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nsform or death RAW novel - Chapter 142
Chapter 142 – 약간의 돈과 내일 살 곳만 있으면 충분하다 (4)
“없어!”
며칠 전까지 그가 지내던 병실의 문을 열어도.
“없어!”
무너져 내린 집의 폐허에도.
“없어…!”
그가 근무하는 카페의 안에도.
“어째서!”
어디에도 한재중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백아희는 머리를 뜯으며 허탈하게 무릎 꿇었다.
“…뭐냐.”
조아윤은 당황스러웠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온 사람이 소리 지르며 무릎 꿇는다면 누구나 그럴 것이다.
“크윽! 직녀한테 졌습니다!”
그 뒤로 하루가 따라왔으며.
“으억… 저기… 헥… 으헥… 뭐 이리 빠르게….”
하루의 뒤로 기진맥진한 아라가 따라왔다.
“뭐야, 달리기 경쟁이라도 했어?”
“아뇨?”
“하이(네)!”
“뭐가 맞는 거야….”
조아윤은 떨떠름하게 그들을 바라보았다. 평소 자주 같이 다니는 삼인방인 만큼 그들이 여기 오는 거 자체는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오늘은 그 등장이 참으로 파격적이고 몰상식한 방식이라, 조아윤은 그들의 방문을 환영할 수 없었다.
‘우리 가게를 뭐라고 생각하는 거지….’
가게가 아니라 본인들의 아지트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아니여야 한다.
“맞다, 오늘 길에 오빠 못 봤어? 시간이 꽤 됐는데 아직도 안 오네. 문자도 안 보고.”
“그거에요!”
백아희가 고개를 휙 올리며 소리쳤다. 구조 현장에서 달련된 발성은 조아윤을 다시 한번 깜짝 놀라게 하기 충분한 성량을 가지고 있었다. 뜻밖의 굉음에 움찔 어깨를 떨며 조아윤이 되물었다.
“뭐, 뭐가.”
“재중 씨 말이에요! 언니에게도 연락 없었어요?”
연락. 그 단어를 듣자 이번엔 다른 의미로 그녀의 어깨가 움찔 떨렸다. 권태롭게 떠 있던 눈을 날카롭게 구겼다. 급격히 사나워진 시선에 마주하게 된 백아희가 어깨를 움츠렸다.
“연락? 하, 연락? 연라아악?”
“왜, 왜 그러세요.”
“시발 내가 그걸 받았으면 너에게 물어봤겠냐!”
분홍빛 눈동자 안에선 용암과도 같은 분노가 흘렀다. 그간 쌓여 있던 설움이 이번을 계기로 폭발했다.
“이 미친놈이 사장한테 연락하는 꼴이 없어! 아프면 아프다, 싫으면 싫다, 힘들면 도와달라, 그 따위 말도 안 해! 내가 무슨 냉혈한인가, 왜 나한테 의지를 안 하지? 내가 무슨 세살배기 애도 아니고 사회적 위치와 자본이 있는 성인인데!”
전에도 적었지만 최근 들어 급격히 의지를 안 한다. 전에 나눈 동료라는 말은 어디에 내버린 건지. 그는 그녀를 무슨 아이 다루듯 다룬다. 그렇기에 도움도 받지 않는다.
물론 조아윤 본인도 그 앞에선 유독 애 같아지는 걸 인정하긴 하지만, 그게 정말 애 취급을 당하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그냥 마음이 풀어진 거 뿐이다.
조아윤은 어엿한 성인 여성이었고. 나름대로 장성했다. 전 마법 소녀란 지위와 돈이 있고, 변신의 능력도 있다. 그것도 서포트 능력 중에선 압도적인 순간 이동의 힘.
이 모든 조건을 공개한 뒤 지원 받을 사람을 공개 모집하면 그녀를 찾기 위해 사람들이 이 카페를 넘어 다른 시까지 넘어 갈 정도로 줄을 설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내가 이렇게까지 무시당할 사람은 아닌데…!”
키가 작고 고집이 쎄고 말투가 괴팍하다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
“…역시, 그게 문제인가? 내가 얼굴도 못나고 성격도 못나서 오빠도 도움 받기 싫은 건가….”
연달은 도움의 실패. 그 탓에 조아윤은 점차 자신감을 잃어갔다.
아까와는 정반대로 조아윤이 백아희를 당황케 했다. 한재중을 찾기 위한 여정을 하다 난데없이 카페 사장님의 심리 상담을 하게 생겼다. 동시에 오싹한 느낌을 받았다.
‘…아니겠지.’
백아희는 공포에 질린 얼굴로 하루를 돌아 보았다. 사회성이 심하게 부족한 그녀는 가끔씩 ‘싸팬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눈치를 안 보는 발언을 한다.
지금이 바로 그런 때였다. 지금 같은 상황일 수록 그녀는 상대방의 기분은 조금도 배려하지 않고 생각한 걸 그대로 입 밖에 내뱉는 기이한 곡예를 보여주곤 한다.
“나루호도(과연)… 아니키는 빈약한 몸에는 흥미가 없… 읍! 읍!”
‘아니여야 했는데…!’
백아희는 재빨리 하루의 뒤로 가서 그녀의 입을 막아 버렸다. 하루의 배신감 어린 시선은 못 본 척했다. 미안하다. 용서해라. 어쩔 수 없었다….
그 때 한참동안 숨을 고르고 있던 아라가 벌떡 일어났다.
“그게 무슨 한심한 소린가요?!”
이제 막 성인이 된 백아희와 아직 십대인 하루에 비해 체력이 없어 병원 집 카페를 오가는 원정길에서 유독 고통을 호소한 그녀였으나, 방금 전까지 비실비실하던 게 거짓말 같이 힘찬 소리를 뱉었다. 체력을 회복한 건지 팔팔했다.
“흐억… 헉… 그게 무슨 적폐같은 해석인가요…! 당신이 생각하는 한재중 님은 그 정도 인격을 지닌 한심한 남자인가요? 사람을 조건보면서 따르는 쓰레기… 흐헉… 인가요…?!”
아니었나 보다. 이야기 도중 숨이 차올라 말이 끊긴 걸 보니 아직 체력을 회복하기엔 시간이 남아 보였다.
“…! 그럴 리가 없잖아!”
“그렇습니다. 그건 당신의 착각일 뿐. 한재중 님에겐 한재중 님 나름대로의 사정이 있겠죠. 그리고 그 사정은 당신의 모자람 때문이 아닐 것입니다.”
아라는 당당한 태도로 일갈했다.
“게다가 당신에게 모자란 부분이 있다면 그 모자란 부분을 극복하거나 그 모자람을 덮을 정도로 큰 장점을 가진 사람이 될 생각을 해야죠. 그렇게 낙담하면 어쩌자는 겁니까?! 의지받고 싶으면 의지하고 싶은 사람이 될 생각을 하세요!”
“…그래, 그러네.”
조아윤이 쑥쓰런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말이 맞네. 일깨워줘서 고맙다. 좆같은 년인 줄만 알았는데… 좆같지 않은 소리를 할 수도 있었구나? 너에게 배려심이란 게 있단 걸 이렇게 알게 되었다. 좆에게도 좆 나름대로의 따스한 심정이 있었다니….”
“날 뭘로 보는 거에요?!”
“좆.”
“죽어라 난쟁이!”
다시 평소처럼 험담을 주고 받기 시작한 조아윤과 아라를 보며 백아희는 흐뭇하게 미소 지었다.
“잘 된 일이네요.”
“으읍. 읍!”
“아 맞다. 미안해.”
“푸하! 죽는 줄 알았습니다… 직녀에겐 암살의 재능이 있었군요! 몰랐습니다!”
“진짜 미안….”
소심하게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하루는 천진하게 웃음지으며 그 사과를 받아주었다. 잠시 켁켁거리며 목을 고른 하루는 이내 두 눈을 빛내며 서로를 물어뜯기 시작한 조아윤과 아라 사이에 달려들었다.
“센빠이 그건 틀린 말입니다! 오렌지 센빠이에겐 좆이 없으니 좆이 아니라 씹이라 불러야 알맞습니다!”
“닥쳐 씹새꺄!”
“그래 그겁니다!”
하루의 합류로 왁자지껄해진 싸움터를 배경음 삼아 백아희는 고민을 시작했다.
‘잠깐… 그러면 데네브 언니도 재중 씨의 거처를 모른단 건데….’
거짓말을 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저게 거짓말이라면 조아윤은 당장 카페를 접고 배우로 활동하는 게 올바를 것이다. 조아윤이나 한재중이나 둘 다 거짓말을 잘하는 위인은 아니었다.
이걸로 그가 있을만한 후보지 중 유력한 데는 전부 확인했다.
‘물론 내가 모르고 재중 씨만 아는 곳이 있을 수도 있는데….’
하필 지금 시기가 퇴원한 직후란 점이 걸린다. 이상할 정도로 빠른 퇴원 후 자취가 사라졌다. 전화는 처음 건 이후엔 계속 꺼진 채다. 그가 가장 의지할만한 상대였던 조아윤 역시 그의 현재 장소를 모른다고 한다.
무언가가 명백히 이상하다.
‘설마 바로 괴인과 엮인 건….’
잠시 오싹한 상상이 그녀의 등줄기를 훑었다.
‘몸도 안 좋다는 사람이 뭔 짓을… 아, 아냐. 아직 가능성은 남았어.‘
한재중의 모든 지인을 파악한 건 아니지만 나름대로 그와 연이 있는 상대 몇은 알고 있다.
“그럼 데네브 언니도 재중 씨가 어딨는지 모른단 거죠?”
“이 시발 뒤진… 어, 어어… 맞아. 미안해 분명 오빠와 나름대로 친하다고 생각했는데 퇴원길도 함께 하지 못하고 의지도 안 되고 그냥 돈만 주는 무능한 사장님이 되어 버렸….”
“부정적인 생각은 나중에! 지금은 딴 걸 하죠!”
아라의 일갈을 받았음에도 아직 허탈함을 전부 떨치진 못한 조아윤의 중얼거림을 끊고, 백아희는 자신의 말을 이었다.
“퇴원을 해도 아직 재중 씨가 환자란 사실은 변치 않아요. 지금 어디서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우린 확인할 의무가 있어요!”
“엥? 그런 게 있습니까? 왜요? 형님도 성인인데 우리가 참견할 건….”
“우린 마법 소녀니까요! 아픈 이를 돕는 건 당연한 일이죠!”
“소데스네(맞는 말이네요)! 사가시마쇼(찾읍시다)!”
이제와서 냉정해진 하루를 설득하고 침묵시켰다.
“야. 야… 난 그래도 카페가 있는데….”
“직원이 위험에 빠졌는데요? 어차피 우리 빼면 손님도 없잖아요! 매일 적자면서!”
“아니거든?! 손님 있거든? 이제 생길 예정이거든?”
“아직 생긴 거 아니잖아요. 함께 갑시다!”
백아희는 유독 한재중에게 진심이었다. 일종의 사명감마저 있었다.
지금 여기서 한재중의 시한부를 아는 건 그녀 하나 뿐이었다. 그런 만큼 한재중을 아는 다른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더 많이 그와 함께 있도록 만들고 싶었다.
물론 그녀 역시 한재중이 죽기 전까지 함께 하고 싶었다.
그의 죽음을 장식하기로 마음 먹은 만큼, 그의 삶 역시 자신으로 장식하고 싶단 마음이 흘렀다. 과욕일지도 모르지만 상관 없었다.
죽음은 산 자가 감내해야할 상처다. 상처가 생기기 전 대비를 하려는 건 누구나 그럴 것이다.
이는 일종의 이타심이었고 강한 이기심이기도 했다.
“…어디로? 오빠 있는 곳 모른다며.”
조아윤은 결국 설득당한 건지 한숨을 푹 내쉬며 물었다. 백아희는 자신만만한 미소로 핸드폰을 꺼냈다.
“언제나 이정표는 있기 마련이니까요. 우리만이 재중 씨를 알고 있는 건 아니잖아요? 오히려 우리들보다 더 재중 씨를 잘 알고 있는 사람, 그의 거처를 알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 하나 있잖아요.”
“아.”
누구를 말하는 건지 눈치챘는지 조아윤이 작은 탄성을 내뱉었다. 백아희는 조금의 망설임 없이 핸드폰을 조작했고 곧 그 액정 위에 이름이 떠올랐다.
‘시리우스 언니!!!!!’ 라고 적힌 이름이.
“느낌표 뭐야.”
“제 애정의 크기에요!”
“그럼 직녀 제 이름은 어떻게 저장했습니까?”
“헤헤….”
“직녀? 웃지만 말고 대답을 해주십쇼!”
“….”
“아, 말로 못할 정도로 많은 숫자가 적힌 거군요!”
하루는 좋게 좋게 해석했다.
곧 그녀의 통화 연결음이 이어졌다.
-세상을 구하자~ 너의 손을 잡아줄게~
“뭔 노래야.”
“마법 소녀 스카이 폴라리스의 주제가인데요? 설마 대선배님의 곡도 모르고 계셨어요?”
“센빠이 실망….”
“넌 알고 있었냐?”
“아뇨?”
“내가 아는 버젼과 다른데요…?”
“물론이죠 바뀌기 전 버젼이거든요! 너무 구려서 삼 개월만에 바뀌었단 뒷배경이 있습니다! 몰랐죠? 몰랐죠?”
“미친 년….”
굳이 폐기된 주제가로 통화 연결음을 설정한 이유에는 자신이 이런 마이너한 곡도 알고 있으며 난 너희들과 다른 ‘찐’이라는 자부심을 느끼기 위함이었다.
이런 음습한 뒷배경은 모른채 다른 이들은 통화가 연결되길 하염없이 기다렸다.
-여보세요?
그리고 얼마 안 지나 통화가 연결되었다.
윤설화의 우아한 목소리는 시끌벅적한 와중에도 날카로운 고드름처럼 자신을 뽐냈다.
“아, 여보세요? 언니?”
-무슨 일이야?”
동시에 그 목소리는 비단처럼 보드라왔다. 언제 들어도 심장이 뛰는 목소리다. 아마 전국민이 좋아할 마법 소녀의 육성. 그런 사람과 사적으로 연락을 주고 받을 수 있다니. 들을 때마다 자신이 마법 소녀라는 실감이 난다. 백아희는 헤실거리는 웃음과 함께 본론을 읊었다.
“궁금한게 있어서 그런데요… 혹시, 재중 씨가 어딨는지 아세요?”
**
“나에게서 뭘 듣고 싶단 말이오?”
“뭐긴 뭐야. 왜 꿈이 없는지 묻기 위해서지.”
궁수는 건성거리는 태도로 대답했다.
“그걸 왜 궁금해하는 거요?”
“나도 꿈이 없으니까.”
제이슨은 그 말을 듣자 커다란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하하하!! 하하하! 하핳… 하… 오어어억! 커허허헉!”
현재 몸 상태가 그리 좋지 않아 즉시 피를 토해야 했다. 어깨에 피를 뒤집어 쓰게 된 궁수가 혀를 찼다.
“아니 뭔 지랄을….”
“드디어 찾았소이다!”
“뭘.”
“잘 찾아왔네 동지!”
“네가 찾아와 놓고 뭔 개소리를… 엉? 동지?”
“그렇소 동지!”
제이슨은 피를 토한 목을 가다듬을 생각도 없이 다시 한번 크게 소리쳤다.
“꿈이 없는 사이끼리, 동지이지 않소!”
“비전이 없는 사이가 동지라니… 약간 패배자 모임 같은데….”
동지라니, 생각해본 적 없는 관계다.
“음, 그거 존나 좋네. 동지 좋다. 동지. 동무보다 맘에 드는 말이야.”
하지만 마음에 들었다.
“좋아! 우린 이제부터 개백수 동지다!”
“개백수는 아니오! 난 엄연히 일터가….”
“범죄자 새끼가 지랄은. 범죄가 일이냐 시발! 너나 나나 개백수야.”
궁수는 하늘이 떠나가라 껄껄 웃었다. 건물 옥상을 뛰어넘던 발이 한켠 빨라졌다.
“가자 꿈없는깡패따까리 제이슨!”
“좋소! 꿈없는양아치새끼… 어, 이름이 뭐요?”
“일단은 사지타리우스.”
잠시 말을 고른 다음, 시체가 되어 다 말라버린 입술을 달싹였다.
“그 전 이름은 모른다!”
“그렇다면 사지라고 부르겠네! 사지타리우스는 너무 길다오.”
“사지? 죽을 장소 같아서 불길하네.”
“맘에 안 드오?”
“아니.”
그 다 말라버린 입술이 살짝 호선을 그렸다.
“그거 좋네! 사지로 가지 않는 사지가 되면 되니까!”
이렇게 두 꿈없는 한량은 아주 빠르게 친구가 되었다.
조금의 망설임 없이 동지와 이름을 제안하고 조금의 망설임 없이 맘에 든다 대답한 까닭은 둘 다 뇌가 없는 바보이기에 가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