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nsform or death RAW novel - Chapter 146
Chapter 146 – 약간의 돈과 내일 살 곳만 있으면 충분하다 (8)
노벰버에게선 아무말도 되돌아오지 않았다. 이를 암묵적인 긍정이라 생각한 건지 리브라는 뒤 돌아 다시 자신의 책상으로 돌아갔다. 그곳을 잠시 훑던 손은 이내 어떤 액체가 든 시험관을 들고 있었다.
“이건 네놈이 쓴 것보다 더 강한 약물이다.”
시험관 안에는 겉보기에도 위험해 보이는 금색 액체가 있었다. 야광 물질처럼 발광하는 그 액체는 정말 인체에 주입해도 괜찮은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원한다면 내주지. 물론, 공짜는 아니다. 난 상인이니 말이다. 손해 보는 장사는 하지 않거든.”
그 시험관 속 액체는 노벰버의 바로 눈 앞에서 찰랑거렸다. 진자운동을 하듯 흔들리는 그 액체를 가만히 바라보는 노벰버는 최면이라도 걸린 것처럼 멍하니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아르고 패밀리를 배신한다거나 조직의 정보를 내놓으라거나 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리브라가 본격적으로 제안에 나선 와중에도 노벰버는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왜 그러는 것이오 형제… 빨리 부정하시오! 부정하고 저 약을 뿌리치란 말이오…!”
제이슨은 그 광경을 불안에 떨며 지켜보았다. 맘만 같았으면 당장이라도 뛰어나가 셋째 형님을 붙잡고 도망치고 싶었으나 그럴 수 없었다.
이 자리에 자신이 있는 이유를 잘 설명할 자신이 없었다. 안 그래도 저번 일로 신용을 많이 잃었다.
와쳐에게 정보를 유출했다는 명백한 배신 행위. 보통 같았으면 즉시 처벌을 받아도 할 말이 없는 짓이었다.
지금 그가 살아 있을 수 있는 건 첫째 형님이자 두목인 셉템버의 온정에 불과했다.
대부분의 조직원은 그를 따르긴커녕 무시하고, 왜 죽이지 않았냐며 비아냥거리기까지 한다. 이런 와중에 리브라의 본거지에 있었다가 들킨다? 얼마나 많은 욕을 먹을지 상상도 하기 싫었다.
게다가 리브라를 의사로 소개한 것을 보아 궁수는 리브라와 친밀한 관계에 있는듯 한데… 이 관계를 어찌 해명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생각해 보니 나도 배신자 아니오?”
누가 누굴 배신이라 욕할 상황이 아니었다.
“이봐 동지. 뭐가 그리 불안해?”
“혀, 형님이 지금 저 불한당의 제안에 넘어가기 직전 아닌가… 당연히 불안하지.”
“그러면 앞에 나서면 되잖아.”
궁수는 그의 정곡을 찔렀다. 불안하면 앞으로 나서면 된다. 악에 흔들리는 형제를 설득하고 집으로 돌아가면 된다.
“그게… 말처럼 쉽지 않소.”
하지만 제이슨은 망설임을 쉽사리 지울 수 없었다. 노벰버는 상당한 기분파. 여기서 자신을 발견한 순간 바로 오해를 하겠지. 무엇보다 고집도 상당히 강해 남의 말에 귀도 잘 기울이지 않으니 해명은 더욱더 힘들다.
아무리 뜻이 맞지 않는 조직이라 해도 몸담은 조직이란 사실은 변치 않다. 제이슨은 기껏 얻은 보금자리를 버리고 싶지 않았다.
“그래? 재미 없는 놈. 낭만 있게 살란 말이야.”
“그럴 생각이오.”
“오? 어쩔 건데.”
“낭만 있게….”
제이슨은 두 눈을 부릅뜨며 노벰버를 강하게 노려보았다.
“그저 형제를 믿을 뿐!”
“결국 아무것도 안 한단 뜻이구만. 알았다.”
궁수는 한숨 쉬며 그의 의견에 따라주었다. 조용히 기척을 죽이는 한편 제이슨의 어깨에 만들어진 상처를 관찰했다. 웬만한 상급 괴인이었다면 이 정도 시간이 흘렀을 쯤엔 적당히 아물었을 상처였다. 하지만 그의 어깨에선 여전히 피가 뚝뚝 흐르고 있었다.
‘연약한 몸이네. 한심한 동지 새끼.’
쯧, 궁수는 속으로 혀를 찼다. 상처가 나을 기미가 없었다. 인간의 경우 어깨를 꿰뚫리는 상처는 중상이다. 그리고 제이슨 역시 이 정도 상처는 중상이리라. 궁수는 확신했다.
“빨리 저 금돼지 새끼랑 쇼부를 쳐야 되는데….”
실수로 다치게 한만큼 죄책감이 심했다. 저 둘의 대화가 빨리 끝나야 가능한 일이겠지.
제이슨이나 궁수나 둘 다 다른 의미로 노벰버의 입이 열리길 기다렸다.
“…지금.”
노벰버가 입을 열었다.
“뭔… 개소리냐?”
“믿고 있었소 젠장!!!!”
“야 임마 닥쳐!”
뒷편에서 이상한 소리가 튀어나온 것 같았으나 머리에 피가 몰린 노벰버에겐 들리지 않았다.
“내가 이걸 왜 먹어 시발. 네 새끼 뭔 착각을 하는 거야? 내가 여기 온 이유는 하나. 형님의 숙제였다고. 가루가 비어있어? 형님이 뭐 이 약이 독인지 확인이라도 해 본 거겠지. 난 모르는 일이야 임마. 까고 자빠졌네 임마 죽여버린다 짜샤!”
노성을 고래고래 쳐대며 노벰버는 삿대질했다.
“뭔 염병 얼어죽을 헛소리를 하냐 했더니… 얼탱이가 밤탱이가 됐네 짜샤! 뇌를 똥통에 튀겼나 뭔 개소리야?!”
말투는 우스꽝스러웠으나 그 안에 담겨 있는 분노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노벰버는 진심이었다.
노벰버는 단 한 번도 이 약물을 쓴 적이 없었다. 수련 도중 제이슨이 능력을 잘못 사용해 떠나가자 그는 심심해졌다. 수련이 맥 빠지게 끊겨 그랬을까. 오늘은 수련을 끝내고 추모에 신경을 집중하려고 했다.
그 일환으로 돈 가방을 태우려 돈 가방이 있는 방에 가려 했을 때 형님에게 붙들려 이 약물의 처리를 부탁받았다. 리브라에게 가서 따지고 오라고.
가루가 줄어들었단 말에는 뇌 정지가 와 말을 절었으나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리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이 가루가 무엇인지 검증해 보았다고 생각하면 다 이해가 되었다. 만일 이 가루의 내용물이 마약이 아닌 독 같은 것이었다면 전면 전쟁을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 말도 없던 걸 보니 독이 아니라 설명대로 마약이었겠지. 지금 리브라의 반응만 봐도 그렇다.
그런데 리브라는 아직 상황을 살피고 있는 노벰버 보고 이 약물을 사용했느니 이제 더 강한 약물을 주겠느니 하고 있으니 그로서는 어이가 없을 따름이었다.
“내가 그딴 약물을 왜 써?! 존나 불안하게 생겼구만. 그거 쓰는 놈이 대가리 깨진 거 아니냐?”
맞는 말이었다. 뭘 믿고 적이 준 약물을 쓰겠나. 어떤 효능이 있을 줄 알고.
리브라는 시야가 좁아져 한 가지 사실을 간과해버렸다. 모든 괴인이 목표로 한 대상에 충실해지는 건 아니다. 자신의 꿈과 관련되지 않은 곁다리적인 목표라면 거리낌 없이 매몰되진 않는다.
아무래도 복수는 노벰버에게 있어 그리 대단한 목표가 아니었나 보다. 리브라는 허탈하게 웃었다.
“허….”
그 정도로 강한 적개심을 드러냈다면 분명 낚일 줄 알았는데.
“앞서 말했듯 그건 내가 주는 선물이다. 같은 적을 공유하고 있는 자네들에게 주는 우호의 표시. 내가 알기로 네놈들의 무력 자체는 별것 없다고 들었는데. 정말 큰곰자리를 각성한 와쳐를 이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 정녕 불안하면 부하에게 실험해 봐도 괜찮다. 그건 천만금을 주고 얻기 쉽지 않은 귀한 약이다.”
하지만 리브라는 포기하지 않고 설득하길 계속했다.
“내 알빠냐 시발? 어떻게든 되겠지! 어차피 기본적으로 인간인 그놈보다는 내가 오래 살 텐데. 자연사 하면 내 승리 아니야? 군자의 복수는 십 년이… 뭐였더라. 아무튼, 복수는 할 거지만 그렇게 급한 일은 아니야!”
노벰버가 한재중의 시한부 사실을 아는 건 아니었지만 그냥 대충 그렇게 생각했을 뿐이다. 그에겐 복수심보다 형제를 잃은 슬픔이 훨씬 강대했다. 그의 증오와 적개심은 모두 그 슬픔으로 비롯되었다.
그리고 그 슬픔보다 거대한 것이 다름 아닌 꿈에 대한 열망이었다.
처음 형제의 연을 맺을 때 맹세한 세 마리 짐승에 대한 도전.
리브라가 아르고 패밀리에 찾아왔을 적 노벰버는 분노에 젖어 무례를 행했다. 이를 셉템버에게 일갈 당했을 때 노벰버는 다시 마음을 되새길 수 있었다.
추모의 과정을 줄이고 수련의 비중을 늘린 이유가 다름 아닌 그것이었다. 복수를 위해서가 아닌 도전을 위해서 그는 무력을 키웠다.
“아무튼 우리는 이따위 약물 필요 없다! 형님이 전하길 이 마약 값만큼 술값으로 돌려달라고 한다. 또, 아무 말 없이 이 따위 약을 넣은 것에 대한 대가는 다음 번에 천천히 이야기 해보자고 한다. 자 이야기 전달 끝. 난 이제 할 말 없으니 간다.”
노벰버는 일방적으로 이야기를 전달한 이후 뒤 돌았다.
“후….”
리브라는 한숨을 내쉬며 이마를 짚었다. 일이 이렇게 되다니. 정말 안타까웠다.
“또 다시 손을 쓰게 되었군.”
철컹. 그의 어깨에 올려져 있던 저울이 기울어졌다. 금화 몇 푼이 왼쪽 저울에 올라가고 그 반대에는 쇠사슬이 올려졌다. 쇠사슬은 홀로그램처럼 희미했다. 두 저울이 완벽히 평행을 이루자, 금색의 별빛과 함께 금화와 쇠사슬이 기화되어 사라졌다.
“여기 거래는 이뤄졌다.”
사라진 쇠사슬은 노벰버의 주위에 펼쳐져 그를 결박했다. 평범한 쇠사슬이 아닌지 괴인의 괴력으로도 함부로 풀어낼 수 없었다.
“…?! 무슨 짓이냐!”
“정말 안타까워. 자네의 의지가 개입되었으면 했는데.”
리브라는 품 속에서 주사기를 꺼냈다. 잡고 있던 시험관의 액체를 천천히 그 주사기 안으로 흘러보냈다.
당연히 마약을 복용하지 않는 경우도 계산해 두었다. 그의 조직원 중 누구 하나가 이 실험실에 온 순간 끝난 것이다. 간부가 아니라도 상관 없었는데 간부가 찾아와 주었다니. 기쁜 일이었다.
이번에 개량한 마약의 데이터를 제대로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다시 슬픈 희생이 반복되게 생겼군. 안타깝군. 정말 안타까워.”
“시발 그게 뭔….”
“혀, 형제!”
제이슨은 반사적으로 뛰어나왔다. 그는 중상에도 불구하고 빠르게 달려와 그의 쇠사슬을 풀려 노력했다.
“배, 배신자 새끼! 네가 왜 여기에…!”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소! 빨리 풀어주리다! 기다리오!”
끙끙거리며 쇠사슬을 풀려 노력했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어깨의 상처에 체력도 빠진 상태의 제이슨으로선 그것을 풀기엔 역부족이었다.
“너… 어깨 씹창난 거 뭐야. 시발 누가 했어! 배신자 새끼는 우리만 갈굴 수 있는데 씨발!!!”
“호오… 이거 참 두터운 형제애로군.”
리브라는 여유롭게 주사기 안을 채웠다. 조심스레 기울인 시험관이 동나고 대신 주사기가 가득 찼다.
“네놈의 희생을 잊지 않을 것이다.”
저벅. 조용한 발소리가 방대하게 공동을 울렸다.
“야, 이 놈아! 도망이나 쳐! 여긴 이 형님에게 맡기고!”
“그럴 수 있겠소? 기다리오. 내가 금방… 아!”
제이슨은 쇠사슬에서 손을 떼고 몇 걸음 물러났다. 그리곤 자신의 벨트에 손을 가져다 댔다.
“능력… 이 능력이라면…!”
길을 잃게 만드는 능력.
도주 하나에는 대단한 능력이다. 그간 수련한 성과를 드러낼 때다.
하지만 그 힘의 이름처럼 올바른 길에는 가지 못하게 만든다. 지금도 그랬다. 가장 올바른 길에 사용될 수 있을 때 그 힘은 가장 약해져 있었다.
체력도 별빛도 전부 고갈돼 제이슨 스스로도 발현이 힘들었다. 아무리 벨트의 노를 저어도 능력이 발현되지 않았다.
“이런… 젠장… 젠장…!”
“도망치라니까?”
“동지, 비켜!”
그때 뒤에서 궁수의 외침이 들려왔다. 제이슨은 반사적으로 비켰다. 와중에도 벨트에선 손을 떼지 않았다.
딱히 노벰버에게 정이 없는 궁수였지만 동지와는 연이 있다. 그의 화살이 정확히 쇠사슬의 연결부를 스쳐 지나갔다. 이것이면 충분했다. 노벰버를 결박하고 있던 쇠사슬이 풀렸다.
“배신자 새끼!”
또한, 리브라 역시 충분한 거리를 얻었다. 주사기를 꽂기에.
“늦었다.”
콰직! 그의 주사기가 노벰버의 등을 꿰뚫고, 노벰버는 제이슨의 몸을 밀어 자신에게서 거리를 벌리게 했다.
노벰버의 별빛이 타들어가듯이 강한 빛을 내뿜고.
제이슨의 능력이 발동되었다.
그는 길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