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nsform or death RAW novel - Chapter 32
Chapter 32 – 죽이는 방법
리브라가 당했다는 소식에 다른 괴인들은 차례차례 물러갔다. 그에게 돈을 받은 의리로 시간을 끌어준 것 뿐이다. 그 본인이 쓰러졌다면 더 이상 시간을 끌어줄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단 하나, 돈이 아닌 흥미로 움직인 모순 만큼은 그러지 않았다.
“좋네요.”
주변에 느껴지는 건 온통 한기 뿐이었다. 아직 한파는 커녕 겨울도 오지 않은 도시가 새하얗고도 푸르게 얼어 붙어 있었다. 단 둘이 벌인 것이라 하기엔 경악할만한 변화였다.
“실시간으로 강해지고 계시군요. 전투 경험에 따른 숙련도… 라 하기엔 실제로도 힘이 강해지셨습니다.”
모순은 복사한 힘을 파악하기 위해 주먹을 쥐었다 펴 보았다. 비록 소량이나 계속하여 힘이 증가되고 있었다. 흡족한 결과였다.
“역시 당신들은 참 신비롭습니다. 그저 마음먹는 것에 따라 강해질 수 있다니. 참 재밌어요.”
시리우스는 말 없이 빙판을 가로질렀다. 빠르고 날카로운 움직임에 모순은 시선을 빼앗겼다. 그러자 그의 뒤에 분신이 등장했다. 푸르게 외곽선만을 따라 그린듯한 분신은 세검을 몇 번이고 휘둘렀다.
냉기가 섞인 검풍이 눈보라처럼 모순에게 쇄도했다. 너무 범위가 넓어 모순은 피하길 포기하고 맞대응 하길 택했다. 그가 든 방패 모양의 창에 한기가 모여 들었다.
모순은 그걸 횡으로 휘두르며 얼음 조각 섞인 참격을 퍼부었다. 두 한기가 중앙에서 만나 드라이 아이스같은 연기를 만들어냈다.
다시 모순의 등이 훤히 빈 상태. 블루 시리우스의 세검이 빛을 발했다. 쭉 뻗은 검 끝에선 지금과는 궤를 달리하는 절대영도의 마력이 압축되어 있었다.
설화일로(雪華一路).
눈이 반짝였고, 그렇게 하나의 길이 만들어졌다. 그 누구도 지나가고 헤쳐 나오지 못할 직선의 길.
콰과광!
눈으로 된 댐에 구멍이 난 것만 같았다. 압도적인 압력의 얼음 더미들이 모순을 덮쳤다. 웬만한 괴인이라면 여기에 휘말린 순간 갈갈이 찢겨져 분해되는 게 정상.
그러나 모순은 웬만한 괴인이 아니었다. 마법 소녀의 힘을 복사한 그는 비행이 가능했다. 쇄도하는 얼음 폭풍 사이로 고고히 한 존재가 날아 올랐다. 다만 모습이 멀쩡하진 않았다. 상반신 갑주 일부가 크게 손상 되고, 하반신은 그보다 처참했다.
“하하, 이거 한 방 먹었습니다.”
힘과 능력을 복사했다 한들 그 힘과 능력을 완벽히 방어하는 몸이 생긴 게 아니다. 총으로 총을 쏘면 맞은 총이 부서지듯, 동일한 힘을 발산할 수 있어도 동일한 힘에 부서질 수도 있는 것이다.
복사 능력의 치명적인 약점.
하지만, 그에겐 이 약점을 극복할 방안이 하나 있었다.
“그러나 최강의 창이라면 응당 그 날카로움에 뒤 따르는 튼튼함이 있어야 하는 법.”
상처난 부위에 시퍼런 빛 알갱이들이 생겨났다. 그것들이 돌면서 그 자국들을 감싸더니, 방금 전 만들어졌던 상처가 전부 아물었다.
“사기도 정도가 있지….”
“자, 완치했습니다. 무기란 언제나 유지보수가 중요한 법이죠. 제 몸도 엄연히 하나의 무기, 수리는 확실히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아… 이러면 튼튼함과는 거리가 멀긴 하군요. 그래도 계속하여 쓸 수 있게 해주는 건 동일하니 너무 따지진 말아주십시오.”
제 딴에는 농담이었는지 모순은 말하고 클클 웃었다. 블루 시리우스는 그저 가증스러울 뿐이었다.
“공중에 나는 건 이런 기분이군요. 확실히 당신들이 땅에 내려와서 싸우는 이유가 있네요. 방향 조정이나 균형 잡기도 힘들고 소모가 꽤 커요.”
“말은 참 많네.”
“지성인은 언제나 대화를 나눠야 하지 않겠습니까. 게다가 평소에 사람을 많이 못 만나다가 이제야 일어난 거라 조금 신이 났나 봅니다. 양해 해주십시오.”
모순은 이내 하늘 한 구석에 시선을 고정하며 말을 이었다.
“S급 괴인들이 등장하며 마법 소녀들이 전체적으로 별빛이 강해졌군요… 큰 위기 앞에선 평화의 유지가 더욱 절실해 지기에 강해진단 건가요. 영웅은 난세에 등장한다더니 딱 그 꼴이네요.”
그 시선의 방향은 마법 소녀들의 전투 상황을 파악하며 재빠른 지원을 하기 위해 날려진 홍익오. 날개가 분홍색인 까마귀.
“이제 알고 싶은 건 다 알았습니다. 역시, 당신들은 지금 죽기 아까워요. 전에 죽이려 했을 때 죽였다면 참으로 후회되었겠네요. 그에게 감사해야겠어요.”
모순의 등 뒤에서 홍익오와 동일한 색상의 깃털이 흩날렸다. 그 깃털이 한 두 개에서 수 십개로, 수백으로, 수천으로 숫자를 불렸다. 세찬 눈바람에 흩날리는 깃털들은 점차 하나의 일정한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새였다. 블루 시리우스가 자주 도움을 받던, 그 새와 완벽히 동일했다.
능력을 복사했다. 블루 시리우스가 어이가 없어 헛 웃었다.
“…사람 본인이 없어도 가능한 거였어?”
“네 물론이죠. 모르셨나요? 이 힘은 적이라 인식한 사람의 힘을 복사하는 것이니까요. 거리나 본인의 존재 여부는 상관 없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모순의 뒤로 분홍색의 까마귀만이 아니라 여러 형형색색의 별빛이 일었다. 두 팔을 펼친 모순의 모습은 얼핏 전지전능해 보이기도 했다. 지금 홍익오를 날리며 파악한 마법 소녀들의 힘이었다.
“이런 짓도 가능합니다.”
그런 기예를 펼치는 모순의 목소리는 유쾌와는 거리가 멀었다. 대단히 불쾌해 보였다. 홍익오를 제외한 여러 별빛들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능력을 거뒀다.
“다만 눈 앞의 상대를 무시하는 듯한 행위라… 불공평하기도 하고 존중도 결여 되어 있어 제가 생각해도 상당히 불쾌한 행위입니다. 음, 기분이 나쁘군요. 다음부턴 하지 말아야겠어요.”
상상 이상이다. 블루 시리우스는 무력함에서 비롯된 공포마저 느꼈다. 이해불가능한 무지의 강대한 생명체와 마주 보는 느낌.
그런 그녀의 표정을 살핀 모순은 태연히 말을 이었다.
“제가 예전에 책을 읽으며 알게 된 말인데… 이런.”
모순의 위에 달빛을 전부 가린 새 떼가 있었다. 그가 만든 홍익오들은 아니었다. 밤하늘을 떠돌던 까마귀들이 일제히 아래로 급강하했다. 전쟁시의 총알비나 화살비를 닮아 있었다. 모순을 향해 까마귀들이 빽빽하게 내리쳤다.
“이 미친 새끼가아아!!!”
그 능력의 본래 사용자였다.
모순은 능숙하게 까마귀를 위로 넓게 산개시켜 그 새 떼들을 상쇄했다.
쾅! 쾅!
질량과 질량이 만나는 소리가 꽤나 시끄럽게 울렸다. 그 굉음들 속에서 더욱 시끄러운 욕설이 들려 왔다.
“그건 내 홍익오야 시발롬아!!!!”
“잠깐 빌리겠습니다 뭐 닳는 것도 아니고.”
등 뒤에 까마귀들로 날개를 만든 핑크 데네브가 모순을 걷어 찼다. 두 팔로 막아봤지만 압도적인 속도 앞에 모순은 땅 아래로 쳐박힐 뿐이었다.
축천법. 하늘을 접어 달리는 핑크 데네브 특유의 압도적인 가속 능력 덕이었다.
능력 복사로 인해 모순에 대항할만한 인재인 블루 시리우스를 일 대 일로 붙인 거다. 하지만 여기에 모순이 자신의 능력을 복사했다면 굳이 참가 안 할 이유가 없었다.
모순이 떨어지며 그간 만들어진 얼음 더미가 깨지고 쌓여 있던 눈이 질펀하게 튀어올라 연기를 형성했다.
“하하… 하던 말 계속하겠습니다.”
그는 태연히 일어나 말을 이었다.
모순의 뒤에서 까마귀는 미친 듯이 불어났고, 그렇게 형성된 홍익오들은 두 마법 소녀를 둘러쌌다. 그 홍익오들의 날개에 얼음 조각이 만들어졌다. 핑크 데네브보다 더 거대하고 압도적인 양이었다.
별빛이 본래의 사용자보다 뛰어났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전에 책에서 읽은 말입니다. ‘날 죽일 수 없는 고통은 날 강하게 할 뿐이다.’ 정말 흥미로운 말이지 않나요. 극복 가능한 시련은 더욱 큰 힘을 선사한다는, 참으로 희망적인 격언입니다. 저는 여기서 영감을 얻었습니다. 당신들은 크게 성장하고 있지만 아직 조금 부족합니다. 리브라는 시작일 뿐, S급 괴인은 이제 본격적으로 활동할 것입니다. 당신들은 그에 맞춰 조금 더 강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홍익오들의 거센 움직임과 동시에 부는 강렬한 눈 바람과 그 안에 섞인 얼음 조각들. 두 능력을 합체 시켜 사용했다.
“그러니 부탁하건데. 당신들을 죽일 수 없는 고통 속에서 살아 남아 주시죠.”
괴물의 아가리가 닫히듯 두 마법 소녀를 둘러 싸던 새와 얼음의 폭풍이 순식간에 좁혀져 그녀들을 덮쳤다.
**
리브라 납치 사건의 증언은 거짓을 섞어 적당히 답했다.
길을 가다 무언가에 맞아 기절했다.
중간에 깨어났지만 눈과 귀가 가려져 납치 당한 탓에 이동하는 과정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납치 과정 중간에 난입한 스큐텀과 북두칠성의 괴인 탓에 풀려날 수 있던 것 같다.
미안하다. 기억이 잘 안 난다. 충격 때문인가 기억이 모호하다.
어차피 거짓 진실은 판별할 수 없고 그를 제외하더라도 증인은 여럿 있다. 골든 알데바란은 크게 문제 삼지 않고 증언을 기록했다.
그렇게 증언은 일사천리로 빠르게 끝났다. 녹음기와 기록용 노트북을 정리하는 골든 알데바란에게 한재중이 물었다.
“그… 저기, 데네브와 시리우스 두 분은.”
“보고 싶으신가요?”
한재중은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따라오시죠.”
짐을 다 정리한 골든 알데바란이 일어났다. 한재중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같이 몸을 일으켰다.
“이렇게 쉽게….”
“원칙 상으론 안 되지만 당신은 둘과 오랜만에 만난 사이지 않습니까. 이정도 융통성은 발휘할 수 있습니다.”
이미 알 사람은 다 아는구나. 한재중이 쓰게 웃었다.
“그리고 당신과 블루 시리우스 씨의 관계에 대해서도 너무 걱정 마세요. 전 그 열애설 이후에 막 마법 소녀가 된 사람인데다 직접적인 친분이 있어 조금 알 뿐. 대부분의 다른 사람들은 아직도 블루 시리우스 씨가 미련을 가졌다고는 알지 못합니다. 딱히 알릴 사실도 아니고요.”
“미련… 말이죠.”
입 안이 썼다. 몇 년이 지난 일인데, 아직도 죄책감이란 감정을 남긴 그녀와 자신. 둘 다 미련이란 말이 참으로 어울렸다.
심지어 기억조차 없는데 가증스럽게도 감정만은 남아 있는 자신은 더욱 미련하였다.
“죄송합니다. 괜히 신경 쓰게 해버렸군요. 그럼 안내받을 수 있을까요?”
골든 알데바란은 고개를 끄덕였다. 여전히 무표정하였다.
그녀를 따라 병실을 나선 한재중은 꽤나 놀랐다. 상상 이상으로 가까운 곳에 입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곳입니다.”
한재중은 그제야 자신이 꽤나 좋은 입원실에 있었단 사실을 깨달았다. 개인실 부터 심상치 않다 느꼈으나 마법 소녀의 케어가 가능한 고급 병실이었던 것이다. 보안도 강하고 다른 병실보다 환경이 좋은 곳.
그런 특혜를 고작 마법 소녀의 지인이었단 사실만으로 얻을 수 있다니, 한재중은 다시 찝찝해졌다.
그런 감정은 침대에 누워있는 지인들의 모습을 보니 싹 사라졌다.
항상 씩씩하던 조아윤이 아무 말 없이 숨만 쌕쌕 뱉고 있었고, 슬픈 눈을 하던 윤설화는 아무런 감정 없이 눈을 감고 있었다.
자신이 쓰러졌을 때 그들이 이런 감정을 느꼈을까. 한재중은 눈살을 크게 찌푸렸다.
몸이 아프단 이유만으로 이 위험성을 외면하다니, 스스로에게 혐오감 마저 느껴졌다.
지킬 수 있는 데 못 지켰다. 그런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생명에 지장은 없습니다. 다만 과로와 겹쳐 깨어나는 데엔 시간이 걸릴듯 합니다.”
골든 알데바란의 설명을 한 귀로 흘리며 한재중은 설화의 손을 홀린듯 잡았다.
그녀가 아직 마법 소녀 일에 익숙하지 않았을 때, 일 하다 갑작스레 심장에 문제가 생겨 쓰러졌을 때, 그는 자주 이러며 평안을 기원했다.
지금의 그는 알지 못했지만, 이 익숙한 행동에는 하나하나 새겨진 시간이 존재했다.
그렇게 손을 꼭 잡으며 한재중은 다시 다짐했다.
내가 그녀들을 지키겠다고.
***
병원에서의 일도 끝마치고 더 이상 있을 이유도 없으니 한재중은 병원을 나섰다.
골든 알데바란이 상처가 상처니 계속 있는 게 좋다 했지만 전여친 돈으로 사치 부리는 게 얼마나 부담인지 이해해주길 바란다고 하니 아무 말 하지 않았다.
그렇게 사람들이 다 일과 학업으로 바쁜 시간, 그는 한적한 거리로 떠밀리듯이 발을 옮겼다.
“벨트.”
[무슨 용무십니까?]“주변 괴인들의 위치를 파악해서 전송해줘.”
[현재 몸상태를 고려하면 썩 좋은 판단은 아니….]“빨리.”
[알겠습니다.]벨트의 염려를 일축하며 한재중은 사람 하나 없는 횡단보도 앞에 도착했다. 병원 근처라 그런지 스산한 분위기 마저 감돌았다.
그런 그의 옆에 슬그머니 정장을 입은 남자가 찾아왔다.
“두 분은 좀 괜찮으셨나요? 제가 위력 조절을 잘못했을 지도 몰라서 말이에요. 너무 큰 후유증은 안 남았으면 좋겠는데….”
“과로와 겹쳐 자는 시간이 길어졌을 뿐 생명엔 별 지장이 없다네.”
“그건 참 다행이군요. 이런 얼굴이니 만큼 병원에 찾아가면 싸우자는 의미 밖에 안 되니까요.”
한재중은 헛웃으며 옆을 돌아보았다.
“나에게 온 건 싸우자는 의미가 아니야?”
그곳엔 사람 머리가 없었다. 본래 눈과 코와 입이 자리했어야 할 머리엔 선인장의 화분이 있었다. 좌우가 완벽히 균등한 선인장.
기괴하면서도 우스운 분재의 남자가 대답했다.
“아뇨?”
태연한 대답이었다.
“싸우려고 온 것이니 문제가 없죠.”
그 말에 한재중은 웃었다.
“그래… 맞는 말이네.”
벨트를 잡은 한재중이 다시 물었다
“난 아직 널 죽일 방법이 없는데 곤란하게 됐네.”
“네? 무슨… 당신은 절 죽일 방법이 있습니다.”
모순이 의아하단듯 말했다.
“기습이죠. 제가 적이라 인식하기도 전에 몰래 다가와 필살의 일격을 꽂는 것입니다. 재생도 못할 만큼 강한 일격.”
모순은 그의 어깨를 잡으며 친밀감을 드러냈다.
“어때요. 정말 완벽한 살해법 아닙니까.”
“암살을 하라고?”
“그럼요. 저라고 해서 무적이겠습니까.”
한재중은 다시 웃었다.
“지금은 불가능하네?”
“당연하죠. 저라고 해서 죽고 싶진 않으니까요.”
둘은 눈을 마주한채 대치를 계속했다. 먼저 움직인 건 한재중이었다.
자신의 어깨에 올린 모순의 손을 치우며 허리춤에 벨트를 장착했다.
모순의 다른 손엔 방패가 생겨났다.
둘은 동시에 읊조렸다.
“변신.”
“실현.”
[ASTRONOMICAL OBSERVATION.] [Reveal the tru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