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nsform or death RAW novel - Chapter 36
Chapter 36 – 친하게 지내자 (4)
우수에 찬 눈빛으로 창 밖을 바라보는 블루 시리우스에게선 범접 하지 못할 매력이 느껴졌다.
참 아름다웠으나, 감히 다가가지 못할 고독이 함께 감돌았다.
별안간 그녀가 백아희를 향해 몸을 돌렸다. 멍하니 보고 있다 눈이 맞은 백아희가 흠칫 몸을 떨었다. 얼음이 몸 안에 들어온 듯한 충격이었다. 오늘따라 더욱 아름다웠다.
불길한 아름다움이었다.
“미안해, 기껏 찾아 왔는데 방치해 버렸네. 무슨 일로 온 거니?”
“아, 그, 그게.”
백아희는 망설였다. 괜히 지금 그 괴인의 이야기를 꺼내도 될까. 쓸데 없이 심란함만 더해주는 게 아닐까.
그런 그녀를 보며 블루 시리우스가 다시 한 번 쓰게 웃었다.
“또 강해지는 법을 알려달라고 하려 했지?”
“아… 네, 네! 맞아요! 헤헤….”
머쓱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워낙 자주 말한 발언이라 기억에 남았나 보다. 실제로 그녀는 블루 시리우스를 향해 전투 시의 팁이나 강해지는 비법 등을 자주 물어보았다.
돌아오는 대답은 언제나 같았지만.
“몇 번이고 말하지만 난 강하지 않아. 너무 기대하지 않는 편이 좋아. 게다가, 마법 소녀의 마법은 개개인마다 편차가 크니까 남의 조언대로 싸우기보단 자신에게 맞는 전투법을 찾는 게 좋고. 또….”
매 번 되돌아 오던 답. 이번에도 같았다. 다만, 오늘은 뒤에 더 말이 이어졌다.
“베가… 아니, 아희야. 너무 놀라지 말고 들어.”
다시 한 번 아까의 불길한 아름다움이 느껴졌다. 그 연유는 눈 때문이었다.
“내가 이번에…은퇴 권유를…… 받았거든?”
그녀의 눈이 가시에 맺힌 눈꽃처럼 아스라한 빛을 품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녹아버릴 것만 같은 아름다움이었다.
“…네?”
“사실 이상한 건 아니야. 아직도 활동하는 게 신기한 나이니까. 예전 부터 종종 풍문으로 들었어. 다만… 눈 앞에서 직접 듣는 게 처음일 뿐이지.”
마법 소녀의 은퇴.
그 시기는 다른 직업에 비해 비정상적으로 빠르다. 스포츠 선수들 중에서도 은퇴 시기가 빠르다는 피겨 스케이팅 선수에 비견될 정도.
이십 대 초중반쯤 되면 대다수의 마법 소녀가 은퇴를 고민한다.
“아, 아직 시리우스 언니는 강하잖아요! 근데 왜 은퇴….”
백아희는 말하면서도 알고 있다.
마법 소녀의 은퇴는 단순히 전력이 안 되기 때문이 아니다.
“그 분이 잘못 안 걸 거에요!”
마법 소녀들만의 특징이 있다.
늙지 않는다.
몸이 어느 정도 성장한 이후에는 시간의 흐름을 적게 받는 것처럼 노화가 현저히 늦어진다.
노화로 인한 전력의 상실은 발생하지 않는다.
전성기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며 전투를 치를 수 있는 데 어찌 전력의 손실이 발생하겠는가.
그렇기에, 은퇴를 하는 이유가 달리 있다.
“이, 이번에 더 강해지셨다고 들었어요! 아직 언니는 물러날 때가 아니에요.”
사람에겐 한계가 있다.
아무리 관심을 받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과도한 관심을 지속적으로 받다 보면 말라 죽어가는 법.
식물에게 과도한 물을 베풀어봤자 죽음으로 돌아오는 것과 같다.
“딜레마가… 이제 계속 움직일 건데….”
끊임 없이 시체를 보면서도 앞에선 웃어야 한다. 누군가를 구했을 땐 칭송 받지만 그러지 못했을 땐 칭송의 배는 될 비난을 받는다.
육체가 정신에 영향을 준다면, 그 반대도 성립하는 법.
피폐한 정신은, 피폐한 육체를 만든다.
육체는 늙지 않고, 다쳐도 금방 회복된다. 하지만 정신은 다르다. 한 번 긁힌 상처에선 끊임 없이 끈덕한 진물이 나온다. 그 진물의 이름은 애수나 죄책감, 자괴감 등이다.
그런 것에 빠져 헤엄치고 있다 보면.
누군가가, 넌지시 알린다.
이제 그만 쉬라고.
사람을 구하다가 널 죽이지 말라고.
마법 소녀의 은퇴는 스스로 결정하지 않는다. 십 대 소녀 시절부터 사람을 지키며 길러온 책임감이 그렇지 못하게 한다. 남이 말하는 거다.
넌 이제 더 이상 일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고.
무엇보다 수치스러운 일이며, 그 수치가 더욱 은퇴의 마음을 만든다.
“물론 지금 당장 하겠단 게 아니야.”
백아희의 침울에 블루 시리우스가 대답했다.
“이제 나도 그럴 상태란 거지. 네가 질문을 던질 사람으로 잘못 골랐단 뜻이야. 아희야, 넌 상당히 늦게 마법 소녀를 시작했잖니? 그만큼 초조한 거야. 하지만 그럴 필요 없어. 넌 지금 충분히 잘 강해지고 있어. 여기서 더 빠르게 달려나가려다간 고꾸라질 뿐이야.”
“하, 하지만 이제 더 강한 괴인들이….”
“아희야.”
블루 시리우스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강경했다.
“우리의 넘어짐은 죽음이야. 다시 일어날 수 없어.”
우연이었지만, 본래 묻고자 했던 괴인의 말과 닮아 있었다.
“마법 소녀의 은퇴는 빠르잖아. 그러니까, 그 전까지 최대한 많은 사람을 지켜야지. 아희야, 우리의 죽음에 가치는 없어. 우리가 죽었다 해서 괴인들이 활동을 멈출 거 같아? 우리가 죽었다 해서 괴인이 사라지는 게 아니야. 결국 한 순간의 감동으로 끝날 손해야.”
블루 시리우스, 10년 가까이 마법 소녀로 활동한 그녀가 말하는 생명의 가치는 한 없이 가벼웠다. 예찬도 환희도, 존경도 없었다.
죽음이란 그저 죽음이었다.
어떤 가치도 없다.
“아희야, 걸어가. 달리지도 날지도 마. 넘어지지 않게 걸어가. 그럼 언젠가 네가 원한 강함에 도달할 수 있을 거야.”
백아희는 묻고 싶었다.
그렇다면 그 걸음 뒤에 얼마나 많은 시체를 뒤로 해야 하나요.
결국 묻지 못했다.
블루 시리우스, 그녀가 봐왔던 시체의 개수를 감히 상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지난 10 년동안 얼마나 많은 시체의 수를 짊어져야 했을까. 그것으로 얼마나 고통 받았을까. 상상할 수 없었다.
그러나 상상하지 못해도 곧 알 것이다.
자신도 그녀와 같은 마법 소녀다.
조금만 시간이 지나도 같은 처지가 될 테니까.
**
결국 마음의 짐만 더 얻게 된 병문안이었다.
“하아… 아앗.”
다시 한숨을 내뿜다 옆구리가 또 아파왔다. 아까 소리를 지른 탓인지 전보다 더 통증이 심했다.
[수호자….]그녀의 마스코트, 리본이 안쓰럽단 듯이 말을 건냈다. 마음을 공유할 수 있는 마스코트이기에 그녀의 비애가 얼마나 큰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존경하던 선배가 크게 다친 것과 그 선배가 은퇴할지도 모른다라는 소식을 연속으로 들었다.
착잡한 심정이 들 수밖에 없었다.
고민을 해결하려 시도한 걸음은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하고 다시 새로운 고민을 불려 가져왔다.
“리본….”
울먹거리며 자신의 마스코트를 끌어 안았다. 그녀의 손이 닿자 남에게 보이지 않던 마스코트가 실체를 가지게 되었다. 고양이 인형 같은 귀여운 모습.
그 복슬거리는 털에 얼굴을 들이밀고 잔뜩 비볐다. 특유의 감촉에 힐링 되는 거 같았다.
[수호자….]방금 전과는 달리 깬다는 목소리로 마스코트가 중얼거렸다.
“아 왜애, 잠시만 쓸게.”
[난 인형이 아니야 수호자….]마스코트의 볼멘 소리를 가볍게 흘리며 심란한 마음을 진정 시켰다.
목숨을 아끼라는 격언 자체는 이해하겠다.
하지만 그것도 상황에 따라 바뀌어야 할 태도 아닌가.
‘마법 소녀가 자기 목숨 위험하다고 도망치는 것도 이상하잖아.’
내가 아직 어려서 말을 못 알아 듣는 걸까. 백아희의 고개가 갸웃거렸다.
[수호자.]“으음… 마법 소녀일은 정말 어렵구나 리본….”
“그런 소리를 들을 정도로 내가 그렇게 막 나가는 타입인가…? 리본, 내가 약간 저돌적이야?”
[수호자! 위험해!]“응? 뭐가….”
리본의 몸에서 얼굴을 떼자 바로 앞에 얼굴이 있었다.
“걸으면서 주변을 보지 않는 건 저돌적이긴 하군.”
“…?!”
우악스런 손이 훅 다가오더니 그녀가 놀라 소리치기도 전에 입을 틀어 막았다.
“읍읍!”
와쳐라고 소리치려 하였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그녀가 변신을 하지 못하게 팔까지 다른 한 손으로 막은 그는 조용히 속삭였다.
“조용히 해라.”
순간 겁이 났다. 무력한 상태에서 맞는 괴인의 힘. 그 압도적인 힘 앞에서 다리가 풀렸다.
반항하고자 하지만 긴장으로 수축된 몸은 그것도 불허 하였다. 포식자와 눈이 마주치며 굳은 피식자처럼, 그녀는 굳은 그대로 와쳐의 손에 끌려갔다.
“여기 쯤이면 아무도 보지 못하겠지.”
으슥한 뒷골목 안으로 그녀를 끌고 간 와쳐는 입을 잡고 있던 손을 휘둘렀다.
몸이 훅 허공을 날고 이내 땅을 굴렀다. 아찔한 통증이 등으로부터 흘러들었다. 그럼에도 몸에 익은 낙법은 잊지 않아 충격을 줄였다.
“…당신이 갑자기 왜.”
“괴인이 사람을 습격하는 데 이유가 필요한가? 아니면, 내가 필요치 못한 사정이 있었다 하면 믿어 줄 수 있나?”
“말해 주신다면….”
덜덜 떨리는 다리를 억지로 움직이며 백아희가 일어났다. 살짝 있던 신뢰 때문이었을까, 더욱 충격으로 다가왔다.
역시, 괴인은 괴인이었을까.
“그래, 말해주마. 널 습격하지 않는다면 죽는다고 협박을 받았다.”
되도 않는 거짓말임을 레드 베가는 바로 알았다.
같은 괴인 조차도 신경에 거슬리면 교전하길 두려워 하지 않던 그가 누구에게 협박을 당하는가.
레드 베가는 얼굴을 닦았다. 살짝 축축한 감촉이 느껴졌다. 놀라 눈물까지 나왔었구나.
“거짓말 하지 마세요.”
“진짜인데 안 믿어주니 슬프군.”
여유로운 태도로 어깨를 으쓱거린 와쳐를 보며 백아희는 이를 악물었다. 놀리는 것일까.
그녀는 종종 순하다는 오해를 받지만, 기본적으로 다혈질이다.
감정 기복이 심하고 감동도 많이 받지만, 화도 자주 낸다.
누군가가 도발했다면 쉽게 넘어가고, 오해도 많이 한다.
자신에게 첫 번째 패배를 안겨준 적수의 등장.
놀랐던 가슴을 식히고, 열정을 끓어 올렸다.
“차라리 절 습격해서 다행이네요.”
이것이 일반 시민이었다면 별 다른 반항도 못하고 죽었을 것이다. 자신이 습격 받은 걸 일종의 행운이라 생각하며 주먹을 쥐었다. 방금 전 얻었던 공포는 지금 구겨 없앴다.
쥐었던 주먹을 피자, 그녀의 손바닥 안에서 작은 불씨가 피어올랐다. 보석과도 같은 불꽃이었다. 그 불씨에 마스코트가 손을 올리니. 리본으로 변모했다.
화려한 보석이 잔뜩 박힌 손잡이로부터 붉은 리본이 쭉 뻗어져 있었다. 옷에 사용하는 것보다는 체조 선수가 사용하는 리본과 비슷한 모양. 그 리본을 머리 위에서 돌리며 원을 그렸다.
“드레스 업!”
[Dress up your star!]원이 된 리본에서 빛이 폭포처럼 쏟아졌다. 붉은 빛은 커튼처럼 그녀의 몸을 외부로부터 가렸다.
그녀가 입고 있던 옷이 재가 되어 휘날렸다. 알몸이 된 그녀의 육신을 별빛이 감싸고, 그 별빛은 다시 불꽃이 되고, 그 불꽃은 새롭게 의복으로 탄생했다.
현실의 몸을 벗어던지고 환상을 덧입었다.
교복을 닮은 흰 색의 드레스 위로 붉은 겉치마가 생기고, 여러 리본과 프릴, 보석 장신구들이 그녀를 꾸몄다. 풀어 내리고 있던 머리카락은 별빛을 받아 불꽃처럼 붉게 빛났고, 양갈래가 되어 휘날렸다.
백아희를 가리고 있던 커튼이 펼쳐지고, 변화한 그녀의 모습을 드러냈다.
마지막으로 그 커튼이 그녀의 가슴께로 모이며 중앙에 보석이 박힌 리본이 되었다.
그렇게, 백아희는 레드 베가가 되었다.
“당신의 마음에 붉은 혜성처럼! 레드 베가 등장!”
와쳐는 박수를 치며 그 변신에 감탄했다. 채 1초도 흐르지 않고 방금 전의 모든 변신이 끝마쳐졌다. 한 번 변신할 때마다 3초가 족히 넘게 소비되는 자신의 변신과는 다르다.
변신 시의 방어 시스템보다는 저렇게 빠르게 하는 편이 좋을 텐데.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고, 벨트 변신 보다 편리해서 좋아 보인다.
레드 베가가 자세를 잡으며 슬픈 목소리로 물었다.
“…저희, 친하게 지낼 수는 없을까요?”
“그건 곤란하군.”
와쳐가 벨트를 툭툭 건드렸다. 아직 퀘스트 완료 음이 울리지 않았다. 조금 더 그녀를 괴롭혀야 할 필요가 있단 뜻.
“미안하게 되었다. 그리 아프게는 하지 않을 테니, 반항하지 않고 나에게 당하지 않겠나.”
“말투가 조금 이상한데요!”
레드 베가가 주먹을 쥐고 그에게 달려들었다.
“당연히, 싫습니다!”
“그러면 아프게 당하도록.”
와쳐 역시 주먹을 쥐고 그녀에게 뻗었다.
두 주먹이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