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nscension Academy RAW novel - Chapter 36
36화 – 마지막 승부(1)
서준과 만철은 계속해서 사체 해체 작업을 이어나갔다.
평소라면 진즉에 끝났을 작업이었지만 소연이 레이드한 몬스터까지 작업하느라 조금 더뎌졌다.
만철은 소연이 레이드한 고블린 사체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툭, 말을 내뱉었다.
“얼굴에 철판을 깔았나. 별 반응이 없네.”
“넷!럴 거라 예상은 했잖아요.”
스쿼트와 함께 대답하는 서준.
“넷럴 거라는 염병.”
만철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다시 물었다.
“주최 측에서는 뭐라더냐.”
“뭐, 뻔하잖아요.”
서준은 만철 앞으로 고블린 사체들을 내려놓았다.
어제, 서윤은 곧바로 주최 측에 항의를 했을 때 답변을 그 날 바로 들을 수 있었다.
하루 정도 걸릴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금방 돌아온 답변이었는데, 아마 서윤이 검성의 손녀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주최 측의 대답은 시원치 않았다.
주최 측은 단지 주위의 던전들을 예약했다는 사실만으로 해당 참가자가 사주한 것인지 단정지을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뻔하디 뻔한 대답. 어차피 서준도 크게 기대하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따지고 들자면 서준의 억측이라 몰아가도 할 말이 없었다.
물론 바보가 아닌 이상 억측이 아님을 누구라도 알 수 있었지만, 정확한 증거가 없는 건 부정할 수 없었다.
애초에 부정행위를 한게 아니라 규칙 내에서 허점을 찾은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제스처는 보였을 거 아니야.”
“주의는 주겠다고 하던데요.”
“씨펄. 그 놈들도 다 돈 쳐먹은 거 아니야?”
물론 그럴 가능성도 있었지만 지금 당장 확인할 방법은 없었다.
만철은 못마땅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작업을 계속 이어나갔다.
그렇게 빠르게 고블린 사체를 처리하고 다시금 소연이 예약한 던전 근처에 예약을 한 서준.
그리고 이번엔 어느 정도 거리가 있었기에 방금처럼 소연과 마주하는 않았다.
해당 던전을 빠르게 처리하고 다음 던전을 기다리던 그때.
“음? 이 녀석들 포기했나본데?”
돌연 만철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중얼거렸다.
서준은 그런 만철에게 물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여기 봐라.”
만철은 스마트폰 화면을 돌려 서준에게 보여주었다.
그러자 보이는 예약 가능한 던전 목록들. 서준은 유심히 살펴볼 필요도 없이 만철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주위 던전들을 예약 안했네요?”
서준이 예약한 던전 근처, 예약 가능한 던전들이 꽤 많았다.
물론 듬성듬성 예약되어 있는 던전들이 있긴 했지만 아예 없었던 저번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우리가 자꾸 따라붙으니까 저들의 손해가 더 심하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안된다 싶어 포기한 것이겠지.”
만철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하지만 서준은 마냥 그렇게 생각할 수만은 없었다.
“으음··· 그런데 너무 빨리 포기하는 것 같지 않아요?”
“그렇긴 하다만 우승을 포기하고 2등이라도 노리는 것일 수도 있지 않겠냐.”
“그럴 수는 있지만…”
그럼에도 서준은 어딘가 꺼림칙한 기분을 떨칠 수가 없었다.
만철의 말이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애초에 그런 정상적인 생각이 있었으면 이런 수작도 부리지 않았을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서준의 모습에 만철은 무슨 대수냐는 듯 말했다.
“이러나 저러나 우리한텐 잘된 일 아니냐.”
“그건 그렇긴 하죠.”
서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떠오르는 의구심을 한 쪽 구석으로 밀어넣었다.
하지만 서준은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의구심을 다시 한 번 마주해야했다.
만철과 함께 다음 던전으로 도착한 서준.
곧바로 균열 안으로 몸을 밀어넣으려던 그때.
우우웅.
갑자기 균열이 일렁이면서 던전 안에서 처음 보는 남자가 걸어나왔다.
서준은 순간 당황하며 물었다.
“…누구시죠?”
“잉? 그 쪽은 누구요?”
그러자 상대 또한 당황한 기색이 역력해보였다.
보아하니 던전 소탕 콘테스트의 또 다른 참가자인 모양.
서준은 남자에게 말했다.
“여긴 제가 예약한 던전입니다만, 왜 여기서 나오시는겁니까?”
“뭐요? 이 던전을 그 쪽이 예약했다고?”
“네.”
“그럴리가? 여긴 내가 예약한 던전인데?”
서준은 순간 남자의 말이 무슨 말인가 싶었다.
더하여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서준은 이게 어찌된 일인지 해당 던전 감독관에게 확인했다.
그리고 확인한 사실은 서준이 예약한 던전이 맞다는 것이었다.
“아, 이런이런! 내가 예약한 것이 아니었어? 난 또 내가 예약한 던전인줄 알았지.”
그러자 멋쩍게 뒷머리를 긁적이는 남자.
이어진 남자의 증언은 이러했다.
이 던전이 자기가 예약한 던전인 줄 알았다.
해서 레이드를 하려 왔고, 도착했는데 해당 감독관이 보이지 않았다.
어차피 예약한 던전이기도 하니, 기다리기도 뭐해 바로 레이드를 시작했다.
“무슨 소리십니까? 전 여기서 한 발짝도 벗어나질 않았는데.”
“그러오? 내가 왔을 땐 없었는데··· 그럼 내가 잘못봤나보오.”
“그게 무슨···”
뻔뻔한 남자의 말에 감독관은 얼빠진 표정으로 잠시 멍하니 남자를 바라봤다.
하지만 이미 일은 벌어진 일.
그러다 서준을 향해 고개 숙여 사죄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확실히 확인했어야 했는데.”
서준은 그런 감독관에게 뭐라 따지고 들 수가 없었다.
던전 감독관은 해당 지역의 일반 공무원들이었다.
한 마디로 일반인들.
반면에 콘테스트 참가자는 헌터 아카데미 수강생들이었고, 아무리 수강생들에 불과할지라도 일반인들에 비하면 초인들이다.
마음 먹고 행동하면 감독관들은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이건 명백한 규칙 위반입니다. 실격 처리하겠습니다.”
그나마 할 수 있는 것이 이러한 사후대처뿐.
“이거 어쩔 수 없구만. 전적으로 내 실수고 잘못이니 겸허히 받아들이도록 하지.”
남자는 실격 처리된 사실이 별 상관 없다는 투로 답했다.
“형씨, 미안하게 됐수다.”
그리고는 서준에게 사과를 하는 둥 마는 중하며 떠나갔다.
서준은 그런 남자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감독관에게 말했다.
“이러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해당 던전은 무효 처리가 됩니다.”
“무효요? 제가 먼저 예약한 던전이니 던전 레이드 개수는 저한테 카운트 되야 하는거 아닙니까?”
“그게··· 죄송합니다. 규정상 그럴 수가 없어서요.”
이어진 감독관의 설명은 부정행위의 여지가 너무도 다분하다는 것이었다.
만일 그게 가능하다면 예약만 해놓고 다른 누군가를 사주해 던전을 클리어하면 그만이었다.
그럼에도 개수는 카운트 되니 자리에 가만히 앉아서 예약만 하면 경우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이 콘테스트 취지 자체가 처리되지 않은 던전을 레이드하는 것에 있다지만, 대회는 대회였기에 공정성은 있어야했다.
“정말 죄송합니다.”
그렇기에 서준은 연신 죄송하다 사과하는 감독관을 마냥 다그칠 수만은 없었다.
그리고 억울하긴 했지만 일이 벌어진거 가만히 앉아 탓할 수만은 없는 노릇.
나중에 따질 땐 따지더라도 지금은 움직여야할 때였다.
하지만.
“어이쿠. 이거 내가 큰 실수를 했구만 그래.”
다음 던전에서도.
“잉? 내가 예약한 던전이 아니었어?”
그 다음 던전에서도.
“난 몰랐지. 이거 참 미안하오.”
또 그 다음 던전에서도.
서준은 방금과 똑같은 상황을 연속적으로 겪었다.
이쯤되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를 수가 없었다.
그렇게 마무리된 콘테스트 5일차.
[1위:김서준 – 89개(+5)] [2위:이소연 – 87개(+26)] [3위 박정주 – 41개(+11)] [4위:이하연 – 39개(+8)]서준은 고작 5개의 던전을 레이드 하는 것에 그치고 말았다.
콰앙!
“이런 씨펄! 다들 미친거 아니야?!”
이러한 사실에 참다 못한 만철은 노성을 내질렀다.
“염병할! 어떻게 가는 곳 마다 그런 식이냐고! 이거 감독관들도 다 돈 먹은거 아니야?”
“이건··· 이건 아니에요. 제가 할아버지의 이름을 빌려서라도 제대로 항의할게요.”
그리고 이번엔 서윤도 단단히 화가 난 모양이었다.
평소 그렇게나 싫어하던 검성의 이름을 빌리는 행동을 서슴없이 말할 정도면 이미 말 다한 시점.
그리고 검성의 이름까지 나온다면 주최 측은 어떤 식으로든 확실한 제스처를 취해야 했다.
아니나 다를까 들려온 답변은 규정 개정에 관한 내용이었다.
‘다른 참가자가 예약한 던전을 무단으로 레이드 하는 경우, 해당 던전 감독관의 판단에 따라 레이드 카운트가 이전될 수 있음.’
불과 하루도 걸리지 않아 돌아온 답변.
서윤이 어떤 항의를 했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규정까지 급히 개정하는 걸 보면 대충 짐작은 할 수 있었다.
이로써 어제와 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겠지만 문제는 이미 하루를 날려먹었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저것 말고도 악의적으로 주변 던전을 모두 예약하는 것도 문제였다.
하지만 그건 규정을 어기는 것이 아니었기에 별 다른 대응책을 마련할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거기에 동원되었던 참가자들이 이번에 대거 실격되었기에 또 써먹기에는 불가능했다.
그래도 이제 서준을 방해할 수단은 없는 셈.
그렇게 시작된 던전 소탕 콘테스트 6일차.
그런데.
“이봐! 딱 가로막고 뭐하는 거야! 비켜!”
“아 죄송합니다. 갑자기 차가 퍼지는 바람에···”
더 이상의 방해는 없을 거라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결국 방법을 찾아 수작이 들어왔다.
그들은 정말 사소하지만 시간은 크게 잡아먹는 것들로 서준과 만철의 앞을 가로막았다.
“이거 어쩌죠. 제가 깜빡 졸아가지고··· 다치신데는 없으신가요? 일단 병원부터 가시죠.”
일부러 가벼운 접촉사고를 내는 한편.
“앗! 죄송해요. 휴대폰 보느라 신호를 못봤네요.”
신호가 들어왔는데도 일부러 가지는 않는 둥.
서준이 던전으로 향하는 길을 어떻게서든지 붙잡고 늘어졌다.
그리고 그렇게 동원된 이들은 콘테스트 참가자가 아닌 평범한 사람들.
이번엔 누구한테 따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 결과.
[1위:이소연 – 111개(+24)] [2위:김서준 – 110개(+21)]결국 6일차 끝에는 순위가 역전을 당하고 말았다.
이 사실을 접한 서윤은 당연히 강력하게 주최 측에 항의를 했다.
검성의 이름을 들먹이며 항의하는 서윤에 주최 측은 적극적으로 조사에 나섰다.
하지만.
“그들이 이소연과의 관계를 전면 부인하고 있어요.”
그들은 하나같이 말하길 그냥 우연이었다.
피해를 입혀서 죄송하지만 상황이 그랬던 걸 어쩌란 말인가.
이런 식으로 배째라는 듯이 말하니 그들로서도 딱히 무슨 조치를 취할 수가 없었다.
애초에 참가자들도 아닌 점도 그러했고.
“먹은 돈이 있을거 아니야. 자금 출처를 조사할 수는 없는거야?”
“그래서 던전 관리팀 팀장이 직접 조사를 해보겠다고는 하는데···”
“남은 시간이 없다는 거겠지. 염병.”
만철의 말에 서윤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시간도 그렇고 제가 알아보니까 이소연이라는 사람. 소속 아카데미 원장이 이석만이라더고요.”
“이석만?”
만철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서윤은 바로 말을 이었다.
“지금은 은퇴한 A급 프로 헌터인데. 할아버지가 인정한 몇 안되는 사람 중 한 명이에요.”
“뭐? 검성께서 인정한 프로 헌터라고? 실력이 그렇게 대단해?”
서윤이 고개를 살짝 저으며 답했다.
“아뇨. 실력은 쥐뿔도 없는데 입만 번지르르하다고요.”
“입만 번지르르하다는건···?”
“여기저기 인맥들이 많다는 거죠.”
“어쩐지, 이런 수작을 부릴 때부터 알아봤다 씨펄.”
만철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소리쳤다.
“그래서 아마··· 조사하더라도 밝히긴 힘들거예요. 밝혀진다 하더라도 꽤 오랜 시간이 흐른 뒤겠죠. 할아버지가 직접 나선다면 금방 해결되긴 하겠는데···”
서윤은 정 안되면 그럴 생각인 것 같았지만 서준은 썩 좋은 입장은 아니었다.
물론 서윤의 말처럼 검성이 나선다면 금방 해결될 일이었지만, 그렇게 되면 애들 싸움에 공룡이 끼어드는 것과 다름 없었다.
무엇보다 정말로 검성이 나서버리면 검성의 협박이라는 잡음도 생각해야했다.
이름을 빌리는 것과 직접 나서는 건 그만큼 큰 차이가 있었다.
“검성님이 직접 나서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하긴 해요. 무엇보다 할아버지랑 지금 연락도 되지 않고요.”
“그럼 어떡할거냐. 그렇다고 이대로 우승을 놓칠 수는 없잖아.”
만철의 말에 서준은 스마트폰을 들어 순위를 다시 한 번 확인했다.
[1위:이소연 – 111개(+24)] [2위:김서준 – 110개(+21)]불과 1개밖에 나지 않는 차이.
따라잡지 못할 격차는 절대 아니었다.
따라잡는 정도가 아니라 앞으로 더 방해가 없다면 서준은 압도적인 격차를 벌릴 수도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당연히 저쪽에서 가만히 두고 보지는 않을 거라는 것.
서준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죄송해요. 서준씨.”
그런데 문득, 들려오는 서윤의 사과.
“네? 죄송하다니요? 서윤씨가 왜 죄송합니까.”
서준이 어리둥절해하며 묻자 서윤이 살며시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제가… 별 도움이 되지 못하는 거 같아서요.”
“계속 도와주셔놓고 이제 와 무슨 소리십니까. 서윤씨가 적극적으로 나서주셔서 이 정도지. 안 그랬으면 더 심해졌을 텐데요.”
“그건 서준이 말이 맞다. 서윤이 넌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어. 나머지는 우리가 해결할 일이다.”
이어 만철이 손가락으로 서준을 가리키며 말했다.
“정확히는 요 녀석이 말이지.”
“하지만···”
그럼에도 미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는 서윤.
“거 참.”
만철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서준에게 말했다.
“이 녀석아. 서윤이 걱정하는 거 안 보이냐? 그러니 그만 뜸들이고 빨리 말해. 생각해둔 방법 있지?”
“역시, 아저씨는 못 속이겠네요.”
“너랑 지낸지가 거의 10년이다. 네 놈 눈동자 굴러가는 것만 봐도 무슨 생각하는지 다 보여.”
“에이, 그 정도는 아니지 않아요?”
“염병. 그냥 흘러들어.”
서윤은 둘의 대화에 놀란 눈으로 서준을 바라봤다.
마치 고양이가 우는 모습과도 같은 서윤의 표정에 서준은 괜시리 웃음이 새어나왔다.
서준은 서윤에게 생각해두었던 방법을 설명해 주었다.
그렇게 던전 소탕 콘테스트 7일차.
그 마지막 날의 아침이 밝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