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nscension Academy RAW novel - Chapter 23
23화 – 작은 날갯짓(2)
끝내 쓰러지지 않는 김서준.
폭발적인 함성 소리가 경기장을 가득 메아리쳤다.
스카우터들은 저마다 경악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그 광경을 바라봤고,
사람들은 너나할 것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터져나오는 흥분을 소리치고 있었다.
지금 이곳. 여기 모인 수많은 사람들의 머릿속에서는 ‘김서준’.
이 이름 석자만이 박혀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서윤이라고 그들과 크게 다를 이유는 없었다.
‘어, 어떻게···!’
서윤은 정신이 멍했다.
아니, 정확히는 방금 본 광경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준환이 보인 것은 분명 오러 소드였다.
수강생이 어떻게 오러 소드를 사용할 수 있는지는 그렇다 치자.
하지만 서준이 보여준 모습은 어떠한 잣대를 들이밀어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때는 분명···’
서윤은 지난 서준과의 대련에서 서준이 자신의 마나를 실은 검을 견디지 못하고 쓰러졌던 모습을 떠올렸다.
불과 2주 전만해도 마나를 담은 검을 감당하지 못했는데 지금은 오러 소드를…
바로 그때였다.
“말도··· 말도 안돼···!”
그런 서윤의 귀로 누군가의 목소리가 파고들었다.
함성 소리에 묻혀 제대로 들리지 않아야 정상이건만, 어쩐지 그 목소리는 선명하게 들려왔다.
그리고 딱히 이상할 것 없는 목소리였다.
서준이 보인 광경은 그만큼 믿을 수 없었고, 저렇게 놀라는 건 어떻게 보면 자연스러운 반응이었다.
그럼에도 서윤은 저도 모르게 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 정체를 확인한 서윤은 살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저 사람은···?’
그는 다름 아닌 아까 전.
도박장에서 서준에게 거액의 돈을 건 검은 후드의 사내였기 때문이었다.
“어, 어떻게···! 이건···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검은 후드의 사내는 자신의 후드가 벗겨진지도 모른 채 연이어 소리쳤다.
아니, 주변의 시선 따위는 전혀 신경쓰지도 않고, 서준을 바라보며 대경실색한 얼굴을 지어보였다.
마치 절대 변하지 않을 것만 같은.
아니, 절대 불변해야만 하는 진리가 깨어진 광경을 본 모습.
서윤은 저도 모르게 살짝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서준이 보인 광경은 그만큼 놀라웠지만, 그런 것치고도 검은 후드의 반응은 과했기 때문이었다.
서윤은 왜인지 모르겠지만 어딘가 뿌듯한 기분을 느끼며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러다 문득 서윤은 무언가 이상한 점을 느꼈다.
‘그런데 저 사람···’
서준씨가 우승할거라고 하지 않았었나?
서윤은 고개를 한 번 갸웃거리고는 다시 검은 후드의 사내를 바라봤다.
하지만 다시 바라본 그곳엔 검은 후드의 사내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있었다.
터덜터덜.
경기장에서 나와 걷는 서준의 발걸음은 어딘가 힘이 쭉 빠져있었다.
이준환과의 격전에서 모든 힘을 쏟아낸 것도 탓도 있었지만 사실 가장 큰 이유는 따로 있었다.
다름 아닌 서준이 실격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사실만 놓고 보면 서준이 한 행동은 명백한 규칙 위반이었다.
이준환의 행동이 선을 넘었다고는 하나 이준환은 이미 기권을 한 상태.
더군다나 서준은 정식 경기가 아닌 갑작스레 난입한 상황이었다.
이런 서준에 행동에 대하여 심판이 경고를 했지만, 그를 무시한 것도 다름 아닌 서준.
상황을 빼고 사실만 놓고 보면 서준이 잘한 것은 없었다.
물론 이준환 또한 잘한 것은 없었기에 서준과 같이 실격 처리가 되었다.
애초에 기권 선언한 것도 있었지만.
더하여 이준환은 오러 소드를 사용한 것에 대하여 처벌을 따로 받았다.
그도 그럴 것이 무기에 마나를 담는 것은 위험한 행동이었다.
특히, 오러 소드는 상대를 죽이겠다는 의도가 있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그나마 경합이라는 장이었고 서준이 이겼기에 형사 처벌까지는 가지 않았지만, 협회 내에서 향후 5년간 프로헌터 시험 응시 자격 박탈이 내려졌다.
그렇게 서준과 이준환은 실격처리가 되고, 이번 경합은 부전승으로 올라간 이철민이 우승하게 되었다.
더하여 1차 경합에서 점수가 높았던 이민기가 2등.
장덕철이 3등으로 마무리가 되는 아이러니한 결과가 나왔다.
‘그래도 뭐···’
그럼에도 서준은 후회하지 않았다.
오히려 거기서 나서지 않았더라면, 그대로 이준환이 기권하게 내버려 두었다면.
그것이 더 후회스러웠을 것이라 서준은 생각했다.
그리고 이준환과의 대결에서 폭발적으로 상승한 강의 진행률.
석가모니는 드디어 10%를 넘었고, 케이론도 곧 50%를 넘을 예정이었다.
그리고 50%가 넘어간 항우 강의 진행률.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이준환과의 마지막 격돌 당시.
서준이 느꼈던 그 이상한 힘은 어쩌면 항우의 강의 진행률이 50%를 돌파하면서 생긴 일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진행률이 높아지면 그만큼 강의에 여유가 생기는 것은 자명한 사실.
‘어쩌면 다른 강의 하나를 더 들을 여유가 생길지도 모르겠는데.’
어떤 의미로 보면 최선의 행동이었다고도 할 수 있었다.
그렇게 마무리 된 아카데미 경합.
크나큰 사건이 있었지만 세간에는 크게 알려지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4부 리그의 경합이었기에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주목되지는 않았다.
“서준씨!”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걸음을 옮기자니, 어디선가 서준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보인 것은 긴 흑발에 청초한 느낌의 미녀.
모자를 꾹 눌러쓴 탓에 한 번에 알아보지 못했지만, 서준은 금방 그녀가 서윤임을 알 수 있었다.
“아, 서윤씨.”
급하게 달려오는 서윤의 모습에 서준은 저도 모르게 멋쩍게 미소를 지었다.
“몸은. 어떻게 몸은 괜찮으신거예요? 다친데는 없어요?”
어느 정도 가까워지자 서윤이 한껏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서준에게 물었다.
그리고 다른 것도 아닌 걱정부터 하는 서윤의 모습에 왜인지 모르겠지만 서준은 괜시리 웃음이 새어나왔다.
“네. 보다시피 멀쩡합니다. 이래봬도 몸은 상당히 튼튼해서요.”
서준이 가볍게 뛰며 말하자 서윤은 다행이라는 듯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서준은 그런 서윤의 얼굴을 바라보다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 미안해요 서윤씨.”
“네? 뭐가요?”
갑작스러운 서준의 말에 서윤은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서윤이 서준이 바라보자 서준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우승할 수 있었는데 괜히 나서는 바람에…”
서윤은 그때서야 서준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서윤은 무슨 소리냐는 듯 고개를 저었다.
“아, 전 또 뭐라고. 아니요. 서준씨가 왜 미안해 하세요. 제게 미안해할 건 없죠. 오히려 서준씨는 괜찮으세요?”
“네? 제가 왜요?”
“그때 보니까 우승 상금에 미련이 있으신 것 같던데. 아니었나요?”
“아···?”
서준은 순간적으로 정신이 멍해졌다.
강의 진행률에 정신이 팔려 잊고 있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우승 상금 1억이 있었다.
그리고 그건 초월자 학원에서 판매하는 롱기누스의 창을 구매하기 위해 필요한 금액이었다.
하지만 실격 처리가 되면서 우승 상금 1억도 함께 증발해버렸다.
“…”
서준은 빈말이나마 차마 괜찮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런 서준의 모습에 서윤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우승 상금으로 무기 사려고 했었죠?”
“어···? 그걸 서윤씨가 어떻게 아십니까?”
“어쩐지. 그 괴상한 철봉을 들고 다닐 때부터 이상하다 했는데···”
서윤은 마침 잘 되었다는 표정을 보이며 말을 이었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그 철봉 좀 어떻게 하면 안돼요? 혹시 들고 다니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거예요? 특수합금으로 만들어졌다던가…”
“아뇨. 그런건 아닌데··· 특별히 문제될 것이 있나요?”
“정말 몰라서 묻는 거예요?”
“문제가··· 되는 건가요?”
아무것도 모른다는 서준의 표정에 서윤의 어이가 잠시 출타했다가 돌아왔다.
“지금 그거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는 것처럼 보이는 건 아시죠? 너희들은 이런 조잡한 철봉으로도 이길 수 있다. 이런 식으로요.”
“아뇨 아뇨. 절대 그런 의도는 없었습니다. 저는 단지…”
“그럴 의도가 아니었어도 보는 사람이 그렇게 느낀다고요! 그리고 별 특별한 것도 없으시다면서 대체 왜 고집을 부리는 거예요?”
“고집이 아니라···”
서윤은 듣기 싫다는 듯 서준의 말을 끊었다.
“됐어요. 아카데미가면 당장 무기부터 바꿔요! 아니다. 지금 그냥 하나 사러 가죠?”
“지금요? 저 돈 없습니다.”
“제가 사드릴게요. 그럼 됐죠?”
“서윤씨가요? 서윤씨가 왜···”
“오늘 고생하신 것도 있고 그냥 장학금 대신 주는 거라고 생각해요. 정 불편하시면 서준씨가 그러고 다니면 저희 아카데미 이미지도 안좋아지니까라고 생각하셔도 되고요.”
단호한 서윤의 말에 서준은 뭐라 반박할 말이 없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본인의 행동이 얼마나 멍청했는지를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사실 서준은 롱기누스의 창을 쓸 생각에 다른 무기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렇기에 원래 계획은 우승 상금 1억을 받아 초월자 학원에서 무기를 사려했지만, 이미 틀어진 상황.
프리패스를 재구매할 돈도 모아야하는 지금.
언제 1억을 모을지 몰랐기에 그때까지 굳이 철봉을 고집할 이유는 하등 없었다.
“그럼… 저 비싼 거 고릅니다.”
“네네. 그러니까 제발 그 되도 않는 철봉만 눈앞에서 치워주세요.”
그러면서 서윤은 혐오스러운 벌레를 보는 것 마냥 몸을 부르르 떨어보였다.
그런 서윤의 모습이 꽤나 우스워 서준은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그렇게 서준과 서윤이 다시 발걸음을 옮기려는 그때.
“형!! 서준이형!!”
어디선가 서준을 부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둘의 고개가 동시에 돌아갔고 그곳엔 민기가 헐레벌떡 서준과 서윤이 있는 곳으로 뛰어오고 있었다.
서윤은 눌러 쓴 모자를 더 꾹 눌러썼다.
하지만 다가온 민기는 서윤 쪽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 이제 가시는 건가요?”
바라본 민기는 상당히 꾀죄죄했다.
얼굴을 초췌하고, 옷은 너저분한 모습.
“그러려고.”
서준은 할 말은 많았지만 그 모든 말들을 삼켰다.
그런 서준의 모습에 민기는 잠시 우물쭈물해보였다.
“그… 형.”
그러다 이내 큰 결심을 하듯 입을 열었다.
“저도… 하다보면 형처럼 될 수 있을까요?”
서준은 가만히 눈을 들어 민기를 바라봤다.
그리고 잠시 생각하고는 입을 열었다.
“글쎄. 아마 힘들지 않을까.”
서준의 말에 민기는 물론 가만히 듣고 있던 서윤 또한 놀라보였다.
사실 민기의 재능은 지금 시대에 프로 헌터가 되기에는 상당히 부족했다.
물론 노력하면 안되는 일은 없다고 하지만, 현실은 꿈과 이상만을 들먹이기엔 그리 녹록치 않았다.
“그러니 너무 헌터에만 매달리지마. 다른 걸 잘하면 되니까. 너무 실망할 필요도 없어. 넌 아직 어리잖아.”
“···역시 그런 거겠죠.”
민기는 알고 있었다는 듯 씁쓸하게 웃었다.
“마지막 인사라도 드리려고 찾아왔어요. 고마웠어요 형.”
그렇게 등을 돌려 떠나가는 민기.
그리고 서준은 그런 민기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말했다.
“넌 못할 거라는 말. 절대 귀담아 듣지마. 나의 말이든, 그 어떤 누구의 말이든.”
우뚝.
걸음을 멈추는 민기.
“남이 잘되면 배 아픈 것이 사람의 심리거든.”
서준은 그런 민기에게 말했다.
“넌 재능이 없어. 맞아. 이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야. 그래서 사람들은 널 보면 이렇게 말할거야. 너는 할 수 없을 거라고. 너는 안될 거라고.”
천천히 고개를 돌리는 민기.
이어지는 서준의 말.
“하지만 명심해. 누군가의 의견은 너의 현실이 되지 않아. 원하는 게 있으면. 바라는 게 있으면 해. 그거 하나면 된거야.”
“형···”
심하게 떨리는 민기의 눈빛.
서준은 그런 민기를 바라보며 살며시 미소를 지어보였다.
민기를 처음 봤을 때, 서준은 과거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만 같았다.
어쩌면 그래서 서준은 미로에서 민기를 내치지 않았던 것이 아니었을까. 문득 생각이 들었다.
“다시… 우리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모르지.”
서준은 씨익 웃음을 지어 보였다.
“하지만 못 만날 건 없지 않을까?”
민기가 활짝 웃으며 소리쳤다.
“네! 그렇죠! 못 만날 건 없죠! 못 할 것도 없고요!”
순간 어린 아이처럼 소리치는 자신의 모습이 쑥쓰럽다 생각했는지 민기가 후다닥, 자리를 벗어났다.
어느 정도 거리가 멀어졌다 싶을 때 쯤, 민기가 다시 뒤돌아 소리쳤다.
“형! 진짜 멋있어요! 진짜로요! 언제 한 번 동생이랑 꼭 찾아갈게요!”
다시 후다닥.
그렇게 민기는 서준의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서준씨··· 의외의 면이 있으셨네요.”
“쓸데없는 오지랖이죠.”
“그거 참 멋있는 오지랖이네요.”
서윤은 기분 좋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보다 팬이 한 명 생겼네요?”
“서윤씨 입장에서는 팬보다는 수강생이 더 좋았을려나요. 이왕 하는거 우리 드림 아카데미를 소개해볼걸.”
서윤의 농담에 서준도 가볍게 받아치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서윤은 그런 서준의 뒷모습만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서윤은 아직 그 이유를 잘 몰랐지만.
‘우리 아카데미···’
그 말이 괜시리 기분이 좋았다.
고풍스러운 기와집의 화원.
그곳에 한 노년의 사내가 바삐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오른팔이 하나 없었는데 그 사실에 꽤나 익숙한 듯 그의 걸음걸이는 흔들림이 없었다.
바삐 걸음을 옮기던 그는 어느 방 문 앞에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대기하고 있는 고용인에게 물었다.
“문주께서 안에 계시더냐.”
“예. 하지만 명상 중이니 아무도 들이지 말라 하셨습니다.”
“급한 일이니 내가 찾아왔다 아뢰거라.”
“하, 하오나···”
“내가 직접 말씀드리는 게 빠르겠군.”
노년의 사내는 어쩔 줄 몰라는 고용인을 뒤로 한채 성큼성큼 방 안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가자 단촐한 방과 함께 그 중앙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있는 초췌한 노인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그 노인을 향해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문주님. 서문철입니다.”
“분명 아무도 들어오지 말라고 했을텐데…”
서늘한 노인의 말.
“내 말을 무시하는 것이냐?”
동시에 목덜미를 훑는 저릿한 살기.
서문철은 침을 꿀꺽 삼키며 말했다.
“아가씨께서 이번에 열리는 아카데미 경합에 참가했다고 합니다.”
번쩍.
그리고 그 말과 함께 눈을 번쩍 뜨는 노인.
노인은 흩뿌렸던 기세를 거두며 말했다.
“아카데미 경합? 서윤이가 말이냐?”
“예. 자세한 건 아직 파악 중이나··· 아무래도 새로운 수강생을 모집한 것 같습니다.”
“흐음···”
노인은 손을 들어 길게 난 하얀 수염을 매만졌다.
서문철은 그것이 그가 상당히 기분이 언짢을 때 하는 행동임을 잘 알고 있었다.
“제 선에서 처리하겠습니다.”
“아니다.”
노인··· 아니, 검성(劍星)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말했다.
“어떤 놈인지 내가 직접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