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nsform or death RAW novel - Chapter 157
Chapter 157 – 약간의 돈과 내일 살 곳만 있으면 충분하다 (18)
좋은 날이었다.
하늘이 푸르고 바람이 선선하여 마음을 맑게 만들었다. 봄이 오고 있다는 걸 실감하게 하였다. 아직 다 가시지 않은 한기가 기분 좋게 피부에 스며드는, 그런 날이었다.
[1.17]타이머가 1초를 지났다.
뜀박질과 함께 깨진 얼음 조각이 다이아몬드처럼 반짝였다.
사람 몸 만한 거대한 도끼가 번개를 머금고 번쩍였다. 그 번개는 뜨겁지 않고 서늘했다. 차게 태우는 불꽃이었다.
본래의 성질과 모순되는 벼락이 장대하게 타올라 얼음 위에 새로운 한기를 덧씌웠다.
그 벼락불 옆에는 순수한 불꽃이 일렁거렸다. 레드 베가는 붉은 불꽃을 전신에 감은 채 로켓처럼 날아 올랐다.
노벰버는 자신에게 달려드는 이들을 무시한 채 몸을 돌려 강으로 뛰어갔다. 물이 얼음으로 변한 지금 그는 이것을 조종하지 못한다. 온도를 아무리 끌어올려도 빙산이 된 파도는 녹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노벰버에게 남은 본능은 하나, 날뛰는 것.
그렇기에, 그는 무기를 찾으러 강으로 향했다.
노벰버의 능력은 창조 및 조작이 아닌, 그저 조작.
물이 있는 곳에서만 능력을 사용할 수 있다. 폭주 전부터 가장 큰 약점이었던 것이 지금 여기 되풀이되었다.
하지만 유사 신성 상태에 돌입해 별빛의 소모를 걱정하지 않고 날뛰는 그가 강에 닿은 순간 도시는 끝이 난다. 반파 수준이 아니다. 높은 건물은 전부 무너져 내리고, 그대로 물 아래로 잠기겠지.
노벰버의 진격을 저지해야 한다.
이 10초 동안.
사실상 도박이나 다름 없다. 블루 시리우스가 신성을 이 짧은 시간 내에 제어 해내느냐, 아니냐. 이 차이.
제어해내지 못한다면 블루 시리우스의 마법으로 도시가 허물어질 거고, 마법을 쓴 본인도 큰 피해를 입을 것이다.
한재중은 굳이 눈을 돌려 블루 시리우스를 바라보지 않았다. 믿고 기다리기로 했다. 고작 몇 초 남짓의 인내심이야 누구에게나 있다.
설령 그게 옛날부터 심장이 약해 자주 쓰러지던 친구라고 해도, 보지 않을 수 있다.
“큭!”
오랜만에 큰곰자리의 힘을 쓰니 확실히 알겠다. 이 야만적인 기운, 평범한 사람의 몸으로 견뎌낼 것이 아니다. 제정신이라면 애저녁에 깨달았을 텐데 그간 눈이 멀어 체감하지 못했다. 그냥 당연한 과부하인 줄 알았다.
힘을 쓰는 대가라면 당연히 견뎌야 할 부담. 이 고통을 당연하다고 생각할 정도로 이 힘은 터무니 없다. 오히려 괜찮은 거래라고 여겨졌다. 한재중은 심장을 부여잡고 싶은 마음을 참고 대신 도끼를 더 세게 부여잡았다.
도끼날이 노벰버의 목과 몸에 기다란 선을 그렸다. 그 선 따라 번개가 야만스럽게 지나간 자리를 난도질했다. 이 모든 과정이 먼저였다.
서걱!
소리는, 나중에 들렸다.
[1.76]아직 시간은 1초가 채 지나지 않았다. 이대로 나머지 9초도 버틸 생각이었다. 다시 도끼를 들었다.
그리고는 다리를, 팔을, 어깨를, 배를, 가슴을, 무릎을, 발목을, 손목을,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난도질했다. 단단할 터인 별빛의 갑옷이 두부보다도 부드럽게 잘려나갔다.
촤악! 촤아악! 빙판에 동물의 발톱과도 같은 우악스런 자국이 무수히 생겨났다. 그 위로 그의 혈액이 쏟아졌다. 곧 번개에 의해 태워졌다.
[2.07]2초가 지났다. 적은 아직 재생도 못하고 있다. 이대로 잘게 다져 놓으면 괜찮지 않을까. 숨도 고르지 않고 또 한번 도끼를 들어 올렸다.
그때 무언가가 손목을 묶었다. 검고 붉은 실이었다.
방심했다는 자각이 뒤이어 따라왔다.
물을 조종하는 능력. 그 능력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아까까지 흙탕물도 조종하였다. 물에 불순물이 섞여도 조종할 수 있다면, 당연히 자신의 혈액도 조종할 수 있을 텐데!
손목에 감긴 실은 피였다. 방금 전 저 몸에서 흘러내린 피, 다 번개에 증발했다고 생각했는데, 안타깝게도 그러지 못했나 보다.
칫, 혀를 차며 힘으로 혈액의 실을 끊어냈다. 허망하게 툭 잘린 실은 흰 번개에 의해 태워졌다.
[2.87]채 1초도 지나지 않은 아주 짧은 지체. 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비산하던 노벰버의 머리에서 어느새 몸이 자라났다. 재생을 완료한 것이다.
“자르는 보람이 없군.”
땅에 착지한 즉시 그는 강으로 달려 나갔다. 방금 전보다 몸집이 작았지만 보다 반짝이고 있었다.
별빛을 늘리기 위해 몸의 일부를 포기한 것이었다.
노벰버는 발바닥에 별빛을 모아 그대로 분사시켰다. 능력을 활용하지 않은 미련하고 무식한 활용법. 낭비도 그런 낭비가 없었다.
그러나 유사 신성 상태인 그에겐 꽤 유효한 활용법이었다. 다른 괴인과 달리 별빛의 낭비 따위를 걱정할 처지가 아닐 테니까. 체력도 빠지고 몸에도 상당한 부담이 갈 테지만, 의식이 없는 그에겐 그것도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
“그럼, 자르지 않으면 될 일이지.”
허나, 와쳐 역시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도끼로 땅을 내리쳐 그 충격으로 하늘에 뛰어올랐다. 노벰버보다 높은 곳에서 그를 내려다보며 도끼의 날이 아닌 끝 부분을 세웠다. 마치 도끼가 아닌 창을 쓰는 듯했다.
[3.13]3초가 지났다.
노벰버의 등 부분에 도끼를 가져다 대고 그대로 무게를 실어 눌렀다. 제대로 된 반항도 하지 못하고 낙하가 시작되었다. 몸을 바둥거려 보지만 아래는 공기의 저항이, 위는 와쳐가 누르고 있어 빠져나가지 못했다.
그렇게 빙판에 닿기 직전, 와쳐는 그의 머리를 잡아 빙판에 닿지 않도록 띄웠다. 우득, 하며 척추가 박살나는 소리가 들렸지만 상관 없었다. 어찌 되었든 피는 나지 않았으니.
쾅!
든 머리를 망설임 없이 빙판에 내리쳤다. 튼튼해서 그런지 터지지 않았다. 그리곤 등에 얹은 도끼날 위에 발을 올려 눌렸다.
“이, 이게 무슨….”
“눌러라! 움직이지 못하게 해!”
다가온 레드 베가가 허겁지겁 그의 목을 발로 눌렀다. 그녀의 화력 역시 대단한 편이다. 그가 고개를 돌릴 수 없게 누르는 것 정도야 간단했다.
콰직! 다시 한번 척추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레드 베가는 방심하지 않고 누르는 힘을 올렸다. 로켓을 하늘에서 땅을 향해 쏘듯이 화염을 하늘 위로 분사시키며 압력을 높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4.00]4초가 지났다.
“계속… 계속….”
여전히 노벰버는 꼼짝도 못하고 있다.
[5.00]5초가 지났다. 희망이 보였다. 이 상태를 계속 유지하는 건 고되지만, 유지만 하면 버티기에 문제가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플랭크보다… 아니, 한 손가락으로 물구나무 하는 것보다 빡세…!’
레드 베가가 오만상을 지었다. 자세 자체는 안정적이지만 전신에 들어가는 힘이 평상시와는 궤를 달리 했다. 조금이라도 방심해선 안 된다. 지금까지 몇 번이고 이변이 일어났다. 이번에도 그럴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조금만… 더….’
그때, 노벰버가 팔을 꿈틀거려 머리로 가져가려 하였다. 재빨리 와쳐가 다른 한 발을 써 그 이동을 막았다.
뭔지 몰라도 허튼 짓을 하게 둘 순 없었다.
‘우와.’
위험했다. 그렇게 안도할 무렵, 이번엔 그녀가 누르고 있는 목을 움직이려 하기 시작했다.
“어딜!”
레드 베가는 힘을 조금도 빼지 않았다. 우드득, 그의 머리가 반 바퀴를 돌아 하늘을 바라보았다. 있을 수 없는 각도로 돌아간 머리가 징그러웠지만 그의 행동 자체는 막았으니 다행이었다.
그게 문제였다. 노벰버는 그대로 다시 머리를 돌려 한 바퀴를 돌렸다. 꽈드득, 한계까지 뒤틀린 머리가 곧 목과 분리되기 시작했다.
우직! 목이 송판마냥 부러지고, 그렇게 머리가 덜렁거렸다. 방심하지 않고 전력을 다한 게 오히려 실책이었다.
[5.97]6초가 지나기 직전, 노벰버의 목에서 살점이 튀었다.
치이익. 그 살점으로부터 노벰버가 재생을 시작했다. 하지만 아직 전신을 재생시킨 건 아니었다.
와쳐는 그의 사각으로 가 다시 도끼를 들었다. 이래도 상관 없다. 또 눌러버리면 되는 일이니까.
하지만 그는 재생을 하다 말고 상반신만 남긴 채 재생을 멈췄다. 의아할 틈도 없이 재생되지 않은 부분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와쳐는 번개의 날로 그 피가 나오는 부분을 지져버리려 했으나, 먼저 몇 방울이 세상에 튀었다.
“이봐! 그대로 증발 시….”
레드 베가를 향해 소리치던 와쳐가 당황했다. 튀어나온 핏방울은 와쳐도, 레드 베가도 아닌 방금 전까지 자신의 몸이었던 것으로 향했다.
핏방울은 날카로운 와이어가 되어 그의 몸을 난도질 했다. 나무 판자를 기워붙인 것 같은 몸이 몇 갈래로 토막나고, 그곳에서 보다 많은 양의 피가 흘러나왔다.
비산한 혈액들은 그 즉시 어딘가를 향해 쇄도했다.
이번에도 와쳐나 레드 베가를 향해서가 아니었다.
블루 시리우스, 방금 전 출발한 장소를 향해서였다.
그녀의 집중을 방해하는 건 곤란하다. 와쳐는 쇄도하는 핏방울들의 앞으로 뛰어나가 도끼를 휘둘렀다.
쉬익!
벼락불을 머금은 날은 가볍게 핏방울들을 태우고 얼렸다.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 미처 놓친 혈액이 있을 까봐 와쳐는 고개 돌려 확인했다.
“…뭐지?”
그리고 이상함을 느꼈다. 블루 시리우스의 상태가 이상하다. 그녀에게선 쪽빛 별빛이 화수분처럼 터져 나오고 있었다. 조금도 그것을 억누르는 듯이 보이지 않았다. 오른손 안에는 별빛이 눈덩이처럼 뭉쳐진 형상이 있었다.
허나 다른 한손은 가슴을 부여잡고 있었다. 고통스럽게 숨을 토해냈다. 눈빛이 공허했다. 이 추운 와중에도 땀방울이 흘러 이마를 적시고 있었다.
“설마….”
아직 심장이 많이 아픈가? 하긴 당연하다면 당연하다. 당장 큰곰자리가 되었을 무렵 정상적인 신체이던 한재중도 고통에 치를 떨었다. 그보다 많은 양의 별빛을 가진 신성이라면 부담 역시 차원이 다를 터.
아무리 별빛을 마력으로 정화시킨다 한들 한계가 있겠지.
[7.02]7초가 흘렀다.
블루 시리우스는 힘겨운 숨을 몰아 내쉬며 일어났다. 대단히 불안정했다. 발걸음이 비틀거린다. 그녀의 손안으로 별빛이 뭉친다. 보다 형체가 뚜렷해졌다.
“난… 괜찮아….”
평범한 구체의 모양이었던 것이 하트의 형태가 되어 일렁거렸다. 펜던트나 손거울을 떠올리게 하는 모양이었다.
“내 걱정 따위 집어 치우고 싸우기나 해!”
다행히 다시 컨트롤에 성공한듯 했다.
시선을 빼앗긴 동안 노벰버의 재생이 완전히 끝이 났다. 와쳐는 미련을 버려야 했다.
“벨트, 여기 있는 전원의 심박수를 측정해!”
하지만 완전히 버릴 순 없었다. 아주 잠시만 남겨두었다. 와쳐는 고개를 돌려 노벰버를 바라보았다.
그의 손 안에 흐릿한 안개 같은 것이 뭉쳐져 있었다. 그걸 휘두르자 근처에 있던 레드베가가 고통을 호소했다.
“켁…! 윽…!”
목에 손자국 같은 것이 생겼다. 마치 원거리에서 그녀의 목을 조르는 듯했다. 이상했다. 저건 물도 혈액도 아니다. 그런데 뭐지?
“…아.”
이런 말이 있다.
마법 소녀는 괴인이 강해지면 강해질 수록 빠르게 성장한다. 그리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 괴인 역시 마법 소녀가 강해질 수록 강해진다.
간단한 이야기다.
노벰버 역시 블루 시리우스처럼 강해졌다. 자신의 능력을 한 단계 위로 끌어올렸다.
아마 지금 그가 조종하고 있는 건 수증기. 물난리가 나며 엄청나게 습해진 이곳에는 넘쳐나고 있을 자원.
“레드 베가! 불을…! 아, 이런.”
이미 증발된 것을 다시 증발시킬 순 없다. 지금 레드 베가의 능력은 힘을 잃었다.
남은 방법은 하나, 얼리는 것이다. 저온의 벼락인 그의 벼락이라면 가능하다. 하지만 그럴 경우 레드 베가가 휩쓸리게 되지 않는단 보장이 없다.
훅, 안개가 불었다, 그 방향은 블루 시리우스였다.
“길 잃은 것들이 여기 너무 많소.”
그때 제이슨이 중얼거렸다.
“이곳은 땅이었소. 본래 물들은 여기 흐르면 안 될 것이지.”
그는 벨트에 손을 올렸다. 나룻배 장식 같은 모양을 하고 있는 특이한 버클.
“내 힘이 부족하여 이것들 모두를 없앨 순 없으나….”
공간이 일그러진다. 이곳에 있던 것들이 재배치 된다.
“한 순간의 도움은 될 수 있겠지.”
[8.23]8초가 흘렀다. 안개들이 사라졌다. 제이슨 역시 힘이 다한듯 빙판에 쓰러졌다.
“가시오… 강한 자여….”
와쳐는 다시 한번 뛰었다. 얼음 조각들이 나풀나풀 흩날렸다. 그는 노벰버의 바로 앞에서 강하게 도끼를 아래로 내리찍었다.
노벰버의 몸 전체가 번개에 휩싸였다.
처음부터 간단한 것이었다. 번개로 지져버리면 피가 튀지도 않고 움직이지도 않았을 텐데, 너무 어렵게 생각했다.
[9.45]이제 9초가 지났다.
와쳐는 그 순간 번개를 멈춰야 했다.
[윤설화의 심박수가 0이 되었습니다.]그리곤 도끼를 던졌다.
순식간에 날아간 도끼가 그녀의 심장에 닿고 전류를 흘려보냈다.
“조금 간지러울 거다 이 병약한 녀석아…!”
강제로 그녀의 심장을 깨워냈다. 움찔거리며 손가락 끝이 떨렸다.
[10.00]10초가 지났다.
[OVER.]시간 제한도 이제 끝. 벨트가 지정한 10초가 전부 소비되고 큰곰자리의 힘이 풀렸다.
쿠구궁. 땅이 갈라졌다. 정확히는 빙판이. 얼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마 블루 시리우스의 의지는 아닐 터였다. 그녀의 손 안 하트 모양 변신 도구에 세밀한 장식이 새겨지고 있었다. 아직 그녀는 그 컨트롤에 모든 신경을 집중 중이었다.
그러니 이건 다른 누구가 한 일.
어찌 보면 당연했다. 수증기를 조종할 수 있다면, 그 고체인 얼음 역시 가능할 테니까.
노벰버가 새로운 단계에 도달했다.
“부탁한다고 했잖소….”
제이슨이 중얼거렸다.
바람이 불었다. 왠지 모르게 ‘알아 병신아’ 따위의 빈정거림이 들린 것 같았다. 바람은 얼음을 가볍게 산산조각 냈다.
슉, 노벰버의 이마에 화살이 꽂혔다. 움직이던 빙판이 멈췄다.
그리고.
“약속 못 지켜서 미안해.”
푸른 별빛이 넘실거렸다.
신성의 힘.
완전히 마력으로 전환한 깨끗한 별빛.
“이걸로 끝이야.”
노벰버의 온 몸에 얼음이 감겼다. 저주처럼. 그 얼음은 높이 높이 솟았다. 하늘까지 닿을 듯이 솟았다. 참아 왔던 마음이 여기 해방되어 쌓이듯이.
얼음의 탑이 세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