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nsform or death RAW novel - Chapter 100
Chapter 100 – 가족같은 (11)
한재중은 눈을 떴다.
“이게… 뭔….”
온통 깜깜했다. 밤이 찾아온 건가 싶었는데, 하늘 너머에서 옅은 햇빛의 흔적이 느껴지는 걸 보면 그냥 구름이 해를 가린 것에 지나지 않았다.
먼지구름이 올라 하늘을 채웠다. 안 그래도 어둡던 이 땅은 조금 더 칙칙한 색을 머금게 되었다. 흉흉했지만 아름답기도 했던 자줏빛은 저물었다. 삭막하고 고요하게 바람이 불었다.
여긴 폐허였다. 본래 단어 의미에 한없이 가까운 폐허.
못쓰게 된 땅. 원래는 건물 따위가 존재하던 장소.
원래 있던 건물의 흔적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고, 땅 역시 재 같은 고운 입자 가루로 덮여 본래의 모습을 확인할 수 없었다.
고작 한 번의 폭발로 만들어진 광경이라기엔 너무나 처참했다. 한재중은 자신이 어떻게 살았는지 의문을 가졌다. 변신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 정도의 위력을 내는 폭발을 견딜 수 있을리가 없을 텐데.
한재중은 그제야 자신이 혼자임을 깨달았다. 연기가 자욱한데다 주변 환경이 전부 박살난 바람에 현재의 위치가 어디인지조차 특정하지 못한다.
입 안에 머금고 있던 흙먼지를 뱉으며 한재중은 일어났다. 몸 곳곳이 만신창이였으나 움직이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문제는 눈이었다. 직전까지 과거를 보고 있던 왼쪽 시야엔 아무것도 비치지 않았다. 깜깜했다. 연기에 가려진 건 아니다. 그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다.
‘…실명인가.’
한재중은 이상할 정도로 침착했다. 이게 일시적인 현상인지 평생 동안 앓고 살아야 할 장애인지도 몰랐다.
이를 제외하곤 이상할 정도로 상처가 없는 몸을 끌며 그는 폐허를 걸었다. 소리마저 폭발에 휘말려 사라진 건지 기분 나쁜 침묵이 몸을 눌렀다.
“…비르고?”
항상 시끄러웠던 비르고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폭발에 휘말려 죽은 걸까. 여기 있던 다른 수많은 건물들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진 걸까.
아니지, 폭발 전에 죽었을 수도 있다. 이 주변이 황폐한 도시 이상의 폐허가 되기 직전, 비르고의 심장은 빛으로 꿰뚫렸으니.
오히려 살아남은 편이 더 신기할 지경이다.
퉤, 한재중은 다시 한 번 입 안에서 씹히는 먼지와 재를 뱉었다.
분명 죽었겠지. 그리 확신하면서도 한재중은 비르고를 찾기 위한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덜컥. 문득 발에 무언가가 걸렸다. 고개를 내려 정체를 확인해 보았다. 쇳조각이었다. 어떤 기계에서 분리된 건지 무엇인지 모를 형체의 쇳조각.
만일 그 원본을 모른다면 단순한 고물이라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한재중은 이 쇳조각이 어디서 떨어져 나온 건지 감이 잡혔다.
‘비르고가 가지고 있던 그건가.’
별빛의 조작을 보다 섬세하게 할 수 있다는 그 기계.
이 정도로 처참하게 박살이 났다면 앞으로 쓸 수는 없겠지. 한재중은 비린 웃음을 머금었다. 폭주를 제어할 열쇠라고 생각한 아이템이 박살 났다.
이건 그나마 기계라 괜찮지만, 사람은 어떨까. 아직 다크 매터 안엔 윤설화와 하루, 화이트 다비흐가 있다. 그녀들도 이 폭발에 휘말렸을 가능성이 있다.
또한, 이 폭발을 일으킨 괴인과 조우했을 가능성도.
둘 다 의미는 비슷하다.
죽음.
이 정도 위력의 힘을 내는 괴인이라면 아무리 그들이 마법 소녀라 한들 살아남긴 힘들다. 거기에 미사일이라도 떨어진 것만 같은 폭발. 이 안에서 누가 살아남겠나.
한재중은 다시 한 번 자신이 어떻게 살아남은 건지 의문을 품었다.
푹 한숨을 내쉬며 초라한 쇳조각을 집어 들었다. 고물상에 가도 좋은 가격은 받지 못할 고물. 그걸 주머니 안에 대충 쑤셔 박았다.
허망했다. 피곤하기도 했다.
캄캄해진 왼쪽 눈에선 지금도 과거가 아른거렸다.
레드 스피카, 비르고. 마법 소녀이면서도 괴인. 지켜야 하면서도 죽여야 하며, 불쌍하지만 용서는 못할 사람.
허망한 삶을 살다, 허망하게 가버린 사람.
결국 알지 못한 사람.
괴인의 습격으로 인해, 기껏 준비한 대화의 장도 엎어졌다.
이렇게 깊게 엮였으면서도. 나는 끝까지 그녀를 추측으로만 알았구나. 한재중은 깊이 신음했다. 고통스런 목소리였다.
“…아.”
그러다 문득, 한재중은 한 가지 희망을 보았다. 지금 자신에게 부여된 퀘스트의 내용은 ‘비르고를 생존 시키는 것.’
지금 그녀가 죽었다면 퀘스트는 불이행으로 판단하고 자신에게 제재를 가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퀘스트는 성공했단 말도, 실패했단 말도 전하지 않았다.
아직 퀘스트는 이행할 수 있다.
“…살아 있어.”
하긴, 그녀는 전에도 이 참사를 일으킨 괴인과 격돌한 적이 있었다. 그것도 두번이나. 그럼에도 살아 돌아왔다.
두 번이나 살아 남았는데, 세 번은 못할 일이 어디 있나.
전에 자신에게 왼팔을 잃었음에도 후에 멀쩡한 몸으로 다시 나타난 걸 보니 대단한 치유 능력이라도 가지고 있는 모양이다.
비르고가 살아있다. 한재중은 확신했다.
그의 발걸음이 점차 빨라졌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는 몰랐다. 그저 무작정 달렸다.
전에 다크 매터를 탈출할 때처럼 하염없이, 달리고 또 달렸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길을 달렸다. 이 길은 도주로와 닮아 있었다. 막연한 희망만을 품고 끝없이 달리는 경험이란 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지옥과도 같았다.
영원히 고통을 느끼는 무간지옥이다.
아무리 앞을 나아가도 연기가 사라지지 않았다. 발밑은 재와 곱게 갈린 콘크리트 가루들이었으며, 풍경은 변하지 않았다.
한재중은 계속 달렸다. 사람들을 찾고, 이 땅에서 도망친다. 이 목표만을 가지고 한없이.
‘도망친다?’
한재중은 자조했다.
‘내 목표는 수호 아니었나?’
하지만 생존을 위해선 어쩔 수 없었다. 일단 살아야 다음이 있는 거 아닌가. 내가 당장 살아야 수호 따위의 목표를 이행할 수 있는 것이니.
도망친다면 다른 사람들도 당장의 생명은 보존할 수 있다.
쓰러뜨리는 건 나중에 하면 된다. 나중에 힘을 기른 다음에.
‘폭주 제어를 위한 기계도 사라졌는데 다음 언제?’
한재중은 달리면서 의아해했다.
‘애초에 이렇게 회피하는 게 정말 수호인가? 다음에 다시 위험에 처할 가능성을 남겨 두는게?’
그럼 어쩌겠나. 지금 당장은 힘이 부족하다.
‘아직 만나지도 않은 괴인이다. 왜 벌써 겁에 질렸지?’
만나지 않고도 알 수 있는 게 있다. 그 괴인은 고작 걷는 것만으로 땅을 가르고 하늘을 휘저었으며 운석과도 같은 빛을 쏘아내 일대를 초토화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전에 보티스가 언급한 별자리를 초월한 괴인이 그런 것이겠지.
그에 반해 자신의 힘은 초라하다. 아직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데다, 별빛의 소진도 빨라 오랜 시간 싸울 수도 없다. 빠르고 화려하나 속은 비어있다.
힘을 추구해 억지로 만들어낸 모습이지만, 만족스럽지 않다.
전투 이후 패배와 죽음을 추측하는 건 쉬운 일이다.
옛날과 똑같네.
한재중은 자조했다.
뭣도 모르고 오기로 다크 매터로 쳐들어 왔을 때와 다를 게 없다. 죽이려 한 괴인에 겁을 먹어 도망치던 그 때와.
언제나 지레 겁에 질려 도망만 갔던 옛날과 다를 게 없다.
레드 스피카도 그랬다. 괜히 겁에 질려 그녀를 막지 못했다. 괜히 막았다가 그녀가 나조차 해하려 들까 봐 두려워. 몇 명이나 죽는 걸 방치했다.
괜히 그녀의 상처에 다가갔다가 관계가 틀어지는 게 두려워. 침묵했다. 알 수 있었음에도 알려 하지 않았다.
죽으러 왔는데 뭐가 그렇게 무서워서.
이곳에 처음 발을 들이밀 때 있던 용기는 어디로 갔을까. 어쩜 이리도 영악한 놈인가.
잃을 게 생기니 다시 죽는 게 두려워진 건가.
지금도 다를 게 없구나.
저 괴인은 자신의 부모를 죽인 철천지원수. 그럼에도 도전하긴커녕 살려 도망치려 한다. 내 목숨이 그리도 소중한가. 아니면 기억에 없던 부모라 복수심조차 품지 못한 건가.
지금 이 끝없는 길은 도망치는 나를 벌하기 위한 길인가.
한재중은 지금 이 공간이 현실이 아님을 깨달았다. 죽은 뒤 걷는 망자의 길인지, 아니면 죽기 직전 환상이라도 보고 있는 건지.
잠시 멈춰 숨을 고르며, 그는 생각했다.
이 어둠은 어디서 출발했는가.
눈을 가리고 귀를 막고, 입을 다물게 만드는, 내 마음을 흐리는 이 끔찍한 어둠은 어디서 시작되었을까.
한재중은 고요히 고민했다.
목숨이 아까워서 인가, 잃을 게 많아서인가. 소녀의 상처를 알려 하지 않고,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거라 막연히 희망을 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이 끔찍한 희망의 정체는 무엇인가.
왜 지금까지 난 내 별의 힘을 통제하지 못했으며, 이성과 감정을 잃고, 미쳤을까.
비르고는 광기의 이유를 망각이라 답한다.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잊었음에도 행한다면, 그것이야말로 광기라고.
한재중은 그것이 틀린 말은 아니라 생각했다. 다름 아닌 자신이 그랬으니.
전부 잊고, 알지 못한 채로 살았음에도 막연히 사랑을 느끼고, 그리움을 느끼고, 행복을 느꼈다.
대표적으로 자신의 전 애인을 떠올려볼 수 있었다.
윤설화를 사랑한 이유를 몰랐음에도 그녀를 사랑했다. 광적인 사랑이었다.
이젠 그 이유를 안다.
부모를 괴인에게 잃었다. 마땅한 친척도 없어 완전히 혼자가 될 위기에 처한 그에게 손을 내밀어 준 것이.
“재중아… 괜찮아?”
다름 아닌, 윤설화였으니까.
왼쪽 눈, 과거를 보던 그 눈에서 이번엔 현실이 엿보였다. 걱정스런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그녀가.
그녀의 옆에는 쓰러진 화이트 다비흐가 보인다. 그녀 본인도 멀쩡하진 않았다. 온 몸이 상처 투성이에 눈도 몽롱하다.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다.
“미안해… 조금만 기다려. 내가 지금 다시 가서….”
마법 소녀의 변신은 풀려 있다. 아마 충격이 너무 심해 자체적으로 풀린 것이겠지.
그녀의 뒤로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한재중은 그 그림자의 정체를 안다.
과거 도로를 습격해 그의 부모를 죽인 괴인. 레드 스피카 은퇴의 직접적인 기회를 만들었던 괴인. 지금 그에게 다시 도망칠 이유를 선사한 괴인.
가장 괴물에 가까운 괴인.
사자자리.
인(人)의 모습은 거의 없고 짐승과도 같은 흉악한 겉모습만이 있었다.
붉은 갈기와 검은색의 가죽. 꼬리는 뱀이며 입에선 태양과도 같은 열기를 내뿜는다. 몸은 집채만 해 보는 이로 하여금 위축되는 공포를 주었다.
반쪽자리 시야로 보는 그 괴물은 지금도 계속 다가왔다.
“…다시 가서, 쓰러뜨릴 테니까.”
그럼에도 윤설화의 눈빛은 아직 죽지 않았다. 누워있는 한재중을 향해 그리 중얼거리며 다시 리본을 고쳐 쥔다. 그 손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괴물이 크게 포효하자, 땅이 흔들린다. 윤설화는 마른 침을 삼키며 변신을 시작했다. 변신 해제 이후의 변신은 상당히 몸에 부담이 되는 걸 알면서도. 행동했다.
그녀의 몸에 푸른 별빛이 감싸 지고 윤설화는 마법 소녀가 되었다. 다시 한 번 사자자리에게 달려나갔다.
그런 그녀의 옆에서 비르고가 날아 와 괴인에게 달려 들었다. 사람이었다면 죽었을 게 분명한 중상을 입고 있었음에도 움직였다.
“꺼져어어어어!!!!”
둘이 동시에 달려들어 사자의 갈기에 닿았을 무렵, 괴인은 다시 포효를 내질렀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이번에 쓴 포효는 별빛이 섞여 있었고, 소리임에도 분명한 충격을 전달하였다. 열기까지도.
순식간에 둘은 땅에 떨어졌다. 블루 시리우스는 의식을 잃었고, 비르고는 온 몸에서 피를 뿜으면서 다시 일어났다.
심장이 없고, 한 쪽 눈은 뭉개졌고, 다리는 부러졌고, 팔은 타버렸다. 끔찍한 상처.
별빛이 그 상처들로부터 흩날렸다. 당장이라도 죽을 듯했다. 아니, 이미 죽은 것과 다름 없었다.
마지막 생명을 불태우며 그에게 대항하는 중이었다.
한재중의 나머지 시야 반은 어둠 속이었다.
한재중은 왜 하필 지킬 대상으로 마법 소녀를 택한 걸까. 왜 그들에게만 동정심을 가졌던 걸까.
처음에는 그런 대단한 마음은 없었다. 이런 대단한 사명 따위,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딱히 마법 소녀였기에 그녀들을 지키고자 생각한 게 아니었다. 그들이 특별한 무언가였기에 지키고자 생각한 게 아니었다.
마법 소녀였기에 그녀들을 지키고자 한 게 아니라, 지키고 싶던 사람이 마법 소녀였을 뿐이었다.
자신에게 있어 가족과도 같던 사람을 지키고자 한 욕망이 있었을 뿐이다.
가장 원초적인 마음은 이것이었다.
한재중은 자신을 둘러싼 연기를 살폈다.
끝없는 어둠이며, 그렇기에 끝없이 나아갈 순 있단 희망을 주고, 걷는 와중에는 막연히 무언가가 해결되는 듯한 행복을 주는.
그 이름은 욕망이었다.
그렇게 어둠의 정체를 깨달았을 무렵, 저편에서 하얀 별무리가 빛났다.
대부분이 이 어둠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지만, 그곳에 분명 빛을 내고 있음을 알았다. 주머니에 꽂혀 있던 쇳조각이 그에 공명하듯 빛을 내뿜었다.
움직여야 할 이유를 알았고, 가로막는 게 무엇인지 깨달았다.
이 어둠은 나의 적임과 동시에 나의 것이니, 내 손으로 직접 걷어야만 했다.
[모든 별의 활성화 작업이 종료되었습니다.]이 어둠 전부가 나의 일부니, 내가 다스릴 수 있다.
기계 따위의 힘은 필요 없다. 누군가의 조력은 필요 없다.
[모든 별을 관측했습니다.]손을 움직이자 어둠이 번쩍이는 벼락불로 바뀌었다.
눈이 멀 것만 같은 벼락불이 손에 뭉치고. 어떤 기계 장치로 바뀌었다. 지금껏 보았던 것과 유사한 다이얼 모양의 도구.
스스로를 다스릴 열쇠는 처음부터 이 손 안에 있었다.
이성이었다.
그것을 움켜쥐며.
한재중은 일어났다.
현실의 몸이 당당히 대지에 두 발을 디디고, 허리에는 벨트가 부착되었다.
환상 속에서 쥐었던 기계 장치를 그 벨트에 장착했다.
투박한 다이얼은 점차 명확한 형태를 갖추었다. 입을 벌린 곰과도 같은 문양이 렌즈를 감쌌다.
렌즈에는 더 이상 북두칠성이 그려지지 않았다.
[ASTRONOMICAL OBSERVATION.]그의 몸이 새하얀 빛으로 휩싸였다.
몸을 좀먹던 벼락불은 없다.
이내, 지금까지 벼락으로 감춰져 있던 본래의 갑주가 나타났다.
“…재중아?”
비르고가 그를 보며 중얼거렸다.
[I obey my fate.]그는 운명을 따른다. 누군가가 부여한 운명이 아닌, 스스로 찾아낸 본인의 사명을.
[URSA MAJOR.]짐승과도 같이 원초적이며.
동시에, 놀랄 정도로 차가운 이성을.
검게 물들었던 눈이 본래의 눈빛을 되찾고.
그는 아름답고도 순수한 벼락을 내뿜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