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nsform or death RAW novel - Chapter 174
Chapter 174 – 신성 (4)
“키무?”
궁수는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이게 무슨 뜻일까?”
전갈과의 전투를 치룬지도 이제 하루가 다 되어 간다. 하지만 여전히 궁수는 마젠타 헬리오스가 중얼거린 소리를 곱씹는 중이었다.
처음 보는 사람이다. 궁수의 기억상으로 그는 그녀를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을 알고 있는 듯 했다.
이 사실이 가리키고 있는 건 하나뿐이었다.
“사람일 적에 알았다….”
궁수가 사람이었을 시절에 그녀와 면식이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을 향해 키무라는 호칭을 사용했다.
애칭이었나? 그런 것 치곤 목소리에 딱히 애정 같은 게 엿보이진 않았다.
물론 인간이었을 시절을 알고 있다면 나름대로 연민은 존재하겠지. 안 그래도 일반인들보다 측은지심이 월등히 강한 마법 소녀라면 더욱.
그러나 그것 뿐이다. 그 이상의 감정은 없었다.
즉, 마젠타 헬리오스는 궁수의 사람 시절은 알고 있지만 오랜 교류를 나눈 적은 없었다고 판단 가능하다.
여기서 이상한 점이 있다.
궁수가 괴인이 된 지도 꽤 시간이 흘렀다. 물론 사람 시절의 기억은 없지만 괴인 시절의 기억은 선명히 남아 있다. 망각의 바람에 묻혀 잊어버린 일상도 많지만 시간을 잊지는 않았다.
“내가 괴인이 된 지도 꽤 됐을 텐데.”
마젠타 헬리오스의 외관과 세월이 맞지 않는다. 해봤자 열 살 남짓한 애가 알기에는 나이를 꽤나 먹었다.
“그 꼬맹이가 외견보다도 좀 나이가 있는 편인가…?”
하긴 마법 소녀도 괴인 못지 않게 신비한 생물이니 말도 안 되는 가정은 아니다.
궁수는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키무, 키무라… 오? ‘키무라’? 일본의 성 씨인가?”
한재중은 마젠타 헬리오스를 조금 아는듯 했다. 그래소 돌아온 직후 이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 그에게 향했으나….
안타깝게도 한재중은 변신을 해제한 즉시 뻗어버렸다. 아직까지 일어났다는 연락은 받지 못했다.
해가 중천인데 뭐하는 꼴인지. 한심하긴. 저딴 게 영웅이라니 세상이 말세다. 궁수는 속으로 그에게 툴툴 거리며 계속하여 사고했다.
“내가 일본 사람이었던가?”
이 시간 동안 수 없이 ‘키무’라는 호칭을 탐색해 보았다. 수 십가지의 가설이 나왔고. 모두 그럴듯 했으며 모두 무언가 아닌듯 했다.
“야 제이슨. 넌 어떻게 생각하냐?”
“무엇이 말이오 동지? 난 계속 이 각성한 능력을 연습해야 하오. 그래야 다음 싸움에도 더 도움이….”
“10 분 연습하고 1시간 뻗는 놈이 뭔 헛소리냐. 너도 내 키무라는 호칭이나 생각해 봐.”
궁수가 사고에 매몰되어 있듯, 제이슨도 복귀 직후부터 지금까지 휴식 없이 연습에 매진하고 있었다.
콘크리트 조각으로 능력을 시험하다 모든 별빛을 소진하고 뻗는다. 별빛이 회복되면 다시 일어나 아까처럼 능력을 시험하다 뻗는다.
이를 반복하는 중이었다.
궁수가 보기엔 뻘짓도 이런 뻘짓이 없었다. 능력의 발전은 조금도 보이지 않았고, 시간이 지날 수록 제이슨이 뻗는 주기만이 빨라졌다.
본인의 말로는 방금 전의 전투에서 원하는 공간으로 상대의 공격이 이동했다는데. 궁수는 이게 단순한 우연이라고 생각했다.
그 길잃은 이동이 우연히 상상했던 장소 주변에 발생했다. 이렇게 확신했다.
지금까지 그가 상상하면서 능력을 시전한 적이 없던 것도 아니고. 이제 와서 상상만으로 능력 컨트롤이 가능해지다니. 그런 좋은 이야기가 어디 있겠나.
“그거 10시간 고민하고 있을 바에 그냥 내 훈련을 도와주는 게 어떻소?”
“시발 지금 제일 중요한 게 이거인데 뭔 소리야.”
제이슨의 시선에는 반대로 궁수가 한심해 보였다.
풀리지도 않을 문제를 몇 시간 동안 붙잡고 끙끙거리고 있다. 저 시간에 차라리 발품을 팔아 여러 사람과 대화하며 정보를 교환하는 게 이득일 것이다.
“그냥 한재중이 깨어나면 묻는 게 어떻소?”
“에이 그건 낭만이 없잖아! 혼자서 해결하는 게 멋진 거라고!”
“그건 미련한 것이라오….”
제이슨은 한숨을 푹 쉬며 고개를 저었다. 이 미련한 동지를 어찌 할꼬. 머리가 아파왔다.
“효율 따위에 집착하면 뭣도 안 된다고! 낭만이 없네 낭만이.”
“그러니까 이건 효율 이전의 문제… 오, 연락이 왔구려.”
삐리리. 바닥에 대충 누워져 있던 무전기에서 호출음이 울렸다. 조아윤이 연락용으로 쓰라며 넘겨준 물건이었다.
멀리까지도 통신이 통할 법한, 상당히 비싸보이는 물건이었다. 크기도 소형이라 들고 다니기에도 편한데다, 호출음 없이 일방적으로 한쪽에서 연결도 가능해 비밀스런 대화도 가능했다.
이런 게 왜 있냐고 물으니 조아윤은 되려 화를 냈다.
뭐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다. 이렇게 연락할 수단이 있다는 게 중요한 거지. 제이슨은 무전기를 들고 연락을 받았다.
“받았습니다.”
-어… 전갈 위치는 찾았냐?
“섭섭하구려. 안부 하나 묻지 않고 바로 본론이라니.”
-그럼 내가 너희들이랑 정답게 농담 따먹기라도 해야 하냐?
지금까지 그러지 않았나? 제이슨은 의문에 빠졌다.
“그런 거 쯤이야 나중에 다 찾을 수 있어!”
-안 찾았단 소리구만. 알았다.
조금도 기대하지 않았다는 듯 시큰등한 목소리였다.
-조건은 전과 똑같아. 모순이나 보티스, 둘 중 누구라도 같이 있는 전갈을 찾아.
“그래! 보! 보가 있는 곳을 중점으로 찾으시오! 아직 묻지 못한 게 많단 말이오!”
-뭐… 맘대로 해라.
한재중은 굳이 문제 삼지 않았다.
-그럼 용건은 끝났고. 찾으면 연락해. 제일 좋은 방법은 저 사지절단 후보자가 저격으로 대가리를 따는 거긴 한데… 이것도 알아서 판단해도 상관 없고. 그럼….
“자, 잠깐! 끊기 전에 묻고 싶은 게 있소.”
일방적으로 연락을 끊으려 하자 제이슨은 급히 그를 말렸다.
“어제 그 꼬마아이가 말한 ‘키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고 있소?”
-꼬마? 아… 헬리오스구나.
-나보다도 작던데!
조아윤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제이슨은 그 앙칼진 목소리에 무심코 웃음을 참았다.
그런 꼬마애와 키를 비교해야 하는 현실이란.
-아윤아 외견으로 판단하지마 거기서 나이 더 먹으면 너보다도 훨씬 커져.
-거짓말 하지마! 근데 오빠가 그걸 어떻게 알아?
-너도 알 걸? 아무튼… 키무라고 했나?
한재중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일본어로 김 씨 부른 거잖아. 거긴 성 씨 부르는 문화가 주류니까. 그리고 그 친구 꼬마 아니야. 나보다도 연상이다.
-…진짜? 그, 그럼 다 성장한 거잖아!
-아니 이게 또 사정이 있는데… 아, 손님 왔다. 끊는다.
“뭐, 뭣? 자, 잠깐! 여보오! 이보!”
결국 연락이 끊겼다.
“그 파리 날리는 가게에 손님이라니 특이한 일도 다 있구려. 아무튼 동지? 들었소? 자네 일본인이 아니라 김 씨라고 하오.”
“…시발 재미 없게.”
젊은 놈이 뭐그리 아는 게 많은지. 궁수는 한숨을 푹 쉬었다.
마젠타 헬리오스의 나이는 외견보다 많다. 키무라는 호칭은 김 씨를 일본어로 발음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간 수없이 고민했던 의문이 순식간에 풀려버렸다. 동시에 맥도 풀려버렸다. 궁수는 땅바닥에 대자로 뻗어 천장을 올려다 보았다.
“김 씨… 내 이름이었구나 그게.”
처음 알았다. 하긴 사람이었던 만큼 이름도 있었겠지. 그 일부인 성씨는 고유한 게 아니라 민족의 상징.
피가 이어지며 물려 받는, 평생을 함께할 꼬리표이자 피의 증거.
“나에게도 부모가 있었구나.”
궁수는 감회에 젖어 중얼거렸다.
“당연한 거 아니오? 만물에겐 부모가 있소. 나에겐 세상이 그 부모라네.”
“닥쳐 봐. 그런 얘기 아니야.”
제이슨의 능글맞은 소리에 신경질적으로 대답하고. 궁수는 다시 골목을 시작했다.
“…그럼 그 년은 날 어떻게 알고 있던 거지? 아니, 이것도 말이 돼. 나와 나이가 비슷하다면. 그래… 그렇다면…..”
한재중이 말한 기억을 찾는 방법. 그는 별빛보다 단서를 강조했다. 과거의 연과 이을 수 있는 여러 단서들이 중요하다고. 그 조각들을 찾아서 맞춰야만 비로소 과거를 떠올릴 수 있다고.
감회란 곧 그리움이었고, 그리움은 곧 과거에 대한 추억이었으며, 추억은 곧 기억이 되었다.
‘아, 떠올렸다.’
헬리오스.
들어본 기억이 있다. 그뿐만이 아니라 아예 본 적이 있다.
과거 스카이 폴라리스와 함께 괴인을 잡고 다닐 때, 그녀가 스카이 폴라리스를 향해 가르침을 달라며 따라다니길 요청한 기억이 있다.
그때 이름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해서 발음한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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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무.”
“제 이름은 한재중입니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김 씨일거라는 생각은 편견이에요.”
“고멘(미안). 칸코쿠고 시라나이(한국어 몰라).”
“아니 그럼 번역기라도 돌릴 노력을 하시지. 왜….”
조아윤은 땀을 삐질 흘리며 한재중을 쳐다보았다. 그 시선엔 한심함이 배여 있었다.
“오빠, 일본어 알아듣는 거 같은데 그냥 일본어로 대답해주면 안 돼?”
“안 돼. 로마에 왔으면 로마법을 따르듯이 한국에 왔으면 한국말을 써야지.”
그 오빠가 초딩과 진심으로 신경전을 펼치고 있다면 누구나 한심하게 생각할 것이다.
찾아온 손님은 지긋지긋한 마법 소녀들의 면면이 아니라, 웬 꼬마애였다. 아무래도 길을 잘못 들은 관광객 같다. 묘하게 냉정한 얼굴이었지만 그 속은 타들어 가고 있겠지.
낯선 땅에 언어도 모른 채 헤매게 되었으니 얼마나 불안하겠나. 자신은 일본어를 몰라 대답할 수 없지만 한재중은 꼬박꼬박 이 꼬마애의 물음에 대답을 해주고 있다.
일본어 알아듣는 거 같은데, 왜 굳이 한국어로 대답하는 걸까. 조아윤은 자신의 오빠지만 그를 이해할 수 없었다.
“아윤아, 상대가 누구라도 최선을 다해야 돼. 무례는 허투루 넘길 수 없어.”
“그 상대가 애잖아 병신아….”
“…설령 그렇다 해도.”
가끔 한재중이 병신짓을 하는 건 익숙한 일이었다. 하지만 의아한 점도 있었다.
원래 아이한테 되게 친절한 성격이었는데. 여러 고생을 겪다보니 성격이 변한 건가. 그런 거 치곤 괴인 전투 현장에서 아이를 먼저 구조하기도 했는데….
‘진짜 그냥 꼬마애가 싸가지가 없어서 저러는 건가?’
그것 참 병신 같은 이유네. 하지만 합리적인 이유기도 하다.
조아윤도 상대가 꼬마애라고 한들 무례를 당했으면 돌려주는 성격이었다. 일본어를 몰라 알아듣지 못한 대화 속 어떤 비예의적 발언이 섞여 있을지 모를 일이었다.
“쟈(그럼)….”
“으아아아아아!!!”
그때쯤 누군가가 우다다다 뛰어오더니 문을 거칠게 열었다, 딸랑거리는 도어벨이 시끄럽게 울려 마치 경보음처럼 들릴 정도였다.
“코노 쿠소가키(이 망할 애새끼가)!”
오토나시 하루. 조아윤이 유일하게 알고 지내는 일본인이었다.
그녀는 재빨리 이 꼬마애를 낚아채곤 닦달을 시작했다. 전부 일본어라 조아윤은 알아듣지 못했다.
“갑자기 튀어나가다니 무슨 생각이야!”
“그냥… 신경 쓰이는 게 있어서….”
“니가 사라지면 선배들에게 내가 존나 혼난다고!”
‘뭐라는 거지….’
조아윤은 눈살을 찌푸리며 대화를 청해하려 노력했지만 전혀 알 수가 없었다. 하루가 대단히 화를 내는 걸 보니, 갑자기 사라져 걱정했다며 꾸지람을 주는 것 같았다.
‘하루의 지인이었구만… 저렇게 소리지르는 걸 보면 걱정 꽤나 한 모양이네. 하긴 쟤도 마법 소녀니까. 아이의 위험에는 예민하겠지.’
그래도 인간적인 감정이 남아 있긴 했구나. 조아윤은 따스한 시선으로 하루를 지켜보았다.
“이 망할 꼬맹아! 니가 알아서 좇되는 건 상관 없는데 내가 있을 땐 좇되지 마! 내가 책임져야 하잖아! 여기서 더 월급 깎이긴 싫어!”
“니가 왜 마법 소녀인지 나는 참 신기해.”
그와 반대로 한재중의 표정은 점점 차게 식었다.
‘역시 내 최애캐야. 제발 픽션에서만 보고 싶은 걸.’
현실로 만나니 머리가 어지럽다.
“다행히 여기에 온 거라 망정이지….”
“아는 데야?”
“그럼~ 내 절친과 형님이 운영하는 데거든.”
“…형님?”
“진짜 다행이야. 여기 직원들은 너와 달리 사람이 착해서 웬만한 지랄은 다 넘어가거든! 하하핫. 좋은 호구들이야!”
“친한 거 맞지?”
“그럼 이런 소리 들어도 농담으로 넘길 정도로 친하니까 이러지.”
어쭈, 한재중은 가소롭단듯이 웃었다.
“그러면 한번 물어봐 줄 수 있겠어? 이곳에 괴인이 있는지에 대해서. 그리고 목이 좀 마르네. 여기의 스페셜 티를 마시고 싶어. 저기 디저트도 괜찮겠네. 서비스로 곁들어 달라고 해.”
“어… 음… 그건….”
“곤란해? 친한 사이 아니었어?”
“무, 물론 친한 사이지! 내가 바로….”
“손님?”
가만히 둘의 이야기를 듣던 한재중이 입을 열었다.
“저희 가게는 과거 괴인에게 습격당한 적이 있긴 합니다만 현재는 없습니다. 안전함을 보장할 수 있으니 안심하시고 머물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엑.”
“그리고 스페셜티는 준비해드리겠지만 서비스로 케이크를 드릴 순 없습니다. 이 또한 주문 부탁드립니다.”
유창한 일본어. 하루는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한재중을 보았다.
“…일본어 할 줄 알아요?”
“응 나 씹덕.”
“아~”
그러면 인정이지. 하루는 수긍했다.
연신 고개를 끄덕이던 하루는 갑자기 비장한 표정으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곤 두 손을 만세 자세로 들고, 그대로 상체를 숙여 땅바닥에 딱 붙였다.
“죄송합니다 행님!!!!!”
“호구라니 말이 심하네 하루야.”
진짜 얘를 어떻게 교육해야 할까. 한재중은 한숨을 푹 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