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nscension Academy RAW novel - Chapter 308
25화 – 태고의 악(2)
그것은 한줄기의 벼락과도 같은 목소리였다.
쿠구구구구구궁···!!!
이윽고 터져나나오는 끔찍한 힘.
그것은 드리운 공간 전체로 퍼져나가며 잠식된 어둠을 갉아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장 먼저.
────!
소리가 사라졌다.
이윽고 색이 흐려지며 만물의 형체가 붕괴하기 시작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무너져 내린다.
세계의 윤곽이 붕괴한다.
모든 것들이 혼돈으로 화한다.
공간이.
시간이.
그리하여 만상(萬狀)이
붕괴(崩壞)한다.
천월유성창(天月流星槍).
제 1형(第 一形).
진(眞) – 만상붕괴(萬狀崩壞).
.
.
.
.
빛 한 점 드리우지 않은 칠흑의 공간.
그곳엔 찬란한 태양과도 같은 빛이 작렬하고 있었다.
세상의 윤곽이 무너지며 풍경 전체가 아지랑이처럼 일렁인다.
공간과 시간.
세계를 구성하는 시공간이 붕괴된다.
그곳엔 알 수 없는 혼돈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무너져내린다.
만상(萬狀)이
붕괴(崩壞)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만상이 붕괴하는 시공간 속.
“스, 스승님!!!”
칼스는 저도 모르게 소리쳤다.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저 한줄기의 벼락만이 비쳐보일 뿐이었으니까.
그러나 칼스는 알 수 있었다.
이러한 초월적인 힘을 사용할 수 있는 존재는 딱 한 명.
서준.
그가 돌아왔다.
아니나 다를까.
타닥.
가벼운 착지음과 함께 칼스의 시야로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다.
평소에는 나사 하나 빠진 어벙한 분위기.
그러나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고요한.
칼스의 스승이자,
전 차원 최강의 초월자.
김서준.
“스승님!!”
칼스는 서준을 향해 소리쳤다.
하지만 서준은 그런 칼스를 돌아보지 않았다.
뻥 뚫린 황궁의 하늘.
고개를 든 채, 그 사이로 무너져내리는 시공간 속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바로 그때.
〔이 힘은···!〕
어디선가 알 수 없는 의지가 들려왔다.
그것은 마치 악(惡)의 근원을 어미로 둔 것과 같은 의지였다.
그리고 다시.
화아악!
주변의 어둠이 확장되었다.
찢어진 어둠들이, 소멸하던 어둠들이 순식간에 메워졌다.
어둠에 어둠을 덧칠한 것만 같은 칠흑의 어둠이 다시금 퍼져나간다.
그것들이 공간을 잠식한다.
잠식된 어둠은 소름끼치는 악의를 품고 있다.
포악하고, 혐오스럽고, 또 사악한.
〔어째서 이 힘이 아직까지 존재하는지 모르겠지만···.〕
어둠 저 편에서 다시금 의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윽고 죽음의 기운이 일어나며 어둠이 터진다.
정면에서 확장하는 어둠.
그것은 서준을 향해 맹목적인 죽음을 강요하기 시작했다.
서준은 그곳을 향해 롱기누스의 창을 휘둘렀다.
꽈아앙!
폭발과 함께 어둠이 무너져내렸다.
무너져내린 어둠이 다시 모여든다.
어둠은 공간을 물들어가며 다시금 서준에게 덮쳐온다.
번쩍!
환한 빛무리와 함께 서준의 몸이 허공으로 치솟았다.
화악, 어둠이 터지며 주변의 일대가 소멸했다.
터져나가는 어둠 속에서 붉은 광채가 허공을 훑는다.
사아아···!
검붉은빛이 터졌다.
빛은 다시금 어둠을 머금어 칠흑으로 화한다.
그것은 다시 일격이 되어 공간을 무참히 도륙했다.
칠흑의 어둠은 훨씬 끔찍한 것을 품고 있었다.
서준은 몸을 크게 회전시켰다.
그와 동시에 롱기누스의 창을 크게 두른다.
휘두름과 동시에 찌른다.
찌름과 동시에 다시 휘두른다.
모든 방향, 모든 일격들이 빈틈을 메운다.
그 사이로 란나찰(欄拿扎)의 묘리가 자연스럽게 깃든다.
꽈아앙!
꽝!
어둠을 찢어지며 잠식한 칠흑이 아래로 추락했다.
공간이 터지고 깨지며 도시의 잔해들이 부서지고 소멸한다.
그리고 보이는 찰나의 틈.
서준은 그 틈을 비집으며 티알피의 신속을 터트렸다.
번쩍!
화악!
티알피의 신속과 칠흑의 마력이 동시에 터졌다.
이윽고 도래한 칠흑의 어둠이 존재의 생각과 마음이 갉아먹는다.
공포가 어둠으로 번져가며 만연해진다.
그것은 어둠의 근원에 속삭이는 죽음이었다.
적막한 어둠이 긴 기지개를 피며 주위의 공간을 잠식해간다.
검은 하늘 아래로 형용할 수 없는 사념(死念)들이 터져나왔다.
폭사하는 사념과 함께 정신이 번쩍이며 머리가 짜르르, 울려왔다.
서준은 잠시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리고는 손을 천천히 앞으로 뻗어보였다.
그 순간.
───────────!!
정의를 내릴 수 없는 아득한 힘이 서준의 전신으로 폭사하기 시작했다.
상식과 인지.
그것을 까마득히 초월한 불가사의한 힘.
콰콰콰콰콰콰콰!!!
통제되지 않는 거대한 힘은 잠식하는 어둠을 집어삼켜버렸다.
사아아아아악···!!
하지만 어둠의 근원 또한 쉽사리 물러나지 않았다.
휘몰아치는 두 근원.
꽈꽈꽝!!
서준과 태고의 악(惡) 사이에서 커다란 폭발이 터져나왔다.
청광(靑光)과 암광(暗光)이 번갈아 터진다.
어마어마한 무게의 압박감이 공간 전체를 짓누른다.
공간에 뒤엉키는 두 근원의 힘은 서로가 서로를 물고 늘어졌다.
태초.
최초의 초월자마저 어찌하지 못했던 태고의 악(惡).
그렇기에 그를 감당할 수 있는 존재는 없었으나.
꽈꽈꽈꽝!!
쿠르르릉···!
〔어찌 이런···!〕
어째서인지 밀리는 것은 다름 아닌 태고의 악(惡)이었다.
서준은 주위를 천천히 둘러보았다.
박살이 나있는 황궁.
그리고 어둠으로 잠식된 하늘 아래.
크워어어어어어어어─!!
새까맣게 드리운 베세르크의 무리들.
“사, 살려줘! 제발 살려줘!!”
“으아아아아앙!!”
처참히 유린당하는 제국민들.
정신을 잃은 황제, 엘리안.
피칠갑이 되어 쓰러져있는 아렌.
말도 안된다는 눈빛으로 서준을 바라보고 있는 베텔.
그리고 칼스의 품 속에서 떨고 있는 멘토의 기척.
마지막으로 떨리는 눈빛으로 서준을 바라보고 있는 칼스.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고 있었다.
그러니 한시라도 빨리 태고의 악(惡)을 막아야한다.
서준은 칼스에게 시선을 고정시켰다.
“칼스.”
서준은 많은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눈빛으로 이렇게 말할 뿐이었다.
뒤를 부탁한다.
잠식하는 어둠의 공간.
번쩍!
그 사이로 환한 빛무리와 함께 서준의 신형이 사라졌다.
#
서준이 사라진 후에도 칼스는 그 자리에 박혀 움직일 수 없었다.
주저앉은 다리.
여전히 힘이 들어가지 않고 있었다.
그저 멍하니 서준이 떠나간 자리를 지켜볼 뿐이었다.
서준은 칼스에게 많은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칼스는 서준이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 알 수 있었다.
뒤를 부탁한다는 의미.
지금 이곳에 황제, 엘리안.
그리고 아렌은 전투 불능에 빠져있었다.
허나, 자신은 지금부터 태고의 악(惡)과 대적할 것이다.
따라서 싸울 수 있는 이는 오직 칼스 한 명 뿐.
그러니 이곳에 남은 악(惡)이자, 태고의 악(惡)이 남긴 잔재.
“어, 어떻게··· 어떻게 저 놈팽이가 살아온 것이지···?”
베텔을 칼스에게 부탁한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칼스는 쉽사리 몸을 일으킬 수 없었다.
의미는 알고 있지만 그것이 가능한지의 여부는 별개였으니까.
정확히는 칼스는 할 수 없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칼스는 베텔을 넘어설 수 없었다.
심지어 지금의 베텔은 광기에 삼켜져 더욱더 강해져있었다.
방금 전의 격돌 속에서 칼스는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은 베텔을 넘어설 수 없다.
아마 서준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을 터였다.
그런데 대체 왜···?
모르겠다.
대체 스승님은 무얼 바라고 그런 말씀을 하신 걸까.
혹시 자신이 저 태고의 악을 처리할 때까지 버텨달라는 의미였을까?
그 순간.
“짜증나는군···.”
베텔의 나지막한 중얼거림이 들려왔다.
베텔은 인상을 와락, 일그러뜨리고 있었다.
“이 놈이나, 저 놈이나. 되도 않는 일에 발악하는 꼬라지 하고는···.”
그리고는 칼스를 바라보며 비릿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저 빌어먹을 이방인 놈팽이가 어떻게 살아돌아온 것인지.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상관 없었다.
저 태고의 악(惡) 앞에서 모든 존재는 한낱 버러지에 지나지 않았으니까.
저 악(惡)은 신화 속, 태초의 베세르크.
그 어떤 존재도 근원의 악(惡)을 넘어설 수 없었다.
그러니.
“너도 네 스승을 따라 보내주마.”
일순간 거리가, 공간이 접힌다.
한 번의 움직임으로 거리가 순식간에 줄어든다.
꽈아아앙!
한 가운데서 폭발이 터졌다.
칼스의 창과 베텔의 검이 부딪히며 파르르, 떨려왔다.
“크윽···!”
칼스의 입가로 신음이 터져나왔다.
그와 동시에 비릿한 혈향이 느껴진다.
반면 베텔의 입가는 파들거렸다.
그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베텔의 전신으로 시꺼먼 마력이 너울거렸다.
그것은 마치 거대한 해일처럼 다가왔다.
쐐애애액!!
그 사이로 공간을 가르는 거대한 검격이 다가온다.
쇄도하는 검격을 상대로 칼스는 피하지 않았다.
칼스는 창을 꽈득, 움켜쥐었다.
그와 동시에 전신의 마력을 쥐어짜내었다.
그리고는 그 힘을 일시에 사출하듯 창을 내질렀다.
하지만.
“네 녀석은 안 된다니까.”
쏘아진 칼스의 창은 끝까지 닿지 못하고 흩어져버렸다.
꽈드드드드득!!
주변의 공간이 찢어지며 검은 기류가 범람했다.
번쩍거리는 칠흑의 빛이 사방으로 터졌다.
“끄아아아아아악!!”
칼스는 그 힘에 휘말려 끔찍한 비명을 터트렸다.
#
치솟은 하늘 위.
서준의 시야에 보인 것은 그야말로 아수라의 지옥도(地獄道)나 다름 없었다.
“안돼!!”
“커허허헉!”
지금 이 순간에도 스러지는 수많은 제국민들.
시간이 없다.
정확히는 꾸물거릴 시간이 없다.
서준은 황급히 티알피의 신속을 터트렸다.
하지만.
키이이잉!
그런 서준의 생각을 꿰뚫기라도 한듯.
요동치는 힘이 서준의 앞을 가로막았다.
서준은 황급히 롱기누스의 창을 휘둘렀다.
꽈아아앙!
지면이 통째로 주저 앉으며 몰려오던 어둠이 흩어졌다.
그리고 그 사이로 서준은 번뜩이는 붉은 안광을 마주할 수 있었다.
태초, 신화 속 최초의 초월자와 대적했던 존재이자,
최초의 초월자마저 어찌하지 못했던 악(惡).
전 차원과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악의 근원.
〔사라졌던 존재였거늘···.〕
태고의 악(惡)이었다.
붉은 안광이 서준의 전신을 훑었다.
터져나오는 악의 광기는 정신을 아찔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서준은 그 안광을 똑바로 마주했다.
서로가 서로를 인지한다.
그리고.
‘저 녀석이 본체다.’
서준은 본능적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서준은 천천히 시선을 돌려 주변을 훑어보았다.
새까맣게 드리운 베세르크들에게 유린당하는 제국민들.
서준은 방금 전의 탐색으로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저 베세르크들은 다름 아닌 태고의 악(惡)에 뿌리를 두고 있다.
태고의 악(惡)이 만들어낸 존재들이다.
따라서 태고의 악이 사라지면,
하늘을 뒤덮은 베세르크들 또한 사라질 터였다.
그러니.
‘시간을 끌 필요가 없겠지.’
서준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웃을 상황이 아니었다.
그러나 서준은 저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전신에서 느껴지는 힘.
무한이라는 개념에 한계를 느끼게하는 모순적인 힘이었으니까.
진정한 의미의 초월이자.
최초의 초월.
‘지금이라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서준이 걷고자 하는 초월의 길.
서준이 나아가고자 했던 초월의 방향.
무(武)의 극한(極限).
사실 무(武)의 극한(極限)은 존재할 수가 없었다.
그건 숫자에 한계가 있다고 말하는 것과 같은 말이었다.
한 가지 예로 너무도 강력한 무(武)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것은 너무도 강력해 이 우주 전체를 한 방에 날릴 수 있다.
그럼 그것이 무(武)의 극한이라 할 수 있을까?
그보다 더 강한 무(武)가 있을 수 있을 지 어떻게 알고?
가령 하나의 우주가 아닌, 2개의 우주를 한 방에 날릴 수 있다던지.
그건 분명 앞선 무(武)보다 강하다.
그러나 우리는 둘의 차이를 다르게 인지할 수 없다.
어차피 우주가 한 방에 휩쓸려나가는 것은 마찬가지니까.
다르게 인지할 수 있는 존재가 남아있지 않다.
3개, 4개의 우주를 한 방에 날릴 수 있는 무(武)가 있다 한들 그것 역시 마찬가지다.
숫자에 +1을 더하는 것처럼.
초월적인 무(武)에도 +1을 더하면 그만이다.
무(武)의 극한(極限)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초월적인 법칙을 다시 한 번 깨부술 수 있다면.
한계에 한계를 넘어 다시 한 번을 초월할 수 있다면.
초월(超越)을 초월(超越)할 수 있다면.
그렇다면.
무(武)의 극한(極限)에도 닿을 수 있지 않을까.
서준이 걷고자 하는 초월(超越)의 길.
그 길의 첫 시작점.
위대한 목소리와의 결전에서는 그 시작점 앞에 섰을 뿐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콰콰콰콰콰콰쾅!!!!
〔이, 이건······!!!!!!!!!〕
폭사하는 서준의 마력이 공간 전체를 터트리기 시작했다.
외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