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nsform or death RAW novel - Chapter 158
Chapter 158 – 약간의 돈과 내일 살 곳만 있으면 충분하다 (19)
블루 시리우스의 목과 가슴의 사이. 하트 모양의 펜던트가 리본 대신 놓여 있었다.
하트의 중앙에는 별과도 같은 둥근 보석이 박혀 있었고, 그 주변엔 폭발을 표현한 듯한 화려한 선이 그려져 있었다.
둥근 보석 안에는 방금 전까지 이리저리 뿜어져 나오고 있던 푸른색 별빛이 압축되어 빛났다. 푸른색을 기조로 녹색과 자색, 하늘색과 흰색이 이리저리 섞인 아름다운 색이었다.
우주의 신비가 이 작은 장식품 안에 모인 것처럼, 말로 다 하지 못할 총천연색의 빛이 고고히 반짝였다.
신성(新星).
새로운 별이 생긴 것처럼 기존과는 다른 빛깔을 하고 있었으며.
신성(神聖).
그 아름다움은 고결하고 거룩하였다.
보지 못하고도 믿는 자는 복되도다.
그녀는 사랑하는 이가 자신을 영웅이라 말해준 걸 믿었기에, 진정 영웅이 되어 새로 태어날 수 있었다.
설령 그 말에 근거도, 자기애도 없었지만 믿음은 굳건했다.
자신이 기적을 일으킬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대가, 그리 고했으니까.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 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 보리라.”
옛날에 읽고 메모한 시가 문득 떠올라 입술을 움직였다. 성경 구절을 읽듯이, 고즈넉한 목소리가 설원 위에 얹혔다.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 데 있었다.”
비록 이 사랑이 닿지 못할지라도, 한없는 기다림이 되더라도 나는 언제까지고 그대를 사랑하노라.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만물에 끝이 있는 건 당연하지만 변화 역시 당연하다.
계절이 바뀌는 이 순간들이 당연한 것처럼, 내 사랑은 새롭게 변해 다시 사랑이 되리라. 낙엽과 눈과 꽃이 흩날릴 때마다 새로운 사랑으로 변하리라.
그렇기에, 내 사랑 역시 당연한 것이라 믿는다.
후,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뜨거운 숨이 차게 식어 흰색 안개가 되어 흩어졌다. 한숨이 흩어지는 방향 따라 고개를 움직였다. 시선의 끝에 얼음덩이 하나가 걸렸다.
자신이 만들어낸 투박한 얼음의 탑. 높이 솟은 탑은 우주에 닿을 듯 장대했다. 그 꼭대기 위로 태양이 저물고 있었다. 뜨거웠던 햇볕도 끝나 한기에 녹아들었다.
저 태양이 다시 떠 꼭대기에 걸릴 쯤에도, 이 탑은 녹지 않는다. 지구가 태양 천 번 감싸더라도 이 얼음은 녹지 않는다.
이것은 그녀의 믿음이고 소망이며 사랑. 영원한 마음이다.
수없이 많은 착각과 수없이 많은 편지가, 수없이 많은 하루가 겹쳐 쌓여도 여전할.
“은혜를 원수로 갚는군.”
탑 옆에 있던 괴인이 가만히 그녀를 보더니 빈정거림을 혀 위에 올렸다. 칙칙한 녹색의 별빛을 머금은 칠성의 괴인. 와쳐, 보는 자.
그의 어깨 위에는 작은 나비 하나가 올려져 있었다. 나비 모양의 표창.
블루 시리우스는 시선을 돌려 하늘 한 구석을 보았다. 그곳에 분홍색 빛가루가 조금 빛나는듯 했다.
“나까지 가두려 했지?”
“효율적인 거라고 불러주겠어? 죽는 건 아니잖니. 잠시 오랜 잠을 잘 뿐.”
“그게 그거지. 죽음이 삶의 끝이라면 영면은 삶의 정체 아닌가. 별 차이 없지.”
“아니오! 많은 차이가 있소!”
누워 있는 상태에서 상반신만 일으킨 제이슨이 강하게 부정했다.
“정체에는 끝이 있소. 그것이 언젠가라도 반드시. 하지만 끝에는 끝이 없소! 둘이 비슷해 보여도 큰 차이가 있단 말이오!”
“그러냐.”
와쳐는 가볍게 대꾸했다. 이에 만족한듯 제이슨이 다시 누웠다.
블루 시리우스는 그들을 빤히 바라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을 만큼 작은, 입 안에서 웅얼거리는 목소리였다.
“…이 빚은 갚을게.”
“굳이 그럴 필요는 없다.”
이게 들리지 몰랐는지 블루 시리우스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확 얼굴을 붉힌 그녀가 뒷말을 덧붙였다.
“굉장히 굴욕적이지만…! 그래도 갚을 건 갚아야 하니까…!”
아드득, 증오스럽게 이빨가는 소리가 처량히 울려퍼졌다. 자존심을 씹는 소리였다. 아무리 자기애와 자존감이 부족한 그녀라고 해도, 괴인에게 향하는 증오심은 진짜였다.
“아니 됐다니까 참….”
와쳐는 곤혹스레 되받아쳤다.
투두두두. 곧 하늘 위로부터 거슬리는 소음이 들려왔다. 괴인이 날뛰고, 다음은 블루 시리우스가 광범위적인 한기를 뿌리느라 가까이 오지 못했던 중계용 헬기 소리였다.
어차피 가까이 왔어도 얼음의 반사와 짙은 수증기 속에 가려졌겠지만.
“시간이 됐군.”
“이제 끝이네.”
누가 먼저일지 모르게 입을 열었다. 마법 소녀와 괴인의 협력. 경사라면 경사고 흉사라면 흉사다. 최근 사건의 연속으로 괴인에 대한 여론이 흉흉한 지금은 후자에 해당했다.
괴인을 쓰러뜨린 공을 자신들의 영웅을 향해 온전히 돌리지 못하는 건 꽤나 뼈아플 터였다.
피융!
바람이 불더니 빙판을 깨뜨렸다. 바람의 정체는 작살을 한없이 닮은 화살. 화살깃 끝에는 기다란 줄이 연결되어 있었다. 슈르륵. 그 줄이 팽팽하게 당겨지더니 탄성따라 흔들렸다.
곧 줄이 느슨해지고 그 줄과 연결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사람의 형상과 닮으면서도 달랐다.
“진짜 존나 귀찮은 일만 하네! 쓸데 없고 망상이 심해. 정체는 언젠가 끝난다고? 그럼 그 끝이 언제인지 알 수는 있고? 죽어서도 끝나지 않을 수도 있는데. 오늘의 기약 없는 기다림은 죽음과 별 다를 바가 없어. 희망 고문이라고.”
궁수였다. 와쳐는 경계심을 드높였다. 블루 시리우스도 마찬 가지였다. 그에게 가장 호된 꼴을 당했던 레드 베가는 말할 것도 없었다.
그는 잠시 와쳐를 쓱 훑어 볼 뿐, 자신이 해를 끼친 존재들에게는 별 신경 쓰지 않고 누워있는 제이슨은 쌀포대 마냥 들어 올렸다.
“하지만 고문일지 몰라도 희망을 가지니 낭만이지! 새끼 뭘 좀 아네!”
껄껄 웃은 궁수는 제이슨의 머리를 한 대 쥐어 박았다. 제이슨이 비명을 지르며 고통을 호소했으나 그는 조금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전에는 미안했다.”
그는 자신을 바라보는 이들에게 툭 던지듯 말을 전하고는 방금 쏘아냈던 작살 닮은 화살을 뽑아냈다.
“아니 뭔 얼음이 이리 딴딴해? 시발 뭔 초합금도 이 정도는 아니겠다. 야 너 이제 건축 사업 하는 거 어떠냐? 안전하다고 떼 돈을 벌거다.”
툴툴거림과 동시에 시위에 활을 걸고 하늘을 향해 쏘아냈다. 그 방향은 하늘을 날고 있는 헬기였다.
-뭐, 뭐야!
-빠. 빨리 방향 전환! 틀어!
화살은 헬기의 다리 부분에 동앗줄 마냥 걸렸다. 헬기가 낚시줄에 걸린 물고기처럼 몸부림 쳤으나 줄은 풀어지지 않았다.
“거 같이 좀 쓰자! 시발 한 것도 없으면서 쩨쩨한 새끼들….”
하늘 위가 후끈 소란스러워졌으나 궁수는 이번에도 아랑곳 하지 않았다. 그대로 헬기의 이동 방향대로 그가 날았다. 아마 적당한 곳에서 다시 활을 쏘아 이동하겠지.
저 괴인의 성향상 기자가 섣불리 자극하지 않는 한은 그들에게도 별 피해가 없을 거다.
“안 막나?”
“안타깝게도 체력이 다해서 말이야.”
와쳐가 묻자 블루 시리우스는 태연히 대답했다.
“미움털이 박힐지도 모르겠군.”
“그러라고 해. 이제 상관 안 해.”
“그래도 명색이 괴인과 마법 소녀인데….”
근처에 굴러다니는 얼음 조각 하나를 잡은 뒤 이리저리 만졌다.
“싸우는 척이라도 해야 되지 않겠어?”
와쳐는 그대로 얼음 조각을 던졌다. 피융! 총탄보다도 빠르게 날아간 얼음은 블루 시리우스에게 잡혀 이동을 멈췄다.
순간 손이 눈을 가렸다.
“이게 무슨….”
어이가 없어 헛웃음을 흘린 그녀가 손을 내리자 그 앞에 괴인은 없었다. 쓰게 웃은 레드 베가가 시야에 걸리는 인물의 전부.
그가 사라진 곳에서 분홍색 빛이 흩날리고 있었다. 나비가 날았구나. 납득은 간단했다.
블루 시리우스는 손 안에 잡힌 얼음 조각을 바라보았다. 체온에도 녹지 않은 단단한 얼음 조각.
괴인의 손 안에서 구겨진 얼음 조각은 왠지 모르게 심장의 모양을 닮아 있었다.
“아….”
블루 시리우스의 발걸음이 휘청거렸다. 긴장의 끝이 풀리자 균형도 함께 사라졌다. 강제로 되살린 심장과 전신에 느껴지는 아찔한 고통. 새로운 각성은 그에 맞는 부담을 같이 가져왔다.
“언니!”
이 하루 몇 번이나 부축을 받는 걸까. 레드 베가가 뛰어와 넘어질 뻔한 그녀를 안아 들었다.
이제 정말 끝이 났구나. 모든 위협이 사라지자 그제야 실감이 났다. 몰려오는 피로가 눈꺼풀을 무겁게 짓눌렀다. 체력이 다한 그녀로써는 그걸 막아낼 재간이 없었다.
“드디어… 돌아갈 수….”
천천히 흐려지는 의식 너머로, 그를 떠올렸다.
**
눈을 감은지 몇 초나 지났을까.
이대로면 안 된다고 생각해 다시 눈을 떴다.
그러니 보이는 건, 달빛이었다.
“잘 잤어?”
달빛과 함께 보이는 건 방금 전까지 그리워했던 그의 얼굴.
“재, 재중아…? 여기… 여기가 어디… 내가 몇 시간이나 잔 거야…?”
“17시간 정도. 그리고 여기는 병원이야. 당연한 거잖아. 기절한 사람을 어디에 끌고 간다고.”
“그, 그럼 넌 어떻게….”
윤설화가 의문에 혼란스러워 하고 있자 한재중은 즉시 그녀의 의문을 알아채고 답했다.
“여기에 어떻게 있냐고? 화이트 다비흐가 처들어 왔거든. 우연히 그 호텔에 걔도 묵고 있었나 봐. 네가 나온 걸 보며 수상하다고 생각했대. 다행인 일이지. 나중에 보니까 그 방 물로 난리가 났더라. 감사하다고 같이 인사하러 가자.”
윤설화는 쏟아지는 정보에 머리가 어지러웠다.
열 시간을 넘게 잤다고? 아니, 그건 그렇고 감금을 들킨 거야? 게다가 재중이는 물에 빠질 뻔 했고?
일어난지 얼마 안 된 탓인지 빈혈 탓인지, 아니면 자괴감의 탓인지, 현기증이 나 눈이 핑 돌았다.
“…미안해.”
“뭐가.”
“나 때문에 또 위험한 일을 당할 뻔 해서….”
“뭔 소리를 하는 거야.”
한재중은 작게 웃었다.
“너는 나의 영웅이었고, 다시 돌아왔잖아. 그거면 된 거지.”
그거면 된 거다. 정말 그랬다.
한재중은 다치지 않았고 윤설화 역시 심하게 다치지 않았다. 우여곡절이 있어도 결국 돌아와 그의 눈을 보았다.
소박한 환영이었지만 충분한 환영이었다.
달빛이 구붓이 떨어져 입꼬리를 비추는 이 시간이 영원하길 빌었다.
하지만 이 시간이 지나고 언젠가 먼 미래에 지금을 떠올리고 있을 때. 그때에도 지금과 마음이 같길 알았다. 빌지는 않았다. 굳이 청하지 않아도 알 테니까.
“…그렇네.”
이제 알았다.
많은 게 필요한 게 아니다. 쇠사슬도 사치스러운 방도, 자책도, 눈치도 필요없다.
필요한 건 약간의 돈과 내일 잠잘 곳.
그리고 사랑.
이 정도면 충분했다.
“내일도 다시 그렇게 말해줄래?”
“얼마든지.”
그것만으로도, 그녀는 내일 다시 영웅이 될 수 있었다.
**
“내가 많이 생각을 해봤다.”
제이슨은 달빛에 가려져 그림자 진 형제의 등을 바라보았다. 달빛이 그를 온전히 비추고 있었지만 하필 시선이 닿는 곳이 역광이라 제이슨은 그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내가 널 들인 까닭은 별 이유가 없다. 그저 네가 외로워 보여서였다. 우연하게 네 별자리가 우리 별자리와 연관이 많기도 했고.”
제이슨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막내야. 너는 테세우스의 배를 아니? 부품을 바꿔 낀 배가 과연 옛날과 똑같은 건가… 난 아니라고 생각한다. 기계는 바꿔도 상관 없지만 조직은 그렇지 않아. 새롭게 인재를 영입해도 둘째와 셋째의 빈 자리를 채울 수는 없겠지. 공백은 평생 남는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막내야,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대체될 수 없는 무언가를 없애 버리는, 다른 나무도 썩게 만드는 목재가 있다면, 그걸 어째야 한다고 생각해?”
셉템버는 평소처럼 걸쭉한 욕을 섞어가며 말하지 않았다. 조곤조곤, 상대가 확실히 자신의 뜻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한 글자 한 글자 정성을 섞어 내뱉었다.
“너는 지금도 우리의 도전을 이해하지 못해. 그렇긴 커녕 앞으로도 방해를 하겠지. 아무래도 너의 기준은 우리의 기준과 다른가 보구나.”
제이슨은 사형 선고를 기다리는 사형수처럼 고개를 숙였다.
“나침반자리의 괴인, 제이슨.”
“….”
“널 아르고 패밀리에서 내보내야겠다.”
그에게 선고가 떨어지는 그때까지도 셉템버는 뒤돌지 않았다.
“나가라. 그리고 너의 기준에 맞게 살아라.”
제이슨, 파문.
**
“하긴 형님을 손수 묻어준 놈을 누가 받아주겠냐. 미쳤다고. 그게 당연한 거지.”
궁수는 별것 아닌듯이 말했다. 제이슨의 어깨는 축 쳐져 있었다.
터덜터덜 거리를 걸으며 고개는 땅에 숙였다. 발에 채이는 돌덩이가 자신처럼 느껴졌다.
“난 그저….”
“응?”
“있을 곳이 필요했을 뿐이라오… 약간의 돈과… 마음 편히 발을 뻗을 수 있는 곳….”
하지만 아르고 패밀리는 그런 장소가 되지 못했다.
“아무래도 난 조직에 성미가 맞지 않는듯 하오.”
“그걸 이제 알았냐? 며칠 안 본 나도 알겠는데. 어휴 병신.”
궁수는 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그, 뭐냐. 너무 실망하지 마라. 사실은 나도 나왔거든.”
“누구에게서?”
“리브라 그 새끼 말이야. 시발 내가 염치가 있지 어떻게 동지에게 그런 짓을 한 놈에게서 돈을 받아 먹겠어.”
그는 별 것 아니란 듯 웃어 보였다.
“깔끔하게 손절했지.”
“괜찮겠소? 사지 자네는 분명 개백수….”
“시발 니가 나보고 뭐라 할 처지냐?!”
잠깐 성을 냈지만 금방 냉정을 되찾았다.
“그러니까 우리 개백수 개인주의자 끼리 잘해 보자 이거지. 이제 진짜 동지가 된 거야. 물러설 데가 없잖아? 이름도 정하자. 지옥 동지 어때?”
“좆구리오.”
“시발.”
그렇게 구린가? 궁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제 마약도 끊을 거야.”
“잘 생각했소.”
“그러니까 이건 마지막 약이지.”
“엉?”
궁수는 품 속에서 주사기 하나를 꺼냈다. 은은히 빛나는 액체가 인상적이었다.
“아까 끊는다 하지 않았소?!”
“아 시발 이것까지만 하고!”
“그렇게 말하는 사람 중 끊는 사람을 못 봤소! 이보! 당장 그거 버리게나!”
“에헤이 이 양반이 왜 그런대. 내 맘이야! 내 맘!”
제이슨이 미처 말리기 전에 궁수는 그 주사기 끝을 자신의 팔 안에 꽂았다.
“하하! 간다 간다 뿅간다! 히야아아앗!!!!”
“미친 새끼가!”
어지러워지는 머리, 흔들리는 시야, 울렁거리는 속, 이 모든 걸 뛰어넘는 강대한 아른 거림. 마치 잃어버렸던 추억을 되살리며 아련함에 젖듯이….
-짜잔!
“…어?”
마약의 환각 속에서, 그는 기억의 조각을 보았다.
-봐봐! 이게 있으면 누구나 괴인과 싸울 수 있을 거야!
환하게 웃으며 투박한 기계를 자랑스레 내밀은 소녀의 얼굴.
벨트의 변신은 특이하게 쓰러뜨린 괴인으로부터, 혹은 퀘스트를 클리어하며 별빛을 얻을 수 있다. 별자리를 완성 시킨 이후 별빛을 얻지 못하는 여타 괴인들과는 차별적이다.
또한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다면, 벨트 변신의 부작용으로 기억을 잃을 수 있단 점.
하지만 이 부작용은 별빛을 찾으며 기억을 되찾는 걸로 극복 가능하다.
이것이 괴인이 될 수 있는 인간과 완전히 괴인이 되어버린 인간의 차이.
별빛을 얻을 수 있느냐 아니느냐. 그러며 자신을 떠올릴 수 있으냐, 아니냐.
기억이란 사람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다. 경험이 쌓여 기억이, 그 기억이 쌓여 인격이 형성되고 인격이 곧 영혼을 이루니.
기억을 잃어버린 이는 영혼을 잃어버린 것과 다름이 없다.
궁수는 그제야 왜 자신이 지금까지 이 마약, 이 별빛이 섞여 있는 마약에 집착하고 있었는지 깨달았다.
이 길만이, 자신의 영혼을 찾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왜 그러오?”
제이슨이 물었다. 마약으로 혹시나 큰일이 난 게 아닌가 걱정하는 투가 묻어 나왔다.
“하 시발…..”
궁수는 푹 한숨을 내쉬었다.
“좆됐네.”
이제 평생 얻지 못하리라.
막 리브라와 연을 끊어냈다.
희망을 얻음과 동시에 절망을 가져왔다.
**
“하하.”
푸른색과 붉은색 반반으로 된 남자가 짐승 위에 앉아 웃음을 흘렸다.
“이제 슬슬 무르익었을까요.”
발로 툭툭 앉은 짐승을 건드렸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전갈 님은?”
아무런 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약간 크륵 거릴 뿐. 이 이상 자신의 잠을 방해하면 가만 두지 않는단 뜻으로도 해석이 되었다.
“음, 역시 강자는 강자란 건가요. 원래 강자는 말이 없기 마련이죠. 하지만 당신의 강함에는 영혼이 없습니다. 의지가 느껴지질 않습니다. 제 이상은 단순한 강함을 넘어 서로의 의지를 부딪혀 그 승자를 가리는…. 하, 됐습니다.”
사실상 자문자답이나 다름이 없다. 말하지 못하는 상대에게 떠들어 무슨 재미를 보겠나.
“아무튼, 제가 점찍은 상대가 몇 있는데. 궁금하지 않습니까?”
모순은 전갈에서 몸을 내리고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같이 한 번 관광이나 가시죠. 기왕이면 간 김에 평가도 좀 해주시고.”
전갈은 말 없이 눈을 감았다.
“흠, 그럼 승낙으로 알겠습니다.”
모순은 반대로 눈을 빛냈다. 두 눈에 다른 색이 새겨지고, 그는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주변 풍경이 일그러지며 사막에서 삼림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맡는 고향 냄새가 역시 좋군요.”
모순이 오랜 여행 끝에, 귀향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