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nsform or death RAW novel - Chapter 154
Chapter 154 – 약간의 돈과 내일 살 곳만 있으면 충분하다 (15)
화이트 다비흐는 초반에 우위를 잡는 듯했으나 점차 밀리기 시작했다.
“오라!”
그녀가 좋아하는 만화의 기합을 외치며 상황을 타파하려 노력해보지만 현실은 바뀌지 않았다.
습격한 아르고 조직원들의 내구성은 초반과 달리 강철보다도 단단해졌고, 힘 역시 한층 강력해졌다.
콘크리트 외벽을 두부 부수듯 움켜쥘 수 있고 무거운 가구도 한 손으로 잡아 던질 수 있다.
아마 그 펀치력은 가히 1톤은 될 터. 킥력은 그 두 배는 될 수도 있겠다.
개미마냥 바글바글 방 안을 채운 사람 하나하나가 B급에서 A급 사이의 괴인과 똑같은 수준의 힘을 지니고 있었다.
진짜 괴인의 군대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괴물들의 진격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조종하는 괴인은 대부분이 C급에 강한 개체는 해봤자 B급 초 수준의 힘을 지니고 있다.
죽은 괴인을 되살려봤자 그 피지컬은 생전보다 부족한 편이다. 게다가 몇몇은 완전히 별빛을 각성하기 전에 죽이고 부활시킨 터라 상대적으로 빈약한 피지컬을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여기서 죽인 괴인을 즉시 되살려 수하로 부리고 한들, 저쪽에 비해선 물량 역시 부족하다.
부서지는 족족 재생을 시키고 있긴 하지만 부수는 속도에 못 미친다.
쾅! 아르고 조직원이 팔을 한번 휘두르자 시체 병사가 저 멀리 날아가 벽에 박혔다. 크레이터 자국 같은 게 벽에 새겨지고 몸은 피떡이 되었다. 무슨 유압 프레스기로 눌린 것마냥 처참했다.
질도 양도 차이가 심하다. 두 좀비 군단의 싸움은 점점 아르고의 승리로 기울고 있었다.
“아악! 이런 씹!”
평소처럼 괴인을 부리기만은 하지 못한다. 화이트 다비흐도 열심히 뿔피리를 휘둘러보지만 잠시 발걸음을 주춤거리게 할 뿐 저번처럼 상쾌하게 대가리를 터뜨릴 순 없었다.
“어우, 개빡센데요!”
“…다비흐 씨.”
“와우 씨 깜짝아! 있었습니까?”
“뭐 그럼 벌써 뒤졌는지 알았어요?”
“솔직히 조금은요!”
한재중은 피식 웃었다. 화이트 다비흐도 함께 웃었다.
“다행히 안 뒤졌으니 다비흐 씨에게 하나 제안을 드릴게요.”
“뭐, 뭡니까? 아까 그 비밀로 해달라는 그거입니까?”
“예 뭐… 그것도 있고, 다른 하나도 있습니다. 둘 중 하나 선택해주세요.”
한재중은 언제 완성했는지 모를 부목으로 부러진 팔을 고정하고 있었다. 그 부러진 팔을 과시하듯이 들어 올렸다.
“하나는 아까 말했듯이 제 비밀입니다. 여기서 본 것을 함구해주세요. 그러면 제가 지금 이 싸움에 조력하겠습니다.”
“존나 쓸모 없을 거 같은데요?! 아니키는 그냥 잠이나 자주세요!”
“아니키라면 그만한 대우를 해주던가 쯧. 그럼 두 번째.”
부러지지 않은 다른 팔을 들어 올렸다. 화이트 다비흐의 조급한 얼굴 한켠에 의문이 꽃폈다.
“저에게 하나 함구할 일을 늘리세요.”
“그게… 무슨?”
“숨기고 있는 부하 하나 있잖아요. 그거 꺼내.”
마지막 말은 반말이었다. 마치 장난으로 부르던 형님의 권위를 과시라도 하듯이.
“….”
화이트 다비흐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짜증날 때도, 기쁠 때도, 슬플 때도, 언제나 천진하던 그녀의 얼굴이 혼란으로 물들어졌다.
“그걸… 어떻게?”
“지금 그게 중요해? 일단 살아야 할 거 아니야. 어쩔래?”
반대로 한재중은 여유롭게 되물었다. 당장 목숨이 위협받고 있는 상황 속 가장 약자일 터인 그가 이곳에 있는 이들 중 가장 너그러웠다.
“서로 비밀을 하나씩 나눌래, 아니면 나를 믿고 너의 비밀을 하나 더 밝힐래. 어쩔래?”
화이트 다비흐는 입을 다문 그대로 묵묵히 팔을 휘둘렀다. 뿔피리가 붕 허공을 휘저었고 그 경로에 있던 사람의 머리가 터졌다. 이후로도 열 번 정도를 계속하여 팔을 휘둘렀다.
핏물이 원을 그리고 그녀의 얼굴도, 한재중의 얼굴도 끈적하게 물들었을 무렵, 그녀는 팔을 휘두르던 걸 멈추고 입에 뿔피리를 가져다 대 힘차게 불었다.
왠지 모르게 구슬픈 피리소리가 저 멀리 퍼져나가고, 방금 만든 시체가 일어나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는 화이트 다비흐가 아닌 다른 아르고 조직원들을 향해 달려 나갔다.
원래 같았으면 한 번만으로 족했을 타격을 십 수 번을 먹여야 간신히 죽일 수 있었다. 저들에게 의식과 이성이 없고 행동이 단순해서 다행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이미 죽었으리라.
사실 그녀도 알고 있을 것이다. 지금은 인정사정 봐줄 때가 아니라고.
“후….”
화이트 다비흐는 피리에서 입을 떼고 숨을 고르다 살짝 고개를 내려 한재중을 쳐다보았다. 소름이 돋는 눈빛이었다.
흔히 맑은 눈의 광인이라고 하던가. 아무것도 읽을 수 없어 보는 사람 보고 무지의 공포를 가지게 하는 눈동자. 일반적인 감성과 공감대가 결여된, 오직 주관에 기반된 확신만이 가득찬 모습.
한재중은 굳이 피하지 않았다. 그럴 이유도 없었다. 그도 만만치 않게 확신에 가득찬 상태였으니까.
일부러 강하게 나섰다. 얼핏 협박이라고 해석될 수도 있을 정도로.
하지만 그래야만 했다.
지금 화이트 다비흐를 보고 확신했다.
자신에게 해가 될 경우 사람의 모습이라도 상관 않고 망설임 없이 죽이는 면, 보호해야 할 민간인을 놔두고 피로 목욕을 하며 전투의 희열을 느끼고 있는 점, 그 외에도 여러 문제를 가지고 있다.
그녀는 위험분자다.
자신의 주관대로 행동하다 선을 넘어 주변 마법 소녀들에게도 외면받다가, 후에 혼자 외로운 싸움을 반복하다 죽을, 그런 사람이다. 평생을 시체에 둘러싸여 있다 본인도 시체가 될 사람이다.
‘원작의 결말대로 갈 수는 없는 일이지….’
마법 소녀 전성기 속에서도 이런 일은 벌어진다. 사람의 모습을 한 괴인을 망설임 없이 죽인다음 다른 이들에게 오해를 받는 장면이.
보통 사람 같았으면 해명을 했겠지만 그녀는 그렇지 않았다. 자신에게 덤벼드니까 쓰러뜨렸다. 이 논리로만 우직하게 밀고 나갔다.
하필 그 때는 레드 베가도 심적으로 혼란스러웠을 시기라 그녀를 제대로 두둔하지 못했고, 그렇게 화이트 다비흐는 겉돌게 된다.
화이트 다비흐의 기준은 너무나 확고하다. 남들과는 다른 감성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그녀에겐 통제가 필요하다. 그 기준을 바꿔줄 사람이 필요하다.
지금은 다른 마법 소녀들의 정신도 비교적 건강하고, 사망자도 없다. 그렇기에 아직은 기준을 잡을 수 있겠지만….
그녀가 혼자가 되었을 때, 그녀는 다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겠지. 모든 구경꾼들이 나처럼 비밀을 지켜줄 거라곤 생각하지 못한다. 그녀는 마법 소녀인 만큼 조금의 행동만으로 쉽게 곡해될 수 있다.
원래라면 이럴 생각까진 없었지만 지금 그녀를 보며 확신했다. 지금 바로잡지 않으면 원작대로 갈 뿐이다.
그 미래가 그려진 만화 그대로.
화이트 다비흐에겐, 자신이 혼자가 아니란 걸 상기시켜줄만한 사람이 필요하다. 원작에선 레드 베가가 했어야 했지만 하지 못한 역할을.
고단한 살육의 소리만이 반복되는 삭막한 침묵 속, 한재중과 하루는 서로 눈빛을 나눴다.
“비밀… 지켜줄 겁니까?”
그녀는 두 번째 안을 따를 생각이었던 것 같다. 한재중에게 비밀 하나를 더 씌우는 작전.
“물론이지.”
“내쫓지 않을 겁니까? 이걸 알아도?”
화이트 다비흐의 물음에는 조금의 흔들림도 없었다. 그 안에 상처는 없었다. 단순한 의문이었다. 경험으로 쌓인 반응을 내놓은 것이었다.
너는 욕하지 않을 거야? 그런 순수한 의문.
“하루, 난 이미 네 비밀이 뭔지 알고 있어. 도망갔다면 이미 한참 전에 도망갔겠지.”
화이트 다비흐는 이걸 어떻게 알았는지 묻지 않았다. 딱히 궁금하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왜죠?”
다만 왜 이걸 보고서도 비밀을 지켜주겠는지는 궁금해 했다. 화이트 다비흐는 딱딱한 한국어로 질문했다.
“너에게 악의가 없음을 아니까. 사실 앞뒤가 반대지. 내가 널 믿어서, 너도 날 믿어줬으면 좋겠단 거야. 어때, 이기적이지?”
화이트 다비흐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믿겠습니다.”
왜 하지 않아야 되는지 모르지만, 그간 하지 않아야 한다고 들어왔기에 금해왔다. 하지만 지금 그는 해도 괜찮다고 한다. 다물어 준다고 한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론 이미 욕이란 욕은 다 긁어 모아 뱉은 다음 살려달라고 빌어도 이상하지 않았는데.
이상한 일이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래서 좋았다. 자신도 이해할 수 없는 존재라고 자주 들으니, 옆에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 하나 더 생긴 건 든든했다.
남들이라면 조금도 설득되지 않았을 기묘한 언행. 하지만 화이트 다비흐이기에, 일반적이지 않은 사람이기에 그녀는 설득되었다.
“코레가(이것이)… 나카마(동료)…?”
서로의 비밀을 나누는 진솔한 관계. 만화에서 읽은 적이 있다.
화이트 다비흐는 결심한듯이 씩 웃었다. 맑은 눈에 결의가 가득 찼다.
“좋습니다. 함구해주십시오. 그러면, 뭔지 몰라도 앞으로 저도 아니키의 비밀을 지키겠습니다.”
이렇게, 한재중은 화이트 다비흐를 통제할 실 하나를 손에 넣었다.
“지켜봐 주십시오, 제 비밀.”
척, 뿔피리를 양 손으로 잡았다. 그리곤 깃대를 올리듯이 그걸 높이 치켜 들었다.
“…제 변신을.”
콰창! 뿔피리가 깨지고 그 안에서 더 자그만 피리가 드러났다. 사실 피리라고는 말하기 힘든 생김새였다. 얼핏 보면 마법 소녀의 요술봉처럼 생긴 모양새.
화이트 다비흐가 다시 입에 가져다 대고 음색을 낸 순간부터, 그것은 피리라고 여겨졌다.
웅장했던 뿔피리의 소리와 달리 청아한 울음이 하늘하늘 퍼져나갔다.
그리고 화이트 다비흐의 몸에 지금까지와는 다른 은색 별빛이 휘감겼다. 그녀의 등에선 귀신과도 같은 반투명한 무언가가 있었다.
이것이 화이트 다비흐의 숨겨진 능력.
부활시킨 마법 소녀의 별빛을 자신도 사용하는 것.
승청(承聽).
잇고, 받아들인다 하여 승청.
이 말이 승천(昇天)과 비슷한 울림을 가진 건 우연이 아닐 터였다.
화이트 다비흐의 가장 강한 무기이며.
그녀의 가장 큰 추방의 사유.
지금 화이트 다비흐의 뒤에 아른거리는 소녀의 모습은 일본에서 꽤 유명했던 마법 소녀라고 한다.
그리고 화이트 다비흐의 능력은, 자신이 죽인 사람만 부활시켜 수하로 다룰 수 있다.
즉, 저건 화이트 다비흐가 살인을 했다고 알리는 것과 다름 없는 일종의 원죄였다.
구슬픈 피리 소리가 널리 울려퍼지고, 화이트 다비흐의 어깨에 완전히 은색 귀신이 내려 앉았다.
지금 그녀의 모습은 사령술사보다는 무녀에 가까웠다. 피리를 멈춘 그녀가 몸을 움직였다. 그 움직임은 춤을 추는 것만 같았다.
“갑니다.”
**
제이슨은 다음 상대로 한재중을 찾았다. 다행히 몇 걸음 걷지 않고 바로 도달할 수 있었다.
“이, 이봐 동지! 내 부탁이… 으앗?!!”
그리고 그의 곁에 도달하자마자 깜짝 놀랐다. 한재중의 주변이 온통 피투성이였기 때문이다. 마치 여기서 전쟁이라도 일어났던 것 마냥.
이보다 이상한 점이 있었다. 주변에 시체가 하나 없었단 점이다. 최소한 다친 사람이라도 있어야 할 텐데, 그조차 없었다.
한재중과 그 옆에 있는 여인에게서 이 모든 피가 유래되었다 믿기는 힘들다. 그랬다면 저들이 이미 시체였을 테니까.
“무, 무슨 일이 있던 것이오…?”
“훗.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대답은 한재중이 아닌 묘하게 멋진 포즈로 앉고 있는 여인이 대신했다. 제이슨은 이 여인이 이곳의 참상을 일으켰을 거라곤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화이트 다비흐는 모든 습격자를 시체로 만들고 자신의 수하로 삼았다. 시체가 전부 사라진 이유는 그녀가 그 시체들을 저 세상으로 옮겨놨기 때문이었다.
여인은 팔을 움직여 제이슨을 가리켰다.
“아, 저 녀석 입니까? 저게 아니키의 비밀 입니까? 저 놈을 불러서 퇴치하려고 했군요! 이열~ 괴인한테도 인기가 많네요!”
“아닌데….”
“후후, 이제 숨기실 거 없습니다. 저희들은 진정한 나카마니까요!”
“엥? 나카… 뭐?”
“아, 나카마가 아니라 의형제가 좋습니까? 맞네요! 의형제로 갑시다!”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 모를 화이트 다비흐를 내버려 두고,
“그런데 제이슨.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이 피 주인들 다 니네 패밀리 놈들이야. 니네 대빵과 예전에 다 합의한 거 아니었어? 얘네들이 날 왜 습격하는데?”
패밀리가 언급되자 제이슨은 즉시 고개를 숙였다.
“미안하오… 이건 다 내 불찰일세…!”
“아니 니가 사과를 왜 해. 니 잘못인 것만 사과해. 호구처럼 뭔….”
“내 잘못이 맞소!”
“…뭐?”
당황한 한재중에게 제이슨은 자초지정을 설명했다.
“…리브라가 니네 패밀리에 마약을 풀어서 이 사단이 났다?”
“그, 그리고 내가 능력을 잘못 사용하여… 그리고 저번 납치 사건에 자네를 끌어당긴 탓에….”
“별 걸 다 탓한다. 결국은 다 리브라 그 놈 잘못이구만.”
한재중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소. 그래서 어떤가? 나를 도와 형제를 막아 줄 생각은.”
제이슨이 손을 내밀었다. 한재중에게 있어 저 손길은 굳이 거절할 필요가 없었다. 지금 생각하는 건 공통적일 테니.
“당연하지.”
한재중이 손을 뻗어 악수를 하려 할 때, 쿠궁! 하며 강한 진동이 일었다.
“…?!”
“뭐야 이거.”
“으아아… 근육통이… 뭐가 이리 시끄러워! 우루사이(시끄러)!”
진동에 그곳에 있던 모두가 반응했다. 방금 전까지 몸을 혹사시킨 탓에 기진맥진한 화이트 다비흐가 투덜거렸다.
“아… 통신?”
그녀의 리본 중앙에 달린 보석이 반짝거렸다. 싸움 중에서도 계속 반짝거렸는데 미쳐 신경 쓰질 못했다. 너무 바빠서 연락을 받을 틈이 없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잠깐 쉿! 중요한 연락입니다!”
“…저 처자는 누구요?”
“그, 아는 동생 있어.”
화이트 다비흐는 자기 합리화를 하며 통신을 받았다.
[작전에 실패했다.]쿠구구궁! 다시 한번 진동이 일었다.
[다시 한번 알린다. 작전은 실패했다. 우리는 패배했다.]이윽고 벽에 금이 갔다. 안그래도 전투의 흔적으로 잔뜩 상처가 나 있던 벽이 깨진 유리창 처럼 갈라지고 또 갈라졌다.
벽면에 그어진 선은 천장까지 다달았다.
[전원, 대피하라.]갈라진 틈새로부터 물이 새어나왔다. 하수관이 망가진 건가? 하긴 그렇게 싸워댔으니.
[살아라.]화이트 다비흐는 통신을 끊고 싱글벙글한 표정으로 한재중의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행님.”
“어.”
“저희 좇됐지 말입니다?”
“너 그 말투는 어디서 배웠… 뭐?”
콰과광! 끝내 벽과 천장이 무너졌다. 그 공백을 채우기 위해. 물이 들어왔다.
모든 걸 휩쓸고 지나갈 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