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nscension Academy RAW novel - Chapter 29
29화 – 진리회(2)
호텔 내부는 삭막하다 싶을 정도로 조용했다.
투숙하는 손님이 한 두명쯤 있다면 인기척이라도 들릴진대, 보아하니 호텔 전체를 빌린 듯 싶었다.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서준과 검성이 안에 들어가자 또 다른 신도 한 명이 안내를 자청했다.
그 신도를 따라 도착한 곳은 호텔 가장 최상층인 11층의 방.
썩 좋지 않은 호텔임에도 VIP실은 다른 모양인지 고풍스러운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그런 방이었다.
“이곳에서 조금만 기다리시면 칼리아 경께서 오실 겁니다. 행여 필요한 것이 있으시면 제가 상시 문 앞에 대기하고 있으니 편하게 부르시지요.”
신도는 그 말을 끝으로 방을 나섰다.
그런데 그런 신도를 바라보던 검성의 표정은 왜인지 좋지만은 않아 보였다.
왜 그런가 싶어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니.
“기다리고 있기는··· 이럴 줄 알았다.”
중얼거리는 검성의 말이 들려왔다.
서준은 속으로 피식, 웃음을 흘리며 세상 편해보일 것 같은 쇼파로 가 자리했다.
역시나 비싼 쇼파가 아니랄까봐 몸을 감싸듯 밀려오는 안락함.
서준은 처음 느껴보는 돈의 편안함을 느끼며 검성에게 물었다.
“검성님은 칼리아 경이랑 친분이 있으신 거죠?”
그도 그럴 것이 검성이 칼리아를 대하는 태도만 보더라도 그러했다.
칼리아라는 이름을 알고 있는 것부터 시작해, ‘년’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까지.
아주 친한 사이는 아니지만, 그래도 서로 얼굴을 알고 이름을 아는 사이.
역시 노는 물이 다르구나 하는 생각이 들던 찰나.
“오늘 처음 본다.”
예상과는 전혀 다른 검성의 말이 들려왔다.
“네? 오늘 처음 보신다고요?”
“그래. 실제로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야. 몇 번 연락을 주고 받은 적은 있다만 이런 식으로 직접 만나자고 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럼에도 서준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검성은 혀를 한 번 차보이며 말했다.
“내가 만나본 건 사도들이지 후계자들이 아니다. 그것도 대격변 시절의 사도들. 순결의 사도를 만나본 적은 있지만 후계자를 본 건 아니었다.”
“아···”
서준은 그때서야 고개를 끄덕였다.
검성은 다름 아닌 대격변 시절에 활동한 영웅들 중 한 명이었다.
그것도 진리회와 함께 힘을 합쳐 대격변을 종식시킨 영웅.
후계자가 아닌 사도를 만나봤다니.
서윤의 할아버지라는 인식이 강해서 그렇지 검성은 검성이었다.
그리고 세계에는 검성과 같은 수많은 영웅들이 있었지만 검성은 그런 영웅들 중에서도 유독 나이가 많은 편에 속했다.
서준이 알기로 검성의 나이가 곧 100이 되어가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한 마디로 거의 대격변과 동시에 태어나 지금까지 살아왔다는 뜻.
어떻게 보면 대격변의 산 증인이자, 살아있는 화석이라 불러도 모자람이 없는 검성이었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서준은 문득, 한 가지 궁금증이 떠올랐다.
“그럼 위대한 목소리는요? 혹시 위대한 목소리도 만나보셨어요?”
다름 아닌 위대한 목소리의 존재.
진리회는 위대한 목소리를 중심으로 그 밑의 7인의 사도가 결탁해 만들어진 단체라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세간에 알려지고 활동하는 것은 오직, 7인의 사도들뿐.
위대한 목소리는 단 한 번도 공식적인 자리에 나선 적도, 모습을 드러낸 적도 없었다.
그렇기에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알 지 못했으며, 나이 또한 불명확했다.
오죽하면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맞냐는 의문들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었으니.
심지어 진리회 내부에서도 7인의 사도를 제외하고, 위대한 목소리를 본 자는 없다하니 할 말 다한 시점이었다.
그 혹은 그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알려진 건 딱 한 번.
바로 대격변이 공식적으로 종결되었던 때이자, 동시에 대괴수 베세르크가 쓰러졌을 때였다.
사실 이것이 아니었다면 진리회는 지금과 같은 위명을 갖지 못했다는 것이 정확했다.
7인의 사도가 행한 일들은 몬스터로부터 사람들을 구하고 던전을 처리하는, 지금의 영웅들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으니까.
아니, 애초에 대격변은 지금까지도 끝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게 더 정확하겠다.
수많은 영웅들의 노력으로 몬스터들은 하나 둘씩 정리되며, 사람들이 대격변의 종식이 머지않았다고 말하던 그때.
돌연 등장한 대괴수 베세르크.
서준은 사실 베세르크라는 이름만 알 뿐, 어떻게 생겼는지조차 자세히 알지 못한다.
당시, 영웅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그려낸 그림은 있지만 사진이나 동영상, 그 어떠한 자료로도 남아있지 않은 기록.
그저 전설 속 이야기로나마 전해지는 것 뿐이지만 베세르크의 힘은 그간 봐오던 그 어떤 몬스터들보다 압도적이었다고 한다.
전 세계의 모든 영웅들이 힘을 합쳐도 어찌 못했을 정도라는데, 서준은 솔직히 그것이 상상이 가질 않았다.
오죽하면 베세르크 하나를 어쩌지 못해 제2의 대격변이라는 말이 나왔을 정도.
하지만 베세르크는 결국 쓰러졌고, 그 대괴수 베세르크를 쓰러뜨린 것이 바로 위대한 목소리와 7인의 사도들이었다.
이것이 바로 진리회가 없었다면 대격변은 끝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말의 정확한 의미이자, 더하여 위대한 목소리가 모습을 드러낸 처음이자 마지막 순간이었다.
그리고 검성은 그 순간을 함께 했던 당사자.
서준은 혹시나 싶어 물었고 검성은 무심한 듯 툭, 말을 내뱉었다.
“만나보진 못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한 마디.
“먼 발치나마 본 것이 전부지.”
바로 그때였다.
달칵.
“반가워요. 실제로 뵙는 건 이번이 처음인가요?”
서준과 검성이 있던 방 문이 열리면서 누군가 안으로 들어왔다.
동시에 들려온 목소리는 어찌나 맑은지 듣고만 있어도 귀가 깨끗해지는 것만 같은 착각이 일 정도였다.
서준은 저도 모르게 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런 서준의 눈에 보인 것은 것은 어깨 아래까지 내려온 백금발의 미녀였다.
동시에 그녀의 나이는 한 눈에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얼굴만 본다면 서준과 동년배거나 혹은 살짝 위.
더하여 그녀는 투구를 제외한 단촐한 갑옷 차림을 하고 있었는데, 그 때문에 서준이 그녀에게 느낀 첫 인상은 성기사였다.
서준은 그녀가 순결의 사도 후계자, 칼리아임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순결의 사도라는 타이틀 때문일지는 모르겠지만, 서준은 칼리아에게서 묘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검성은 그런 정갈한 칼리아의 모습에 탐탁치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왜 늦나 했더니 몸단장을 하느라 늦었나?”
“신의 말씀을 전하기 전,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는 것이라 생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 지랄은 실제로 들으니 꽤 새롭군.”
비아냥거리는 검성의 말에 칼리아는 살포시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는 시선을 돌려 서준을 바라보며 말했다.
“제 소개가 늦었네요. 저는 신의 말씀을 전파하는 진리회의 신도이자, 순결의 길을 걷고 있는 칼리아라고 합니다. 만나서 반가워요.”
서준은 칼리아의 눈을 마주하며 말했다.
“반갑습니다. 저는···”
“김서준님. 맞으시지요? 이렇게 와주셔서 감사해요.”
그러자 마치 다 알고 있다는 듯 말을 끊으며 답을 하는 칼리아의 모습.
서준이 칼리아를 물끄러미 바라보자 칼리아가 말을 이었다.
“저희가 어떻게 대화를 나눌수 있는지를 모르시는 건 아닐테고…”
서준은 아무 말없이 칼리아를 계속 바라만 봤다.
지금 보이는 칼리아의 모습은 누가 봐도 한국인은 아니었다.
따라서 칼리아가 지금 내뱉고 있는 언어 또한 한국어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서준이 그 말을 알아 들을 수 있는 이유는 진리회만의 특별한 의사 전달 방법 때문이었다.
다름 아닌 의지를 직접 전달하는 방식.
물론 그 과정에서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언어를 사용하되, 다만 그 언어 속에 담긴 의지만을 뽑아 전달하는 방식일 뿐.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저들은 그것이 자신들의 말이 곧 진리이기 때문이라 주장한다.
어디까지나 저들의 말일 뿐이었지만, 그럼에도 언어의 장벽이 없다는 점은 진리회가 순식간에 세계적으로 퍼져나갈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이어 칼리아가 다시 물어왔다.
“아니면 제가 어떻게 김서준님을 알고 있는지 궁금해하시는 건가요?”
“잘 알고 계시는군요. 그럼 말이 나온 김에 여쭙겠습니다. 대체 저를 어떻게 알고 계시는 겁니까?”
단도직입적으로 묻는 서준의 물음에 칼리아는 살짝 놀란 표정을 지어보였다.
이렇게까지 직접적으로 물을 거라고는 예상치 못한 모양.
“아무래도 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오해를 풀고 갈 필요는 있을 것 같네요.”
칼리아는 바로 말을 이었다.
“얼마 전, 아카데미 경합에 참가하신 적이 있으시죠? 그때 저희 신자님 중 한 명이 서준님의 행동을 지켜봤습니다. 그러면서 제게 어찌나 칭찬을 아끼지 않던지. 얼마나 대단하시길래 그런가 싶어 이렇게 실례를 무릅썼습니다.”
그리고는 더 이상 입을 열지 않는 칼리아.
“그게 끝입니까?”
“네. 다른 이유가 필요하신가요?”
서준은 무슨 당연한 소리를 하냐 듯 물었다.
“고작 그런 이유로 저를 알고 계신다는 겁니까?”
“그러면 안되는 이유라도 있나요?”
그러자 똑같이 무슨 당연한 소리를 하냐는 듯 답하는 칼리아.
서준은 가만히 눈을 들어 칼리아를 바라봤다.
물론 그러면 안되는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그것이 칼리아가 서준을 알고 있다는 충분한 설명이 되지는 않는다.
그리고 그건 칼리아라고 모르지 않을 터.
그럼에도 칼리아가 입을 열지 않는 것은 일부러 그런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서준은 질문을 바꿔 던졌다.
“그럼 저를 보고싶다 하신 이유가 뭐죠? 설마 이것도 단순히 보고 싶다는 이유는 아니시겠죠.”
그러자 칼리아가 깨끗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지금부터 그 이야기를 할까 하는데··· 자리에 좀 앉아도 될까요?”
그렇게 자리에 착석한 서준과 검성 그리고 칼리아.
“인사만 나눈 것 같은데 벌써부터 기운이 다 빠지는 건 저만 그런가요?”
“네 년의 그 지랄맞은 화법 때문이지 않느냐. 네 년이 자초해놓은 주제에 입만 살아있군.”
검성의 일침에 칼리아는 어깨를 으쓱이며 입을 열었다.
“그럼 바로 용건부터 말씀드려도 상관없겠군요. 우선 검성님. 저와 던전 하나를 같이 수색해주셨으면 합니다. ”
“지랄맞은 화법에서 염병떠는 화법으로 전략을 바꾼 건가? 내가 왜 네 년과···”
“끝나지 않았음을 누구보다 잘 아시지 않습니까.”
“…!!”
순간 검성이 눈을 부릅 뜨며 칼리아를 바라봤다.
보통 놀란 것이 아닌 모양인지 옆에서 느껴지는 검성의 몸이 살며시 떨려오고 있었다
“… 무슨 의미냐.”
“한국의 한 던전에서 뒤틀림이 일어났다는 보고입니다. 이게 어떤 의미인지는 검성님이 더 잘 아실거라 생각합니다.”
“헛소리하지 마라. 그때 분명…”
“확인할 필요는 있다는 것이 본 진리회의 판단입니다.”
검성은 물끄러미 칼리아를 바라보다 생각에 잠긴 듯 잠시 시선을 내려보였다.
그리고 조금의 시간이 지나 검성이 입을 열었다.
“…그래서 네 년이 한국에 온 것이군.”
“교단 내부 사정입니다만··· 아주 관련이 없지는 않습니다.”
“동시에 네 년의 후계자 입지도 굳히고 말이지.”
순간 멈칫하는 칼리아.
“…역시 검성님은 못 속이겠네요.”
“뻔뻔하게 진리회의 판단이라 말하는 게 웃기지도 않는군.”
코웃음 치는 검성의 모습에 칼리아가 말했다.
“도와주실 수 있으신가요?”
“네 년이 뭘 줄 수 있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
“제 호의··· 라고 말씀드리면 안되겠군요.”
칼리아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을 이었다.
“검성님은 딱히 부족한 것이 없으시니··· 손녀 분께서 헌터 아카데미를 운영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저희 진리회 쪽에서…”
그 순간.
화아아아악!
검성에게서 터져나오는 어마어마한 살기.
“한 번만 더. 서윤이를 엮으러 든다면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당사자가 아닌 옆에서 곁가지로 느끼는 것에 불과한 서준이었지만, 그 어마어마한 압박에 서준은 정신이 저린 듯한 착각이 일었다.
이것이 진짜 죽일 의도를 가지고 내뿜는 검성(劍星)의 살기.
서준은 아카데미에서 검성이 정말 많이 봐주고 있었다는 것을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
하지만 그 살기를 받는 칼리아의 표정은 더없이 평온하기만 했다.
실제로도 그러한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렇게 보인 것만으로도 서준은 칼리아의 경지를 대강이나마 가늠할 수 있었다.
“제가 실언을 했네요. 사과드리겠습니다. 죄송합니다.”
결국 이어지는 칼리아의 사과.
검성은 그때서야 살기를 거두었다.
“그것 말고는 제가 검성님께 딱히 드릴 것이 없습니다만··· 그럼 이렇게 하죠. 제가 언제 한 번 똑같이 검성님의 부탁을 들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네 년이?”
“네.”
검성이 다시 한 번 코웃음을 치며 답했다.
“웃기는 군. 그때가서 모른 척하면 그만인 약속을 믿으라고?”
“원하신다면 진리의 이름을 걸고 맹세할 수도 있습니다.”
멈칫.
단호한 칼리아의 대답에 검성은 입을 꾹 다물었다.
진리의 이름을 걸고 하는 맹세.
그건 진리회 신도들에게 있어 결코 어겨서는 안되는 맹세였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정말 중요한 일이 아니면 좀처럼 하지 않는 맹세이기도 했다.
“사도 자리가 이런 일만으로 결정나지는 않을텐데?”
“어떻게 생각하시든 상관없습니다만··· 그렇다고 마냥 못 본 척 하실 수는 없지 않으십니까?”
검성은 잠시 생각하는 듯 하더니 쯧, 혀를 한 번 차보이며 말했다.
“좋다. 네 년이 진리의 이름을 걸고 맹세한다면 도와주도록 하지.”
이어 거래가 끝난 두 사람 사이에서 간단한 의식이 행해졌다.
서준은 처음 보는 광경이었지만, 두 사람은 익숙한 듯 빠르게 진행되었다.
정확히는 칼리아 혼자서 무언가를 한 것이었지만.
그렇게 순식간에 끝난 의식.
“다음은···”
칼리아는 서준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직 의심을 떨쳐버리시지 못하셨나 보군요.”
“부정하진 않겠습니다.”
칼리아는 살며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서준님은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그때 서준님이 보인 모습은 제게 정말 충격이었습니다.”
이어 칼리아는 아카데미 경합에서 서준이 했던 행동들을 하나하나 열거하며 설명했다.
마치 그 상황을 직접 본 것처럼 열변을 토하는 칼리아.
문제는 그 끝을 모를 것 같았기에 서준은 대충 듣다 칼리아의 말을 끊었다.
“그래서 말씀하시고 싶은 것이 무엇이죠?”
“저희 진리회에서는 그런 서준님을 후원하고 싶습니다.”
“후원이요?”
칼리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진리회는 종교적인 색채가 강한 단체였으며 당연히 그에 따른 활동 또한 그런 성향이 강했다.
그리고 그런 활동 중 대표적인 것이 방금 칼리아가 말한 후원이었다.
말 그대로 누군가를 후원해주는 것.
방금 전, 검성에게 제안했다 까인 것과 비슷하게 진리회는 아카데미 뿐만 아니라 수강생 개인을 대상으로도 후원을 진행했다.
재능은 있지만 현실의 벽에 가로막혀 그 꿈을 펼치지 못하는 사람들.
진리회는 그런 사람들을 찾아 경제적, 물질적으로 도움을 주는, 일종의 자선 사업과도 같은 일들을 많이 진행하고 있었다.
그리고 불과 두달 전의 서준이었다면 감사합니다! 하면서 수락했을 제안들.
“저는 이미 소속된 아카데미가 있습니다만.”
하지만 지금의 서준에겐 아니었다.
“아카데미를 나오라는 뜻이 아니었습니다. 단지 김서준님이 활동하시면서 아카데미는 챙겨주기 힘든 것들. 그런 것들을 저희 진리회에서 후원하고 싶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럼 그 후원을 받아들이면 저는 뭘 드려야하죠?”
“어떤 대가를 바라고 하는 후원은 아닙니다. 그나마 바라는 것이 있다면 진리회와 서준님간의 인연 정도면 충분합니다.”
서준은 속으로 웃음을 흘렸다.
그것이 마냥 자선 사업이라고 볼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도 그럴것이 주는 쪽에서는 자선이라 할지라도 받는 입장에서는 단순히 자선이라 생각할 수 없었다.
힘들 때 자신을 도와준 사람 혹은 단체. 그건 마음의 짐으로 남아 어떤 의미로든 빚이 된다.
말은 저래도 나중에 어떤 식으로든 돌려 받을 터.
대기업들이 괜히 비싼 돈을 들여가며 학교에 장학금을 기부하는 것이 아님을 서준은 잘 알고 있었다.
뭐, 그렇다고 진리회가 좋은 일을 하는 것을 부정하는 건 아니지만.
“거절한다면요?”
“그럼 어쩔 수 없죠.”
그러자 아님 말고라는 식으로 답하는 칼리아.
서준은 살며시 눈을 들어 칼리아를 바라봤다.
도화지처럼 하얀 피부와 화사한 백금발의 미녀.
눈이 마주친 칼리아는 고결한 성기사처럼 가만히 서준을 응시했다.
분명 칼리아는 서준에 대해 무언가를 알고 있었다.
단순히 아카데미 경합에서 보여준 모습 말고 다른 무언가를.
하지만 칼리아는 전혀 말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서준은 약간의 고민 끝에 입을 열었다.
“솔직히 썩 매력적인 제안은 아닙니다.”
서준이 바로 말을 이었다.
“하지만 제가 묻는 한 가지 질문에 솔직하게만 말씀해주시면 긍정적으로 생각해보겠습니다.”
“무엇이죠? 말씀하세요.”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칼리아.
“혹시 초…”
서준은 순간 입을 꾹 다물었다.
정말 갑자기, 말 그대로 갑자기 든 생각이지만 서준은 이 질문을 던지면 안될 것만 같았다.
칼리아가 솔직하게 답해줄지도 모르겠고, 무엇보다 칼리아가 답을 이리저리 돌려 회피하면 서준은 그것을 알아낼 방도가 없었다.
그렇다고 이대로 물러나자니 그건 더욱 안좋은 선택이었다.
그냥 넘기기엔 지금 보이는 칼리아의 행동은 너무도 수상하다.
한 번뿐인 기회.
오랜 고민 끝에 서준은 곧장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품 안의 스마트폰을 꺼내 곧장 초월자 학원에 들어가 석가모니 강의를 재생.
그 화면을 칼리아 앞으로 들이밀었다.
탁.
당황하는 칼리아.
서준이 물었다.
“지금 이 스마트폰 화면에 뭐가 보이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