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nsform or death RAW novel - Chapter 2
Chapter 2 – 첫 번째 변신
[변신하십시오.]내가 대답 없이 눈만 꿈뻑거리자 쇠 공은 친절하게도 했던 말을 되풀이해주었다.
말 없이 구해주길래 구원자인 줄 알았건만 내 존엄의 파괴자인 모양이다.
변신이라니. 마법 소녀들이 하는 그거 말인가.
‘그걸… 나보고 하라고?’
갑자기?
“그거 안 좋은 생각 같은데.”
수요가 도대체 어디 있는 거지.
물론 내 몸이라 아니라 이렇게 왈가왈부 판단하는 게 실례이긴 하다.
그럼에도 내 생각은 변치 않는다. 결국 시커먼 남정네 몸이지 않는가. 그거에 하늘하늘한 드레스를 입혀서 뭐가 좋다고.
쇠 공은 꿋꿋하게 외쳤다.
[변신하십시오.]무기질적인 목소리로 듣는 종용은 어떤 오싹함 마저 느끼게 했다.
[변신하여 전방의 괴인을 처리하십시오.]이 목소리에 정신을 팔고 있자. 이 변신 집착물에게 맞아 쓰려져 있던 괴인이 다시 일어나기 시작했다.
“크르륵….”
육중한 덩치가 퍽 위협적이었다. 밤조차도 집어삼키지 못한 그림자가 내 얼굴에 점차 드리워졌다.
목이 매달렸을 때와 똑같게도, 몸은 거세게 생명을 탐하였다. 수축된 근육과 흐린 시야, 알싸하게 퍼지는 복부의 고통을 참아내고 어떻게든 살아나갈 길을 찾아나가기 시작했다.
[불응할 경우의 대가는.]쿵쾅거리는 심장이 시끄러웠다. 쇠 공의 무기질적인 목소리와 심장보다 더 쿵쾅거리는 괴인의 발걸음 소리가 그것과 합쳐지며 말로 자아내지 못할 긴장을 선사했다.
[죽음입니다.]“하….”
난 넋을 잃은 사람처럼 히죽 웃었다. 이젠 살다 살다 무기물에게 살해 협박도 당해본다.
오자마자 반겨준 건 밧줄이었고, 가장 먼저 접촉한 건 괴인이었으며, 최초로 말을 한 상대는 쇠 공이었다.
어느 하나 날 죽이지 않으려는 게 없었다.
여긴 내가 살던 ‘현실’이 아님을 절절하게 깨달았다.
괴물이 있고 히어로가 있으며 죽을 위기가 빈번한 미친 세계임을.
괴인에게 맞아 죽나 쇠 공에게 맞아 죽나 그게 뭔 차이겠나. 지금 눈에 보이는 살 길은 하나 밖에 없었다.
그래, 살기 위해서는 인간의 존엄 쯤이야 가끔 내버릴 수도 있는 거지.
괴인은 조금의 기다림도 없이 시시각각 날 다져 버리기 위해 다가오는 중이었고, 쇠 공은 내 응답을 기다리듯이 침묵하였다.
그 기묘한 침묵 속에서 난 숨을 들이키고 마음 속 응어리진 거부감과 함께 뱉었다.
“오냐, 까짓 거 한다. 변신.”
[승인되었습니다.]말을 내뱉기 무섭게 쇠 공에 작은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 균열 사이론 붉은 빛이 새어 나왔고, 쇠 공은 하얗게 변색 되었다.
괴인이 주먹을 들어 올렸다. 사람 정도야 금방 다짐육으로 만들기 충분한 주먹이었다.
균열을 따라 쇠 공이 펼쳐졌다. 이젠 그것은 더 이상 공이라 부르지 못할 생김새였다. 공이라기 보단…….
벨트의 버클.
패션용 벨트가 아닌 장난감이나 어디 sf영화 같은 데에서 나올 디자인의 벨트. 딱 그런 생김새였다.
그 버클이 허리에 다가왔다.
촤라락. 철이 허리에 감기는 소리와 함께 쇠 공은 완전히 벨트가 되었다.
‘아, 이거 아무래도….’
예상한 변신과는 조금 결이 다른 거 같다.
벨트가 채워진 그 순간, 내 뇌에 청사진이 떠올랐다. 기억 기관에 직접 설명서를 꽂아 넣는 기분이었다.
무슨 행동을 해야 이 벨트를 사용할 수 있을 지 머리에 지도가 생겨났다.
그렇게 그려진 지도를 따라 팔을 움직이고 벨트에 손을 올렸다.
휘익─!
바람이 찢어지는 소리가 들려 왔다. 괴인이 주먹을 휘둘렀단 신호였다.
어느새 주먹이 코 앞까지 다가왔지만.
조금의 위기감도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미약한 고양감 마저 느껴졌다.
터질듯한 심장 소리를 내 변신음 삼아, 난 중얼거렸다.
“변신.”
[ASTRONOMICAL OBSERVATION.]주먹이 내 시야 전체를 가리는 그 때. 내 눈에 보인 건 그림자가 아닌, 빛이었다.
천체 관측.
벨트에서 흘러나온 말의 뜻처럼, 천체들이 눈에 아른거렸다.
두 눈에 흐르는 건 아득한 일곱 개의 별. 북쪽 바다를 퍼 올리기에 합당한 모습의 별자리.
[THE BIG DIPPER.]별빛은 하늘이 아닌 내 손 안에서 반짝이었고, 이내 발산 되었다.
폭발.
섬광탄이 터진 것처럼 소규모의 빛이 고밀도로 내뿜어 지고, 그 빛에 지지 않을 충격이 주변을 휩쓸었다.
범위 안에는 괴인도 있어 아까 내가 그랬던 것처럼 도로를 뒹굴었다. 그와는 반대로 난 일어서 그걸 향해 걸어갔다.
방금 전과 완전히 반대된 상황.
폭발의 여파로 먼지 구름이 도로에 안개처럼 피어 올랐다.
그 안개 속에서 빛이 일었다. 아까 보았던 일곱 개의 둥근 별들. 내가 관측한 내 힘의 근원들.
그것들이 불꽃 놀이처럼 튀어 오르더니 부메랑처럼 다시 나에게 돌아와 몸을 감쌌다.
러너스 하이처럼 머리 끝까지 차오르는 엔돌핀의 달콤함과 고양감. 굳이 움직이지 않아도 느껴지는 강인한 힘과 체력.
먹은 게 없어 비실거리는 몸 따위 이 곳엔 없었다.
‘변신이 이 변신이었구나.’
여자로 바뀐다는 끔찍한 일 마저 각오했었는데, 다행히 그 각오가 조명 될 일은 없어 보였다.
건물 유리창에 비친 내 모습을 살펴 보았다.
녹색의 갑주를 입은 거한이 유리 속에 있었다. 인간의 피부는 조금도 보이지 않으며 스판덱스 같은 재질로 보이는 가죽이 갑주가 미처 가리지 못한 몸 사이사이를 채우고 있었다.
어릴 적 TV 앞에서 자주 보았던 변신 히어로물의 주인공. 혹은 변신 로봇.
꼭 그런 모습이었다.
물론 지금 이 세계의 미적 감각으로 판단하자면 영락없는 괴인의 모습이었지만.
‘유치하네….’
쓸데없이 멋으로 만든 장식이 많고, 움직일 때의 효율도 좋아 보이지 않는다. 육중해 보이는 갑옷은 경량화를 추구하는 현대 세대에 충분히 시대 착오적이었다.
‘그래서 멋있는 거지.’
그렇기에 더욱 멋있었다. 로망이 왜 로망인가.
현실적인 고민들을 뛰어 넘기에 로망이다.
난 헬멧 속에서 씨익 웃었다.
겉모습은 걱정한 것에 비해 대단히 만족스러웠다. 당장 밤거리에 나가 번호도 딸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을 얻었다.
[변신에 성공하였습니다.]벨트가 된 쇠 공은 여전히 무기질적인 목소리로 날 재촉했다.
[수호자여, 괴인을 쓰러뜨리십시오. 모든 보조는 제가 해드리겠습니다.]이제 진짜 뒤가 없다.
‘한재중 씨 죄송합니다.’
오늘 처음 들어온 당신 몸을 좀 막 굴리게 되었네요. 하지만 어쩔 수 없잖아요. 아무리 몸이 바뀌어도 살긴 살아야죠. 그러게 자살은 왜 했습니까.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된다. 군대에서도 겪지 못한 미친 상황이.
침을 꿀꺽 삼켰다. 오자마자 자살 소동에 휘말린 데다 이젠 변신 까지 해서 저 괴인 놈과 진실된 의미로 다이다이를 뜨게 되었다.
“하하…”
어이 없음에 웃음을 머금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 따라 자주 웃기도 하였다. 명랑한 건 좋은 일이지.
고양감과 긴장감, 동심을 주먹에 휘감고 꽉 쥐었다. 시선은 괴인에게 고정시키고 돌리지 않는다.
“크르륵….”
자신이 당한 게 뭐 그리 굴욕적이었는지 이를 가는 괴인 다리가 팽창했다.
팡!
도로에 커다란 발자국을 남기며 달려오는 괴인. 아까의 속도완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눈으로 쫓는 게 고작일 정도였다.
허나, 위협적이지 않았다.
“크륵!”
옆으로 두 발자국 정도 걷자 쉽게 피해졌다. 괴인은 관성에 따라 계속 앞으로 향했다.
등이 훤히 비워졌다. 이번엔 내가 달려가 다음 쥐었던 주먹을 그대로 그 맨들 거리는 가죽에 꽂아 넣었다.
퍼억!
경쾌한 타격음과 함께 괴인이 도로를 굴렀다.
그대로 죽었으면 좋았을련만. 놈은 끈질기게 일어나서 다시 나에게 달려 왔다. 별 다른 특수 능력도 없는 허접한 개체.
이번엔 허리를 살짝 뒤로 굽히는 것만으로 피한 다음 그 반발력을 이용해 발로 턱을 차 올렸다.
빠악!
입 안이 다 짓이겨졌는지 끈쩍한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지금이 기회다. 난 멈추지 않고 옆구리에 돌려 차기를 먹여 주었다. 가죽을 찼는데도 솜을 찬 것처럼 움푹 들어갔다. 놈은 다시 피를 토하곤 멀리 날아갔다.
‘신기하네.’
다음 무엇을 해야 할 지 눈에 훤히 보였다.
내가 무슨 전설적인 격투기 챔피언도 아니고, 이런 생사결(生死決)에서 이 정도의 여유와 판단력이 있을 리가 없는 데.
[그것이 저의 보조입니다. 실시간으로 적의 동향을 분석하며 최적의 움직임을 뇌에 전달하는 중입니다.]또 놀랄만한 건 이 힘.
‘역시 칠성(七星)급이란 건가?’
마법 소녀 전성기에선 각자에게 부여된 별의 밝기와 수에 따라 힘의 크기가 결정 된다.
모든 마법 소녀는 별 한 개 분량의 힘을 다룰 수 있다. 또 그 별의 이름과 빛의 색에서 이름을 따 변신명을 결정 짓는다.
대부분이 실제로 있는 별에서 유래되지만 마법 소녀의 힘과 실제 밝기는 별 상관이 없다.
일등성에 관계 없이 그들은 자신의 별을 갈고 닦으며 힘을 키울 수 있다.
아무튼.
내가 본 별의 숫자는 총 일곱 개.
벨트가 뱉은 음성만 봐도 내가 관장할 수 있는 힘은 틀림 없는 칠성이었다.
단순 계산으로만 따져도 마법 소녀 일곱 명 분량의 힘이었다. 심지어 나중에 더 키울 지도 모를 힘.
‘사치스럽네.’
얻고자 한 의지 하나 없이 얻은 힘치곤 너무나 방대했다.
빠악!!!
괴인의 몸이 땅에 닿은 시간보다 하늘에 떠 있는 시간이 길어졌을 무렵.
난 강하게 그 놈의 배를 차 올렸다.
가로등이 다 꺼져 달과 별이 찬란하게 장식된 밤에, 괴물 한 놈이 새롭게 장식되었다.
평소엔 상상조차 못한 힘이었다. 그러나 아직 여력이 남아도 한참 남아 있었다.
몸을 굽히고 허리를 돌리고 시점을 다 잡았다. 언제라도 떨어지는 그 괴인에게 주먹을 꽂을 수 있도록.
벨트가 뇌에 그려 넣은 길 중 하나를 잡아 채고, 그걸 따라갔다.
괴인을 죽이기 위한 여러 길 중 하나.
마지막을 위한 기술.
[SET. 역성(逆星).]주먹에 아까 보았던 별의 색과 비슷한 녹색의 휘광이 휘감아졌다.
바둥거리며 떨어지는 괴인을 향해, 그걸 꽂아 넣었다.
역성(逆星).
거꾸로 올라가는 별.
그 이름처럼 별빛은 하늘에서 땅이 아닌 땅에서 하늘의 방향으로 흘렀다.
콰앙!
유성은 떨어지지 않고, 오히려 용솟음 쳤다.
위로 곧게 뻗은 주먹은 괴인의 몸을 산산히 조각 내고 자그만 폭발을 일으켰다.
[역성(逆星) 발현 성공. 재현율 50%. 괴인 격파.]겨우 반절의 위력만 냈단 게 신경 쓰이지만. 결국 괴인은 격파하는 데 성공했다.
“후우….”
풀리는 긴장감에 한숨을 푹 뱉었다. 이걸로 이제 변신하라며 살해 위협을 받을 일도 없겠지.
벨트야 이젠 자연에 나가서 자유롭게 살렴.
아무리 힘이 강해도 보상 없이 전투하는 미친 짓은 하긴 싫다.
그렇게 벨트에 손을 올려 변신을 해제하려 한 때.
[변신을 해제하는 행위는 추천되지 않습니다.]뭔 소리야.
[이 곳을 향해 마법 소녀가 빠르게 접근 중입니다. 변신을 해제하지 마십시오. 반복합니다. 변신을 해제하지 마십시오.]마법 소녀? 그러면 더욱더 해제해야지. 겉모습이 겉모습이라 오해 받기 딱 좋을 거 같은데.
[새로운 퀘스트 갱신.]“누구죠?”
벨트의 목소리와 밤 속에서 들려오는 여인의 목소리가 겹쳤다.
눈을 돌리니 팅커벨이 내뿜는 것만 같은 빛 무리를 둘러 쓰고 날아오는 여성이 보였다.
마법 소녀다.
[전방의 마법 소녀를 쓰러뜨리십시오.]“거, 거기 생존자이신가요?”
전투가 끝난 지 얼마나 되었다고 다시 심장이 크게 뛰었다. 덕질하던 상대를 현실에서 만난 기쁨 탓이었을까. 아니면……
[불응할 경우의 대가는 죽음입니다.]“…?! 괴, 괴인?”
그냥, 속이 답답하기 때문일까.
빙의자 이대로 가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