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nsform or death RAW novel - Chapter 57
Chapter 57 – 기억 복구 (3)
훌쩍.
조아윤이 코를 움찔거리자 한재중은 말 없이 티슈를 넘겨주었다. 코맹맹이 소리를 내며 그녀가 중얼거렸다.
“개 쪽팔려….”
그리곤 코를 풀었다.
눈가, 코 끝, 볼, 귀, 목까지. 어디 하나 붉지 않은 데가 없었다. 이게 핑크 데네브인지 레드 데네브인지 알 길이 없을 정도였다. 눈물과 수치심으로 붉게 달아오른 몸이 애처로워 보였다.
“그러게 쪽팔릴 짓을 왜 했어.”
“그럼 오빠는 왜 옥상 위에서 지랄을 한 건데.”
할 말이 없어 입을 다물었다. 괜히 목이 타 침을 삼킬 뿐이었다. 한재중은 머쓱해진 마음에 시선을 돌려 주변을 보았다.
이곳은 핑크 데네브의 집이었다.
적당히 감정을 진정한 다음 그녀는 한재중을 데리고 이 곳에 초대했다.
납치에 가까운 초대였다.
한재중이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홍익오로 감싸 날더니 이 곳에 도착했으니.
딱히 엄한 짓을 한 것도 아니다. 한재중은 이를 책 잡지 않았다.
자신을 숨김과 동시에 이야기할 장소라는 점에선 참으로 알맞은 장소 선정이었다.
전체적으로 힙해 보이는 인테리어였다. 테이블에 올려진 플라밍고 네온사인 장식과 집 안 곳곳에 붙여져 있는 락밴드와 영화 포스터. 현대 예술적인 아방가르드한 예술 작품이 액자에 놓여 있었다.
소파에 있는 유명 캐릭터 인형들이 그 험한 인상을 조금 옅게 해주었다.
전에 살던 집 보다 평이 커졌고 장식하는 물건 등도 보다 풍부해졌지만, 한재중이 기존에 알고 있던 그녀의 집과 주는 인상은 동일했다.
“…무슨 일이 있던 거야?”
조아윤은 새를 귀엽게 데포르메한 핑크색 인형을 품에 끌어 안으며 물었다. 명백한 불안의 표현이었다.
“돌아오겠다면서 몇 년 동안 연락 하나 없고, 전엔 왜 노숙자 꼴을 하고 있던 거고, 괴인과는 왜 엮여 있는 거고, 아니, 아니 왜… 멀쩡히 살겠다며, 그냥 여행 좀 떠나는 거라며. 이, 이게 그 여행의 결과야?”
순식간에 몇 개나 되는 질문이 몰아쳤지만 그는 전부에 침묵을 지켰다. 대답을 듣고 싶어하는 질문이라기 보단 억울함의 투사에 가까운 질문에 가까웠다.
한재중은 죄인이 된 기분이었다. 실제로 그와 다를 거 없는 상태였다. 도의적인 의미에서 분명한 죄인이었다.
“내가 전에 확실히 뭐라도 알아냈어야 됐는데… 그냥 방치하면 안 됐는데… 자살 상담이라니. 그걸 오빠가 왜 가? 맨날 목숨을 소중히 하자며 부르짖던 사람이잖아. 세월이 지나서 가치관이 바뀌었어?”
“아니 그건….”
국가 지원금 타 먹으려 간 거야. 그리 말하려다가 참아냈다. 괜히 신경만 자극하는 꼴이 됐을 테니까.
“우리가….”
핑크 데네브의 목소리에 다시 물기가 섞이기 시작했다.
“얼마나 찾았는지 알아?! 3년을 내리 찾았어. 자그마치 3년을! 웬 애새끼가 고등학교 졸업은 가능할 시간을!”
한재중은 둘이 말릴 틈도 없이 사라졌다. 핑크 데네브와 블루 시리우스, 둘이 괴인에게 당해 입원 당하고 있던 사이에 사라졌다.
고작 편지와 선물 몇 개만을 남긴 채.
편지의 첫 줄은 아직도 인상적인 기억으로 남아 있다.
‘도의적인 행동이 뭐라고 생각해? 상대의 의사를 존중하는 것? 아니면 상대를 지키는 것? 내 기준에는 전자야. 일단 하나만 밝히고 갈게.
날 찾지 말아줘(찾아 달란 왜곡적 표현 아님. 멜로 영화에 나오는 그거 아님. 진짜임. 안 믿으면 삼대가 병 걸림).
내 행동을 욕하는 건 괜찮지만 내 행동을 부정하려 들지는 말아줘.
부정은 하지 않을게. 이건 도망가는 게 맞아.
하지만 때론 도망도 좋은 전략이 된다고 친구! 🙂
이번의 내 경우가 그랬을 뿐이야. 일단 나도 살아야 하지 않겠어.
너무 걱정은 마. 어련히 내가 준비가 됐다고 여겨지면 다시 돌아올 테니까. 연락도 할게!
우리 예쁜이들 내 말 믿지?^^ 사랑해~’
이게 고작 첫 문단이었다. 이후에도 윤설화와 조아윤의 정신을 혼절하게 할 몇 구절이 더 적혀 있었다. 실제로 윤설화는 이 편지의 반도 읽지 못하고 기절했다.
사랑해는 종결조사처럼 남발 되어 무게감을 한 없이 떨어뜨렸다.
염병을 떠는 가출 편지였다.
조아윤은 그 때 가슴이 내려앉는 느낌이 뭔지 제대로 알게 되었다.
분노나 애환 따위의 납 조각들이 심장에 얽히며 무저갱 저 편으로 끌어 내려지는 그 고통이.
“도대체 뭘 하고 다닌 거야? 우리 몰래 도대체 뭘….”
뒷말이 흐려졌다. 그간 있던 고통을 떠올리자 감정을 주체하기 힘들어졌다.
“찾았다고? 야 내가 언젠가 돌아올 테니까 찾지 말라고 했잖.”
“안 돌아왔잖아 개새끼야!”
조아윤이 순간 크게 소리쳤다. 아련하고도 세찬 분노. 한재중은 그녀의 자격 있는 분노에 입을 다물 수 밖에 없었다.
그녀의 목소리가 음악이었던 집 안에 잠시 침묵이 내려 앉았다.
들은 사람보다 말한 본인이 더 놀랐는지 분홍색의 두 눈이 크게 떨렸다. 입술도 비슷한 진동을 지녔다.
그녀는 눈물을 억누르듯 눈살을 팍 찌푸린 다음 인형에 얼굴을 묻었다.
“안 돌아왔잖아… 이 망할 오빠 놈아….”
코 맹맹이 소리가 장애를 만나며 더욱 초라하고도 애처로운 목소리가 되었다.
“…원래는 돌아올 거라고 믿었어. 그렇게 말했으니까. 근데 일 년이 지나도 안 나타났잖아… 우리가 얼마나 열심히 찾았는지 알아? 원래 사적으로 운용할 수 없는 권한까지 손대면서 찾았어. 내 홍익오는 당연하고 이사한 기록이나 cctv까지 뒤져보면서… 근데, 나중 가니까 기록이 뚝 끊기더라? 정말 사람이 증발한 거처럼. 찾을 수 없게….”
“…?”
한재중은 순간 의아함을 느꼈다. 협회의 힘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사람의 기록 전부를 삭제할 순 없다.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마법 소녀가 자신의 능력이나 국가적 정보 까지 손 대면서 사람을 찾았는데 사람 하나를 못 찾았다고?
물론 시대가 시대다 보니, 도외의 정보를 모으긴 쉽지 않아 안전 도시 내부의 정보만을 열람할 수 있었을 테지만…..
그렇다 쳐도 이상했다.
한재중은 기억을 더듬어 봤다. 방금 전 얻은 기억은 가출 직후 약 반 년 정도의 기간만을 보여 주었다. 이후의 기억은 없다.
저들이 본격적으로 찾기 시작한 게 일 년 째.
공백이 있다.
분명 그 공백에 어떤 사건이 있었다고 한재중은 확신했다. 어디에 납치되기라도 했던 건가.
‘아니면 내가 미친 짓을 했다든가…..’
사람이 숨을 수 있는 곳에는 한계가 있다. 인간의 행동 범위는 한정 되어 있으니까.
하지만 그 범위를 초월한 순간, 은둔이란 면에선 무한한 가능성을 얻게 된다.
마법 소녀쯤 되는 존재가 아무리 노력해도 찾을 수 없는 지역.
짚이는 곳이 있긴 하다. 도외를 넘은 소외의 지역. 괴인에게 빼앗긴 땅. 인간의 생존 지역에서 탈락하여 향후 십 여 년 간 누구도 접근한 적 없는 미지의 공간.
통칭 다크 매터.
지도 상에서 검게 표시되어 있기에 붙은 별명.
그곳에 있었다면 저들이 자신을 못 찾은 것도 설명이 된다. 하지만 확률은 적다. 미치지 아니고서야 그곳에 발을 들여 놓진 않으며, 갔더라도 살아 돌아오진 못할 테니.
“찾지도 못하게 하는 건 너무하잖아… 돌아오겠다고 했으면서… 구라쟁이 새끼… 나쁜 놈….”
한재중은 한 편으로 들키기 싫은 정보가 있어 불안에 떨었다.
‘병원 기록은 안 뒤져 봤겠지…? 그렇게 빌자.’
그들과 없던 사이에 겪은 고생은 안 그래도 좋지 않은 조아윤의 정신 건강에 치명타를 먹일 터였다.
정신병자에게 습격 당한 건 애초에 기사가 날 일도 아니었으니 그렇다 쳤다.
사람이 매일 같이 괴인에게 죽어가는 사회에서 정신병자에게 배를 찔린 사람 쯤이야 한 둘이 아니다.
자칫하면 죽을 수도 있던 일이지만, 결국 죽은 건 아니니까.
게다가 첫 번째 습격 뒤에는 병원에 가지도 않았다.
속속들이 정신병자가 찾아 왔지만 흉기에 살짝 스친 정도로 끝나고, 오히려 흠씬 두들겨 패 돌려 보내 주었다. 정신병자에게 배를 찔리고 난 뒤 온갖 것을 경계하며 예민하게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던 덕이다.
이 습격들 전부 한 밤 중 cctv가 없는 으슥한 곳에서 이뤄졌다. 똑똑히 기억한다. 왜냐면 방금 전 봤으니까. 다시금 올라오는 불쾌감이 스멀스멀 몸을 뒤덮었다.
이를 전부 고려해도 모른다는 증거가 되진 않는다.
한재중은 착잡한 심정으로 조아윤을 바라 보았다. 그녀도 인형 너머 빼꼼 눈을 뜨며 그를 바라보는 중이었다. 눈이 맞자 다시 인형에 얼굴을 묻었다.
다시 말이 이어졌다.
“…무서웠어.”
그녀의 팔이 인형을 더욱 세게 옥죄었다.
“내가 하는 행동이 그냥 다 오빠에게 민폐이지 않을까… 진짜 그 편지의 말대로 오빠를 존중하지 않는 게 않을까… 괜히 찾아봤자 욕만 먹는 게 아닐까… 전에 화낼 때… 무서웠으니까.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버텼어. 근데 못 참겠더라. 시발 너무 좇같고 내가 병신같은 걸 아는데, 그래도 찾고 싶더라. 구질구질하게.”
무엇이 존중을 위한 길일까. 답이 없는 문제였다. 분명 다시 찾아가 봤자 그는 상처만 받겠지. 그런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행동했다.
자신의 마음을 존중하기 위해.
“그런데… 못 찾았잖아.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 살았는지 죽었는지 조차 모르겠잖아.”
하지만 결국 모든 게 실패했다.
한재중을 존중하여 그를 찾지 않은 것도 아니고, 자신을 존중하여 그를 찾아낼 수도 없었다.
“그래서… 그냥 잘 살고 있기를 바랬어.”
줄 건 줘. 포기할 건 포기해야 한다. 조아윤은 그런 사고 방식으로 스스로를 방어했다. 그녀에게 있는 수많은 방어 기제 중 하나였다.
태연하게 넘기고, 아무렇지도 않은 척을 하며 다음을 바라본다. 합리화는 자아를 지키는 막이다. 거센 현실이 자신에게 아무 것도 아니라 생각하게 해주는 방파제다.
“잘 살고 있을 거라고… 뻔뻔하고 긍정적인 오빠니까 어디서라도 잘 살고 있을 거라고… 어디 해외라도 가서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라고… 안 돌아오는 건 우리를 잊을 만큼 잘 살고 있는 탓이라고… 그렇게… 계속… 계속….”
포기하지 않았을 때의 가능성은 생각하지 않았다.
확인하지 않으면 그것은 가능성에 머물러 있으니까. 희망이 있으니까.
조아윤은 두려워 했다. 두려움에 계속 머무르길 택했다.
지금 자신이 보지 않는 곳에 있는 그가 행복하길 바라며.
“그런데 이게 뭐야.”
조아윤이 고개를 들었다. 어느새 그녀의 눈망울엔 다시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자살 상담을 받았다면서 옥상에서 염병을 떨고 있지 않나, 괴인에게 습격당해서 입원을 하지 않나, 어디 노숙자 같은 꼴로 병원에 있지 않나! 그리고 왜!”
쾅! 가녀린 손이 책상을 때렸다. 다른 한 손은 여전히 인형을 잡고 있는채 의자에서 일어났다.
“괴인이 오빠를 알고 있는 건데….”
한재중은 눈을 질끈 감았다. 놀라진 않았다. 올 게 왔단 생각이었다.
“내가 오늘 오빠 어떻게 찾은 줄 알아? 그 괴인 새끼 별의 반응이 마지막으로 있던 곳을 찾아가니까 오빠가 있더라… 이게 무슨 일이야? 왜 오빠에게서 그 새끼의 반응이 난 건데?”
홍익오의 능력 중 하나는 별의 힘을 쫓을 수 있단 것.
마지막으로 변신을 해제한 곳이 그 옥상 위였으니 당연히 그곳에 흔적이 남아 있을 수밖에 없다.
다시금 한재중이 조아윤을 바라 보았다. 보석같이 빛나는 눈이 물기를 머금어 한층 아름답게 광채를 발하고 있었다.
“정말… 정말… 억울할 수도 있어. 하지만 짚이는 곳이 있다면 말해줘 오빠… 제발….”
한재중은 그녀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포갰다.
“…아윤아. 두 가지. 너에게 말할 게 있어.”
살짝 찬 체온은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은 채였다.
“난 지금 기억 상실증을 앓고 있어. 너와 내가 무슨 관계인지는 알아도, 너와 있던 추억 대부분이 떠올려지지 않아.”
그 차가운 손이 움찔 떨렸다.
“뭐, 뭔 소리야 그게….”
“그리고 하나.”
그녀가 미처 놀람을 표현하기도 전에 그가 굳은 태도로 근엄하게 입술을 열었다.
“오빠….?”
“아윤아. 네가 날 의심하는 걸 난 미워하지 않아. 당연히 할 수 있는 의심이야. 괜찮아. 난 널 미워하지 않을 거야. 오히려, 미안해. 내가 널 불안하게만 했구나.”
그는 결심을 굳혔다.
괴인의 둔갑엔 분명한 흔적이 남는다. 완벽한 둔갑 따윈 없다.
그렇기에 완벽히 인간의 육체를 온존하고 있다면, 그건 역설적으로 괴인이 아니라는 의미다.
“아윤아, 내가 딱 5분만 알몸이 될게.”
“…?”
“확인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