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nsform or death RAW novel - Chapter 58
Chapter 58 – 기억 복구 (4)
타인의 앞에서 나체가 된다.이는 상당한 각오가 필요한 행위다.
아담과 이브가 에덴에서 쫓겨났을 먼 옛날부터 지금까지 사람은 타인 앞에서 맨 몸이 되는 수치를 지니고 있다.
어떤 거짓이나 기만도 없이 순수하게 인간 본연의 몸 그대로를 드러낸다.
자신을 감싸고 방어하기 위한 천을 벗어 던진단 것은 단순히 탈의라는 의미를 넘어 탈권위에 맞닿는다.
자아를 지키기 위한 자존심과 불안과 합리화를 넘어 스스로의 권위를 벗어던지고 타인에게 제 모든 걸 공유하는 행위.
상당한 신뢰가 없다면 성립하지 않는다.
정말 친남매처럼, 가족처럼 서로를 아껴주던 의남매였다. 한재중의 방금 전 선언은 그 만큼 조아윤을 믿는단 발언과 동시에.
그 만큼 자신을 믿어달란 선언이었다.
“…오빠.”
하지만 노림수가 없는 것도 아니었으니.
“그… 있잖아.”
“어.”
“개지랄 떨지 말아줬으면 좋겠어….”
조아윤이 그의 손 위로 자신의 손을 추가로 겹치며 아련하게 중얼거렸다.
“재중 오빠, 자연스럽게 기억 상실이란 말 넘기려고 하지마. 나 그거 아직 납득 못했어.”
“…어.”
“그리고 난 오빠와 괴인이 어떤 연관이 있는지 궁금한 거지 오빠가 괴인화 했다고 의심한 게 아냐. 그런 말 한 마디도 안 했어. 논점 흐리지마.”
“….”
순식간에 모든 의도를 간파당한 한재중은 말 없이 웃었다.
“재중 오빠….”
애틋하던 눈빛이 점차 날카롭게 변하기 시작했다. 농담 따위가 통할 분위기는 아니었다.
“…기억을 잃었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한재중의 손 위에 포개진 그녀의 손에 점차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의 손 아래에 있던 손은 손바닥을 뒤집어 역으로 손을 잡아냈다.
새가 알을 품는 듯한 따스함과 사슬 같은 서늘함이 동시에 느껴졌다.
“기억을 잃었다니… 그게 무슨. 뭔 개소리야… 나보고 아윤이라며. 서, 선배도! 다 아는 사람처럼 말했잖아! 전에 모른다고 내뺄 때도 거짓말하는 티를… 거짓말인 거처럼… 다….”
조아윤은 혼란스러웠다.
그가 거짓말에 서툼을 안다. 특히 중요한 거짓말을 할 때마다 서툰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방금 전 그의 말투는 한 없이 진실이었다.
한 없이 거짓말 같은 말을 진실로 뱉고 있었다.
지금 그가 뱉은 말이 사실인지 거짓인지, 농담인지 진담인지, 단순한 회피를 위한 말인지 마주보기 위한 말인지.
조금도 알 길이 없었다.
전에 공원 아래 벤치에서 노숙을 하고 있던 그를 기억한다. 아무런 설명이 없었지만 그의 고생을 짐작하게 해준다는 면에선 백 마디 말보다 소용이 있었다.
동시에 지금 그가 얼마나 자신과 엮이기 싫은지 조차 알게 해주었다. 집이 없어 늦가을날 밖에서 자면서도, 지인에게 의지를 하기 싫었단 뜻이다.
무엇이 그를 위하는 길인가. 아직도 그녀는 잘 모르겠다. 답을 내릴 수 있는 일인지도 몰랐다.
지금 그의 말이 단순히 멀리 떨어뜨리기 위한 말인지, 아니면 가까워지기 위한 과정의 말인지조차 몰랐다.
조아윤은 매달리듯이 물었다.
“나 보기 싫… 싫어서 그러는 거야…?”
추한 걸 안다. 하지만 이거 하나 만큼은 확신을 받고 싶었다.
한재중은 한숨을 뒤로 삼키고 입을 열었다.
“아윤아, 내가 말했잖아. 난 너를 싫어하지 않아. 하지만 난 네가 나를 아는 만큼 널 몰라. 그게 창피해서 그런 거야. 너희를 잘 모르는데 아는 체하는 내가 창피해서. 기만 같아서….”
잡혀있는 손으로 시선을 옮겼다. 방금 전 말이 안정을 주었는지 한결 악력이 약해졌다.
“…안타깝게도, 기억 상실은 진짜야.”
“…!”
숨을 삼키는 소리가 났다. 아윤은 입술을 파르르 떨며 새롭게 질문했다.
“그럼 혹시… 괴인과 엮이면서…?”
“…아마.”
쾅!
다시금 책상이 흔들렸다. 조아윤의 주먹이 책상을 강타하며 집 안에 있던 여러 장식들이 아슬아슬하게 흔들렸다.
“이런 씹새끼들이…!”
그녀는 분노를 숨기지 않았다. 그간 수 없이 쌓은 괴인을 향한 적개심을 원 없이 드러내며 이를 악물었다.
“역시, 북두칠성 그 놈이야? 그 놈과 엮이면서 이 꼴이 난 거야?”
“….”
이 진실을 통해 역설적으로, 조아윤에게 있어 한재중이 괴인화 했단 가설이 다시 대두되었다.
“…어떻게 엮인 건데. 응?”
그간 옅어지고 있던 가능성이었다.
그 괴인이 백아희에게 향한 폭력 행위는 한재중이라면 절대 저지를 리가 없는 저열한 행위였다.
또한 전에 병원에서 보았던 그는 완전히 조아윤을 알고 있던 눈치였다. 그렇기에 지레짐작하여 한재중에게 완전한 기억이 있음을 확신했다.
하지만 이제 다시 의심이 도래했다. 그의 말 덕분이었다.
“그 놈과 도대체 뭔 관계야? 뭔 관계길래 지금 그런 꼴을 겪은 건데에!”
괴인의 기억 상실은 정확히 인간적인 기억만을 없앤다. 사람 간의 관계나 그간 있던 추억이나, 꿈이나.
한재중의 경우와 비슷하다.
하지만 동시에 기억을 잃은 괴인이 다시 기억을 찾은 사례는 보고 되지 않았다.
마법 소녀의 타락.
이 아주 희귀한 사례만을 제외하고.
사실 이 경우엔 괴인화라 보기에도 애매하다.
어차피 한재중에겐 적용할 수 없는 가설이었다.
“…이것도, 잊어 버린 거야?”
“어.”
“후우….”
조아윤은 그의 손을 잡고 있던 손 하나를 떼 이마로 옮겼다. 두통이 왔다.
‘이 오빠는 시발 그간 도대체 뭔 짓을 하고 다녔길래….’
어이가 없었다.
오랜만의 재회는 노숙자의 꼴이었고, 다음의 재회는 병원이었고, 새로운 재회는 병원 위 옥상. 이 전부가 사실 기억 상실증 환자였다니.
정말 자신과의 추억을 잃어버렸다 생각하니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치매가 온 어미를 보는 딸의 기분이 이런 걸까.
“진짜 나랑 있었던 일 기억 못해?”
“어… 대부분….”
“나 중딩 때 일도, 나랑 놀러다닌 일도, 나랑 사귀던 일도 다 잊었어?”
“마지막은 구라잖니.”
“전부 다 모르는 건 또 아니고… 뭐지 시발…?”
그래도 아예 모르진 않는단 게 하나의 위안이었다.
차오르는 울분을 집어 삼키고 냉정하게 머리를 굴렸다.
“오빠, 내가 오빠 의심하는 거 진짜 미안한데… 내가 원래 불안감이 심해. 좀 확신을 줬으면 좋겠어.”
괴인과 엮인 건 확실.
하지만 그 엮인 방향이 단순한 피해자일까. 아니면….
조아윤은 손가락을 움직여 그의 손바닥을 간지럽히듯 올라가 손 끝에 닿았다. 그의 손가락 사이로 자신의 것을 겹치고 꽉 잡았다. 깍지를 끼었다.
이마에 올렸던 손을 내리며 안광을 그에게 비추었다. 방금 전까지 울어 붉은 자국이 선명한 눈가에 다시금 송골한 이슬이 맺히기 시작했다.
“그… 그으….”
알몸을 자신 있게 보여주겠다한 선언은 그가 책 잡힐 것 없이 떳떳한 몸을 지녔단 뜻이다. 이상했다. 괴인화라면 응당 그 흔적이 있어야 할 텐데.
방금 전 선언은 그저 속임수. 거절당할 것을 전제로 당당함을 어필한 전략이 아닐까.
사실은 저 옷 아래에 보여주지 못할 치부가 잠들어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났다.
“딱 5분만… 아니 5분도 많으니까… 3분! 아니… 1분이라도 좋으니까….”
깍지낀 그녀의 손 끝의 진동이 한재중에게도 전해져 올 정도였다. 수치심으로 얼굴을 붉게 만들고 눈물까지 있었다. 이 수치를 무시하며 조아윤은 망설임 끝에 문장을 종결 지었다.
“알몸 좀 보자.”
집 안에 느지막한 고요가 맴돌았다.
고요를 깬 건 한재중의 조소였다. 피식 웃은 그는 잠시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싫어.”
“아 왜애애!!”
조아윤은 즉시 대들었다.
“몇 분 전에 보여주겠다 한 패기는 어디 갔어!”
“새삼스레 생각하니 조금 쪽팔려. 게다가 남의 부탁으로 벗는 건 미친놈 같잖아.”
“혼자서 벗는 게 더 미친놈이야! 잔 말 말고 벗어!”
깍지낀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이제 그건 애틋한 맞닿음이 아닌 고문이 되었다.
“사랑스런 동생 부탁도 못 들어줘?”
“지금은 사랑하지 못할 거 같은데.”
“오빠 나 믿지?”
“난 너를 믿는데 네가 날 못 믿고 있잖아!”
“아까는 벗겠다며! 그냥 벗어줘! 벗어 시발!!!”
나체를 보여준다는 행위엔 상당한 각오와 신뢰가 필요하다. 방금 전까지 있던 그 각오는 다시 생각하며 증발 되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자신의 옷 아래에 무엇이 있는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별빛의 재생력으로도 아직 전부 낫지 못한 흉터가 매장되어 있다. 굳이 보여주고 싶지 않은 상흔들이었다.
조아윤은 일어나며 깍지 낀 손을 당겼다. 방심하고 있던 한재중은 그대로 당겨졌다. 그의 몸이 테이블 위로 엎어졌다. 그 틈을 놓지 않고 그를 바닥으로 밀어 넘어뜨렸다. 잽싸게 땅바닥에 놓은 인형은 충격을 덜어 주었다.
넘어진 그 위로 조아윤이 걸터 앉았다.
“마법 소녀에게 일반인이 이길 수 있을 줄 알았어?”
“우리 아윤이가 뭘 보고 컸길래 이 지랄을 할까….”
“당연히 우리 오빠 보고 컸지. 오빠도 그 때에 비해선 좀 커졌네.”
“그치 근육이 많아졌어. 아윤아, 나 무거운데 이제 좀 내려와 주면 안 될까?”
“싫어.”
그녀는 천천히 손을 내려 그의 상의 아래 부분을 잡았다.
“이건 아까 오빠가 말한 내 확인할 권리고, 난 그 권리를 이행했을 뿐이야.”
틀린 말은 없었다. 한재중은 실언을 후회하며 눈을 감았다.
또한, 조아윤의 의심은 지금 겪은 한재중의 반항으로 인해 더 증폭되었다. 망설임은 사라졌다. 마스코트에게서 미친 거 아니냐는 욕설 섞인 비난이 들려오지만 무시했다.
“어차피 볼 것도 없으….”
천천히 그의 상의를 밀어 올렸다. 그 즉시 들어오는 색감 다른 피부에 그녀의 손이 멎었다.
순간, 보석이 빛났다. 아마 그녀에겐 목소리도 들릴 것이다. 깜짝 놀란 그녀의 몸이 얼어붙었다.
“…아.”
얼타고 있는 틈을 놓치지 않고 조아윤의 허리를 잡아 몸을 들어 올려 옆으로 놓았다. 그제야 한재중은 이 변태적인 마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출동 신고지?”
“어, 어어… 그, 그렇긴 한데.”
“가 봐.”
“오빠 방금 전 그 상처 뭐.”
“신경 쓰지마.”
그는 옷매무새를 고치며 머쓱하게 웃었다.
“옛날부터 있던 상처야.”
“….”
그런 거 없었잖아. 이리 말하고 싶었던 마음은 실현되지 못하고 아래로 가라 앉았다. 보지 못했던 세월에 어떤 고생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아마 그 고생은 자신의 상상을 초월했으리라고 조아윤은 확신했다.
방금 전 상처를 보았던 자리에 손을 옮기려 하자 그의 손에 붙잡혔다.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아… 그….”
한재중은 아무것도 묻지 말기를 바란다는듯 웃었으며 그 웃음에 조아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빨리 가봐.”
보석으로 부턴 끊임 없이 지원 요청이 울렸고, 적막한 오후의 햇볕을 창문이 가르며 그들에게 내리쬐었다. 살짝 붉은 기를 띈 햇빛은 지금이 저녁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알렸다.
“그, 그럼 다른 데 가지 말고 여기 꼼짝없이 있… 아니다, 그건 좀 이상하네.”
그녀는 급하게 일어나선 조르르 자신의 방을 향해 뛰었다. 헐레벌덕 다시 돌아온 그녀의 손 끌엔 메모지가 있었다.
“허억… 헉… 이거… 내 번호거든? 전이랑 바뀌진 않았지만… 잊었을 까봐.”
번호가 적힌 메모지를 그의 손 위에 올려준 다음, 자신의 손을 포갰다.
“오빠가 보고 싶을 때 연락해. 아니, 그냥 꼭! 연락해… 알았지? 개인적인 소망으론 나 일 끝나자 마자 연락해줬으면 좋겠고….”
말 끝을 흐린 그녀는 석양의 탓인지 붉어진 얼굴을 홱 돌리며 창문을 향해 뛰어갔다.
바람이 한 번 크게 방 안을 스치고 난 다음, 그녀는 새가 되어 하늘을 가로 지르고 있었다.
한재중은 멍하니 그 이동을 바라보다 불현듯 정신을 차리고 일어났다.
“얘가 아직도 칠칠맞아선….”
이동을 위해 활짝 열었던 창문을 닫았다.
그리고 채 몇 분도 지나지 않았을 때 현관의 문을 닫는 소리가 텅 빈 집 안에 울려 퍼졌다.
**
정신없는 하루였다. 한재중은 그렇게 오늘을 회상했다.
과거의 인연들이 동시에 들이닥친 여러모로 어지러운 하루.
길을 걸으며 조용히 메모지 안의 번호를 들여다 보았다. 낯이 익은 걸 보면 진짜 그 몇 년 동안 같은 번호를 유지하고 있었단 게 실감이 났다.
마법 소녀의 경우 번호가 자주 털리는 만큼 번호를 자주 바꾼다 들었는데, 그녀는 몇 년 간 같았다. 어릴 때부터 쭉. 키도 조금은 컸는데 번호는 동일했다.
아마 연락을 받기 위해서겠지.
만일 바꾼다면 한재중이 혹여 연락을 하려 할 때 곤란해질 테니.
쓴 맛이 입에 감돌았다.
‘미친 새끼야. 대체 뭘 했길래 연락을 한 번도 안 했냐….’
과거의 자신에게 욕지거릴 하며 그는 저녁길을 걸었다. 집 까지는 꽤 거리가 있어 먼 여정이 될 듯했다.
점차 붉어지는 하늘의 등선을 따라 웬 유성 하나가 곧게 휘었다. 연못에 피어난 물결처럼 어스름히 구름을 가르고 붉게 선을 그렸다.
그 선이 점차 이 쪽을 향해 가까워졌다.
“미친 새끼.”
콰아아앙!
유성이 닿은 곳에 있던 도로가 쩍쩍 갈라졌다. 창문을 깨뜨리고 벽에 금을 가게 할 진동이 몇 초 간 빠르게 일고, 피어오른 연기 속에서 한 여자가 걸어나왔다.
자세히 살펴보면 인간 여자라 부르기엔 살짝 무리가 있는 모습이었다.
자색의 날개가 활짝 벌려져 연기를 갈랐다.
“그거 내 얘기야? 어머~ 나쁘지 않은 소개야.”
“욕 먹고 좋아하는 거 보니 니 취향 참 알만 하다.”
“햐핫, 너 그런 소리도 할 줄 아는구나?”
한재중은 주변을 살펴 홍익오가 있나 확인했다. 다행히도 없었다. 그 정도로 의심했으면 하나 붙여둘만 하건만. 핑크 데네브의 다정한 성격에 한숨을 내쉬었다. 아마 스토커 같은 짓을 하는 건 양심에 걸려 결국 포기한 거겠지.
이에 안심을 얻은 한재중은 벨트를 향해 손을 옮겼다.
“오랜만이네 비르고.”
“그러게~ 한 달만인가?”
“아직 한 달은 안 됐지.”
“음? 그런가? 그런 거 같기도 하고~”
히죽 웃은 비르고는 물었다.
“그래서, 나와 같이 세계 멸망을 향해 나아갈 기분은 들었어?”
“변신.”
들을 가치도 없었다.
[ASTRONOMICAL OBSERVATION.] [THE BIG DIPPER.] [ORIGIN.]기원은 있지만 기억은 없는 반쪽의 힘.
아직 완성되지 못한 별자리의 이름을 들으며 한재중은 앞으로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