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nsform or death RAW novel - Chapter 116
Chapter 116 – 평화의 상징 (13)
썩은 나뭇가지처럼 마르고 힘없는 눈빛들이었다. 희망이라곤 눈 씻고 찾아봐도 없는, 부패한 삶의 눈동자. 그런 차갑고 냉랭한 눈빛이 오렌지 알타이르를 꿰뚫었다. 그들은 불을 처음 보는 짐승들 마냥 경계하며 오렌지 알타이르를 살폈다.
“….”
“왜 그래요?”
그 와중엔 순수하게 자신을 올려다보는 어린아이의 눈빛도 있었다. 숨이 막힐 듯한 정적 속, 그 기대 어린 무구한 눈빛에 오렌지 알타이르는 이기지 못했다.
“저, 저기….”
오렌지 알타이르는 정적을 깨기 위해 입술을 열었다.
“우, 우와!”
그 순간, 마을엔 불이 번지듯 환호가 이어졌다.
“마, 마법 소녀다!”
“마법 소녀가 왔어!”
“뭐? 마법 소녀? 정말이야?!”
“정말이라니까!”
“나 저 분 알아! 오렌지 알타이르! 그, 마법 소녀들 중에서도 흔치 않다는 원거리 저격수래!”
“그, 그럼 엄청난 거야?”
“그럼~ 대단한 거지!”
“그렇구만. 살았어. 산 거지? 응?”‘
“이, 이제 돌아갈 수 있는 거야?”
비관이 전염되듯 희망 역시 전염된다. 괴인에게 잡힌 이들에게 있어 그녀의 등장은 망망대해 속 보이는 구조선과도 같았으리라.
오렌지 알타이르는 냉랭한 시선보다 지금 같은 반응이 더 당혹스러웠다.
언제나 사람들의 구조 현장에서 멀리 떨어져 있던 그녀로선 이렇게 가까이서 환호를 듣지 못했다. 자신이 누군가에게 희망이란 사실은 너무나 먼 거리에 있었다.
그에 반해 비난과 탄식은 가까웠다. 조금만 기계 화면을 들여다보면 적나라하게 보였으니까. 애초에 그 수도 많지 않았다.
실적 없는 저격수란 눈에 띄지 않는 법이었으니까.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은 희망을 쫓는다. 선을 사랑하고, 영웅에 찬미한다. 그들도 그랬다.
그들은 눈앞에 온 별빛을 사랑했다. 구름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던, 아주 자그맣고 희미한 별빛이라 한들 보이기 시작했다면 지고한 법이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러게 내가 말했잖아. 믿고 기다리면 해결된다고.”
누구도 그녀가 왔단 사실에 실망하지 않았다. 그녀의 등장을 기뻐하고 예찬했다. 누구 하나 그녀가 실패할 것이라 의심하지 않았다.
수많은 인원이 그녀 하나만을 희망 삼아 기대고 있다.
이는 거대한 부담으로 다가왔지만 동시에, 짜릿한 희열로도 다가왔다.
언제나 사람을 지켰음에도 사람과 가장 멀리 동떨어져 있던 그녀에게 관심이란, 배고픈 아이가 마시는 꿀물과도 같이 달콤했다.
“…그, 그래요!”
관심에 목말랐고, 허세를 잘 부리던 그녀에게 이런 관심은 끊어낼 수 없는 동아줄이었다. 설령 이 찬사가 한순간의 환각에 지나지 않는다 한들, 지금 즐기지 않을 순 없는 일이었다.
“이, 이제 안심하세요! 제가 왔으니까요!”
이들을 구할 수 있다는 확신 따위 없다. 몸은 지쳐 있으며 마음은 의심으로 물들었다. 여기 있는 사람들 전원의 정체가 사실은 괴인이며 자신을 속이고 있다는 가능성을 부정할 순 없다.
지금까지 가장 믿고 있던 상대가 사실은 괴인일 수도 있단 의혹을 얻었는데, 이 세상 무엇을 믿을 수 있겠나.
하지만 외칠 수밖에 없었다.
이 순간 외치지 않는다면 평생 후회할 것만 같았다.
“하늘 끝까지 꿰뚫는 화살! 오렌지 알타이르! 젯, 제가, 여러분들을 구하겠습니다!”
등장 대사를 외쳐본 게 얼마만일까. 마지막엔 혀까지 절었다. 오렌지 알타이르는 창피해 귀가 빨개졌다.
하지만 그 누구 하나 이를 신경 쓰지 않고, 수많은 환호성만이 퍼졌다.
**
“…어쩌지.”
즉시 오렌지 알타이르는 후회했다. 그렇게 벅차오른 가슴도 시간이 지나니 차갑게 식었다. 식은땀이 소나기처럼 흘러내려 옷을 적셨다.
“여기가… 맞지?”
고개를 올려 지금부터 습격할 곳을 바라보았다. 섬의 경관과는 어울리지 않는 거대한 빌딩. 그 높이가 너무나 높아 지금의 각도와 거리로는 그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후우… 괘, 괜찮을 거야. 괜찮을 테니까… 아마….”
사람들에게 들은 바로는 여기가 다름 아닌 괴인의 본거지라고 하였다. 여기에 있는 괴인들이 그들을 납치하고 강제로 섬에 거주하게 하였다고.
즉, 이 빌딩이야말로 아르고 패밀리의 본부.
그 괴인들의 은신처란 뜻이다.
원래 계획은 멀리서 저격해 빌딩 째로 무너뜨릴 생각이었다. 폭격급의 저격은 그녀의 특기였다. 마력을 다소 소비하겠지만 이 정도의 건물쯤이야 금세 모래더미로 만들 수 있었다.
이 판단은 오류였다. 괴인의 장소인 만큼 건물 역시 평상시 생각하는 그것과는 궤를 달리 했다. 웬만한 건물은 가루로 만들 정도의 공격을 수십방을 맞고도 멀쩡했다.
괜히 마력과 체력만 낭비한 꼴이 되었다. 자신이 낼 수 있는 최대 화력으로 쏘아낸 것이라, 남은 마력이 별로 없었다. 이 정도 마력량으론 a급 괴인 하나 잡기에도 간당간당하다.
결국 오렌지 알타이르는 외부에서의 저격을 포기하고 이 빌딩에 직접 쳐들어갈 수 밖에 없었다. 아무리 두렵다 한들 이미 내뱉은 일에서 도망칠 수는 없던 일이었으니까.
‘무릎 꿇고 빌면 말이라도 들어줄… 아, 아냐! 비굴해 지지마!’
리브라 때 하려 했던 비굴한 발상을 머릿속에서 지워내고, 다시 발을 옮겼다.
‘다른 사람들은 지금쯤 뭐 하고 있을까. 내가 사라진 걸 걱정이나 할까? 그 사람들이라면 나처럼 한심하게 당하진 않았겠지…?’
다른 사람들이라면 달랐을까. 그 영웅이라 부르기에 합당한 이들이라면, 무언가 바뀌었을까. 괴인에게 질 생각부터 하는 나와는 조금 달랐을까.
‘우리 아윤이… 내, 내가 잘못 본 거겠지? 설마 앞으로 상대해야 할 괴인이 아윤이라면….’
걸음엔 점차 자신감이 사라졌고 몸 또한 위축 되었다. 가슴 앞에 손을 모으고 어깨를 움츠리며 불안한듯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괴인이 정말로 아윤이라면… 내가 정말….’
당장 돌아가고 싶은 마음에 반해 발은 관성이라도 받은 것처럼 앞으로 나아갔고. 결국 빌딩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죽일 수 있을까?’
건물 안에 들어온 순간 엄숙하고 차가운 공기가 그녀를 맞이했다. 어딘가 피비린내가 나는 섬뜩한 분위기였다.
“…하긴, 그게 무슨 상관이야. 제대로 이기기나 하겠어?”
멀끔했던 외관에 반해 내부는 삭막하기 그지없었다. 건물 내부보단 공사 도중의 현장에 가까웠다. 포장은 안 되어 있고 철근이나 각목 같은 건설용 자재가 널부러져 있었다.
“안은… 생각보다 더럽네?”
대기업 빌딩 같은 외견이길래 기본적인 환경은 갖췄을 거라 생각했더니, 최소한의 꾸미기 조차 포기한 나태한 인테리어였다. 괴인에게 미적 센스를 기대할 거라 생각한 자신이 어리석었다며 자조한 뒤, 계속 길을 나아갔다.
“그리고 조용하고.”
특이한 점은 이 내부 풍경만이 아니었다. 침입한 순간 수많은 적이 자신을 향해 쇄도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너무나 조용했다.
바닥이나 벽면, 천장에는 무언가에 그을린듯 검댕이 가득했으며 곳곳엔 무언가가 부딪히며 깨진 흔적도 있었다.
“…! 설마.”
다른 사람들도 여기에 이동 당한 뒤 이 빌딩을 습격한 건가.
“그, 그래! 그것 밖에 없어!”
분명 다른 마법 소녀들도 여기에 온 거다. 자신과 비슷한 목표를 품고 괴인들을 소탕하기 위해 진격했다. 이 파괴의 흔적과 고요가 그 증거다.
“나, 나 혼자가 아니야…!”
오렌지 알타이르는 기쁨에 차 발걸음을 서둘렀다. 홀로 적과 싸우는 게 아니다. 동료가 있다.
언제나 비교의 대상인 동료가, 언제나 믿고 의지하던 동료가 있다. 언제나 자신을 그림자처럼 가리던 동료가, 언제나 화창하게 빛나 따를 수 있던 동료가 있다.
결국 오늘도 영웅이 되지 못하겠구나.
다행히 오늘도 살아남을 수 있겠구나.
이 양가적인 감정과 함께 오렌지 알타이르는 빠르게 앞을 향해 나아갔다.
한 10층 정도를 내리 계단을 통해 올라가자, 그런 그녀의 뒤에 음습한 그림자가 따라붙었다.
오렌지 알타이르의 목에 나무토막처럼 두꺼운 팔이 감겼다.
“윽!”
순식간에 좁혀드는 호흡 속, 오렌지 알타이르는 공포에 휩싸였다. 하지만 몸은 행동했다. 배일대로 배긴 공격의 궤적.
마력을 모아 화살을 만들어 단검처럼 손에 쥐고 그대로 뒤를 향해 찔렀다.
“크아악!”
비명과 함께 목에 조이는 힘이 약해졌다. 그녀는 이 틈을 놓지 않았다. 재빨리 뒤 돌아 발을 올려 화살이 박힌 그 자리에 꽂아 넣었다. 화살이 더욱 깊숙이 들어갔다.
이것은 평범한 화살이 아니라 폭탄에 가까운 물건이다.
이제 마지막 한방. 화살을 폭파시키려 할 때, 그녀는 자신을 습격한 자의 얼굴을 제대로 보게 되었다.
“…사람?”
“나, 나는 자랑스런 아르고 패밀리의 일원이다!”
보이는 건 괴인이 아니라 사람에 한없이 가까운 존재였다. 그저 근육이 많은 성인 남성. 나이는 30대 후반 쯤 될까. 별빛이 느껴지긴 하였으나 미약하기 짝이 없었다. 그는 고통에 몸부림 치면서도 당당하게 자신이 괴인이라 외쳤다.
“나는 자랑스런 아르고 패밀리의… 끄엑!”
“알타이르 언니!”
곧 그의 얼굴이 누군가의 발로 짓밟혔다. 앙증맞은 가죽 구두. 레드 베가의 것이었다.
“베, 베가! 이 사람을 왜….”
“설명할 시간 없어요! 저런 건 신경 쓸 필요도 없고요!”
레드 베가에게선 사람을 짓밟았음에도 조금의 죄책감도 보이지 않았다. 벌레를 보는듯한 차디찬 시선만이 그녀가 저 사람에게 보내는 관심의 전부였다.
역시 동료가 있었다는 기쁨도 잠시, 오렌지 알타이르의 오른손이 레드 베가에게 붙잡혔다.
그녀는 재빨리 빌딩 안을 뛰었다.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마력은 미미했다. 누군가와 격한 전투라도 치르고 온 듯 지친 기색이 역력한 모습이었다.
“빨리 도망쳐요!”
“도망이라니 뭐에게? 아, 아니 너희들은 왜 여기에….”
“뭐긴 뭐겠어요! 우리를 습격한 그 괴인이죠!”
오렌지 알타이르는 그녀의 말에 섬뜩한 괴인의 모습을 떠올렸다. 태풍을 고작 산들바람 취급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바람을 조종하던, 그 험상궃은 괴인.
하긴 그 역시 아르고 패밀리의 일원이라면 다시 돌아오는 게 자연스럽다.
“그, 그런데 저 사람들은 왜….”
“저런 건 사람도 아니에요!”
“뭐?”
“아, 정정할게요. 아주 나쁜 범죄자들이죠!”
“…무슨 소리야?”
“직녀 여기로!”
“넵!”
골목 너머에서 화이트 다비흐가 손짓하고 레드 베가는 재빨리 손짓한 골목 안으로 몸을 숨겼다. 오렌지 알타이르도 함께였다.
그리고 그녀들이 지나간 자리에 칼날처럼 날카로운 바람이 불었다. 바람은 콘크리트를 두부처럼 가볍게 썰어냈다.
화이트 다비흐는 재빨리 시체로 이뤄진 방벽을 만들어 그 바람을 막아냈다. 그리고 다시 이동을 시작했다.
“휴~ 일단 살았네요!”
“왜, 왜 그렇게 도망가는 거야. 너 정도 실력이면 괴인 따위….”
오렌지 알타이르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 정도의 강자가 왜 괴인에게 도망가는가.
“음~ 제가 빠르게 설명할 테니 잘 들으세요! 먼저 말씀드릴 건 아까 언니가 쓰러뜨린 사람에 대해서에요. 그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아르고 패밀리를 따르고 있어요. 사실상 적이죠.”
자발적이라니. 아까 섬에서 보았던 사람들과는 다르다. 그들은 괴인에게 납치당한 것을 고통으로 여겼는데, 왜 저 사람들은 괴인을 따른단 말인가.
“왜, 왜?”
“와카리마셍(모릅니다)! 단지 하나는 세뇌가 아니란 겁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레드 베가는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그리고 둘째, 저 괴인은 못 이겨요.”
이것은 오렌지 알타이르에겐 사실상 사형 선고나 다름 없었다.
“너, 너라면 가능하잖….”
“아니요. 왜냐면 저 괴인.”
그들이라면 다를 줄 알았다. 나와 달리 빛나고 재능이 넘치는 그들이라면….
하지만 아니었다.
“불사신이거든요. 안 죽어요. 그것도 모르고 덤비다 지금 마력을 너무 낭비했어요. 지금 가진 화력으론 다가갈 수나 있을지….”
레드 베가는 분한듯 읊조리다가 쓰게 웃었다.
“게다가 저 존나 쎈! 아, 아 죄송해요. 으흠, 저 강한 바람에 당해서 다른 사람들과는 다 흩어졌어요. 일단 다시 모여야 의논 같은 게 가능할텐데 지금 상태로선….”
“…그, 그럼.”
“하잇! 생각하신 대로입니다!”
화이트 다비흐가 고개를 끄덕였다.
적은 괴인만이 아니라 괴인과 함께하는 인간. 거기에 불사신 괴인.
죽일 수 없는 상대 뿐이다.
“저희는 좇되었습니다! 하하하하! 해결이고 뭐고 빤쓰런할 생각이나 해야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