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nsform or death RAW novel - Chapter 110
Chapter 110 – 평화의 상징 (7)
“네…?”
울대까지 차오른 욕설을 가까스로 눌렀다. 분노보다는 황당함이, 황당함보다는 당혹이 컸다. 도대체 어디서 뭘 보았길래 저런 추론에 도달할 수 있었는가.
최대한 머리를 굴려 보았지만 답은 나오지 않았다. 뇌에 산소가 부족해 그랬을까 아니면 이 산소보다 부족한 단서의 탓일까.
“그게 무슨….”
“최근 이 도시에 흉흉한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오렌지 알타이르는 태연하게 목을 짓누르며 말을 이었다.
목을 누르는 힘은 가히 전문적이라, 적당히 호흡을 억제해 몸을 나른하게 만들지만 죽음으로까지 이어지지 않는, 그런 압력이 가해졌다.
[변신을 권장드립니다.]‘…닥쳐.’
이번엔 의심받지 않도록 속으로만 중얼거렸다. 이 상황에서 변신이라니 네 말이 맞다고 긍정해주는 꼴이 아닌가. 지금은 안 된다. 아직 의심에 단계에 머물렀을 뿐이다.
“소문… 이라뇨?”
“인간 사이에 괴인이 섞여서 살고 있다는 소문이… 말이에요. 그것도 최근 이 도시에 들어와서.”
오렌지 알타이르의 손은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시민을 공격했단 죄책감과 공포가 공존하여 그녀의 손길에 진동을 일으켰다. 호수에 돌을 던져 만들어진 것만 같은 파문이었다.
“…그자들이 이번 소동의 주범 중 하나라고 합니다. 정확히는 실종 사건부터 이어진 이번 사건의 범인들 말이에요.”
그녀는 쳐들어온 리브라가 아닌, 다른 단체를 지목하였다. 리브라가 이 도시에 오게 된 원흉, 최근 실종 사건의 범인, 아르고 패밀리를 뜻하는 것이겠지.
역시나. 와쳐를 말하는 건 아니었다. 한재중은 진심으로 다행이라 생각했다.
“저는 그게 당신이라고 생각합니다.”
“근거가 없지 않습니….”
“아뇨오! 차고 넘치죠.”
오렌지 알타이르는 갑자기 자신감에 찬듯이 목소리를 높였다.
“당신이 지금 이 도시에서 제일 수상하니까요!”
“아니 그건….”
한재중은 뭐라 반론을 하려다 말았다. 딱히 할 말이 없었다. 자기 변호를 포기한 그를 보고 보다 자신이 생긴 모양인지 오렌지 알타이르가 더욱 득의양양해졌다.
“봐봐요! 당신도 별로 말할 수 있는 건 없겠죠? 그야 사실이니까요! 당신이 이 도시에 들어온 시기와 실종이 잦아진 시기와 겹칩니다. 거기에 오늘 당신은 습격에서도 이상하게 멀쩡했죠. 폭격을 당한 베가와 다비흐는 다쳤지만 말이에요. 물론 그건 아윤이… 아니, 데네브도 있습니다만 그건 일단 차치해두죠.”
그녀의 손아귀 힘이 더욱 강해졌다. 다른 한 손에는 빛무리가 뭉쳐 긴 가시처럼 뻗었다.
“데네브가 은퇴하는 시기에 갑자기 나타나선 같이 차린 카페가 하필 이 도시다? 수상해도 너무 수상하지 않나요? 거기에 당신은 그간 경력이나 기록이 전무해요. 의심하지 않는 게 더 이상한 거 아닌가요?”
카페 안에선 내내 눈길조차 주지 않으며 투명인간 취급했으면서 막상 뒷조사는 똑바로 했군. 한재중은 쓰게 웃었다.
‘친구를 걱정해주는 착한 애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걱정이 쓸데없이 많은 기인지우라고 해야 할지….’
뭐 예상하지 못한 바는 아니었다. 그녀가 조아윤에게 가지고 있는 관심을 생각하면 불법이 안 되는 선에서 조사를 해볼 가능성은 농후했으니.
“당신이 아윤이를 속인 거죠?!”
하지만 이런 얼토당토않는 설과 폭거를 저지를 거라곤 상상 못했다.
“아니 갑자기 너무 무논리….”
“당신은 아윤이와 만나기 전부터 괴인이었던 거 아닌가요? 그녀가 아는 사람으로 분장해 다가간 다음 이 도시에 가게를 차리도록 유도. 하, 소름이 끼치는군요.”
“내가 그딴 걸 해서 얻는 이득이 뭡니까.”
“그거야 저도 모르죠. 하지만 당신이 아윤이를 속이고 있단 사실만큼은 확실합니다.”
추론 과정은 전부 틀렸지만 결론은 사실에 유사한 기묘한 사태.
“아니라면 그 똑부러진 애가 이딴 곳에 가게를 차리는 멍청한 짓은 안했을 테니까요!”
그 가게 아윤이가 운명이랍니다. 한재중은 목구멍 너머까지 차오른 말을 가까스로 눌렀다. 괜히 자극시켜봤자 좋을 게 하나 없다.
“뭐가 목적이죠? 돈? 아니면 마법 소녀의 지인이라는 신뢰도? 뭐가 되었든 제대로 되먹진 않았겠군요. 만일 당신으로 인해 아윤이가 위험해진다면….”
지금 오렌지 알타이르의 심리 상태는 정상이 아니다. 제정신이라면 고작 심증만으로 민간인을 이렇게 몰아세우지 못한다.
그녀는 다른 손에 쥐고 있던 화살을 한재중의 눈을 찌를듯이 가까이 밀어넣었다.
“다음은, 이번처럼 호락호락한 심문이 아닐 겁니다.”
그 말과 함께 오렌지 알타이르는 한재중을 내려 놓았다. 화살 역시 빛으로 변해 사라졌다.
“어흑, 쿨럭… 컥….”
“폭력적인 행위는 죄송합니다.”
“아 예 뭐…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마법 소녀가 정신병자인 사실은 알고 있기에, 한재중은 그녀를 정상참작했다. 제정신 아닌 사람이 제정신 아닌 짓을 하는 건 지극히 자연스럽다.
한재중은 그녀의 눈빛을 살폈다. 반짝거리는 눈동자 속엔 깨진 유리 조각 같은 날카롭고도 일그러진 감정이 빛나고 있었다. 한재중을 그녀에게 분노를 느끼기보단 안쓰러움을 느꼈다.
‘급발진 잘하네. 괴인 앞에선 분노 잘 참더니.’
약간은 감탄마저 했다. 리브라 앞에선 울먹거리며 무릎까지 꿇으려 했으면서 민간인에겐 여포가 되어 협박이라니.
물론 오늘 당장 의심이 생겨 이렇게 날뛴 건 아닐 터이다.
아마 그간 쌓아두었던 의심이 이번 습격이 기폭제가 되어 터졌다고 보는 게 무방하겠지.
이미 악명이 자자한 리브라가 견제할 정도의 거대한 조직인 아르고 패밀리. 그리고 그 아르고 패밀리가 날뛰기 시작할 때 자연스럽게 자리 잡은 카페. 그 종업원은 전 동료와 얼굴도 제대로 모르는 남자 하나.
오늘 습격의 범인인 리브라에겐 제대로 대응 못 했으며 막상 일을 끝낸 건 괴인이지만, 추켜받은 건 그녀다.
일은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고 친구는 아직 이 위험한 도시에 남아 있다. 심지어 인간으로 변장한 괴인이 이 도시에 있다는 소문마저 들려온다.
얼마나 자괴감이 들겠나.
오늘 자신의 나약함을 자각함과 동시에 엄청난 불안을 느꼈겠지.
“하지만, 저 말고는 이런 짓 하지 마세요. 순식간에 나락 갈 겁니다.”
“협박인가요?”
“추측이죠. 제가 뭐라고 알타이르 님에게 협박을 하겠습니까.”
이 깍듯한 태도가 마음에 안 든 것일까. 떨떠름하게 인상을 찌푸린 그녀가 한재중을 향해 손가락질했다.
“오늘은 단순히 경고에 그쳤지만, 다음엔 아닐 겁니다.”
살기마저 감도는 살벌한 눈빛에 한재중은 몸을 과장스럽게 떨었다. 본인 딴엔 적절한 반응이었지만 오렌지 알타이르에겐 도발이라고 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무섭네요.”
“…네. 무서워하세요. 그리고 조심하세요.”
카페에서 그랬듯 새침하게 뒤돈 그녀의 머리를 따라 빗방울이 흩어졌다. 머리카락에 묻어 있던 별빛같은 은은한 오렌지 빛 역시 방울을 따라 산란 되었다. 그것은 아주 자그만 폭죽, 한 번 터지고 사라지는 불꽃놀이처럼 보였다.
“저는 당신을 계속 예의주시할 테니까요.”
그렇게 중얼거린 오렌지 알타이르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옥상에서 몸을 날렸다. 남이 그랬다면 자살이라며 식겁했겠지만 그녀는 다름 아닌 마법 소녀. 옥상에서 몸을 날리던 맨몸으로 기차 앞에 서던 놀랄 필요는 없다.
“성격 참 지랄맞네….”
한재중은 오렌지 알타이르가 사라진 뒤에야 간신히 제 속내를 밖으로 털어놓을 수 있었다. 정말 억울했다. 물웅덩이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살펴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떻게 날 보며 괴인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
[감이 대단히 좋은 마법 소녀라고 생각됩니다. 그녀의 신뢰를 얻을 때까지 언동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이십시오.]참 복잡한 기분이었다. 괴인으로 몰린 게 억울하면서도 내가 억울하다 느끼면 이번엔 그녀가 억울하다 느낄 거 같았다. 어찌 되었 건 그리 틀린 추론은 아니었으니까.
한재중은 한숨을 푹 내쉬며 중얼거렸다.
“이제 돌아 가서 변명은 어떻게 하지….”
그는 오렌지 알타이르의 감시 선언에는 조금의 위협도 느끼지 않으며 우산주러 갔다 비에 꼴딱 맞아 돌아온 자신을 볼 조아윤의 잔소리를 걱정했다.
이 예상은 사실이 되어, 그는 돌아온 직후 안 그래도 신경이 예민해져 있던 조아윤에게 잔뜩 바가지를 긁혀야 했다.
**
‘그렇게 내 눈빛이 안 무섭나?’
오늘 한재중의 시선을 보며 오렌지 알타이르는 그렇게 생각했다. 제 딴에는 무섭게 쳐다본다고 생각했는데 남의 눈에는 우습게만 보였나 보다.
거울을 바라보며 방금 전 표정을 재현한 그녀는 작게 헛웃음 지었다. 자신이 생각해도 우스웠다.
하긴 누가 무섭게 생각하겠나.
비 맞을까 걱정하여 우산을 챙기러 온 사람에게 협박과 폭력을 가한 마법 소녀를, 그 누가.
‘아냐. 후회하지 말자.’
만일 그가 진짜 괴인이었다면 위험해지는 건 조아윤이다. 과격하긴 했어도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
짝! 제 뺨을 세게 내리치며 마음을 다잡았다.
오렌지 알타이르. 본명 아라.
핑크 데네브 이후 한동안 신입이 없던 한국 사회에서 혜성처럼 등장했던 신인.
말 그대로 혜성처럼 등장‘했던’, 잠깐 반짝이다 저물어버린 신인.
이젠 적당히 짬이 찬 중견 마법 소녀.
핑크 데네브가 은퇴한 지금 승률 최하위를 달리는 마법 소녀. 출동은 잦지만 그 수만큼 활약상을 올리지 못하고 있다.
그녀는 남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어떤 욕설도 정당한 비판이라고 받아들이는 레드 베가나 본인의 기준이 확고하여 평판 따위에 휩쓸리지 않는 핑크 데네브와는 다르다.
여름의 대삼각형이라 자주 묶이는 그 셋 중, 그녀만이 애매하다.
대놓고 대형 신인으로 나와 자신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강해진 레드 베가는 그나마 낫다. 아예 차원이 다른 사람은 질투할 일도 맥 빠질 일도 없다.
하지만 핑크 데네브의 경우엔 달랐다. 전투에 도움은 전무하다시피 하고 색적과 이동에만 특화된 전형적인 서포트를 위한 마법. 거기에 키도 작고 성격도 안 좋다. 언행은 공식석상에서도 거침이 없으며, 승률은 최하위. 데뷔 시기도 그렇게 차이는 안 난다.
그런데도 그녀는, 당당했다.
견우와 직녀를 이어주기 위해 머리를 조아리는 다리 주제에, 정말 당당했다.
오렌지 알타이르는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마법 소녀의 면모부터 인간적인 면모까지 전부.
인간 아라는 인간 조아윤을 그렇게 좋아할 수 없었다.
나보다 나을 게 하나 없는데도 위축되지 않고 당당하다.
특유의 태도나 말투하며 능력까지, 결코 마법 소녀라는 직업에 좋은 이미지를 만드는데 기여할 수 없었는데도 쓸데없이 뻔뻔한 그 모습.
같이 묶이는 이쪽은 조금도 생각을 안 하지. 민폐스럽기 짝이 없다.
오렌지 알타이르는 결코 그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은퇴를 해서 이제 마법 소녀와는 나몰라라 하겠다고?”
결코 용납할 수 없다.
“짹짹아. 뭐 특별한 거 없어?”
[응 수호자. 뭐 별 다른 움직임은 보이지 않아.]저격에 특화된 마법 탓일까. 그녀는 다른 마법 소녀와 달리 마스코트를 멀리까지 내보낼 수 있다.
이를 이용해 그녀는 지금 한재중을 멀리서 감시하는 중이었다. 계약자 이외의 사람은 볼 수 없는 마스코트의 특성상 그는 지금쯤 감시를 당하고 있는지도 모를 것이다.
아니, 감시하겠다고 경고를 했으니 나름대로 경계는 하고 있겠지. 하지만 결코 감시자를 볼 수는 없다.
마치 판옵티콘.
언제나 죄수를 감시할 수 있는 감시자와 언제 어디서 감시당할까 두려워 해야하는 죄수의 관계다.
오렌지 알타이르, 아라는 음흉하게 웃으며 생수를 들이켰다.
‘핑크 데네브. 넌 일반인이 되지 못해.’
오늘 괴인을 보며 느낀 크나큰 힘의 격차를 억지로 기억 뒷편으로 넘기며. 생수 한통을 시원하게 비워냈다.
‘넌 나에게 감사해야 할 거야. 네 주변에 얼마나 많은 위험이 있는지 조금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넌, 나를 이해하지 못하겠지.’
은퇴한 마법 소녀는 종종 괴인에게 있어 복수의 대상이 된다. 조아윤도 그 위험에서 벗어날 수 없다.
‘나중에 웃는 게 너인지 아니면 나인지 비교해보자고.’
너의 행복한 창업은 무너졌다. 너의 주변에 있는 건 사람이 아니라 괴인일 게 분명하다. 그도 그럴게……
‘그 녀석은, 다크 매터 출신이니까.’
평범한 인간이 결코 살아나올 수 없을 다크 매터. 그 안에서 살아나온 인간. 이 뜻은 뭐겠나. 즉, 평범한 인간이 아니란 증거다.
‘조아윤. 그 녀석은 네가 알던 오빠가 아닐 걸?’
-저 가게 있는 남자가 내 동무일세. 자네가 좀 설득해줄 수 있겠나?
카페를 가던 중 조심스럽게 찾아온 어떤 둔갑한 괴인. 그녀가 마법 소녀라는 사실을 몰랐는지 자연스럽게 인간 흉내를 냈다. 멍청한 판단이었다. 마법 소녀에겐 둔갑의 위화감이 고스란히 느껴지는데.
그녀에겐 잘된 일이었다. 안 그래도 수상하던 조아윤의 남자의 정체를 알게 되었으니까.
‘그 년의 일그러진 표정이 얼마나 재밌을까.’
아라는 그런 즐거운 상상과 함께 밤을 보냈다.
**
오렌지 알타이르는 잔뜩 일그러진 표정으로 몸을 떨었다.
“알타이르. 뭐하자는 거니?”
“아뇨. 그, 아니. 저기….”
오렌지 알타이르는 공포에 삼켜진 채 고개를 숙였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오늘은 기분 좋은 날이어야 했다. 한재중의 정체를 밝혀내고 자신의 위상을 드높이고 인정받아야할 날이 되어야 했는데….
“이건 나를 향한 투정이라고 받아들여야 할까. 아니면….”
영하의 냉동고 속에 들어온 기분이다. 저 시선이 몸을 찌르는 시간이 늘수록 살을 에는 추위가 점점 강해졌다.
“나를 향한 도전이라고 받아들여야 할까. 알타이르 네가 직접 고르렴.”
블루 시리우스의 무거운 눈빛이 그녀를 짓눌렀다.
“그냥 헛소리로 할래? 아니면, 나랑 싸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