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nsform or death RAW novel - Chapter 23
Chapter 23 – 수호의 의미 (1)
신성의 전조.
그 빛은 신성이라 부를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장대했다. 조명을 받은 빙하처럼 차갑고도 푸르게 그것은 반짝였다.
어떤 북부 마을의 축제와도 같았다.
하지만 블루 시리우스의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피가 차게 식는단 감각이 무엇인지 오랜만에 느껴보았다.
분노는 평소 이상의 힘을 낼 좋은 동기였다.
그 분노가 사랑으로 출발했다면 더욱더.
주변의 풍경을 희미하게 만들던 먼지 구름마저 눈폭풍이 되어 차갑게 공기를 식혔다. 그 서리 바람 속에서 블루 시리우스의 머리카락이 서늘하게 휘날렸다.
“재중아… 금방 구해 줄게. 기다려.”
쩌저적!
그녀가 한 발자국 움직이자 그곳을 중심으로 거대한 눈 결정 모양의 얼음이 생겨났다. 눈 결정 모양의 얼음은 점차 본래의 모습에서 벗어나더니 칼날 같이 뻗어 나갔다. 흉흉한 얼음의 날들이 모순의 발을 찔렀다.
그 감각을 느끼며 모순이 흥미롭단 듯이 웃었다.
“하하하! 저정도면 거의 6성급이군요! 리브라, 당신과 비슷한 정도 아닙니까?”
“닥쳐라. 지금의 난 별의 개수에 얽매이지 않는다”
“맞다. 그러셨군요.”
모순은 다시 클클 웃곤 손바닥을 폈다. 멀리 튕겨져 나갔던 창이 다시 그의 손으로 날아 복귀했다.
길었던 손잡이가 진압봉을 수납하는 것처럼 봉 안에 봉이 들어가며 짧아졌다. 창의 날은 반대로 접혔다. 이상의 과정을 통해 본래의 모습인 방패가 되었다.
“그러면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뭐?”
리브라가 되묻고, 블루 시리우스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왜 그러시는 거죠? 방금 당신이 말하지 않았습니까 떨어지라고. 그 말 그대로 해주는 거 뿐인데 뭐가 문제입니까.”
모순은 방패에 묻은 먼지나 서리를 툭툭 털어내며 말을 이었다.
“게다가 당신 둘이서 별 하나 씩 아닙니까. 완벽한 균형인데 제가 참견할 이유가 없죠.”
“보내 줄 거 같아?”
“안 보내주면 지금 이 남자를 죽일 텐데요?”
붉은색의 강철 구두를 들었다. 그 다음 바로 다시 아래로 내렸다. 구두는 한재중의 볼을 스치며 땅을 짓밟았다. 명백한 위협이었다.
블루 시리우스가 세검을 빠르게 뻗었다. 얼음 창이 발사 되었다. 끓고 있는 속을 식히기 위한 얼음 조각이었다. 모순은 부드럽게 허리를 굽히며 그것을 피했다. 아까까지 얼굴이 있던 자리에 고드름이 지나갔다.
“죽고 싶어?”
“죄송합니다. 양해를 좀 해주시죠. 저에게 특출난 이동 능력은 없습니다. 당신이 쫓으면 원치 않는 싸움을 해야 된단 말입니다. 해봤자 빠르게 달려가는 거 뿐이니까요. 음? 아니군요… 철회하겠습니다.”
모순은 새로운 가설을 떠올렸단 듯이 밝게 웃었다.
“하하, 굳이 도망칠 양해를 구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푸르던 그의 한쪽 눈이 붉게 물들었다. 완벽한 균형을 이르게 된 것이었다.
모순원리가 작동되었다.
능력을 복사했다.
어느새 그의 어깨엔 황금 천칭이 생겨났다. 리브라의 별을 복사한 것이었다.
“이렇게 하면 되었군요. 이거 정말 미안합니다.”
모순은 고개를 꾸벅 숙였다. 블루 시리우스의 방향이 아니라 한재중의 방향이었다. 그의 머리 위에서 모순은 작게 속삭였다.
“나중에 다시 한 번 붙어보죠. 그 땐 당신의 전력을 볼 수 있게 기대하겠습니다.”
사경을 헤매는 사람에게 설교도 해주고 격려도 해주고 참 상냥하게 지랄을 하는구나. 한재중은 허허 웃었다.
모순은 굽혔던 허리를 피고 이번엔 블루 시리우스에게 인사를 전했다.
“다음엔 일 대 일로 만납시다.”
간접적으로 전한 전투의 예고였다. 블루 시리우스는 이제 교전을 피할 수 없겠지. 인사를 전한 모순의 어깨 위로 둥근 구체 하나가 올라갔다. 방패자리의 별 중 하나였음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거래는 성립되었습니다.”
철컹. 그 말과 함께 모순의 어깨에 올려진 천칭이 수평이 되었다.
붉고 푸른 연기가 흩뿌려졌다. 전에 리브라가 행한 것처럼, 거래를 이용한 순간 이동이었다. 그 대가가 별 하나란 점에선 상당한 불공정거래라 볼 수 있겠으나, 이후 모순의 능력을 고려하면 큰 피해는 아니었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며 별빛도 회복한다.
“여러분, 안녕히.”
그렇게 모순은 태연히 모습을 감췄다.
“진짜 갔군 미친놈.”
남은 건 리브라 하나. 블루 시리우스는 와락 표정을 구겼다.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고 유유히 떠나다니. 상당히 불쾌했다.
하지만 불쾌함은 잠시 접어두었다. 아직 할 일은 남았다.
분노는 끝나지 않고 타올라 세상을 얼렸다.
블루 시리우스는 들고 있던 세검을 움직였다. 촤라락. 리브라와 한재중 사이로 푸른 검풍이 지나갔다. 그 검풍을 따라 얼음의 장벽이 세워졌다.
“그 놈을 찢어 죽일 수 없던 건 아쉽지만…..”
모순을 놓친 건 아쉽긴 했다. 그러나 지금은 놓친 걸 생각할 때가 아니었다. 어느새 바닥은 전부 빙판이 되었다. 구둣발 아래에는 얼음으로 스케이트화 같은 얇은 칼날을 만들었다.
한재중을 보호한 이후, 블루 시리우스는 바로 리브라에게 달려들었다.
“그래도 넌 남아서 참 다행이네.”
분노로 차게 얼려진 칼 끝은 리브라에게 고정되었다. 블루 시리우스는 그대로 손을 뻗어 허공을 찔렀다. 굳이 리브라에게 닿을 필요는 없었다.
설화일로(雪華一路).
반짝이는 눈길이 그를 덮쳤다. 눈이 멀 것 같은 빛으로 된 길이었고, 검이었다. 미사일 같은 질량의 얼음 폭풍이 그 길을 지나는 모든 걸 난도질했다.
“으음…!”
리브라는 유사 신성 특유의 고속 이동으로 공중으로 뛰며 그걸 회피했다.
“재중이 한테 한 것 만큼은 당해줘야지.”
블루 시리우스가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공중으로 뛴 리브라에게 옅은 그림자가 드리워 졌다. 마치 얇은 유리를 햇빛이 관통한 듯한 그림자였다.
환영상검(幻影霜劍).
쌍성의 분신은 적이 뒤를 찌르기에 무엇보다 적합하다. 유리조각 같은 얼음의 분신이 다시 한 번 검을 휘둘렀다. 설화일로 이연격.
콰아앙!
두 번째의 설화일로는 제대로 리브라에게 적중했다. 믹서기에 갈리는 듯한 충격을 정통으로 느낀 리브라는 고통을 참으며 주먹에 별빛을 모았다.
준비가 완전해 지자 조금의 지체 없이 그 주먹을 휘둘렀다.
귀광집행(貴光輯行).
누구나 욕망을 불태울 법한 황금 빛의 거대한 창이 얼음을 밀어 버렸다.
태양빛이 잠시 지워질 만큼 압도적인 열선이 하늘에 솟구쳤다. 그 존재감 탓에 블루 시리우스는 시선을 빼앗겼다. 아주 조금의 지체가 일어났다.
땅에 착륙한 리브라는 그대로 다시 주먹에 황금빛을 모았다. 이번엔 한 손이 아닌 두 손이었다. 시선의 방향은 블루 시리우스가 아니었다.
신성. 그 폭력적인 폭발의 빛이 응집되었다. 언제라도 밖에 튀어나올 것처럼 매우 밀도 높게. 그의 두 주먹 위로 아주 작은 두 황금빛 원반이 부유했다.
리브라는 그 두 원반을 때렸다.
방향은, 한재중을 향해.
천권낙분(天權落紛).
하늘의 저울이 떨어지니, 만사가 어지럽구나.
하늘에서 별이 떨어지는 듯 했다. 다른 게 있다면 떨어지는 게 별이 아닌 별빛으로 된 파괴란 점, 또 하나는 떨어지는 방향이 위에서 아래가 아닌 좌에서 우란 점.
중력이 집행되지 않는 방향에서 중력을 받은 것처럼 빠르게 빛이 이동했다. 궤도 안에 누구 하나 생존을 용납하지 않는 폭력이 집행되었다.
“대의를 위해 희생해라!”
지금 이 순간 한재중의 몸은 아직 사경 안이었다. 움직이기엔 터무니 없이 약했다. 얼음 벽은 광선을 막기엔 너무나 얇아 보였다. 이동도 방어도 불가능한 순간.
죽으면 안 된다. 그 생각만이 가득했다. 두려움이 있었다. 본능 이상의 공포였다.
그의 시야 한 켠에서 푸른 별빛이 흩날렸다. 찰나 동안 그곳을 돌아 보았다.
별을 보았다.
아름다운 푸른 별을.
[ASTRONOMICAL OBSERVATION.]압도적인 황금빛이 다른 빛들을 지워나갈 때에도 그에겐 그것만이 생생히 보였다.
죽으면 안 된다.
지금 여기서 죽으면 그녀에게 평생 씻어내지 못할 상처를 입히게 된다.
단 한 순간만이면 충분했다. 빛으로 누구 하나 할 것 없이 눈이 멀었을 때, 그 조금의 시간 만큼만 제 몸을 방어할 수 있다면.
“안 돼!”
블루 시리우스가 세검을 휘둘렀다. 분신과 양 방향에서 동시에. 두께가 3m는 될 법한 얼음 장벽이 빛이 향하는 길을 가로 막았다. 처절한 저항이었다. 그러나 무의미 했다.
신성에 한 없이 가까운 별이 한계까지 응축되어 쏘아진 것이다. 아직 그 모든 빛을 막기엔 한 발자국 부족했다. 얼음 벽이 사탕처럼 녹고 파편화 되어 흩어졌다.
빛이 한재중의 눈 앞까지 다가왔다. 위력은 조금 죽었지만 사람 하나를 녹이기엔 충분했다. 시야가 새하얘졌다. 공포가 다가왔다.
결의도 함께였다.
순간 모순의 말이 떠올랐다.
별에 지배 당하느냐, 선택 당하느냐.
욕망과 의무 둘 중 무엇을 짊어질 것이냐.
자신은 그 둘 다 아니었다.
[THE BIG DIPPER.]빛이 닿기 바로 직전 녹색의 갑주가 몸을 감쌌다. 왠지 모르겠지만, 어딘가 균열이 가 있었다.
[ORIGIN.]콰아아앙!!!!
동시에 빛이 몸을 덮쳤다.
그것이 한재중의 의식의 마지막이었다.
빛이 휩쓸고 간 자리엔 생명이 하나도 남아 있을 수 없는 듯했다. 아스팔트 길이 다 녹아 매케한 냄새가 났다. 화염으로 길이 자욱했다. 스치지도 않고 단순히 주변에 있던 것 만으로 붕괴된 건물들의 조각들이 길을 장식했다.
빛이 있었고, 어둠이 도래했다. 녹고 붕괴되며 일어난 연기들은 시야를 다른 의미로 가렸다.
“재중아!”
블루 시리우스가 혼비백산 하여 그곳을 향해 뛰었다.
주변의 장애물들을 얼리고 치워 나가며 빛이 다다른 끝을 향해 뛰었다.
리브라는 어느새 모습을 감춘 뒤였다.
“제발… 하느님… 나한테 이러지 말아주세요… 제발….”
목소리에 가득 어린 물기가 그녀가 지금 느끼는 고통을 짐작하게 해주었다.
[수호자, 진정하세요.]“지금 무슨 상황인지 안 보여?!”
평소엔 절대 화내지 않는 마스코트에게까지 언성을 버럭 높였다.
연기가 점차 걷혀갔다.
[근거가 있어서 하는 말입니다.]충성스런 강아지의 모습을 한 마스코트가 조금의 흐트러짐 없이 말을 이었다.
연기 안에선 재가 아닌, 사람의 형태가 드러났다. 빛이 떨어진 모든 길이 녹아내렸는데, 사람 하나 만큼은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생명 반응이 감지됩니다.]곳곳에 상처가 가득했지만 시체는 아니었다.
[아직 살아계십니다.]그가 살아 있었다.
**
어두운 무의식 속에서 한재중은 따스한 감촉을 느꼈다. 악몽을 꿨을 때 느끼던 감촉이다. 가족을 전부 잃을 당시의 풍경이 꿈에 나와 괴로워 하고 있을 때, 누군가 이렇게 손을 잡아줬었다. 연인이었다.
왜일까.
지금 그는 가족의 얼굴도 연인의 얼굴도 기억할 수 없었다. 다들 헤어진지 오래되어 기억에서 휘발 된 걸까. 이에 슬픔을 느끼며 이름을 더듬어 봤다.
“설화야….”
눈이 번쩍 뜨였다. 드디어 미친 건가. 그 이름이 왜 나오는 건지. 식겁하여 한재중이 일어났다.
“설화가 아니라서 미안하게 되었습니다.”
빈정거리는 목소리. 그 발원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핑크… 데네브…?”
“다시 보네 아재.”
목 까지 내려오는 분홍색 머리, 앉았음에도 훤히 보이는 작은 키, 그 키 만큼 작고 부드러운 손, 그 손은 한재중의 오른손에 이어져 있었다. 눈을 사로잡는 건 그녀의 외모만이 아니라 복장이기도 하였다.
평소에 입고 다니긴 힘들 거 같은 흰 색과 분홍 색이 혼재 된 드레스와 어깨를 타고 흘러 내리는 선녀의 날개옷.
일상적이 모습이 아니라, 변신한 모습이었다.
“나라서 실망 많이 했냐?”
보드라워 보이는 옷과 달리, 그녀의 태도는 썩 온순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