망쳐야하는데 그럴 수가 없었다.
움직임을 허락받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숨도 제대로 내쉬어지지 않았다.
그런 서준의 귓가로 제천대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견디기 빡세지?]그 순간 굳어있던 서준의 몸이 풀려났다.
서준과 달리 제천대성은 그다지 영향을 받지 않는 것 같았다.
제천대성은 손가락으로 어느 한 곳을 가리키고 있었다.
바라본 그곳.
그곳엔 이리나가 눈을 감고 있었다.
찰랑이는 금발의 머리칼이 흔들리며,
이리나가 손을 앞으로 뻗어보였다.
떠오르는 지배의 감각.
[잘 봐, 저게 원장만이 할 수 있는, 초월자 중에서도 유일한···.]제천대성은 다시 손가락을 들어 하늘을 가리켰다.
그리고 이어지는 제천대성의 한 마디.
[EX등급이니까.]그와 동시에.
세상 전체를 으스러뜨릴 것만 같던 제천대성의 유성이,
꽈드드드드드득!!
존재를 허락받지 못한 채.
흔적도 없이 소멸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