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nsform or death RAW novel - Chapter 139
Chapter 139 – 약간의 돈과 내일 살 곳만 있으면 충분하다 (1)
“설화 언니… 갑자기 왜 그랬던 걸까.”
설화 ‘언니’. 한재중은 그 표현에서 조아윤이 아직 감정적으로 격해져 있음을 느꼈다.
그녀는 마법 소녀가 된 이후 선배라는 호칭을 고정적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가족같이 살던 과거와 달리 조금 거리를 두며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호칭을 바꾼 것이었다.
이성으로 만들어진 언어는 감정이 격해졌을 때 물에 흐르듯 지워진다.
울음을 다 그친 뒤에도 조아윤은 한재중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의사가 도착해 그를 진찰하고 나온 뒤 즉시 나비처럼 들러붙어 다시 그와 포옹을 나누었다.
한재중의 손은 이젠 숨쉬기처럼 자연스럽고 반복적으로 등을 토닥였고, 이 간헐적인 진동을 느끼며 조아윤은 한층 깊이 얼굴을 기댔다.
“…외로웠던 걸까?”
조아윤은 이젠 먼 과거처럼 느껴지는 옛일을 떠올렸다.
학창 시절 셋은 언제나 함께였었다. 심지어는 한재중과 윤설화와 사귈 적에도 어딘가 놀러 나갈 일이 있으면 항상 윤설화가 조아윤에게 같이 놀자며 먼저 권유해 주었었다.
때론 둘만의 데이트를 즐기라며 거절했지만 때론 권유를 수락하며 같이 놀았다.
조아윤은 그들의 외부자였으나 단 한번도 외로움을 느끼지 않았다. 그들과 함께 했을 때의 시간에 소외감은 없었다. 그녀는 즐겁고 정다운 시간의 기억을 더듬었다.
하지만 한재중이 실종된 이후 모든 관계는 변화되었다. 한재중은 더이상 지켜야할 존재가 아니게 되었다. 결백할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언제나 거짓을 입에 담아야 했다.
괴인의 몸으로 변신할 수 있는 인간이란, 함부로 솔직할 수 없었다.
그건 얼마후 조아윤도 동일해졌다. 그녀 역시 괴인으로 몸을 변신시킬 수 있게 된 이후, 한재중과의 사이는 가까워졌지만 윤설화와의 사이는 소원해졌다.
소외가 없던 셋의 관계에서 명백한 외부인이 만들어졌다.
이는 배려였지만, 동시에 매정한 침묵이기도 했다.
언제나 함께 지내던 두 사람이 자신을 따돌리고 자기들끼리의 비밀 이야기가 많아졌다. 직장도 다르고, 일이 바빠 매일 같이 만나기는 힘들다. 몸은 멀어졌는데 저쪽은 더 가까워졌다.
윤설화는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었을까.
분명 외롭겠지. 조아윤은 그리 확신했다. 그녀에게 있어 고독은 쉽게 공감할 수 있는 감정이었다. 따돌림을 당한 경험이 있으니까.
“그럴 수도 있겠네.”
한재중은 부정하지 않았다.
“…! 역시….”
자신보다 윤설화에 대해 잘 알고 있을 그의 긍정을 들은 뒤, 조아윤은 더욱 그 감정의 추론에 확신을 얻을 수 있었다.
내가 너무 심했구나. 슬픔과 억울함이 휘발되어 날아간 이후 조아윤은 미안함을 느꼈다. 하긴 너무 밉상짓을 했다.
앞에서 대놓고 좋아하는 사람과 허그라니. 만약 자신이 그런 꼴을 봤다면 참지 못하고 갈갈이 날뛰었겠지.
[수호자는 그런 거 안 봐도 날뛰잖아.]‘아가리.’
[거기에 좋아하는 사람? 분명 옛날엔 좋아하는 사람 없다고 지랄하지 않았나?]‘가정이지. 가정! 이 미친 새대가리 놈이 말꼬리를 드럽게 잡아서….’
쓸데없는 딴지를 거는 마스코트, 앵무와 언쟁을 나누길 잠시. 무심코 열이 올라 조아윤의 팔에 힘이 들어갔다.
“아윤아? 아윤아. 등 아파. 얌마, 손톱, 손톱! 손톱 세우지 마! 나 환자야 임마!”
“앗, 미안….”
한재중의 소리침에 다시 정신을 차려 힘을 풀었다.
“아무튼, 우린 이제부터 설화 언니한테 잘해줘야 돼.”
“구체적으론 어떻게?”
“으, 음… 정체를 밝힐 수는 없고… 아, 그래! 카페에서 서비스를 해준다거나….”
“서비스는 무슨 서비스. 설화가 그런 거에 기뻐할… 기뻐하기는 하겠네.”
아마 엄청 기뻐해줄 거 같다. 쓸데없이 착한데다, 이상한 데에서 리액션이 좋으니까. 서비스 커피와 케이크를 먹으며 눈을 빛내줄 윤설화의 모습이 쉬이 상상되었다.
“그래도 그건 좀 그건 생색내는 거 같잖아.”
“그럼 오빠가 코스프레라도 하면서 접객해주던가.”
“우리 가게 카페 맞지…?”
한재중은 안고 있던 팔을 풀고 조아윤을 게슴츠레 응시했다.
“…약간의 성상품화가 없으면 돈을 못 벌 거 같다는 판단.”
조아윤은 슬쩍 눈을 피하며 차갑고 딱딱한 말투로 대답했다.
“감성 카페는 니가 밀어놓고 이제와서 딴 소리야… 차라리 네가 하던가.”
“이런 몸으로 성상품화를 해서 수요가 어딨어…?”
키가 작은 데다 딱히 글래머한 몸매도 아니다. 나름대로 관리를 해 보기 흉한 부분은 없지만, 그렇다고 딱히 보기 좋은 부분도 없다. 조아윤은 자신의 몸을 이리 저리 살피며 냉정히 품평해 보았다.
“나보다 오빠가 가슴이 더 큰 거 같은데… 역시 오빠의 몸이 이리저리 굴리기 좋을 거 같지 않아?”
“천박하게 그게 무슨 말버릇이니 아윤아. 그리고 네 몸도 충분히 매력이 있어. 그렇게 폄하하지 마.”
“…진짜?”
조아윤은 귀가 빨갛게 달아오르는 걸 무시하며 슬쩍 티셔츠 목깃을 늘려보았다. 그러고 보니 이런 작은 몸에 흥분을 느끼는 소수의 취향도 있다고 들었는데 그도 이런 취향이었던 걸까. 괜히 저런 말을 들으니 자신감이 생겼다.
나도 참 쉬운 여자지.
고개를 들어 그와 눈을 마주했다. 그런 말을 듣고 난 직후라 그런지 심장이 미친듯 뛰었다. 부끄럼을 꾹 참으며 입을 열었다.
“그, 그럼 오빠도… 날 보면서… 그, 뭐냐, 꼬, 꼴… 려?”
부끄럼을 참느라 뇌에서 필터를 거치는 과정은 잊었다. 한재중은 한숨을 푹 쉬며 이마에 손을 올렸다.
안 그래도 아픈 머리가 더 아파졌다.
“…아윤아?”
“으, 으응?”
“너 이제부터 아희랑 어울려다니지 마라.”
“우으, 으에, 왜!”
“지금 그 말버릇을 보면 답이 나와.”
쯧쯧 혀를 찼다. ‘요즘 애들이란’ 따위의 표현을 입에 달고 사는 노인네와도 같은 말투였다.
“…아희와 하루가 마법 소녀를 많이 버려놨구나….”
물들 것 같지 않던 조아윤마저 저런 노골적인 언어를 구사하다니. 협회는 마법 소녀의 언어와 사상이 오염되는 데에 조금 더 경각심을 높여야 한다.
아니, 그냥 원래 다 미친 사람들인 건가.
하긴 전에 보니 마법 소녀들 전원이 어딘가 이상해보였다. 원작에서 봤을 때도 그랬지만 현실로 접하니 그 비상식적인 사고 방식을 더욱 두드러지게 느낄 수 있었다.
마법 소녀는 모두 정신병자란 가설이 점점 신빙성을 얻어 갔다.
“아무튼 아희가 말하는 게 재밌어 보인다고 막 따라하진 말고….”
“내가 걔보다 연상이거든?! 누가 누굴 따라한다고 하는 거야!”
이리 반항하는 조아윤이었지만 그녀도 내심 충격을 받았다. 내가 방금 말한 게 아희급이었다니. 얼마나 선을 지키지 못한 발언이었는지 감이 잡혔다.
“이, 이 젊은 꼰대! 말만 거창하지 돈은 없는 놈! 노숙자!”
“크윽…!”
말 하나하나가 깔끔하게 날아와 가슴에 비수처럼 꽂혔다.
“퇴원한 뒤에 우리 카페를 집처럼 사용하던가 말던가…!!!”
조아윤은 그렇게 말하곤 벌떡 일어나 달려 나갔다. 수치심과 지금 이 두 사람에게 어떤 도움도 줄 수 없는 자신에게 자괴감을 느낀 탓이었다.
그녀에게 있는 고민은 윤설화만이 아니었다. 최근 들어 점점 의지를 해오는 빈도가 줄은 한재중에게도 나름대로 고민이 있었다.
윤설화에게 소외감을 주고, 한재중에겐 반대로 깊이 다가가지 못해 소외감을 느끼고. 참 한심했다.
꿈을 이루게 도와주겠다며 당당히 맹세해놓고, 이게 무슨 꼴인가.
차오르는 자기 혐오는 오히려 바깥에 가시를 드러내게 하였다.
그 가시는 상당히 사소하고 작았으나, 조아윤은 한재중에게 상처를 입혔을까봐 다시 한번 자기혐오에 빠졌다.
“얌마 어디 가!”
“말하고 보니까 나 카페 관리하는 거 까먹었어!”
“어차피 손님도 없잖아!”
“아가리!”
조아윤은 병실에서 뛰쳐나갔다. 탁탁탁 거리는 거친 발걸음이 멀어진지 얼마 지나지 않아 ‘뛰지 마세요!’라며 간호사에게 혼나는 소리가 들려왔다.
“씁….”
한재중은 허탈하게 웃곤 그대로 몸을 뒤로 뉘였다. 병원 특유의 약간 불편한 감촉의 침대가 그를 반겨주었다. 평소 방바닥에서 자는 그에겐 이것도 감지덕지였다.
씁쓸한 마음에 괜시리 몸만 뒤척였다.
잠에서 깨어난 그에게 의사는 몸상태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오늘도 결과는 정상. 오히려 이렇게 다쳤는데도 기적적일 만큼 멀쩡하다고 한다. 두통이나 현기증을 호소했는데도 별말이 없었다. 치료 속도도 이례적일 만큼 빠르다. 몸은 여전히 외상을 쉽사리 치유해내고 있다.
하지만 이 건강한 몸이 좋은 삶으로 이어지지 않음을 뚜렷하게 알고 있다. 치료 속도가 빨라질 수록 몸이 별빛에 침식되어가고 있음을 느끼고, 현대 의학으로 원인을 규정할 수 없는 사태가 많아질수록 몸이 인간과는 다른 무언가로 변질되어가고 있음을 느낀다.
죽어가고 있다. 이렇게 살다 어느날 갑자기 벼락을 맞듯 죽겠지.
말해야 한다. 지금 상황에 침묵은 금이 아니라 독임을 안다.
“하….”
하지만 좀처럼 말을 꺼내기 쉽지 않았다. 말을 꺼내는 순간 행동이 통제당할 게 눈에 훤했다. 마법 소녀를 지키긴커녕 본인이 지킬 대상으로 전락되어 팔 하나, 다리 하나 움직이는 데에도 감시가 따르며 입술을 여는 데에도 허락이 필요해지겠지.
과격한 상상일 수도 있으나 그렇다고 완전히 부정할 수도 없는 가정이었다. 그의 목숨을 아끼는 이들은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 마법 소녀며 괴인으로 변할 수 있는 인간이다.
그들이 마음만 먹는다면 평범한 사람의 몸 따위 쉽게 가둬두고 제압할 수 있겠지.
그렇다고 꿈을 포기할 순 없다.
자칫하면 그들과 분쟁까지 벌어질 수 있겠지.
이걸 최대한 완곡하게 전달하려면 어찌 해야 하나.
한재중은 한숨을 푹 쉬며 눈을 감았다.
지금은 그런 것보다 빨리 퇴원할 생각이나 해야지.
아, 퇴원 뒤에 지낼 장소도 생각해둬야 되는구나.
일단 아윤이가 카페에서 잠시 지내도 괜찮다고는 하는데… 그래도 일터인데 계속 눌러앉을 순 없지.
최대한 집을 구해봐야겠다.
그 집만큼 싸게 나온 집도 따로 없을 텐데….
영웅이라도 의식주는 필요하다. 소시민적인 고민이야말로 지금 그를 가장 고통스럽게 만드는 고민이었다.
‘그냥 약간의 돈 하고 내일 입을 팬티 하나만 있으면 충분하긴 한데….’
밖에서 자면 쿠사리를 줄 사람이 한 둘이 아니니.
고민 중 대부분은 타인으로부터 비롯되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그는 별 답을 내지 못한 채 퇴원을 맞았다.
퇴원에 함께 해주겠다는 조아윤의 권유를 무시하고 혼자 짐을 챙긴 뒤 병원을 떴다.
그리고 병원에 나선지 얼마 안 되어, 그는 실종되었다.
**
“선물이다.”
“응?”
멍하니 누워 밤하늘을 올려다 보던 궁수에게 리브라가 어떤 주머니를 던졌다. 이마에 맞고 가슴에 떨어진 주머니를 바라본 궁수는 이내 깜짝 놀라 일어났다.
“이, 이게 뭔….”
틀림 없다. 별가루다. 리브라가 만든 특제 마약. 별빛이 깃든 상급 중의 상급 마약. 분명 공급이 중단되었다고 들었는데…?
궁수는 부들거리는 손으로 공손히 주머니를 받아들였다.
“네 덕에 여러 데이터를 얻을 수 있었다. 그 선물이다. 일에는 올바른 대가가 따라야 하지. 받는 데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너 같은 돼지가 두렵지 않지. 이야… 이게….”
멍하니 마약 주머니를 살피던 궁수는 곧 빵 터져 커다랗게 웃었다.
“이야 새끼, 너 의외로 의리가 있구나? 낭만 있네. 어? 낭만이 있어! 크으으으!”
“하, 여전히 천박하군. 난 이만 가보겠다.”
리브라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물러났다. 궁수는 그 퇴각에 조금의 눈길도 주지 않으며 계속 마약에 주목했다.
입맛을 다시던 그는 별안간 주사기를 꺼냈다. 녹슬고 변색된 더러운 주사기였지만 마약을 주입하는 데엔 별 문제 없었다.
“이게 얼마만 이냐….”
끊은지(강제) 한 달도 안 되었지만 얼마나 그리웠는지. 궁수는 즉시 주머니를 열고 주사기 안에 마약 가루를 부으려다.
“…이게, 얼마만….”
뚝. 장난감에 질린 아이처럼 행위를 멈췄다.
“씁, 뭔가 아깝네.”
그는 주머니를 닫고 주사기를 다시 집어넣었다.
지금 이대로 흥청망청 써버리기엔 아깝다. 이걸 다시 언제 얻을 수 있다고. 지금 당장의 욕망에 맡겨 써버리기엔 너무나 허망하다. 낭만도 없다. 희소한 자원은 특별한 때에 사용해야지.
“이건, 나중에 내 기억과 목표를 알아냈을 때 써야지~”
나중에 자신에게 주는 상으로 쓰는 게 더욱 각별하게 다가올 거 같았다. 궁수는 이걸 특별한 한 때를 위해 다시 닫았다.
그러고보니 이 마약에 빠진 이유도 기억이 안 난다. 마약 안에 별빛이 있다 한들 웬만한 괴인에겐 너무나 소량이라 빛을 느낄 새도 없다고 한다.
하지만 궁수는 이상할 정도로, 이 자그만 별빛이라도 더 몸에 받아들이고 싶어 집착했다.
“그냥 내가 옛날에 좋아했겠지 뭐.”
아마 기억을 잃어버리기 전부터 좋아하던 기호품이었겠지. 궁수는 그렇게 대충 넘긴 뒤 몸을 일으켜 주변을 바라보았다. 심심할 때는 세상 구경이 제일이다. 십인십색의 특성과 사연을 지닌 세상의 움직임은 언제나 좋은 심심풀이가 되어준다.
눈을 번쩍 뜬 그에게 흥미로운 무언가가 즉시 잡혔다.
“응? 저건….”
본 기억이 있다. 리브라가 아르고 패밀리를 조사할 때 쯤에 봤던 기억이.
“나침반?”
나침반자리의 괴인. 상급 괴인 중 최약체인 한심하고 바보같은 놈이었다.
“호오….”
저 놈이 왜 리브라의 구역인 이 곳에 있는걸까. 재밌어진 궁수는 이동을 시작했다.
“재밌겠네.”
언제나 재밌는 건 남의 집 싸움이었다. 그가 어떤 사고를 쳐줄까. 두근두근한 마음을 억누르며 조용히 그의 감시를 위한 포인트로 발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