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nsform or death RAW novel - Chapter 163
Chapter 163 – 즐거운 재회
시내 한가운데에 우뚝 솟은 얼음의 탑. 빌딩의 숲에서도 쉬이 가려지지 않을 높이의 탑. 허나 그 주변은 아직 복구 작업이 한창이라 황폐하다.
노출된 콘크리트와 쉴 새 없이 돌아가는 건축 장비들의 소음, 먼지의 바람 속 그 얼음탑 홀로 단아하고 순수한 아름다움이 있었다.
아직 수재(水災)로 생긴 피해는 아물지 않았다. 집과 직장을 잃은 수재민들은 여전히 피난 셸터에서 불편한 생활을 계속하고 있었고, 인부들과 건물 복구 전문 마법 소녀가 휴일 없이 일을 계속하였다.
그런 와중 그 얼음탑은 시민들의 안식처로 활약해주었다. 재앙을 끝낸 증거이며 마법 소녀의 힘을 알리는 증거. 전세계를 뒤져봐도 이 정도의 힘을 가진 마법 소녀는 흔치 않으리라. 이 높은 탑은 도시의 랜드마크이며 시민들의 자부심과도 같은 역할을 해주었다.
과거 스카이 폴라리스가 만들어낸 전투의 흔적이 성지라도 되는 것마냥 찾아가 기도를 드렸듯이, 이번에도 그랬다.
-오늘도 블루 시리우스가 만들어낸 탑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
스마트폰 화면 너머로 중계를 보며 백아희는 생각했다.
‘나도 언젠가 이런 거 만들어야지!’
언젠가 나도 많은 이들의 정신적 안식처가 되고 싶다. 자신이 다녀간 자리가 영웅적인 흔적으로 칭송받고 싶다. 백아희는 블루 시리우스에 대한 존경심과 대항 의식을 불태웠다.
“씁, 근데 뭘로 하지… 영원히 불타오르는 탑…? 오 이거 괜찮네 멋지겠다….”
꺼지지 않는 불을 어떻게 만들지는 나중에 생각하기로 했다.
“나도 신성을 각성하면… 되지 않을까?! 어떻게 생각해 리본!”
[모르겠는데….]그녀의 마스코트인 리본은 몸을 말며 대답을 회피했다. 재미 없는 대답에 백아희는 입술을 삐쭉 내밀었다.
“그럼 오빠는 어떻게 생각… 아.”
고개를 돌려 질문하려던 백아희는 입술을 닫았다. 돌아본 자리에 한재중은 없었다. 아는 사람만 아는, 정확히 말하자면 마법 소녀 지인들 빼고는 아무도 모르는 카페 백호.
전직 마법 소녀 조아윤이 운영하는 이 카페에는 분명 미남의 종업원이 있었어야 할 터였다. 하지만 오늘 여기서 일하는 사람은 조아윤 하나 뿐. 오늘따라 카운터석이 넓어 보였다.
“…언니는 어떻게 생각해요?”
“어? 뭐가.”
“아닙니다….”
게다가 조아윤이 대단히 저기압이었기에 눈치가 보일 정도였다.
[눈치 안 봤잖아….]‘눈치를 볼 정도라고 했지 눈치를 본다는 건 아니었으니까!’
백아희는 당당히 대답했다. 저쪽이 저기압이라고 해서 이쪽까지 저기압이 될 필요는 없다. 그녀는 오히려 저쪽이 우울한 만큼 자신이 활기차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하아….”
조아윤은 푹 한숨을 쉬며 테이블석에 머리를 박았다. 평소보다 화장도 훨씬 옅고 머리는 푸석거린다. 투톤 컬러로 염색한 핑크색이 빛이 바래보였다.
“그, 그러니까 저도 시리우스 언니의 얼음탑 같은 걸 만들고 싶다는 이야기였는데요….”
백아희는 지지 않고 꿋꿋이 이야기를 밀고 나갔다.
“왜.”
칼같이 차가운 단답이 돌아왔다.
“어 음… 저, 저도 영웅으로 불리며 존경심을 팍팍 받고 싶어서요….?”
“불순하네.”
조아윤은 다시 고개를 들었다. 흐리멍텅한 눈이 무심코 몸을 움츠러들게 하였다. 그녀는 공허한 눈빛으로 주변을 둘러 보았다.
“너 혼자… 다행히 더 시끄러운 두 년은 안 왔나 보네.”
하루와 아라를 의미했다. 아라의 경우 평소엔 그렇게 시끄러운 성격이 아니지만 이상하게 조아윤을 만나면 목소리가 높아지고 말이 빨라져, 그녀는 조아윤에게 한해 가장 시끄러운 사람이었다.
아마 지금 조아윤의 상태를 본다면 머리를 울릴 정도로 시끄럽게 조롱을 퍼부었겠지.
“아하하… 그 둘은 좀 바빠서 말이에요.”
“넌 안 바빠?”
“이제 좀 바빠질 예정이긴 하지만 어느 정도 여유는 있어요.”
“흠, 그래?”
대답은 건성이었다.
“…넌 안 물어봐?”
무엇을 말하는지는 굳이 말로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한재중의 부재를 말하는 것이겠지.
“저는 나중에 전화해서 물어볼려고 하는데….”
“안 돼.”
백아희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조아윤이 끊었다.
“쓸데없이 시간을 빼앗지 마.”
“…?”
이번은 굳이 말로 듣지 않아도 알 수 없었다. 백아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조아윤은 다시 고개를 테이블에 처박았다. 쾅! 듣기만 해도 아픈 둔탁한 소음. 문에 달린 종이 살짝 흔들렸다.
“그게 무슨….”
“미안해… 별 거 아니야.”
조아윤은 다시 매정할 정도로 차갑게 말을 끊었다.
‘뭐하는 거지 나.’
자기혐오가 차올랐다. 상관 없는 사람에게 화풀이를 해버렸다. 이러려던 게 아닌데. 지금은 시간 낭비를 할 때가 아닌데.
말 그대로, 시간이 부족했다.
아침에 있던 일을 떠올렸다.
-아윤아, 어젯밤엔 미안했어.
-오빠.
-응? 왜?
-나가. 당장.
카페에 지내고 있던 한재중을 강제로 내쫓았다.
-엥? 아윤아? 아윤아. 그게 뭔….
아주 간단한 일이었다. 그녀는 변신을 안 해도 나비를 조종 가능했으니까. 그에게 나비를 부착하고 미리 도시 곳곳에 풀어둔 나비에 옮겨버리면 끝.
인간의 몸으로 괴인의 힘을 쓴다. 이것도 그와 다르게 직접 별빛을 사용하는 게 아닌, 마력으로 정화를 했기 때문이겠지.
그렇기에 몸에 큰 부담 없이 힘을 운용할 수 있다.
“하아….”
정말 새삼스럽다. 자신과 한재중의 변신은 다르다. 그저 변신 후의 모습이 괴인이라고, 무심코 똑같다고 생각했다.
그간 변신을 오래 할 때 온 반동은 해봤자 과로할 때와 비슷한 피로. 하지만 그는 다르다. 변신의 부작용은 고작 피로가 아니다.
죽음에 가까운 고통을 받는다.
하루빨리 그와 함께 대책을 찾거나 해줘야 한다. 그나마 멀쩡한 자신이, 그를 지켜줘야 한다.
“그치만….”
두렵다.
한재중은 자신을 괴롭힘에서 구해주었다. 가둔 창고를 깨부수고 손을 내밀던 모습을 잊지 못한다.
언제나 자신보다 강하던, 설령 힘이 없던 때에도 의지가 되던 그가 한없이 나약해진다는 게. 그걸 인정해야 한다는 게 두렵다. 이 상황을 직시하고 받아들이는 게 너무나 두렵다.
해야 할 일은 알고 있다.
당장 한재중에게 달려가 정확한 증세를 설명 받고, 그를 다독이며 삶의 의지를 불태우게 만들어야 한다. 함께 삶을 늘릴 방법을 알아봐야 한다.
그러나 몸이 제대로 움직여지지 않는다.
처음 겪는 일이었다. 죽도록 싫은 일도, 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으면 지금까지 잘만 해왔는데.
아마 그 이유는 지금 마주한 것은 ‘해야할 일’을 넘어 ‘해내야만 할 일’ 이기 때문이겠지.
시도는 쉽다.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성공은 어렵다.
그의 삶을 늘릴 방법? 그딴 게 있기나 한가.
어쩌지, 어쩌지. 이런 와중에도 그의 삶은 짧아지고 있는데. 어째야 하지. 그의 삶을 듣는단 것은 곧 그의 삶의 무게를 같이 짊어지게 된다는 뜻. 그에게 그런 의도가 없다 하더라도 조아윤의 마음은 강한 의무감을 가지게 될 것이다.
바람 앞에 놓인 촛불을 바라볼 때처럼 전전긍긍하면서도, 바람을 없애는 방법을 몰라 속이 타 들어갔다.
이미 알아버린 이상 눈 돌릴 순 없다.
“…데네브 언니.”
어느새 다가온 백아희가 그녀의 어깨를 흔들었다. 깜짝 놀란 조아윤이 놀라 고개를 올렸다.
“이건 혹시나… 정말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 건데요….”
백아희는 여러 겹으로 보험을 깔며 말을 이었다.
“지금 그 고민은 재중 씨와 관련된 거 맞죠?”
“….”
“…언니, 설마.”
귓가에 가까이 입술을 붙여 속삭였다. 아무도 듣지 못하도록.
“알게 됐나요?”
처음엔 무엇을, 이라고 생각했다. 문장의 구성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곧, 조아윤은 그녀가 무엇을 말하는 건지 깨달았다.
“설마 너도… 알고 있냐?”
백아희는 아무런 대답도, 몸짓도 하지 않았다. 다만 그저 빤히 그녀의 눈동자를 바라 볼 뿐이었다.
그것이 가장 큰 대답이었다.
다른 한명, 한재중의 건강을 아는 사람이 있었다.
의논할 수 있는 상대가.
**
한재중은 창문 너머로 얼음탑을 바라보았다. 오늘도 헬기가 날고, 멀리서도 보일 정도로 많은 사람이 모여 있다.
“어우 씨발 바글바글하네. 저기에 폭탄 화살 하나 떨구고 싶다.”
“그 전에 나한테 뒤진다.”
“알아 새끼야 그냥 하는 말이야.”
궁수가 작게 중얼거리자 한재중은 즉시 주의를 주었다. 그는 질린단 듯이 고개를 저었다.
“천박하오 동지.”
“그럼 고상하겠냐?”
제이슨도 타박을 주었지만 그의 입은 다물 새가 없었다.
“여기 고상한 놈은 하나, 자칭 수호자 이 놈 뿐이잖냐.”
“고상하진 않지. 뭐 대단한 일이라고.”
“얼씨구 부처 납셨네. 병신 호구 새끼.”
궁수는 의자에 등을 기대며 크게 몸을 젖혔다.
“우리 고상한 인간 님은 일 안 하세요? 밥 먹으려면 일 해야 하지 않나?”
“쫓겨났다.”
“음! 그럼 자네도 동지이라오. 우리 개백수 동지들!”
“캬하하! 그럼 낮부터 모였는데 개백수 새끼들이지. 캬 이게 여유구나!”
[축하드립니다 수호자. 같은 수준의 친구들을 사귀게 되었군요.]이들과 같게 묶이는 게 대단히 치욕스러웠다.
“야 이 새끼들아. 난 휴가를 받은 거야. 휴가. 너희들 같은 근본적 무직과는 다르다고!”
“근본적 무직이 뭐야. 그럼 근본부터 일하는 사람이 있냐?”
“일하지 못하는 성격이 있지. 너네는 그런 놈들이야. 사회성 부족으로 일일알바만 전전하면서 오래 한 곳에 있지 못하는 놈들.”
“언제 봤다고 인격 모독이야!”
“그럼 넌 언제 봤다고 저격질이었는데!”
할 말이 없었다. 궁수는 입을 다물었다.
“애당초, 모였으면 건설적인 이야기나 할 생각을 해야지. 이 따위 잡담할 시간이 나한텐 없단 말이다!”
“그건 그렇지. 불쌍한 놈… 쯧쯧, 하긴 넌 여유가 없을만 하다.”
“이보오, 너무 그렇게 말하지 마시오. 얼마나 억울하겠소. 소처럼 살다가 개미처럼 뒤지게 생겼는데.”
“넌 다음부터 쉴드 치지 마라.”
한재중은 지금 이들의 아지트에 와 있다. 매일 같이 바뀌는 그들의 아지트. 이번에는 시내 가까이 있는 버려진 상가 건물에 몸을 위탁 중이었다. 꽤 오래 전에 발길이 끊겼는지 곳곳엔 먼지와 거미줄이 가득했다. 유리창은 깨져 있어 조금의 필터 없이 밖을 바라볼 수 있었다.
“야, 니들 기억 찾고 싶다며. 뭐 단서 같은 건 있어?”
“너.”
“없소!”
“둘 다 없다는 뜻이구나. 알았다.”
한재중은 한숨을 쉬었다. 앞길이 막막했다.
“아니 난 너라니까!”
“이미 앞에 있는데 뭐 기억 나는 게 있냐?!”
“없지.”
“근데 시발 뭔 단서야.”
“욕하지 마 시발!”
제이슨이 둘 사이를 중재할 때까지 고성과 욕설이 오갔다.
“아 혈압 오르면 몸에 안 좋은데.”
“뭐 괜찮지 않냐? 지금 몸이 완전히 씹창 났는데 여기서 뭐 조금 더 안 좋아져 봤자 얼마나 변하겠어. 불탄 집에 성냥 떨구는 꼴일 텐데.”
“입 안 닥쳐?”
후우, 다시 한숨을 내쉰 한재중이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 잡으며 입을 열었다.
“일단 이야기를 정리해 보자. 일단, 궁수… 이름 뭐랬지?”
“사지타리우스, 줄여서 사지라고 불리는 중이다.”
“그래 사지절단. 넌 나와 비슷한 케이스야. 인간에서 괴인이 되었지만, 이보다 더 특수한 케이스.”
궁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잠깐 내 이름 왜 그래.”
“변신의 과다로 몸이 씹창이 나 결국 죽고, 그 시체를 베이스로 괴인이 된 거지. 네 기억의 단서는 아마 그 변신일 거다. 좀 더 알아 봐. 특히 보티스 좀 닦달해 보고.”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야.”
협력이 결정된 이후, 한재중은 그들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대부분의 정보를 말해 주었다.
자신 역시 변신의 과다로 죽은 사람이란 걸 깨달은 궁수는 노발대발하며 당장이라도 보티스에게 쳐들어 가려 했다.
“또 뭐랬지? 마약? 그것 좀 더 구해보고.”
“효율이 안 좋다니까.”
“일단 해봐 시발. 배가 처불러가지고. 그리고 제이슨.”
“왜 그렇소?”
“넌 진짜 답이 없는데.”
가장 문제는 그였다. 제이슨. 아무런 단서가 없다. 궁수처럼 원래 인간이었던 것도 아니고, 마법 소녀와 관련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럼 답이 나올 때까지 더 생각해보겠소!”
“그래 그래라. 그리고 난….”
“오냐 하루살이. 말해봐라.”
“사지절단 이름값 하기 싫으면 아가리 하고. 그래 난… 솔직히 방법으로 생각해 둔 게 있긴 해.”
“호오.”
이럴 줄은 몰랐단 듯이 궁수가 감탄했다.
“좋은 방법은 아니야. 정말 최후의 최후, 어쩔 수 없을 때 사용할 방법인데….”
“뭔데 그렇소?”
“완전히 죽기 전에 살해 당할 거야.”
“미쳤군.”
“미쳤구려. 그냥 자살 방법이잖소?”
궁수나 제이슨이나 고개를 저었다. 자포자기에 정신이 훼까닥 돌아버렸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아니 좀 제대로 들어 봐. 이게 생각보다 은근 쓸만한 방법….”
“오 그렇습니까?”
그때 누군가가 다가와 자연스럽게 의자를 하나 빼 앉았다.
“그럼 그 살해 상대로 전 어떻습니까. 꽤 괜찮다고 생각하는데.”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었으나, 결코 반갑지 않은 얼굴이었다.
“반가운 재회로군요. 그립진 않았나요? 참고로 전 그리웠습니다. 만나니 정말 좋네요.”
“돌겠네.”
모순.
간만에 보는 선인장 대가리는, 여전히 뽑아버리고 싶게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