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nsform or death RAW novel - Chapter 111
Chapter 111 – 평화의 상징 (8)
“기사아아아앙!!! 오늘도 활기찬 아침!”
“으아아앗!”
아침 7시. 창문을 넘어 들어온 햇빛이 눈꺼풀을 간지럽힌 즉시 하루는 기상했다. 눈을 뜨자마자 힘차게 소리지른 하루로 인해 옆에 있던 백아희까지 깨버렸다.
“뭐, 뭐야! 적습? 괴인이 들어온 건가요?!”
“하하하! 직녀도 참 귀엽군요! 여긴 안전합니다!”
허둥지둥대던 백아희는 이내 안심한듯 한숨을 내쉬었다.
“흐유… 하루, 그렇게 기상하지 마요. 놀랐잖아요.”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주의하겠습니다!”
막 깨어난 참인데도 목이 잠긴 티 하나 없이 멀끔한 목소리였다. 하루는 씩씩하게 웃으며 하루를 시작할 준비를 시작했다.
다름 아닌 인터넷. 기상 즉시 스마트폰을 들어 온갖 sns와 인터넷 커뮤니티를 전전하는 게 그녀의 루틴이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지난밤이 궁금해 오늘은 또 어떤 사건이 날 부를까. 이리 노래부르며 재밌는 사건을 찾아 헤맸다.
하지만 오늘은 그러지 않았다. 즐겨찾기에 들어가기 전 가장 먼저 손이 닿은 건 연락처 어플이었다.
“직녀도 이리 오십시오! 우리가 건강하단 걸 알립시다!”
“응?”
하루의 스마트폰 액정에는 영상통화 아이콘이 떠 있었다. 착신음이 이어지길 세 번. 통화가 연결 되고 화면은 카메라로 전환되었다. 영상 통화인 걸 모르는지 화면은 온통 까맸다.
“안녕하십니까 행니이이임!”
[어우… 네.]“잘 주무셨습니까?! 전 잘 잤습니다! 건강해요!”
붕대 감긴 팔을 이리저리 흔들며 반가움을 과시했다. 화면 너머에서 피식 웃는 소리가 들리고 한재중이 힘겹게 대답했다.
[전 하루 씨가 너무 걱정되어서 그런지 제대로 못 잤네요. 하루 씨는 잘 잤나요?]“하하하! 그렇군요! 전 잘만 잤습니다!”
[그건 다행이네요. 무슨 일이세요? 아침부터 전화라니.]“아니키! 이거 영상 통화입니다! 카메라로 얼굴 보여주세요!”
[영상 통화요? 아… 그, 죄송하지만. 아침부터 하루 씨같은 미인을 보는 건 제 심장에 나쁠 거 같아 그냥 목소리로 참겠습니다.]“에에~? 전 제 건강함을 과시하기 위해 전화한 겁니다! 카메라를 보지 않으면 무슨 소용입니까!”
그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던 백아희가 끼어들었다.
“재중 씨.”
[…베가 씨도 있었군요.]“하루는 이름으로 부르면서 전 은근 딱딱하네요? 너무해라. 게다가 하루는 미성년자에요. 적당히 하세요. 그리고 정녕 얼굴을 보여주기 싫으시면 재중 씨 카메라는 가리고 우리들 얼굴만 봐요.”
한재중의 카메라 공포증을 알고 있는 그녀가 그 의중을 짐작하여 타협안을 내놓았다. 화면 너머로 약간의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화면은 검은색을 유지한 채 목소리가 조금 멀어졌다.
[아, 이제 보이네요.]“저흰 건강합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오늘 당장 퇴원할 수도 있을 거 같습니다!”
[그래 보이네요.]어제 심각한 상처를 입고 병원으로 실려 간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을 정도로 건강했다. 감겨 있는 붕대나 거즈가 분장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자, 직녀도! 건강하다고 어필하십시오!”
“어 음… 그, 재중 씨. 저 아직 세수도 안 했는데 제 얼굴 보지 마세요.”
“갑자기 무슨 소리입니까.”
[아까는 보라고 했으면서 이제는 보지 말라고 하니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모르겠네요. 자기 얼굴 챙길 줄 아는 걸 보니 베가 씨도 멀쩡한 거 같네요.]“예! 우리는 건강하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하루가 해맑게 웃으며 대답했다.
“아니키를 지킨 것에 후회 따위 없습니다! 그러니 아니키도 별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것이 오늘 하루가 제일 먼저 그를 찾은 이유였다. 아침 일찍 전화하는 배려는 하지 못해도 누군가에게 안부 하나는 전달할 수 있었다.
[…네. 배려 감사합니다. 기특한 소리를 다하시네요. 가르쳐준 사람에게 칭찬해드려야겠어요.]“직녀입니다! 직녀가 아니키가 우리 걱정하면 어쩌지 하며 걱정을….”
“으아아! 하루 쓸데없는 소리마 재중 씨 아침부터 죄송해요 이제 끊을게요.”
[아 맞다 베가 씨.]화면 너머에서 웃음을 참고 있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돌아오시면 목말이라도 태워 줄까요?]백아희는 그대로 통화를 종료시켰다. 그리곤 머리에 손을 올려 두통을 호소했다.
“아… 숙취가….”
“아! 그러고보니 직녀는 어제 술을 마셨죠? 숙취엔 물이 최고라고 합니다! 자 생수입니다!”
“고마워 하루….”
하루가 건내 준 생수를 단숨에 비운 백아희가 성급히 말을 이었다.
“취한다는 게 참 무섭네요. 정말 이렇게까지 아무 기억이 안 날 줄이야.”
“오! 그럼 제가 말해드리겠습니다! 직녀는….”
“아뇻! 괜찮아요. 진짜로. 진짜진짜진짜로.”
푹 한숨을 내쉰 다음 머리를 벅벅 긁었다.
“하루, 아까 오늘 당장 퇴원해도 괜찮다고 했죠?”
“네!”
“그럼 지금 당장 퇴원하죠.”
“…네?”
괴인에게 당해 입원까지 한 마법 소녀는 적어도 사흘은 쉬며 보통은 일주일 가량을 휴식하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개인 재량에 따라 입원 즉시 퇴원 절차를 밟기도 한다.
“폐를 끼친만큼 은혜를 갚아야죠.”
“…! 찬성입니다!”
“어제 괴인들의 대화에 따르면 D5시에 일어난 사건은 괴인 간의 분쟁! 다수의 괴인이 오는 만큼 저희 역시 다수로 대응할 필요가 있을 거야…! 지금도 본부에선 회의가 한참 진행되고 있겠지.”
어제 부린 진상을 떠올린 백아희는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누군가를 추억했다.
‘그 망할 괴인이… 더 놀릴 수 있었는데! 이런 꿀잼 찬스를 감히…!’
[…수호자.]백아희의 마스코트인 고양이 인형 모양의 생물. 애칭 리본이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응시했다.
“무, 물론! 시민들이 습격당한 게 더 중요하지! 하지만 이런 사적인 동기가 있으면 더 능률이 올라간다고 전에 상담 노트에서 봤어!”
“직녀? 갑자기 왜 그러십니까?”
“으응. 그냥 우리 리본이랑 잠시 얘기 좀 나눈 거야.”
백아희는 머리에 감긴 붕대를 풀며 결의 서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럼, 본부로 가자.”
간호사와 의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녀들은 빠르게 퇴원 절차를 밟았다. 워낙 자주 겪은 과정이라 이젠 능숙하게 처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대로 본부로 직진했다.
-오늘 회의는 여기가 아니야.
마법 소녀 본부로 이동한 직후. 이 건물 어디에나 위치한 스피커를 통해 유니콘이 충격적인 공지를 전달했다.
“네? 그럼 어디….”
-어제 너희들이 얻어왔지 않았나? 거기야. 거기. 핑크 데네브… 아니, 조아윤이 운영한다는 그 카페.
언제 다시 괴인 간의 분쟁이 터질지 모르는 장소.
-거기야.
**
오렌지 알타이르, 아라는 카페 안에서 한 사람만을 계속 응시하는 중이었다.
‘한재중… 당신의 사악한 정체는 내가 밝혀낼 거야…!’
안타깝게도 마스코트를 통해 어젯밤 내내 감시시킨 보람은 얻지 못했다. 그는 한동안 카페에 있다가 집으로 복귀. 씻고 잠에 들었다. 평범한 사람의 생활이었다. 딱히 특별한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안다. 한재중이란 남자의 추악한 정체를. 인간을 능멸하는 간악한 사악을.
‘언제까지 그렇게 있을 수 있나 보죠.’
태연히 커피를 내리는 그를 보며 아라는 이를 까득 깨물었다.
“알타리무. 왜 그래?”
“그렇게 부르지 마시죠. 전 알타이르입니다! 알타이르!”
“알겠사옵니다. 태양신 라여.”
“개명을 하던가 해야지 진짜…!”
옆에서 마법 소녀 블랙 사드르가 조아윤이 붙인 별명과 어렸을 적부터 계속 놀림 받은 별명을 동시에 시전했다.
저 천박한 별명을 조아윤이 언급한 이후 몇몇이 따라 사용 중이다. 블랙 사드르 역시 그 중 하나였다.
“아이 왜 그래~ 예쁜 이름이구만.”
미디어에 보여주는 모습은 차갑고 보이쉬한 미녀인 주제에, 속은 그냥 아저씨와 다름이 없다. 성희롱 좋아하고 말장난 좋아하고 귀찮아 하는 거 많고.
하긴 그렇게 자신을 포장할 수 있으니 배우같은 걸 부업으로 할 수 있겠지.
“알타리무보다는 낫지.”
“닥치세요.”
역시 조아윤은 자신의 인생에 도움이 안 된단 사실을 뼈저리게 재인식했다.
“근데 진짜 특이한 이름 아니냐? 보통은 이름이 아라인데 넌 그냥 성이 ‘아’이고 이름이 ‘라’니까. 야 이거 두음법칙하면 아나 아니냐? 아나? 크하하하! 아놔~”
“그 입 좀 가만히 두시죠…!”
아라는 분개하며 한재중을 더욱 강하게 노려보았다. 지금 자신이 느끼는 모든 스트레스를 그의 탓으로 돌리기로 하였다.
‘봐봐, 벌써 눈빛부터 좋지 않잖아. 사람의 심리는 눈으로 나온다고 자주 들었어…! 즉 그의 본성이 점점 드러나고 있단 뜻이지…!’
한재중은 진하게 올라오는 커피향을 느끼며 내심 생각했다.
‘존나 졸리네 시발.’
벨트로부터 감시를 당하고 있단 보고를 받아 어젯밤 제대로 수면에 들지 못했다. 부자연스럽게 보이지 않도록 이불을 깔아 눕는 시도는 했지만 말 그대로 자는 척에 불과했다.
‘저 친구 제대로 꽂혔네. 좇됐네. 저격수라 인내심은 강할 텐데. 아니, 쟨 오기와 고집이 강한 건가.’
한동안 제대로 자기는 글렀구나. 한재중은 혀를 찼다. 시선은 여전히 그에게 커다란 거부감을 선사해준다. 지네나 바퀴벌레가 내내 등을 간지럽히는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불쾌한 소름이 온 몸을 더듬으며 초조함과 과호흡을 선사해준다.
‘아 시발 괴인 새끼 다 죽었으면 좋겠다.’
그 역시 자신이 느끼는 모든 스트레스를 다른 대상으로 돌리기로 결정했다.
[실제로 오렌지 알타이르가 수호자를 감시하는 이유는 아르고 패밀리의 영향이 큽니다. 올바른 지적이라고 생각됩니다.]‘거 참 고맙네.’
요즘따라 벨트가 친절하다. 돌발 퀘스트도 적어졌고 신체의 부담을 전보다 더 신경 쓰고. 죽을 위기를 몇 번 겪으니 경각심이라고 생긴 걸까.
‘아 또 이러네.’
다시 왼쪽 눈이 아파 왔다. 최근 더욱 증상이 심해졌다. 벨트가 얌전해지니 신체가 말썽을 부린다. 그래도 벨트가 말썽을 부리는 것에 비해선 훨씬 나았다.
지금 같은 상황에 퀘스트가 발생한다면 상상만 해도 아찔 했으니까.
“뭐, 뭘 그렇게 보는 거죠?!”
오렌지 알타이르.
“어이 거기 잘생긴 오빠~ 이리 좀 와서 같이 놀자.”
블랙 사드르.
“사드르. 저희는 지금 노는 게 아닙니다.”
골든 알데바란.
“맞아. 제대로 회의해. 그러다 혼난다?”
그린 두베.
“누구한테?”
퍼플 카펠라.
온갖 내로라하는 마법 소녀들이 이 카페에 한데 모였다. 하나하나가 군대에 맞먹는 전력들. 그 중앙에.
“…내가 혼낼 거니까. 가만히 있으렴.”
블루 시리우스가 있다.
“재중이나 아윤이한테 부담 주지도 말고. 원칙상으로는 둘이 들어서도 안 될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야.”
그와 잠시 눈이 맞은 윤설화는 상냥하게 눈웃음 지었다.
“그거 참 고맙네요. 내가 못 들을 이야기면 난 나가도 괜찮은데.”
“안 돼. 위험하잖아.”
다 내린 커피를 그녀의 앞에 내놓고 한재중은 다시 카운터석 안으로 복귀했다.
“이제 좀 적응이 돼?”
“그래 뭐, 적당히….”
그 카운터석에 앉아있던 조아윤이 장난스레 물었다. ‘드립커피에 적응이 좀 되었냐’와 ‘이렇게 많은 마법 소녀가 가까이 있는 게 적응이 되냐’를 복잡적으로 물어본 것이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둘 다 적응하지 못했다. 피곤한 정신에 섬세한 손길이 필요한 드립커피는 고된 일이었고, 본인의 정체를 생각하면 지금 이 자리는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너무 불편해 하지마. 다 똑같은 사람들이야.”
조아윤이 격려했지만 별 소용은 없었다.
그들이 마법 소녀 이전 평범한 인간이란 건 잘 알지만, 문제는 자신이 평범한 인간이 아니란 점이다.
“…넌 좀 불편해해.”
본인도 같은 처지인 걸 알기나 하는 건가. 무사태평한 조아윤의 태도가 한재중은 이해되지 않았다.
“에이 다 내가 아는 사람인데 뭐가 불편해.”
말과 달리 손과 다리는 덜덜 떨리고 있었다. 지금 태연한 건 허세에 불과하구나. 한재중은 이를 깨닫고 피식 웃었다.
이래야 내가 아는 조아윤이지. 물론 그 역시 남말할 처지는 아니었다.
“지금 제일의 문제는 이 도시에 숨어 있다는 아르고 패밀리라는 단체야. 그들이 여기에 없다면 리브라 역시 쳐들어오지 않을 테니까.”
정중하고도 침착한 목소리. 방금 전까지 산만하던 마법 소녀의 정신이 그녀 하나에게 집중되었다.
“제일 편한 방법은 사람들을 이주시키고 도시 째로 박살내 버리는 거지만….”
블루 시리우스는 한숨을 푹 내쉬곤 장난스레 웃었다.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 다 태울 순 없으니까. 안 그래도 거주지가 부족해지고 있는 처지인데.”
“그렇다고 우리 쪽에서 그쪽을 끌어내기도 힘들어요. 아마 능력을 써서 특수한 은신처를 만들었겠죠. 할 행동만 취하고 바로 도망쳐버리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아무리 빨리 신고 장소에 도착해도 먼저 도망쳐 버릴 테니까요.”
“매복하고 있다 덮쳐버리는 게 어떨까요. 이 도시 전체에 인력을 풀어서….”
“다른 도시에 문제가 안 터지는 게 아니니까. 계속 이 도시 안에서 머무를 순 없어.”
“CCTV 실시간 감시를 써서….”
“그러니까 그거보다 도망치는 게 빠르다니까?”
“그럼 더 빨리 움직여 씨이이발!”
“씁! 누가 욕 했어!”
“전술전문가 하나 초청해서 자문이라도 받죠?!”
“전술전문가 대로 행동해서 망한 작전이 한 둘이 아닌 걸 알잖니? 일반인은 마법 소녀의 마법을 이해하지 못해!”
“여기 고학력자 없습니까?! 그 사람이 말한 걸로 의견 통일하죠!”
“…제가 대학을 다니고 있긴 합니다만.”
“오 골든 있었어? 몰랐네.”
“….”
쉴새없이 몰아치는 논의 속, 오렌지 알타이르는 눈동자를 조용히 굴려 어딘가를 노려보았다. 당연하게도 한재중이었다.
‘우리의 작전이 전부 적에게 노출되고 있어…!’
이해할 수 없었다. 왜 민간인을 두고 작전을 논의하는 거지? 초조함에 연신 손톱을 뜯었다.
“자, 잠깐만요!”
일단 이야기를 끊어야 한다. 이 사람들에겐 경계심이란 게 없다. 아무리 블루 시리우스라는 업계 최정상이 공인한 인물이라고 해도 민간인에 불과한데, 어쩜 이렇게 생각 없이 이야기를 나누는 거지?
“이, 이 이야기… 저 분에게 들려줘도 괜찮은 겁니까? 아무리 밖이 위험하다고 해도 지금 저 분은 민간인이잖아요! 극비일 텐데….”
그녀는 한재중에게 손가락질했고. 모두의 시선이 한재중에게 향했다. 시선의 당사자가 된 한재중은 조금의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 말 꺼낼까 눈치 보고 있었는데 먼저 말씀해주셔서 다행이네요. 맞는 말 같아요. 제가 오늘 비밀 유지 서류에 서명을 하긴 했어도 신분은 민간인인 채잖아요. 이런 사안은 제가 나간 자리에서 나누는 게….”
“비밀 유지 서류에 서명이요?! 그런 걸 했나요? 전 듣지 못했는데…!”
어쩐지 아무도 문제 삼지 않는다 했다. 서류상으로 계약을 나누었구나. 왜 이런 중요한 이야기를 전달받지 못한 거지?
“…내가 아까 말했잖니. 재중이는 내가 보증한 데다 본인 역시 비밀 유지 서류에 싸인을 했다고. 만일 이로 인해 문제가 발생한다면 책임은 전부 내가 지겠다고… 표정을 보니 안 들었던 모양이구나. 괜찮아. 지금 들은 거로 치면 되니까.”
“알타리무, 그러게 좀 집중하지 그랬어.”
블루 시리우스에게 혼난 데다 조아윤에게 조롱까지 들었다. 오렌지 알타이르는 얼굴이 빨개져 고개를 숙였다.
‘이게 다 저 남자 탓이야…!’
속으로는 그녀들을 속여 넘긴 한재중에 대한 원한을 불태웠다.
“아무튼 논의를 이어가자면….”
“잠깐.”
“재중아 말했잖아. 너 있어도 된다고. 네가 이렇게 나오면 널 공인한 내 신뢰마저 떨어지는….”
“아니 그게 아니라. 그냥 작전 회의 하다가 생각난 게 있어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으면 의견을 내놓아도 괜찮은 거 아닌가… 요?”
마지막을 능청스레 존댓말로 끝마친 그가 배시시 웃었다. 오렌지 알타이르는 그 웃음마저 역겨웠다.
미인계다. 외모라는 자원을 이용해 간계를 꾸미고 있다.
“오 괜찮네. 거기 잘생긴 오빠 목소리도 좋은데 한 번 내 귀 좀 호강시켜봐.”
“사드르. 발언엔 좀 주의를… 하, 그래. 무슨 생각이야 재중아?”
발언권을 허락받자 마자 망설임 없이 입술을 열었다.
“그쪽을 못 쫓는다면 이쪽에서 끌어내면 되지 않나… 요? 이쪽이 출동하기 전에 도망친다면, 먼저 잠복하고 있다가 잡는 걸로.”
“…어떻게?”
“그 괴인들은 민간인을 노려 실종시킨다고 했지? 그럼 민간인을 미끼로 걔네들을 부르면 되겠네.”
그의 의중을 파악한 오렌지 알타이르가 경악했다.
“그리고. 여깄네? 미끼용 민간인.”
한재중은 자신을 가리키며 뻔뻔하게 웃었다. 마법 소녀들이 말을 잃었다. 하하 웃던 블랙 사드르 마저 웃음을 잃었다. 오렌지 알타이르도 동일했다. 하지만 그 경악에 섞인 감정은 사뭇 달랐다.
그녀는 공포에 질려 손을 떨었다.
‘이 남자는 어디까지 뻔뻔해질 작정이지…? 무서울 지경이네.’
저건 희생 정신 따위가 아니다. 사악한 기만이다.
‘당신을 보고 괴인이 나타나긴 하겠죠!’
하지만 마법 소녀들이 잡을 인원수의 괴인이 아닐 터이다. 괴인을 잡기 위해 매복한 마법 소녀 전원을 죽일 괴인의 파도가 몰아칠 게 분명하다.
저 남자는 마법 소녀들을 한데 모아 일망타진할 생각이다…!
“절대 안 돼요!”
오렌지 알타이르가 책상을 탕 치며 일어났다.
블루 시리우스는 여기에서 살짝 감동을 받았다. 민간인을 위험에 빠뜨리지 않겠다는 훌륭한 영웅정신. 그야말로 마법 소녀의 모범이다.
“당신이 아르고 패밀리의 인원이 아닐 거란 보장이 어디 있죠? 이 인원 전체를 역으로 함정으로 유인하지 않는단 보장이 없잖아요!”
블루 시리우스는 순식간에 냉랭해졌다. 민간인을 지켜주긴 커녕 의심하는 의심증 환자. 추악한 불신. 그야말로 마법 소녀의 부스러기.
다른 마법 소녀들 역시 경악했다. 아까와는 다른 의미였다.
‘…얘가 미친 건가?’
그런 눈빛으로 오렌지 알타이르를 바라보았다. 그리곤 블루 시리우스의 눈치를 살폈다. 이 중 대부분은 블루 시리우스와 그의 관계를 미리 들어 알고 있었다.
마음속으로 빌었다. 제발 온화하게 넘어가 주세요. 평소처럼 상냥하게 타일러 주세요.
“알타이르. 뭐하자는 거지?”
“아, 아뇨. 그, 아니. 저기….”
이 모두의 기대를 배신한, 차디찬 목소리. 영하의 설원보다 서늘하고 날카로운 공포가 그들의 등줄기를 타고 올랐다.
“내가 몇 번이고 말했지? 그는 내가 공인한 사람이라고. 내가 책임진다고. 그리고 방금 전 스스로 희생하겠다고 발 벗고 나서기까지 했어.”
오렌지 알타이르는 이쯤에서 자신의 실수를 눈치챘다. 너무 빨랐다. 마음이 앞서 논리 없이 불신부터 내뱉었다.
“이건 나를 향한 투정이라고 받아들여야 할까. 아니면 나를 향한 도전이라고 받아들여야 할까. 알타이르 네가 직접 고르렴.”
침을 삼켰다. 가시가 목구멍을 찢는 고통이 느껴졌다.
“그냥 헛소리로 할래? 아니면, 나랑 싸울래?”
그때 카페의 문을 열고 활기찬 두 소녀가 들어왔다.
“죄송합니다 늦었습니다!”
“저희를 기다렸습니까 센빠이들! 예쁘고 귀여운 화이트가 여기 왔….”
괴인과의 대치 때보다 짜릿한 공기가 그들을 반겼다. 블루 시리우스의 서늘한 시선이 지각생들을 훑었다.
“…너희들은 왜 왔니?”
“꺼지겠습니다!”
그리곤 문을 그대로 다시 닫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