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nsform or death RAW novel - Chapter 122
Chapter 122 – 낭만사망사건 (2)
“뭣…!”
궁수는 놀라 한재중이 방금까지 있던 주위를 둘러 보았다. 반경 1km까지 살폈으나 아무데서도 그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그는 다시 마음을 가라앉히고 시야를 좁혔다.
“별의 힘이군. 그 본인의… 아니, 아마 저 여자의 것인가.”
조력자가 있던 모양이다. 단순히 비밀을 공유한 사이 인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이를 넘어 별의 힘으로 서로를 서포트 해주는 조력자였던 것 같다.
“저 여자도 인간의 몸으로 별의 힘을 다룰 수 있었다니… 마법 소녀도 아닌 주제에… 조심해야겠군.”
궁수의 예상은 정확했다. 조아윤은 최근 능력을 발전시켜 특별한 나비를 만드는데 성공했다.
다른 나비들과 달리 검정 분홍으로 장식된 나비였다.
그 효과는 변신 해제 시에도 사용가능한 순간 이동.
조아윤은 이 나비를 ‘나비-루크바(Navi-Ruchbah)’라고 불렀다.
자신이 미리 지정한 대상만 가능한 데다 무게 제한도 있고 자기 자신을 이동하는 것 역시 불가능하지만, 꽤 쓸모 있는 도구였다.
실제로 지금까지 아무 불편 없이 감시를 진행하던 궁수를 불평하게 만들었다.
쯧. 한 번 혀를 찬 궁수는 즉시 이 도시에 새롭게 느껴지는 별빛을 감지하도록 시야를 넓혔다. 온갖 불가시를 볼 수 있는 그의 눈은 다른 이들이라면 볼 수 없을 별빛의 흐름까지도 보는 것이 가능했다.
곧, 멀리 10블럭 정도 떨어진 한 도시의 구석에서 새로운 별빛이 느껴졌다. 정확한 위치로는 육교 아래였다. 그 그림자 속에서 날카롭고도 차가운 별빛이 몇 갈래로 갈라져 뻗어나가는 걸 보았다. 마치 벼락과 같은 빛의 형태. 궁수는 즉시 그 빛의 주인이 한재중임을 깨달았다.
“한 번 구경이라도….”
할 수 없었다. 궁수가 시선을 집중시키자 그는 이미 사라진 뒤였다. 궁수가 볼 수 있던 건 그가 거기 있었노라고 추측할 수 있을 몇몇 흔적-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구워진 괴인의 시체와 그을린 도로-뿐, 한재중 본인을 볼 순 없었다.
“…대단하군.”
궁수는 그의 활약에 감탄하면서도 의아함을 가졌다.
그곳에 있던 건 사람은 고작 2명 뿐. 그마저도 괴인과의 거리가 멀어 잘하면 마법 소녀가 도착하여 별 피해 없이 끝날 수도 있었다.
물론 수호자의 행적이라면 그렇다고 답할 순 있겠으나….
조금 맥이 빠지는 건 사실이었다. 그가 아니라 다른 사람도 충분히 할 수 있던 일이었으니까.
대체할 수 있는 존재가 과연 영웅인가. 아니면 단순한 사회의 부속품인가.
궁수에겐 후자에 가까웠다. 그 누구도 못할 짓을 태연히 행해야 영웅이라 불러 마땅할 지언데.
그러나 이 의아함도 금방 풀릴 수 있었다.
그가 사라진 자리에 어떤 마법 소녀가 도착했다.
“이, 이런 내가 또 늦었… 아아악! 요새 왜 이렇게 얼굴 보기가 힘든 거에요 내 라이벌은! 옛날에는 직접 찾아와서 한땀한땀 때려주기도 했으면서! 한 번 딴 마법 소녀는 관심 없다 이거죠?”
현장에 뒤늦게 도착한 붉은 머리의 마법 소녀가 고통스런 비명을 질렀다. 모든 사태가 종료되었단 사실에 한참 고통스러워 하다가 이내 한숨을 푹 내쉬곤 너털걸음으로 괴인의 시체에 다가갔다.
“됐어요. 그렇게 마법 소녀인 제 모습이 보기 싫으시다면 직접 찾아가 보여드리죠. 하는 김에 술도 한 병 사가서 장난도… 응? 꺗!”
그녀가 육교 아래로 진입하기 직전, 육교가 무너지며 시체를 짓눌렀다. 다행히 그 아래에 들어가지 않았던 붉은 마법 소녀는 놀란 심장을 진정시키며 주변을 예민하게 두리번거렸다. 아마 출동을 오기 전 괴인이 날뛴 탓에 육교가 느슨해졌던 모양이었다.
“…저거 때문이었어? 그냥 빠르게 베고 튄 게.”
만일 마법 소녀가 출동했더라면 이렇게 빠른 일 처리는 불가능했을 터. 전투 도중 육교가 무너져 내릴 가능성이 존재한다. 아무리 마법 소녀였다고 한들 육교의 육중한 무게에 깔리며 다쳤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저 녀석이 시체 확인 중에 육교 아래에 들어가 부상을 입을 가능성도 있을 텐데….”
마법 소녀가 언제 도착하고 육교가 언제 무너질지를 전부 알아야 가능한 확신 있는 행동.
“설마, 미래라도 보는 건가?”
잠시 곰곰히 생각한 궁수는 픽 웃었다.
“에이 지랄하지마. 그럼 진짜 완전히… 스승님이잖아.”
스카이 폴라리스.
그녀의 마법은 미래 예지. 적의 공격 노선을 미리 읽고 행동하는 덕에 전투 중 단 하나의 상처도 입지 않은 적도 꽤 있다.
만일 자신의 예측이 진실이라면 그 역시 비슷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설명된다.
아니라면, 그 사자에 가까운 예언의 능력이라던가.
궁수는 신경질적으로 팔을 긁었다. 리브라가 괜시리 더욱 원망스러워졌다. 동시에 리브라의 행동을 공감했다.
만일 스카이 폴라리스나 사자, 둘 중 하나에라도 비슷한 힘을 지니고 있다면 리브라가 그렇게 경계하는 것도 다 이해가 된다.
“…역시 그거까진 아니겠지.”
둘에 비하는 존재라고 가정짓는 건 너무 이르다. 게다가 아직 미래 예지를 가지고 있다고 판단하기에도 정보가 적다.
“이 친구가 어디로 갔을까.”
궁수는 마약자국이 잔뜩 박힌 팔을 긁으며 다시 눈을 굴렸다.
살벌하게 도시를 훑던 눈동자가 이내 툭 떨어졌다.
“아 스승님 보고 싶네.”
그녀가 살아있을 시절은 참 즐거웠는데. 지금처럼 인간들이 비관적이지 않고, 마법 소녀들이 고분고분하지 않고, 괴인끼리 서로 눈치를 보지도 않고, 살육과 수호가 밤낮 없이 이어지던 낭만이 있었는데.
“어디로 간 겁니까 쓰승임.”
회한과 추억에 빠져들며 타성에 젖다 궁수는 지취를 감췄다. 다시 한번 리브라에게 쳐들어가 마약을 부탁할 생각을 하며.
**
레드 베가는 최근 불만이 가득했다. 물론 천재 마법 소녀(자칭)인 그녀는 프로페셔널한 표정 관리 능력으로 이 불만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있긴 하지만.
아무튼.
백아희는 많은 불만을 가지고 있다.
가장 큰 불안은 요새 슬럼프가 찾아온 점.
승률 자체는 매일같이 늘어나고 있지만 뿌듯함보다는 권태로움이 늘어갔다.
대작전이라 부를 수 있을 대아르고전에선 어떤 활약도 올리지 못했다. 하지만 여러 자잘한 괴인들은 하품하며 잡을 수 있다.
별빛의 성장은 며칠째 정체 중.
지금의 무력을 설명하자면 강적에겐 약하지만 약자에겐 한없이 강한, 속되게 말해 ‘양학충 최적화’의 무력이었다.
‘만화에서 전투력 측정기로 사용되는 그런 캐릭터같잖아…!’
아니다. 아직 퇴물이 되기엔 이르다. 백아희는 30대가 되어 참한 남자 하나와 결혼 은퇴를 발표하기 전까진 계속 마법 소녀계의 주인공으로 남고 싶었다.
두 번째 불만은 그녀의 문제가 아니었다. 전적으로 타인의 문제.
‘와쳐 씨와 얼굴을 도통 볼 수가 없어.’
한 때 적이며 라이벌이며 스승이자 친구로 지내기로 한 맹약(일방적)은 어디로 팔아먹은 건가.
한동안 안 만나다가 만나면 기쁨이 배가 되긴 하지만 그건 안타까운 엇갈림이 지속되었을 때나 그렇다.
백아희는 최근 그가 일방적으로 자신과의 대면을 피하고 있음을 느꼈다.
‘이제 먹고 살만 해지니까 배가 불렀어 아주.’
그것이 참으로 불만스러웠다. 모양 빠지게 대면을 피하는 라이벌이라니.
게다가 요샌 마법 소녀를 도우며 가슴이 두근거리는 비밀스런 적 겸 조력자 역할도 제대로 안 하고 있다.
‘마법 소녀를 이 세상에서 없애겠단 목적은 어디로 간 거야?! 차라리 배를 발로 밟을 때가 훨씬 빛나고 있었어…!!’
낭만이 다 뒤졌다.
백아희는 그 낭만 빠진 와쳐에게 쌓인 불만을 한재중으로 대신 풀기로 하였다. 아무튼 와쳐와 한재중은 아무 상관이 없으니 ‘대신’이 맞다.
한재중은 불량스럽게 생긴 주제에 놀리는 맛이 참으로 좋다.
그의 잘생긴 얼굴이 곤혹스럽게 일그러지는 걸 보면 놀리기를 참을 수 없다.
[수호자는… 그를 좋아하는 거야? 널 그렇게 괴롭힌 그를?]“응? 에이 그건 아니지. 이건 미학점 관점에서의 쾌감이야. 어린아이에게 산타는 없다며 놀릴 때나 검정색 도화지 위에 백색 잉크를 떨어뜨리는 거 같은 쾌감이지.”
[마법 소녀가 가지면 안 될 쾌감같은데….]자신의 마스코트, 리본의 말에 충격받은듯 백아희의 걸음이 멈췄다. 잠시 곰곰히 고민한 그녀는 곧 웃음을 되찾았다.
“이, 이것도 호승심 같은 거니까 건전해! 타인의 위에 서고자 하는 건전한 욕망이니까!”
[건… 전…?]성인이 된 이후 하루도 빼놓지 않고 미성년자 때 보면 안 될 걸 챙겨보는 자신의 수호자에게서 들을 말이 아닌 거 같지만, 리본은 어차피 그녀를 설득할 수 없단 걸 옛적에 깨달아 말을 말았다.
백아희는 흥흥 콧노래를 부르며 경쾌하게 달려나갔다. 목적지는 최근 신세를 자주 지는 카페 ‘백호’.
밤이 늦은 시간이지만 최근 주류를 취급하기 시작한 덕에 영업 종료 시간이 다른 데 비해 늦다.
어차피 영업 끝났어도 쳐들어갔을 테지만.
“아, 아무튼 난 떳떳하니까? 재중 씨 데네브 언니 저 왔어요! 오늘은 럼주에요! 자 빨리 저만을 위한 특별한 한 잔을 만들어….”
“재중아 가만히 있어.”
“설화야 너부터 가만히 있어!”
“선배 미쳤어?! 빨리 손 놔!”
“…어?”
문을 연 백아희의 눈에 보인 건 얼굴이 빨개진 채 한재중의 바지 벨트를 잡고 당기는 윤설화와 그런 그녀를 말리는 한재중과 조아윤이 보였다.
“아하.”
백아희는 가만히 그들을 살펴보다 문을 닫았다.
밖으로가 아닌 안으로.
자연스레 빈 자리에 앉고 가지고 온 술병을 올려 두었다.
“시리우스 언니 다음엔 저할래요.”
“아희야 대가리 총 맞았니?”
역시 언제 와도 힐링이 되는 장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