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nsform or death RAW novel - Chapter 127
Chapter 127 – 낭만사망사건 (7)
[마법 소녀 본부에 습격이 일어납니다. 수호자는 해당 장소로 가 블루 시리우스를 보호하십시오. 허나 당신이 돕지 않더라도 그 누구도 죽지 않습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불응의 대가는 없습니다.]수락하던 하지 않던 아무런 대가도 없는 퀘스트. 누구도 죽지 않고 언제나 벌어졌던 일상스런 소란처럼 넘길 수도 있는 이야기.
“…수락한다.”
“오빠?”
하지만 한재중은 수락했다.
이유는 단순하다.
그저 나설 수 있기 때문.
“아윤아 그럼… 같이 나갈까?”
생명에 국한되지 않더라도 중요한 가치는 차고도 넘친다.
뭐든지 판단은 미래에서 일어날 일.
이 퀘스트에 불응한다고 해서 아무런 불행이 없을 거라 누가 자신한다 말인가.
설령 아무런 의미가 없었단 결과가 돌아올지라도 상관 없다.
지금은 가장 후회하지 않을 선택을 할 뿐이다.
“변신할 시간이야.”
그렇기에, 한재중은 이 결정을 후회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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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재중은 어이가 없단듯이 궁수를 바라보았다. 궁수의 얼굴은 지금도 자신만만했다.
“무슨 소리를 하나 했더니만.”
그에게 있어 궁수는 처음 보는 괴인에 불과했다. 초면인 상대가 뭐든 걸 다 안다는 듯이 자신만만하게 소리치는 꼴을 보니 기가 찼다. 딜레마와 처음 조우할 때에 느꼈던 그 감각을 다시 한번 감지했다.
“개소리는 적당껏 해라.”
“개소리? 정말 단순히 개소리로 치부할 수 있을까?”
궁수의 말을 무시하며 한재중은 주변을 둘러 보았다. 벼락의 이동 속도가 상당했는지 이 짧은 이동에도 불구하고 마법 소녀 본부의 건물이 멀게만 느꼈졌다.
그 속도에 맞먹는 반동 역시 느껴졌다. 한재중은 머리가 핑 도는 아찔한 고통을 느꼈다. 만일 변신을 하지 않았더라면 다시금 코피가 흘러내렸겠지.
왼쪽 눈 역시 평소보다 더욱 욱씬거렸다.
‘나한테 뭔짓을 한 거냐 레드 스피카….’
비르고의 마지막 치료가 시원찮았던 건지, 아니면 그저 큰곰자리의 각성 당일날에 있었던 일이라 비르고의 탓이라 착각된 건지. 무엇이 원인이든 지금 그에게 나타난 결과가 좋지 않단 사실 만큼은 확실했다.
‘뭘 했다고 벌써….’
몸에 부하가 걸리는 게 너무 빠르다.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적어도 변신이 해제된 후에 급격한 피로를 느낀다면 모를까 변신 도중에 이런 현상이라니. 이러면 뭘 하지도 못한다.
“너도 참 의심이 많은 놈이네. 요새 애들은 다 이러나? 쯧, 적의 말이라도 대충 충격적이면 다 믿는 게 정석 아냐?!”
“그런 너야 말로 의심이 너무 없군. 누구에게 들은 사안이길래 그리 자신 있게 떠벌 거리는 거지. 신뢰할만한 인물에게 얻은 정보이기라도 하나? 아니면 그 말에 근거가 있나? 잘 모르는 일이면 가만히 있는 게 상책이다. 쓸데 없는 루머를 퍼뜨려서 여러 사람 피보게 하는 멍청한 짓 하지 말고.”
궁수는 그의 일침에 짐짓 당황했으나 지지 않고 말했다.
“내, 내가 악당인데 왜 남의 피해를 신경 쓰냐? 멍청한 건 너잖아! 이 짐승 대가리 새끼!”
듣고 보니 이건 또 맞는 말이라 한재중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근데 잠깐, 너 진짜 시한부 아니야? 수명이 깎아내리는 느낌 그런거 없냐…? 하 시발 이상하네….”
궁수는 확인하듯 한재중에게 물었다.
“아니 왜 대답도 없어. 괜히 불안해지게.”
저 반응으로 보아 궁수 역시 해당 정보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지 않은듯 했다. 자신만한했던 것 치고 금세 자신감을 잃어버린 저 우스꽝스러운 꼴을 보면서도 한재중은 웃을 수 없었다.
“야! 너 정말 모르겠냐? 네 몸 씹창나고 있다는데?!”
부정하긴 했지만 한재중은 궁수의 말을 완전히 헛소리로 치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짚히는 부분이 넘쳐났다.
만일 그간 느낀 피로가 단순한 피로가 아닌 몸에 보내는 적신호였다면.
지금 벼락의 사용에 현기증을 느끼는 이유가 몸이 견디기 힘들단 신호였다면.
별빛의 정제 없이 과도한 접촉을 이어나간 끝에 생명에 한계가 도달했다면.
옛날 아직 미디어를 볼 수 있을 적 뉴스로 접한 마약 중독자의 모습을 떠올리며 한재중은 눈살을 찌푸렸다.
신체 일부분이 흉측하게 변하고 뇌세포 대부분이 파괴되어 움직이지도 못한 채 천천히 죽음에 빠지던 모습.
한재중은 자신도 그런 결말을 맞는다 생각하니 문득 오싹해졌다.
‘벨트. 저 녀석의 말이 사실이야?’
[….]‘최근 퀘스트의 빈도수가 줄은 이유도 이거 때문이었어?’
“벨트, 대답.”
[….]“뭔가 말이라도 해보지 그래…..”
최근 들어 유난히 말이 늘은 벨트는 묵비권이라도 사용하겠단 것처럼 침묵을 지켰다. 한재중이 작게 벨트와 실랑이를 하던 와중에도 궁수는 계속하여 투덜거렸다.
“보티스 그 년이 나한테 구라를 친 거야?!”
“…돌겠군.”
한재중은 문득 반응해버렸다. 보티스. 현재 벨트의 비밀을 가장 많이 알고 있는 자. 보티스가 전해준 정보라면 안타깝게도 꽤 신뢰할만한 가치가 있었다.
궁수는 그가 더 이상 자신의 말을 헛소리로 치부하지 않음을 느꼈다. 보티스에게 거짓 정보를 전해 들어 엿을 먹지 않았단 점에 안도하는 한편 지금까지 느꼈던 불쾌감을 가득 담아 조롱을 시작했다.
“그래, 너도 뭔가 찔리는 게 있잖아! 내 말 맞지? 이 짜리몽땅한 촛불 같은 새끼! 열심히 발광해봐! 어차피 뒤지겠지만!”
한재중은 조용히 도끼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여유가 없어지고 예민이 극에 달했기 때문일까, 평소 같았으면 무시했을 괴인의 조롱이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점차 짜증이 솟았다.
왜 벨트는 지금까지 이런 중요한 사실을 숨기고 있었으며 보티스 역시 왜 이제 와서 이 사실을 알려준 거지.
저 경박한 괴인은 누구길래 블루 시리우스에게 마수를 뻗으려 했으며 왜 하필 지금 그 사실을 알려 마음을 어지럽히는 건가.
오늘의 퀘스트는 이걸 듣기 위해서 였던 건가? 설령 아무 의미가 없는 결과가 돌아올지라도 블루 시리우스에게 해가 없길 바래 나왔다. 하지만 돌아온 건 이런 힘 빠지는 소식 뿐이다. 의미보다 낭만을 택했건만 낭만을 실천할 의욕을 전부 잃어버렸다.
오늘 나온 결심은 고양이에게 뜯긴 음식물 쓰레기 봉투 마냥 헤집어졌다. 사실 그 전의 모든 결심도 그렇다.
어차피 넌 죽을 거라니, 이건 넌 아무 의미 것도 이루지 못하고 쓰러진단 조롱 아닌가.
“스승님처럼 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실망했어. 망할, 리브라는 이런 새끼가 뭐가 대단하다고….”
“스승님? 그게 누구지?”
“당연히, 스카이 폴라리스지! 내가 존경하고 따를 인물은 그 사람 하나 뿐이야!”
또 저 이름이다. 저 사람은 죽은 주제에 뭐이리 남긴 게 많을까. 도대체 나에게 뭘 원하길래 이리도 나에게 뭘 이리도 많이 선사했을까. 시련을 극복할 수단을 주었다면 그 수단에 대한 부작용도 설명했어야 하는 게 아닌가.
흥분하기 시작한 괴인과 달리 한재중의 마음은 점차 차게 식어만 갔다.
“스승님께 무언가 직접 가르침을 전해 듣거나 그 분이 나를 제자로 불러준 적도 없으며 사실 대화도 나눠본 적 없긴 하지만… 그래도 상관 없다! 책으로 전해 들은 과거의 성현들을 스승으로 삼을 수 있듯, 나 역시 그럴 수 있겠지. 특별히 이상한 건 아무 것도 없다. 너 역시 그 분을 뵈었다면 경배했을 테니.”
한재중은 더 이상 그의 말을 듣지 않았다. 쥐어잡은 도끼에선 벼락이 폭포처럼 흘렀다.
[오빠? 지금 갈까?]벨트 너머에서 조아윤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그녀는 미리 상의한 대로 후방에서 나비를 통해 상황을 전체적으로 조율하는 역할을 맡아 주었다.
더 정확하게는, 마법 소녀와 만나지 못하게 나비로 억지로 거리를 벌려주는 역할이었다.
지금은 저 괴인의 퇴치에 자신이 도움을 줄까 물어본 것이었다.
한재중은 그에 대답하는 대신 도끼를 치켜 올렸다. 도끼에 가득 묻어 있던 벼락이 후광이 되어 그의 앞에 커다란 그림자를 씌웠다.
“뭐냐. 화풀이냐? 미안하지만 난 이제 용무가 없거든. 재미 있는 구경도 못하게 생겼고 더 이상 있을 필요도 없으니 이만 가본….”
궁수의 뒷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도끼에서 곧게 뻗어 나온 벼락은 도로를 체스판이라도 뒤집듯 가볍게 휩쓸며 궁수의 몸에 커다란 상흔을 남겼다.
“억… 커헉! 이 망할 놈이 내가 누군지 알고….”
“모른다.”
궁수는 즉시 활을 들어 반격을 개시했다. 허나 그 활에 화살을 걸기 직전, 화살을 잡고 있던 팔이 한재중에게 붙잡혔다.
“몰랐다.”
쾅! 팔을 잡은 그대로 땅에 패대기쳤다. 깨진 아스팔트 도로의 조각이 궁수의 등에 십 수개 박혔다. 궁수는 피를 토했다.
“몰라야 했다.”
[오빠? 오빠? 왜 그래 대답 좀 해봐!]한재중은 통신을 끊었다.
“나는 힘을 쓰는데 주저가 없어야 했다. 나에게 남은 적은 너무나 강대하고 난 아직 미숙하다. 문제는 개인 혼자서 해결하기엔 너무나 광활하고 난 아직 작았다. 그렇기에, 행동 만큼은 강단 있어야 했다. 내가 믿는 길 만큼은 망설임 없이 나갈 수 있어야 했다. 어둡더라도 한 발자국 앞으로 나갈 수 있어야 했다.”
하지만 지금, 그 망설임이 생겨났다.
작은 의혹이지만 확신이 되기 충분한 의심이었다. 무지의 나날 속에 나타난 몇 가지의 증거는 사람을 믿음으로 이끌었다. 그는 자신의 짧은 삶을 광신했다. 합리적인 광신이었다. 설령 광신하지 않았어도 같았으리라.
의심만으로 망설이기엔 충분하니까.
신뢰가 있으니 억울함마저 느껴졌다. 무엇을 그리 잘못했길래 이런 꼴을 맞아야 한단 말인가. 이 꿈을 꾸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던 일이었단 말인가.
“그러니, 나는 몰라야 했다.”
“시발 뭔 개소리를….”
“그러니, 이건 화풀이다.”
한재중은 궁수가 날뛰기 전에 다리를 눌러 움직임을 막았다. 한 쪽 다리 한 쪽 팔이 각각 구속된 상태. 이 자를 장작 패듯 패기에 충분한 각도였다.
“좇 같은 말투 좀 그만하면 안 되냐?”
궁수는 씩 웃었다. 한재중은 그 부탁대로 입을 다물어주었다. 도끼를 휘둘렀다.
단단한 몸통에 쩍 하니 도끼가 박혔다. 도끼질 보다는 망치질에 가까운 휘두름이었다. 단 한칼에 허리를 반으로 가를 수 있으면서도 한재중은 그러지 않았다.
별빛을 과도 사용하는 데 무의식적으로 경계심이 생겼기 때문인지 아니면 방금 말했던 대로 화풀이인지 그 자신도 몰랐다.
일 초에 십 수 번 도끼를 휘둘렀다. 한 곳만 때리면 재미가 없으니 여러 군데를 동시에. 수수했던 붉은색 갑주에 점차 금이 생겼다.
한재중은 그제야 궁수를 자세히 관찰할 수 있었다.
몸 전체를 감싼 붉은색 갑주. 투구는 특이하게 벌레의 모양을 닮아 있었다. 특히 눈이. 겹눈처럼 육각형 모양의 패턴이 그려진 렌즈. 허리는 중앙에 쇠공이 있는 벨트가 장착되어 있다. 이 쇠공이 도끼로 치기 힘들어 유독 거슬렸다.
이름도, 무슨 별자리인지 들은 적도 없었지만 대충 활을 들고 있으니 궁수자리라고 판단했다.
그러고보니 궁수자리라고 하니 북두칠성의 반대에 있다는 남두육성을 가지고 있는 별자리란 사실이 떠올랐다.
지금 중요하지 않은 사실이기도 하여 한재중은 화풀이를 계속했다.
“이 시발….”
궁수가 다시금 힘겹게 입을 떼었다. 한재중은 그의 목소리가 들린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궁수의 핼멧이 깨져 있었다.
“스승님처럼 좀 세게 패 봐… 그래선 뒤지지도 않고 절망도 안 해… 낭만 없는 새끼….”
한재중은 순간 눈을 의심했다. 그 깨진 헬멧, 렌즈의 사이에서.
“…너. 뭐냐.”
사람의 눈이 보였다. 생기는 없었다. 미라의 눈과도 같이 마르고 부패된 눈. 허나 분명 사람의 것인 눈이었다.
“뭐긴 뭐야 아까 말했잖아. 아 안 말 했나?”
순간, 나비가 불었다. 그 나비가 닿기 직전 한재중은 그의 말을 마저 들을 수 있었다.
“궁수자리, 전 남두육성 사지타리우스다.”
그리고 풍경이 바뀌었다. 하늘이 드넓게 펼쳐졌다.
“미안 오빠, 통신을 안 받아서 바로 불렀어.”
“….”
“오빠 말대로 마법 소녀가 접근하지 못하게 하려고 했는데… 선배가 보통이 아니라서. 임시방편으로 오빠부터 회수했어.”
오데트의 시선을 따라 방금 전 있던 자리를 바라 보았다. 언제 온 건지 블루 시리우스가 도달해 있었다. 그녀가 온 자리엔 차가운 빙판길이 꼬리표 처럼 자리 잡혔고, 그녀의 시선은 빙판길보다도 더 차갑게 이 쪽을 노려 보는 중이었다.
“나비에 닿기 전에 분신으로 빠져나가더라고. 본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파훼법을 만들어내다니… 아니 진짜 왜 시간이 들 수록 더 강해지는 거지? 이해가 안 되네.”
그 시선을 이해하지만 뼈 아픈 건 어쩔 수 없었다. 한참 이쪽을 노려보던 블루 시리우스는 시선을 돌려 궁수자리를 바라 보았다.
“오빠 그래서 어쩔래? 저 괴인도 이동시켜서 끝을 볼래? 아니면….”
조아윤은 한숨을 푹 쉬고 소리 질렀다.
“오빠!”
“어? 어, 어어….”
“왜 그래. 아니 벌써 변신도 풀었네?! 오늘은 끝이야?”
“…어, 그러자.”
방금 전 있던 자리에도 끝이 고해졌다. 궁수 자리는 언제 든 건지 다시 사슬 활로 빌딩 사이를 이동하기 시작했다. 블루 시리우스는 한숨 쉬며 그의 도주로를 쫓았다. 아마 별안간 궁수는 도망치는 데 성공하겠지.
허망히 그 추격전을 쳐다보고 있자 조아윤이 다시 물었다.
“뭐야 왜 그래 오빠, 뭔 일 있었어?”
한재중은 뭐라 대답할까 고민하다가 끝내 입을 열었다.
“…딱히, 아무 일도 없었어.”
별과 계약하며 생명을 되찾은 몸이 별로 다시 죽어 간다니. 이 무슨 모순인가.
의무를 이행하지 못하면 죽음에 처하는 몸은 의무를 이행할 수록 죽어가게 되었다.
꿈인가 삶인가.
사명인가 수명인가.
낭만과 사망.
둘 중의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난 이제부터 택해야 하는 사건이 발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