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nscension Academy RAW novel - Chapter 82
82화 – 초월자 이벤트(3)
서준은 아무렇지 않게 무간지옥의 절규를 들었다.
팔열지옥(八熱地獄) 중 가장 깊고 어두운 8계의 무간지옥(無間地獄).
이곳은 살아생전 구제받을 수 없는 죄를 저지른 죄인들이 영겁의 시간동안 고통받는 지옥이었다.
그곳에서 들려오는 절규는 다른 7계에 있는 지옥의 죄인들조차 자신들의 고통을 잊고 두려움에 떤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를 본 떠 나온 말이 바로 ‘아비규환’.
아비규환이라는 말이 여기 무간지옥에서 시작된 말이었다.
-아아아아아악!!!
-네가···! 네가 우리를 이렇게 만들었어!!
-이 모든 것은 네 탓이야!! 끄아아아악!!
“죄송한데, 오늘 처음 뵙습니다만?”
하지만 서준은 별 다른 영향을 받지 않았다.
그렇게 4단계까지 무난하게 통과한 서준.
상황이 이쯤 되자 멘토는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감조차 잡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멘토의 심정과는 별개로 5단계 멘탈 시험이 시작되었다.
-파우스트도 견디지 못한 쾌락. 7가지 죄악은 곧 7가지의 욕망이 투영된 천국일지니.
끈적한 목소리와 함께 서준의 정신으로 온갖 종류의 감정들이 휘몰아쳤다.
칠죄종(七罪宗).
‘색욕, 탐욕, 탐식, 나태, 분노, 질투, 자만.’의 지옥이 서준의 눈앞으로 펼쳐졌다.
색욕(色慾).
끝없이 펼쳐진 모래 사장 위로 수많은 남녀들이 얽히고 섥혀있었다.
사방 곳곳으로 교성이 터져나오는 이 색욕의 지옥은, 그 어떤 욕망도 거부되지 않는 천국이었다.
탐욕(貪慾).
번쩍번쩍한 황금들이 산처럼 쌓여있었다. 원하는 물건이 모두 있으며 전부 가질 수 있는 세계.
모든 것들을 가질 수 있는 이 탐욕의 지옥은, 결핍이 존재하지 않는 천국이었다.
탐식(貪食).
최고 중의 최고인 음식들로만 가득찬 테이블의 행진이 서준의 눈앞에 펼쳐졌다.
아름다울 정도로 알맞게 구워진 고기들과 버터를 듬뿍 얹은 바닷가재.
아무리 먹어도 음식이 줄어들지 않는 이 탐식의 지옥은, 오직 풍요만이 가득한 천국이었다.
그리고 천사들조차 가장 행복한 미소를 짓는 나태(懶怠)의 지옥.
짜증나는 직장 상사, 폭력을 일삼았던 부모.
자신을 괴롭혔던 이들을 마음껏 고문하며 지독한 분노를 표출할 수 있는 분노(憤怒)의 지옥.
자신은 얻을 수 없었던 것들에 대한 시기를 충족시켜주는 질투(嫉妬)의 지옥.
그리고 마지막 자만(自慢)의 지옥.
그 세계는…
“어··· 이건 좀 많이 위험한데···?”
결국 서준은 마지막 자만의 지옥이 선사하는 쾌락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져버렸다.
서준은 마음을 다 잡으며 연이어 재시도를 했다.
하지만 끝끝내 자만의 지옥이 선사하는 쾌락만은 견뎌내지 못했다.
.
.
그렇게 다섯 번째 과목 멘탈 시험이 종료되었다.
그리고 이때만을 기다렸다는 듯, 멘토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바라본 멘토의 표정은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본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서준은 괜시리 새어나오는 웃음과 함께 답했다.
“그냥 견딜만 하던데요? 아마, 부동심(不動心)이 많이 올라서 그런 것 같습니다.”
서준은 스마트폰을 살짝 확인하고는 답했다.
“지금… 31.7%입니다.”
“31.7%요.”
멘토가 잠시 말문이 막힌 듯 뜸을 들였다.
그렇게 조금의 시간이 지나 눈을 동그랗게 뜨며 소리쳤다.
“네.”
서준이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멘토가 거짓말하지 말라는 듯 재차 소리쳤다.
멘토가 서준의 강의 진행률을 확인한 것은 첫 프리패스가 종료된 시점이었다.
그리고 그때 석가모니의 강의 진행률은 17.5%가 아닌 15.5%였다.
이어 멘토가 서준의 스마트폰을 거의 빼았아 가다시피했다.
그리고 화면 여기저기를 몇 번 꾹꾹, 누르자 서준의 강의 진행률이 떠올랐다.
{수료한 강의 – 역발산[A], 환골탈태[A]}
그간 서준이 수련을 거듭하면서 많이 오른 강의 진행률들이었다.
그리고 관리 항목이 따로 있는 모양인지, 서준이 수료한 강의들도 화면에 떠올라 있었다.
멘토는 그 정보들을 확인하고는 경악하며 소리쳤다.
“아, 그건 운이 조금 좋았습니다.”
멘토의 표정은 이제 놀람을 넘어 어딘가 묘하게 일그러져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사람이 아닌 괴물을 바라보는 것 같았다.
“어··· 그 표정은 조금 상처가 되는데요.”
버럭, 소리치는 멘토의 모습에 서준은 멋쩍게 뒷머리를 긁적였다.
이어 멘토가 작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아, 그것도 운이 좋았습니다.”
멘토는 멍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렇게 멘토는 처음으로 어이가 승천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멘토의 표정과 함께.
띠링.
“예쓰!!!”
서준은 멘탈 과목에서 목표했던 점수를 훌쩍 넘길 수 있었다.
#
그 이후로 서준은 나머지 2과목의 시험도 무사히 치를 수 있었고 그 결과는 다음과 같았다.
『[전투력] – 8.8/100 (과락).
[기초 체력] – 5.9/100 (과락). [임기응변] – 4.2/100 (과락). [마나] – 1.6/100 (과락). [멘탈] – 22.8/100 (과락). [주무기 활용 – 창] – 5.8/100(과락). [주무기 숙련 – 창] – 3.1/100(과락).』지난 모의고사 총합 점수인 29점에서 23.2점을 올릴 수 있었다.
그리고 그건 목표했던 70%를 넘어 80%에 해당하는 상승률이었다.
그 말은 즉.
제천대성의 강의를 80% 할인 받을 수 있다는 뜻이었다.
‘부동심 아니었으면 진짜 큰일날 뻔했네···’
서준은 안도의 한숨을 깊이 내쉬었다.
그도 그럴 것이 멘탈 과목에서 얻은 점수가 무려 12점이었다.
만일 멘탈 과목에서 어줍잖게 4점을 올렸다면 15.2점으로 목표치에 한참이나 미달했을 점수였다.
서준은 새삼 저번 레이드 배틀에 참가하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멘토는 그런 서준의 점수를 보며 뭐라 중얼거리고 있었다.
정확히는 멘탈 과목 이후로 멘탈이 나간 사람처럼 계속 저 모양이었다.
“저기 멘토님.”
갑작스러운 서준의 물음에 멘토가 깜짝 놀라며 대답했다.
그 모습이 꽤나 우스꽝스러워 서준은 괜시리 새어나오는 웃음을 흘리며 멘토에게 물었다.
“갑자기 궁금해서 그러는데 저 과락 말입니다. 몇 점 이상이어야 과락이 아닌 거죠?”
한 마디로 특정 과목만 잘해서도 안된다는 뜻이었다.
서준은 멘토에게 다시 물었다.
“그럼 합격은 몇 점을 받아야 하는 거죠?”
“90점이면··· 평균 90점이요?”
“630점···”
멘토의 말에 서준은 새삼 화면에 떠오른 52.2점을 바라봤다.
다름 아닌 7과목 합친 서준의 점수.
630점은 커녕 90점조차 넘지 못하고 있었다.
“……에라이.”
서준은 점수 화면을 꺼버렸다.
그리고는 곧바로 초월자 학원에 접속하여 강사 목록에서 제천대성을 검색했다.
점수야 어찌되었든.
드디어 바라마지 않던 제천대성의 강의를 들을 수 있었다.
“네. 마나 강의는 아직 뭘 들을지 못 정해서요.”
멘토는 별 상관 없다는 듯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멘토의 모습을 뒤로한 채, 서준은 다시 스마트폰을 화면했다.
『[봉술과 창술의 기본. (강사: 제천대성)] [천상의 별을 떨구다. 천월유성봉(天月流星棒). (강사: 제천대성)]』
.
.
그러자 화면엔 제천대성 강의 목록들이 떠올라 있었다.
그리고 그 목록들을 보고 있자니 문득 궁금증이 일었다.
‘그러고보니 천월유성봉 강의는 얼마지?’
다름 아닌 서준이 최종 목표로 하고 있는 천월유성봉.
가장 마지막 단계인 고급 강의인 만큼 인과가 미친듯이 날뛸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80%할인을 받으면 어찌 가능하지도 않을까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확인만 해볼까···’
서준은 란나찰이 아닌 천월유성봉의 강의를 클릭했다.
그런데.
“아···”
에러 메세지가 뜨며 열람이 되지 않았다.
가격 확인은 물론이고 오리엔테이션 강의조차 들을 수 없었다.
그리고 지금 생각해보니 지난 란나찰 오리엔테이션 강의에서 제천대성이 저런 말을 했던 것 같기도 했었다.
“언젠가는 천월유성봉도 배울 수 있겠지…”
서준은 아쉬운 마음을 삼키며 란나찰 강의를 클릭했다.
꾹.
.
270억이었던 수강비가 80% 할인이 적용되어 54억으로 줄어있었다.
무려 216억의 인과가 할인된 셈이었다.
“인과 할인 아니었으면 꿈도 못꾸었겟네.”
서준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수강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그렇게 원터치와 함께 54억이 증발해버렸다.
“그, 그래도 270억이 아닌게 어디야···”
서준은 평소보다 약한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이왕 이렇게 된 것, 곧바로 첫 강의를 수강했다.
어차피 들으려고 했던 거 시간 끌 필요가 없었다.
꾹.
.
.
강의 재생과 함께 보인 화면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뒤 쪽의 배경인 거대한 산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의 시간 동안 화면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응? 강의가 멈췄나?”
서준은 다시 화면을 터치해 강의를 확인했다.
그런데 강의는 정상적으로 재생되고 있었다.
“뭐지?”
설마 오류가 났나 싶어 멘토에게 물어보려던 바로 그때.
[미안미안!!!]어디선가 장난기 가득한 음성이 들려왔다.
그건 마치 저 멀리서 소리치는 듯한 음색이었다.
뭔가 싶어 계속 화면을 바라보자 얼마 지나지 않아 저 멀리, 하늘 위로 하나의 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어마어마한 속도로 가까워지며 시간이 갈수록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조금의 시간이 지나 화면에 잡힌 것은 작은 구름위에 올라탄 원숭이였다.
그 원숭이는 거대한 봉을 하나 들고 있었는데, 서준은 그가 제천대성임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아무래도 저 구름은 근두운인 것 같았다.
제천대성, 그러니까 손오공이 멋쩍게 뒷머리를 긁적이며 말을 이었다.
[아 미안미안! 내가 너무 늦었지? 갑자기 삼장법사가 부르는 바람에 거길 좀 다녀오느라…] [하여간, 그 땡중 놈은 혼자서 아무것도 못해요. 그냥 암 덩어리가 따로 없다니까? 석가모니만 아니었으면 콱! 그냥…]그리고는 손오공이 키득키득 웃음을 지어보였다.
[아무튼 늦어서 미안미안! 그래도 강의는 확실하게 할테니 걱정하지 말라고!]손오공은 다시 화면의 정면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그런 의미로! 이 강의에서 내가 가르칠 내용은 봉술과 창술의 기본, 란나찰이야.] [지난 오리엔테이션에서 내가 란나찰이 무엇인지 설명 했었지? 창과 봉이 갖는 3가지의 형(形)이라고. 따라서 모든 봉술과 창술은 여기에서부터 출발하는데…]그 순간 손오공이 말을 흐렸다.
그리고는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는 듯 하더니 다시 천천히 입을 열었다.
[보니까 까먹은 수강생들이 있는 것 같네.]뜨끔.
그런 손오공의 말에 서준은 괜히 가슴이 찔리는 기분이었다.
손오공의 말처럼 지난 오리엔테이션 강의 내용이 기억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손오공은 마치 서준의 마음을 꿰뚫기라도 하듯 말했다.
[하는 수 없지! 내가 늦은 잘못도 있고 하니, 다시 한 번 보여줄게. 그러니 이번엔 눈 크게 뜨고 잘 봐!]이어 손오공은 여의봉을 말아쥐며 몸을 돌렸다.
그러자 뒤쪽으로 아까부터 보이던 거대한 산이 화면에 잡혔다.
[먼저 란(欄)이야. 외전(外傳)으로서 바깥으로 튕겨내는 동작이지.]손오공은 천천히 여의봉을 안 쪽에서 바깥으로 휘둘렀다.
느릿한 동작.
하지만 그 결과는 그리 단순하지 않았다.
콰아아아아아아앙!!
엄청난 굉음과 함께 배경으로 존재했던 거대한 산이 일시에 터져나갔다.
“와··· 이건 다시 봐도 엄청나네.”
[두번째는 나(拿). 튕겨낸 바깥의 봉을 안으로 휘감는 듯이 끌어 당기는 동작.]손오공의 말과 함께 휘둘러진 여의봉이 다시금 안 쪽으로 가르며 돌아왔다.
동시에 천지가 뒤집히며 흩어졌던 대지의 파편들이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쿠구구구구궁···!
지진이 일듯 화면이 계속 떨려왔다.
[마지막으로 찰(扎). 하나의 점을 찍듯이 꿰뚫는다.]파아아앗!
손오공의 여의봉이 말 그대로 하나의 점을 찍듯 쏘아져 나갔다.
그러자 풍경들이 폭풍처럼 휘몰아치며 화면이 깜빡였다.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잡힌 화면에는 배경으로 존재했던 거대한 산이 사라져있었다.
마치 처음부터 그곳에 산은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뻥 뚫려 있었다.
손오공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손을 툭툭, 털며 말했다.
[이것이 봉과 창의 기본 중 기본, 란(欄) 나(拿) 찰(扎)이야. 나중에 내가 가르칠 천월유성봉을 배우려면 기본적으로 습득해야하는 것이지.] [그리고 내 천월유성봉 뿐만이 아니라 다른 창술, 봉술을 배우려면 이 세 가지가 반드시 필요해.]이어 손오공은 다시 키득키득 웃으며 말했다.
[아무래도 첫 강의이기도 하고, 처음부터 모든 것을 하기엔 어려우니까 하나하나 천천히 해보자고.] [그런 의미로 방금 내가 보여준 것을 떠올리면서 다음 강의까지 란(欄)을 연습해 와!].
.
띠링.
[일일 개인 과제가 도착했습니다.] [인과율을 계산하여 현재 수강생의 수준에 적합한 과제가 부여됩니다.]-제천대성식 란(欄)을 1,000번 수행. (0/1,000).
[해당 과제는 강의 진행도에 따라 계속해서 변화합니다.]“나보고 저걸 어떻게 따라하라고···”
서준은 저도 모르게 한숨이 새어나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서준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간 초월자 학원을 경험해 본바, 불가능한 일을 과제로 주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일일 과제를 수행하려던 그때, 돌연 멘토가 말을 걸어왔다.
“뭐, 딱히 달라지는 게 있나요?”
“…?”
서준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멘토의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멘토는 의미심장한 미소만 지어보일 뿐이었다.
서준은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롱기누스의 창을 쥐었다.
습득한 것도 아니고 그저 배우는 과정인데 크게 달라질 것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이렇게 했었던가?”
외전(外傳)으로서 바깥으로 튕겨내는 동작인, 란(欄).
서준은 방금 제천대성이 보인 것을 떠올리며 롱기누스의 창을 휘둘렀다.
그런데.
후우우우우웅!
롱기누스의 창에 평소와는 다른 엄청난 힘이 뿜어져나왔다.
그리고 그것은 자연스럽게 깃드는 역발산의 힘과 더해져 더욱 증폭되었다.
“어…라?”
그 갑작스러운 힘에 서준은 당황스러운 기색을 감출 수가 없었다.
하지만 롱기누스의 창은 엄청난 풍압을 일으키며 휘둘러졌고.
콰아아아아앙!!
그 풍압이 지나간 자리는 마치 작은 폭탄이 터진 것처럼 아작이 나있었다.
“……뭔데?”
서준은 눈앞의 광경을 직접 보고 있으면서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오히려 그렇기에.
서준은 멘토의 말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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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위치한 한 고풍스러운 식당.
궁연(宮宴)이라는 이름의 이 식당은 서울 내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모르는 이가 없는 유명한 식당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철저한 예약제로서 운영되는 궁연은 손님을 아무나 받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간단한 예로 사회적인 성공의 지표가 궁연에 예약을 할 수 있냐 없냐로 판가름 되었다.
지금 이곳은 그 궁연에서도 다른 방들과 분리된 은밀한 공간이었다.
VVIP실로 분류되는 이 공간에는 두 명의 남자와 한 명의 여자가 앉아 있었다.
그들은 아무말 없이 자리에 앉아있었다.
하지만 말만 없다 뿐, 방 안에는 묵직한 기운이 눌러앉아있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한 사내가 혀를 차며 말을 내뱉었다.
“쯧. 쓸데없는 기싸움은 이쯤 하도록 하지.”
그러자 그 사내의 맞은 편에 앉아있던 남자가 털털하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 기싸움이라니요. 저희끼리 무슨 그리 섭한 말씀을. 가온의 대표님은 어째 변한 것이 없습니다.”
이어 가온 아카데미의 대표, 이진성이 언짢은 표정으로 답했다.
“그 실없는 소리를 하는 걸 보니. 소진현 너도 여전하군.”
“그래서 갑자기 부른 우리를 이렇게 부르신 이유가 뭐죠? 헌터밀의 대표께서 아무런 이유없이 보자고 하시진 않았을텐데요.”
이진성의 말과 함께 가만히 듣고있던 여성이 입을 열었다.
그러자 헌터밀 아카데미의 대표, 소진현이 섭섭한 표정으로 말했다.
“에일의 대표님까지 그런 말씀을 하시다니··· 섭합니다.”
다름 아닌 에일 아카데미의 대표, 차혜인.
지금 이 자리에는 한국의 3대 아카데미 헌터밀, 에일, 가온의 대표가 모여있었다.
모두가 S급 헌터들인 이들은 실력으로나 지위로 보나, 이곳 궁연의 VVIP실에 앉아 있을 충분한 자격이 있었다.
“다들 오랜만에 뵙습니다. 어떻게 잘들 지내셨습니까.”
“형식적인 안부는 필요 없으니 빨리 용건을 말해라.”
소진현의 말에 이진성이 쏘아붙이듯 말했다.
소진현은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곧바로 말을 이었다.
“이번 년도 프로 헌터 시험까지 얼마 안남지 않았습니까.”
“그게 뭐 어쨌다는···”
“그 전에 기세를 한 번 꺾을 필요가 있지 않겠습니까.”
이어진 소진현의 말에 이진성이 입을 꾹 다물었다.
소진현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었기 때문이었다.
차혜인 또한 마찬가지인 듯 아무런 말이 없었다.
소진현은 그런 둘을 바라보며 계속 말을 이었다.
“저희 3대 아카데미의 위상이 말이 아닙니다. 1강 3중. 요즘 커뮤니티에서 떠도는 말이라고 하더군요.”
소진현은 그 말과 함께 앞에 놓인 음식을 한 점 집어 들었다.
그런 소진현의 모습에 이진성이 말했다.
“그래서 뭐 어쩌자는 거지? 설마 김서준에게 수작이라도 부리자는 뜻인가?”
“수작이라니요. 어디까지나 기세만 꺾자는 뜻입니다.”
이진성은 인상을 팍, 찡그리며 소리쳤다.
“미쳤군. 그 놈 뒤에는 검성이 있다. 자칫 잘못 건드렸다간 네 놈 목은 커녕, 헌터밀 자체가 사라질 수 있다는 걸 모르나? 난 못 들은 것으로 하지.”
그리고는 더 이상 들을 필요 없다는 듯 이진성이 자리에서 일어나려했다.
그런 이진성을 붙잡듯 소진현이 말했다.
“설마요. 요즘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수작을 부리겠습니까.”
“……그럼 뭐 어쩌자는 거냐.”
“말씀대로 그냥 기세만 꺾어두자 이 말입니다.”
“그게 무슨 뜻이죠?”
그러자 가만히 듣고만 있던 차혜인이 소진현에게 물었다.
소진현은 그런 차혜인을 바라보며 말했다.
“김서준이 프로 헌터가 된다면 그때는 저희 손을 벗어납니다. 그러니 지금 한 번 꺾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어떻게···”
“이제 슬슬 교류전을 열 때가 되지 않습니까.”
교류전.
그건 헌터밀, 가온, 에일.
이 세 아카데미가 비공식적으로 여는 대회를 의미했다.
“그 교류전에 드림 아카데미를 초정하자는 뜻이군요.”
“명분도 적당하지 않습니까? 3대 아카데미를 누른 1강의 드림 아카데미.”
이진성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설령 그렇다 치자. 그런데 김서준을 누가 잡지? 그 놈은 이미 수강생 수준을 뛰어넘은 이레귤러다. 대체 누가 그 놈을 잡을 수 있다고?”
“그거야 잡을 수 있게 만들면 그만이지 않겠습니까.”
이어진 소진현의 말에 이진성과 차혜인이 입을 꾹 다물었다.
왜냐하면 교류전은 세 아카데미가 여는 비공식 대회.
즉, ‘비공식’ 이었기에 경기 방식과 룰은 모두 이들이 마음대로 관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왜 아무도 없을 거라 생각하십니까?”
다시 이어진 소진현의 말에 이진성이 눈을 부릅 떠보였다.
“설마··· 이하윤을 내보낼 생각이신가요?”
그런 이진성의 심정을 대변하듯 차혜인이 물었다.
소진현은 그 질문에 답을 하듯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두 분의 생각은 어떠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