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nscension Academy RAW novel - Chapter 292
9화 – 정신 나간 이방인(3)
이곳 차원 아스텔지아를 지배하는 볼루뉴 제국의 황태자이자, 제국에 몇 안되는 소드 마스터라 불리는 칼스.
그런 칼스에게 있어서 놀랄 만한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황태자로서 호화스러운 것들을 모두 겪어봤고,
소드 마스터로서 압도적인 일들을 모두 경험해봤으니까.
그러나.
“이, 이, 이게 무슨···.”
지금 이 순간만큼은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자신이 겪고 경험한 모든 것들.
그 모든 것들을 합쳐도 지금 이 순간에는 비비지 못했다.
말 그대로 범접 불가였다!
아무리 아렌께서 추천을 한 존재라고는 하나 솔직히 못 미더운 것은 사실이었다.
그런데 무슨···.
제국 전역을 위협하던 몬스터 떼들이 순식간에 사그라들었다.
황실 기사단을 비롯한 제국의 전 병력이 달려들어도 어찌할 수 없었던 몬스터 무리들이 순식간에 토벌되었다.
그것도 고작 며칠만에!
그리고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다름 아닌 똑딱이었다.
첫 번째, 몬스터 무리들이 습격했다는 보고가 올라온다.
그럼 서준이 제국의 텔레포트 마법진을 이용해 해당 장소로 이동한다.
그렇게 서준이 도착하는 것이 똑.
그리고 해결하는 것이 딱.
사태가 해결됨에 있어서 필요한 시간은 그야말로 똑딱이었다!
황태자로서 이런 품위 없고 저급한 표현을 해도 맞나 싶었지만, 이보다 더 적합한 표현을 칼스는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칼스는 정말이지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어, 어억···.”
아니, 제대로 된 말조차 새어나오지 않았다!
이게 정녕 한 존재가 가질 수 있는 무위란 말인가.
칼스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더욱 칼스를 미치고 팔짝 뛰게 하는 것은···.
“10%도 채 힘을 못 내니까 엄청 답답하네. 제천대성 강사님이 얼마나 답답했는지 이제 알겠네.”
이게 제대로 된 힘이 아니란다.
정확히는 10%도 채 되지 않는 무위란다.
‘아, 아렌님께서 본인조차 어찌할 수 없는 분이라더니···.’
처음 추천장의 내용을 봤을 때만 해도 아렌이 장난 친 것인 줄 알았건만.
칼스는 추천장의 내용이 진심을 담아 쓴 것임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내, 내가 누구한테 개겼던 거지?’
서준에게 개겼던 자신에 대해 깊은 반성을 할 수 있었다.
그때 배짱이니 뭐니 나댔던 것 같은데···.
서준이 어마어마한 자비를 베풀었기에 망정이지···.
아니, 어쩌면 애초에 신경조차 쓰지 않았던 것일 수도 있었다.
사자와 호랑이가 아무리 맹수의 왕이라고는 하나 드래곤 앞에서는 그냥 깜찍한 동물일 뿐이니까.
칼스는 속으로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아렌이 추천창에 쓴 내용처럼 서준의 신경을 절대 거스르지 않겠노라고.
“김서준님. 귀족들이 모두 기다리고 있습니다. 같이 가시죠.”
칼스는 최대한의 예의를 갖추며 서준을 안내했다.
그런데 어째서 일까.
바라본 서준의 표정이 어딘가 심상치 않았다.
마치 뜬금없는 무언가를 발견한 듯한 표정이었다.
“뭡니까?”
아니나 다를까 서준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칼스에게 물었다.
칼스는 행여 서준의 신경에 거슬릴까.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뭐, 뭐가 말씀··· 이십니까?”
“왜 갑자기 존대를 하시는 거죠?’
“아···.”
이어진 서준의 말에 칼스는 작은 탄성을 터트렸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간 칼스는 서준에게 하대를 하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와 동시에 칼스는 할 수만 있다면 과거, 자신의 입을 찢어버리고 싶었다.
대체 어쩌자고 그랬던 걸까.
꼴에 황태자에 소드 마스터라고 되도 않는 허영심에 빠져있었던 건가.
“그···.”
칼스는 맹렬하게 머리를 굴리며 변명의 말을 찾았다.
“김서준님은 아렌님과 친우분이시지 않습니까. 당연히 그에 따른 대우를 해드리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간··· 제가 너무 어리숙한 탓에 실수를 했습니다. 부디 용서해주십시오.”
칼스는 적당한 변명이었다 생각하며 고개 숙여보였다.
제국의 황태자가 이방인에게 고개를 숙이는 행위.
그건 절대로 있을 수도, 있어서도 안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칼스는 아무렴 상관 없다는 듯.
망설임없이 고개를 숙여보였다.
“아니, 뭐 그 정도까지는··· 뭐 딱히 신경쓰지도 않았습니다.”
그런 칼스의 태도에 되려 서준이 살짝 당황해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 것일 뿐.
딱히 따지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그런 대범한 서준의 모습에 칼스는 다시 한 번 깨달을 수 있었다.
역시 사자와 호랑이가 아무리 맹수의 왕이라고는 하나 드래곤 앞에서는 그냥 깜찍한 동물일 뿐이었다.
“그런데··· 대체 아렌이 뭘 했길래 아렌의 이름만으로도 이러시는 겁니까?”
그 순간 서준의 품 속에 있던 멘토가 폭, 튀어나오며 소리쳤다.
멘토는 뭐가 그리 신이 나는지 눈을 반짝이며 힘차게 소리쳤다.
우주에 기거하는 차원?
칼스는 멘토의 말을 이해하지 못해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 그런 게 있습니다.”
하지만 서준은 알 필요 없다는 듯 손을 휘휘, 저어보일 뿐이었다.
그런 서준의 모습에 칼스는 굳이 캐묻지 않았다.
서준이 말하기 싫다면 그런 것이니까.
칼스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렌님은 제국의 태사(太師)이십니다.”
태사?
“황제의 스승말입니까?”
“네, 그렇습니다.”
칼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지금의 폐하를 키우셨다해도 과언이 아니시죠. 저도 이야기만 들었을 뿐, 그 과정을 지켜본 것은 아닙니다만··· 사실 가끔 황궁에 찾아오실 때 직접 뵌 것이 고작입니다.”
“아···.”
서준이 알기로 황제는 차원의 지배자라 불리는 존재였다.
그런 황제의 스승이라면 충분히 그럴 만한 반응을 보일 수 있었다.
“하지만 폐하가 실종되시고···.”
칼스는 추가적인 설명을 덧붙이려고 했으나 어째서인지 말을 끝맺지 못했다.
그렇게 잠시간 내려앉은 침묵.
“사실 김서준님을 처음 뵈었을 당시, 토벌대를 핑계로 아렌님께 가는 길이었습니다. 저의 힘으로는 도저히 지금 상황을 해결할 수가···.”
바라본 칼스의 표정은 어딘가 씁쓸함이 담겨있었다.
사실 칼스는 지금 상황을 해결할 능력이 충분히 있었다.
차원에 드리운 위기가 위협적이라고는 하나, 제국의 힘은 그를 충분히 대항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예기치 못한 내부의 적으로 인해 난항을 겪어야만 했다.
다름 아닌 황제가 갑자기 사라지고 귀족들을 포섭하기 시작한 베텔.
베텔은 귀족들과 함께 칼스의 행동을 사사건건 방해하기 시작했다.
황태자로서 아직 입지를 다지지 못한 칼스는 그런 베텔의 세력에 미처 대항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지금.
베텔의 요청으로 인해 소집된 긴급 회의 또한 마찬가지였다.
분명 서준의 행동에 훼방을 놓으려는 의도가 다분했지만, 칼스는 어쩔 수 없이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죄송합니다.”
칼스는 그저 이런 말밖에 할 수가 없었다.
‘음···.’
서준은 그런 칼스의 표정을 바라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대충 보아하니.
어떻게 돌아가는 상황인지 알 것 같았다.
지구나 이곳 차원, 아스텔지아나.
존재가 사회를 이루며 살아가는 방식은 비슷비슷하니까.
그리고 서준이 지난 며칠 간 몬스터 무리들을 휩쓸면서 느낀 바이지만, 현재 아스텔지아는 과거 지구에 있었던 대격변과 상황이 유사했다.
아니, 그보다 더 심하다고 할 수 있었다.
물론 서준은 대격변을 직접 겪어본 세대는 아니었다.
하지만 기록과 대격변의 영웅들에게 들었던 이야기들을 비추어보면 현재 아스텔지아의 상황은 대격변보다 심각했다.
관조자가 추방된 이후의 세계.
초월자 학원과 연결이 끊긴 상황.
멘토의 존재를 볼 수 있는 차원민들.
황제의 갑작스러운 실종.
그리고 현재 아스텔지아의 상황.
이 모든 것들이 무슨 연관이 있는 것일까?
‘음···.’
에이, 모르겠다.
서준은 금방 고개를 흔들었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일단 담판이나 지으러 가죠.”
결국 돈을 뜯으면 해결될 일이었다.
#
다시 찾은 회의장은 이미 귀족들이 모두 자리해 있었다.
웅성웅성.
다만, 서준을 기다리기 심심했는지 저마다 무리를 이루어 웅성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황태자 전하 드십니다!”
서준과 함께 칼스가 등장하자 웅성거리던 소란이 일시에 멈추었다.
그와 동시에 귀족들의 시선이 일제히 서준에게로 향했다.
처음 무시하고 깔보던 때와는 달리 어딘가 꺼림칙한 듯한 눈빛이었다.
아무래도 다들 서준의 활약을 들은 모양이었다.
칼스는 황태자 답게 가장 상석에 자리했고,
서준은 대충 주위를 훑어보다 적당한 곳에 자리했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하지만 칼스가 그런 서준을 불러
그리고 자리한 서준의 자리는 황제의 자리와 엇비슷한 위치.
즉, 황태자인 칼스보다 높은 위치였다.
“전하, 이방인에게는 과한 자리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 칼스의 행동에 귀족 중 하나가 한 발 나서며 말을 꺼냈다.
그러자 칼스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말을 꺼낸 귀족을 노려보며 소리쳤다.
“김서준님은 태사이신 아렌님의 절실한 친우 분이시다. 그에 따른 대우를 하겠다는 것인데 무슨 문제이지?”
서준을 대할 때와는 다른 제왕의 위엄.
“그, 그런 뜻이 아니오라···.”
그 기세에 눌린 귀족이 어버버하며 당황하기 시작했다.
사실 서준과 비교해서 그렇지 칼스는 전혀 뒤떨어지는 존재가 아니었다.
제국의 몇 안되는 소드 마스터 중 한 명.
대격변의 영웅을 뛰어넘는 실력자였다.
그런 칼스의 기세를 감당할 수 있는 몇 없었다.
“아렌님의 친우이시긴 하나, 어디까지나 이방인입니다. 무엇보다 아렌님 본인이 아니지 않습니까.”
말 그대로 몇몇 존재만 빼고.
문득 들려오는 목소리에 회의장의 시선이 그곳으로 향했다.
그곳엔 백전노장이 능구렁이 10마리를 고아먹은 듯한 인상의 노인.
다름 아닌 베텔이 있었다.
“또한 이방인을 폐하와 같은 선 상에 대우하는 것은 폐하에 대한 불경으로도 생각될 수 있음을 고려해주시옵소서.”
그것은 ‘네가 황제라면 모르겠는데 아직 황제가 아니지 않느냐. 그런데 왜 황제처럼 구느냐’ 하는 말처럼 들리기도 했다.
“평범한 이방인이 아닌 아렌님의 추천을 받으신 분이시다.”
“그 또한 어디까지나 추천이지 않습니까.”
누가 봐도 억지였고 당연히 칼스는 이를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음에 칼스는 이를 까득, 깨물어보였다.
이어지는 신경전.
보아하니 회의가 시작도 하기 전에 질질 끌릴 것 같았다.
“됐습니다. 자리야 뭐 아무렴 어떻다고요.”
서준은 그 말과 함께 대충 적당한 곳을 찾아 자리했다.
칼스는 미안하다는 듯 고개를 숙여보였고,
베텔은 비릿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리고 그런 베텔의 말에 품 속에 있던 멘토가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가까이 있어도 들릴 듯 말듯한 목소리였지만 베텔은 황제 다음가는 실력자.
멘토의 말은 들은 것인지 베텔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멘토가 키득키득, 웃음을 지어보였다.
아무래도 이번엔 들으라고 한 소리 같았다.
그리고 그런 멘토의 웃음마저 들은 것일까.
돌연 베텔의 표정이 울그락불그락 해지기 시작했다.
“소란이 있었지만 바로 회의를 시작하지.”
이윽고 이어진 칼스의 말.
그와 동시에 베텔의 표정이 순식간에 사그라들었다.
그리고는 기다렸다는 듯이 곧장 서준에게 말했다.
“건당 1,000억 골드를 요구했다고.”
어째···. 사족을 다 잘라먹은 물음이었다.
겉으로는 아무것도 아닌 척, 냉정한 척.
척이란 척은 다 하고 있지만 사실 속에서는 들들 끓는 모양이었다.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지금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안될 건 또 뭡니까?”
뻔뻔한 서준의 답에 베텔의 표정이 잠시 멍해졌다.
그도 그럴 것이 1,000억 골드는 한화로 약 1,000조에 달하는 어마무시한 금액이었다.
솔직히··· 말이 안되는 금액이었다.
세상 어느 천지에 1,000조 짜리 일이 있단 말인가.
그것도 건당으로다가 말이다!
그런데 저 놈의 놈팽이는 아주 당연하다는 듯 외치고 있었다.
이 무슨 정신 나간 놈도 아니고···!
“능력을 보이라해서 능력을 보였습니다. 그럼 그에 걸맞는 대가를 주셔야하는 거 아닙니까?”
“그 말은 즉, 네 까짓 것의 능력이 1,000억 골드에 달한다고 생각하는 건가?”
서준은 한치의 고민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뻔뻔함에 어처구니가 없던 찰나.
“아니, 그리고 제 능력도 능력이지만 사태가 그만큼 심각한 거 아닙니까?”
서준이 속사포처럼 말을 내뱉기 시작했다.
“지금 몬스터 무리들로 인해 제국 자체가 망할지도 모를 일 아니었습니까? 게다가 황제 폐하마저 실종되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건 황제 폐하마저 감당할 수 없는 존재가 있다는 것으로도 받아들일 수 있죠. 그거 감당하실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황제 폐하가 실종된 지 오래되셨다면서요. 하루 빨리 황제 폐하를 찾아야 하는 거 아니었습니까? 이렇게 자꾸 늦어지면 황제 폐하가 어찌될지··· 아! 설마?”
서준은 일순간 퍼뜩, 깨달았다는 듯.
베텔을 향해 경악스러운 표정으로 소리쳤다.
“지, 지, 지금 황제 폐하가 죽기를 바라시고 계신 겁니까? 설마 반역···!!”
그러면서 정말 그럴 줄 몰랐다는 듯 기겁을 해보이는데…
“베, 베텔 경이···?”
“서, 설마···!”
그 분위기에 휩쓸려 다른 귀족들 또한 수근거리기 시작했다.
콰앙!
“이 놈이 감히···!”
베텔은 순간적으로 이성을 잃어버린 듯 흉흉한 기세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저 미친 놈이 정도가 있지.
저건 선을 넘어도 한참을 넘었다.
화아아아아아아악!!
이윽고 어마어마한 기세가 베텔의 전신으로 폭사하기 시작했다.
입문-초급-중급-고급으로 구성된 초월자 커리큘럼에서 중급 과정.
정확히는 고급에 막 입문한 듯한 수준의 베텔.
베텔은 지구에서는 비교 대상을 찾아볼 수 없는 실력자였으며, 차원을 통틀어서도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이례적인 실력자였다.
쿠구구구구구궁···!
베텔이 터트린 기세가 회의장의 분위기를 장악했다.
기세에 깃든 살기는 존재를 압살할 수 있을 정도로 흉측했다.
하지만.
“이거 보세요 여러분! 반역이라는 말에 발작 버튼이 눌리는 거 다들 보이시죠!!”
서준은 베텔의 기세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고 있었다.
되려 베텔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고래고래 소리치고 있었다.
“······!!!”
일순간 베텔의 눈이 부릅, 떠졌다.
저건 기세에 영향을 받지 않는 정도가 아니었다.
기세를 압도했을 때나 가능한 행동이었다.
그리고 그런 경우는 베텔은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심지어 황제 마저 저렇게는 못한다.
그런데 대체 어떻게···?
“베텔! 이 무슨 무례인가!!!”
일순간 터져나오는 칼스의 고함.
베텔은 그때서야 퍼뜩,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자신이 행한 행동들을 깨달을 수 있었다.
과정이야 어찌되었든 상황만 놓고 보면 회의장에서 함부로 힘을 사용한 꼴이었다.
그것도 황태자가 버젓이 있는 자리 앞에서 말이다.
아무리 황태자가 힘이 없다고는 하나, 황태자는 황태자였다.
이는 명백한 무례이자 황족을 모욕한 격.
심하면 반역으로도 몰아갈 수 있는 상황이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큰 무례를 저질렀습니다.”
베텔은 황급히 칼스에게 사과를 했다.
그리고는 슬쩍 눈을 돌려 서준을 바라봤다.
저도 모르게 저 이방인의 페이스에 휘말려버렸다.
어딘가 나사 하나 빠진 듯 어벙해보이길래 멍청하다 생각했지만···.
저 이방인, 실력도 실력이지만 만만히 볼 상대가 아니다.
베텔은 빠르게 생각을 정리했다.
“무례에 대한 사죄의 의미로 이방인의 요구를 적극 수렴하겠습니다.”
“······뭐라고?”
갑작스러운 베텔의 태도 변화에 칼스가 멍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리고 이어진 베텔의 한 마디.
“대신, 저희 쪽에서도 조건이 있습니다.”
베텔은 서준을 바라보며 비릿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
우여곡절이 있었던 회의가 끝나고 서준과 칼스는 응접실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리고 베텔이 요구한 조건.
그것은 별로 큰 내용은 없었다.
하루 빨리 황제의 행방을 찾아달라.
그리고 지금처럼 제국의 위협을 처리해달라.
그러면 황제의 행방에 단서 당 1,000억 골드.
제국의 위협을 처리해주는 건 당 1,000억 골드.
물론 몬스터 사체 처리에 대한 비용은 별도.
이것이 전부였다.
그렇기에 조건이라 할 수도 없는 종류였다.
다만, 문제는.
“이건··· 아무리 김서준님이라도 불가능한 일입니다.”
일의 난이도가 너무도 높다는 것뿐.
베텔은 서준의 요구를 수용하면서
황제의 행방에 대한 단서를 찾는데 빠듯한 기한을 주었다.
이에 대해 서준의 말을 그대로 돌려주며 황제의 빨리 행방을 찾아야한다나 뭐라나.
처음부터 그런 생각이 들었으면 진즉에 움직이던지 하면 되었을텐데···.
‘뭐, 왜 그런지는 대충 짐작이 간다만.’
한편.
제국의 위협을 처리하는 것을 베텔 쪽에서 지정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지정한 곳이 어둠의 숲이라는 곳이었는데.
이곳, 아스텔지아 차원은 지구 전체 면적의 약 2배 정도를 자랑했다.
하지만 그건 말 그대로 면적만을 따졌을 경우였고, 그나마 쓸모 있는 땅.
그러니까, 사람들이 거주할 수 있는 땅만 계산하면 실제 땅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은 줄어들었다.
그리고 그 쓸모 없는 땅.
그 중 하나가 바로 어둠의 숲이었다.
이유는 이름에서부터 알 수 있다시피 몬스터가 너무도 많았기 때문이었다.
이에 현 황제는 이를 토벌하고자 했지만 번번히 실패.
어느 누구도 살아서 돌아올 수 없었던 미지의 땅으로 알려져있었다.
즉, 불가능한 일을 주어 서준을 곤욕케하려는 심산이었다.
아니면 서준이 죽는다면 더 좋고.
“이건 말이 안되는 요구입니다. 제가 어떻게든 다시···.”
그렇기에 칼스는 걱정만을 반복할 뿐이었다.
그런 칼스의 모습에 멘토가 불쑥, 튀어나오며 말했다.
“그렇습니다만.”
“······”
칼스는 순간적으로 할 말을 잃어버렸다.
솔직히 객관적으로 칼스는 능력이 없지는 않았다.
일단 칼스는 제국의 몇 안되는 소드 마스터였다.
천재라는 소리는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봤지만,
능력이 없다는 말은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황태자에게 능력이 없다니.
이 무슨 망발이란 말인가.
이것은 명백한 불경죄였다.
아니, 불경죄는 물론이고 황족 모욕죄까지 덧붙일 수 있었다.
지엄한 황법에 의거하여 참형을 면치 못할 중죄 중에 중죄였다.
하지만.
“······”
칼스는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회의장에서 휘둘리기만 했을 뿐 진짜로 능력이 없었으니까!
칼스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숙여보였다.
그런 칼스의 모습에 서준이 멘토에게 말했다.
“멘토님. 말이 좀 심하신 것 같···.”
그러나 멘토는 뭐가 그렇게 당당한지.
허리에 손을 척, 올리며 소리쳤다.
그런 멘토의 모습에 서준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뭐.
틀린 말은 아니었으니까.
“도움이 되어드리지 못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별 다른 말이 없는 서준의 모습에 칼스는 차마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런데··· 대체 왜일까.
“네? 도움이 되지 못했다뇨?”
의미심장한 서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칼스는 뭔가 싶어 살며시 고개를 들어 보였다.
그러자 서준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칼스에게 말했다.
“건 당 1,000억 골드를 벌게 해주셨잖습니까.”
“네? 그건···.”
칼스는 순간 정신이 멍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건 당 1,000억 골드는 불가능한 임무이지 않은가.
하지만.
“건 당 1,000조!”
서준은 아무렴 상관 없다는 듯 눈을 부릅, 뜨며 소리쳤다.
그도 그럴 것이 사실 1,000억 골드는 그냥 질러 본 것이었다.
1,000억 골드는 한화로 대략 1,000조.
세상 어떤 일이 건 당 1,000조의 값어치를 한단 말인가!
엑스칼리버의 값이 5,000조임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미친 가격이었다.
그래서 이번 회의에서 대충 100조 쯤이면 적당하지 않을까, 어렴풋이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1,000조를 주겠다니!
그것도 건 당으로!
이러면 잃어버린 힘은 물론이고 지구로 돌아갈 인과까지 금방 모을 수 있지 않은가!
“아··· 아아아···!!”
서준은 전기라도 감전된 것 마냥 몸을 부르르, 떨어보였다.
“······”
칼스는 이걸 어떻게 반응해야하나 감이 잡히질 않았다.
아니, 그런데 잠깐.
생각해보면 서준에게 주는 돈은 결국 제국의 예산이지 않은가.
결국은 제 살 깎아먹기···.
칼스는 황급히 고개를 흔들었다.
1,000억골드가 어마어마한 돈이긴 했으나,
솔직히 지출하지 못할 돈은 아니었다.
이곳 차원인 아스텔지아는 지구 전체 면적의 약 2배 정도를 자랑했다.
그리고 볼루뉴 제국은 그런 아스텔지아 전역을 지배하고 있는 유일의 국가.
쉽게 말해 지구의 모든 국가를 합치고도 더 되는 영토의 지배자였다.
당연히 1년 국가 예산만 하더라도 감히 추정조차 불가능했다.
무엇보다 아렌의 추천장에서도 언급했다시피.
서준의 도움을 얻기 위해서는 있는 돈, 없는 돈 끌어모아야 했다.
그리고 그런 칼스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뭐부터 할까요? 어둠의 숲 소탕? 황제의 행방 찾기? 어둠의 숲은 조금 무리가 있으려나요?”
“음··· 그래도 조금 불안한데요.”
멘토는 말도 안되는 소리 말라는 듯 고개를 저어보였다.
“······”
그런 둘의 대화에 칼스는 정신이 잠시간 출타해버렸다.
그도 그럴 것이 어둠의 숲이 당최 어떤 곳인지 잘 알고 있었으니까.
쉽게 말해 버려진 땅이었다.
지난 수 천년 간, 단 한 번도 정복하지 못한 곳.
제국의 모든 전력을 동원해도 단 한 번도 밟지 못한 땅이었다.
그런데 뭐?
똑딱?
“그래도 불안하니까 이번에 번 돈으로 힘을 되찾고 가죠. 잠깐 그 전에···.”
이윽고 서준이 칼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혹시 황제의 행방에 대해 알고 계신 것이 있습니까?”
“그··· 사실 그것도 잘 모릅니다. 베세르크를 토벌하러 간다는 사실밖에··· 그것도 조심스럽게 움직이신 거라 어디로 가셨는지는··· 말씀해주시지 않으셨습니다.”
칼스는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그런 칼스의 모습에 멘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지만 서준은 별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황제의 행방을 알았다면 베텔이 저런 조건을 내걸지 않았을테니까.
그렇기에 황제의 행방을 찾는 것이야 말로 상당한 고난이 예상되었지만··· 사실 이 또한 전혀 걱정이 없었다.
“일단 아렌부터 만나러 가보죠.”
지금쯤이면 아렌이 무언가를 알아냈을 테니까.
외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