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nsform or death RAW novel - Chapter 104
Chapter 104 – 평화의 상징 (1)
“으. 으으음….”
한재중은 거울 앞에서 눈살을 찌푸리며 제 눈을 이리저리 살폈다.
“또 지랄이네.”
뒤에서 조아윤이 혀를 쯧쯧 차며 한심하단듯 그를 질책했다.
“왕자병이라도 걸렸어?”
“그런 거 아니야.”
한두 번정도야 그녀도 보고 넘길 수 있었지만, 거울이 보일 때마다 저러고 있으니 지칠 지경이었다.
한재중의 외모가 뛰어난단 건 그녀도 인정하는 바이다. 하지만 본인이 저렇게 꼴값을 떨어버리면 감상도 달라진다. 나르시시즘에는 아무리 그래도 깨기 마련이다.
“그런 게 아니라 이거 눈이….”
“눈병이라도 났어? 그럼 이따 안과라도 갈래?”
조아윤의 걱정에도 쓰읍, 흐음. 따위의 근심 깊은 신음만을 반복할 뿐 별 다른 반응을 보이진 않았다.
“아니 뭔데 그렇게 염병을 떠는 건데.”
“으음… 됐다. 일단 출발하자.”
“아오씨.”
결국 의문 하나 풀지 못하고 찝찝하게 넘어가게 되었다. 조아윤은 한재중의 이상 행동에 눈살을 찌푸렸다.
‘뭘 잘못 먹었나. 시발….’
어제 배고픔을 못 참고 상한 음식이라도 먹은 건가. 그럴 거면 차라리 우리 집에 와서 저녁이라도 먹지. 한재중의 지갑사정을 알고 있는 조아윤은 다시 한번 카페 개업을 위한 각오를 다졌다.
‘뭘 더 잘못 먹기 전에 내가 책임 지고 지 손으로 밥 벌어 먹게는 만들어야 된다…!’
출발하자고 말한 뒤에도 한재중은 찜찜하단듯 거울 속 자신을 살폈다. 언제 봐도 심미적으로 만족을 주는 본인의 얼굴이지만, 최근엔 조금 느낌이 달라졌다.
실명되었던 왼쪽 눈이 비르고에게 고쳐진 이후부터, 왼쪽 눈의 감각이 이상하다.
‘이거 그냥 치유가 아닌 거 같은데.’
비르고의 마지막 별빛을 머금은 부작용인가. 그 뒤로 신체에 이상 현상이 몇 발견되었다. 대표적으로 문제인 것이 이 왼쪽 눈이었다.
비르고의 마지막 선행이었던 자신을 위해 보내준 최후의 마법. 그 치유의 힘.
오른쪽 눈보다 시력이 좋아진 건 물론이요. 가끔은 두 시야의 색감이 다르게 느껴지기도 하다. 오른쪽 시야보다 더 RGB에서 R이 강해졌다고 해야 하나. 붉은 필터를 낀 듯 흐릿하다.
어쩔 땐 이 왼쪽 눈으로부터 붉은 별빛이 흐른다는 감각마저 들었다. 물론 그런 느낌이 들 뿐이지 실제로 별빛이 흐르는 건 아니었다.
이게 정말 가끔씩 일어나는 일이라, 일상생활에 큰 불편은 없었다. 그래도 찜찜하긴 매한가지다.
안과에 갔지만 딱히 이상을 찾아내진 못했다. 예상했던 결과였다. 별빛으로 발생한 문제를 현대 의료 기술로 치료할 순 없을 테니.
제일 문제인 건 이거였다.
‘설마 오드아이가 되는 건 아니겠지?’
성인이 돼서 양쪽 눈색이 다르면 주위에서 이걸 어떻게 보겠나. 언제나 남의 시선을 신경 쓰는 한재중으로선 안 그래도 눈에 띄는 용모를 보다 눈에 띄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거울을 볼 때마다 왠지 모르게 왼쪽 눈의 색이 보다 붉어진 기분이라 불안했다. 물론 왜곡된 시야로 인한 착각일 가능성이 높다.
“아윤아.”
“뭐, 왜.”
“내 얼굴 어때?”
“좇같아.”
“솔직히 말해줘.”
“곱네.”
“아니 그런 거 말고… 나 뭐 달라진 거 없어?”
순간 조아윤의 심장이 얼어붙었다. 피가 차게 식고 피부엔 제 몸을 지키는 깃털처럼 소름이 돋았다.
지금 한재중이 별 생각 없이 뱉은 저 말은, 관계에 망조를 가져오는 질문이었다. 차이를 눈치채지 못한 순간 어떤 대답을 하더라도 괴멸에 도달하게 만드는, 멸망의 물음.
당연하게도 조아윤은 한재중의 변화를 눈치채지 못했다. 저 질문이 가져오는 건 파멸이라는 뜻.
‘어쩐지, 왜 그렇게 염병을 떠냐 했더만!’
거울을 계속 본 이유는 자신의 변화를 눈치채기 바랬던 귀여운 바람이었나! 조아윤은 눈을 질끈 감았다.
“응? 뭐 달라진 거 없어?”
한재중이 대답을 재촉하자 그녀도 결국 눈꺼풀을 열고 열심히 변화를 찾아봐야만 했다.
당연하게도 알 수 있는 변화 따윈 없었다. 옷부터 신발까지 전부 그녀가 사줬던 물건이다 전부 알고 있다. 악세사리는 전무. 헤어스타일은 전과 변함이 없고 눈동자는 여전히 날카로운 그대로, 그녀가 좋아하는 눈매 그대로였다.
“어. 어어… 어… 더, 예뻐졌네. 그, 키라도 컸어?”
“휴. 그럼 됐어.”
안도의 한숨을 내쉰 한재중은 한결 가볍게 발을 옮겼다. 역시 외관상으로 변화가 드러나진 않는다. 이 변화를 느끼는 건 오직 한재중 자신 하나 뿐.
“…벨트 이 녀석도 별 다른 말이 없으니까.”
비르고가 죽은 이후 이상할 정도로 조용해진 자신의 벨트. 건강이 위험하다 싶으면 지체 없이 비상, 비상 거리며 경고를 울려대는 쇠공이 조용한 것을 보며 한재중은 다시 한 번 안심을 머금었다.
“뭔데 진짜…!”
설마 진짜 키 큰 건가. 난 아직 150인데! 조아윤은 그런 그의 뒤를 툴툴대며 따라갔다.
“오빠 혼자 가서 뭐하게! 같이 가!”
“지금 최대한 느리게 가고 있는 중인데.”
“뭐? 나 지금 키 작아서 보폭도 작다고 놀리는 거야?!”
“아니 난 그런 말은 한 마디도….”
“팍 씨!”
무릎 관절을 가볍게 걷어차자 한재중이 쓰게 웃었다.
“얘가 피해의식만 늘어가지고.”
“키도 늘었어!”
“네네.”
그렇게 걷기를 몇 분, 둘은 동시에 어떤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CLOSED’라는 표시의 팻말이 문 앞을 차지함에도 그 발길에 망설임은 없었다.
골목길에 위치한 한적한 가게. 비 내리는 유럽의 골목을 떠올리게 만드는 고풍스런 외관과 디자인. 들어가는 순간 커피향이 코를 간지럽히고 고풍스런 시티팝과 얼터너티브 락이 귀를 뒤흔드는, 그렇게 심장까지 흔드는 가게.
조아윤이 원한 이상적인 카페의 풍경.
“싸장님! 저 왔어요!”
“어머, 딱 맞춰 오셨네요?”
그리고 이제 곧 조아윤의 손에 들어오는 카페의 풍경이었다. 그녀가 가게 안에 들어오자 한 노령의 여자가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그럼요. 원래는 더 빨리 오려 했는데… 우리 사원이 걷는 게 워낙 느린지라.”
째릿, 조아윤이 힐난하는 것처럼 한재중을 째려보자 한재중은 고개를 꾸벅 숙였다.
“죄송합니다. 제가 우리 사장님의 다리 길이 두배를 가지고 있음에도 좀 딴생각이 많아져 늦었… 아악! 왜!”
“맞을만 했잖아.”
이번엔 정강이를 깐 조아윤은 헤실헤실 웃으며 여자가 앉은 맞은 편의 의자에 앉았다.
“후후후, 사이가 좋네요.”
“헤, 헤헤. 그렇게 보이나요? 아니 뭐~ 이제 곧 같이 가게를 운영할 건데 사이가 좋아야죠 뭐….”
쑥스럽단듯 볼을 긁적인 조아윤은 곧바로 시선을 책상 위 서류에 옮겼다.
“네, 저도 정말 안심이 돼요. 두 분이라면 이 가게를 잘 관리해주실 수 있을 거 같아서….”
세월과 애정이 서린 눈으로 책상을 어루만진 그녀가 서류를 조아윤의 방향으로 내밀었다.
“사실 조금 더 싸게 해드리고 싶었지만… 딸이 말려서 결국 이정도만 하게 됐네요.”
“아, 아뇨! 지금 이 정도로 충분….”
“우리가 당신들께 받은 게 있잖아요.”
여자는 엄숙하게 말했다.
“저희들이 당신들께 받은 은혜를 생각하면, 공짜로 드리지 않는 게 죄에 가깝죠. 제가 이 나이까지 살 수 있게 된 것도… 아가씨 같은 분들 덕분이니까.”
노인이 귀한 사회. 여자의 말은 과장 같은 게 아니었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은 피난이 힘든데다 그 노인의 나이까지 제대로 살아가기도 힘든 사회이니.
“제 뒤를 이어, 열심히 해주세요. 도장은 가지고 오셨죠?”
가게 양도를 위한 계약의 서류. 조아윤은 웃는 얼굴로 품 속에서 도장을 꺼냈다.
“물론이죠!”
서명란에 분홍 인장이 찍히기 까지 채 1분도 걸리지 않았다.
**
한 남자가 인터넷 커뮤니티에 그런 글을 올리자 곧 여러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장례식 갈 준비해라
└DO시? ㅈ됐네 거기 빛쟁이들 핫플이라며
└몇 달만 지나도 길거리에 그냥 괴인 돌아다닐듯ㅋㅋㅋㅋ
└거기 갈빠에 그냥 눈 딱감고 F랑 G간다 시발 돈은 돈대로 쳐먹고 괴인은 ㅈ대로 돌아다닐 텐데
└그 아는 형이란 사람한테 빨리 뜨라고 해
“후우… 큰일났네.”
한숨을 푹 내쉬며 남자는 노트북을 탁 닫았다. 남자에게 아는 형 따윈 없었다. 글에 적힌 건 자신의 이야기였다.
분명 방을 잡을 때까진 별 문제 없던 동네였다. 그런데 몇 달 전쯤부터 괴인이 나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하더니 실제로 괴인들이 다닌단 신고가 눈에 띄게 올랐다.
결국은 괴인들이 있는 곳에 몰린다는 마약 복용자들, 통칭 빛쟁이들도 이 동네에 모이고, 끝내 몇 주 전엔 괴인출연요주의 지역으로 찍히게 되었다.
돈의 문제가 아닌, 생존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단계였다.
“하 시발 진짜….”
착잡했다. 사내에게 모은 돈이라곤 없었다. 있는 돈 없는 돈을 탈탈 털어 입주한 아파트인데, 이게 뭔 꼴인가.
40대 이전 사망이 국민 평균. 밈으로 ‘사전사’를 시전하는 인터넷 루저들이 떠올랐다. 남자는 심신을 진정시키자는 마음으로 동영상 사이트를 틀어 마법 소녀의 활약상을 감상했다.
벌써 조회수가 500만은 훌쩍 넘은 레드 베가의 활약 영상이었다. 이제 일 년차도 되지 않은데도 압도적인 마법 화력을 보여주는 신세대의 희망 같은 사람이었다.
‘…우리 동네에 좀 오지 않으려나.’
이렇게 강하다면 우리 동네 괴인도 다 쓰러뜨려주지. 뭐가 그렇게 바쁘다고… 광고 화면에 비치는 레드 베가의 얼굴이 순간 원망스러웠다.
“아니지. 정신 차리자.”
사내는 제 뺨을 짝짝 두드리며 정신을 다잡았다. 자신은 찐따들과 다르다. 비관적으로, 어차피 괴인한테 다 죽을 텐데 같은 마음으로 살아가는 마법 소녀들 안티들과는 다르다.
이 와중에도 사회적 평판을 생각하는 사내는 자신은 그런 최하급 찐따들과는 다르다며 자신을 다스렸다.
현재 인류가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희망한테 헛소리를 퍼붓는 쓰레기들과는 다르다.
난 아직 살아 있으며 희망이 남아 있다. 그렇게 마음을 다스린 사내는 밥이나 먹자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럴 때, 초인종이 울렸다.
“뭐지?”
택배는 안 시켰는데. 애초에 시키긴 커녕 택배회사 쪽에서 거부를 한다.
설마 괴인인가. 섬뜩한 가정이 그의 마음을 스쳤을 무렵.
“들어간다.”
쾅!
쇠로 된 현관문에서 굉음이 들려오고, 족히 10kg은 넘을 쇠문이 멀리 날아갔다. 엄연히 괴인 방범용 문이었는데.
뻥 뚫린 문이 있던 자리로부터 거대한 인영이 걸어왔다. 2m는 족히 넘을 거구의 인간. 아니, 인간이라 부르기엔 너무나 이질적인 부분이 많았다.
괴인.
사내가 공포에 떨며 흉포한 별빛을 가진 괴인을 올려다 보고 있을 때, 괴인이 손을 내밀었다.
“너, 우리 동료가 되지 않겠어?”
사내를 지켜줄 마법 소녀는, 수가 너무 부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