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nsform or death RAW novel - Chapter 30
Chapter 30 – 수호의 의미 (8)
밤의 어둠을 몰아내던 질척한 황금색 빛이 사라졌다. 리브라의 패배.
아릿한 불빛이 불씨처럼 휘날리고 육중했던 거인의 갑옷은 폭발의 여파로 조금의 파편만을 남기고 박살났다.
시민들은 숨을 숨기고, 리브라가 죽으며 하나만 남게 된 괴인의 동향을 살폈다. 승리의 여운에 취한 건지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 보는 중이었다.
시끄럽게 울려대는 헬기 소리와 그 헬기가 촬영을 위해 내뿜은 강렬한 인공광 때문에 하늘은 꽤나 요란스러웠다. 리포터는 괴인이 괴인을 쓰러뜨린 이색적인 풍경에 흥분을 주체 못하고 목소리를 높였다.
-여러분 보십시오 노인과 아이들을 납치한 리브라가 지금 난입한 다른 괴인으로 인해….
그 흥분 속엔 미약한 긴장이 존재했다. 괴인 끼리의 알력 다툼이 끝나 누구 하나가 사망했다면, 남은 괴인은 이제 누구에게 마수를 들이밀 것인가. 땅을 가볍게 부수고 불꽃을 뿜어내는 그 힘을 누구에게 사용할까. 혹여 그 대상이 자신들이 아닐까.
그렇게 긴장하면서도 쉽사리 발을 뗄 수 없었다. 공포와 경악, 뱀 앞에 놓인 개구리와 같이 압도적인 두려움에 근육이 수축하며 굳어버렸다.
마법 소녀의 이동을 차단하던 방벽이 흐물거리며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레드 베가는 그렇게 해체된 감옥을 빠져 나가기 보단 그 감옥 안에서 공투했던 괴인을 향해 다가가길 택했다.
“저, 저기….”
그녀에게도 긴장은 있었다. 하지만 시민들과 달리 유별난 두려움은 없었다. 왜냐면 그가 자신의 편이라 이제 확신에 다다랐기 때문이다.
싸울 것이냐, 구할 것 이냐.
괴인에게 들으리라곤 상상도 못했던 충고. 하지만 핵심을 찔렀다. 덕분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 깨닫고 실천할 수 있었다.
그 결과 내적인 친밀감이 올라가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학생 때 가끔씩 만나는, 엄하지만 참 된 선생님을 만난 기분이었다.
“도움 고맙….”
[MERAK.]레드 베가가 말을 다 마치기도 전에 벨트에서 다시 딱딱한 기계음이 울려 퍼졌다. 가슴의 불빛이 구리의 색깔을 닮은 노랑으로 빛나고, 한재중의 손엔 장총 하나가 들렸다.
개문(開門).
스팀펑크 판타지에나 나올 듯한 태엽 장치의 장총.
한재중에겐 한 가지 궁금증이 있었다. 자신의 사명이 시민의 수호가 아닌, 마법 소녀의 수호라면.
시민에게 공격을 해도 재현율이 크게 하락할 일은 없지 않을까.
녹색의 손이 점차 위를 향했다. 땅을 향해 있던 총구가 힘차게 올라갔다. 세밀한 조준은 필요 없었다. 벨트가 분석한 방향대로 총구를 돌리고 방아쇠를 누르면 될 일이었다.
증강 현실로 구동 된 내비게이션이라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그에게만 보이는 선 위에 총을 올리니, 이제 불을 뿜기에 합당한 모습이 되었다.
방향은 신경을 거슬리게 한 소음을 내뿜는 헬기를 향해.
“엇.”
레드 베가가 한재중에게 향하던 발걸음을 멈추고 재빨리 비행을 개시했다. 그녀의 방향도 당연히 헬기를 향해.
방아쇠에 올린 손가락이 점차 굽혀졌다. 레드 베가는 구두 밑창에 불꽃을 모으고 분사하며 재빨리 궤도에 도달하려 했다. 하지만 손가락이 굽혀지는 게 먼저였다.
탕.
시원한 격발음과 함께 별빛을 응축한 탄알이 하늘을 재빠르게 가로 질렀다. 탄알은 하늘을 날며 날개를 펼치듯이 에너지 뭉치들을 펼쳤다. 끝내 완성된 모습은 북두칠성의 모양이었다. 별자리의 모양을 한 파도, 꼭 그런 것을 닮아 있었다. 안타깝게도 속도는 파도를 훨씬 뛰어 넘었다.
그래도 아직 헬기에 닿진 않았다. 레드 베가가 별빛을 최대한 발 끝에 응축해 터뜨렸다.
거샌 소닉 붐의 소리가 울림과 동시에 레드 베가가 총알의 앞을 점령했다. 그리고 비행 내내 주먹에 모으고 있던 주먹 안의 불꽃을 넓게 흩뿌렸다. 제트기가 플레어를 터뜨리는 듯했다.
퍼버벙!
불꽃 덩어리와 에너지 덩어리가 만나며 거센 폭발음을 선사했다. 불똥이 곳곳으로 튀어나가는 모습이 불꽃놀이 같이 아름다웠다.
-보십시오 우리의 영웅 레드 베가가… 으앗!
레드 베가는 머리를 아래로 돌린 다음, 다시 발 끝에 불꽃을 모아 터뜨렸다.
그 충격파에 헬기가 흔들렸다. 레드 베가는 추락의 중력 까지 추진제로 사용해 그에게 날아 들었다. 눈 앞에 붉은 색 바이저 같은 렌즈를 쓴 괴인의 얼굴이 보이자 즉시 주먹을 들어 휘둘렀다. 한재중은 즉시 왼팔을 들어 방어했다.
쾅! 카가각!
불꽃을 두른 주먹이 초록색의 갑주를 스치며 아찔한 스파크들을 쏟아냈다. 아릿한 통증이 손을 통해 전해지는 걸 무시하며 물었다.
“무슨 짓이에요!”
한재중은 대답하지 않고 그녀의 주먹이 닿지 않은 오른팔을 들었다. 장총, 개문을 들고 있는 손이었다. 어깨와 수평이 되도록 들어 올리자, 많은 과녁이 있었다. 총구와 구경하던 시민 하나가 눈이 맞았다.
그가 다시 한 번 방아쇠에 손가락을 올렸다. 그 손가락이 굽어지기 전에 레드 베가가 오른 다리로 그의 손을 차올렸다.
탕!
위를 향한 총구에서 다시 북두칠성 모양의 총알이 내뿜어졌다.
“무슨 짓이냐고? ”
두 번의 격발. 그럼에도 별빛은 줄지 않았다. 이로서 한재중은 확신했다. 자신에겐 마법 소녀 같이 만인에 대한 수호의 의무가 없다. 즉흥적인 실험이었지만 유의미한 결과는 얻을 수 있었다.
“나야 말로 묻지. 무슨 생각이었나?”
총을 고쳐 잡은 한재중이 그걸 도끼처럼 휘둘렀다. 레드 베가가 재빨리 두 팔을 교차해 방어의 자세를 잡았다. 그 덕에 복부가 비었다. 한재중은 발을 들어 올려 훤히 뚫린 흰 색 드레스를 향해 찼다.
퍽.
둔탁한 타격음이 나지막하게 귀를 흔들었다.
“크, 흑…!”
“괴인에게 살갑게 인사하는 마법 소녀? 진짜 생각이란 게 있긴 하는지 의심스러울 지경이군. 안 그래도 지금 리브라를 내가 쓰러뜨리며 너에게 무능력하단 프레임을 씌울 사람이 넘쳐 흐르는 데, 여기서 괴인과 결탁 까지 했단 루머를 얻고 싶나? 적은 최대한 줄여라.”
피가 되고 뼈가 되는 조언이니 새겨들었으면 좋겠다만 안타깝게도 레드 베가는 반골 기질이 은근 강했다. 적어도 듣기라도 하길 바라며 한재중은 말을 이었다.
“그리고, 목숨은 아껴라. 윤리적 문제 이상의 현실적 문제다. 네 년이 죽는다면 그 빈자리 만큼 다른 이들이 혹사할 뿐이다. 정녕 영웅이 되고 싶다면 모든 책임 관계를 이해하고, 진정 목숨을 걸어야 할 때를 이해하도록.”
물론 그렇게 고뇌를 해나간다면 결국 죽을 때는 없다는 결론에 도달할 뿐이다.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날 지 모르니, 그 최악의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 매사에 목숨을 아껴야 한다는 답으로 이어지니까.
레드 베가가 다시 한 번 돌진해 왔다. 이번에도 정직하게 바로 앞에서 주먹을 휘두르는가 싶었지만, 그의 한 발자국 앞에서 전진을 멈추고 방향을 전환했다. 오른쪽으로 나가는 몸과 그 반대 방향을 향해 화염을 흩뿌리며 눈 가리개와 혼란용 잔상을 남긴다.
그 다음엔 발과 팔의 부스트를 이용해 빠르게 후방으로 이동했다. 그렇게 불꽃을 뿜으려할 때, 그의 겨드랑이 사이로 삐져 나온 총구를 보았다. 후방으로 이동한 것을 느끼자 마자 총구를 돌려버렸다. 그는 엄지로 방아쇠를 눌렀다. 방어 자세를 취하기엔 너무 시간이 없었다.
격렬한 스파크와 화약의 연기, 그런 것과 함께 다시 레드 베가가 뒤로 물러났다.
“무엇보다, 두려워 해라. 나약한 자가 두려움 없이 휘두르는 힘이란 공허할 뿐이다. 어린애가 휘두르는 식칼과 다를 바가 없지.”
다시 레드 베가가 달려 들었다. 한재중은 총을 버리고 주먹으로 맞이 했다. 주먹과 주먹의 쇄도, 막고 흘리고 치고. 바람을 찢는 소리가 귓가를 가득 매웠다.
날카로운 궤적들이었지만 그 안엔 전투 시에 당연히 흘러야 할 살의가 조금도 없었다. 둘 다, 그저 경의로만 상대를 쳤다.
레드 베가는 땀과 피와 고통 속에서 역설적으로 괴인에 대한 경계심을 풀어나갔다. 염려와 충고에서 어떻게 적의를 내비칠 수 있겠나. 방금 전 두 번의 격발도 이해했다.
‘배려 받고 있어…!’
배려한 것이다.
자신이 괴인과 한 편이라고 의심 받지 않도록, 괴인에게 제 할 일을 위임하고 전투를 내팽겨쳤다는 음해를 받지 않도록, 똑바로 사람들의 눈에 자신의 고군분투를 새길 수 있도록.
굴욕이었으나, 한 편으론 감동도 느꼈다. 자신 조차 내버리려 했던 명예와 목숨을 다름 아닌 눈 앞의 이 괴인이 챙겨 주고 있었다.
팍!
막을 속셈으로 뻗었던 주먹이 흘리기가 되어 각각의 울대에 도달하는 결과를 낳았다. 비릿한 피 맛이 입 안에 감돌았다. 호흡엔 곤란을 겪었다. 레드 베가는 뒤로 몇 걸음 물러나며, 물었다.
“뭐가 목적이죠?”
그 질문에 한재중은 즉답했다.
“이 세상에 마법 소녀란 존재를 없애는 것.”
그 누구도 영웅이 되지 않고, 될 필요도 없는 사회를 만드는 것.
수호를 넘어선, 궁극적인 목적이었다.
레드 베가는 이를 악물었다.
“안타깝네요.”
그녀의 주먹에 다시 불꽃이 뭉치기 시작했다. 이번엔 전과 다르게, 보다 선명한 선홍빛의 불꽃이었다. 소리의 파형을 표현한 그래프처럼, 그 주먹 안 불꽃으로 된 선이 튀어 오르고 내리길 반복했다.
“그건 제가 막아야 할 목적 같아요.”
마법소녀를 꿈꾸던 소녀인 레드 베가가 선뜻 받아들이기는 힘든 목적이었다.
“마지막 질문인데요, 괜찮나요?”
“뭐지.”
점차 불꽃으로 그려진 선이 격렬하게 뛰고 내려 앉길 반복했다. 미친 듯이 뛰는 심장 고동을 측정한 것과 같았다.
“당신의 이름은 뭐죠? 빅 디퍼라고 불러드리면 될까요? 개인적으로 조금 어감이 안 좋은 거 같은데.”
“동감이야. 그 이름은 썩 좋지 않군. 게다가, 그렇게 부르는 순간 내 별자리가 하나로 확정되지 않나. 날 너무 약하게 부르는 이름이야. 좋지 않아.”
한재중은 잠시 고민했다.
자신의 별은 이걸로 끝이 아니다. 앞으로 몇이나 되는 별을 보고, 선택해서, 짊어질 것이다.
그렇다면, 그 이름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
“네? 아직 그 힘이 끝이 아니란….”
“그렇지. 이 밤하늘은 넓다. 내가 바라보고 잡아낼 별은 아직 한참 남았어.”
“…! 그럼 저도 질 순 없겠네요. 더욱 강해지겠습니다!”
“그래 마음대로 생각해라. 이름, 이름이라… 아, 하나 생각났군.”
그렇게 고민하다, 이내 답을 내었다.
“와쳐(Watcher).”
역시, 처음의 행동에서 따는 게 알맞을 거 같았다.
“주시자, 관측자란 의미의 와쳐다. 앞으로 기억하도록.”
“알겠습니다 와쳐 씨.”
레드 베가의 불꽃이 완성 되었다.
“다음엔 제가 이길 거니까요! 각오 하고 계세요!”
누군가의 포효처럼 뛰쳐 나간 발걸음. 바람을 찢는 소리에 뒤이어 불이 타닥거리는 특유의 부정형한 파형의 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만의 필살기. 그녀가 선택한 하나의 길.
일로(一路). 화음(火音).
불꽃과 소리처럼 강렬하게, 그럼에도 화음처럼 조화롭게, 누군가에게 기억 되어라.
오늘 하루 몇 번이고 반복한 기술이며, 지금까지 몇 백 번이고 사용한 기술. 이미 잔뜩 혹사당한 팔은 비명을 내지르고 있었지만, 그보다 먼저 화염이 비명을 질렀다.
상대를 집어삼킬 듯한 포효의 불꽃이 한재중, 와쳐를 덮쳤다.
레드 베가는 알았다.
그는 일부러 피하지 않았다.
방금 전 그가 쏘아낸 총알처럼, 그는 불꽃을 받아 멀리 떨어져 나갔다. 한참 동안이나 밀려난 와쳐는 다 말라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큭… 확실히 전보단 강해졌군.”
그리곤 목소리를 높여, 레드 베가만이 아닌 다른 사람도 들을 수 있게 외쳤다.
“물러나는 건 이번만이다! 다음엔 두고 봐라!!!”
[ALKAID.]벨트 안에서 연기가 흩뿌려 졌다. 그 안에서 몇 번이고 깜빡이길 반복한 몸이 이내 투명해지고.
그의 그림자가 연기 안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우리의 붉은 혜성 레드 베가가 훌륭히 괴인을 격퇴….
-와아아아아아!!!
흥분한 시민들의 목소리와 아직도 시끄럽게 날개를 돌리는 헬기의 소리, 싸움 내내엔 집중하느라 듣지 못했던 여러 소음이 동시에 그녀의 귀를 때렸다. 레드 베가는 그것이 시끄러워 잠시 눈살을 찌푸렸다. 바람에 스친 상처들이 아프단 것도 이유 중 하나였다.
다른 이유도 있었다.
와쳐를 담고 있던 연기가 점차 바람에 찢겨 사라졌다. 그걸 멍하니 바라보며 레드 베가는 생각했다.
이 환호성은 자신이 아니라 그가 받았어야 하는 게 아닐까.
선홍빛의 저녁에서 새까만 밤 까지 이어진 길고 긴 싸움에 끝이 났다.
그러나 끝난 건 오늘의 싸움 뿐.
아직 그녀가 할 일은 많았다.
억지로 표정을 꾸며낸 레드 베가가 시민들의 환호성에 특유의 포즈를 잡으며 답했다.
괴인들에게 불안에 떠는 민중들이 조금이라도 안심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