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nsform or death RAW novel - Chapter 38
Chapter 38 – 친하게 지내자 (6)
변신이 풀린 즉시 솟아 오르는 죄책감과 회의감, 혐오감에 변기를 잡고 오늘 자신의 몸을 이루려 한 것들을 쏟아냈다.
그렇게 연신 구역질을 하다 보니 몸에 힘이 풀리고, 사라진 힘 만큼 다시 혐오감이 차올랐다.
긴 인생은 아니었지만, 오늘은 인생 최악의 날 중 하나로 꼽힐 수 있다고 강하게 예감했다.
아침엔 지인들이 쓰러진 모습을 보았으며 점심엔 괴인과 싸우며 반시체가 되었고 오후엔 여타 다른 괴인과 같이 폭력을 행사했다.
미친 짓이다.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멀쩡하지 않은, 그야말로 광인의 하루.
수호자를 수호하겠다란 의무를 다시 생각해낸지 고작 하루 밖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무슨 짓을 한 건가.
영웅들이 맞는 가혹한 현실에 분노하였으면서 그 영웅에게 가혹한 현실을 만드는 원인이 되다니.
폭력으로 생각을 바꾸려 하다니 이 얼마나 야만적인가.
심지어 그 폭력을 당한 대상은 아직 어리다.
인생의 반의 반도 못 살은, 아직 정신이 제대로 성장하지 못했으며 그 정신이 성장할 제대로 된 환경도 지니지 못한 아이.
꿈에 사로잡힌 사람은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 당연한 현상이다. 딱히 비난이 필요한 일도 아니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일에 필요 이상으로 확신하는 현상은 누구에게나 있으니.
사상이 바뀌기엔 시간이 필요하다.
아직 만난 시간이 그리 길지도 않다. 그녀의 영웅관이 금방 바뀔 리가 없다.
자아 존중의 결여로 인한 자기 생명 경시가 금방 사라질 리 없을 텐데.
식견이 좁은 사람에게 행해야 할 건 교육이다. 폭력이 아니라.
까막눈인 자에게 글자를 알리기도 전에 책을 읽으라 한 어리석은 행위. 미친 짓이다.
왜 알고 있음에도 멈추지 않았나.
그걸 알고 있음에도 행했다. 변명의 여지도 없다. 분명한 악행.
구름에 가려져 보이지 않던 별들처럼, 괴인의 몸에 취해 보이지 않던 여러 후회들이 떠올랐다. 다시 구역질이 밀려 왔다. 이제 뱉을 것도 없었다.
“우에엑! 으엑!”
위산으로 목이 헐었지만 구역질은 멈추지 않았다. 시선 노출 트라우마가 되살아날 때와 비슷했다. 몸은 끝없이 자기 파괴를 바랬고, 그걸 멈추는 건 힘들었다.
퀘스트로 강요받았다 한들 그게 무슨 변명이 되겠는가.
‘퀘스트는 결국 내 이상을 이루기 위한 과정을 제시하는 것에 불과해.’
숨을 억지로 고르며 벨트를 보았다. 그가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퀘스트는 수호자의 이상을 반영하여 제시됩니다.]여전히 대답 하나는 똑바로 잘해준다.
[수호자가 행동하지 않았을 경우, 퀘스트의 불응으로 판단. 죽음에 이르렀을 겁니다.]“그럼 방금 그게 잘 한 거였다고?!”
벨트에게서 대답은 없었다. 고작 기계의 침묵이다만, 긍정으로 느껴졌다.
그 날 목숨 걸고 다짐했던 이상.
퀘스트는 그걸 이루기 위해 만들어진 일종의 시스템이다.
바꿔 말하자면 자신의 무의식이 그걸 바라고 있을 지도 모른단 일이다.
아니. 애초에 그 퀘스트의 진실을 깨닫고 왜 따르지 않을 생각을 안 한 건가.
퀘스트가 완료되었을 때, 미약한 성취감을 느끼지 않았으리라 확신할 수 있나.
그 명칭으로 정말 현실이 의뢰를 마치면 보수를 얻는 게임 같은 것이라 생각한 건가.
안 따랐을 때 죽는다고? 강요 되었다면 합리화할 수 있는가.
밀려 오는 죄책감에 머리를 부여잡으며 벽에 등을 기댔다. 오늘 따라 집에서 나는 냄새가 끔찍했다. 곰팡내가 불쾌했다. 창문을 열어 볼까 했지만 다시 다리를 움직일 힘도 없어 관뒀다.
이렇게 피해자인 것 마냥 비애를 머금고 있는 자신이 다시 역겨워졌다. 그렇게 가만히 자괴감에 빠져 있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어 조용히 정신이 육체를 갉아 먹는 걸 관망했다.
왜 이상함을 느끼지 못했지. 이상을 이루기 위해서라 한들 사람으로서 놓으면 안 되는 게 있을 텐데.
자신의 목적을 위해 윤리를 무시하는… 마치 괴인과 같다.
덜덜 떨리는 입술을 깨물며 진정시킨 다음 벨트에게 물었다.
“야….”
[무엇인가요.]“변신의 부작용 같은 건 없어?”
한참 전에 물었어야 할 질문인데,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별빛에 과다 노출되면… 괴인과 사고방식이 유사해진다거나.”
“…뭐?”
어이가 없었다.
퀘스트의 작동 방식을 보면 미래도 읽는 거 같은데, 모른다니 그게 말이 될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너 미래도 볼 수 있잖아. 그게 무슨 개소리야.”
[정확히 말하자면, 확신할 수 없습니다.]벨트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별빛의 과다 노출로 인해 얻는 부작용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죽음에 이르는 사람부터 아무런 영향이 없는 사람까지 다양합니다. 현재 수호자가 어떤 케이스에 해당할 지에 대해선 확신할 수 없습니다.]미래를 읽는 놈이 확신할 수 없다는 게 무슨 개소린가 싶었다. 꺼림칙한 상상이 더욱 샘솟았다.
이 변신은 안전하지 않을 수도 있다.
몸이 망가지든 의식에 영향이 가든, 아니면 둘 다 일 수도 있겠지.
문제는, 그렇다고 해서 이제 와서 변신을 멈출 수도 없다.
퀘스트만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도 있었다.
이상을 행하기엔 힘이 필요하다.
확신할 수 없는 불안에서 눈 돌리기 위해 그걸 버리는 건 어리석다.
이미 길은 나아갔다. 관성은 강해, 멈출 수 없다.
불안은 하나 더 있었다.
벨트를 아군이라 판단하기 힘들어졌다.
애초에 이 벨트는 누가 만든 것일까.
“너는 누가 만든 거지?”
[대답할 수 없습니다. 현재 수호자의 기억이 활성화 되어 있지 않습니다. 후에 기억을 찾은 이후에는 대답이 가능해집니다.]또 그 놈의 기억인가.
전에 얻은 건 평행 세계의 기억. 웹툰을 보던 자신의 모습.
그런 걸 보면 이 벨트는 단순한 과학의 산물은 아닌 거 같은데.
마법 소녀 전성기, 그 웹툰의 작가라는 폴라리스와 연관된 것일까.
잘 모르겠다.
머리가 아팠다.
애초에 이 벨트는 어떻게 미래를 예측해서 퀘스트를 지시하는 거지.
행동을 강요하는 거 자체는 내가 뿌린 씨앗이니 거둬야 하겠는 걸 알겠다만, 그 퀘스트의 내용이 심히 이상하다.
윤리적 규율을 완전히 무시하고 이상을 이루는 데에만 급급한 모습.
마치 괴인과도 같다.
‘벨트가 지시하는 건 괴인으로서 행해야 할 행동인가.’
수호자의 수호자 와쳐가 아닌, 큰곰자리의 괴인 우르사 메이저로서의 행동.
그저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무엇이라도 망설임 없이 행동하는, 사람으로서의 길을 벗어난 괴물.
사람의 모습이나 비록 그 속은 괴물과 다름이 없으니, 그야말로 괴인(怪人)이다.
그간 죽음의 공포나 이상 따위에 신경을 집중 시켜 퀘스트의 지시를 의심 없이 받아들였다.
그래선 안 되었다.
두려움 없이 행동해서 무엇을 이루겠는가. 행해서 어떤 결과를 이룰지, 그 과정에서 어떤 희생이 벌어질지, 알지 못하는 미래에 충분히 두려워 하며 나아 가야만 했다.
후회스럽다. 하지만 돌이킬 순 없다. 이미 저지른 일이 있다.
반성이 끝난 다음엔, 보다 나은 행동을 행할 뿐.
진이 다 빠진 몸을 억지로 일으켰다. 피곤했으나, 그렇다고 졸린 건 아니었다. 잘 기분이 아니었다. 심장은 아직도 방금 전의 참사를 목격한 것처럼 쿵쾅거렸다.
이미 되돌릴 수 없는 걸 알면서도 몸은 그렇지 못했다. 충격을 잊지 못한 초조함은 가시질 않았다.
‘역겹군.’
다시 자괴감이 몰려왔다.
뭐라도 하며 뇌를 비우고 싶었다.
‘가장 충격을 받았을 사람은 따로 있는데, 내가 뭐라고.’
창문을 열었다.
저녁은 기분 좋은 달빛을 머금고 있었다. 그걸 보니 조금 정신이 상쾌해지는 기분이었다.
돌고 돌아 보는 건 별을 흉내 낸 빛이었다.
방에선 불쾌한 지난 날의 찌든내들이 진동했다. 구역질의 흔적으로 남은 옅은 토사물 냄새와 그걸 덮을 정도로 강한 곰팡내나 먼지의 찌든 냄새가 있었다. 창 밖을 타고 흐르는 괴인 특유의 비린내나 피 냄새.
무엇이든 썩 유쾌한 향기는 아니었다.
푸른 달빛을 얼굴에 담으며 이 밤에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았다.
사람들의 눈이 가려진 시간, 그렇기에 사람의 길에 벗어난 것들이 날뛰는 시간.
사람을 잡아먹는 광인들이 어슬렁거리는 시간.
괴인을 죽이기엔 안성맞춤이었다.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다, 웬 짐승 같은 것과 눈이 맞았다. 자신이 먹음직스러운 먹이로 보이는지 입맛을 다셨다.
식인하는 괴인인가. 이내 그것이 낄낄 웃었다. 마치 비웃는듯 했다. 옛날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남의 시선은 괴인이라 할지라도 불쾌했고, 비웃음은 그보다 더했다. 하지만 방금 전처럼 구역질은 나지 않았다. 이제 뱉을 건 다 떨어졌다.
몸을 움직여 현관으로 향했다.
이 밤에 무엇을 할지 결정했다.
“응?”
현관을 열자 바깥 손잡이 손잡이에 검은 봉투가 걸려 대롱거렸다. 그 봉지 위엔 포스트잇으로 무언가 메모가 적혀 있었다.
-토?하는 소리 다 들렸습니다. 이거 약이에요. 음료수도 있어요. 젤리도 있어요. 병원 가세요.
살짝 어색한 문장과 글자.
봉투 안에는 탈수에 도움 되는 먹거리 몇 개와 함께 약이 들어 있었다.
이웃사람, 시끄러운 미친년인 줄로만 알았는데 의외로 인정이 넘치는구나.
이 삭막한 현대 사회에 어울리지 않는 따스한 배려에 살짝 마음이 뭉클해졌다.
‘모르는 사람에게도 이렇게 친절을 베푸는 게 사람이거늘… 난 방금 뭔 짓을.’
그리고 다시 자괴감이 생겼다. 앞으로 며칠 혹은 몇 년 동안 시달릴 게 뻔했다.
그 봉투를 집 안에 들여 넣은 다음 다시 발을 움직였다. 저렇게 착한 이웃이 있는데 괴인을 방치하는 건 옳지 않겠지. 행동할 합리성을 늘린 난 발걸음을 서둘렀다.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나에게 이끌린 건지 생각보다 가까이서 그 짐승 괴인이 발견 되었다.
벨트를 잡았다. 순간 살짝 찜찜한 마음이 들긴 했다.
‘변신의 부작용… 분명 있겠지.’
원래 상황은 언제나 최악을 가정해야 하는 법.
평범한 사람의 몸으로 별빛에 과다 노출 되어 부작용이 없을 리가 없다. 마법 소녀와 달리 이쪽은 마력을 쓰지도 못하니.
마법 소녀는 별빛을 마력으로 정화시켜 사용한다.
굳이 정화란 단어가 있는 걸 보면 무언가 안 좋은 영향이 있는 건 확실하겠지.
하지만 앞서 결정했듯이, 이상을 이루기 위해선 힘이 필요했다.
벨트를 잡아 그대로 허리에 부착했다.
“드디어 뵙는구려.”
짐승 괴인의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남자? 민간인인가. 그렇다 치기엔 괴인이 있는 데도 당황이 하나 없었다.
“나의 동지여!”
밤의 그림자에 가려진 인영이 이 쪽으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추적!”
[Pursue the truth.]그의 몸에서 환한 빛이 일었다.
빛 속에서 본 그의 모습은, 나침반의 별자리를 띄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