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nsform or death RAW novel - Chapter 159
Chapter 159 – 이름 없는 사이 (1)
아직 나이가 채 열 살도 되기 전. 가출을 한 적이 있다. 사유는 기억 나지 않는다. 아무튼 그 때 당시에 대단히 화가 났던 건 기억 한다.
처음은 분노로 시작한 밤 산책엔 점차 설렘이 섞였다. 아무도 없는 가로등 아래와 차가운 공기, 작게 울려퍼지는 벌레 소리와 풀잎의 냄새. 그건 이야기로만 듣던 괴인 시대 이전의 모습을 보는 것만 같아, 어린 아이의 마음을 낭만과 모험심으로 채우기 충분했다.
아이 특유의 무한한 체력으로 어디까지고 뛰었다.
하지만 대단히 멍청한 짓이었다. 아직 대피 사항을 전부 익히지 못한 어린애가 보호자도 없이 밤길을 나돈단 건 자살 행위나 다름 없었으니.
마법 소녀의 단속이 느슨해진 틈을 타 괴인 하나가 거리에 출몰했다.
처음 가까이서 본 괴인은 대단히 크고, 또 무서워서.
그 자리에서 서서 도망칠 생각도 못한 채 엉엉 울어버렸다.
울음이 조금 잦아들 무렵엔, 괴인은 없고 한 소녀가 앞에 있었다.
-괜찮아?
눈이 멀 것만 같이 빛나던, 그녀를 기억한다. 강하고 아름다웠던 하늘빛의 사람. 유리 같이 보이기도 하며 잠시 눈을 떼었다 바라보면 바위같이 보였다. 신비로운 사람이었다.
우습게도 그녀를 보며 가장 먼저 나온 말은 ‘감사합니다’ 따위의 감사도, ‘대단해요’ 따위 칭찬도 아닌.
어떻게 하면 그렇게 될 수 있나요? 그렇게 물었다.
-그래? 하하하! 나중에 다시 만날 일이 있다면 좋겠네. 그럼, 좋은 걸 보여줄 수 있을 텐데.
그 말은 별안간 이뤄졌다. 다시 괴인에게 습격당했을 때 이번처럼 당신이 구해주었다.
당신은 쓰게 웃으며 한 장소로 이끌어 주었다.
-이게 있다면 괴인에게 두려워 할 일 따윈 없을 거야!
그렇게 당신은 나에게, 자신이 만들었다는 기계를 자랑했다.
당신과 당신의 창조물을 보며, 눈을 반짝였다.
**
“하 씨발.”
꿈을 꿨다. 꿈이라니, 그런 걸 아직까지 꿀 수 있을지 몰랐다. 마지막으로 꿈을 꾼 게 언제였더라. 이젠 기억도 하지 못할 만큼 오래된 일이다.
“뭐하시오 동지?”
“꿈을 꿨거든.”
제이슨이 묻자 궁수는 어지러운 머리를 저으며 대답했다.
“그거 좋은 일이군. 꿈이란 무의식과 의식의 집합소. 그곳에서 동지가 몰랐던 기억과 마음을 깨달을 수도 있지 않겠소?”
꿈을 꾸었다는 소식에 제이슨이 기뻐했다. 알지 못했던 목적을 얻을 단서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뭐라는 거야 시발… 그런 거 아냐. 전에 말했잖아. 마약 먹고 옛날 일을 기억하게 되었다고.”
“그렇지?”
“그 때 본 거랑 똑같아. 단서고 나발이고 없어.”
“그건 아쉬운 일이군.”
제이슨이 아쉽단 듯이 입맛을 다셨다.
“이런 씹….”
궁수는 이마에 손을 얹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별빛이 몸 속에 돌며 부산물처럼 떠오른 기억엔 혼란이 가득했다.
스승님과 알고 있던 사이였던 건가? 아니면 이 단편적인 만남에 지나지 않았던 건가. 그 기계는 뭐지? 허리춤에 찬 이 녹슨 쇳덩이가 그 기계였던 건가.
알지 못하는 것 투성이이다. 조금 더 기억을 볼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과거를 알면 목적도 알 수 있을 테니까….”
목적이 있다면 그에 맞는 동기가 있음이 분명하다. 과거의 경험은 목적의 동기를 주겠지.
허나 보이는 건 풍경 뿐. 당시의 마음 같은 건 알기가 힘들다. 나래이션이 하나 없는 1인칭 영화를 보는 듯 했다. 심지어 자신의 목소리는 검열되어 무슨 말을 지껄었는지 조차 알기가 힘들다.
“시부랄 좆같은 거. 다른 괴인 새끼들은 기억도 없으면서 어떻게 목적을 딱딱 아는 거야?”
“그렇게 말해도 말이오… 나도 사지 자네처럼 ‘다른 괴인’ 안에 들어가지 않으니 알 수 없소.”
“혼잣말 한 거야 새끼야!”
궁수가 괜히 신경질적으로 소리 질렀다.
“요즘따라 지랄이 더 심해지고 있군. 이러다 나까지 정신병에 걸리겠소.”
답답한 건 제이슨도 마찬가지였다. 궁수에겐 단서라도 있지 자신에겐 단서조차 없다. 자신의 목적이 무엇인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
“그럼 어쩌겠소. 다시 리브라 밑에서 일하며 마약을 보수로 받을 생각이오?”
“절대 안 해. 그 미친 돼지 새끼 지랄을 견디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알아? 게다가 가오가 있지 어떻게 나가서 바로 돌아가.”
궁수의 마음도 확고했다. 별빛을 추가로 얻으면 기억을 활성화할 수 있단 정보를 알아냈다 한들 다시 리브라의 용병으로 활동할 마음은 없었다.
마음가짐 이전에 효율의 문제였다.
확실히 리브라의 마약에는 별빛이 소량 함유되어 있다. 하지만 그 양이 소량도 너무 소량이다.
지난 번의 복용으로 인한 기억 활성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마약을 복용한지 몇 년이나 지나 축적된 양에 마지막 한 방울을 떨어뜨린 것에 지나지 않는다. 다시 몇 년 동안 그 짓 거리를 하라고? 미친 짓도 미친 짓이 없다.
그 때쯤엔 마약 부작용으로 죽고도 남았겠지. 궁수는 거칠게 팔을 긁적였다.
“맞다. 야, 너 전에 우리 같았던 괴인을 알고 있다 했지 않았어?”
분명 맘에 들어할 거라며, 소개하고 싶어주던 녀석이 있던 걸로 기억한다.
“갑자기 그건 왜 궁금하오?”
“목적이 없다가 목적을 찾은 녀석 아니야? 그럼 그 놈한테 노하우를 물어보자고. 무언가 단서는 되지 않겠어?”
척, 궁수가 엄지를 올렸다.
“겸사겸사 우리 지옥 동맹에 영입도 하고.”
“그 이름 아직도 포기 못했소?”
“왜? 멋지잖아. 아, 그럼 지옥 동맹이 아니라 지옥 연맹으로 할래?”
“뒤의 글자가 문제가 아니오. 왜 하필 지옥이란 말이오?”
어이 없단듯 질문하는 제이슨에게 궁수는 한치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간지가~ 나니까!”
“됐소… 뭘 기대했겠소.”
“굳이 의미를 추구한다면… 길을 잃어 지옥에 갈지라도 상관 없는 미친 놈들의 동맹이란 의미지! 이 여행길의 끝이 지옥일지 몰라도 한 걸음 내딛는 용기…!”
“나중에 덧붙인 의미 아니오?”
“응, 대충 붙였지.”
“그딴 게 자랑이오?”
저 구린 작명 센스는 어디서 비롯된 걸까. 선천적이겠지. 제이슨은 그의 필살기 이름은 좀 정상적이길 바랬다. 필살기는 괴인의 자존심 중 하나니까.
제이슨 본인은 능력이 매 번 랜덤으로 발동되어 딱히 이름을 붙이진 않았지만 나중에 능력을 컨트롤 가능해질 때를 대비하여 미리 이름을 생각하기도 하였다.
“뭐 좋소. 소개 해주겠소.”
제이슨은 앉아 있던 다 망가진 의자에서 일어났다. 여긴 한 다크 매터에 흔한 폐건물 중 하나.
궁수가 누워있던 곳은 스프링이 다 나간 소파였다.
“근데 이미 알고 있지 않았소?”
“내가?”
무슨 소리지. 언제 그런 괴인을 봤다고. 궁수가 사납게 되묻자 제이슨은 의아한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뭐, 만나 보면 알겠지. 그럼 바로 이동하겠소.”
제이슨의 몸에 일렁거리는 별빛이 감겼다. 그러자 괴인 특유의 흉측한 외형이 눈 녹듯 사라지고 대신 운동복을 입은 성인 남성 체형의 몸이 나타났다.
하지만 얼굴에는 이목구비가 없고 대신 돛처럼 희고 하얀 천으로 감싸져 나풀거리고 있었다.
괴인이 사람 사이에서 살기 위한 둔갑의 기술. 별빛을 가진 이들은 구분이 가능하지만 평범한 사람은 구분하지 못한다.
“뭐하오? 둔갑하지 않고?”
“…그걸 시발 내가 왜 해야 하는데.”
“우리가 가는 곳이 인간 사회니까. 쓸데없는 분쟁은 피하는 게 좋지 않겠소?”
“쓰읍 난 그거 반댄데.”
궁수의 태도가 유독 수상하다.
“…난 둔갑 못하거든.”
“뭐요?”
“난 둔갑 못한다고 시발.”
웬만한 상급 괴인은 억누를 수 있는 힘을 가진 데다 유사 신성 상태였던 노벰버도 제압할 수 있던 주제에, 제이슨 같은 괴인도 가능한 둔갑을 못 쓴다고?
제이슨은 진심으로 의아해 했다.
“그럼… 어쩌자는 것이오?”
“…흠, 어쩔 수 없지. 괴인답게 행동하자.”
결국 방법은 하나 뿐.
“밤에 급습하자.”
“여전히 비열하구려. 역시 싸움 방식부터가 뒤에서 이리저리 깔짝 대는 활쟁이라 그런지….”
“난 전사야 시발!”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는 공허한 소리였다.
**
“어디서 잘 거냐고?”
“응.”
윤설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집 못 구했지?”
“…응.”
저번 집 만큼 싼 곳을 구하기도 힘들다. 요즘 들어 전체적으로 부동산이 하락장이라 한들 거지인 한재중에겐 그림의 떡이었다.
안전하다고 판단되었던 A급 도시들도 괴인들에게 뚫렸다. 마법 소녀 본부 습격에 이어 저번 물재난까지. 많은 사람들이 불안과 공포에 떨고 있겠지.
뉴스를 보지 않는 한재중이라도 그 정도는 추측할 수 있었다.
“그, 그럼… 이제 어쩔… 거야?”
윤설화가 더듬더듬 조심스레 물었다. 이미 전에 납치까지 저질렀다. 양심 때문이라도 ‘같이 지낼래?’ 따위의 말은 꺼내지 못한다.
가장 좋은 결과는 한재중으로부터 도움의 요청이 오는 것. 그가 먼저 부탁한 순간 윤설화는 간도 쓸개도 빼줄 것만 같이 행동하리라.
윤설화는 그의 입에서 도와줘가 나오길 한없이 빌며 두근대는 심장을 진정시켰다. 지금이라면 저혈압도 낫는다.
“지금은 아윤이에게 위탁하고 있지 뭐.”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입으로부터 도움 요청이 오진 않았다.
“뭐, 뭐?! 그, 그럼 아윤이네 집에서 같이 지내고 있는 거야…?”
설마 동거? 이 얼마나 부러운 일인가. 윤설화는 입술을 씹었다.
“아니 그런 건 아니고, 그냥 카페 숙직실에서 조금 자는 거지.”
다행히 카페에는 쉴 곳이 있었다. 실제론 쓰지도 않는 숙직실의 공간이 꽤 넓어 잠시 지내기엔 문제가 없었다.
“괜찮겠어? 불편하지 않아? 안 좋은 곳에 자면 허리가 다칠 수도 있는데… 재중아, 그냥 우리 집에 와서….”
“그건 좀 그렇지.”
대답한 건 한재중이 아니었다. 카운터석에서 불편한듯 인상을 쓰고 있는 조아윤으로부터였다.
“언니를 어떻게 믿고 오빠가 지내겠어.”
“아….”
“아윤아.”
납치 사건 이후, 그녀는 유독 윤설화에게 날카로웠다. 한재중이 엄한 목소리로 나무라도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듯 흥, 콧방귀를 뀌었다.
“왜, 뭐 내가 틀린 말 했어?”
한재중은 심경이 복잡했다.
나중에 자신이 사라지면 저 둘끼리 잘 지내줘야 할 텐데. 화해가 그 때까지 안 이뤄지면 어쩌지. 자주 싸우는 자매를 남겨두고 집을 떠나는 아버지의 기분을 이해할 것 같았다.
아직 시한부란 사실이 사라진 건 아니다. 자신은 몇 년 이내에 죽는다.
한재중은 착잡한 마음으로 날카롭게 도끼눈을 뜬 조아윤과 고개를 푹 숙인 윤설화의 사이를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