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nsform or death RAW novel - Chapter 167
Chapter 167 – 대면
백호에서 쫓겨난 이후 본부에 도착한 백아희에게도 소식이 전해졌다.
“일본의 마법 소녀가 온다고요?!”
놀라는 건 그녀도 마찬가지였지만 묘하게 달랐다. 다른 사람들이 당혹의 감정을 담아 놀랐다면 그녀의 목소리엔 묘한 흥분이 배여 있었다.
“…신나니?”
비꼬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묻는 것이었다. 아라의 눈에는 백아희가 마냥 신나보였다.
“그럼요!”
정확히 본 거였다.
“일본의 마법 소녀라면 유명하잖아요! 최초의 마법 소녀는 한국에서 나왔지만 그 이후에 마법 소녀 문화를 꽃피우고 수많은 마법 소녀를 배출한 건 일본! 역시 픽션 속에서 마법 소녀라는 존재를 최초로 만들어낸 국가라서 그런 걸까요? 전투 수준도 높고, 다들 귀엽고! 또….”
“음지 문화도 발달되어 있지만 말이에요.”
아라는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확실히 일본의 마법 소녀는 발달되어 있다. 전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마법 소녀를 가지고 있다는 국가. 그런데도 전체적인 수준 역시 상위권이다. 그렇게 좋은 이야기는 아니다.
마법 소녀의 수가 많다는 건 그만큼 괴인의 수도 많다는 뜻, 마법 소녀의 수준이 높다는 건 그만큼 괴인의 힘 역시 강력하다는 의미다.
그 기반의 힘이 사랑과 평화인 만큼, 마법 소녀는 더 강한 적일 수록 강한 힘을 각성한다. 그래야만 평화의 수호가 가능해지니까.
‘뭐 저는 이 개판 속에서도 성장이 좀 느린 편이긴 하지만요….’
오렌지 알타이르, 아라는 쓰게 웃었다.
‘그래도 뭐, 상관 없다구요. 저격 능력은 마법 소녀 중에서도 귀한 편이니 어디 서든 쓸데가 있기 마련이고… 뭐, 능력도 그렇게까지 없지는 않고요?’
태양까지의 초장거리 저격. 충분한 준비 시간만 있으면 거리 상관 없이 저격이 가능하다. 이건 틀림 없는 장기였다.
“으, 음지 문화 같은 거 이야기 하지 마세요! 추잡하게!”
“이제 미자도 아닌데 알 거 다 알지 않나요? 우리 백아희 씨.”
“음지만 따지면 전 세계 어디든 다 똑같잖아요! 저, 저만 해도 미자고 상관 없이 이상한 소리 많이 들었고….”
“일본 쪽은 유독 심한 편이잖아.”
가장 많은 마법 소녀를 가지고 있는 국가.
동시에, 가장 많은 수의 마법 소녀가 은퇴하는 국가.
그것이 일본이다.
“은퇴한 마법 소녀가 직접 그 음지에 가담하니까.”
또한 그 은퇴 시기 마저 상당히 빠르다. 빠른 사람은 한 달을 못가고 그만둔다고 한다.
“일 년에 같은 색상인 사람이 세 명 배출된다는 농담마저 나올 정도지 않나요.”
한 국가 내의 마법 소녀들에게 동일한 색상은 없다. 어떤 색상이 배정된 순간, 은퇴하기 전까지 그 색은 한 사람에게 고정된다.
즉 일 년에 같은 색의 마법 소녀가 셋 나왔다면 그건 두 명의 마법 소녀가 한 해를 넘기지 못하고 은퇴하고 누군가가 그 색을 이어받았단 소리가 된다.
“그, 그건….”
“유명하지….”
윤설화도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을 표했다.
은퇴하는 마법 소녀가 많다는 의미는 ‘전직 마법 소녀’라는 이력을 가진 젊은 여성의 비율이 늘어난단 뜻.
물론 연예인이나 패션 등의 자신의 이력을 살릴 수 있는 직업이나, 건설사 등의 건실한 업계로 전직하거나 착실하게 학업에 복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긴 하다.
허나 가끔 안 좋은 쪽으로 빠지기도 한다.
“정신 상태 망치기 딱 좋은 직업이잖아. 괴인 카르텔과 엮이기도 좋고… 불법적인 곳으로 빠지기 쉬울 수밖에 없지.”
“아무리 그래도 거긴 진짜 이상하다니까요? 여긴 그냥 인신공격용으로 성희롱을 하지만 저쪽은 진심으로 그러잖아요. 심지어 공식석상에서 그런 질문을 하기도 하고….”
“진짜 여기가 나아. 차라리. 저긴 맨날 지들끼리 비교하고, 순위 나누고. 심지어 사적으로는 더 깐깐해서, 연애만 했다 하면 요즘 시대인데도….”
다른 마법 소녀들도 적극적으로 동참했다. 마지막 말은 윤설화의 눈치를 봐서 멈췄다. 확실히 일본에 비하면 여기는 장점이 많은 편이었다.
특히 사생활. 요즘 시대에도 연애는 여러 논란을 불러일으키지만 적어도 7년 전 그 때 수준은 아니었다.
“읍습하네요.”
“다들 너무하십니다! 일본은 그렇게까지 나쁜 데가 아닙니다!”
“유배왔는데도 애향심이 넘치네.”
“전 유배가 아니라 유학입니다! 언젠가 돌아올 겁니다! 이거 다 인종 차별에 편견입니다!!”
하루가 적극적인 항거에 나섰으나 구체적인 반박은 하나도 하지 못했다. 분한 심정에 입술을 깨물었다.
“그, 그래도 일본엔 실버 루나가 있잖아요!”
그 순간 백아희가 하루를 지원했다.
“12살부터 지금까지 현역! 5년 연속 마법 소녀 투표 1위! 이 세대에서 최초로 신성을 각성한 천재 마법 소녀! 그 능력은….”
“너 제대로 신났구나?”
“그럼요!”
백아희의 눈빛이 반짝였다.
실버 루나.
그 이름 그대로 은색의 달.
태양빛을 반사하는 달빛 역시. 별빛이긴 매한가지.
이론상으론 달빛 역시 별빛이 될 수 있다.
한창 그런 낭설이 나돌 때, 일본에서 정말로 달빛을 머금은 소녀가 탄생했다.
그것이 실버 루나. 다른 마법 소녀와는 차별화된 특별한 빛을 머금은 소녀.
“아, 아희야! 여기서 그런 소리 함부로 하는 거 아니야….”
다른 마법 소녀들은 윤설화의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블루 시리우스와 실버 루나. 이 둘은 국가를 초월하여 최강의 마법 소녀로 자주 거론되는 사이기 때문이다.
데뷔 시기 자체는 실버 루나가 빠르나 나이는 동갑.
블루 시리우스의 성장 속도가 워낙 압도적이었기에 실버 루나가 신성을 각성하기 전까진 둘의 실력이 비슷하다고 평가되었다.
실버 루나가 신성을 각성한 이후 최강은 그녀로 확정되는 듯 했으나, 최근 블루 시리우스도 신성을 각성했다.
현 시기의 최강은 누구인가.
이젠 정말 아무도 모르게 되었다.
물밑에서 워낙 많은 말이 오고 가고 있다. 최근 블루 시리우스의 신성 각성으로 다시 갈등이 점화되어, 상당히 과격한 논쟁이 오가고 있다.
‘음… 이제 또 바빠지려나? 재중이 얼굴 자주 못 보겠네….’
하지만 그 당사자인 블루 시리우스는 별 생각 없었다. 실버 루나와는 별 인연이 없기도 했고, 온갖 미디어에서 거리를 두고 있던 터라 애초에 논쟁 자체를 몰랐다.
무엇보다 최강 자리 따위 관심이 없다. 가지고 싶으면 가지라지. 그딴 거 가져서 무슨 도움이 된다고.
돈은 이미 벌만큼 벌었고, 관심 받는 건 부담되기만 한다.
‘전갈… 은하의 짐승 중 하나. 지금의 나로 이길 수 잇을까?’
누군가와 경쟁하기보단 당장 살아가는 게 먼저다. 살아서 돌아가야 한다. 반드시.
하지만 전갈자리의 괴인은 상당한 강적이다. 강적이라 표현하는 게 낮춰말하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지금까지 싸워왔던 적과는 격이 다른 상대다.
은하의 짐승은 전에 한 번 체험한 적이 있다.
사자.
은하의 빛으로 충만한 갈기를 휘날리던 거대한 짐승.
고작 거기 있는 것만으로 일대를 불바다로 만든다. 콧숨만으로 땅이 뒤흔들리고, 단단한 가죽엔 생채 하나 내기도 힘들다. 입에선 온갖 것들을 불태우는 지옥불을 내뿜는다. 심지어는 그게 전력이 아니었다.
그런 것과 동급 취급을 받는 게 전갈.
이길 수 있을까? 신성을 각성했다고 한들 은하에 닿을까? 문득 회의감이 들었다.
‘아냐. 이건 해야만 하는 일이야.’
그래야 살아 돌아갈 수 있으니까. 다시 그이의 얼굴을 볼 수 있을 테니까.
윤설화는 마음을 굳혔다.
“아 맞다! 그럼 실버 루나 실물을 영접할 수 있단 뜻이겠네요? 합동 작전이잖아요!”
“아무리 그래도 그 사람은 자기 나라를 지켜야 하지 않을까요?”
아라는 회의적이었다.
일본도 한가한 동네가 아니다. 한국과 비슷하거나 그보다 더 많은 S급 괴인이 분포 중이다.
그 중 최중요 전력 취급받는 실버 루나를 턱턱 타국에 보내 줄까.
“그런가요….”
“어머 무슨 소리를.”
백아희가 실망스레 어깨를 축 늘어뜨리기 무섭게 뒤에서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감각은 익숙하다.
사람이 아니라 괴인의 목소리를 들을 때의 그 느낌.
언어가 아니라 직접 자신의 의사를 소리를 통해 퍼뜨리는 감각. 음성으로 구현된 텔레파시에 가까웠다.
괴인이 전세계 어디에서도 대화가 통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별빛을 통해 공기 중에 직접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는 방식으로 대화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언어는 필요없다. 닿는 순간 이해될 테니.
백아희는 본능적으로 마스코트를 손 안에 잡고 뒤돌았다. 언제든 변신할 태세를 갖추었다.
하지만 뒤돌자 보이는 건 의외의 얼굴이었다.
“안녕하신가요 여러분. 먼 타국에 땅에서 공주님이 찾아왔답니다.”
제정신이 아니면 할 수 없는 대사. 은연 중 오만함이 묻어나는 말투.
윤기나는 은색의 머리카락을 트윈테일로 묶고, 푸른 눈동자는 호수에 비친 달과도 같다.
길쭉한 팔다리가 잘 드러나는 반팔 블라우스와 미니스커트, 가운데엔 큼지막한 리본과 보석이 박혀 있다.
전체적으로 우아한 분위기였으나. 소녀다운 순진함도 가지고 있다.
마법 같은 환상을 품고 있는 소녀의 용모.
“오, 아, 아, 아…..”
“왜 그러시죠? 목소리가 떨리고 계신데요? 아, 제가 너무 예뻐서 그런 건가요?”
“와! 실물!!!”
실버 루나. 그 본인이 여기 찾아왔다.
백아희는 혼절했다.
“…오랜만입니다.”
하루는 그런 백아희와 반대로, 차게 가라앉아 그녀를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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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음. 그러니까. 모순이라는 선인장 대가리가 전갈을 데리고 여기에 왔고, 그 전갈이 오빠의 수명을 30일 남기고 홀랑 가져갔다고?”
“응.”
“그리고 그 선인장 대가리도 자기의 수명을 걸고 이긴 사람이 수명을 독식하는 게임이 시작되었다고?”
“응.”
“아니 시발….”
조아윤은 좌절하며 얼굴을 감싸안았다.
“진짜 오빠 감금 하는 게 신상에 이롭지 않을까? 맨날 나갔다 하면 뭔 지랄을 겪고 오는 거야아아아….”
“에이 한번 감금 당해봐서 아는데. 감금 당해도 비슷하게 좇되더라.”
“아가리 해. 신경 긁지마 청년 시한부 놈아.”
“이기기만 하면 시한부 탈출이라니까?”
벌떡. 조아윤은 웅크린 몸을 일으키고 즉시 한재중의 정강이에 킥을 날렸다.
“아악!”
“시발 그걸 말이라고 해?!”
어이가 없었다. 지금 무얼 상대해야 하는지 알고나 하는 말인가.
“전갈… 전갈이라고! 그 씨발 대단한 일본 년도 지고 돌아오고! 근 20년 동안 누구 하나 상처를 못 입힌 괴물! 은하의 짐승!”
비명을 지르며 조아윤은 다시 머리를 감싸 안았다.
“아악! 시발 하느님! 선배님들! 왜 저 미친 벌레를 냅둔 거에요! 직무유기잖아 씨바아아알……”
이름만 들어도 숨이 턱 막히는 상대다.
싸울 경우 살 거란 보장도 없는데, 만일 살더라도 무언가 대단한 휴유증을 달고 돌아오지 않나.
전갈의 상실 능력은 상당히 유명했다. 별빛과 수명을 빼앗긴 사람이 한 둘이 아닐 테니.
“전갈을 죽일 경우 잃어버린 게 돌아온다는 소리는 처음 듣긴 하지만….”
“그래 이기기만 하면 아무 문제 없다니까?”
“문제 없긴 개뿔!”
다시 한번 정강이를 걷어 찼다.
“어쩔 거야? 아무리 오빠가 강해졌다고 해도 은하급은 아닐 거 아냐. 물론 나도 그렇고… 겨우 우리 둘로 이길 수 있겠어?”
“어? 무슨 소리야. 왜 우리 둘이야.”
“…뭐?”
“아윤아. 잠시 내가 알려주는 장소로 이동해 줄 수 있어?”
어안이 벙벙했지만 조아윤은 그의 말 대로 해주었다.
찾아간 곳은 허름한 폐빌딩이었다. 괴인이 날 뛴 뒤 버려진 장소인지 인적은 없었고, 먼지는 수북했다.
“뭐, 뭔데. 뭐 하려는 거야….”
을씨년한 분위기에 조아윤은 그의 몸에 딱 붙어 발을 옮겼다. 별안간 그의 발걸음이 멈추고, 조아윤 역시 발을 멈췄다.
“어 왔냐.”
“오셨소?”
“아윤아 소개할게. 내 부하들이야.”
그러자 보인 건 전에 본 적이 있는 괴인들. 배의 판자를 기워 붙은 것 같은 괴인 하나와 온 몸이 녹슨 것처럼 붉은 괴인 하나.
“누가 니 부하야 씨부럴 놈이!”
“맞소! 우리는 평등한 관계요!”
“나한테 한번씩 처발린 놈들이 평등은 무슨.”
“야, 그럼 다시 뜰래? 어? 한판 뜰까?”
“아~ 수명 아깝다. 내 귀중한 목숨을 니네한테 왜 낭비하겠냐.”
조아윤은 할 말을 잃었다.
“…나, 하나 뿐인 동료라며.”
“응?”
“더, 더… 있었잖아! 이 구라쟁이 새끼야!”
조아윤은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