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nsform or death RAW novel - Chapter 155
Chapter 155 – 약간의 돈과 내일 살 곳만 있으면 충분하다 (16)
뻔한 이야기다.
일이란 건 원래 의욕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 그에 맞는 능력이 필요하다.
“안 돼.”
블루 시리우스는 알고 있다.
자신은 다른 동료들에 비해 뛰어날 뿐이지, 절대적으로 뛰어난 게 아니란 걸.
S급 괴인과 일 대 일이 가능해? 그딴 게 뭐가 대단한 건지 이해가 안 된다. 뭐라고 치켜세우는 거지? 이제 S급 괴인이 본격적으로 활동을 개시했다. 언제나 적이 혼자만 올 보장은 없다.
이런 와중에 일 대 일이 가능하단 게 장점인가? 블루 시리우스는 자신에게 저런 말이 수식된다는 소식을 듣고 처음에 누구를 놀리는 건가 싶었다.
“안 돼….”
블루 시리우스는 한참 전부터 받아들였다.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있었다.
나약했다. 언제나 나약했다. 살면서 단 한순간도 괴인에게서 우위를 점한 적이 없었다.
강해져 봤자 그 위의 사람이 나온다. 성장 속도보다 강적이 나타나는 속도가 더 빨랐다.
그녀의 눈망울 가득히 물이 고였다. 온통 물이었다. 있으면 눈에도 시야에도 물이 가득했다. 흔히 생명의 근원이라 일컬어지던 것이 지금 가장 많은 생명을 빼앗고 있었다.
“멈춰, 멈춰. 제발….”
아무리 물을 얼려도 진격은 멈추지 않았다. 온천처럼 데워진 물은 얼음으로 만드는 것도 쉽지 않았으며 기껏 얼려도 금방 녹아내렸다. 심지어 괴인의 근처에 있는 물은 용암처럼 뜨거웠다.
그의 앞에 거대한 얼음벽을 생성했다. 하지만 괴인은 용암의 파도로 금세 벽을 지우고 앞으로 나아갔다.
레드 베가도 가까이 다가가 공격해 보려 하지만 역부족이었다. 애초에 가까이 다가갈 수도 없었다. 접근해봤자 물에 휩쓸릴 뿐. 괴인의 반응 속도가 더 빨라지고 있다.
오데트란 괴인이 보내는 나비도 파도에 휩쓸려 제대로 활약도 못해보고 물에 가라앉았다. 상성이 너무 좋지 않다. 물을 어딘가로 이동시켜 봤자 다른 곳이 물난리가 날 뿐이고 이 많은 양의 물을 한번에 옮길 수도 없다.
세 명의 고군분투에도 괴인의 진격은 멈추지 않았다.
그에겐 의식이 없었다. 의지나 열정도 없었다. 그저 리브라의 목적대로 날뛸 뿐.
말 그대로 장작이었다. 몸과 영혼을 불태우며 별빛을 밝히는 장작. 능력을 사용할수록 몸은 허물어지고 다시 회복되기를 반복했다.
물이 없으면 능력을 사용하지 못해 은근히 열등감을 가지고 있던 셋째 노벰버.
삶의 마지막에서 그는 가장 크게 빛났다.
블루 시리우스는 그 빛을 바라보며 반대로 빛을 잃었다. 남발한 마법의 영향으로 천천히 마력이 떨어져 갔다. 물론 아직 움직이기엔 충분한 마력이 남아 있다. 다만 그녀 혼자만 생존시킬 수 있을 정도의 마력이었다.
“안 돼……”
그녀의 삶은 실패의 되풀이였다.
성공했다고 생각하면 시간이 지나 결과적으로 실패가 되었다.
우습게도 지금까지 실패만큼은 계속 성공시켜 왔다.
오늘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사랑하는 이를 지키겠다고 감금을 했다. 미친 짓이라 욕해도 상관없었다. 그 미친 짓을 해야 할 정도로 지금까지 미친 짓을 당했으니까.
재중이가 괴인에게 습격받은 게 몇 번이지? 모르겠다. 셀 수도 없었다. 조금 행복해지려고 하면 괴인이 찾아와 방해를 했다. 그는 딱히 병도 없는 데도 그 탓에 꽤 많이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만약 병원이 쇼핑몰처럼 마일리지나 등급이 있었다면 분명히 VIP였겠지.
이따위 실없는 농담이 나올 정도로, 한재중은 괴인의 소동에 많이 휘말렸다. 그녀가 마법 소녀였을 적에도, 그렇지 않을 적에도.
오늘로 그 습격의 횟수가 늘 수도 있다. 그리고 이 습격으로 다시는 괴인에게 피해를 받지 않을 수도 있다.
괴인이 강에 다가갔다.
저 강이 세상을 휩쓰는 순간, 그도 함께 저 멀리 사라질 테니까. 돌이 물길에 휩쓸려 조각나 하류에 쌓여 퇴적되듯이 그의 몸도 산산히 조각나 흙이 되어 버리겠지.
저 강의 주변, 고급진 타워 호텔. 그 아래 깊숙한 곳에 존재하는 부호들만 입실할 수 있는 비밀방. 그곳에 한재중이 있다. 자신이 거기에 가둬놨다.
누구를 탓할 것도 없다. 온전히 나의 탓이다. 나의 부덕함이고 부족함이 원인이었다.
한재중이 오늘 죽을 수도 있다. 이 습격을 마지막으로 영원한 안식에 젖어들 수도 있다.
그의 삶이란 글이 채 끝나기도 전에 마침표가 찍히겠지.
‘…나 때문에.’
죽음.
언제 떠올려도 섬뜩한 말이다.
그녀가 죽음이란 걸 처음 실감한 나이는 일곱 살.
부모님의 친구이자 친구의 부모님, 한재중의 양친이 돌아가셨을 때였다.
상당한 재앙이라고 들었다. 사자자리는 유명한 괴인이 우연히 그 도로에 나타나 그대로 도로를 휩쓸었다. 그런 소식을 들었다.
태어나 처음 느끼는 엄숙함이었다. 숨이 닿고 눈이 닿는 모든 곳에 엄숙함이 배여 있었다. 숨이 막혔다. 병원 냄새는 싫지만 이곳의 향기는 더 싫었다.
이제 꽤 지난 일인데도 윤설화는 아직 그곳에 있던 향냄새를 잊을 수 없었다. 다 큰 어른들이 병원에서 주사 맞는 아이처럼 통곡하는 소리도, 누구할 것 없이 입가가 굳어 있던 것도, 다 기억했다.
그 중에서 가장 선명히 기억에 남았던 건 어른들도 다 울고 있을 때에도 혼자 울지 않고 꿋꿋이 버티던 남자 아이의 등.
하루 아침에 고아가 되어버린 친구, 재중이였다. 모두가 울고 있는 데 혼자 울지 않아서 그랬을까. 그의 몸짓 하나하나가 기억이 난다.
-괜찮아요.
마른 입술로 걱정하는 어른들에게 그리 답하던 목소리, 눈이 맞자 그 마른 입술을 비틀어 미소를 지어주던 얼굴.
무서웠다. 남들이 다 우는데 혼자 울지 않고 웃었으니까. 삭막한 눈동자도 자신 못지 않게 창백한 피부도, 곳곳에 남아 있는 붕대나 반창고도 그 너머 희미하게 올라온 핏자국도. 모두 무서웠다.
뒤에서 수근거리는 어른들의 소리도 기억에 남았다.
-다행히 아직 사망 보험금이 폐지되기 전이라 다행이지….
-공교롭게도 괴인 사망 보험금 폐지가 다가오는 지금에… 어찌 보면 운이 좋았네요.
-그럼 운이 좋았어. 운이. 게다가 국가적 재난의 유족이 되었으니까 그 외의 다른 위로금이 나올 수도….
그런 말들이 나올 때마다 재중이는 눈살을 살짝 움찔거렸다. 그리곤 더욱 의젓한 표정을 만들고 자세를 반듯이 했다.
마치 자신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고 증명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 의지 표명이 아니었나 싶다. 난 이렇게 의젓하다. 그렇게 얻은 돈 없이도 잘 살 수 있다. 그런 의지.
-그런데 애가 어떻게 눈물 한 방울을 한 늘리니? 무서워서 진짜.
-그러게 말이에요. 부모가 죽었는데… 정이 없는 건지 아니면 어른스러운 건지….
윤설화는 그 수근거림을 듣고 울음을 크게 터뜨렸다. 주변이 다 울고 있는데도 울지 않는 그가 갑자기 무서워 보였다. 정이 없다는 말을 철썩같이 믿어버렸다. 그녀의 울음이 너무 컸던 덕분에 뒤의 수근거림이 멈추긴 했지만, 부모님은 그녀를 달래주느라 진땀을 뺐다.
내가 왜 그랬을까. 지금 생각해도 부끄러워지는 기억이다.
-오늘부터 우리 집에서 잠시 지낼 거야.
그리고 며칠 후, 부모님은 그를 데리고 집에 오셨다. 윤설화는 그를 보고…..
-뭐? 싫어어어!!!!
다시 성대하게 울어 버렸다.
-왜, 왜 그래 설화야, 친구한테 그러면 못 써!
-싫어, 싫어! 무서워! 무섭단 말이야! 으아아앙!!
-얘가….
부모님이 상당히 당황스러워 했다. 옛날부터 잘 지내놓고 이제 와서 갑자기 싫다고 하니 당황스러웠겠지. 한재중의 눈치를 엄청 살폈던 게 기억에 남는다. 지금 생각하면 부끄러운 수준이 아니라 죽고 싶어진다.
만일 시간을 되돌아가서 그 때의 자신을 볼 수 있다면 머리에 꿀밤을 먹여줬을 것이다.
장례식 이후 윤설화는 한재중을 무서워 했다.
장례식을 계기로 죽음을 실감했기 때문이었다. 어릴 적부터 몸이 약했던 윤설화는 자주 병원에 드나들었다. 그리고 의사들이 가끔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하던가, 간호사가 죽지 말라고 빌어주던가 하였다.
이제 죽음이 뭔지 알게 된 윤설화는 안다. 자신도 자칫하면 죽을 수 있단 걸. 그날 보았던 장례식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단 걸.
그때 한재중이 자신을 보면서 슬퍼하지 않을 걸 생각하니 무서워졌다. 내 죽음에 눈물 한 방울의 가치도 없을까봐. 죽음에도 기억하지 않을까봐. 함께 놀았던 추억이 아무것도 아니게 될까봐.
그래서, 윤설화는 한재중을 무서워 했다. 정이 없다. 그 수근거림이 뇌리에 깊숙히 남았다.
그녀가 한재중에게 마음을 연 계기는 그로부터 몇 달 후, 급격히 몸이 나빠져 병원에 입원했을 때였다.
-엄마… 나도… 죽는 거야…?
이제 죽음을 알게 된 윤설화는 더욱 무서워하며 말했다. 부모님은 식겁하며 아니라고, 괜찮다고 다독였지만 그녀는 믿지 않았다. 불안했다. 이 세상에서 사라질까봐 너무 두려웠다.
그렇게 예민해진 신경은 무슨 일에도 쉽게 짜증을 내게 되었다. 윤설화는 그래서일까. 한재중에게 짜증을 내고 말았다.
무슨 말을 했는진 잘 기억이 안 난다. 부모님을 언급했던가, 왜 말이 없냐고 짜증 냈던가, 내가 죽어도 울지 않을 거라고 했던가, 무섭다고 했던가. 잘 모르겠다. 어쨌든 굉장히 패 죽이고 싶었던 말이란 건 확실했다.
만약 윤설화가 시간을 되돌려서 그 때로 갈 수 있다면 꿀밤을 먹이는 게 아니라 목을 졸라 버렸을 것이다.
한바탕 폭언을 쏟아낸 윤설화에게 한재중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울 거야.
담담한 말투였으나, 충격은 가시지 않았는지 목소리가 조금 떨리고 있었다.
-슬퍼할 거고, 추억할 거야. 병원에 올 때마다 눈물을 흘릴 거야. 밥을 먹을 때 네가 좋아하는 반찬이 나오면 울 거고. 여자애들이 노는 걸 보면 울 거고, 침대에 누울 때에도, 잠이 올 때에도 울 거야. 걸으면서 울 거야. 많이 많이 울 거야.
한재중은 무던하게 말했다.
-너까지 죽어버리면, 난 지금까지 참아왔던 눈물을 모두 쏟아낼 거야. 눈물에 빠져서 나도 죽을 거야.
천천히 그녀의 손등 위에 눈물이 떨어졌다.
-그러니까, 죽지 마.
한재중은 그렇게 선언했다.
그 뒤로, 윤설화는 한재중을 무서워하지 않았다. 다행히 몸도 금방 나아 일상 생활이 가능해졌다. 한재중에겐 웃음이 많아졌고, 윤설화도 그를 보며 함께 웃었다.
그를 보며 생각했다. 나도 재중이가 죽으면 울까? 많이 울겠지. 하지만 죽을 정도로 울까? 그건 잘 모르겠다.
어릴 때인데도 뭔가 불공평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죽으면 재중이도 죽는데 재중이가 죽으면 내가 안 죽는 것도 이상하니까.
저 사람이 나에게 목숨을 맡겨줬는데 내가 저 사람에게 목숨을 맡기지 않는 것도 이상하니까.
그러니까.
‘재중이가 죽으면, 나도 죽는 거야.’
어린애이니까 가능할 순수하고 폭력적인 다짐. 뭔지도 모르고 막 말할 수 있을 때에나 가능한, 흔히 하늘만큼 땅만큼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과도 같은 바보 같은 말. 가늠하지 못할 대상을 막 같다 붙여 대단함을 표현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별안간 그 다짐은 보다 현실적으로 변했다.
어느날, 윤설화와 한재중이 함께 귀가하던 도중 괴인에게 습격을 받았다.
한재중은 자신을 미끼로 삼아 윤설화를 도망치게 했다. 지나가던 마법 소녀가 구해주지 않았다면 그대로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그는 말을 실천했다. 네가 죽으면 나도 죽으니 넌 살아라. 병원에서 했던 말을 재현하듯이, 그는 목숨을 바쳐주었다.
윤설화는 그 뒤로 새롭게 다짐했다.
‘네가 나에게 삶을 바쳤으니까.’
나 역시, 너에게 내 삶을 바치겠다.
이 다짐은 십 년이 훨씬 넘은 지금까지도 유효하다.
네가 목숨 바쳐 날 구했을 때처럼, 나 역시 그리 하겠다.
“언니, 조심해요!”
과거를 떠올리다 보니 어느새 괴인에게 가까이 간 것 같았다. 별빛 속에서 몸이 반 쯤 허물어진 괴인의 끔찍한 모습이 두 눈 가득히 들어 왔다.
괴인은 손을 휘둘렀다. 그에 맞춰 파도가 일렁거렸다. 아주 큰 파도였고, 아주 뜨거운 파도였다. 마법 소녀라도 중상을 입을 물살.
조금만 움직이면 얼음으로 만들 수 있지만, 윤설화는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았다. 파도를 받아들였다.
[수호자 님!!!]마스코트가 소리치는 게 들리다 사라졌다.
몸이 휩쓸리고 떠내려가는 게 느껴진다. 괜찮다. 이게 알맞은 처벌이다. 지금 살아봤자 아무 소용 없다. 그를 구하지 못할 바에 차라리 죽는 게 낫다.
천천히 살이 익어가는 게 느껴진다. 그 격통 속에서 윤설화는 의문에 빠졌다. 숨이 사라지고, 몸이 가라앉고 대신 질문이 떠올랐다.
‘겨우 이런 게 벌이야?’
아니 그럴 리가 없다. 죽음으로는 갚지 못한다. 그를 위험에 몰아넣은 죄가 겨우 죽음 일리가.
‘지금 이게 모든 노력을 쏟은 거야?’
아니다. 이건 다가오는 결말이 무서워 중간에 포기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다시 말해 도피다. 죽음으로의 도피.
이 따위로 죽어 저 세상에 가면 재중이의 부모님을 뵐 수나 있을까. 이미 돌아가신 부모님께 떳떳이 고개를 들 수 있을까.
아니다. 아니다. 그래선 안 된다.
아직 안 된다.
아직 모든 걸 다하지 않았다. 몸은 아직 움직일 수 있다. 마음에는 아직 희망이 있다. 난 여기서 쓰러지면 안 된다.
왜냐면 난….
‘그가 별이라 불러줬으니까!’
돌아오겠다고 약속했으니까, 그가 영웅이라 불러줬으니까.
들었다면 보답해야지. 이 죄 뿐인 삶에 죗값을 치뤄야지.
아직 쓰러져선 안 된다. 떨어져선 안 된다. 져서는 안 된다.
나는 별이여야 한다. 그가 그렇게 불러줬으니까, 응당 그래야만 한다.
삶을 바친다고 다짐했다면, 그의 기대에 보답해야만 한다.
그것이 존중이고, 내가 사랑하는 방식이니까.
블루 시리우스의 심장이 타들어 들었다. 혈액에 별빛이 미친듯 섞였다.
마법 소녀의 힘은 사랑과 평화.
오직 사랑으로만, 별이 폭발할듯이 밝아졌다.
신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