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nsform or death RAW novel - Chapter 24
Chapter 24 – 수호의 의미 (2)
그녀가 왜 여기 있는 거지.
한재중은 당황하며 누워 있던 상체를 일으켰다. 뜨거운 통증이 등줄기를 타고 올라오지만 적당히 버틸만 했다.
환자의 몸으로 일어나자 핑크 데네브가 기겁을 했다.
“일어나지 마 미친놈아! 다쳤어!”
“아니 사람 응대는 해야지….”
“아까까지 쳐 자고 있던 놈이 뭔 응대야! 눕기나 해! 상처 벌어질라!”
핑크 데네브는 한재중의 어깨를 잡고 그대로 밀었다. 힘이 없던 한재중은 그저 침대 위로 몸을 떨어뜨릴 뿐이었다. 잡힌 곳이 퍽 아팠다.
“지금 만지는 게 상처 더 벌어지지 않냐…?”
“내 손길은 상냥해서 괜찮아. 마법 소녀가 만져준 거니까 마법적인 힘으로 낫겠지.”
“너 치료 능력 없잖아… 정보 탐지 및 기동이 장점인 사람이 무슨 개소리를… 아악.”
한재중의 핀잔은 데네브가 다치지 않은 쪽의 살을 꼬집는 걸로 종료되었다.
“회복이 참 빠르기도 하네. 혀 돌아가는 솜씨가 쳐 맞아서 죽을 뻔 했던 사람이라곤 믿기 어려울 정도야.”
하긴 사경을 헤맨 사람 치곤 정신 차리는 게 빨랐다. 한재중은 자신 말고도 이런 사례를 알고 있었다.
다름 아닌 마법 소녀의 회복 속도.
별을 가진 자의 외상 회복 속도는 일반인과 궤를 달리 한다. 웬만한 전투 후엔 굳이 병원을 갈 필요도 없다. 집에서 응급 처치를 한 것 만으로 충분히 낫고 바로 그 다음 날에 활동이 가능하다.
한재중은 자신도 그런 케이스일 것이라 생각했다.
“이제 막 깬 사람 괴롭히는 너도 대단하지.”
“괴롭히다니 무슨, 지금 지고지순하게 간병을 하고 있잖아?”
“너 지고지순 뜻 모르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는 제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의식을 잃기 전 겪은 일들을 정리해 보았다. 모순과 리브라의 전투, 블루 시리우스의 참전, 방어를 위한 재변신….
금이 갔던 갑주들, 벨트가 내뱉은 변신음.
오리진.
‘그건 또 뭐야.’
[어렵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말 그대로 근원입니다. 수호자가 가진 기원에 근거한, 본래 취했어야 할 모습입니다.]착용자가 너덜거리는 것에 비해 벨트는 상처 하나 없이 멀쩡했다. 병실 탁자 위에서 말을 걸어오는 벨트를 곁눈질 한 다음 한재중은 생각에 잠겼다.
근원.
물줄기가 흐르기 시작한 곳. 사물이 비롯되는 첫번째 원인.
한재중의 경우엔 그 단어가 사용될 곳이 하나 밖에 없었다.
변신 아니면 없었다.
근원이란 첫 변신에 가졌던 마음 가짐.
즉. 재현해야 할 이상.
‘오리진은 그 단계에 도달했을 때 나오는 모습이란 건가.’
자신은 수호자.
무엇을 수호해야 하는가.
오리진이 발동 된 걸 보니 지금의 자신은 이 답을 알고 있단 뜻인가. 하지만 아직 짐작 가는 바가 없는데?
‘돌겠네….’
머리가 복잡했다. 이것만 아니라 신경 써야 할 게 한 두 개가 아니었다. 정체가 들켰는 지에 대한 여부도 궁금했고, 시리우스의 상태도 궁금했다. 자신의 정체에 대해선 말할 것도 없었다.
침대 위라 몸이 편해져서 그런가. 고뇌가 끝도 없이 쏟아졌다.
“갑자기 또 말이 없네. 삐졌냐?”
“그거 들었다고 삐졌겠니. 그냥 생각할 게 많아서….”
“생각할 거? 뭐?”
덜컹거리는 소리. 의자가 넘어졌다.
데네브가 일어났다. 어디 가는 게 아니었다. 다가오는 것이었다. 그녀는 침대에 한 쪽 무릎을 올리고, 점차 얼굴을 가까이 했다. 아무 이유 없이 장난을 치는 고양이 같은 태도였다. 그녀는 날카로운 미소와 함께 작게 귀에 목소리를 불어 넣었다.
“나 한테 자연스럽게 반말 쓰는 거?”
그게 뭐가 잘못 된 건지 한재중은 한참을 고민했다.
“이제 우리 모른다는 구라는 안 하는 걸로 마음 먹었어?”
“아하 그거?”
그제야 한재중은 자신이 핑크 데네브를 태연하게 지인 취급했단 사실을 깨달았다. 머리가 인지하기 전에 몸이 행동했다.
조아윤. 희미한 기억에 따르면 남매처럼 편하게 지내던 사람. 이 몸이 익숙한 건지 아니면 내가 기억이 없음에도 익숙했던 건지. 반말이 오랜 기간 동안 어울렸던 사람을 대할 때처럼 자연스러웠다.
“그건… 당신 먼저 반말을 하니까….”
“정말? 그런 거 치곤 너무 자연스럽던데.”
“그렇긴 했지.”
한재중이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했다.
“진짜 나 몰라…?”
데네브가 특유의 분홍색 눈을 들이대며 물었다. 눈을 어디에 돌려도 그녀만 볼 수 있도록. ‘내 눈 똑바로 보고 말해’라고 말하는 듯한 압박감이 느껴졌다.
특유의 거친 인상과 귓가에서 보이는 은색 피어싱은 그런 압박감을 증대 시켜 주었다. 애처롭고도 강인한 협박이었다.
거짓을 용납 못하는 태도였다.
“정말 기억 안 나?”
가슴이 두근대었다. 설레는 의미가 아니라 공포와 긴장의 의미로 박동했다. 경찰에게 추궁 당하는 도둑이 된 기분이었다. 정체를 생각하면 실제로 별 다를 바 없는 상황이었다.
이 순간 한재중의 머리는 어느 때보다 빠르게 회전했다.
데네브는 북두칠성의 괴인이 한재중이라 의심 중이다. 지금 한재중이 쓰러진 장소는 그 괴인들 끼리 치고 박은 곳. 괴인의 필살기를 맞아도 중경상으로 끝난 몸.
괴인으로 의심 받을 거리는 넘쳐 난다. 하지만 지금의 물음을 보면 확신 까진 가지 않았다.
괴인화의 증상 중 하나인 기억상실증을 의심하는 건가, 아니면 옛 지인이 자신을 기억 못하는 게 아쉬워 한 번 떠보는 건가.
한재중의 눈 앞이 막막했다. 두 눈에 가득 찬 건 화려한 분홍빛인데, 막막했다. 빛으로 어두웠다.
‘그 둘 다 아닌데 어쩌라고….’
괴인화라 말하기엔 인간적이었고, 지인이라 말하기엔 잃어버린 부분이 많았다. 무엇을 골라도 오답인 딜레마에 빠진 상태.
“응? 우리 재중 아재.”
데네브가 다시 한 번 어깨에 손을 올렸다. 우악스럽진 않고, 은밀했다. 벨트에서 별 다른 퀘스트가 울릴 기미는 없다. 누군가의 강요는 없이, 오롯이 자신의 선택만으로 해야 한다는 뜻.
데네브가 배시시 웃었다.
“우리 전에 좋았잖아. 정말 기억 못해?”
한재중은 데네브가 그랬던 것처럼 손을 뻗었다. 어깨가 아닌, 얼굴이었다. 볼을 타고 넘어간 손은 천천히 뒷 목에 새끼 손가락을 비스듬히 걸치고, 귀에 닿았다.
“좋긴 염병.”
그리고 귀를 그대로 잡아 당겼다.
“아악! 아!”
“변신해서 별로 안 아픈 건 다 안다. 아윤아, 그게 무슨 말 버릇이니. 이 피어싱은 다 뭐고? 응? 사람이 모른 척을 하면 다 알맞은 사정이 있구나 하고 이해를 해야지. 양아치처럼 그 태도는 뭐니. 나랑 설화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정말 죽고 싶은 거니.”
“아아아악! 진짜 아파! 떨어진다!”
“안 떨어져. 내가 많이 해봐서 알아.”
툭. 한참 동안 귀를 당기던 손을 놓자 데네브가 침대에서 굴러 떨어졌다. 우당탕탕하고 천방지축하는 소리가 났다.
“시발 다 아네!”
“핑크 데네브 씨. 뭘 말하시는 거죠? 전 정말 당신을 모릅니다.”
당장 몸을 일으킨 핑크 데네브가 어이 없단 듯 손가락질했다.
“와… 와… 이 새끼….”
하지만 표정은 그렇지 않았다. 만발한 꽃과도 같은 화사하고 밝은 미소가 그곳에 있었다.
“뻔뻔한 거 시발 하나도 안 변했어… 와… 와 진짜….”
얼핏 안심한 것처럼 보이기도 하였다. 빨개진 귀를 잡고 히죽히죽 웃는 그녀의 모습은 아직 앳되어 있던 그 어린애의 모습이 남아 있었다.
저 태도를 보니 한동안 의심은 안 받겠구나. 한재중은 안도하며 몸을 눕혔다.
“뭐가 어떻게 된 거에요?”
“뭐가, 그리고 존댓말 오글거리는데 안 하면 안 돼?”
“아 모르는 사람인데 반말을 어떻게 해.”
“아니 이 아재가 진짜.”
핑크 데네브는 쓰러진 의자를 다시 일으키며 앉았다. 다리를 꼬고 턱을 괴었다.
“아재라 하지 마세요. 아직 젊습니다.”
“수염이랑 머리 꼬라지 보면 그렇게 말할 사람 없을 거다. 나같은 파릇파릇한 애들한테는 늙게만 보여.”
“양심이란 게 있니.”
말한 본인도 살짝 부끄러운지 다른 의미로 귀가 붉어졌다.
“꼬라지 정돈이나 해! 맨날 노숙만 하고 다니니까 그러지.”
“이젠 노숙 안 하고 엄연히 방 구했… 잠깐, 네가 그걸 어떻게 알죠?”
“그냥 인상이 그렇게 생겨서 그런 건데… 뭐야, 진짜 맞췄어? 진짜 노숙했다고?”
그녀의 표정이 와락 구겨졌다. 물론 연기였다.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었으니. 한재중 역시 그 행동이 연기임을 깨달았다. 그녀의 능력이라면 감시 쯤이야 어렵지 않았을 테니.
물론 홍익오를 꺼내기 위해선 변신 상태여야 하니, 24시간 내내의 감시는 불가능 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녀의 능력은 탐지와 이동, 그 특수성 탓에 다른 마법 소녀의 서포트를 담당하는 일이 상당히 많으니 신경을 이 쪽에 집중 시키진 못했겠지.
게다가 그녀에게 추궁 당한 이후론 변신 하기 전에 항상 벨트에게 주변을 감지 시켰으니 정체를 들키지도 않았을 터.
하지만 노숙을 한 날 정도는 볼 수 있었을 것이다.
한재중은 한숨을 내쉬고픈 마음이 들었다. 하필 이 몸이 알던 사람에게 그런 사실을 들키다니.
“아니 뭐… 며칠만 그런 거야. 이젠 아니야.”
“…그래?”
둘은 여기서 해당 주제에 대한 대화를 끊었다. 서로의 마음만 불편해진다. 또한 한재중은 데네브가 자신이 집을 구했단 사실을 모르는 것으로 보아 감시는 생각보다 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심성 탓인가?’
하긴 마법 소녀 일을 할 만큼 정의로운 사람이 스토킹 같은 짓을 할 수 있을 리가 없겠지. 한재중은 데네브가 생각보다 자신을 잘 보지 못 했음에 다시 안도했다.
“그럼 아까 질문 좀 다시 하자. 나 어떻게 된 거… 죠?”
“반말인지 존댓말인지 하나만 하자. 헷갈린다.”
“반존대야. 설레?”
“썰어버리고 싶긴 한데.”
둘은 서로를 보며 쿡쿡 웃었다.
“어떻게 되었다는 게 뭔 소린지는 잘 모르겠는데… 일단 지금은 아재가 기절한 뒤로 하루 정도 지났어.”
핑크 데네브는 한재중의 의도를 찰떡 같이 알아 듣곤 그가 알고 싶던 정보를 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재 조사 좀 받을 거야.”
“…뭘로?”
“천칭 새끼 한테 납치 당했다가 돌아온 유일한 사람이거든.”
한재중의 몸이 떡 하니 굳었다.
리브라의 계획, 이미 진행 중이었구나.
가장 정당한 희생을 영웅의 희생으로 만든다는 그 계획.
“아. 걱정 마. 경찰이나 기자는 안 올 거야. 물론 아재 얼굴도 공표될 일도 없고. 찌라시가 돌 거리도 없어. 우리 마법 소녀 측에 조사해서 정보만을 전달할 거야.”
핑크 데네브는 한재중이 걱정할 만한 거리를 전부 없애 주었다. 특히 기자들을 보지 않아도 된단 사실이 너무나 좋았다.
“고맙네요.”
“나 말고 선배 한테 해. 마법 소녀 측에서 책임지고 처리하겠다고 나선 사람이니까. 지금도 괴인들 족치고 있어.”
데네브는 웃으며 합장했다.
“난 여기서 사령탑으로 정보 탐색을 하는 중이고. 어차피 난 이 정도 역할이 제일 도움이 되는 방향이고.”
그녀의 손이 펼쳐지자 마술사가 비둘기를 꺼내듯이 홍익오 한 마리가 튀어 나왔다. 특유의 분홍색 날개를 펼친 홍익오가 퍼덕이며 병실 안을 날았다.
“저기 창문 좀 열어 봐.”
“왜.”
“아 하라면 해줘라 좀. 사랑스런 마법 소녀의 부탁인 데도 못해줘?”
“친애하는 마법 소녀님이 까라면 까야겠죠 네.”
한재중은 투덜거리며 창문을 열었다. 날아오른 홍익오가 그 창문틀에 앉았다.
그러고보니, 홍익오의 탐지 운용에는 상당한 집중력을 필요로 할 텐데 이렇게 대화를 하고 있어도 괜찮나. 한재중의 머리에 의문이 하나 떠올랐다.
그리고 그 의문은 곧 해결 되었다.
지금 그녀의 홍익오는 탐지를 위해 운용하고 있지 않았다.
바람이 불었다. 차갑지만 살에 닿으면 녹아 버리는 아련한 눈 바람이었다. 바람을 따라 분홍빛의 깃털들이 꽃길처럼 펼쳐졌다. 순간 봄이 왔는가 착각을 할 정도였다.
“아재, 기억 상실 컨셉 유지 잘해라? 선배는 나처럼 유하지가 않아.”
그 봄들 사이로 푸른 색의 구두가 한 걸음 다가왔다. 아련한 기억을 떠오르게 하는 물방울과도 같았다. 눈과 꽃들 사이를 거쳐 비가 내리는 듯 했다.
핑크 데네브의 능력 중 하나, 마법 소녀의 이동.
분홍빛의 깃털들이 찬란하게 봄을 형성하고 그 봄 사이로 눈처럼 포근한 사람이 다가왔다. 하늘과 섞이며 경계를 희미하게 하던 푸른색의 머리카락이 점차 사람의 곁으로 다가왔다.
“재중아!”
블루 시리우스. 가장 만나고 싶지 않았으며 가장 곁에 있었으면 했던 사람이 왔다. 그녀의 차디찬 몸이 한재중에게 닿고, 녹았다.
봄을 타고 겨울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