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nscension Academy RAW novel - Chapter 311
28화 – 고향으로(2)
〔지금! 지금 와서 한다는 소리가 고작···!〕
“아, 아니 그러니까···.”
아렌은 이리나의 바가지 아닌 바가지에 여전히 어쩔 줄 몰라하고 있었다.
서준은 그런 둘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기, 원장님?”
그러자 이리나가 홱, 고개를 돌려 서준을 바라봤다.
〔무슨 일이시죠!〕
어딘가 뾰족한 이리나의 말투.
잘못한 것은 없었지만 서준은 괜시리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 이거 좀 한 번 확인해줄 수 있으신가요?”
서준은 살며시 스마트폰을 이리나에게 내밀었다.
이리나는 그 모습을 지켜보다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이리나의 어깨 너머로, 고맙다는 아렌의 표정을 볼 수 있었다.
굳이 아렌을 도와줄 생각은 없었지만··· 뭐, 아무튼.
이윽고 이리나가 서준이 건넨 스마트폰을 확인했다.
《김서준 회원님의 인과 잔고: 추정 불가》
〔이게 대체 뭐죠?〕
그리고 고개를 퍼뜩, 치켜들며 서준에게 묻는 이리나.
아니, 멘토도 그렇고 이리나도 그렇고.
그걸 나한테 물으시면 어떡하자는 걸까.
“······”
서준은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추정 불과의 인과? 이게 뭐죠? 아니, 저희 학원에 추정 불가의 인과가 존재할 수 있다고요? 인과 먹는 하마이자, 밑 빠진 독이라 불리는 저희 초월자 학원인데요?〕
이리나는 도무지 알 수 없다는 듯 스마트폰 화면을 보며 중얼거렸다.
그런데 잠깐.
인과 먹는 하마이자, 밑 빠진 독?
원장인 이리나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던 건가?
〔대, 대체 무슨 일이 있으셨던거죠?〕
이리나는 눈을 동그랗게 떠보이며 서준에게 물었다.
“어··· 그게 말이죠.”
서준은 그 질문에 곧바로 답을 할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걸 어디서부터 설명해야할지.
또 어떻게 설명해야지할지 감을 잡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이리나는 초월자 학원의 원장이자.
최초의 초월자, 아스텔지아의 제자.
비록 아스텔지아에 대한 기억이 사라졌다고는 하나 그의 존재에 대한 기억마저 날아간 것은 아니었다.
“음, 그러니까 말입니다···.”
서준은 그런 이리나를 향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관조자를 추방했을 당시부터,
이곳 아스텔지아 차원에 떨어진 상황.
그리고 지금까지의 여정을 간략하게 설명해주었다.
그렇게 긴 이야기 끝이 나고.
〔아···.〕
이리나는 작은 탄성을 내뱉었다.
바라본 이리나의 표정은 상당히 복잡미묘해져 있었다.
잊혀진 기억의 존재.
〔스승님께서···.〕
이리나는 한동안 멍하니 그 자리에 서있을 뿐이었다.
서준은 그런 이리나를 가만히 기다렸다.
모르긴 몰라도 상당히
이 세계에 얽힌 진실과 갑자기 존재가 지워진 스승.
그와 동시에 아렌이 어째서 이리나의 곁을 떠나야 했는지.
그 오랜 기간 동안 버텨온 지난 날.
그 모든 감정들이 복잡하게 얽혀올 터였다.
그렇기에 이리나가 받는 충격은 감히 상상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이리나는 초월자 학원의 원장답게 금방 정신을 차렸다.
이리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아렌을 바라봤다.
〔그렇다고 너를 용서한 건 아니야 아렌. 착각하지마.〕
뜨끔.
그러자 아렌이 찔린 다는 듯 몸을 크게 떨어보였다.
뭔가··· 기대를 했던 모양이었다.
그 사이로 멘토의 허탈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서준은 속삭이는 목소리로 멘토에게 물었다.
“원장님이 그렇게 인기가 많았습니까?”
멘토는 말도 말라는 듯 힘차게 소리쳤다.
서준은 피식, 웃음을 흘리는 반면 동의한다는 듯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리나는 그야말로 완벽한 존재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니까.
태양빛을 닮은 금발.
미(美)의 여신과 비교해도 전혀 꿀리지 않는 외모.
심지어 현존하는 최강의 초월자라 불리기까지 했으니···.
멘토가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며 재차 충격에 빠졌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고개를 퍼뜩, 치켜들었다 다시 감싸는 행동을 반복하기 시작했다.
어째··· 많이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김서준님?〕
멘토의 괴랄한 쇼를 구경하고 있자니 이리나가 다시 말을 걸어왔다.
이리나는 스마트폰을 다시 서준에게 돌려주며 말했다.
〔초월자 상점에서 아무거나 하나만 구입해보시겠어요?〕
“아무거나 말씀이십니까?〕
〔네.〕
고개를 끄덕이는 이리나의 모습에 서준은 곧장 초월자 상점에 접속했다.
‘뭘 사지···?’
이리나는 아무거나라고는 했지만 서준은 그럴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초월자 상점은 구매를 하면 할수록 인과가 누적되어 값이 높아지기 때문이었다.
그 때문에 영약조차 함부로 구하지 못했지 않았는가.
그렇기에 하나를 사더라도 신중하게 구매해야했다.
‘음···.’
서준은 오랜 고민 끝에 하나의 장비를 선택했다.
그동안 인과의 누적 때문에 살 수 없었던 물품.
키비시스와 같이 편의성과 유틸성에 치중한 장비였다.
꾹.
구매 버튼을 누르자 환한 빛무리와 함께 해당 장비가 눈앞에 소환되었다.
《인과 소모 -100,000,000,000》
이윽고 떠오르는 알림창.
다름 아닌 1,000억을 소모했다는 알림창이었다.
그리고 뒤이어 울리는 또 하나의 알림창.
《다음 구매 비용: 200,000,000,000》
“젠장···.”
서준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그도 그럴 것이 인과 누적으로 인해 다음 구매 비용은 2,000억.
무려 2배의 가격이 늘어났기 때문이었다.
물론 현재 서준이 아스텔지아에서 번 돈을 생각하면 2,000억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이것은 인과 누적.
한 번 구매에 2번씩 늘어난다면 서준이 번 돈은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그 왜 체스판에서 쌀 한 톨로 시작해 2배씩 늘리다가 30칸도 채 못 가 결국은 나라가 파산했다는 우화도 있지 않은가.
그렇기에 지금은 2,000억일지라도 결국은···.
그 순간.
띠링.
《현재 김서준 회원님의 인과 잔고: 추정 불가》
“······ 응?”
서준은 눈앞에 떠오른 알림창을 순간적으로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분명 1,000억을 소모했음에도 떠오른 추정불가의 수치.
〔역시···.〕
그 사이로 이리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태고의 악과 더불어 관조자를 추방한 인과가 지금에서야 계산된 것 같습니다.〕
이리나는 이와 관련하여 이런저런 설명을 이어나갔다.
〔그러니까 관조자가 정해놓은 인과율의 세계에서···.〕
서준은 딱히 이해할 수도, 별로 이해하고 싶지도 않은 난해한 개념들이었다.
그렇기에 서준이 알아들은 것은 하나.
아니, 귀에 꽂힌 것은 딱 하나였다.
〔아무래도 김서준님이 현재 가진 바 인과가 너무 많기에 벌어진 현상인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인과마저 초월했다.’ 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네요.〕
“어···.”
서준의 정신이 일순간 멍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저 말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
‘브, 블랙 카드!!?!?!’
그것도 마르지 않는 한도 무제한의 신용 카드!!
그와 동시에 서준의 머릿속으로 지난 날의 감상들이 스쳐지나가기 시작했다.
그 동안 초월자 학원에 당해온 나날들.
인과를 모아도 모아도 끝이 없던 그 지옥같던 나날들.
〔저희 초월자 학원에 존재하는 강의와 물품들을 다 합쳐도 김서준님이 가진 인과에 범접할 수 없는 모양인 것 같아요.〕
그 모든 나날들이 이제는 안녕이었다.
“아···!! 아아아아···!!”
서준은 마치 전기에 감전이라도 된 것 마냥 몸을 부르르, 떨기 시작했다.
멘토는 못 말리겠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보였다.
바로 그 순간.
번뜩!
갑자기 서준의 눈빛이 매섭게 번뜩이기 시작했다.
오싹.
그와 동시에 싸늘한 한기가 공간 전체를 내리누르기 시작했다.
세상 전체를 오시하는 위압감이 터져나온다.
이리나는 저도 모르게 바짝 긴장을 끌어올렸다.
현재의 서준은 자신마저 감당이 불가하다.
만일 서준이 나쁜 마음이라도 먹는다면···.
그 순간.
꾹.
어디선가
그런 소리가 들려왔다.
바라본 그곳엔 서준의 손가락이 천천히 스마트폰의 화면을 누르고 잇었다.
화아아아악!
그와 동시에 터져나오는 빛무리로 초월자 상점의 물품이 생성되었다.
띠링.
《현재 김서준 회원님의 인과 잔고: 추정 불가》
역시나 변하지 않는 인과.
그리고 찰나.
꾸꾸꾸꾸꾸꾸꾸꾸꾸꾸꾸꾸꾸꾸꾸꾸꾸꾹!!!
서준의 손가락이 미친듯이 스마트폰 화면을 누르기 시작했다!!
〔어···?〕
벙찌는 이리나와 멘토의 표정.
심지어 아렌마저 저게 뭐지···? 라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꾸꾸꾸꾸번──쩍!꾸꾸번────쩍!꾸꾸꾸꾹!
간간히 터져나오는 티알피의 신속.
서준은 손가락에 티알피의 신속이 갖는 한계를 더해갔다.
그야 말로 빛의 속도로 스마트폰 화면을 누르고 있었다!!
화아아아아악!!!
번───쩍!
그러자 마치 태양이라도 강림한 것처럼 빛무리가 쉼없이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후두두두두두둑!
들려오는 건 바닥으로 떨어지는 수많은 물품들!
언뜻 비친 그곳에는 영약이면 영약, 장비면 장비.
그 어느 것하나 가리지 않고 수북히 쌓이고 있었다.
꾸꾸꾸꾸번──쩍!꾸꾸번────쩍!꾸꾸꾸꾹!
정확히는 티알피 신속으로 쌓이고 있었다!
〔자, 잠깐!!〕
이리나는 황급히 소리쳤다.
그도 그럴 것이 초월자 학원이 거덜나게 생겼으니까!!
그러니 말려야했다.
협박, 폭행 및 갖은 방법을 동원해서 서준의 폭주를 막아야했다!
그런데···.
꾸꾸꾸꾸번──쩍!꾸꾸번────쩍!꾸꾸꾸꾹!
대체 누가 서준의 폭주를 막을 수 있단 말인가!
관조자를 추방하고,
최초의 초월자가 남긴 힘마저 흡수한 서준.
지금의 서준은 이리나마저 감당이 불가하다.
창조자(創造者)가 아닌 이상 그 누구도 대적이 불가하다.
하지만 말려야하는데.
억지로라도 말려야 하는데···!
할 수가 없다.
싸우면 지니까!
〔멘토! 지금 당장 학원 임원진들을 모조리 소집하세요! 특급 비상입니다!!! 아니, 일단 초월자 학원의 시스템부터 닫아버리라고 전하세요!!!〕
초월자 학원에 셧다운제가 도입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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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월자 학원에 셧다운제가 도입되고.
그 이후로 아스텔지아의 시간은 흘러갔다.
그와 동시에 볼루뉴 제국은 빠르게 예전의 모습을 되찾아갔다.
차원의 종말을 예고한 태고의 악(惡)이 사라졌고,
이상 현상 또한 그와 함께 사라졌다.
게다가 제국을 좀 먹던 반역자인 베텔.
그도 함께 사라지니 제국을 썩게 하던 고름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비록 그로 인한 피해는 막심했으나 제국은 끝내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가능하게 해준 단 한 존재.
“김서준님이 이제 돌아가신다면서?”
“그렇다고 하더라. 그래서 지금 태자 전하께서 분주하게 움직이고 계시던데.”
“김서준이라는 사람이 그렇게 대단해? 다들 김서준, 김서준. 제국 어디를 가나 그 이름뿐이네.”
“아니, 어디 산 속에 틀어박혀있다 왔어? 김서준님을 몰라?”
“난 산 속에 틀어박혀있는데도 김서준님을 알고 있는데?”
“정말··· 그 분이 없으셨다면 어찌되었을지···.”
태사자(太師者) 서준.
황태자의 스승이자 차원의 구원자.
“그 날, 그 싸움을 본 사람이라면 절대 그런 소리할 수가 없지.”
“그렇게 대단했나?”
“말도 마. 신화 속 이야기가 그대로 강림한 줄 알았다니까.”
아스텔지아에서 서준의 이름을 모르는 이는 없다시피했다.
“다들 모이세요! 오늘은 태고의 악과 태사자의 싸움! 그 클라이막스를 소개합니다!”
“빨리 시작하라고! 현기증 나니까!”
“저 자가 한 편만 쓰고 다음 편을 안 쓰는 사람입니다!”
“뭐라고! 이런 때려죽일 놈이!!!!”
수많은 음유시인들에게 회자되고,
그것은 하나의 신화가 되어 제국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동화 속 이야기.
제국에 새로운 이야기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제국 전역이 서준의 이야기로 떠들썩한 한 편.
아렌의 거처.
“드디어···.”
서준은 끝내 잃어버린 힘을 모두 되찾을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정말 말로 표현하기 힘든 어마어마한 인과가 소모되었지만 큰 상관을 하지 않았다.
서준에게는 블랙 카드, 한도 무제한의 인과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로써 완전해진 삼단전(三丹田)의 힘과 더불어 최초의 초월자가 남긴 힘까지.
당연히 지구로 돌아갈 인과까지도 넉넉했다.
“이거··· 왜인지 제가 끔찍한 괴물을 만든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만.”
아렌은 범접할 수 없는 표정으로 서준을 바라봤다.
“괴물이라니. 말이 너무 심하신 것 아닙니까?”
“그러게요. 괴물에게 너무 말이 심했던 것 같습니다.”
“······”
서준은 뭐라 할 말을 잃어버렸다.
아렌은 그런 서준의 모습에 작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말만 그러할 뿐.
사실 아렌은 서준을 의심하지 않았다.
최초의 초월자가 남긴 의지.
서준은 충분히 이 힘을 올바르게 사용할 것이라 믿고 있었으니까.
그런 아렌의 마음을 알았기에 서준 또한 웃음으로 넘겼다.
“그보다 아렌. 마지막으로 하나만 물어봐도 됩니까?”
“무엇이죠?”
아렌은 말하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엘리안이랑은 진짜 아무런 관계가 아닌 겁니까?”
“······ 아직도 의심하시는 겁니까?
아렌은 어처구니 없는 눈빛으로 서준을 바라봤다.
“아니, 뭐 꼭 이렇고 저런 관계가 아니라 이리나와 아렌 사이에···.”
“아닙니다.”
아렌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그냥 이 차원에 있으면서 도와준 아이일 뿐입니다.”
“후손도 아니라고요?”
“이리나와 저 사이에 자식은 아직 없습니다. 관조자의 영향으로 자식을 가질 수 없었다는 게 정확하겠군요. 관조자가 어떤 수작을 부릴 지 알 수 없었으니까요.”
아렌은 질책을 하듯 서준에게 말했다.
“그래서 제가 누누히 아니라고 말씀드렸잖습니까.”
“아···.”
그런 아렌의 모습에 서준은 실망 가득한 탄성을 내뱉었다.
“대체 뭘 기대하신 겁니까?”
“당연히 이렇고 저런 이야기죠. 아스텔지아라는 차원에서 펼쳐지는 문란한 신화 이야기 같은거요.”
“문란한 이야기요? 미치셨습니까? 그랬다간 저 진짜로 죽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저, 이리나랑 싸우면 집니다.”
“아, 그것도 그렇네요.”
서준은 금방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보니 상대가 초월자 학원의 원장.
그것도 서준 이전에 최강의 초월자라 불리는 존재라면 어림도 없었다.
그래도···.
아쉬운 건 아쉬운 것이었다.
특히 이런 막장 이야기같은 건 언제나 흥미로웠다.
대저 신화란 이런 이야기들 천지이지 않은가.
지구에서도 그러했다.
그리스 로마 신화는 개판 5분 전이었고,
북유럽 신화는 개판 5분 후였고,
이집트 신화는 5분마다 개판이지 않은가.
존재들이 살아가는 방식이야 다 거기서 거기이니,
이곳 아스텔지아도 비슷할 것이었다.
그리고 아렌도 어떻게 보면 신화 속 존재라 할 수 있었으니까···.
“······ 상당히 아쉽네요.”
“그러니까 대체 뭐가··· 에휴, 아닙니다. 제가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아렌은 진절머리 난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서준은 그런 아렌의 모습에 살며시 미소를 지어보였다.
뭐, 어디까지나 농담일 뿐이었으니까.
“벌써··· 가시는 겁니까.”
그 순간 누군가 서준과 아렌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다름 아닌 제국의 황태자이자 서준의 제자, 칼스였다.
이리나와 멘토는 초월자 학원의 시스템을 정비한다고 돌아간 상황이었다.
칼스는 여기저기 붕대를 감고 있었다.
베텔과의 싸움에서 한계를 넘어섰던 칼스.
다행히 목숨에 지장은 없었으나 꽤 오랜 시간 동안 요양을 해야만했다.
서준은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가야지. 왜 가르치다 말고 런하는 것 같아서 좀 그런가? 걱정마, 초월자 학원을 통해서 강의 남겨줄테니까.”
“아, 아닙니다. 그런 뜻이 아니었습니다!”
칼스는 절대 아니라 아니라는 듯 황급히 손사래를 쳐보였다.
서준은 피식, 웃음을 흘리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심심하면 가끔 우리 차원에 놀러와. 현장 강의를 들을 겸, 저번에 말했던 이하윤도 소개시켜줄게. 보니까 너 아직 황태자비 없던데.”
“또 그 이야기 이십니까···.”
칼스는 질린다는 듯 고개를 흔들어보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칼스가 잠시 머뭇머뭇거리더니.
“그··· 혹시 예쁩니까?”
슬쩍 시선을 돌리며 넌지시 물어왔다.
“뭐, 예쁘긴 하지?”
워낙 말이 없어 속을 알 수 없었지만.
성격이 차갑다고 해야하나.
그런데···.
관심이 있던 거였어?
서준은 저도 모르게 실소를 흘렸다.
역시 차원이 달라도 존재가 살아가는 방식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런 의미로···.
“그만 하시죠.”
“네.”
서준은 아렌을 바라본 고개를 황급히 돌려보였다.
어쨌든.
이로써 태초부터 시작되어 얽혀온 이야기는 이렇게 막을 내렸다.
그러나.
“제국민들도 상당히 아쉬워합니다. 조금 더 있으셨다가 송별식이라도···.”
“됐어. 번거롭게 무슨. 차라리 그 의식 준비할 돈을 나 주든지.”
그 이야기의 끝은 마지막도, 대단락도 아니었다.
“돈을 그렇게 많이 가지고 있으시면서 또 돈이 필요하신 겁니까?”
“칼스야, 돈이란 그런 거란다. 두툼한 지갑은 언제나 옳거든. 항상 명심하렴.”
그저 다른 삶과 맞닿아 새로운 이야기로 흘러갈 뿐.
그저 다른 이야기의 시작점이 되어있을 뿐.
그러니 이제는 가야할 시간이었다.
모두가 기다리고 있는.
내가 있어야 할.
“아렌. 부탁드려도 될까요.”
나의 고향으로.
외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