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nsform or death RAW novel - Chapter 52
Chapter 52 – 이름을 불러줘 (3)
한재중과 백아희는 별빛의 영향을 받은 인간인 만큼 회복 속도가 빨랐다.
남들은 몇 주, 심하면 몇 달을 병원에서 지켜볼 상처를 입고도 퇴원까지 걸리는 시간은 며칠이면 충분했다.
그 입원의 나날 동안 백아희는 한재중과 시덥잖은 잡담만을 나눴을 뿐, 그 이상 깊게 들어가려 하진 않았다.
결국 퇴원하는 그 날 까지 끝끝내 그녀는 그의 정체를 묻지 않았다.
목도리를 둘러 매던 백아희가 말했다.
“최근에는 별빛에 노출된 사람이 은근 있어서 재중 씨 같은 치유능력을 지닌 사람이 그렇게 적진 않다네요. 다행이네요. 수상한 정부 기관이 잡아가 신체 검사 안 해도 돼서. 하, 하하….”
묘한 시선과 어색한 웃음이었다. 누가 봐도 무언갈 숨기고 있단 사실이 풀풀 풍기는 수상한 표정.
“…아, 네. 그거 참 좋은 소식이네요.”
한재중은 그걸 차게 식은 눈으로 바라보다 마지 못해 대꾸했다. 저 짧은 침묵 속에는 한숨을 쉬고 대답할지 혀를 차면서 대답할지에 대한 고민이 들어 있었다.
결론은 둘 다 하지 않는 것이었다.
‘입 단속을 단단히 시켜야겠군.’
백아희는 일단 겉으로는 한재중의 정체를 모른다는 걸로 하고 있다.
하지만 그녀의 비밀 유지 능력은 상당히 형편 없다.
놀리고 싶은 건지 아니면 흥분으로 주체 못하는 마음을 겉으로 어떻게든 표현하고 싶은 건지.
‘뭐가 되었든 나에겐 썩 좋지 않네.’
한재중은 아직 벗어던지지 못한 목발로 땅을 툭툭 두드리며 경고를 전했다.
“저기요 베가 씨.”
“그 호칭 진짜 안 고칠 거에요?”
“사람에게 일정 이상의 거리는 필요하지 않습니까. 왜요. 이 정도면 정감가고 좋은데.”
“거리…?”
잠시 빤히 그를 쳐다 보고 있던 백아희가 이내 고개를 숙이고 자신의 배를 걱정스러운 손길로 쓰다듬었다.
“거리가 좀… 없었지 않았나요?”
“아니 진짜.”
그녀와 계속 얼굴을 봐야 했을 땐 하루에 몇 번이나 저 짓을 당했다. 한재중은 속으로 욕설을 삼켰다. 물론 자신에게 하는 욕설이었다. 타인의 죄를 무기처럼 휘두를 수 있는 건 피해받은 이의 정당한 권리였다.
‘그래 내가 개새끼지. 내가 개새끼야. 어우 시발.’
분을 삭힌 그는 말을 정정했다.
“솔직히 말해서 베가 씨와 사적인 친분은 딱히 얻고 싶지 않습니다.”
“네?! 왜요!”
원래는 가까워져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곁에서 마법 소녀를 케어하며 세계 멸망이란 결말을 회피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이에는 몇 가지 단점이 존재했다.
“기만이니까요.”
하나는 자신의 정체에 대한 문제였다. 목적이 마법 소녀의 수호라 한들, 변신한 모습은 그녀들이 가진 고통의 원인 그 자체였다.
영웅적인 행보를 보여도 그녀들의 입지 및 지지를 흔들게 하니 문제다.
그렇다고 영웅적인 면모는 철저히 숨기며 겉으로는 악인 행세를 하면, 그건 그녀들에게 더할 나위 없는 스트레스를 선사해주겠지.
이것에 답은 없다.
답을 내린 순간 또 다른 문제를 형성해 끝나지 않을 순환을 만든다.
해가 뜨고 달이 지듯, 괴인도 인간도 아닌 그의 정체는 대단히 본질적으로 그녀들의 고통이 된다.
그렇기에 정체를 숨기고 마법 소녀와 가까이 지낸단 건 기만이다. 기억 없이 지인을 만난단 것관 다른 의미로 기만이다.
물론, 이는 그저 명시적인 이유에 지나지 않는다.
“또, 제 개인적인 문제입니다. 당신 같은 사람들과 가까이 지낸다면 시선이 몰리는 걸 피할 수 없으니까요.”
백아희의 문병이 있었을 때마다 있던 의료진들의 의아하고도 호기심 섞인 시선을 잊지 못한다.
흥미로운 가십거리를 쫓는 눈빛은 배고픈 포식자가 보내는 고기에 대한 열망을 닮과 있었다.
마법 소녀의 관리를 전문으로 맡는 병원인만큼 이러한 사생활을 본격적으로 캐거나 유출하지는 않겠지만, 다른 곳이라면 얼마든지 시도하겠지.
불편하다를 넘어 역겁고, 역겹다 못해 공포스럽다. 그에게 있어 타인의 시선에 노출된단 의미는 그런 것이었다.
와쳐였을 때는 그나마 낫다. 전신이 가려진데다 말투와 몸짓 까지 약간의 차이가 생겨 그 누구도 그 안에 있는 자신을 상상 못할 테니.
하지만 한재중 본인의 몸으로 그런 걸 감당하는 건 아직 어려운 일이었다.
여전히 타인의 시선이란 끔찍하다.
몸 안 쪽 깊숙히부터 올라오는 거부감은 자석의 그것과 닮아 있었다.
같은 극을 힘으로 붙여봤자 다시 반발하며 멀어지듯이 억지로 잠시 버틸 순 있지만 결국 나가떨어질 뿐이다.
트라우마는 두려움과 닮아 있으면서도 다르다.
두려움이 순간의 흔들림이라면 트라우마는 오래전부터 새겨져 있는 상처 자국이다.
정신적인 외상.
코가 잘린 사람에게 왜 냄새를 맡지 못하냐 따질 수 없듯, 트라우마란 그런 정신적인 장애며 결함이다.
극복의 대상이지만 단 한 순간으로 극복할 수 없는, 그런 것이다.
“…그 정도로 심해요?”
백아희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한재중은 별 다른 언행을 취하지 않았다.
“그, 그러면 더 비밀스럽게 만나면 되죠!”
“나중에 들켰을 때 감당 어떻게 하시려고요. 아직 젊은 때니까 저 같은 아저씨보단 딴 남자 찾아봐요.”
“사람과 사람이 친해지는데 나이가 어디 있어요. 게다가 그리 차이도 많이 안 나요.”
“외모적으론 차이가 나죠.”
한재중은 고개를 돌려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살펴 보았다.
수염은 덥수룩했고, 머리카락은 장발이라 부르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지하철이나 공원 등에 가면 자주 보이는 노숙자나 어디 유명한 행위 예술가를 연상케 하는 모습이었다.
다른 이가 그를 보며 어떤 직업을 떠올리든 그 사고 안에 그의 나이가 아직 이십대 중반이란 가정은 결코 하지 못할 터였다.
“그건… 그렇지만요!”
백아희도 그건 부정하지 못했다.
“아니 근데 그건 다 재중 씨가 머리와 수염을 안 깎아서 그런 거잖아요! 이발은 그렇다 치고 병원에 있었을 때 면도는 할 기회가 많았을 텐데 왜 아직도 안 자르신거에요!”
그녀의 말은 틀린 게 하나 없었다. 사회 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아무리 바빠도 제 몸가짐 정도야 정돈하기 마련이다. 특히 한창 외모에 자신을 가질 수 있을 이십대라면 더욱.
그 의문에 한재중의 대답은 간단했다.
“겨울… 대비?”
“…네?”
상당히 길러진 수염을 만족스럽게 쓸며 대답을 이어나갔다.
“겨울이 되면 춥잖아요.”
“그렇죠…?”
“고위도의 동물들을 봐봐요. 다 하나같이 털이 복슬복슬하잖아요. 추위에 버티기 위해 진화한 거죠. 그러니 이건 제 나름대로의 진화 과정입니다.”
옷으로 가릴 수 있는 다른 부위라면 몰라도 얼굴은 방어가 힘들다.
심지어 그 옷도 전부 보온력이 형편 없어 추위를 버티는 일은 쉽지 않다.
가난이란 이렇게나 고난을 부른다.
“머리만 온도 보호를 잘해도 겨울철을 더 따뜻하게 보낼 수 있답니다.”
“궤변이잖아요! 그냥 제가 모자랑 코트 사줄게요. 제발 그 더러운 꼴 좀 정돈해요!!”
“더… 러운…?”
한재중은 다시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확인해 보았다. 그의 눈엔 썩 더러워 보이지 않았다.
“솔직히 분위기 있는 사십대 미중년 같은 모습이라 좀 맘에 들긴 하는데.”
“이십대가 미중년 소리 들어서 뭐가 기뻐요! 재중 씨 나이에서 이십이 더해졌는데!”
백아희는 품을 뒤적거린 다음 지갑을 꺼냈다. 그리고 그 지갑 안에서 지폐 몇 장을 꺼내 내밀었다.
“자! 이거 써요!”
“…네?”
한재중은 당황스러워 하며 뒤로 물러났고, 그녀는 멈추지 않고 그의 얼굴을 향해 지폐를 들이 밀었다. 키 차이로 인해 손을 꽤나 위로 올려야 했다.
“이거 써서 이발하고 면도해요! 그렇게 만족스러운 얼굴이라면 좀 드러내요! 숨기지 말고!”
드디어 내가 이런 어린 아이에게까지 적선을 받는구나. 한재중은 인생이 어디까지 나락으로 가는 건지 감탄했다.
“에이 아무리 그래도 베가 씨의 돈을 받으면서 까지 그러기엔….”
“이미 제 돈으로 병실까지 썼으면서 새삼스럽게 왜 그래요.”
진짜네. 한재중이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시선이 싫다면서 그렇게 눈에 띄는 꼴로 돌아다니는 건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
생각지 못한 관점이다. 한재중은 감탄했다.
번개가 치듯 그의 머리에 언어란 칼날이 강타했고, 그것은 끝나지 않는 궤변의 길을 끊어버렸다.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끊는 왕의 참격처럼 매섭고도 참신한 일갈이었다.
“그쵸? 일주일 후에 다시 상담 있을 건데, 그 때는 좀 제대로 된 모습을 하고 와요.”
멍해진 한재중의 손 위로 종잇조각이 올려졌다. 그녀는 혹여 날아갈까, 그의 손가락을 움직여 지폐를 움켜쥐도록 했다. 그의 손에 꼬깃꼬깃한 돈 몇 가닥이 고히 간직되었다.
그녀가 그 나이에도 피땀 흘렸단 증거. 그 노동과 노력의 증거.
그의 주먹 위로 손을 올린 백아희가 미소지었다.
“알았죠? 아주 이 세상 온갖 여자 다 꼬실 수 있을 정도로 멋지게 해서 오는 거에요?”
“그러다 베가 씨가 제게 반하면 어쩌나요.”
“그럼 재중 씨가 잡혀가는 거죠 뭐.”
한재중은 작게 미소 지었다.
“네. 그러면 이 세상 온갖 여자 다 꼬실 수 있을 정도로 멋지지만 베가 씨는 못 반하게 할 수준으로 오겠습니다.”
“정확히 알아들으셨네요! 아 맞다 상담 건물 바뀐 거 들었죠? 길 잃어서 지각하면 안 돼요!”
“물론이죠.”
백아희는 손을 흔들며 달려나갔고 적당히 멀어졌을 때 다시 그에게 시선을 맞추고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 뒤엔 다시 달려나갔는데, 이번에는 뒷걸음질 치며 계속하여 손을 흔들었다.
참 바쁜 작별인사네.
한재중은 그녀에게 맞추어 손을 흔들어주었다.
지평선 너머 배가 사라지듯 도시의 바쁜 세상 속으로 섞이며 소녀의 모습이 점차 사라져갔다.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한재중은 괜히 마음 한 구석이 찔렸다.
‘진짜 더러운 꼴 정리 좀 해야 되나….’
다시 한 번 유리창에 비친 본인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기본적인 관리도 하지 않은 초라한 행색. 이런 모습을 본 이들은 신기하단듯 시선을 행할 테지만 동시에 누구도 다가오려 하지 않을 것이다. 동시에, 이런 얼굴 아래 어떤 사람이 있는지 알아볼 생각도 안 하려 들겠지.
이젠 기억하는 사람도 거의 없고 괜히 들춰내거나 알아내려 해봤자 욕만 먹는 블루 시리우스의 열애설. 그 사건에 열을 올렸던 당시의 사이버 수사대들도 그를 보며 과거의 사건을 연관 짓긴 힘들 것이다.
대부분의 많은 논란 거리가 그렇듯 시간이 지나면 잊혀진다. 이 열애설의 경우엔 그보다 더했다. 훨씬 빨리 대중의 시선이 흩어졌고 관심은 휘발되었다.
시리우스의 행적이 워낙 좋고 조사 결과 그녀에게 잘못이 하나 없다는 사정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물론 그 사정의 대부분은 한재중 본인이 만든 조작이다.
블루 시리우스에게 동정 여론이 생겨난 반대급부로 한재중에겐 적대적인 여론이 생겨났다.
직접 집에 쳐들어와 욕설을 하는 사람은 양반이며 심하면 흉기를 휘두르는 사람도 만나봤다. 개인 메세지로 마법 소녀의 알몸 사진을 요구하는 사람도 숱하게 봐왔으며 그보다 심한 요구도 많이 들었다.
한재중이 사회의 쓰레기로 전락한 시절이며 사회와 단절되는 순간이었다.
그는 이제 관리를 하지 않는다. 무의식적으로 그럴 필요성을 못 느꼈기 때문이다. 그에게 있어 사회에 소속되고 싶은 마음은 옛적에 사라져 있었다.
기억은 잊었지만 고통은 영원했다. 기억이 없어도 고통이 있다면 행동을 통제하는 건 간단했다.
머리를 덮수룩하게 길렀고, 면도는 하지 않는다. 물론 냄새나 가려움 등은 본인에게도 곤란했기에 기본적인 청결은 관리하지만 그거 뿐이었다.
상당히 멀리 빙 둘러서 표현한, 난 사회와 단절된 자이며 단절을 지속할 거란 의미의 자아 표현이었다.
심지어는 그 본인조차 의미를 깨닫기 까지 한참을 걸린 표현.
한재중은 자신의 수염을 쓰다듬었다. 까끌까끌한 감촉이 느껴졌다.
그는 마법 소녀와 친해지기 싫다. 기만이며 기억이 없으며, 남들에게 주목되는 걸 꺼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면 친해지는 건 언제의 순간이 되어야 하나.
과거의 지인들에게 당당히 얼굴을 드러낼 수 있는 건 언제이고.
이 시선 기피증은 언제 사라질 수 있나.
전부 답이 없는 문제였다.
여러 핑계를 대며 완벽해지길 기다리다 제 성에 찼을 때 허겁지겁 사람에게 달려나갈 텐가.
차일피일 기회를 미루며 거부와 거리 두길 반복 하다 보면 그 완벽에 가까워 지는 건가.
그 완벽해 지는 날이 오기나 할까.
설령 완벽한 준비를 갖춘 날이 왔다 해도 그 때 다가오려는 사람이 몇이나 남아 있을까. 자신이 다가간다 해도 다시 되돌릴 수는 있을까.
한재중은 한숨을 푹 쉬었다. 머리가 아팠다.
어찌 변해야 하는지는 몰랐지만, 변할 필요성은 느꼈다.
가장 쉬운 방법을 그는 알고 있었다.
외관의 변화는 내면의 변화보다 훨씬 간단하다.
첫 발걸음으론 역시, 자신의 상담사의 말을 따르려 한다.
한재중은 은행에 들렀다.
백아희가 준 돈은 기부금 통에 넣고, 그간 잊고 있던 통장에서 돈을 아주 조금 인출했다.
설화가 돈을 보내준 통장이었다. 한재중은 이걸 자신의 돈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의 죄책감이 어쨌든, 이건 자신이 받을 자격이 없는 돈이었다.
그렇기에, 지금 이 행위는 도둑질이며 대출이었으며 손에 쥐어진 이 지폐 몇 다발은 전부 빚이었다.
언젠가 돌려줘야 할 빚.
죄에는 속죄의 의무가 생기고 빚에는 변제의 의무가 생긴다.
아무리 피하더라도 그렇게 짊어진 의무는 반드시 마주봐야 할 날이 온다.
윤설화.
그녀와 연을 이어갈 핑계가 이렇게 만들어졌다.
한재중은 이런 형태로 나마 다시 만날 의무를 스스로에게 쥐여주고 싶었다. 그녀와 언젠가 다시 만나 당당히 빚을 갚을 날을 고대하며.
그는 은행을 나와 발걸음을 옮겼다.
장소는 당연히 이발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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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아희는 설레는 발걸음으로 상담소 안에 미리 도착해 있었다.
언제나 그가 먼저 오고 자신이 늦게 왔으나 이번엔 반대였다.
“리본, 어떤 헤어스타일일까?”
[그러게… 포마드?]“조금 더 의욕을 내 봐! 그 노숙자 같던 재중 씨가 바꿔오는 날이라고?”
그녀는 설레는 마음으로 문이 열리길 기다렸다.
[잘라 올 거라고 의심하지 않는구나.]“그럼 당연하지.”
약속한 시간이 되기 5분 전, 문이 열렸다.
“이런 것부터 믿어야, 모든 걸 믿을 수 있는 거야.”
들어온 남자의 모습을 보며, 백아희의 눈이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