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nsform or death RAW novel - Chapter 128
Chapter 128 – 몰락의 삶 (1)
쾅!
녹슨 철문이 거칠게 열리며 굉음을 토해냈다. 폭력적인 소음은 세심한 조작을 요구하는 작업에 불필요한 것이었다. 리브라는 이 방 안에 필요 없는 걸 들여온 불청객을 향해 불만을 내비쳤다.
“나가라.”
“어… 헉… 헉….”
불청객의 정체는 궁수였다. 딱히 놀랄 사실도 아니었다. 이 정도로 천박하게 이 공방에 들어오는 건 궁수 뿐이었으니.
다만 궁수가 한 꼴에는 조금 놀랐다. 그의 몸을 이루는 갑주 대부분이 찌그러지고 깨져 있었다. 이쯤이면 갑주가 아닌 넝마라 부르는 편이 알맞을듯 했다.
얼굴 역시 비슷한 모습이었다. 인간으로 치면 겉가죽에 해당하는 투구가 갈라지고 깨져 투구 속 얼굴 일부를 노출시키고 있었다. 사람이라면 근육이나 뼈가 노출된 것과 다름 없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깨진 투구 안은 피로 범벅이 되어 속을 보지 못하도록 가리는 중이었다.
그의 꼴을 가만히 훑은 리브라가 중얼거렸다.
“끔찍하군.”
“시이발… 주사기… 내놔…!”
궁수의 말을 가볍게 무시하며 리브라는 손에 든 시험관으로 시선을 돌렸다. 당연히 궁수에게 줄 약물은 아니었다.
앞서 하고 있던 실험을 계속하는 것에 불과했다.
“하 시발… 정 없는 새끼.”
궁수는 한숨을 푹 쉬며 방 한구석에 위치한 소파로 몸을 던졌다.
“걱정 마라. 치료 정도야 해주지.”
“시발 그딴 거 말고… 주사기 한 대만 놔주라고… 약 좀 달라고!”
리브라는 아무 말 없이 시험관 안 액체를 비커에 부었다.
수박 두세개를 한번에 잡을 수 있을 정도의 솥뚜껑만한 손으로 자그만 실험 도구를 조심스레 다루는 모습이 퍽 우스꽝스러웠으나, 그 아무도 웃질 않았다.
“놈에게 당했나 보지?”
“놈이 누구… 아, 그 곰새끼? 어, 당했다. 이걸 어떻게 아는 거야. 누가 소문 내나….”
“새삼스러운 말이군. 이 도시에 내 눈과 귀가 얼마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뭐야 너 신체 무한 복사 능력 같은 것도 가지고 있어?”
“…말을 말지 천치놈.”
궁수는 어리둥절했다. 눈과 귀를 늘리는 능력이 있다곤 못 들었는데. 하긴, 그 거래 능력으로 만들면 될 일이지.
그가 자신 나름대로 납득을 한 뒤, 리브라의 조롱은 계속 이어졌다.
” 망나니놈이 유일하게 쓸모가 있던 싸움에서도 머저리 같아졌군. 궁수가 근접전을 왜 하는 거지?”
“스승님과 대등하게 싸웠다던 헤라클레스도 궁수였다. 나라고 해서 근접전을 못할 이유는 없….”
“궁수면서 전사였지. 머저리놈, 근접과 원거리 모두 만능이었던 자와 자신을 비교하지 마라. 부끄럼을 모르는 것도 정도가 있지.”
쯧쯧. 한심하단듯 혀를 찬 리브라가 궁수에게 눈을 돌렸다.
“그래서, 어땠지?”
지금까지와는 달리 그 말엔 묘한 기대가 서려 있었다. 궁수는 저 기대의 대상을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눈치가 없는 그라고 할지라도 모를 수 없을 만큼 기대하고 있는 사람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한재중.
인간임에도 특이하게 괴인의 힘을 쓰고 있는 자.
그 부작용으로 수명을 잃은 자.
“아니 뭐 별 거 없었….”
궁수는 평소처럼 허세를 부리는 한편 한재중의 결말에 대해 알려주려다 이내 생각을 바꾸었다.
‘이대로 내가 시한부를 알려주는 건 재미가 없지. 무엇보다… 저 놈이 좋은 꼴 보는 건 싫어!’
이대로 리브라가 한재중의 수명을 모르게 된다면 그는 이대로 신마약 개발에 더욱 몰두할 터이고,
이후 그는 한재중이 어이없게 죽는 꼴을 보며 개발에 투자한 시간과 자원을 후회할 것이다.
평소부터 합리를 부르짖는 그에게 있어 무의미해진 투자란 참으로 뻐아프겠지.
“…지 않고 엄청 세더라! 아주 꼼짝도 못하겠던데?! 내가 개미라면 그놈은 곰이야. 곰! 이야~ 대단하더라. 어! 아주! 어? 개~쩔었다고!”
엿 좀 먹어봐라. 궁수는 음흉한 웃음을 속으로 삼켰다.
만약 사실을 알릴 경우 리브라가 개발을 접고 다시 본래 마약을 생산할지도 모를 일이었지만, 궁수는 그것까지 떠올리진 못했다.
“흠… 그정도는 아닐 텐데. 하긴, 그간 오만했던 만큼 큰 충격으로 돌아온 건가….”
리브라는 궁수의 과장된 칭찬을 미심쩍게 받아들이며 비커를 책상에 내려놓았다.
“이제 내가 왜 그에게 주목하고 있는지 슬슬 감이 잡히겠군. 오늘의 전투는 cctv를 입수하여 귀중한 참고 자료로 삼겠다. 너의 희생을 잊지 않으마.”
“나 아직 안 죽었거든?! 그리고 고마우면 주사기로 줘. 주사로.”
이번에도 궁수의 말을 무시하며 리브라는 조용히 책상 위 흩뿌려진 서류들을 바라보았다.
서류에는 다양한 인물이 찍힌 사진과 그 사진 속 인물의 인적 사항이 적혀 있었다. 면접 서류를 닮은 양식의 그 서류는 리브라가 자신의 정보력으로 정리한 주요 실험체 대상 리스트였다.
“저 놈이 당할 정도라면 다음 실험체는 더 신중히….”
그렇게 서류 더미를 살피는 리브라를 바라보며 궁수는 이마를 짚었다.
겨우 도망쳐 이곳으로 온 걸 불찰이다 싶었다. 보기만 해도 열불이 오르는 곳에 올바에 차라리 보티스네에 가는 게….
‘아니 그건 아니지.’
궁수는 즉시 생각을 수정했다.
‘리브라는 받은 만큼 주기만 하면 돼. 뒷말이 없어서 깔끔하단 말이야. 치료비가 싸지는 않겠지만 안 받는 것보단 낫겠지. 하지만 보티스 그 년은 아니야.’
보기만 해도 소름이 돋을 듯한 자애로운 웃음 소리와 눈빛. 그간 해를 끼친 적은 단 한번도 없지만 궁수는 왠지 모르게 보티스가 껄끄러웠다.
역시 기억을 잃었을 무렵 가장 먼저 만난 괴인이라 그런가. 자신의 기억을 지운 주체가 그녀라는 생각을 도통 지울 수 없었다.
“스승님은 왜 그딴 년이란 친구를….”
다시 한번 스승을 떠올리며 궁수는 추억에 잠겼다.
“내가 스승님을 언제 처음 만났더라….”
하나도 떠올리지 않지만 분명 좋은 추억일 것이다. 스승님이 날 죽이려 했거나 뒤에서 스승님이 괴인을 도륙하는 풍경을 바라본 것 따위의 운명적인 첫 만남일 터였다.
죽음을 생각해본 궁수는 새삼스레 오늘도 죽을 뻔했단 사실을 떠올렸다. 목숨을 위협당한게 얼마만인지.
당장 몸 하나 까딱이기 힘든 중상을 입힌 상대임에도 불구하고 궁수는 한재중에게 공포는 커녕 원망조차 느낄 수 없었다.
그저 아쉬워할 따름이었다.
“아쉽다 아쉬워….”
사랑하는 사람의 비극적 운명을 들은 여인이 어떤 반응을 할지. 사랑과 비극의 만남이 또 낭만인데.
“아쉽네….”
궁수는 미련이 남은듯 계속 아쉬움만을 되풀이했다.
**
“재중아 괜찮아?”
궁수와 만난 날의 저녁. 윤설화가 한재중을 찾아왔다. 변신까지 하며 찾아온 모양인지 모습은 일상복이 아닌 마법 소녀 복장 그대로였다.
“어? 어어….”
갑자기 어디 있냐는 연락을 하길래 솔직히 말하니 전화가 끊겼다. 그렇게 의아해 하고 있을 무렵 몇 분도 안 되어 바로 찾아온 것이다. 오늘은 마법 소녀 협회에 직접 괴인이 습격한 날이라 상당히 바쁠 텐데.
한재중의 머릿속에 물음표가 점차 많아지는 한편 윤셜화가 그의 양 팔을 움켜쥐었다.
“정말 괜찮은 거 맞지? 어디 다친 데는 없어? 몸에 위화감을 느끼는 부분이라던가, 호, 혹시 협박 그런 건 안 당했니? 몸에 폭탄 같은 걸 심어놨다던가. 오늘 유난히 시선을 많이 느꼈다던가. 그런거 없어?”
그녀의 손이 급박하게 한재중의 몸을 더듬었다. 이 이상한 모습에 한재중은 변태같다기 보단 걱정이 먼저 들었다. 한재중은 자신의 가슴과 허리 부근을 어루만지는 윤설화의 손목을 잡아 몸에서 떼놓으며 물었다.
“…무슨 일 있었어?”
“아, 그, 그게에… 있잖아….”
손목을 잡힌 윤설화의 손가락이 안으로 굽어졌다. 아까까지는 열심히 몸을 만졌으면서 이제 와서 부끄럽다는 듯 시선을 피하고 몸을 꼼지락거렸다.
‘…재, 재중이 눈빛 멋지다… 아, 이러면 안 되는데.’
잠시 그의 진한 시선에 넋을 잃었던 윤설화가 수줍음을 참고 다시 고개를 올렸다. 태양빛에 눈을 맞추듯이 각오 어린 태도였다.
“그게….”
긴장된 눈빛으로 그의 한재중의 눈을 직시한 윤설화는 한 가지 깨달았다. 그의 눈빛 한켠에 의아함과 당혹스러움이 맺혀 있음을.
‘…나 설마 급발진 해버린 건가?’
윤설화는 자신의 행동을 반성했다. 그와 동시에 그가 자신을 너무 걱정하지 않도록 얼버무렸다.
“그, 지, 진짜 별 건 아니야! 그냥 오늘 괴인의 입에서 네 이야기가 나온 거라서. 잠시 생각 나서 들른 거 뿐… 응, 진짜 이거 뿐이야!”
“별 거 아닌 게 아니잖아.”
조아윤이 어이 없단듯 눈을 찌푸리며 커피를 홀짝였다. 윤설화가 한재중에게 전화 했을 무렵에 그가 있던 장소가 조아윤의 집이었기에 당연히 그녀도 있었다.
“괴인 새끼들이 또 지랄을 했네… 아, 그래도 일단 너무 걱정하진 마. 나랑 오빠는 오늘 하루종일 집에서 뒹굴거렸으니까. 지금까지 딱히 나쁜 일이 있진 않았어.”
조아윤은 그렇게 변명하는 한편 한재중에게 의미심장한 시선을 보냈다.
‘오늘 뭔 일이 있던 거 맞잖아 시발.’ 이란 뜻을 담은 시선이었다. 한재중은 그것을 못 본 척 하며 다시 윤설화를 쳐다 보았다.
“저, 정말이지…? 오늘 아무 일 없었지?”
피 흘리는 주인을 바라보는 대형견과도 같은 눈망울로 그를 올려다 보고 있었다. 주인을 걱정하는 한편 그 대상의 복수를 다짐하는 각오까지 느껴졌다.
“정말이라니까. 오늘 아무 문제 없었어.”
한재중은 자신이 뱉은 이 말에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말 그대로였다. 오늘은 아무 문제 없었다. 정말 평소처럼 행동했을 뿐이다.
퀘스트를 따라 변신하고 출동하고 괴인과 전투하고. 이젠 하나의 습관처럼 굳어진 하루의 흐름이었다.
이 말 자체에 거짓은 없었다.
다만, 이 하루가 아마 남들보다 더 귀중할 하루일 뿐.
10억을 가진 자산가에게 100원 정도는 버려도 상관 없을 가치일 테지만 1000원을 가진 가난뱅이에게 100원은 보다 무겁게 다가올 테니.
한재중은 자신의 삶이 얼마나 남지 않았음을 아직 그리 실감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예상할 뿐이었다. 이 하루의 가치가 이제 보다 무거워 질 것이라고.
“…다행이다아….”
윤설화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한숨 한켠엔 약간의 물기 마저 섞여 있었다. 그녀가 자신의 안부에 얼마나 많은 신경을 쓰고 있을지 짐작이 되었다.
하지만 그 한숨의 의미가 모든 걸 안도했단 뜻은 아니었다.
윤설화는 그의 눈을 빤히 바라보다 이내 무언가 결심한듯 고개를 끄덕였다. 방금 전보다 훨씬 강한 결의가 느껴졌다. 얼음 같은 투명한 눈동자 안에서 불꽃이 튀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으, 그게… 재중아. 우리 집에서 살자. 나랑 한동안만 같이 있자. 응? 내가 괜찮아진 거 같으면 다시 보내줄 테니까아… 응? 응? 안 될까 재중아?”
“그게 무슨 소리야 선배… 사실상 감금이나 다름 없는 소리잖아.”
“가, 감금?! 그게 무슨 무서운 소리야 아윤아. 나 그런 나쁜 사람 아니야… 아 맞다 아윤아 너도 우리집에 와. 혹시 모르잖아. 그러고보니 네 별빛과 비슷한 괴인을 쓰는 괴인도 나타났고 너에게 무슨 해가 끼칠지도….”
“됐어 됐어. 그거 오바야. 과민 반응이라고.”
윤설화는 지지 않았다.
“과민 반응이라도 괜찮고 오버 하는 거라도 괜찮아. 원래는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이젠 아니야. 그냥 예민하고 무신경한 사람이 될래.”
윤설화는 한재중의 손을 붙잡으며 떨었다.
“재중이가 내가 지키지 못해 다친다고 생각하면 난 정말… 못 버틸 거 같아…..”
한재중은 그녀의 떨림을 피부로 느끼며 생각했다.
이 사안을 어떻게 전달해야 할까. 어떻게 말해야 할까. 말할 수나 있을까. 불이 번지듯 마음이 새까맣게 타들어만 갔다.
그날 밤. 억지로 본인의 집에 한재중과 조아윤을 데려 가려 했던 윤설화를 간신히 말리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녀의 불안을 전부 지울 수는 없어 끝내 조아윤의 집에 다 같이 묵는 형식으로 그녀를 설득 시켰다.
“재,재중아. 그게… 샤워… 네가 다음 차례… 라고….”
부끄러운듯 타올로 얼굴을 가린 윤설화가 쭈뼛쭈뼛 벽 옆에서 나와 용건만을 전하고 빠르게 사라졌다. 한재중은 그 풍경을 피식 웃으며 지켜보았다.
통통.
몸을 일으키자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한재중은 의아한듯 고개를 돌려 창을 바라보았다.
염소 머리를 한 특이한 새가 창문에 머리를 부딪히는 중이었다. 그 새의 부리엔 쪽지 같은 게 물려 있었다.
한재중은 그 쪽지의 내용을 살펴 보았다.
‘설명이 부족한 거 같아서. 내가 궁금한 거 다 알려줄게. 물어봐. -보티스.’
다시 한번 그의 마음이 착잡하게 번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