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nsform or death RAW novel - Chapter 46
Chapter 46 – 당신의 마음에 혜성처럼 (7)
백아희란 소녀가 마법 소녀에 빠지게 된 계기는 단순하다.
알을 깨고 나온 아기 새가 처음 본 걸 부모라 각인하는 것처럼, 백아희는 생에 가장 강렬하게 남았던 첫 번째 기억을 평생의 동경으로 삼은 것에 불과했다.
백아희가 첫 번째 기억은 화려하다 표현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불타는 자동차와 도로 속, 귀를 시끄럽게 울려대는 이명과 비명과 소음들, 환한 불꽃이 피어올라 도로 위에 뿌려진 혈흔 따위를 장식했다. 신호등은 붉게 계속 점등하였고, 사이렌도 똑같이 붉었다.
붉디 붉은 세상.
그 혼란 속에 나타난 별빛.
마법 소녀의 등장이었다.
아직 유아였던 소녀의 뇌에 평생 사라지지 않을 자국을 남긴 등장이었다.
그것은 마치, 맑은 하늘에서 별이 온 것만 같았다.
밤하늘이 아닌 때에도 빛을 잃지 않은 신비하고도 거대한 광채.
이 세상을 밝히기 위해 스스로를 불태우며 떨어진 혜성으로 보였다.
흐릿한 의식은 그 날의 모든 기억을 꿈처럼 만들었지만, 실제 꿈과 달리 백아희는 그 기억을 몇 날이고 기억했다.
백아희는 그 날 고아가 되었다.
하지만 이 날의 기억은 딱히 트라우마로 남지 않았다.
붉은 색의 기억들은 별빛으로 덧씌워 가려졌다.
아직 부모의 존재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아이에게 상실의 슬픔은 상당히 난이도 있는 사고 활동이었다.
상실의 슬픔보단, 그 날 본 아름다운 것이 더 기억에 남았다.
고아가 된 백아희는 할머니와 함께 지내게 되었다.
그 노파는 아이가 아닌 어른이었기에 상실의 슬픔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 침체의 나날 속, 노파는 한동안 소녀를 챙기지 못했다.
슬픔에 잠시 빠져나온 노파는, 하나 뿐인 손녀에게 그 날 본 별빛이 마법 소녀라고 알려 주었다.
소녀는 눈을 빛내며 흥미를 품었다.
노파는 부모를 잃었음에도 별 다른 투정 하나 부리지 않은 기특한 소녀에게, 자신이 할 수 있는 내에서 최선의 희망을 보여주었다.
그 대부분은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정보 매체에서 마법 소녀의 정보를 얻어, 소녀에게 보여주는 것이었다.
도서관에서 마법 소녀 관련 서적을 빌려 읽혀주고, 오래된 전자기기를 만지며 여러 영상을 보여 주었다.
소녀는 밥도 먹지 않으며 그 마법 소녀란 존재에 빠져 들었다.
막연히 품던 동경은 보다 구체적인 실체를 가지고 소녀에게 다가왔다.
소녀의 눈가에 아른거리던 별빛은 심장을 울리고 마음에 닿아, 변화의 씨앗을 심었다.
별을 동경하던 소녀가 별을 노리게 되었다.
그렇게 소녀에겐 꿈이 생겼다.
꿈과 같은 기억이 현실의 꿈으로 탈바꿈하는 순간이었다.
과자나 디저트 하나 제대로 먹을 수 없을 만큼 가난했지만, 딱히 힘들지 않았다.
학교에선 엉뚱한 행동을 많이 한다고 은근히 소외당했지만, 딱히 외롭지 않았다.
소녀에겐 부모 없이도 꿋꿋이 자랄 수 있게 키워준 할머니가 있었고.
모든 시련과 역경을 이겨낼 꿈이 있었다.
꿈이 생긴 그 날 이후로 소녀는 마법 소녀가 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행했다.
마법 소녀가 되는 방법 따위가 밝혀진 건 아니었다.
그럼에도 소녀는 행했다.
마법 소녀와 비슷한 마음을 가지고, 비슷한 일을 행하다 보면 언젠가 마법 소녀가 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믿음을 가지고.
언제나 선행을 멈추지 않았다.
다른 아이들이 놀이를 할 때 그녀는 길가에 버려진 쓰레기를 줍는 등의 자그만 봉사 활동을 했다.
그렇지 않으면 마법 소녀의 전투를 따라하며 체력을 기르고 싸움에 대비하는 자세를 갖췄다.
가끔씩은 보다 대담한 짓도 하였다.
중학생이 된 백아희는 가끔 괴인 피난 권고에 따르지 않고 다친 사람들을 피난소 까지 안내하거나 하였다.
보다 더 대담해질 때는 괴인의 눈길을 끌어 다른 사람이 피난할 수 있게 돕기도 하였다.
그 때마다 마법 소녀에게 엄청 혼나긴 했다. 이런 사건들이 쌓이고 쌓여 백아희는 마법 소녀 협회 내에서도 알아주는 요주의 인물로 주의를 받게 되었다.
꽤 충만한 나날들이었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 마법 소녀의 열망을 가지고 있다 자부한 백아희는 성인이 되기 일 년 전까지 마법 소녀가 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마법 소녀는 대부분 중학생 혹은 고등학교 입학할 나이 정도에 된다.
심한 경우 초등학생 때 마법 소녀가 되는 경우도 있다.
백아희는 시기를 놓쳤다.
꿈을 응원하던 여러 이들도 고등학생 2학년이 끝나갈 무렵엔 안쓰러울 시선으로 바뀌었다.
할머니는 소녀에게 이제 슬슬 다른 진로를 알아보는 게 어떠냐고 권하였다.
그래도 소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불가능한 현실에 직면했을 때, 마법 소녀라면 당연히 포기하지 않을 테니까.
어릴 적부터 확고히 형성된 영웅관은 소녀의 행동 원리가 되었고, 소녀의 고집과 끈기이며 미련이 되었다.
그렇게 소녀는 결국 성취할 수 있었다.
고등학생 3학년의 봄.
오늘도 즐겁게 공부를 도외시하며 학교를 빼먹고 괴인 피난에 조력을 가한 다음 알바까지 마치고 돌아온 날이었다.
평범한 일상이었다.
비일상은 귀갓길에서 시작되었다.
이상하게도 소녀가 집에 도착했을 때에도, 사이렌 소리가 떠나질 않았다.
드디어 미쳐버린 건가 생각한 소녀는, 도망쳐 나오는 사람들을 보며 지금 이게 환청이 아니라 진실임을 깨달았다.
소녀가 살던 가난한 동네에 괴인이 습격하면서 여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을 때, 소녀의 유일한 가족 마저 그 사상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을 때, 소녀에게 말 그대로 꿈 밖에 남지 않았을 때,
백아희는 마법 소녀로 각성하게 되었다!
**
한재중은 착잡한 심경이었다.
주말이라 그런지 사람 하나 없고 텅 빈 건물, 약간 낡은 티가 나는 그것을 보며 한숨을 내뿜었다.
“돌겠네….”
그 아이를 무슨 낯으로 봐야 하는가.
분명 엄청 침울해 있을 텐데, 아니 그 정도라면 차라리 다행이지.
평생 가도 지워지지 않을 상처를 입었으면 어떡하나.
폭력은 단순한 신체적 고통만이 아니라 억압당하는 공포와 무력감, 수치심도 느끼게 한다.
어떤 핑계가 있다 하더라도 교육은 폭력으로 이뤄질 수 없다.
죄악감이 심장을 찔렀다.
입 안에선 옅은 피맛이 났다. 자괴감에 입 안을 깨문 탓이었다.
그 쇠맛을 느끼며 그녀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고민해 보았다.
괜히 그 일을 언급하면 실례겠고, 섣불리 위로를 시도하는 건 오지랖이겠지.
애당초 그녀는 자신의 정체를 모른다. 한재중이 그 날의 패배에 책임감을 느끼는 모습은 이상해 보일게 분명했다.
턱에 손을 올리며 가만히 고민해 보았다.
‘아예 변신해서 도게자를….’
상당히 극단적인 해결 방안이었다.
한재중의 마음은 폭풍처럼 혼란스러웠고 폭풍의 눈처럼 고요하였다.
‘아냐, 오히려 이런 사과는 가해자만 마음이 편해질 뿐이야. 피해자가 원치 않는 사과는 단순한 민폐다. 그녀가 맘 편히 원망하게 두는게 오히려 좋지 않을까…?’
어느 감정이든 극으로 치닫으면 행동도 극단적으로 만든다.
죄책감도 그러했다.
‘아냐, 이건 와쳐로서 행할 일… 지금의 난 그 친구에게 무슨 말을 해야하지? 뭘 할 수 있지?’
저번처럼 훈수를 두기에도 애매하다.
위로는 더욱 지양해야 했다.
무슨 명분으로 함부로 말을 올리는가.
밤에는 애를 패고 낮에는 상냥히 대해준다고?
무슨 가정 폭력범도 아니고.
정체를 감추고 그러니 더욱 악질이다.
망할 퀘스트.
그렇게 애를 때리라는 퀘스트가 왜 나온 건가.
저번 거북자리의 수준의 위험을 대비하기 위해 이 정도의 조치가 필요했다고?
겨우 그 정도 위험에서 살아남기 위해 폭력으로 두려움을 심을 필요가 있던 건가.
이 벨트는 무슨 가능성을 보았길래 그런 걸 지시했는가.
‘결국엔 내가 두려움을 심을 필요성을 느꼈기에 그런 퀘스트가 나왔겠지만….’
“왁!”
그 때 누군가가 그의 등을 흔들며 큰 소리를 질렀다.
흠칫 놀란 한재중은 뒤를 돌아보았다.
“베가 씨.”
“헤헤, 놀랐어요?”
장난스레 웃는 백아희가 손을 흔들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길게 했어요?”
그녀는 모른다. 지금 자신에게 폭력을 휘두르며 헛소리를 씨부린 미친놈이 눈 앞의 남자라는 걸.
그렇기에 저렇게 순수하게 웃을 수 있는 거다.
한재중은 제자리에 가만히 굳었다.
방긋거리는 백아희를 직시한 채로 가만히.
“…? 왜 그러세요…?”
“아, 너무 놀라서….”
한재중은 억지로 입꼬리를 틀어 올리며 어색하게 웃었다. 누가봐도 수상한 웃음.
“…설마, 제가 한재중 씨의 트라우마를 건드린 거….”
백아희는 지레 짐작하여 손으로 입을 틀어 막았다.
“아니에요! 그런 거 진짜 아닙니다. 애초에 놀라는 걸로 자극될 과거사 따위 없어요.”
이러다간 오해가 오해를 낳는 악질적인 꼬리 물기의 상황이 되어 버린다. 한재중은 황급히 변명했다.
“오랜만에 베가 씨를 보니 뭐라고 해야 하나… 이런 마법 소녀가 내 상담사라는 게 안 믿겨서 멍해졌다고 해야 할까요.”
거짓은 없었다.
왜 하필 그녀가 내 상담사란 말인가.
“어머… 꼬시는 건가요?”
“어디 잡혀가기 싫으니까 그런 소리 하지 마세요.”
둘은 장난스레 대화하며 건물로 다가갔다.
레드 베가가 가진 키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 갔다.
휴일로 인해 오늘은 그들만이 이 건물의 사용자였다.
“미안해요 제 사정 때문에 괜히 주말 까지 이런 데에 나오고요.”
“어차피 지금은 백수인걸요. 언제라도 불러주세요.”
“자조적 표현은 좋지 않아요!”
“사실인걸 어쩌겠습니까.”
한재중은 허허 웃는 얼굴의 뒤편 숨이 멎을 듯한 답답함을 느끼고 있었다.
레드 베가는 지금 밝아 보이지만, 전부 억지로 쥐어 짜낸 명랑함에 불과했다.
그런 느낌이 확 들었다.
향수 냄새가 진하고 화장도 평소와 다르게 짙었다.
무언가를 감추기 위해 외면부터 신경 쓴 것이었다.
차라리 변신이라도 했다면 이런 거추장스러운 치장도 필요 없었겠지만, 그의 트라우마를 신경 써 시선이 몰리지 않도록 평소의 모습으로 나와주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자신의 탓이었다.
목 아래가 검게 타 들어 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래도 이젠 취업 활동도 슬슬 시작하려고요.”
그녀의 박살 난 자존심과 명예를 어찌 회복시켜 주어야 할까. 가해자는 피해자에게 어떤 식으로 사죄를 바쳐야 할까.
무엇을 해도 기만 밖에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굳은 머리를 필사적으로 굴리는 한 편, 한재중은 레드 베가에게 얻은 밝음을 어필하며 그녀의 존중감을 키우고자 하였다.
“다 베가 씨 덕이에요.”
“저, 전 아무 것도….”
“그저 옆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힘이 되어 주는데요. 그리고 자조적 표현은 안 좋다고 방금 베가 씨가 말했지 않았나요?”
무엇을 입에 담아도 편해지지 않았다. 아니, 편해지면 안 되었다.
지금 할 건 자신의 편안함이 아니라 백아희란 소녀의 편안함을 최우선 해야 한다.
설령 그 결과로 평생의 불편을 얻는다 하더라도.
“게다가 베가 씨가 아무것도 안 하진 않았죠. 제 자살을 구해줬잖아요. 심리적으로든, 물리적으로든.”
한재중은 이번 상담에서 어떻게든 그녀의 상처 일부를 치유해야 한다고 다짐했다.
내담자와 상담자의 입장이 역전 되었다.
“베가 씨, 당신은 당신 생각보다 훨씬 귀하고 특별한 사람이에요.”
철컥.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상담실의 문이 열렸다. 두 사람이 쓰기엔 상당히 넓은 방 안, 탁자와 의자가 즐비 해 있고, 칠판 등도 있다.
원래는 레크이에이션용 시설이었을까.
하늘을 훤히 보여주는 탁 트인 창문이 개방감을 주었다.
오늘은 화창한 날이라 평소보다 하늘을 푸르렀다.
그 하늘 속에서 무언가가 움직였다.
비행기나 헬기, 그런 것이라 부르기엔 그것은 너무 빛나고 있었다.
혜성이라 부르기엔 중력을 거스르는 중이었다.
그리고, 혜성보다 빨랐다.
그것은 이쪽으로 다가왔다.
창 밖에서 별빛이 다가왔다.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창문 한 가득 빛무리가 먹은 상태였다.
한재중은 홀린듯이 레드 베가를 감싸 뒤로 엎어졌다.
콰아아앙!!!!
별빛이 창문을 깨뜨리고 다가왔다.
지진조차 비웃을만한 거대한 진동과 귀를 찢는 이명. 삐- 하는 소리가 길게 이어졌다. 파괴의 시작이었다.
건물은 붕괴되며 한재중의 후두부에 돌 조각 하나를 툭 떨구었다.
퍽!
**
“으으… 으….”
“재중 씨! 재중 씨!”
누군가가 급히 부르는 소리에 한재중이 의식을 차렸다.
시야에 들어 온 것은 레드 베가였다.
머리 부근에 상처가 있었고 팔도 골절된 건지 심하게 부어올랐다.
부상이 상당했다. 아까 충돌로 인해 다쳤나 보다.
“아…! 재중 씨 괜찮으신….”
“다쳤….”
한재중은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이 소녀가 걱정스러웠다.
그러다 느꼈다.
몸의 감각이 이상했다.
특히 배의 부근이.
[과다 출혈 상태입니다. 지혈하십시오. 현재 상태로 변신할 경우 사망할 위험이 큽니다.]벨트의 목소리에 천천히 시선을 가슴 아래로 돌렸다.
쇠파이프 같은 것이 박혀 피가 홍수처럼 흐르는 중이었다. 다리는 잔해에 깔려 이상한 각도로 뒤틀려 있었다.
변신을 하는 순간 죽음.
이 소녀를 지킬 수 없다.
이 소녀도 괴인에 대항하기엔 너무 많이 다쳤다.
“소녀여.”
이 곳의 다가온 별빛의 정체.
리브라가 말했다.
“그곳에서 비켜라.”
한재중은 깨달았다.
이제야 알았다.
그 때 행한 폭력의 의미.
왜 그렇게 급하게 두려움을 심을 필요가 있었는지.
그녀가 여기서 죽을 사람을 놓고 도망치게 하기 위함이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