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nscension Academy RAW novel - Chapter 312
29화 – 언젠가, 그 날의 너에게 (完)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
키에에에에에엑─!
서울의 상공에는 섬뜩한 기세가 공기를 쩌렁쩌렁하게 울러퍼졌다.
익룡과 드래곤을 반반씩 섞어놓은 듯한 모습을 한 몬스터.
다름 아닌 와이번(Wyvern)이었다.
와이번은 날개를 퍼덕이며 서울의 상공을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어떤 먹잇감을 먹을지 고민하는 독수리와도 같아 보였다.
콰아아아아앙!
그 순간 터져나오는 폭음.
“이런 제기랄!”
그 사이로 이민성이 이를 까득, 깨물며 소리쳤다.
다름 아닌 신화 길드의 이민성이었다.
“민성씨 괜찮으세요?”
“죽은 건 아니지!”
가려진 시야로 가람, 무궁화 길드의 수장인 정윤미와 도민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때는 한국의 5대 길드라 하여 프로 헌터 세계를 군림하던 이들.
하지만 어떤 한 존재로 인해 수 십년 간 고여있던 프로 헌터 세계가 개박살이 나버린 이후.
지금은 그저 한국 프로 헌터 협회장, 이태범의 밑에서 일하는 S급 헌터일 뿐이었다.
“난 괜찮아! 하지만···!”
이민성은 자욱히 피어난 먼지 안개 사이로 소리쳤다.
키에에에에에엑─!
그리고 그런 이민성의 목소리에 와이번이 다시 한 번 긴 울음을 내뱉었다.
“젠장! 하필 와이번이라니!”
이민성은 저도 모르게 소리쳤다.
한때 한국의 5대 길드였고,
비록 지금은 몰락했으나 최상위 S급 헌터라는 실력이 어디 간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 상대하는 와이번.
이민성조차 와이번을 대적하기란 쉽지 않았다.
와이번은 드레이크와 더불어 드래곤의 열화판으로 분류되는 몬스터였다.
그 등급만 무려 11성.
지구에서 구분하는 몬스터의 등급은 총 15단계로 나뉘어져있다.
그리고 대체로 9성부터 S급 헌터의 영역으로 간주한다.
물론 9성이라고 A급 헌터가 잡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정식 레이드 팀, 그러니까 A급 헌터 5명을 이루어야 잡을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리고 10성부터는 완전한 S급 헌터의 영역.
11성 이후는 S급 헌터들조차 긴장해야만 하는 영역이었다.
프로 헌터의 정점이라 불리는 S급 헌터들조차 쉽사리 상대할 수 없는 수준.
사실 원래 11성의 몬스터는 미지의 영역에 존재하던 몬스터들이었다.
왜냐하면 11성은 아주 오래 전.
대격변 시절에서나 보였던 몬스터였으니까.
하지만 현재 지구는 많은 것들이 변한 상황이었다.
정확히는 지구의 종말을 걸었던 최후의 전투.
“뒤틀림으로 와이번이 나오다니!”
그 이후로 지구에는 던전 뒤틀림이 시도때도 없이 발생하고 있었다.
“끼에에에에에엑─!”
와이번에게서 다시 한 번 소름끼치는 포효가 터져나왔다.
그와 동시에 섬뜩한 기세가 이민성의 감각에 걸렸다.
이민성은 망설임없이 옆으로 몸을 던졌다.
콰─앙!
작은 폭발이 터져나오며 방금 전까지 이민성이 있던 땅이 쩌적, 갈라졌다.
가만히 있었으면 그대로 압사당할 뻔한 상황.
그리고 그런 공격이 빗나감에 화가난 것일까.
와이번은 더욱더 분노를 터트리며 날뛰기 시작했다.
쾅쾅쾅쾅쾅쾅쾅!!
바닥이 무너지고 주변의 사물이 무조건적으로 부서지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으아아아아아앙!”
어디선가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아이?
이민성의 고개가 홱, 하고 돌아갔다.
바라본 그곳.
그곳엔 자그마한 여자 아이가 바닥에 주저앉아 울고 있었다.
“으아아아앙!”
아이는 두려움에 범벅이 된 얼굴로 몸을 덜덜 떨고 있었다.
“아이가 대체 왜 여기에!”
“모두 대피시킨 것 아니었나!!”
이민성과 도민석이 동시에 소리쳤다.
최후의 전투 이후.
지구에는 뒤틀림의 현상이 다발적으로 발생하기 시작했다.
이에 수없이 많은 희생이 있었으나,
한 천재 마법사에 의해 그 희생이 극적으로 줄어들게 되었다.
다름 아닌 새로운 마성(魔星)이 된 드림팀의 수연.
그녀는 뒤틀림이 발생하기 직전의 현상을 포착하고 예고하는 마도학 장치를 발명.
그 이후로 예기치 못한 뒤틀림으로 인해 희생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하지만 거의 없다 싶었을 뿐.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언제나 예외적인 상황은 존재하기 마련.
아무래도 뒤틀림이 발생한다는 소식을 듣지 못하고 미처 대피를 하지 못한 것 같았다.
키에에에에에에─!
아이를 발견한 와이번이 기나닌 포효를 내질렀다.
일렁이는 와이번의 붉은 안광이 아이에게로 향한다.
“으아아아아아앙!!”
그 죽음을 윽박지르는 공포에 아이는 또 다시 울음을 터트렸다.
“저, 저곳에 아, 아이가!”
“어, 어떻게!!”
사람들은 그 끔찍한 상황에 발을 동동, 구를 뿐이었다.
뒤틀림을 예고하는 장치가 발명되었다고는 하나.
뒤틀림이 수많은 희생자를 발생시키는 것은 변함 없었다.
일상 속에서 시도때도 없이 등장하는 몬스터들.
그것은 과거, 대격변의 시절을 연상케했다.
오로지 생존만이 전부였던 시절.
하루하루 살아남음이 버거웠던 시절.
키에에에에에에엑─!
사실상 지구는 제 2의 대격변이나 다름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과거, 대격변 시절과는 달리 지금의 인류는 그에 대항할 힘을 갖추고 있었다.
투─쾅!
어디선가 한줄기 섬광이 내리꽂혔다.
콰아아앙!
뒤이어 터져나오는 폭발음.
그리고 다시.
“작열(灼熱)하라.”
프로미넌스 플레임(Prominence Flame).
화르르르르르륵!!
어디선가 들려오는 나지막한 목소리와 함께 와이번과 아이 사이로 시뻘건 불길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화르륵! 화르르륵!
마치 태양의 불꽃을 끌어온 것만 같은 소름끼치는 열기.
그 열기는 주변의 모든 것들을 불살라 삼켜버렸다.
와이번을 비롯한 아이마저도.
하지만.
신령술(神靈術).
결계: 강(結界: 强).
쩌────엉!
이윽고 형성된 반투명한 막이 아이 앞으로 형성되었다.
결계는 주변을 삼키는 화마로부터 아이를 보호했다.
이윽고 불길이 일렁이며 서로가 서로를 이었다.
그렇게 하나 둘 이어진 불길들은 화염의 폭풍을 만들어내었다.
화아아아아아아악!
그 화염의 폭풍은 와이번을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와이번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일순간에 잿더미로 스러져버렸다.
그런 동족의 죽음을 확인한 와이번 무리들.
“끼에에에에에엑─!!!”
“끼에에에에─!!”
상공에 떠돌던 와이번들이 분노를 터트리며 달려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그때.
타닥.
탁.
두 명의 존재가 일렁이는 불길 사이로 뛰쳐나갔다.
그리고 찰나.
귀혼추살(鬼魂追殺).
비기(祕器).
무쌍난검(武雙亂劍).
파바바바바바박!
파천신검(破天神劍).
제 1식(第 一式).
뇌전검무(雷電劍舞).
파지지지직!
그것은 긴 궤적을 남기며 와이번 무리들을 일시에 휩쓸어버렸다.
“이, 이 무슨···?”
그 압도적인 광경에 사람들은 경악 어린 표정을 지어보였다.
S급 헌터들조차 쉽사리 상대할 수 없었던 와이번이었다.
그 와이번 무리들을 고작 몇 초도 되지 않아 휩쓸어버리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이건 대격변의 영웅이라 불리던 존재들도 불가하다.
이러한 것이 가능한 존재들은 딱 하나.
“드, 드림팀···!”
드림팀.
최후의 전투에서 가장 맹활약을 펼쳤던 지구 최강의 5인.
지금은 명실상부 지구 최강의 헌터들이자 제 2의 대격변을 맞이했음에도 평화로운 일상을 유지할 수 있는 결정적인 이유.
“드림팀이다! 드림팀이 왔다!!”
와아아아아아아아─!!!
사람들의 함성이 서울 상공 가득히 터져나왔다.
끊이지 않고 터져나오는 함성 속.
“휴우. 늦지 않게 와서 다행이다.”
수연이 작은 한숨을 내쉬며 나서보였다.
“수연아. 매번 말하지만 광역 마법은 좀 자제해. 그러다가 아이가 다치면 어쩔 뻔했어?”
그리고 그런 수연을 질책하며 하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렇긴하지만··· 그래도 단번에 없애는 게 더 좋을 것 같아서 그랬단 말이야. 무엇보다 난 하윤 언니를 믿었지! 역시 언니 최고!”
엄지를 척, 하며 치켜드는 수연의 모습에 하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수연은 하윤의 모습에 히힛! 웃어보였다.
그리고는 뒤쪽을 향해 크게 소리쳤다.
“아빠! 상황 다 끝났어!”
“나도 알아 임마. 귀청 떨어지게 목소리에 마나는 왜 담는거야?”
그러자 걸걸한 목소리와 함께 수염이 수북히 난 인상적인 중년의 사내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다름 아닌 과거, 서준과 함께 몬스터 사체업무를 하던 만철이었다.
만철은 벅벅, 뒷머리를 긁었다.
그리고는 손가락으로 어느 한 쪽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런데 이거. 방금 전까지 저쪽이 잡던 거 아니야? 우리가 이렇게 낼름 가져가도 되는 거야?”
만철이 가리킨 그곳엔 얼떨떨한 표정을 짓고있는 이민성, 도민석 그리고 정윤미가 있었다.
수연은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아, 저 분들은 협회장님 소속 헌터분들이라 괜찮아. 우리가 가져도 돼. 안 그래도 서윤 언니가 잘 말씀드리고 있네.”
“그려?”
만철은 고개를 끄덕이며 소리쳤다.
“어이! 상황 끝났으니까 다들 와서 작업하라고!”
“옙! 사장님!”
그런 만철의 말에 일련의 무리들이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나탔다.
드림 익스프레스라는 작업복을 입은 사람들.
그들은 널브러진 와이번 사체들을 끌어다가 일사분란하게 해체 작업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이야! 진짜 사장님 덕분에 일거리가 끊이질 않습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요즘 같은 헌터들이 넘치는 불경기에 드림팀의 사체 업무를 전속할 수 있다니···!”
“드림팀 옆에서 일한다고 제 자식들이 아주 난리도 아닙니다! 덕분에 제 어깨가 ”
만철은 그 특유의 못마땅한 표정으로 말했다.
“염병들 하고 있네. 딸이 드림팀인데 이 일하고 있는 거 보면 안보여?”
그리고는 작업을 하는 사람들 사이로 털썩, 주저앉고는 그들과 같이 작업을 이어나갔다.
“딸내미가 최강의 마법사면 뭐하나. 나는 이렇게 찬밥인세인데. 자식 키워봤자 소용없다니까.”
“아빤 말을 뭐 그렇게 해?”
“내가 틀린 말 했나?”
콰직.
퍽.
만철은 순식간에 와이번 한 마리를 해체해보였다.
수연은 볼을 빵빵하게 부풀리며 말했다.
“딸내미 등골 빨아먹는 거 싫다고 한 게 누구였는데?”
“······ 하여간, 한 마디를 안 져요.”
만철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저씨. 이야기는 잘 끝났어요 바로 작업 시작하시면···.”
그 순간 들려오는 목소리.
그곳엔 긴 흑발과 함께 흑요석을 닮은 눈동자를 지닌 미녀, 서윤이 서 있었다.
서윤은 벌써 작업 중인 만철을 발견하고는 살짝 놀란 눈으로 소리쳤다.
“아, 벌써 작업 중이셨군요.”
“누가 바로 시작하라고 해서 말이지. 우리 같은 하청 업체가 힘이 어디 있나. 까라면 까야지.”
“또또 시작이다!”
“하핫! 아저씨가 운영하는 업체가 이쪽에서 가장 탑이잖아요. 저희라고 수연이 인맥 때문에 이러는 건 아닙니다!”
이어진 민율의 목소리.
“맞아, 민율 오빠처럼 긍정적으로 생각하라고.”
“얼씨구, 민율이가 말하니까 목소리 톤부터 달라지네. 너 혹시···.”
“아빠!!!!”
수연은 버럭, 소리쳤다.
그리고 티격태격하는 수연과 만철.
서윤은 티격태격하는 그 둘의 모습에 작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래도 사장님. 우리 같은 사람들이 언제 와이번을 만져보겠습니까.”
“맞습니다. 저는 라이칸슬로프 만져보는 것도 꿈이라 생각했었습니다.”
“그러고보니 사장님은 우리 업계의 전설이 아니십니까. 드래곤은 물론이고 리치 두개골로 축구도 하셨다고···.”
“크으···! 리치 두개골로 축구라니!”
“염병들 떨고 있다.”
만철은 그 못마땅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래도···.”
만철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다름 아닌 아주 오래 전.
드래곤을 만져주게 해주겠다고 호언장담하던 한 어떤 놈팽이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때는 말도 안되는, 그저 농담 뿐인 말이었지만···.
만철은 해체 작업을 잠시 멈추고는 고개를 돌렸다.
수연에게 뭐라뭐라 말하던 서윤을 향해 천천히 입을 열었다.
“혹시 서준이는.”
흠칫.
그러자 몸을 흠칫, 떠는 서윤.
“아직 아무런 소식이 없는 게냐?”
“······”
서윤은 쉽사리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최후의 전투가 종식된지 어언 1년.
그 동안 지구에는 수많은 변화가 있었다.
위대한 목소리가 소멸되고 진리회는 붕괴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인류 구원의 단체이자,
인류 역사상 최악의 집단으로서 이름을 남긴 채.
그 이후 무슨 이유에서인지 뒤틀림의 현상이 빈번하게 발생했다.
이에 지구는 제 2의 대격변을 맞이했으나,
과거와 달리 인류는 그만한 힘이 있었다.
인공 각성과 더불어 포화된 프로 헌터들.
프로 헌터 시험은 매년 치루어졌고 나날이 그들의 수준은 높아져만 갔다.
물론 던전을 레이드하는 것은 여전히 높은 위험을 지니고 있었지만, 뒤틀림으로 인한 민간인 피해는 교통 사고보다 낮은 사망률을 기록하고 있었다.
이제 몬스터들은 더 이상 위협이라고 할 수 없었다.
종말이 종식되고 도래한 평화.
그러나.
“······”
그 속에 서준은 존재하지 않았다.
인류 최강의 헌터인 그는 종말이 종식됨과 동시에 사라져버렸다.
그리고는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마치 자신의 역할은 더 이상 없다는 듯 말이다.
1년.
오랜 시간이었지만 서윤은 아직도 그 날을 잊지 못하고 있었다.
모래 알갱이처럼 사라지던 서준의 모습을.
손을 뻗어 흩어 사라지는 모래 알갱이들을 붙잡으려 했지만 끝내 잡을 수 없었던 자신을.
닿고자 했지만, 끝내 닿을 수 없었던 무엇처럼.
그저 메마른 허공만이 남아있던 감촉을.
서윤의 시선이 저도 모르게 위로 향했다.
무엇 때문일까.
고개를 들어 바라본 하늘은 유난히 맑게 개어있었다.
그가 없는 세계.
이 세계는 거짓말처럼 흘러가고 있었다.
그냥 원래 그러했던 것처럼 흘러가고 있었다.
그가 없는 세상은 무언가 의미는 분명 있다.
그리고 알고도 있었다.
언젠가, 그 언젠가.
이러한 날이 찾아오리라는 것을.
서준과의 이별은 예정되어 있었다는 것을.
자신은 그의 곁에 설 수 없었으며,
그는 언젠가 떠나야 할 사람이었다는 것을.
그곳이 어딘지는 알 수 없었다.
원체 행동을 예상하기가 어려운 사람이었으니까.
처음 만났을 때도 그러했다.
참···.
이렇게 생각해보니 행동을 예상하기 어려운 사람이 아니라 그냥 미친놈이 아닌가 싶다.
그렇게 시작된 둘의 인연은 수많은 나날들이 지나며 깊어져 갔다.
서윤은 서준을 통해 세계 최고의 아카데미를 만드는 것을.
서준은 서윤을 통해 세계 최고의 헌터가 되는 것을.
그 같으면서도 다른 꿈을 가졌던 둘의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되었었다.
어떻게 보면 서로가 서로를 이용하는 사이에서부터 출발했지만, 그 간극에 있어서 서로에게 어떤 의지가 되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서윤은 문득, 서준과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준이 걷는 길에 같이 서고 싶었고,
그리하여 같은 곳을 바라보게 되었다.
그리고 서준이 프로 헌터가 되었을 때.
더 이상 서준에게 드림 아카데미가 필요가 없어졌을 때.
서준은 서윤에게 ‘같이가자.’ 라고 말해주었다.
그때는 겸연쩍은 듯 말을 했지만.
사실 서윤은 너무나도 기뻤었다.
그렇게 인연을 이어가며 끝내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그렇기에 그 누구보다 서준에 대해 많이 안다고 생각했지만···.
모르겠다.
그리고 이제는 알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그렇기에 지금은··· 지금은···.
그것이 너무도 후회가 되었고,
그것이 너무도 야속하게만 느껴졌다.
정말로.
서윤의 고개가 힘없이 아래로 떨어졌다.
조금이라도 좋다.
아주 조금만이라도 좋다.
정말 조금만이라도 좋으니까···.
내려앉는 시야.
“네. 아직 별 다른 소식이 없네요.”
서윤의 목소리는 어딘가 떨리고 있었다.
“······ 알았다.”
그렇기에 만철은 그 이상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씨펄, 염병할 놈.”
그저 이렇게 중얼거릴 뿐.
바로 그때.
띠리리리리리리리링!
갑자기 서윤의 휴대폰이 요란하게 울려왔다.
서윤은 퍼뜩, 정신을 차리고는 품 속에서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발신인 – 이태범 협회장님》
“협회장님?”
서윤은 뭔가 싶어 통화를 받았다.
그리고 뭐라 대답을 하기도 전.
-크, 큰일 났습니다!!!
수화기 너머로 다급한 이태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우우우우우우우우우웅···!!
서울 상공 위.
하늘 전체를 뒤덮는 어마어마한 게이트가 생성되었다.
#
서윤은 팀원들과 함께 약속된 장소로 향했다.
그렇게 도착한 장소.
“마, 말도 안돼···!”
“어, 어떻게 이런···!”
“이, 이게 대체···!”
그곳에 도착한 수연, 민율, 하윤은 저마다 경악 어린 표정을 지어보였다.
우우우우우우웅···!!
다름 아닌 상공을 뒤덮는 초거대 게이트.
그것은 거대하다는 말로도 부족할, 서울 하늘 전체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뒤덮는 압도적인 크기였다.
시꺼먼 하늘이 지구 전체를 집어삼킬 것처럼 일렁이는 것만 같았다.
“저, 저게 대체 무슨···!”
서윤은 저도 모르게 입을 쩌억, 벌렸다.
그도 그럴 것이 게이트의 크기는 그 안에 내재된 몬스터의 수준이 결정된다.
게이트 안에 담긴 마력의 수준.
그 수준에 따라 크기가 결정된다.
그리고 1년 전 최후의 결전 당시.
위대한 목소리가 소환한 게이트는 경기권 전체를 뒤덮을 정도의 크기였다.
그로 인해 지구는 종말의 운명과 싸워야만했다.
그러나 지금 보이는 거대한 게이트.
이건··· 더 이상 게이트라 부를 수가 없었다.
경기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뒤덮고 있는 사상 초유의 게이트.
지금 하늘을 뒤덮는 게이트 안에 대체 무엇이 있을지.
서윤은 도무지 짐작조차 할 수가 없었다.
“왔느냐.”
이윽고 들려오는 목소리.
그곳엔 검성(劍星)을 비롯한 대격변의 영웅들이 모여있었다.
“어, 어떻게 된 것이죠 할아버지? 저 게이트는 대체···!”
“우리도 모른다. 태범이 말로는 말 그대로 갑자기 생성되었다고 하더군.”
이어진 대답은 영성(靈星)의 것이었다.
그 뒤로 마성(魔星)과 암성(暗星) 그리고 의성(醫星)이 한 마디씩 첨언했지만 서윤은 귀담아 들을 수가 없었다.
우우우우우우우웅···!
그도 그럴 것이 게이트 너머로 느껴지는 위압감.
그것에 짓눌려 제대로 된 사고를 이어갈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현재 동원할 수 있는 모든 헌터들을 동원하고 있습니다만···.”
그리고 마지막으로 들려온 이태범의 말.
그의 말처럼 이곳 주위에는 수많은 프로 헌터들이 모여있었다.
하지만···.
‘막을 수 없다.’
서윤은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의미가 없다.
정확히는 저 안에 있는 존재를 감당할 수가 없다.
지금조차 피부를 저릿하게 찌르는 압박감.
저 안의 존재를 막을 수 있을까?
만일 그가 있었다면···.
꽈득!
서윤은 검을 꽈득, 움켜쥐었다.
그는 이제 없다.
그는 사라져 돌아오지 않는다.
아마··· 절대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그가 없는 세계.
그렇기에 서윤에게 더 이상의 미련은 존재하지 않는 세계.
헛된 희망이라는 건 알고 있다.
절대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벌써 1년이란 시간이 흐르지 않았는가.
그는 원래 그런 사람이었으니까.
정말로 야속한 사람이었으니까.
그렇기에 정말로 바보같은 생각임을 알고 있지만.
“이곳에서 막습니다.”
해야한다.
언젠가 그가 돌아올 이곳을 지켜야 한다.
서윤은 전의를 다졌다.
그런 서윤의 모습에 대격변의 영웅들.
그리고 드림팀의 일원들 또한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바로 그때.
화아아아아아아아악!!!
일순간 끔찍한 기운이 게이트 중심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버, 벌써 뒤틀림이!”
그에 마성이 크게 소리쳤다.
그와 동시에 터져나오는 끔찍한 기운.
그건 단 한 번도 마주한 적이 없던 힘이었다.
세상 그 어떤 개념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아득한 그 너머의 힘.
“어, 어떻게···.”
“이, 이건 대체···.”
사람들의 표정에는 공포라는 감정이 새겨졌다.
덜덜, 서윤의 전신 또한 저도 모르게 떨려온다.
베세르크?
마왕, 엘드리치?
심지어 지구의 종말을 예고했던 위대한 목소리.
그때 보았던 기운마저 지금과 비교할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서윤은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감당할 수··· 없다.’
그리고 죽는다.
투지조차 일어나지 않는 압도적인 힘이 하늘 전체로 터져나온다.
그럼에도 서윤은 터벅, 앞으로 걸어나갔다.
안된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누군가는 반드시 싸워야했으니까.
그것을 할 사람은 자신밖에 없었으니까.
‘마지막으로 한 번쯤은···. 보고 싶었는데.’
그리고 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이마저도 욕심이었던 걸까.
서윤은 작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이윽고 터져나오는 환한 빛무리와 함께 게이트 안에서 터무니 없는 힘의 존재가 튀어나왔다.
파르르, 떨리는 손.
서윤은 꽈득, 검을 움켜쥐었다.
이윽고 시선을 치켜들며,
앞을 바라봤을 때.
아무리 짧은 추억이라도.
“······ 어라?”
그 순간의 체온과 향은 잊을 수가 없다.
그 사람은 머릿속에서 점점 잊혀지는데.
감각은 추억처럼 남아 한없이 가슴을 괴롭힐 때가 있다.
“왜 다들 여기에 모여계시죠?”
우뚝.
몸이 굳어진다.
혈액 하나하나가 콘크리트처럼 굳어져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 뭐죠?”
어딘가 나사 하나가 빠진 듯한.
그렇기에 묘한 따스함마저 느껴지는.
다시는.
두 번 다시는 들을 수 없을거라 생각했던.
어떤···.
그 어떤···.
“어? 서윤씨도 계셨네요?”
목소리.
땡그렁.
손에 쥔 검이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져 내린다.
짙은 정적은 마치 시간이 정지된 것만 같은 착각을 선사한다.
오직 바람만이 시간과 함께 흘러간다.
아무런.
정말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
꿈이라는 의심조차 들지 않는다.
차라리 꿈이어도 상관 없다.
그가 없는 세계.
그 세계는 분명 무언가 의미가 있다.
솔직히 말하면 수많은 연습을 했다.
그가 돌아오면 무슨 말을 해야할까.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하지만 그 속에서 서윤 스스로를 후회하고 말았다.
그것은 붙잡지 못했던 자신의 모습도 아닌.
그에 대해 많이 알지 못했던 멍청함도 아닌.
마지막 인사조차 건네지 못했던 자신이었다.
그 마지막 모습 마저 점점 기억에서 흐려지는 자신의 모습이었다.
그게 마지막인 줄 알았더라면.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더라면.
그때 안녕이라고 말해줄걸.
잘가라고 말해줄걸.
그렇게 후회 속에서 1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그를 기다리며.
“아··· 아아···.”
상냥함도, 미소도.
무언가를 이야기 하는 방법도.
어설프다.
하고 싶은 말이 정말 많았다.
매일 밤.
매일 밤 그 말을 되뇌이고 있었다.
탓하고 싶었고.
질책하고 싶었고.
원망과 눈초리도 주고 싶었다.
그런데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렇기에 서윤은 알 수 있었다.
자신은 딱히 하고 싶은 말이 없었다는 것을.
아니, 하고 싶은 말이 아니라.
그냥.
그냥···.
“서윤씨! 저 왔어요!”
듣고 싶었음을.
저 아무렇지도 않은 한 마디가.
저 얼빠진 목소리가.
“어···.”
너무나도 듣고 싶었다는 것을.
청명한 하늘.
일렁이던 게이트는 어느덧 온데간데 사라지고 없었다.
툭.
그 사이로 투명한 무언가가 떨어져 내린다.
울고 난 뒤 올려다 본 하늘.
역시.
오늘 하늘은 유난히도 맑게 개어있었다.
“제가 조금 늦었···?”
타닥.
서윤은 달렸다.
그냥··· 그냥···.
서윤은 달리고 또 달렸다.
그런 서윤의 머릿속으로 지난 날의 모습이 스쳐지나갔다.
최후의 전투, 그 마지막 순간.
흔적도 없이 사라지던 서준의 모습을.
서윤은 사라지는 서준을 붙잡고자 지금처럼 달려갔지만.
끝내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훑을 뿐이었다.
그렇기에 서윤은 아득바득 일어나 뜀박질을 멈추지 않았다.
이대로 멈추면.
이대로 주저앉아버리면.
그때 처럼 그가 영영 떠나버릴 것만 같았으니까.
이번에는 정말로 다시는 못 볼 것만 같았으니까.
서윤은 악착같이 뛰어갔다.
그렇게 과거, 서윤이 사라지는 서준을 향해 손을 뻗었을 때.
그리고 지금, 서윤이 당황하는 서준을 향해 손을 뻗었을 때.
아스라이 부서지는 햇빛 아래.
꽈악!
서윤은 단단한 무언가에 안길 수 있었다.
“저, 저기 서윤씨?”
서준은 순간 당황스러운 심정을 감출 수 없었다.
서윤이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서윤은 가슴에 파묻은 얼굴을 들어보였다.
길게 내려앉은 흑발.
그리고 흑요석을 닮은 눈동자에는 맑고 투명한 무언가가 가득 담겨있었다.
서준은 그런 서윤을 향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죄송해요. 제가 많이 늦···.”
하지만.
달싹.
보드라운 감촉의 무언가가 서준의 입술을 덮었다.
꼭 감은 서윤의 두 눈.
그리고 부릅, 떠진 서준의 두 눈.
그 사이로 서윤의 자그마한 숨소리가 살갗을 스치며 느껴진다.
세상이 정지한 것만 같은 시간이 흐르고.
서윤이 천천히 얼굴을 들어보였다.
“이제··· 이제 어디 가지 마요. 나 두고 어디 가지마요···.”
그 울먹거리는 표정은 마치 고양이가 운 것만 같아 서준은 저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누누히 말씀드렸잖아요.”
서준은 살며시 서윤의 얼굴을 매만졌다.
새하얀 피부 끝으로 느껴지는 감촉이 생생하다.
마주치는 시선.
“저 서윤씨 두고 어디 안 간다고요.”
그리고.
서준의 입술이 서윤의 얼굴 위로 살며시 포개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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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쉽게도.
서준이가 보내온 편지의 내용은 여기까지입니다.
어··· 사실 뒤에 내용이 더 있긴 했습니다만···.
앞에서 말씀드렸다시피 새까맣게 그슬린 탓에 내용을 알아볼 수가 없어요···.
몇 장 없긴 했습니다만 그게 전부 타버렸네요···.
아, 아니! 원래는 저기까지도 완전히 타버렸습니다!
저거 복원하겠다고 제가 어찌나 고생했는지!
그나마 제가 각색을 해서 저기까지 끌어낸 것입니다!
그렇다고 둘의 사정을 제 마음대로 전달해드릴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이 이후의 이야기는 저도 모릅니다.
하고 싶어도 내용이 없으니까요!
뭐, 아무튼.
이로써 외전까지 ‘초월자 학원의 수강생이 되었다.’ 의 모든 이야기가 마무리 되었습니다.
원래 외전은 다른 이야기로 구성되어있었지만 서준이가 갑자기 편지를 보내오는 바람에···.
그래서인지 기존에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상당히 길어졌습니다.
사실 외전이 아니라 2부라 불러도 할 말이 없네요.
이제.
정말로 끝입니다.
돌이켜보면 참··· 많은 일들이 있었네요.
서준이의 이야기를 전달해드리면서 저 나름대로의 우여곡절도 있었고.
삶은 포기하고 싶었던 때도.
때로는 그냥 도망쳐 버리고 싶었을 때도 수없이 있었네요.
석가모니 강사님을 다들 좋아해주셨는데.
저도··· 석가모니 강사님께 많이 배웠네요.
어떻게 보면 제가 저한테 해주고 싶었던 말이기도 한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어떻게 버티면서 여기까지 오고보니 참···.
아마 저 혼자였다면 올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저를 응원해주시는 수많은 분들.
부장님, 피디님. 가족 그리고 친구들의 힘이 없었더라면요.
그 중에서도 특히 지금 이 글을 보고 계시는 여러분들이요.
누군가 그랬었죠.
제가 볼펜 한 자루라도 만들어 봤겠습니까.
무슨 생산성있는 일을 할 줄 알겠습니까.
이렇게 이야기를 전달해주는 것만으로도 먹고살 수 있는 건 제 이야기를 사랑해주시는 팬 분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그래서일까요.
재미없다, 라는 비판보다는.
작가가 독자를 돈으로 생각한다.
이 말이 저는 더 아팠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분량에 대해 많이 신경을 썼습니다.
최대한 많은 재미를 여러분들께 드리고 싶었거든요.
아마 지금 이 말을 쓰는 것도 안 좋게 보시는 분들이 있을텐데···.
마지막이니까! 하, 한 번만 봐주세요!
그래도 앞에 분량이 충분히 차고 넘칩니다!
거의 2화분량이라고요!
······ 뭐, 아무튼.
서준이의 이야기와 함께 해주셔서 진심으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더 이상 서준이가 속한 세계의 이야기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이제 더 이상 제게 보이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아마···. 서준이가 다른 이야기에 등장할 가능성은 있을 것 같습니다.
창조자께서 만든 세상에서의 이야기는 여럿 존재하니까요.
창조자께서는 아직 방관자의 입장을 취하고 있으셔서요.
아직까지는요.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저도 잘 모르겠다니까요.
아무튼 지금도 제게는 여럿 세계에서 다양한 이야기가 보입니다.
하지만 지금의 서준은 이제 창조자께서도 어찌할 수 없죠.
아마··· 그곳에서 어렴풋이 등장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은데요.
그러니까 대충 조만간 새로운 세계의 이야기를 들고 다시 찾아뵙겠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저는 어디까지나 이야기만을 전달해드리는 이야기 노예··· 아니, ‘전달자(傳達者)’이니까요!
하지만 서준이의 이야기는 이제 정말로 끝입니다.
절대 오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끝이었는데 이렇게 찾아왔네요.
하지만 누누히 말씀드렸듯이.
그건 마지막이 아닌 새로운 이야기의 시작점이 되겠죠.
그러니 아쉽지만.
편지에 적힌 내용은,
우리 서준이의 이야기는,
여기에서 마무리를 지어야 할 것 같습니다.
동시에 완결 후기 또한 이것으로 끝내도록 하겠습니다.
제게 매력적인 이야기를 보여준 서준이.
그리고 그런 서준의 이야기를 좋아해주신 독자님들께 다시 한 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럼 저는 조금만 쉬고 새로운 이야기로 다시 찾아 뵙겠습니다!
모두 행복하세요!
그때까지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