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nsform or death RAW novel - Chapter 103
Chapter 103 – 하늘에서 별 따기 (3)
삶의 답을 찾으며 존재 의의를 잃은 몸이 별빛으로 흩날렸다. 괴인의 삶은 오직 목적을 이루기 위해 존재하는 것.
답을 찾는 순간이 곧 그들의 결말이었다.
“날 죽여줘.”
한재중은 그녀를 가만히 지켜보았다. 상처 입긴 해도 확실한 형태를 갖추었던 몸이 점차 희미해지고 있었다. 잉크에 물이 섞이는 것처럼 그 화려했던 색이 옅어졌다.
“끝까지 이기적이군.”
깊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흔든 한재중은 붉은 렌즈 너머로 비르고를 째려보았다.
“다 죽어가는 몸에 마지막 칼침을 나보고 넣으라고? 그게 처벌인가? 안락사 도우미지.”
딱히 충격받은 목소리는 아니었다. 아주 잠시나마 미래를 보고 있던 그에게, 비르고의 말은 내뱉기 전부터 들린 뒤였으니.
후,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쉬고 말을 이었다.
“죽이진 않겠다. 하지만.”
비르고는 미래 따위 읽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왠지 모르게 그 뒷말을 알았다.
“마지막까지 함께는 해주마.”
비르고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거면 충분해.”
대답을 들은 한재중은 비르고의 뒤를 지나 쓰러진 두 마법 소녀를 안아 들었다. 이번 사건의 온전한 피해자라고 할 수 있을 두 사람. 윤설화와 오토나시 하루였다.
“그 전에, 이 두 분부터 모시고.”
폭발 이후부터 깨어날 때까지의 의식이 없는 한재중이라 그들이 왜 여기 있는지 정확한 사유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추측은 가능했다.
조아윤의 말에 따르면 제이슨에 의해 그녀들 역시 다크 매터로 오게 되었단 건 확실하다. 이곳에 있었다면 사자가 만들어낸 소란을 모를 리가 없겠지.
제정신인 사람이라면 그 자리를 피했겠지만, 갑작스런 정의감이 발동되어 그곳에 찾아갔을 수도 있다. 아니라면 피치 못할 사정으로 휘말렸을 수도 있고. 혹은 소란의 중심지를 가면 동료를 찾을 수 있을 거란 생각으로 발을 옮겼던가. 아니면 그 소란이 일어나기 전부터 우연히 그 자리에 있었을 수도 있고.
말이 될 법한 추측은 무수히 할 수 있었지만, 정확한 사실은 알지 못했다. 눈 앞의 저 인물로 인해 추측으로 끝내고 낭패를 본 경험이 있는 만큼, 한재중은 정확한 사실을 원했다.
“그러고 보니, 이 둘은 뭐하다가 사자에 휘말린 거지?”
“야….”
어이없단듯 비르고가 눈살을 찌푸리며 툴툴 댔다.
“나 이제 곧 죽을 거라니까?! 이 와중에 다른 여자에게 한 눈 파는게 말이나 돼?! 말도 안 되지?! 아~!! 짜증나, 짜증나, 짜증나아아아!!!”
“소리 지르지 마라. 귀가 아프군.”
비르고는 진심으로 짜증냈다. 한재중은 이해할 수 없었다.
“사자가 원래 노리던 목표가 쟤네 둘이었거든?! 근데 어쩌다 나까지 휘말려서… 아 진짜. 김 새게.”
의문이 해결되었다.
“그렇군. 고맙다.”
“뭐가.”
“내가 자는 시간 동안 이 둘과 함께 날 지켜줬을 거 아닌가.”
“…뭐래. 그건 그냥 내가 살기 위해.”
비르고는 수줍음에 말을 돌리다 이내 수긍했다.
“맞아. 내가 널 지킨 거야. 내가 널 지키고 싶던 거야.”
비르고는 픽 웃었다.
“원래 보람 따위 하나도 못 느꼈는데… 이제야 느끼게 됐네. 금의환향한 아들을 보는 엄마같은 기분이라고 해야 하나?”
“어머니보단 누나에 가깝군. 모자라고 착하지도 않지만 고집은 강한 누나.”
“뭐래 진짜.”
한재중은 그녀 앞에서 뒤돌아 무릎을 꿇었다.
“뭐 해.”
“이미 두 팔은 꽉 찬 상태라 말이지. 업혀라.”
“진짜 이별할 분위기를 조금도 용납 못하는 놈이네.”
비르고는 흥 콧바람을 뀌며 그의 목에 제 팔을 감고 몸을 기댔다.
“아까까진 나에게 뭐든 다 해줄 거처럼 말하더니. 마지막에 나 하나만 보는 게 그렇게 힘들어?”
“너무 걱정 마라. 금방이면 된다.”
“이러다가 나 사라질 수도 있는데?”
“그러지 않을 걸 알고 있으니 이러고 있는 거 아니겠나.”
그와 몸이 닿은 순간부터 비르고의 소멸 속도가 대단히 줄어들었다. 몸에서 별빛이 흘러 사라지는 만큼 새롭게 별빛이 채워졌다.
백색 벼락은 그칠 수 있음에도 그치지 않았다. 가지처럼 피어올라 비르고에게 닿아, 그녀가 꽃으로 남아 있을 시간을 조금이라도 늘렸다.
차가웠던 번개가 지금은 따스하게만 느껴졌다.
“하늘에서 별도 땄는데 죽어가는 사람 하나 살리는 게 뭐가 그리 어려운 일이라고.”
“쯧, 말만 늘었어.”
“너무하군. 이래 보여도 상당히 당황하고 있다. 허무한 건 너만이 아닌데 말이지….”
실없이 웃으며 한재중은 하늘 위로 높이 뛰어올랐다.
“아무래도 실감이 안 나나 보군. 너나, 나나.”
하늘에서 별을 따주겠다 낭만을 부르짖어도, 천년만년 빛날 것만 같던 별이 빛을 잃는 순간은 쓸쓸한 법이었다.
생존시켜라. 그 퀘스트만이 머리 한 켠에서 아른거렸다.
**
“…오빠. 진짜 괜찮겠어?”
미리 연락해 마중 온 조아윤에게 윤설화와 하루를 넘겨준 뒤, 한재중은 등을 안고 있는 비르고를 들어 올리며 걱정말라 일렀다.
“너무 걱정하지 마라. 지금 이 상태론 한 주먹거리도 안 되는 녀석이다.”
“푸하하! 사실이긴 사실이네.”
“돌겠네 진짜 시발….”
머리가 아픈지 조아윤은 헬멧 너머 관자놀이를 매만졌다.
“왜 저 년이 뒤져가고 있는지 그걸 왜 오빠가 케어하고 있는지 머리가 존나게 아프긴 하지만… 뭐, 내가 하지 말라고 해서 듣는 놈이겠어?”
조아윤은 싱긋 웃으며 중지를 치켜올렸다.
“뒤지면 음지바른 곳에 구더기처럼 던져 놓고 와. 마지막에 얼굴봐서 좇같았고 다음에도 보지 말자 이 늦가을 모기 같은 년아.”
휙. 그 말과 함께 나비가 날았고, 조아윤이 모습을 감췄다.
“어휴~ 성격 나쁜 동생이네. 오빠 닮아서 그런가?”
“저런 말버릇이지만 그렇게 성격이 나쁜 편은 아니다. 나쁜 건 우리의 성격이 아닌 네 행실이겠지.”
“그런가? 그래서 이렇게 벌 받는 건가? 죽어가고?”
“네가 해왔던 것에 비하면 호상이로군.”
둘은 클클 웃으며 거리를 걸었다. 사자가 다녀가 한바탕 소란을 피운 거리는 적막하고, 적적하며, 음산했다.
바람이 재를 들고 나르며 발을 간지럽혔다. 바닷가에서 모래사장을 걷는 듯했다. 불이라곤 꺼져 가는 태양과 한재중의 몸을 타고 흐르는 흰 벼락 뿐이었다.
“그러게. 호상이네. 근데 어쩌겠어. 이대로 더 살아봤자 뭐해.”
비르고는 그 광경을 찌푸린 눈으로 살폈다. 광증이 사라지고 맑아진 세계는 너무나 눈 부셔 불안할 정도였다.
“넌 지금 내가 멀쩡해 보이니? 그럴 리가. 내가 저지른 게 얼마나 많은데. 사람은 결국 망각의 동물이야. 시간이 지나면 다시 잊고 미칠 거야. 잊고, 다시 안면몰수로 살아가다가, 또 다시 떠올려 개소리를 지껄이겠지.”
비르고에겐 호흡도 없었다. 박동도 없었다. 있는 거라곤 말 그대로 몸뚱아리 뿐. 허나 이 몸마저 허물어 가고 있었다. 호흡, 박동과 함께 미련도 없었기 때문이다.
“난 이 세상이 싫어. 사람도 싫고. 사람이 싫은 나도 싫어. 딱히 내가 아니라도 누군가는 학살을 저지르며, 누군가는 원망을 쏟아 붓고. 누군가는 열등감을 태우고 누군가는 그 열등감에 서서히 미치겠지. 다들 미쳐갈 수밖에 없는 세상인데 무슨 의미가 있겠어.”
비르고는 흐, 웃곤 장난스레 속삭였다.
“근데 있더라.”
거리에는 점차 저녁놀이 지기 시작했다. 하늘의 색이 점차 붉어지고, 그 하늘에 다른 물감을 바르듯 흰 벼락의 색이 점차 강해졌다.
“지킬 가치가 없는 세상에도, 지킬 가치는 있더라.”
잠시 한재중의 발이 멈칫하더니 다시 걸음을 이어나갔다.
“…비르고.”
“응, 왜?”
비르고의 말을 묵묵히 듣던 한재중이 입을 떼었다.
“도망가지 마라.”
“도망? 내가? 꺄하하, 그게 무슨 소리니. 내가 지금 어딜 갈 수 있다고.”
“죽음을, 도피처로 삼지 마라.”
결말을 도피로 삼으면 안 된다. 결말은 매듭이어야한다. 결코 실인 그대로 남으면 안 된다.
“죽음으로 도망가지 마라. 살아서 고통 받아라. 생지옥에서 살아라. 넌 죽을 자격이 없다. 살아서 고통받고, 원망의 목소리로 평생을 해메라.”
“그건 너무하잖니 진짜.”
“넌 그래도 싸다.”
음~ 잠시 뜸을 들이던 비르고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네. 도망이야. 도망. 힘들어서 다 도망치는 거. 근데 그거 알아?”
비르고는 한재중의 왼쪽 렌즈를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정해진 운명에서 벗어나는 것도 도망이야. 생과 사의 굴레에서 벗어나려 한 옛날 왕들이나 신화 속 인물이나. 하나 같이 파국이었잖아? 지금도 똑같아.”
눈가를 가리는 움직임에도 그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어디로 가든 난 도망길에 올라서는 거고, 끝은 파국이야. 지금 내게 있는 두 가지 갈래의 운명은, 어디로 가도 결코 매듭 지어지지 않아.”
“그럼 어쩌려는 셈이냐.”
한재중의 발길이 느려졌다. 벼락의 세기는 점차 강해졌다. 마지막 꺼지기 직전의 촛불이 더욱 거세게 타오르듯, 본인의 광채를 뽐냈다.
“나로 너까지 삶을 망치지 마. 넌 내가 남긴 유일한 선행이야.”
비르고는 그의 벼락을 긁어 손가락에 모았다. 저녁놀처럼 붉은 별빛이었다.
“사실은 지금 이미 한계지?”
한재중의 걸음이 멈췄다. 벼락은 꺼지지 않았다. 미련하게 타올랐다.
“그럴리가.”
“허세는.”
그렇게 마지막까지 탄 벼락이 비르고의 몸에 스며들고, 자신의 모든 빛을 소진한 한재중의 변신이 풀렸다.
한계까지 별빛을 쥐어짜 비르고의 생명을 늘려 놓았으나, 결국 임시방편엔 한계가 있었다. 아까까지 형체를 유지하던 비르고의 몸이 급속도로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미련하기도 하고.”
털썩 무릎 꿇은 한재중을 뒤에서 비르고가 부드럽게 껴안았다.
“…아직 방안이 있을 것이다.”
그는 중얼거렸다. 허탈한 목소리였다. 비르고는 웃으며 한재중에게 무게를 기댔다. 아주 가벼웠다. 사람의 몸이라 부르기엔 터무니 없이 가벼운 무게.
“너도 되게 이기적이네.”
비르고는 별안간 그의 귓가에서 키득거리더니. 그의 눈 앞에서 손을 휘저었다. 변신이 풀린 생눈 앞에서도 그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몸 하나 까딱도 못하게 별빛을 탕진한데다 왼쪽 눈도 잃었으면서 여기서 더 나에게 줄게 남은 거야? 너무한 거 아니야? 나를 얼마나 썅년으로 만들 지경이니. 준 건 없으면서 받기만 하라고?”
장난스레 웃은 비르고는 그의 앞으로 돌아가, 이마에 손을 올렸다.
“그러고 보니 넌 내 마법은 본 적이 없었지?”
그녀의 손가로부터 붉은색 별빛이 샘솟았다.
“별을 보여준 보답을 해줘야겠네.”
레드 스피카의 마법이었다. 마법 소녀 역사상 가장 적은 사상자를 기록하게 만든 그녀의 기적. 누군가가 다쳤을 때 변신의 힘을 얻은 소녀의 힘.
“재중아. 내 운명 중 하나는 내가 짊어질게. 물론, 죽음 쪽이야. 하지만 네 선의를 받아들여, 내 운명 중 하나를 네가 책임질 수 있게 해줄게.”
치유의 기적.
따스한 빨간빛이 피부에 스며들더니, 그의 흐릿하던 눈을 점차 맑게 만들었다.
“내 눈으로 별을 봐줘.”
그리고 그와 동시에, 비르고의 몸이 점차 옅어졌다. 저녁놀과 섞이듯이.
붉게 빛나며, 붉게 허물었다.
“나와 같은 사람이 나오지 않게. 나처럼 실수하지 않도록, 네가 내 운명을 나눠 가져줘.”
비르고는 쓰게 웃었다.
“이건 할 수 있겠지?”
한재중은 그녀의 손을 잡고 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삶에 수많은 실수가 있었지만, 나만큼은 실수로 남지 않겠다.”
비르고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철저한 이성을 가지고 널 기억하여, 감정으로 널 추억하겠다. 망각이란 광증으로 너를 더럽히지 않겠다. 네 마법을 기억하고, 네가 소녀였음을 기억하고, 네 삶을 기억하겠다. 네 죄를 기억하겠다.”
꽉 잡고 있던 비르고의 손이 허무로 사라지고.
“잊지 않겠다.”
허공을 떠돌던 그의 손이 툭 아래로 떨어졌을 무렵.
“아, 이제 보이나 보네.”
왼눈에 다시 광채가 맴돌았다. 레드 스피카의 마력이 한껏 담기며 빛을 되찾은 눈이 제일 먼저 향한 곳은, 다름아닌 이 눈에 담긴 것과 동일한 빛.
안수채는 그의 왼쪽 눈에 제 눈을 맞추곤 끼를 부리듯 웃었다.
“응? 내 얼굴 처음 보는 것도 아니고 뭘 그리 놀랐니? 왜, 내가 별처럼 예뻐서 그래?”
그 말과 함께 안수채는 사라졌다. 한재중은 피식 웃었다.
“대답은 듣고 가던가.”
비록 과정이 형편 없었으나, 그녀의 마지막 만큼은 별이었다.
이러면, 하늘에서 별을 따 별에게 준 셈이다.
[히든 퀘스트, ‘구하여라’를 성공했습니다.] [생존시켜라의 퀘스트를 미이행으로 확인. 하지만 히든 퀘스트의 성공으로 패널티는 받지 않습니다.]평생 자줏빛 하루에 머무르던 소녀의 삶이 오늘 여기서 끝을 고했다. 먼 길이었다.
별이 깃든 왼눈으로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혜성 하나가 번쩍이는 궤도를 그리곤 사라졌다.
어느새 하늘은 행복한 자줏빛을 띄고 있었다.
[오류. 오류.] [시스템에 침입자 발생!]벨트 안 렌즈 역시, 비슷한 자줏빛을 머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