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nsform or death RAW novel - Chapter 53
Chapter 53 – 이름을 불러줘 (4)
백아희는 당황스러웠다. 순간 그가 자신의 내담자라 알아보질 못했다. 물론 그건 몇 초도 아니었고, 고작 찰나 간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만큼의 임팩트가 있던 건 사실이었다.
리본, 그녀의 마스코트가 심드렁히 말한 거처럼 포마드는 아니었다. 자연스럽게 바람결따라 찰랑거리는 생머리였다. 단정하게 잘려진 흑갈색의 머리카락이 아름다웠다. 조명이나 햇살이 닿는 부분은 갈색으로 빛나고 그 외의 부분은 차분한 흑색이었다.
눈썹에 닿을락말락 살랑거리는 머리카락은 자연스럽게 그의 눈에 시선을 유도했다.
깊은 검은색의 눈이 그녀를 맞아 주었다. 우주 같은 타인을 빨려 들어가게 하는 눈이다. 눈을 장식하는 살짝 차가워 보이는 눈매와 굵고 진한 눈썹은 그의 눈빛을 더욱 돋보이게 만들어주었다.
그가 눈을 깜빡이자 백아희는 괜히 무언가를 피하듯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뚜렷하게 각을 잡은 하관이 그녀를 맞아 주었다. 깔끔했다. 희끄무레하게 수염자국이 보였으나 결코 흉이라 불릴 수준은 아니었다.
평범하게 관리한 수준이었다. 필요 최소한의 가위질과 칼질을 통해 다듬어진 모습.
다만 전에 보았던 모습이 모습이라서 그럴까, 백아희에겐 탄산 같은 청량감을 느끼게 해주었다.
십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만화나 드라마 따위에 종종 나오는 대변신.
음침한 소년이 안경을 벗으니 미남이 되고 머리카락만 다듬으니 미녀가 되는 상상.
이 따위의 일들은 전부 픽션이라 생각했다.
과거형이 된 이유는 지금 그 생각이 깨졌기 때문이었다.
“오오….”
백아희는 박수를 쳤다. 뜬금 없다고 생각할 수 있을 리액션이지만 그보다 더 지금 그녀의 심정을 대변해주는 것은 없었다.
그녀의 눈 안에 비치는 건 분명한 미남이었다. 분위기 있어 보이는 노숙자가 아니었다.
살짝 날티가 나는 인상에 적당히 몸집이 있는 큰 키, 잘생겼단 느낌도 들지만 예쁘다는 감상도 나와 남자보단 여자가 선호할 거 같은 미남상이었다. 그럼에도 ‘미남’이란 것엔 변함이 없었다.
“잘했어요.”
“뭘요.”
“제 선택은 역시 옳았군요.”
“아니 뭐가요.”
백아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진흙 속에 파묻혀 있던 진주를 발견한 기분이었다. 그간 초라한 행색에서도 불쾌감보단 퇴폐적인 신비로움을 주고 있어 어느정도 외관이 빼어나단 예측은 하고 있었지만.
설마 저 정도였을 줄이야.
“크….”
깊게 우려나온 감탄이 박수 소리와 함께 울려 퍼졌다.
너무나 성대한 환대에 되려 머쓱해진 한재중은 한결 시원해진 뒷목을 긁으며 웃었다.
“…저 잡혀가요?”
“음… 아직은 아뇨? 하지만 그럴 위험은 생겼네요!”
그와 지긋이 눈을 맞추던 백아희는 결국 감당하지 못하고 먼저 시선을 휙 돌렸다. 확실히 변화한 인상이 소용이 있긴 했다. 백아희의 귀가 변신도 안 했는데 붉은 기가 돌고 있었다.
“다음부터 베가 씨와 만날 땐 면도 안 하고 와야겠네요.”
시원찮은 농담을 던지며 한재중은 시선을 방 안으로 돌렸다.
“…뭐, 다음이 올 지는 모르겠지만요.”
커다랗게 적힌 플랜카드엔 ‘레드 베가의 상담실을 졸업한 걸 축하해~!’ 라는 문구가 파스텔톤으로 적혀있었다.
이걸로 상담도 4주차.
공식상으론 마지막 상담이다.
“그래서 마지막 상담은 뭔가요? 선생님?”
익숙하지 않은 호칭에 헤헤 웃은 백아희는 자신이 앉아 있던 책상으로 쪼르르 달려가 종이를 들었다.
“짠! 지금까지 재중 씨의 마음이 어떻게 긍정적으로 변화했는지 확인하는 검사랍니다~ 여기에 성심성의껏 답해주시고 저와 몇 번의 문답을 나누는 걸로 상담은 종료에요!”
한재중은 피식 웃으며 그 설문지를 잡아 들었다.
“형식적이네요.”
“네, 형식적이죠.”
“그럼 이걸로 진짜 끝나는 건가요?”
백아희의 대답은 한 박자 늦게 돌아왔다.
“…이, 일단! 작성부터 하시고오… 아, 펜은! 펜은… 여깄습니다…..”
백아희는 펜을 두 손을 공손히 모아 건냈다.
한재중도 두 손으로 펜을 받으며 자리에 앉았다. 그 즉시 설문지에 이름을 기입하며 답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최근 불안감이나 우울감을 느끼신 적은 있습니까… 매우 그렇다, 그렇다, 보통이다… 와, 진짜 정석적이네.’
그 내용들을 하나하나 조심히 읽어나가며 빠르게 답안을 체크했다.
한동안 방 안에는 그의 사각거리는 펜의 소리만 울려 퍼졌다.
“저, 저기!”
“아 맞다 그러고 보니.”
간신히 입을 연 백아희의 말이 그로 인해 간단히 잘려나갔다.
“저 베가 씨에게 말하지 않은 게 좀 있어요. 이후 답변 해석에 도움이 될 수도 있으니 지금이라도 말해야겠네요.”
“자, 잠깐! 그거…..”
“아마 베가 씨가 생각하는 것과 다를 겁니다. 제 과거 이야기에요.”
전에 그녀에게 들려준 인생사, 그 중에는 몇 가지 빠진 사항이 있었다.
그는 자신의 얼굴이 보이는 게 싫었고.
이에는 이유가 있었다.
“전 사이버 불링을 당했어요. 아… 그 사이버가 현실까지 이어졌으니 현실의 괴롭힘이라 해도 괜찮겠네요. 아무튼, 전 누군가의 시선이 싫습니다. 카메라도 싫고요. 관심을 받는 게 싫어요.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가 제 얼굴을 보고선 인상이 나쁘네 눈이 어떻네, 양아치처럼 생겼네 하며 평하는 게 싫습니다. 괴롭힘을 심하게 받았거든요.”
와쳐의 활동에 거부감이 덜한 이유가 이것이었다.
그건 진짜 그의 얼굴이 아닌 꾸며진 얼굴에 불과하니까.
“그 덕에 뉴스만 봐도 구역질이 나고 기사를 봐도 오한이 듭니다. 저는 모든 걸 전자상의 무언가로 해결 해야 하는 현대 사회에서 크나큰 결함을 앓게 되었어요.”
설문지의 답안에 연신 브이 표시를 하던 그의 손길이 멈췄다.
“베가 씨, 전 바뀔 수 있을까요?”
백아희는 그를 가만히 보다, 연분홍빛으로 빛나는 입꼬리에 호선을 그렸다. 비웃음은 아니었다. 자애로운 미소였다.
“…재중 씨, 전 마법 소녀가 되기 전에 동네 바보와도 같은 사람이었어요. 가난하면 똑똑하기라도 하고 똑똑하지 않으면 얌전히라도 있어야 하는데 전 전부 아니었어요. 마법 소녀란 꿈에 모든 걸 투자하고 미래나 대비책 따위 생각하지 않았죠.”
그녀는 담담히 자신의 상처를 전시했다.
“흔히 말해 은따… 라고 해야 했을까요? 모두가 적극적으로 괴롭히는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 누구 하나 관심을 보내지 않는, 그런 아이였어요. 뭐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고3 때까지 마법 소녀란 꿈을 못 놓았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거였죠.”
있는 건 자조였다. 자신의 과거에 대한 회한. 해학이자 후회. 지금 생각해 봐도 과거의 자신은 대책이 없었다.
꿈이란 것에 눈이 멀어 제 명을 줄여나가던 아이.
원래 눈이 멀기 위해선 어둠이 아닌 빛이 필요하니, 그녀의 현실이 고달플 수록 꿈에 집착하는 건 어쩔 수 없었을지도 몰랐다.
매달릴 희망이 필요했으니까.
“…마법 소녀가 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성인 때까지 꿈을 붙잡고 있다가, 언제까지고 이루지 않을 꿈을 붙잡다가… 아마, 재중 씨의 위치에 제가 있었을지도 몰랐겠네요.”
백아희는 옅게 입꼬리를 올렸다.
“하지만 전 그렇지 않았어요. 마법 소녀가 되었고, 많은 좋은 사람을 만났어요. 수많은 고통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전 변할 수 있었어요. 아마 저 혼자라면 불가능했겠죠. 제 마스코트… 리본도 있었고, 선배들도 있었고, 그리고… 재중 씨, 당신도 있었어요.”
한재중이 볼펜을 잡지 않은 다른 손 위에 백아희가 자신의 손을 겹쳤다.
“사람은 말이에요. 가끔은 누군가가 겪은 희망에서 위안을 얻지만 또 가끔은 누군가가 겪은 절망에서 위안을 얻는다고 해요. 자신과 타인의 공감성을 찾아 연대를 얻는 거죠.”
그녀가 자신의 상처를 밝힌 의미였다. 상담의 매뉴얼에서 읽은 것 중 하나인 자신의 사정을 공유하기.
“혼자가 아니란 걸 아는 것만으로 사람은 변할 수 있어요. 아픔을 떨쳐낼 수 있어요.”
정석적이고 좋은 말이었다. 혹자는 뻔하다며 매도할 말.
하지만 이것이 정석이란 뜻은 그만한 가치가 있었단 뜻이다.
어느 곳에서도 사용될 수 있을 만큼 보편적인 힘을 지녔단 의미니.
“재중 씨 당신은 제 좋은 사람이에요. 그리고 저는… 제가 당신에게도 그럴 수 있다고 믿어요.”
한재중은 자신의 상처를 밝혔고, 백아희 역시 그에 맞춰 자신의 상처를 밝혔다.
상담의 마지막에 가서야, 둘은 자신의 고통을 진솔히 고백할 수 있었다.
“재중 씨는 바뀔 수 있어요. 힘들더라도 제가 도와줄게요.”
한재중은 웃었다. 어느새 펜은 마지막 문항을 향하는 중이었다.
“이제야 제대로 된 상담을 하는군요.”
“…! 아, 아니 이건….”
“알아요. 그간 상황이 제대로 따라줬지 않았단 게. 애당초 학교 공부도 제대로 못했고 자기 하나도 못 챙길 정도로 바쁜 사람보고 상담하라고 밀어 넣는 게 나쁜 일이죠. 베가 씨 잘못을 따지자는 게 아니에요.”
“…묘하게 무시하는 거 같은데요.”
백아희는 째릿 화난 표정을 지으며 그를 째려보았다. 조금도 아랑곳 않고 그는 펜을 놀렸다. 끝이 났다.
“맞아요. 변할 수 있겠죠. 뭐니뭐니 해도 붉은 혜성이자 초신성 베가 씨의 보장이 있으니 당연히.”
“노, 놀리지 마세요!”
열을 내는 백아희를 보며 한재중은 하하 웃었다.
“자, 여기 끝났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그가 종이를 밀며 백아희에게 건냈고 그녀는 금세 표정을 갈무리 하여 웃는 얼굴로 그걸 받아들였다.
“음 정말 성실하게 응답해주셨네요.”
초기의 깨끗했던 모습과 달리 검은 색의 잉크가 잔뜩 묻혀진 종이.
그 내용을 꼼꼼히 살핀 백아희가 종이를 들어올렸다.
세로의 형태로.
“정말… 성실하게….”
그리곤 그대로 힘을 주어 찢어냈다.
“…?”
“자 재중 씨의 성실한 응답이 여기 쓰레기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뭐하는 거에요!”
“어차피 쓸데 없는 과정이에요! 재중 씨의 마음은 여기 종이 안에 적힌 걸론 읽을 수 없어요! 상담을 이렇게 끝낼 거라고요? 전 싫거든요!”
그녀는 흥분으로 두근대는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반짝거리는 두 눈으로 그에게 얼굴을 들이대며 제안했다.
“재중 씨! 저희 바람 좀 쐬죠!”
전에 그가 말한 제안을 그대로 되돌려주었다.
다만 이번엔 그 의미가 보다 세속적이었다.
“놀자고요?”
“네!”
갈기갈기 찢긴 종이를 구기며 그녀가 말했다.
“이번엔 진짜 맛있는 거 사줄게요! 고기 사줄게요 고기!”
“…아니 애새끼 돈으로 받아먹는 고기는 좀….”
“사양은 강자가 하는 겁니다. 아무리 나이가 있어봤자 자본 앞에선 소용 없죠. 사회적 약자는 그저 받기만 하시죠!”
“점점 싸가지가 거….”
한재중은 한숨을 푹 내쉰 다음 끄덕였다.
“좋죠. 어린 친구 돈으로 호강하는 게 옛날부터 꿈이였습니다. 자 빨리 저를 위해 지갑을 깨주시죠. 당신은 거지를 보았습니까?”
“그럼요. 여기 제 눈 앞에 있는데 제가 맹인도 아니고 어찌 못 봅니까. 아, 이거 장애인 차별 발언 아니에요. 알았죠?”
“아유 그럼요.”
백아희는 싱긋 웃었다. 일과 놀기를 동시에 할 수 있다니 이 무슨 행복일까. 소고기를 조지고 디저트 카페에 가서 야무지게 하루를 보낼 생각에 그녀는 벌써 행복해졌다.
한재중은 그녀 미소 뒤에 있을 미각적 충족에 대한 열망을 읽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렇게 기대를 하니 거절하기에도 뭐했다.
“갈 때는 사람 눈에 안 띄게 변장을 똑바로 해주세요. 그럼 바로 가시….”
“잠깐만요!”
백아희가 손바닥을 펼치며 그의 움직임을 막았다.
“잠깐… 만요… 그게….”
방금 전과 달리 긴장한 표정이었다.
“저희 상담이 성공적으로 이뤄졌단 걸 증명하고 기념하기 위해…. 물체의 형상을 감광막 위에 나타나도록 찍어 보존하는 절차가 필요한데요….”
“사진이요?”
“아으, 어, 아니, 그, 그게….”
입을 삐쭉 내밀며 몸을 배배 꼬며 열심히 자신의 고뇌와 고민과 고통을 어필한 뒤에야, 그녀는 간신히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할 수 있었다.
“…네.”
“흐음…..”
한재중은 제 턱을 쓰다듬으며 고민을 시작했다. 매끈한 턱에 남겨진 약간 까끌까끌한 감각은 아직 살짝 어색했다.
카메라는 지금도 그가 상당한 거부감을 지닌 물건 중 하나다. 그녀의 부탁이라도 선뜻 ‘네, 좋죠’ 따위의 대답을 내놓을 순 없었다.
그걸 알기에 백아희도 저렇게 조심스런 태도겠지.
평소였다면 그냥 배를 쓰다듬으면서 ‘제 여기가 오늘따라 아픈데….’ 따위의 말로 졸랐을 테니.
“그거 공개되나요?”
“아, 되긴 하는데요… 기, 기사에는 제 얼굴만 나갈 거에요! 재중 씨의 신분과 안전을 위해서라도 신상을 추측할 만한 단서는 하나도 남기지 않을 테니 안심하세요!”
거부감의 농도가 더욱 짙어졌다. 얼굴이 안 나온다해도 기사에 나갈 예정인 사진이라니….
‘어쩌지?’
깊게 고민했다.
하지만 답은 금방 내려졌다.
“좋아요.”
“여, 역시 안 되겠죠? 알았어요… 네?”
“좋다고 했어요.”
바뀌어야 한다고 마음 먹었고, 트라우마를 극복해야 한다고 생각한 직후였다.
비웃고 헐뜯기 위한 악의서린 셔터음이라면 모를까, 직접적인 얼굴이 공개되지도 않을 사진이라면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거부감이 있는 건 사실이니 단 한 번으로 끝내야 해요. 알았죠?”
“무, 물론이죠! 리본 여기 내 폰 들어!”
백아희가 허공을 향해 스마트폰을 던졌다. 한재중의 눈으론 그랬지만 백아희의 눈으론 아니었다. 그곳에 있던 고양이 모양의 마스코트, 통칭 리본이 폰을 잡아냈다.
그녀는 재빨리 한재중의 팔을 이끌어 플랜 카드 아래로 세웠고, 본인도 열심히 포즈를 취했다.
‘아 역시….’
한재중은 그 카메라와 눈이 맞은 채 조용히 생각했다.
‘카메라는 좀 아니야.’
이 일이 끝나면 바로 화장실로 달려가 속을 게워낼 상상을 하며 눈을 감았다.
“자, 하나~ 둘~”
옆에선 백아희의 급하고도 명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치즈!”
“치즈….”
찰칵.
끔찍하게 뇌리를 울리는 셔터음이 들렸다. 그와 동시에 그의 안색이 원심분리기에 타 있던 사람처럼 창백해졌다.
“자 끝났…. 재중 씨!”
촬영 완료의 표시가 들리지마자 즉시 화장실로 뛰쳐나가 속을 비웠다.
그러고 다시 복귀하니 대단히 미안한 표정의 백아희가 반겨주었다.
좋아 죽음과 긴장이 함께 있던 오늘 처음 봤을 때의 표정과는 달리, 굉장히 초조하고 안절부절 못하는 표정이었다.
“여, 역시 제가 미안….”
“미안하면 고기 비싼 거 사줘.”
그녀의 표정을 가만히 보며 한재중은 다음 말로 무엇을 덧붙일까 고민하다, 이내 한 가지 결정하여 뱉었다.
“아희야.”
“…!”
다시 그녀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걸 보며 한재중도 웃었다.
**
“헤, 헤헤….”
스마트폰 속 액정에 떠오른 한 장의 사진이 보며 백아희는 웃었다.
그는 그녀의 뿌듯함이었다.
자신이 변할 계기를 주었으며, 그 또한 그녀에게 변해질 수 있는 계기를 제공받았다.
물론 그 뒤엔 여러모로 복잡한 사정이 있었지만…..
아무튼, 친구가 되었단 건 변함 없어졌다.
상담이 끝난 뒤에도 연이 이어질 거 같았다.
“리본, 재중 씨가 나와 너무 자주 만나려 하면 어쩌지? 지금도 연락하는 데 너무 긴장돼서 아직도 선연락을 안 하는 게 아닐까?”
[그… 수호자…. 걱정하지 마… 그럴 일 없을 거 같아….]마지막 상담으로부터 며칠이 지난 뒤에도 백아희의 마음엔 그가 남아 있었다.
갑자기 잘생겨져 온 데다 호칭까지 변화했으니, 여러모로 강렬한 인상을 줄 수 밖에 없었다.
아직 판타지를 꿈꾸는 소녀에게 그란 존재는, 그간 만화나 소설 따위에서 본 나쁜 남자 길들이기의 여러 시츄에이션을 떠올리게 해주었다.
드디어 나에게 반한 사람이 생긴 걸까. 그 따위 김칫국까지 들이킬 정도였다.
“나의 견녀? 뭐 봅니까?”
“아, 다, 다비흐 씨!”
“남자? 남자 아닙니까!”
그런 그녀의 곁으로 불쑥 화이트 다비흐가 다가왔다.
“배신입니다! 베가 씨가 연애를 했습니다!”
“그런 거 아냐! 이 분은 그냥 내 상담자….”
“상담자를 보며 그렇게 웃습니까?! 우소데스요! 구라 까지 마세요! 와타시한테 그 따위 구라는 통하지 않습니다!”
그녀의 손에서 폰을 뺏은 다비흐는 깊게 사진을 들여다 보았다.
“호오 얼굴을 보니… 잘생겼군요. 하지만 불량해보입니다. 얼굴로 꼬신 걸까요? 아, 혀, 협박! 협박을 당했을지도 모릅니다!”
곧 화이트 다비흐의 눈썹이 깊게 휘어졌다.
“음? 근데 어디서 본 기억이….”
“뭐 때문에 이리 시끄러워?”
“도, 돌려주세요!”
야단을 떠는 그녀 덕에 주변에서 맥주를 홀짝이고 있던 핑크 데네브 까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제 견녀에게 남친이 생겼습니다.”
“오올 아희 좀 하는데? 와꾸 좀 보자. 누가 우리 아희를 꼬신거냐?”
“여기요.”
“아아 진짜 아니라니까요!”
화이트 다비흐가 팔을 내려 사진을 보여주었다.
핑크 데네브가 잡고 있던 맥주캔이 떨어지는 건 금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