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nsform or death RAW novel - Chapter 134
Chapter 134 – 몰락의 삶 (7)
레드 베가는 잠시 멍하니 한재중을 쳐다보았다. 언제 새로운 화살이 쳐들어올지 모르는 긴급한 상황. 일 초가 급했지만 그녀는 현실을 파악할 겨를이 없었다.
“…네?”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되묻는 게 지금 그녀가 할 수 있는 행동의 전부였다.
“아, 아니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 세요. 이상한 말 마세요. 지금은 그런게… 그런게….”
중요하지 않아요. 레드 베가는 그렇게 말하려다 입을 닫았다.
한재중은 지금 자신의 시한부를 시인했다. 즉 그에게 남은 삶은 그리 길지 않다는 뜻이다. 지금 그를 지켜봤자 언젠가 허무하게 목숨을 잃는다.
거기에 그는 목숨을 잃는 순간 괴인으로 변한다고 하였다. 보통 같았으면 헛소리라며 무시했을 말이지만 수상한 면이 워낙 많은 그라면 왠지 모르게 가능할 거 같았다.
애초에 지금 그를 지킬 수 있을 거란 확신조차 얻을 수 없다. 적은 아주 먼 거리에서 원거리로 공격을 해오고 있다. 일방적인 공격에 방어만 급급하다.
저쪽이 지쳐 떨어지기를 기다리거나 동료들이 적을 찾아 공격을 멈추는 걸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둘 다 요원해 보인다. 저쪽이 지치기 전에 이쪽이 먼저 나가 떨어질 확률이 높고, 다른 동료들 역시 자신과 비슷한 역경을 겪고 있기에 조력은 상당히 시간이 걸린 후에야 가능하겠지.
마법 소녀들을 도와주는 두 기묘한 괴인의 등장을 기다린다는 도박도 불가능하다. 레드 베가가 개인적으로 그들에게 의존하고 싶지 않다는 게 아니다. 현실이 그렇다.
와쳐의 등장은 사실상 불가능하고, 오데트란 카시오페아자리의 괴인도 아마 그럴 터.
그 괴인의 순간 이동 능력은 뛰어나지만 동시에 치명적인 단점도 존재한다. 나비라는 표창을 매개 삼아야지만 이동 능력을 시도할 수 있단 점.
다른 말로 하자면 그 나비의 존재만 커버할 수 있으면 어떻게든 이동을 틀어 막을 수 있단 뜻이다.
레드 베가는 어딘가를 향해 비처럼 많은 수의 선이 빠르게 그어지고 있는 걸 보았다. 하나하나의 위력은 보잘것 없었지만 속도는 하나만큼은 확실했다. 음속을 가볍게 뛰어넘는 별의 화살은 완벽하게 나비를 틀어막고 있겠지.
‘아마 여기까지 오려면 꽤 많은 낭비가 필요할 거야.’
레드 베가의 예측은 정확했다.
[오빠! 대답 좀 해봐! 오빠! 내가 전에 준 나비는 어디로 팔아 먹은… 이런 시발! 야 왜 내 말 씹는데! 내가 뭐 잘못했어?! 그, 그런 거 있으면 사과할 테니까아… 제발 좀 연락 좀 해봐…! 응? 제발… 내가 뭐라도 도울 수 있게 해달라고….]한재중의 벨트를 통해 조아윤의 조급한 목소리가 연결되었다. 하지만 슬립 모드에 빠져든 벨트는 다른 벨트와 연결만 되어 있을 뿐 전달하진 않았다. 통신은 연결 되었지만 상태가 음소거인 전화기와 다를 바가 없었다.
[대답 좀 해봐 제발… 나 너무 불안해 미칠 거 같다고…!]조아윤의 목소리는 한층 절박해졌다. 그 목소리는 이번에도 전달되지 않았다.
한재중 본인이 벨트를 조작하여 음성을 들을 순 있겠지만, 지금 그에게 그런 생각을 할 여유는 없었다. 애초에 그는 지금 조아윤이 자신에게 말을 걸고 있단 것도 깨닫지 못했다.
레드 베가가 자신으로 인해 쓸데없는 위기에 빠졌다. 이 와중에도 변신을 주저하고 있는 자신에게 환멸이 생겼다.
언제 죽을지 모른다. 이 사실 자체는 별 문제가 없다. 이건 모든 생명이 겪는 동일한 상황일 테니까. 죽음은 평등하다. 예고 없이 찾아오는 불명확한 결말.
그러나 이 사실에 ‘가깝다’가 추가되는 순간 상황은 순식간에 뒤바뀐다.
언제 죽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죽음은 가깝다.
이 순간 불명확했던 죽음에 미약한 실체가 생긴다. 그 실체는 어두운 미궁과도 같은 것이라, 탈출이 불가능하다는 절망을 줌과 동시에 이곳을 빠져나가야 된다는 조바심과 불안을 선사한다.
이룰 수 없는 꿈과 제대로 묶이지 못하고 끊어지는 관계들, 완수하지 못한 과업과 남겨야 할 자국들. 그 모든 게 한재중을 괴롭혔다.
언제 자신을 덮칠지 모르는 가까운 죽음. 게다가 죽음 이후에도 끔찍한 행적이 예언되어 있다.
“빨리, 도망가세요.”
한재중은 그렇기에 레드 베가에게 이렇게 말했다.
곧 죽는데다 죽은 이후에도 도움이 안 될 사람에게 헛된 시간을 소비하지 말라고.
레드 베가 역시 그걸 모르지 않았다. 그의 도망가란 말 뒤에 숨겨진 의도를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었다. 언제나 그랬듯 진실이란 뼈 아프다.
나약함을 인정할 때 그랬고, 오만함을 인정해야 할 때 그랬으며, 자신은 결국 스카이 폴라리스와 다른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단 걸 깨달아야 했을 때 그랬다.
지금도 그랬다.
알고 지낸지 반 년도 채 되지 않은 사람. 아직 연이 깊다고 말하기엔 시간이 적고, 그렇다고 연이 얕다고 말하기엔 사건이 대단하다. 앞으로는 시간을 채우는 것밖에 남지 않았는데.
앞으로 보여줄 게 많이 남아 있었는데, 해보고 싶은 게 많이 남았는데.
진실은 그게 좀 힘들 거 같다고 알렸다.
하늘에 다시 한번 선이 그어졌다. 진홍의 궤적. 그녀가 최선을 다한 필살기와 위력이 비슷한 단 한 발의 쏘아냄. 허무할 정도로 큰 힘의 차이가 느껴진다.
뒤에 있는 지금 지키더라도 언젠가 곧 죽을 생명. 현재를 타개할 대단한 방법은 생각나지 않는다. 할 수 있는 거라곤 버티기가 다인데 그 버티기조차 시원찮다. 가히 절체절망에 가까운 상황.
레드 베가는 진실을 직시했다.
“…전 재중 씨를 잘 몰라요. 솔직히 말하자면 잘 알고 싶지도 않아요. 재중 씨의 마음은 궁금하지만 재중 씨를 둘러싼 세상은 알고 싶지 않아요. 그 진실이 절 상처 입히는 게 무서워요. 그 진실이 당신을 상처입일까봐 무서워요.”
레드 베가는 일어났다.
“하지만 이미 알아버린 순간 선택해야겠죠 어쩌겠어요. 전에 그랬던 것처럼 능숙하게 눈 돌리는 건 힘들 거 같네요.”
레드 베가는 웃었다.
“전에 그랬죠? 두려움이 희망이라고. 그렇다면 그 말대로 두려움을 알고 나아가 주는 게 도리 아니겠요? 어때요 참 좋은 제자 아니에요?”
“…아희야.”
“아뇨, 지금의 전 레드 베가입니다. 지금 만큼은 베가 씨라도 불러도 용서해 줄게요.”
두 발을 단단히 땅에 디디고, 중심의 심장부터 전신으로 마력을 순환시켰다.
“전 도망치지 않아요.”
언제나 그랬듯.
[수호자….]“전 괜찮아요.”
마력을 머금은 육체는 보다 강인해지고 별빛을 내뿜기에 효율적으로 변했다. 전신에서 흐르는 마력을 매개 삼아 그녀의 마법이 발현되었다.
“죽을 거 같지만, 아직 죽진 않았잖아요? 팔도 다리도 멀쩡하고… 봐요. 마법도.”
불꽃.
불안정하지만 언제나 어둠을 밝히고 추위를 녹이는 은혜를.
길을 밝히는 동시에 만들 수도 있는 열기를.
“영웅이 사람을 두고 도망갈 리가 없잖아요. 물론 아직 저는 철부지에 반푼이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도망은 할 수 없어요.”
“난 이제 곧….”
“시한부가 뭔 상관이에요! 까놓고 말해서 지금의 재중 씨랑 노인이랑 다른 게 뭐죠? 이제 곧 죽을 사람이라면 버려도 돼요? 이야 옛날에 고령화 사회에선 참 좋은 해결법이었겠네요 그쵸? 이 미친 학살자야!”
“아니 그렇게까진 말 안 했….”
“그게 그거죠 진짜!”
불꽃은 바람 따라 흔들리지 않고 그녀의 손길에 따라 움직였다. 불은 손길에 따라 연마되어 점차 단단하게 변했다.
“전 그딴 말에 안 흔들려요.”
화염은 베일처럼 넓게 펼쳐졌다.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불꽃의 덩어리였다.
“내가… 괴인이 될 수도 있다니까? 정말로, 너의 적이….”
“상관없다니까요?!”
그 화염의 장벽은 은하수를 닮아 있었다.
“전 여기서 죽지 않아요. 물론 재중 씨도 그렇고요.”
그녀의 말에는 확신이 있었다. 그녀의 빛이 보다 강해졌다.
“사랑과 평화를 위해! 전 여기서도 살아남고 살아남고, 살아남아서! 계속 강해질 거에요!”
지금의 자신으로 돌파할 수 없는 길이라면, 지금의 자신을 뛰어넘으면 될 일. 레드 베가는 한계까지 쥐어짜며 거대한 화염의 장벽을 앞에 세웠다.
방금 전의 방패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아름다운 빛의 응집이었다.
“그렇게 강해지고 강해지고 강해져서! 언젠가는! 큰곰이고 뭐고 별의 개수 따위 상관도 안 할 정도가 되어서 어떤 괴인이 상대라도 이길 수 있게 될 거에요!”
“…”
“그러니까 괜찮아요!”
레드 베가는 고개를 돌려 자신의 웃음을 보여주었다.
“언젠가….”
“….”
“절 향해 웃던 입이 사람의 죽음을 모독하고, 저를 안던 그 팔이 피를 안아 들고, 제 눈을 바라보던 그 눈이 차가워지면. 제가 당신의 목을 들고 영광을 외칠게요.”
하지만 아무래도 감정을 제대로 조절할 수 없던 모양인지, 아직 사춘기 특유의 풍부한 상상력을 버리지 못한 모양인지, 눈은 제대로 웃지 못했다.
그녀의 눈에서 약간의 눈물이 흘러나왔다.
“죽음을 두려워 하라 그러셨죠? 또. 두려움이야말로 희망이라고.”
곧 눈물은 불꽃에 증발되어 지워지고.
“제가 당신의 희망이 될게요.”
그녀의 눈동자는 그 불꽃보다 더 크게 이글거렸다.
“그러니까, 두려워하지 마세요.”
레드 베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굉음이 울려퍼졌다. 한재중은 그녀에게 시선이 빼앗기느랴 여기로 다가오는 선의 개수도 살피지 못했다.
콰앙!! 화염에 화살이 가로막히자 거대한 폭발이 일었다. 베일 뒤에 있는 한재중이 순간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을 만큼 강렬한 폭발이었다.
하지만 벽에 가로막힌 폭발은 하나가 아니었다.
“으으윽…!”
방금 폭발한 화살 하나를 이어 새로운 공격이 그녀에게 다가왔다.
하나, 둘, 셋, 넷…. 건물 하나를 가볍게 무너뜨릴 폭발은 겹치고 또 겹치며 더욱 강한 폭발을 촉진해냈다.
“으으으읏…!”
일어난 폭발은 총 열 두 번. 그 열 두 번의 폭발이 단 한 번에 일어난 것처럼 연속되어 터졌다.
궁수자리가 가진 별의 개수와 같은 폭발.
레드 베가가 펼쳐낸 베일을 보며 위기감을 느낀 궁수는 앞서 날린 화살을 이어 새로운 공격을 쏘아냈다.
지금 그가 동시에 쏘아낼 수 있는 최대의 화력을 담은 공격이었다.
개세일사(蓋世一射).
세상을 덮을 만큼의 일격이란 뜻을 품은 사격.
아무리 레드 베가의 빛이 더 강해졌다 한들 궁수자리의 공격은 쉽게 가로막힐 게 아니었다.
원거리에서의 공격 하나 만큼은 괴인 중에서도 압도적.
“으아아악!”
레드 베가가 필사적으로 펼친 베일이 마지막 공격과 동시에 깨졌다. 그 바로 뒤에 있던 레드 베가는 폭발의 영향을 고스란히 받으며 뒤로 넘어졌다.
그와 동시에 레드 베가에게 축적된 피해가 버틸 수 있는 한계에 도달하게 되었고, 레드 베가의 변신이 풀렸다.
“아직이에요…!”
피를 토하며 레드 베가는 어떻게든 일어나려 노력했다. 하지만 잘 되지 않았다. 방금 전 피해로 늑골이 아스라진 건지 숨을 쉬는 것도 쉽지 않았다.
움직일 때마다 엄청난 고통이 따라왔다. 전신에 불이 흐르는 것만 같았다. 뜨겁다. 하지만 이대로 포기할 순 없었다.
구르는 과정에서 떨어지게 된 지팡이를 주우러 최대한 손을 뻗었다.
“아직…!”
그녀의 노력을 비웃듯이 하늘에 선이 하나 더 그어졌다.
“아직 이대로….”
“확실히 강해졌긴 강해졌군.”
그때 이곳에 없던 목소리가 들려왔다. 노이즈가 끼어 인식이 힘들지만, 귀에 익은 목소리.
“하지만 아직 날 뛰넘겠다 운운을 하기엔 부족해.”
목소리의 주인은 그녀를 안고 뒤로 가볍게 점프했다. 방금 전까지 있던 자리에 화살이 박혔다. 콘크리트를 유리잔마냥 깨뜨리고 그 아래에 있던 땅이 파였다. 훅 흙먼지가 크게 일었다.
“…어, 그, 이거….”
“미안하군. 좀 늦었다.”
“이거… 괜찮아요?”
레드 베가는 믿을 수 없단 듯이 그를 보았다. 흙먼지에 가려졌지만 그 모습을 못 알아보는 게 더 힘들었다.
순백의 갑옷에 몸 주위에 번뜩이는 번개의 조각들.
와쳐.
큰곰자리의 괴인이자 그녀가 현재 이기고자 목표로 삼은 인물.
방금 전까지 주위에 있던 어떤 사람이 사라진 걸 굳이 입에 담지 않으며, 레드 베가는 그의 몸 상태를 걱정했다.
“지금 네 상태보다는 낫겠지.”
“아니 그게… 윽!”
실제로 레드 베가의 컨디션은 정상이 아니었다. 조금 움직이자 온몸의 털을 삐쭉 세울 정도의 고통이 감돌았다. 그녀는 얼굴을 찌푸리며 고통을 견뎠다.
와쳐는 그런 그녀를 땅에 조심스레 내려놓고 흙먼지 속으로 나아갔다.
“자, 잠깐…!”
“조금만 기다리고 있어라.”
그의 모습이 그림자만 남았다.
“곧 끝내마.”
레드 베가의 시야가 점차 흐려지고, 고개를 드는 것조차 힘들어졌다. 결국 그녀는 고개를 아래로 내려 바닥에 몸을 맡겼다. 편했으나, 지금 그가 어떤 모습을 한 건지는 알지 못했다.
다행히 진실 하나는 잘 감출 수 있었다.
흙먼지 안에서 와쳐는 변신을 풀었다.
“살벌한 약속을 해주네 참.”
괴인되어서 날뛰면 죽여주겠다니. 그거 참 믿음직스럽다.
“그럼 일단 믿어봐야지.”
한재중은 마음이 맑아짐을 느꼈다. 저 어린애에게 격려받다니 자신이 한심스러우면서도, 그녀가 대견했다.
역시 마법 소녀는 마법 소녀였다.
“자 그럼 이제 어쩐다….”
이 조금의 변신으로도 바로 알았다. 큰곰자리를 지속하는 건 육체에 부담이 크다. 스무개의 별을 동시에 활성화 시켜 수십의 권능을 다루는 건 평범한 사람의 몸으론 버티기 힘든 일이었다.
전 남두육성인 저 궁수가 괴인이 되었던 것도 아마 궁수자리가 된 이후였겠지.
같은 변신이라도 변신 상태에 따라 몸에 걸리는 부하가 달라진다.
그렇다면 답은 간단하다.
큰곰자리를 포기한다.
대신, 지금까지 얻은 모든 별빛을 별 하나에 모아 변신한다.
몸에 부담을 안 주기 위한 최적의 변신 방식이며, 어떻게든 살아갈 시간을 늘리기 위한 발악.
다행히도 그에겐 그걸 가능하게 만드는 지식이 있었다. 그간 변신하며 별을 다루는 노하우는 차곡차곡 쌓여 있다.
큰곰자리가 강제로 덧씌워진 이유는 자신이 별빛을 완전히 다루지 못했기에.
그 모든 별빛을 다룰 수 있는 지금, 그는 북두칠성을 넘어 그 아래의 모습도 취할 수 있다.
“내 인생도 참 불쌍하지.”
살기 위해 싸우는 게 아니라 죽음이 결정된 상태에서 어떻게든 결실을 맺기 위해 싸운다니.
“그래도 어쩌겠냐.”
한재중은 웃으며 벨트에 손을 올렸다. 초점을 조절하는 다이얼 같은 부분. 그 날카로운 다이얼와 짐승같던 장식을 지닌 큰곰자리의 부품을 뺐다.
그의 손에 별빛이 모였다. 그 별빛은 응축되며 하나의 기계 부품과도 같은 모양새가 되었다. 전에 쓰던 것과 비슷한 모양의 다이얼.
“별을 봤는데.”
적어도 그녀가 자신을 비출 수 있을 때까진, 살아 줘야지.
모든 마법 소녀가 꿈을 이룰 수 있을 때까진, 버텨 줘야지.
지금부터 그의 삶은 나아감과 동시에 버티는 과정이 되었다.
높은 설산을 얇은 옷만 걸치고 나아가듯, 처절하고 또한 용기 있는 발걸음이었다.
어딘가에서 읽었는데, 버티는 삶은 느린 자살과 다름이 없다고 했다.
한재중은 이게 전적으로 동의했다.
이것은 살아가는 것보단 느린 자살에 가깝단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삶은 어디서 멈추느냐 보단 어떻게 걸어왔느냐가 더 중요하단 생각도 들었다.
어차피 피할 수 없는 낭떠러지라면, 적어도 걸어온 이 길에 광명이 깃들도록 해야겠다. 찬란하여 누구나가 찬양하지만, 너무나 빛나 누구도 이 길을 걸을 수 없게 하는.
빛나되 다시는 반복되지 않을 길을.
몰락의 삶이며 영광스런 인생을 위해.
그는 언제나 그랬듯, 입을 열었다.
“변신.”
[ASTRONOMICAL OBSERVATION]별을 본다.
[Focus On]별자리가 아닌, 단 하나만의 별에 집중하여.
[MERAK.]활성화 한다.
선택하는 것은 메라크.
현재를 타개하기에 가장 알맞은 별.
횐 별빛이 흘러 몸을 감싸다 녹색의 별빛이 되고, 녹색의 별빛은 황동색의 빛을 띄기 시작했다.
약간만 만들어진 갑주의 위로 청동색의 갑주가 덧씌워진다.
곧 그의 손에도 황동색의 별빛이 뭉쳐, 하나의 무기가 생성되었다.
개문(開門).
그가 가진 유일한 원거리 무기.
오래된 형식의 장총.
“문은 열렸다.”
이제 가능성은 무한히 펼쳐졌다.
무엇을 받아들이고 무엇을 내칠지는 온전히 자신의 손에 달렸다.
와쳐는 그 총을 들고 선이 날아오던 방향을 향해 겨눴다.
“올 수 있을 테면 와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