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nsform or death RAW novel - Chapter 3
Chapter 3 – 첫 번째 킥
불편하다.
길게 숨을 뱉고 다시 들이마셨다. 숨 구멍 하나 없는 헬멧이었지만 이상하게도 호흡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시야도 양호하고 움직이는 데에도 불편이 없다.
변신까지 하며 내 몸과는 거리가 한참 멀어졌지만 이상할 만큼 편안했다.
지금 불편한 건 몸이 아니라 마음이었다.
마법 소녀. 물론 만나고 싶었다. 멍청한 결말로 다 말아 먹어도 한 때 좋아했던 만화의 등장인물이니까.
근데 왜 하필 지금인가.
“괴인 끼리의 전투였나요… 다행히 사람은 휘말리지 않았나 보네요.”
그녀는 망설임 없이 날 괴인으로 정의했다.
당연한 것이라면 당연한 것이었다.
테러 신고가 들어온 현장에서 가슴에 폭탄을 두르고 있으면 그것 참 표현의 자유고 전위적인 패션이겠지.
내 복장이 이런데 뭘 보고 날 보호해야 할 시민으로 판단하겠나.
긴장감에 손을 몇 번 쥐락펴락 해봤다. 땀은 흐르지 않았지만 왠지 축축한 기분이었다. 아 땀이 아니라 피였나. 방금 전에 괴인을 죽였구나.
‘돌겠네.’
사람의 모습을 취한 빛.
마법 소녀를 처음 보고 나온 감상은 그것이었다.
그 다음의 감상은 이보다 훨씬 단순하고도 원초적이었다.
아름답다.
하얀색의 드레스. 치렁치렁한 프릴 사이를 포인트로 장식하는 붉은 리본. 리본 못지 않게 부드러히 휘날리는 양갈래의 머리카락.
유치하단 생각이 앞설 법도 했다만, 용모와 분위기가 너무 뛰어나다 보니 저런 복장도 전부 어울린다고 생각하게 된다.
“사람이 없다면야 저에겐 좋은 일이죠.”
그녀의 이름은 레드 베가.
마법 소녀가 된 경력 자체는 얼마 안 되지만 특유의 잠재력으로 차례차례 실적을 쌓아 가고 있는.
아까 PC방에서도 기사로 뵈었던 기대의 신성.
마법 소녀 전성기의 주인공.
“각오하세요!”
씩씩하게 전투 자세를 잡는 그녀에게서 보이지 않는 패기와 그 패기에 버금갈 마력이 뿜어져 나왔다.
붉은 별빛. 영혼의 불꽃을 현실로 옮긴 듯한 루비색의 기운이 그녀 주위에서 파도처럼 일렁거렸다.
웹툰 안에서 봤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기뻐해 마땅한 상황이었으나 조금도 기쁨을 느낄 수 없었다.
방금 전 본 괴인과는 기백이 달랐다.
야성(野性)을 뛰어넘은 이성(理性).
정갈하게 빚어 만들어진 뚜렷한 투기(鬪氣).
몸이 짓눌려지는 듯 했다. 이것은 변신 이후의 내 몸에도 유용하게 작용하는 위협이었다. 이게 마법 소녀인가. 왜 괴인이 두려움을 느끼는 지 조금 이해가 간다.
난 시민의 입장으로 있고 싶었는데…..
[3분 이후에도 교전을 시작하지 않을 시 퀘스트에 대한 불응으로 판단.]그런 내 마음을 가볍게 무시하며 벨트에서 음성이 흘러나왔다.
[대가를 이행하겠습니다.]그래 알았다. 싸워야지. 싸워야 하는 걸 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마법 소녀에게 말을 걸었다.
“이봐.”
“?!”
그녀는 내가 말을 걸었단 사실에 놀라는 듯 했다.
놀랐지? 그래 나도 오늘 놀랄 일 많았어.
사람과 친해지는 첫번째 과정은 공감대 형성이다. 내적 친밀감을 다진 뒤에 난 다시 입을 열었다.
벨트가 말하길 ‘사살’이 아니라 ‘쓰러뜨리라’였다. 쓰러뜨리기만 한다면 교전이 없더라도 퀘스트가 완료되고 내 목숨은 무사하지 않을까?
그런 발상에서 나온 설득이었다.
내용은 다름 아닌 항복 권유.
“간곡히 부탁하건데 항복을 해주지 않겠나? 안 그러면 좀 곤란해서 말이야….”
“…언어 사용을 확인.”
오해를 풀려고 말을 건 건데.
아무래도 오해만 더 깊게 만들어 버린 거 같다.
“상대를 S급 괴인이라 판단.”
시발.
파앙─!
그녀는 망설임 없이 나에게 달려왔다. 레드 베가의 움직임에 따라 붉은 색 실이 그려졌다. 곧은 직선이었다.
그녀가 쥔 주먹의 주위에 헤일로 같이 붉은색의 둥근 고리가 띄워졌다.
일로(一路). 화음(火音).
마력을 감은 주먹이 조금의 흐트러짐 없이 곧게 선을 그렸다. 불꽃이 포효한다면 이런 모양이 되겠지. 그런 생각이 들만큼 강렬하고도 빠른 일격이었다.
“최선을 다해 구제하겠습니다!”
그녀는 조금의 방심도 없이 전력으로 주먹을 꽂았다.
콰아아앙!!!
마치 폭발이 일어난 듯한 굉음 속, 마찰열로 인한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녀의 주먹이 내 손에 가로 막힌 흔적이었다. 나에게 세 발자국 뒷걸음질을 시키게 만들긴 했으나. 안타깝게도 눈에 띄는 데미지는 입히지 못했다.
“마, 말도 안 돼….”
물론 위협적이긴 했다. 순간적으로 죽음의 공포까지 느낄 정도였으니.
하지만 위협의 크기에 비해선 확실히….
“약해.”
“…!”
놀라울 정도로 아픔을 느끼지 못했다. 아마 내가 저런 투기에 익숙했더라면 공포도 느끼지 못했을 게 분명했다.
레드 베가는 내 배를 차고 떨어지며 막힌 손을 회수해냈다. 그것 역시 별 다른 타격을 주지 못했다. 개인적인 판단으론 친구 끼리 장난으로 밀칠 때의 그 감각과 비슷했다.
불합리 하다.
그녀의 일격을 막으면서 이렇게 생각했다.
이상할 정도로 데미지가 없다.
이건 확실히 내가 가진 별의 개수 때문이었다.
나에겐 일곱 가지의 별이 있고, 그녀에게 있는 건 오직 하나. 베가 뿐.
아무리 신인이라 한들 방금 막 변신한 나보단 훨씬 많은 경험과 노력을 쌓았을 텐데. 고작 별의 개수 차이로 이 정도의 차이가 벌어지다니.
죄책감 마저 느껴졌다.
그러나 가진 자가 말하는 동정 따위는 위선에 불과하겠지.
오해를 풀기에도 이미 크나큰 강을 건너 버린 상황.
그녀의 굴욕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기 위해.
난 최대한 빨리 그녀를 쓰러뜨리기로 결정했다.
이 불편한 상황을 최대한 빨리 빠져나가고 싶단 사심도 있었으나 죄책감에 비해선 아주 조금에 불과했다. 아마.
“굴욕적으로 생각하진 마렴. 당연한 거니까.”
신입이 별 여섯 개 차이를 어떻게 메워. 하면 신입이 아니라 신이지. 원래 전투의 세계에서 피지컬 차이는 냉혹한 법이다.
아직도 당황에 빠져 있는 레드 베가에게 위로의 말을 건낸 뒤.
난 자세를 잡았다.
벨트가 내 뇌 속에 그려 놓은 기술들 중 가장 강한 기술. 그것을 재현하기 위해.
[SET. 칠성보각(七星步脚).]땅을 박차며 달려나갔다. 레드 베가에게 닿기 까진 고작 한 걸음이면 충분했지만. 일부러 걸음의 개수를 쪼개 다가갔다.
쾅─!
걸음이 한 번 일 때마다 폭발음이 터졌다.
그렇게 터진 폭발음이 일곱 번.
폭발음이 한 번 터질 때마다 내 다리엔 흉흉한 녹색 빛의 고리가 생겨났다.
그렇게 생긴 고리가 일곱 개.
일곱 번의 걸음과 일곱 번의 폭발을 집어 삼킨 다리는 언제라도 터질 듯이 빛났다.
유황불 같이 뜨겁게 타오르는 다리를 들어 올리고.
퍼어엉─!
그대로 레드 베가에게 돌려 꽂았다. 폭발음만이 아닌 진짜 폭발이 생겨났다.
칠성보각(七星步脚).
일곱 개의 걸음에 일곱 개의 별.
걸음 하나 마다 별 하나의 힘을 응축해 마지막 한 번에 폭발 시키는 필살기.
필살(必殺)기이지만 죽일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애당초 죽일 깡도 없다.
[칠성보각(七星步脚) 발현 성공. 재현율 20%.]킥이라 하면 변신 히어로물의 상징적인 기술이다.
그런 기술을 처음 사용한 상대가 하필이면 마법 소녀라니.
생각해보니 참사도 이런 참사가 없었다.
새처럼 하늘로 날아 오른 레드 베가에게서 반딧불 같은 자그만 빛의 조각들이 흩날렸다. 그녀를 지켜주던 마력이 흩어지는 과정이었다.
“읏.”
철푸덕.
힘 없이 땅을 구른 레드 베가는 자그만 신음을 뱉었다.
“어흑… 크흑, 커흑….”
몇 번의 기침 소리와 함께 폐부에 차있던 공기를 내뿜음과 동시에, 계속하여 마력을 몸에서 흘려 보냈다.
변신 해제.
사용자의 무리를 막기 위해 자체적으로 변신이 풀렸다.
[마법 소녀를 쓰러뜨리는 데 성공하였습니다.]빛을 잃은 마법 소녀는 그저 소녀가 되었다. 아직 앳된 얼굴을 가진 스무살 전후의 새내기. 그것이 마법 소녀의 진실이었다.
이런 나잇대의 소녀가 목숨 걸고 타인을 지켜야 한다니 이것 참….
“가엽군.”
불쌍하다.
이러한 비윤리적인 아동 노동이야말로 소년 만화들의 핵심이며 원죄긴 하지만.
천천히 눈을 감는 레드 베가에게서 눈 돌리며 난 그 자리에서 도망쳐 나왔다.
시이이벌.
‘살았다!’
일단 오늘 밤은 살아났다.
**
살아남긴 염병.
[괴인 격파.]그 후로도 세 마리의 괴인을 추가로 쓰러뜨린 뒤에야 벨트가 잠잠해졌다.
“아아악….”
좀비처럼 공허한 포효를 내뱉으며 변신을 해제했다.
상쾌한 공기가 그제야 날 맞아 주었다. 특유의 물 냄새가 느껴지는 아침의 공기.
그렇다. 아침이다.
이 미친 벨트가 아침까지 날 혹사 시킨 것이다. 한 숨도 못잤다.
“미친 놈아… 야근 수당은 주면서 굴려….”
변신이 해제되니 벨트에서 다시 쇠 공으로 돌아 왔다. 그럼에도 어디 날아가지 않고 계속하여 내 주위에서 맴돌았다.
“휘, 휘! 꺼져! 나 다신 변신 안 할거니까! 제발 꺼져!”
돈도 안 주는데 이걸 내가 왜 해.
[불가능합니다.]그런데도 이 벨트는(쇠 공의 모습이라도 이렇게 부르기로 했다)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계약은 수호자의 의지로 이행되었습니다. 철회는 불가능합니다.]“그러니까 그건 내가 아니래도….”
한재중 씨 도대체 죽기 전에 뭔 짓을 한 거에요. 이딴 새끼와는 왜 어울리셨습니까. 사기 계약은 조심했어아죠. 그래서 지금 제가 노예로 굴러지고 있지 않습니까.
“이제 어쩐다….”
괴인만 죽였으면 그나마 살 길이 있었지만 마법 소녀까지 손을 뻗어 버렸다. 이젠 빼도 박도 못하는 범죄자 신세다.
다행히 내 변신을 누가 목격하지 못했긴 했지만 들키는 순간 깜빵에 간다.
그리고 깜빵에 가면 또 이 벨트 새끼가 ‘변신하십시오’ 이 지랄을 떨며 죽기 싫으면 탈옥하라 종용하겠지.
이 밤 동안 고생해서 얻은 깨달음이 있다면, 이 벨트 새끼는 주변에 괴인이 감지되면 내 사정 따위 고려 않고 변신을 종용한단 점이었다.
앞날이 깜깜하다. 이 세계의 앞 날을 걱정하기 보다 내 안위를 걱정해야 할 판이다.
기껏 최애캐들과 만날 기회가 생겼는데….
“빙의가 원래 이런 건가…?”
이상하다. 내가 본 웹소 주인공들은 자기 맘대로 세상이 돌아가던데? 온갖 기연이란 기연은 다 얻어서 돈도 많이 벌고 인맥도 쌓고 그러던데. 근데 왜 난 아니지.
“그래도 산 게 어디냐….”
하긴, 이렇게 괴인에게서 살아남을 힘을 얻은 게 기연이라면 기연이겠다. 난 한숨을 푹 내쉬며 웃었다.
궁상떨던 입을 멈추고 앉았던 몸을 일으켰다.
도시를 빙빙 돌다 보니 처음에 내가 있던 모텔 근처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
춥고 배고프고 졸리고. 수중에 돈도 거의 없다. 그야말로 거지 그 자체. 괴인은 죽일 수 있지만 이 자본주의 사회엔 반항 하나 못하는 자신의 처지에 회의감을 느끼며 걸음을 옮겼다.
일단 잤던 모텔방으로 돌아갈 거다. 열쇠도 가지고 있다. 삼 만원으로 숙박이 될 지는 모르겠지만 나중에 외상이라도 뭐든 하면 되겠지.
‘잠이나 자자….’
배고플 땐 안 움직이는 게 최선의 방법이다. 난 지친 몸을 끌며 원초의 장소로 돌아갔다.
그리고.
“한재중 씨 맞으시죠?”
“에이 이건 아니지.”
모텔에 들어서자마자 경찰과의 만남을 가질 수 있었다.
이런 미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