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nsform or death RAW novel - Chapter 16
Chapter 16 – 임시동맹이다(아님)!
첫 번째 걸음엔 확신을.
지금 내가 가는 길이 올바르다는 신뢰를.
다리에 별의 고리가 하나 생겼다.
두 번째 걸음엔 분노를, 잊어버린 것들에 대한 분노를.
지금 무지한 나에 대한 분노이며, 이 상황을 초래한 모든 것에 대한 분노.
별의 고리 위 새롭게 고리가 덧씌워졌다.
세 번째 걸음엔 각오를.
지금 여기 내 뒤에 있는 모든 걸 지키겠단 각오를.
그렇게 세 걸음, 고리는 세 개.
네 번째 걸음.
다시 한 번 기억이 떠밀려 왔다. 떠오르는 기억만이 아니라 감정.
괴인을 벽 삼아 누웠을 때의 감정.
물을 먹어 매운 시야 끝 평범한 인간의 몸으로 만난 괴인들에 대한 공포.
배에선 봇물 터지듯 피가 흘러나왔고, 그와 함께 흘러나온 무력함. 생명체라면 응당 가질 공포.
죽음에 대한 두려움.
다섯 번째 걸음.
그 두려움을 곱씹었다.
죽음의 공포란 주머니 속 송곳처럼 선명하고 별을 가리는 태양처럼 뜨거워, 이미 지나간 일이 되어도 발을 무겁게 한다.
여섯 번째 걸음.
죽음의 공포가 아닌 자신의 힘에 대한 공포가 솟았다.
이것은 결국 괴인의 힘인가. 나의 의지는 괴인의 의지인가.
이 힘의 정체란 무엇이며 난 누구인가.
무지에 대한 공포이기도 하였다.
일곱 번째 걸음.
두려움을 떨쳐내기 위한 발걸음이었다.
눈 앞의 상대를 보며 각오를 다잡았다.
모순과 리브라에 비하면 만만한 비르고.
15성이란 별의 개수에 비해선 나약하다.
마법 소녀에겐 귀찮은 상대일지 몰라도 나에겐 아니다.
그렇게 일곱 걸음, 확신과 분노와 각오, 두려움을 덧씌운 헤일로가 일곱 개.
아직 비르고는 변신 시의 자기 방어 능력에 당해 부유해 있는 상태.
그녀가 땅에 낙하 하기도 전에 일곱 걸음은 완료 되었다.
기다란 다리의 그림자가 그녀의 머리 위로 드리워졌다.
콰아앙!!!
비르고의 몸이 못이 되어 바닥을 깨뜨렸다. 그녀의 몸만으론 그 힘을 전부 받아낼 수 없어 땅의 타일이 북두칠성의 모양으로 깨졌다. 다리에 모였던 별빛은 발산하며 탑처럼 위로 우뚝 솟아 올랐다. 어떤 봉화와도 같았다.
“아까 받은 건 이걸로 되돌려 주마.”
[칠성보각 발현 성공. 재현율 70%.]이제야 칠 할.
한재중의 이상은 뭐였길래 이런 거로 재현율이 오른 건가.
아니, 이것이 한재중의 이상이 맞긴 했을까.
사실 재현해야 할 대상은 나의 이상이었나.
그러면 내가 봤던 웹툰은 뭐고, 이 낯섦은 또 뭔가.
모르겠다.
아무튼 하나 확실한 게 있다면.
“쿨럭… 크윽… 너 그 기술만 몇 번을 쓰는 거야! 인간의 몸으로 부담이 꽤 될 텐데… 아.”
“인간? 너 지금 인간이라 했겠다!”
“큭….”
난 정상적인 괴인이 아니다.
모순의 말을 빌리자면 인간도 괴인도 마법 소녀도 아닌 이례적인 존재.
물론 인간으로 계속 살아갈 생각이긴 하지만, 정의를 따지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역시… 네 녀석도 확신을 못하고 있군. 내가 인간인지 괴인인지. 모순 그 놈 말이 맞았어. 난 무엇도 아니니, 내가 무엇이 될 지는 내가 선택하겠다.”
괴인화와 마법 소녀화가 뒤섞였다.
괴인화의 특징은 기억을 잃는 것. 그리고 기본적인 인간의 모습에서 크게 상이한 형태로 변형하는 것.
둘 다 나에게 해당 되는 사항이다.
내가 한재중의 괴인화라고 가정해 보자.
그래도 수상한 점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인간 시절의 기억을 계속하여 떠올릴 수 있단 점이나 그 모습에서 원래의 평범한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단 점.
평범한 괴인화라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괴인은 인간 시절의 기억을 점차 잊어간다. 떠올리는 게 아니라.
괴인은 인간의 모습에 가깝게 둔갑할 수 있긴 하지만 그 모습은 완벽히 인간과 동일하지 않고 이질적인 생김새가 된다.
머리에 선인장 화분이 달린 모순이 바로 그것이다.
저 비르고만 봐도 날개나 흰자 없는 눈 등의 비인간적인 특징이 있다.
하지만 난 아니다.
[무슨 용무십니까?]이 딱딱한 마스코트도 그렇고.
완전한 모습의 인간에서 괴인으로 변신한다.
가장 특징적인 건 내가 빙의했다 느낀 원흉.
‘마법 소녀 전성기’란 웹툰의 지식을 알고 있단 점.
그 웹툰 속 이야기는 매우 높은 확률로 진실이다.
등장인물이 같은 것 뿐만 아니라 그 능력과 성격, 과거 역시 일치하고.
앞으로의 전개 역시 당위성은 충분하다.
내가 기억을 잃어 버린 한재중인지 어디 환생자인지 미래를 보고 미쳐버린 환생자인지.
참 흥미진진하다.
앞으로 알아갈 게 산더미다.
내 재현해야 할 이상, 내 정체, 이딴 몸으로 구할 수 있는 직업 등등.
“그동안 찜찜한 게 많아서 정신병 걸릴 거 같았는데 고맙다. 네 덕분에 내가 정신병자로 확정 되었군. 이제 망설임 없이 정신병원에 가도 되겠어. 청구는 네 녀석 쪽으로 해 놓아도 상관 없겠지?”
참 흥미진진한 인생이다. 적어도 심심하진 않겠네.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비르고에게 물었다.
“그래서 네 목적이 뭐였는지 알려주진 않겠지?”
배신당했다고 생각하는지 분한듯 이를 악 물고 있었다.
그녀의 딜레마는 웹툰 속에서도 끝까지 나오지 않고 죽었으니까 알 길이 없다.
“알려 주겠어…?!”
“아파 보이는군. 가만 있어라. 너에겐 말할 게 더 있어서 말이야.”
불의의 일격이라 그런가.
꽤 타격이 커 보인다.
역시, 순간적으로 폭발적인 피지컬을 낼 순 있어도 그 지속은 어려워 하고 있다.
원작인지 뭔지 모를 웹툰에서 읽었던 것과 동일하다.
“칠성에 지는 처녀 자리라니, 한심하군.”
“크으윽…!”
별이 열 다섯 개나 있어도 그 밝기가 전부 동일한 건 아니다.
스피카의 밝기는 무시 못하지만 나머지는 고만고만한 수준.
모순이나 리브라처럼 자신이 가진 별 전부를 최대한 밝게 만들진 못했다.
심지어 이제 별자리급 괴인이 되었으니 별의 밝기를 더 이상 늘리지도 못하겠지.
괴인과 마법 소녀의 차이점 중 하나다.
괴인은 별을 늘리며 강해질 수 있지만 별자리를 완성 시킨 순간 성장은 끝난다.
그러나 마법 소녀는 끊임 없이 별의 밝기를 늘리며 성장할 수 있다.
아무리 많은 별이 있어도 찬란한 별 하나에 다 지워지면 무슨 소용인가.
“난 아직 진 게 아니….”
“아니, 넌 졌다 비르고.”
그 때 벽 뒤에 있던 리브라가 걸어 나왔다.
“내 자식을 전부 죽이길래 무슨 대단한 계획이 있나 싶었는데 전에 실패한 권유를 재시도? 역시 지능이 모자라군. 오락가락해서 그런가?”
“난 멍청하지 않아! 난… 내 선택은….”
“그냥 자고 있어라. 아니, 내 계획을 망쳤으니 여기서 죽는 것도 좋겠군.”
자신의 생각과 다르게 비르고가 행동한 것이 꽤 불쾌했나 보다.
리브라는 크게 분노하며 외쳤다.
“다시 한 번 방해했다간 널 쳐 죽이겠다!”
그렇게 외치니 속이 후련해졌는지 클클 웃었다.
여전히 동료 의식이나 결속력 따윈 하나도 없다.
저 둘의 갈등은 내 알 바가 아니지.
“이봐 리브라. 네 놈이 보기에도 난 괴인인가?”
“지금 그 모습은 괴인이 맞지. 하지만 전에 맨얼굴은 분명 인간의 것이었다.”
“대답 고맙군.”
리브라의 대답에 비르고가 분개하며 일어났다. 이마에서 피가 흐르는 데도 거칠게 닦을 뿐이었다.
“이 미친 새끼. 물었다고 순순히 답해?”
“내가 왜 자네의 자아 실현에 도와줘야 하지? 자네가 이 자를 죽일 줄 알고 방치했건만. 설마 그렇게 아무 생각이 없었을 줄은….”
신랄한 평가네.
실제로 그렇다.
괴인이라고 생각하게 만들면 내가 행동을 바꿀 줄 알았나?
기억과 내 정체의 단서를 얻었으니 결국 나만 좋은 꼴이다.
“그럼 이제 너도 쓰러뜨리면 되나?”
난 리브라를 가리키며 자세를 잡았다.
“아니, 잠깐 기다리도록.”
그는 손바닥을 펼치며 정지의 제스처를 취했다.
“자네에게 궁금한 게 있네.”
그 손바닥을 다시 쥐더니, 이번엔 검지 하나만을 펴 어딘가를 가리켰다.
순순히 고개를 돌려주자 그곳엔 그 놈이 만든 청동 괴인이 보였다.
문제는 그곳엔 괴인만이 아니라 한 젊은 남성이 있었단 점이었다.
“큭… 켁…!”
청동 괴인의 손에 목이 잡힌 남성은 비명도 내지르지 못하며 발버둥 치는 중이었다.
“저기 저 남성이 죽도록 방치하면 우린 여기서 순순히 물러나지.”
“누구 맘대로!”
“내가 결정했다. 난 자네보다 지위와 힘이 무거워. 다른 말로 하자면, 존재가 무겁다고 해야겠군. 패배한 몸이 어디 함부로 떠드나.”
“겨우 한 대 맞았다고 패배일 리가 없잖아… 난….”
움직이던 비르고의 몸이 크게 휘청거렸다. 뇌진탕 증세다. 인간의 신체와 한 없이 닮은 괴인이란 참 불편하구나.
“크윽…!”
“그래서 어쩔 거지? 무엇을 선택할 텐가? 번식 시장에서 탈락할 징조가 보이는 젊은 남성? 아니면 저 피난소에 모인 인간들?”
못생겼다고 말이 너무 심하네. 난 그 괴인을 빤히 쳐다보다, 문득 깨달아 하늘에 손가락을 올렸다.
“그러고 보니 이걸 묻지 않았군.”
붉은 별빛이 반짝였다.
“너흰, 별을 본 적이 있나?”
“당신의 마음에 붉은 혜성처럼!”
콰아아앙!
화려하게 낙하한 레드 베가가 청동 괴인의 몸을 우그러뜨리고 손에서 젊은 남성을 낚아챘다.
그 남성을 조심스레 바닥에 뉘인 다음 주먹을 쥐며 일어섰다.
“레드 베가 등장…!”
전에 봤을 때보다 별빛이 한층 강렬해졌다.
겨우 하룬데 이정도 성장이라니…..
고생을 많이 했구나.
대견함 보단 측은함이 먼저 들었다.
**
“레드 베가 등장…!”
대학교에 북두칠성의 괴인이 나타났단 소식이 들려와도 할 일은 같았다.
레드 베가는 다짐한 그대로 자신의 모교에 나타난 괴인을 순식간에 해치우고 이 곳에 출동했다.
오는 길에 응원도 들었다.
-힘내!
-선배 개 멋있어요!
따위의 응원들. 노골적인 실망이 있는 만큼, 누군가는 노골적으로 응원을 전해오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자신이 해 온 일이 그르지 않았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렇게 가슴에 열정을 불태우며 등장한 레드 베가.
‘큰 일 났네….’
현재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깨달았다.
호기롭게 등장했지만 상황은 막막했다.
[처녀 자리, 천칭 자리, 북두칠성까지… 수호자, 괜찮을까?]‘그래도 일단 해봐야지!’
S급 괴인이 세 마리나 있다. 하지만 여기서 물러설 순 없었다.
뒤에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레드 베가는 당당히 주먹에 불길을 휘감았다.
몇 초만 버티면 선배들도 곧 도착할 것이다.
떨리기도 했고 식은땀도 났지만 레드 베가는 앞으로 나아가길 택했다.
자신은 마법 소녀니까.
질 걸 알아도 물러나면 안 된다.
“오, 마침 잘 왔군.”
그러던 와중 북두칠성의 괴인이 태연하게 손을 흔들며 옆으로 다가왔다.
“나 혼자서 상대하기 벅차던 참이야. 너는 피난소의 인물들을 대피 시켜라. 난 저 둘을 최대한 붙들어 놓지.”
“…네?”
“뭐 해, 준비해. 너 날 줄 알잖아. 데네브에게 연락은 했나?”
“아, 아니 당신도 제 적….”
“아, 하긴 그것도 그렇군.”
북두칠성의 괴인이 당당하게 외쳤다.
“그럼 임시 동맹이다!”
“…네??”
“칫… 이번의 레드인가. 귀찮게 됐어.”
“위험한 동맹이 탄생했군.”
다른 두 괴인도 그 선언을 순순히 받아들인 듯 문제를 삼지 않았다.
심지어 리브라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는지 굉장히 심란한 목소리였다.
“계획이 완전 일그러졌어… 흠, 인정하지. 오늘은 나의 패배다.”
“뭐, 뭘요?”
“다음을 기다리도록 해라. 비르고, 이동하지.”
“칫….”
리브라가 손을 펼쳤다. 그 위로 천칭이 솟아났다. 비르고는 혀를 찼다.
덜컹.
그 천칭이 크게 한 쪽으로 기울어지자.
그 둘의 모습이 시꺼먼 연기로 가려졌다. 덜컹거리는 증기기관의 소리와 짙게 나타나는 기름 냄새.
거래의 능력을 통해 기적을 발현한 것이었다.
마법 소녀 전원이 수호에 성공했으며, 한재중의 방해로 인해 부족했던 한 공간에도 피해가 생기지 않았다.
심지어 여기서 죽일 생각이었던 북두칠성의 괴인은, 마법 소녀의 쪽으로 붙어 버렸다.
만일 이로 인해 괴인에게 선이란 이미지가 생겨 버린다면?
아니면 오히려 마법 소녀에게 악이란 이미지가 생겨 버린다면?
리브라에겐 둘 다 있어선 안 될 일이었다.
계획은 실패했다.
하지만 이를 모를 레드 베가는 당황스러울 뿐이었다.
두 괴인의 모습이 사라지고, 레드 베가와 한재중, 쓰러진 시민만이 남았다.
“갔나 보군.”
그가 레드 베가를 쳐다 봤다.
레드 베가는 뒤로 물러나며 전투의 태세를 갖췄다.
“어제 맞은 거 때문에 그러나? 안심해라. 어제는 사정이 있었을 뿐, 굳이 필요하지 않으면 공격하지 않아.”
“당신의 목적은 뭔가요!”
레드 베가는 궁금했다.
당신은 괴인이면서 왜 그렇지 않은 행동을 하는가.
왜 괴인을 공격하며, 왜 시민을 지키는가.
심지어는….
“어제 그건 스큐텀에게서 우리를 지키기 위함이었나요?!”
자신들, 마법 소녀까지도.
“그렇다.”
“…!”
그는 피식 웃었다.
“…라고 하면, 너희는 나를 믿을 수 있나? 나를 보호하고, 함께 협력할 수 있나?”
레드 베가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어제 하루 종일 읽은 인간과 괴인의 역사는 언제나 비극적인 결말이었다.
“지금 내가 안전한 괴인의 선례가 되어 버리면, 넌 다음에도 그 다음에도 계속 괴인을 공격하길 망설일 거 아닌가? 그렇다면 시민들은 널 어떻게 볼까? 괴인과 소꿉놀이에 미친 여자? 그러면 차라리 다행이군.”
레드 베가의 주먹에 서린 불꽃의 크기가 점차 옅어졌다.
“당신의 진심을 알려주세요…!”
“그걸 알아서 네가 뭘 할 수 있지?”
그냥 조용히 지내고 싶은 게 한재중의 꿈이었다. 지금 이렇게 길게 대화하는 건 조금도 본의가 아니었다. 임시동맹은 그냥 분위기 타서 외쳐봤는데 생각해 보니 그녀에게 못할 짓이었다. 죄송한 마음이 솟구쳤다.
그는 자신의 머리를 손가락으로 툭툭 쳤다.
비꼬는 의미였다.
“네 처지를 생각해라. 시민의 불안감을 조장한 마법 소녀. 네 위치를 생각하고, 누군가가 공격할 거리를 주질 마. 꿈이 있지 않나? 그럼 이뤄야지. 지금 나와의 친목이 네 꿈에 도움이 되나?”
괴인과 친목하는 미친 마법 소녀가 되기 싫으면 가만 있으란 의미였다.
요새 사람들이 얼마나 무서운데 억까할 거리를 던져줘.
말하고 보니 아까 임시 동맹을 제안한 게 생각나 양심에 찔렸다.
하지만 레드 베가가 동시에 세 명을 공격할 상황은 만들어주기 싫었는데 어쩌나. 원래 사람 마음이 복잡한 법이다.
어느새 그의 손은 벨트에 가 있었다.
“이번이 마지막 대화면 좋겠군.”
[ALKAID.]아까의 괴인들과 같이, 그는 연기와 함께 흩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