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nsform or death RAW novel - Chapter 4
Chapter 4 – 첫 번째 대면
다행히 경찰이 날 찾아온 건 오늘 새벽에 있던 괴인 사살 활동 겸 마법 소녀 격퇴 사건을 추궁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애당초 책이 잡힐 거리가 없었다. 얼굴도 지문도 혈흔도 뭐 하나 증거가 없는데 어떻게 날 특정해서 잡아냈겠는가.
뭐 알리바이 따윌 조사하면 수상하다고 판단 될 지 모르나 이렇게 빠른 시간 내에 그 정도의 수사가 이뤄질 리 없었다.
즉, 경찰이 날 찾아온 목적은 어제 막 S급 괴인으로 규정된 놈을 잡으러 온 게 아니었다.
“그… 죄송합니다만 학생… 조금 민감한 질문일 수도 있는데요…..”
변신 소동이 아니라 자살 소동 때문이었다.
“자살을… 하시려고 했죠…?”
내가 미처 정리하지 못한 유서나 로프 따위를 모텔 주인이 발견한 모양이었다. 그 덕에 여기 자살 시도자가 있었다며 경찰에 신고가 들어갔다.
돌겠군.
너무 정신 없던 나머지 지갑만 챙기고 아무것도 챙기지 못했다. 적어도 뒷정리는 했어야 하는 건데. 주인장에게 미안하게 되었다. 얼마나 식겁했을까.
“….”
“저기요…?”
내가 자살 희망자였던 사람이라 그런지 날 대하는 경관은 한껏 조심스런 태도였다. 하긴, 굳이 자극해서 좋은 게 없겠지.
“네. 맞아요.”
“아, 그렇군요… 혹시 왜 그랬는지 사유를….”
“그냥 평범한 이유에요. 고아에 고졸에 고시 실패로 인생 던져버리고 싶었거든요.”
그 사유는 전부 유서 안에 있을 텐데.
유서를 안 본 건가?
그렇다면 다행인 일이다. 무슨 생각인지 블루 시리우스와 관계가 있었음을 이 몸의 전 주인이 썼으니까 말이다.
마법 소녀와 자살 희망자 사이에 연결점이 있는 건 좋은 일이 아니다.
매일 가쉽거리를 찾아 다니는 놈들에게 굳이 먹이를 던져 줄 필요가 있나?
괜히 또 다시 블루 시리우스의 과거 열애설을 조명 시킬 필욘 없겠지. 이 몸에게도, 그녀에게도.
“어젯밤 동안 방에 없던 걸로 아는데… 그 시간 동안에 뭘 하셨나요?”
“괜히 죽을 위기에 처하니까 또 살고 싶어진 거 있죠? 그래서 발 가는 대로 아무 데나 돌아다니면서 산책했어요.”
별 다른 말을 덧붙여 봤자 좋은 꼴을 보진 못할 게 뻔하다. 난 최대한 말이 될 것 같은 거짓말을 내뱉고 말을 줄였다.
이후에도 상투적인 질문과 자살 시도를 안 하겠단 여러 다짐까지 받아낸 다음에야 겨우 문답이 끝났다.
‘망할….’
짜증이 솟구쳤다. 겨우 그것 하나 정리를 제대로 못해서 지금까지 휴식을 못 취하고 있다니.
[현재 심박수가 좋지 않습니다. 정신을 가다듬으십시오.]누구 때문인데. 이를 악물며 튀어나오려는 욕설을 참아냈다.
말하는 쇠 공이 날아 다니는데도 주변의 사람이 아무 말 없는 걸로 보아, 이 녀석은 나만 보고 들을 수 있는 거 같다.
아니, 내가 보고 있다고 어떻게 알지? 저건 그저 내 환각에 불과하지 않을까. 사실 어젯밤 있던 일도 전부 한 밤의 꿈처럼 내가 겪은 환상에 불과했을 수도…..
[현실 도피하지 마십시오. 당신이 겪고 있는 건 분명한 현실입니다.]알아 새끼야. 가끔 사람이 힘들면 이렇게 도망도 치고 하는 거지.
이 녀석 내 생각까지 읽는다.
설마 싶었지만 아무래도 맞는 거 같다.
이 쇠 공(으로 둔갑한 벨트)이 나의 마스코트다.
마법 소녀에게 흔히 있다는 마스코트.
변신에 도움을 준다.
변신자 이외의 사람들은 인지 하지 못한다.
굳이 말이 아닌 생각만으로 대화가 가능하다.
귀여운 외모가 아닌 걸 제외하곤 마스코트의 역할에 전부 부합한다. 별의 힘으로 변신하는 거부터 마스코트의 존재에 수호자란 호칭까지.
내 변신과 마법 소녀의 변신은 근본적으로 동일하단 의미다.
그런데 도대체 뭘 수호하란 건가. 시민? 그런 데 마법 소녀는 왜 쓰러뜨려? 참 복잡하다….
“저기.”
이야기가 끝마쳐갈 때 쯤 경찰이 다시 조심스럽게 운을 떼었다.
“죄송하지만 자살 시도를 한 경우엔 보호자에게 연락하게 되어있거든요. 죄송하지만 그런 연락처 좀….”
“없어요.”
“네?”
“아까 말했듯이 고아에요. 친척이 있는 지도 모르겠고, 친구도 연인도 없어요. 심지어 저도 휴대폰이 없어요.”
사실대로 대답해주자 경찰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그는 부랴부랴 서랍에서 명함 하나를 꺼내더니 나에게 건네주었다.
“자살 상담소 연락처입니다. 최근엔 괴인출몰율도 상당하니까요….”
괴인이란 인간의 부정적인 감정을 먹으며 강해지는 생물.
그렇기에 자살 희망자 같은 우울에 빠진 부류들은 괴인에게 좋은 먹잇감이다.
나라에서 괴인이 나타나기 전보다 자살희망자를 더 많이 챙기는 것도 어쩔 수 없다. 전체적인 치안 유지를 위해서 필수이니. 자살 희망자에게 이끌린 괴인이 오직 그 자 한 명을 죽이고 떠나는 것도 아니고.
경관의 저 반응도 이해가 된다.
하지만 난 그 명함을 밀며 거절의 의사를 표했다.
“죄송하지만.”
“상담을 받을 경우 기초적인 돈을 지원해 준다고 합니다.”
“감사하게 받도록 하죠.”
명함을 쓰윽 주머니에 꽂았다.
이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돈은 귀하다. 심지어 이제 제대로 된 직업은 못 가질 나를 생각하면 더욱더.
벨트가 있기 때문이다.
이 녀석은 괴인을 감지만 하면 내가 일을 하고 있든 말든 무단퇴근을 권유할 테니.
랜덤하게 발생하는 죽음 이벤트라니 직장을 어떻게 다니나.
[퀘스트 발생.]그래, 이렇게. 세 번을 넘으니 긴장감보단 짜증이 먼저 생겼다.
“오늘 수고 하셨습니다.”
“아, 저기 자택까지 바래다.”
“저 집 없어요!”
진짜 없을 거다.
원작에서 블루 시리우스가 한재중의 집을 찾아가 봤지만 이미 방을 뺀 상태였던 게 기억난다.
자살을 결심했을 때부터 물건도 관계도 전부 청산한 것이겠지.
[이곳으로부터 7시 방향에서 괴인이 탐지 되었습니다.]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나며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었다.
“아 맞다. 혹시 이 일 기사로는 안 나겠죠?”
“네? 아 네… 자살 쯤이야 흔한 이야기니까요. 기자도 없었습니다.”
“그럼 다행이네요.”
괜히 기사가 나면 곤란하다. 정체 폭로 따위를 걱정하는 게 아니다. 이 몸이 가진 트라우마 때문이다.
[변신하십시오.]“이따가 할 게 이따가. 아 그 쪽한테 한 거 아니에요. 저 이제 가보겠습니다.”
그렇게 급하게 경찰서를 뛰쳐 나왔다.
아 졸리다.
**
-새롭게 나타난 수수께끼의 S급 괴인. 마법 소녀 이대로 괜찮은가…?
스마트폰 안에 띄워진 기사는 어젯밤의 참패를 조금도 가리지 않으며 비췄다.
-요새 진짜 흉흉하긴 해요 최근 우리 동네에서도
-그래도 우리 레드 베가 군이 용감히 대처해 준 게 다행이네요. 사상자가 없단 게 참 다행입니다.
기사 댓글란에는 몇 년 간 지속되고 있는 ‘마법 소녀 선플 달기’ 운동 탓인지 살짝 정제된 댓글들이 좋아요를 많이 받아 위에 가 있었다.
하지만 조금만 음지를 가면 반응은 훨씬 날 것으로 생생하고도 신선하게 드러나 있었다. 마치 막 가른 생선의 내장을 들어다 보는 기분이었다.
-렏으 벡아 이번 기회에 거픔 싹 빠졌네?ㅋㅋㅋㅋ 그간 언플 조지게 하던데 쪽팔려서 어쩌나?
-솔직히 그렇게 기대되는 신성이었는지도 잘 모를… ㅎ 그냥저냥 이던데
-렏으빠들 초신성이라면서 존나 유난이던데 꼴 좋다ㅋㅋㅋㅋ 무패? ㅎ… 좀 생각이란 걸 하고 말해야
‘레드 베가’란 검색어에 걸리지 않게 일부러 서치 명을 뒤바꿔서 까는 글. 여긴 그나마 낫다.
-베가야! 패배한 김에 이제 일본가서 AV나 찍자! 어차피 너 허접이었잖아ㅋㅋㅋㅋ
└미친 새끼ㅋㅋㅋㅋㅋ
└일본 애들도 거를 듯
-떡 발려서 땅 뒹군 베가 사진 없음? 급함
└오… ㅇㄷ
└’떡’ 발린 베가 개꼴개꼴
└하 시발 못 참겠네 하반신에 피 쏠릴 거 같다
이런 쪽을 가면 검색 방지는 조금도 하지 않는다. 어차피 vpn으로 작성해서 고소 당할 걱정은 없다 이거지.
“역시나.”
마법 소녀 ‘레드 베가’, 본명 백아희는 스마트폰을 던지며 침대에 그대로 쓰러졌다.
해외 쪽의 반응도 살펴 볼까 하다가 관뒀다. 어차피 그 쪽은 레드 베가의 패배 소식 보단 새로 등장한 S급 괴인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질 테니.
마법 소녀라고 하면 돈도 벌고 관심도 많이 받고 좋은 일 아니냐고 자주 듣는다.
불특정 다수에게 관심을 받는단 건 그에 비례해서 불특정 다수의 열등감 덩어리들에게 노려진단 뜻임을 모르고.
돈? 그것도 괴인 에게 죽으면 그대로 끝이다.
마법 소녀가 피겨 스케이트 선수보다 빠르게 은퇴하는 이유가 있는데.
하지만 지금 백아희의 마음을 긁는 건 그 따위 반응 때문이 아니었다.
“아아아악!!!!”
그녀는 침대를 구르며 소리 질렀다.
“졌어!! 졌다고오오!!!”
마법 소녀가 되고 나서 이제 반 년. 그동안의 전적은 무패! 목표는 은퇴 전까지 무패! 인터뷰를 받을 때마다 항상 하던 소리였다.
무패.
단 한 번의 패배도 허용하지 않는 강함.
지금까지 어떤 마법 소녀도 기록하지 못했던 전설적인 업적. 마법 소녀가 되었다 하면 다들 한 번쯤 꾸는 꿈. 그걸 최초로 이룰 수 있을 지도 몰랐는데.
어제 자로 그 무패의 꿈이 무너졌다.
“개 쪽팔려어어!!!!”
변신폼으로는 절대 못 말할 비속어 까지 내뱉으며 침대 위를 굴렀다.
차라리 조금 대등한 싸움이라도 펼쳤으면 이러지도 않을 것이다.
단 일격. 조금의 타격도 입히지 못하고 단 한 번의 공격에 벌레처럼 나가 떨어졌다.
말도 안 된다.
일로(一路). 화음(火音)은 그간 자신과 함께 계속하여 발전해나간 필살기란 말이다. 자신의 성장과 서사를 상징하는 그 기술이 고작 손 하나에 막혔다.
참패.
뒷말이 오가지도 못할 완벽한 패배.
선배들은 그런 게 원래 S급 괴인이라며, 몸이 멀쩡한 것 만으로도 다행이라며 그녀를 위로했다. S급 괴인은 자연 재해 같은 거라고.
그렇다면 그 자연재해를 막기 위해 있는 마법 소녀가 대체 왜 존재한단 말인가.
그들의 위로는 조금도 레드 베가의 마음을 울리지 못했다.
지금도 그녀의 머릿속엔 어제 만난 괴인의 목소리가 울리고 있었다.
‘약해.’
‘굴욕적으로 생각하지 마렴. 당연한 거니까.’
‘가엽군.’
떠올리기만 해도 심장이 찌그러지는 듯한 분노를 가져오는 말들 뿐. 몇 마디 깊게 나누지도 못했지만 그의 말은 마음 속 깊게 자리 잡아 백아희의 꿈을 난도질 했다.
‘약해서 미안하게 됐네! 굴욕적으로 생각하지 말라고? 네 놈도 내가 약해서 불쌍하다고 말했으면서 뭘 굴욕적으로 생각하지 말란 건데!!!’
그렇게 열심히 난동을 부린 뒤에야 진정이 가능했다.
“후우….”
[지, 진정했어?]곁을 떠다니는 마스코트, 고양이의 모습을 지닌 자그만 솜덩이 같은 것이 걱정스레 물었다.
“걱정 고마워 리본아.”
변신할 때 리본이 되어서 리본이라 지은 마스코트의 이름을 부르며, 백아희는 몸을 일으켰다.
침대 위에 앉은 백아희는 숨을 고르며 의식을 재정비했다.
“인정해야 돼. 난 패배했어.”
아까 일부러 음지의 글을 읽으며 스트레스를 받은 이유는 그 패배에 대한 벌이었다.
날 것의 반응은 정신을 번쩍 들게 해주는 쓴 약으로 유용하다. 소수의 반응일지언정 절대 없는 반응은 아니기 때문이다.
“내 꿈은 이렇게 끝났어.”
그러나.
“이제 새로운 꿈을 꿀 거야.”
레드 베가는 무패를 지우고 그 위에 새로운 꿈 하나를 덧 씌웠다.
“반드시 설욕한다…!”
빠득. 이가 갈리는 소리가 들려 왔다.
‘다시는 나보고 약하다, 당연하다, 가엽다 따위의 말을 못 뱉게 만들어주마!’
그렇게 다짐하며 멘탈을 다잡은 뒤 옷을 갈아 입고 짐을 챙겼다.
“그럼, 이제 출발해 보죠!”
정신 수양은 끝냈으니, 이제 일할 시간이었다.
**
인간의 부정(否定)을 먹이 삼아 강해지는 괴인.
마법 소녀는 이와 완전히 반대 되는 사랑과 평화로 별의 빛을 강하게 만들 수 있다.
사랑의 힘은 상당히 위험한 편이라 권장되지 않는 반면. 평화는 다르다.
평화 유지에 기여하는 것은 부작용 없이 안전하게 힘을 키울 수 있다.
마법 소녀가 공익 활동에 자주 나서는 것도 이 때문이었다.
반 년 차 마법 소녀, 레드 베가 역시 그간 수많은 공익 활동을 해왔다.
이번에 하는 자살 상담소 역도 바로 이 것 때문.
“후흥~”
레드 베가는 평소 미디어에 자주 보여주는 변신폼이 된 채 콧노래를 불렀다.
이 상담소 활동이 미리 광고 되었다면 자살 희망자가 아닌 다른 사람이 몰릴 지도 모를 일이었기에, 이번 활동은 철저히 서프라이즈적으로 기획 되었다.
이 문 너머 사람이 얼마나 놀란 표정을 지을까?
‘패배했다고 한들 아직 신성인 레드 베가가 왔으니까!’
자아 존중감이 높은 생각을 하며 힘차게 문을 열었다.
“안녕하십니까! 당신의 마음에 혜성처럼! 붉은 별 레드 베가가 여기… 엥?”
드르렁.
들려오는 건 깜짝 놀란 비명 소리나 떡 굳은 채로 뱉은 바람 빠진 소리가 아니었다.
편안함을 소리로 표현한 전위적인 예술이 그곳에 있었다.
한 편의 일인 연극이 아니었을까 하는 감성 까지 느끼게 할 만큼 이색적이고도 남 다른
책상 위에 드러누워 안내 책자를 눈 가리개 삼아 한 숨의 잠을 즐기는 중인 장신의 남자.
축 늘어진 팔과 함께 책상 아래로 대롱거리는 이름표.
그것에 적힌 세 글자.
한재중.
오늘 첫 번째 상담자의 이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