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nsform or death RAW novel - Chapter 152
Chapter 152 – 약간의 돈과 내일 살 곳만 있으면 충분하다 (13)
젠장할, 젠장할. 입 안에서 욕설이 되풀이되었다.
뒷걸음질은 한계에 도달해 더이상 도망갈 데가 없었다.
몸에서 기묘한 불빛을 뿜어내고 있는 사람들은 무언가에 홀린듯 이쪽을 향해 모여들었다. 아마 전원 아르고 패밀리의 일원.
다행히 현관에서의 습격 이후 새롭게 인원이 밀려들진 않았지만 이미 방 안은 수용 가능 인원을 한참 초과해 있다.
“진짜 어쩌냐….”
난장판이 될 거라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 일거라곤 상상도 못했다.
“타시카니(확실히)… 좆됐군요!”
“잠깐, 이럼 호텔 직원 분들은 어떻게 되는 거지…?”
어디 별장일 줄 알았는데 설마 호텔이었다니. 하긴 멀리 나가기엔 납치 시간이 부족하기도 했다. 기절했다가 깨어날 때까지 채 30분도 걸리지 않았으니까.
호텔이라면 여기 상주하는 직원이나 다른 숙박객도 있을 터. 앞뒤 가리지 않고 천장부터 부수고 들어온 걸 보면 저들이 다른 사람을 배려해줄 거라곤 생각하기 힘들다.
“에에… 제가 여기 올 때 일단 급히 대피시키긴 했는데…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요! 제 따까리들 몇을 보내보겠습니다!”
화이트 다비흐는 조금의 망설임 없이 뿔피리를 불었다. 큰 구멍이 뚫리며 방음 및 방진의 효과를 잃은 천장에서 강한 진동이 느껴졌다.
그 능력 선즉사(善則死). 사즉선(死則善).
땅 밑에서 괴인의 시체를 솟구치게 하는 방식 덕에 몇몇 사람은 그 능력을 그 자리에 원래 있던 괴인의 시체를 부활시키는 거라 착각한다.
하지만 다르다. 화이트 다비흐의 마법의 본질은 저 세상과 이 세상을 잇는 것.
땅을 출입문 삼아 저 세상을 멤도는 것들을 이 세상으로 가져온다. 땅이란 기준은 상대적이다. 여기선 천장이라도 윗층에선 바닥일 테니.
그러니 이렇게 천장에서도 시체 병사들을 부를 수 있는 것이다.
“크아아악! 뭐 이리 힘이 쎕니까 이 놈들!”
화이트 다비흐는 길이라도 개척해보려고 앞으로 나서려 했지만 그 때 사람 한 명에게 가로막혔다.
“여기에는 못 불러?!”
“아까 걸로 똘마니들이 전부 떨어졌습니다!”
“와우.”
어차피 이 정도 밀도였으면 불러도 금방 사람의 무게에 짓눌려 죽었겠지. 화이트 다비흐가 인파들에게 떠밀려 한재중의 근처에 더욱 붙었다.
그러기 무섭게 한재중에게도 공격이 들어왔다. 어깨에 문신이 있는 민소매 남자는 어린아이의 주먹질마냥 주먹을 마구잡이로 휘둘렀다. 움직임은 둔했으나 파괴력은 그렇지 않았다.
원래 같았으면 가볍게 피할 공격도 공간이 없어 막지 못했다. 콰직! 주먹이 팔에 닿자 무언가 박살 나는 소리가 들렸다.
“…!”
굳이 분석할 필요도 없었다. 머리 끝까지 차오르는 통증은 박살난 게 자신의 팔이라 금방 알려주었다. 강렬한 고통에 소리를 지를 수도 없었다.
“뭐, 뭔 소리입니까…?!”
“크으… 내 팔 박살났다. 별 거 아니야.”
“역시 형님입니다 가오가 오지는 군요. 밥 먹는 팔입니까 아니면 딴 쪽?”
“밥 먹는 쪽!”
“그거 불쌍하군요!”
짜릿한 고통을 떨칠 새도 없이 금방 다른 이가 팔을 휘둘렀다. 날카로운 손틉은 어깨자락을 찢고 안에 자상을 새겼다. 쉴 새 없이 밀려드는 인파는 갈 곳 없는 발에 부담을 주었다.
팔 하나 움직이기도 힘들 정도의 인파는 부러진 팔이라 해도 밑으로 내려가지 않고 사람들 틈에 고정되게 해주었다.
조금만 힘을 뺐다간 그대로 균형을 잃는다. 그걸 제일 피해야 할 일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얼마 안 남은 거 같았다.
“거 힘이 장시시네요 시발…!”
변신을 안 한 상태에선 힘의 차이가 극심하다. 바로 앞 문신을 한 남자가 다시 주먹을 휘둘렀다. 박살난 팔 안의 뼈를 다지듯 강하게 주먹을 밀어넣었다. 그 충격이 등까지 전달되었다. 갈비뼈가 산산히 조각 나는 느낌이 들었다.
이대로 정말 얼마 못 버틴다. 깔려 죽거나 맞아 죽거나. 혹은 맞아 죽기 직전에 깔려서 확인 사살을 당하던가.
점차 몸 곳곳에 멍과 자상이 늘어나 고통스러웠다. 다리는 후들거리고 숨은 쉬기도 힘들었다.
[수호자 역시 변신을…!]벨트가 다급하게 일렀다. 목소리에 고저는 없었으나 유독 말이 평소보다 빨랐다.
진짜 그래야겠다. 이러다간 죽겠다. 심지어 이들은 아직 전력을 내지도 않은 상태. 점차 저들의 별빛의 세기가 더욱 거세지고 있는 걸 보면 확실하다.
저 정도의 별빛이라면 최대치가 A급 괴인은 된다. 의식이 없어 제어가 불가능한 건지, 지금은 그나마 얌전하지만 저 별빛을 전부 활용하기 시작한 순간 목숨은 채 3초를 못 버틸 거다.
‘시발 이러다가 제 명에도 못 죽겠네.’
이러다간 시한부고 뭐고 타살로 뒤지게 생겼다.
이제 정말 선택해야 한다.
변신할지 이대로 버틸지.
화이트 다비흐도 슬슬 한계에 다다른 듯하다. 버티기만 하면 이길 수 없다.
인정하자. 이들은 이제 사람이 아니다. 괴인과도 같은 힘으로 괴인처럼 행동하는 괴물이다. 공포 영화에나 나올 법한 좀비와 똑같다.
인격을 잃고 사람을 공격하는 고깃덩이다.
이런 식으로 마음을 세뇌해봤자 전부 망설임을 떨쳐낼 순 없다. 어찌보면 당연했다. 생긴 건 사람이다. 아무리 본질이 다르다 한들 겉모습이 비슷한 존재를 해치는 데엔 거부감이 생길 수밖에.
심지어 나중에 나 역시 이런 꼴이 될 수도 있다. 보티스의 말에 따르면 이 수명이 다한 순간 시스템은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 이 시체 위에 괴인의 몸을 덧씌워 움직이게 할 테니까.
그게 저것들과 별 다를 바는 없겠지. 한재중은 쓰게 웃었다.
‘…아니, 잠깐.’
한재중의 뇌리에 번뜩이는 생각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
괴인이 되어 날뛰는 미래가 안 올 수도 있다.
“이봐요, 지금부터 말하는 건 비밀인데….”
한재중은 고통을 참으며 화이트 다비흐에게 말을 걸었다.
“그렇습니까? 우연이네요!”
퍽! 다시 무언가가 깨지는 소리가 났다. 곧 촥! 하며 붉은 액체가 치솟았다. 화이트 다비흐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앞에 있는 남자의 머리에 뿔피리를 휘둘렀다.
“1분 유예 시간 끝났습니다! 이제 당신들을 제 적으로 생각하겠습니다!”
그녀는 평소와 조금도 다르지 않은 천진한 목소리로 그리 외쳤다. 머리가 깨진 남자는 별안간 정신을 잃고 푹 쓰러졌고, 뒤에 있던 남자가 새롭게 달려들었다.
화이트 다비흐는 한 순간의 지체 없이 다시 뿔피리를 휘둘렀고 그의 머리가 깨졌다. 다시 한번 철푸덕, 하며 한 남자의 시체가 만들어졌다.
“적이라니까요? 움직이면 깨집니다! 다시 한번 말합니다! 이제 유예 시간 지났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하는 모든 일은 정당방위가 됩니다!”
볼에 튄 피를 쓱 닦고 그녀는 재차 소리쳤다.
유예 시간이 있다는 말이라도 미리 꺼내고 그런 말을 하던가. 한재중은 속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아니키!”
화이트 다비흐는 싱글벙글 웃으며 한재중의 어깨를 잡았다. 그대로 휙 당겨 제 품에 안았다.
“아니키도 공범입니다. 알겠습니까?”
“협박이니?”
“어… 음… 모르겠습니다!”
“그럼 협박인 걸로 합시다.”
“네! 그러죠!”
화이트 다비흐는 뿔피리를 잡지 않은 왼손으로 그의 눈을 가렸다. 시야가 어둡게 물들어졌다. 그리곤 무릎 관절을 차 그대로 무릎 꿇게 만들었다.
“전 협박 중입니다! 이걸 발설하면 뒤집니다! 알았죠?”
“그러렴.”
화악! 주변의 온도가 올라갔다. 가려진 시야 속에서도 별빛이 보일 정도였다. 이 탁하고 습한 느낌, 습격자들의 별빛이었다. 화이트 다비흐도 그에 맞게 별빛을 끌어 올렸다.
뿔피리의 끝부분을 입에 대고, 힘을 주어 불었다.
뿌우우! 강렬한 관악기 소리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곧 이어 방금 쓰러뜨렸던 두 구의 시체가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살은 녹아 떨어지고 해골과 근육이 훤히 드러났다.
“죽은 사람 우리 편! 뒤진 사람 우리 편! 이제 다 뒤졌습니다! 오랜만에 따까리 좀 늘려야겠네요!”
뿔피리를 입에서 떼고 그대로 휘둘렀다. 관악기 다음엔 타악기가 울려 퍼졌다. 살과 뼈로 만들어진 타악기는 그리 맑진 않지만 나름대로 속 시원한 타격음을 내었다.
화이트 다비흐에게서 사람을 죽인다는 죄책감이나 시체를 능욕하면 안 된다는 윤리는 찾아볼 수 없었다. 마치 고기를 다지고 그걸로 요리를 하는 게 뭐가 문제냐는듯이.
당연한 행동이었다.
자신을 공격했으니 공격하고, 쓸 수 있으니 쓰고.
“자, 오십시오! 오는 사람 족족 대가리를 깨버리겠습니다!”
그녀에게선 어떤 문제 의식도 찾아볼 수 없었다.
산 자와 죽은 자 모두 존중하지 않으며 선이 없기에, 그녀는 저 세상과 이 세상의 선을 넘나들 수 있었다.
조종하는 시체들이 새로운 시체를 만들고, 그녀는 가만히 선 채 다가오는 자들의 머리만 깼다. 아마 한재중을 보호하기 위해 함부로 움직일 수 없는 탓이겠지.
한재중은 손가락 틈에서 그녀의 싸움을 관찰하며 역시 자신의 생각이 맞았구나 하며 실감할 수 있었다.
이게 화이트 다비흐, 오토나시 하루.
일본에서 죽은 마법 소녀를 조종하는 문제를 일으켜 한국에 유학이란 명분으로 추방된, 마법 소녀 최대의 문제아.
**
오데트가 미처 나비를 날리기도 전에 파도가 그녀의 몸을 덮쳤다. 용암과도 같은 뜨거운 격열에 몸이 타들어가는듯 했다. 비명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몸을 가누기도 힘든 때, 파도가 멈췄다.
방금 전까지 그녀를 향해 덮쳐오던 파도가 얼어붙었다. 블루 시리우스가 본인만이 아닌 오데트까지 파도를 막아준 것이었다.
“…왜 나까지…?”
오데트가 어안이 벙벙한듯이 묻자 블루 시리우스가 고개를 돌렸다. 아까 본 것돠 다름 없이 차가운 눈빛이었다. 그렇기에 더욱 의아했다.
저렇게 괴인을 혐오하는 블루 시리우스가 왜 괴인을 구해준 것인가.
후, 푹 한숨 내쉰 그녀가 물었다.
“방금 전, 알타이르랑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지?”
“…! 아, 아니 그건….”
“됐어. 알타이르에겐 내통할 용기가 없는 걸 알거든. 스파이 같은 사유로 캐묻는 게 아니야.”
“그럼 뭔데.”
“지금 너에겐 지금 이 괴인을 쓰러뜨릴 용의가 있지? 전에도 그랬고.”
오데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야. 별다른 이유는 없어. 적은 새로운 능력을 각성했고. 다른 데로 이동을 시작했어. 우리들만으론 벅차.”
블루 시리우스가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그 손가락 끝을 보자 파도를 타고 이동을 시작한 괴인이 보였다.
괴인을 쓰러뜨리기 위해 괴인의 힘을 빌린다. 마법 소녀에겐 굴욕과도 같은 상황이었지만 블루 시리우스 개인은 별 상관 없었다. 남들이 비웃든 욕 하든 본인의 알 바가 아니다.
“난 찬밥 더운밥 가릴 여유가 없거든. 반드시 살아서, 돌아가야 돼. 너희 괴인들은 정말 혐오스럽지만….”
괴인은 혐오스럽다. 그러니 본인들 끼리 싸워서 둘 다 다쳐주면 이득이다. 자존심을 앞세워 고집을 부릴 생각은 추호도 없다.
지금은 일과 생존. 그것만 생각하면 된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게 있거든.”
오데트는 납득했다. 그리곤 나비를 날렸다.
저 말이 그녀의 공투를 받아들이겠단 뜻이지 협력하겠단 뜻은 아닐 것이다.
그녀는 그녀 나름대로, 자신은 자신 나름대로, 알아서 저 괴인과 싸우란 의미일 터. 그리고 오데트에겐 자신의 싸움을 위한 협력자가 필요했다.
오데트가 그렇게 나비로 이동을 시작하기 직전, 블루 시리우스가 말을 걸었다.
“알타이르라면 포기해.”
“…뭐?”
“안타깝게도. 방금 전 해일로 다쳤어. 변신까지 해제 되었단 소식이야. 이제 협력은 기대할 수 없어.”
블루 시리우스는 이를 우득 갈았다.
“…자, 잠깐. 그렇다면….”
우주로 날리는 협력자가 사라졌단 이야기. 조아윤은 망연자실해졌다.
**
“이, 이보오! 이보오!”
“뭐야. 잡혀있던 거 아니였어?”
“다행히 풀려났소. 아, 아니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오!”
제이슨의 숨을 몰아쉬며 외쳤다.
“도와주시게!”
분하지만 자신에겐 능력이 없다. 이 사태를 수습할 수 없다.
“내 형제를 멈춰주게!”
하지만 이에겐 있다. 사지, 자신의 동지라면….
희망을 가지고 제이슨이 부탁했다.
“뭐? 내가 왜?”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절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