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nsform or death RAW novel - Chapter 6
Chapter 6 – 도주는 연기 속에
퍼억─!
주먹이 괴인의 명치 깊숙이 꽂혔다. 더 이상 생명을 이어나가지 못한 괴인에게선 폭발이 일어났다. 피와 내장을 흩뿌림과 함께 괴인이 가지고 있던 자그만 별의 힘도 세상에 흩뿌려 졌다.
‘끝이 없네.’
쉴 시간 따윈 없었다. 난 바로 몸을 뒤로 빼고, 나에게 돌진해오는 괴인의 관자놀이에 킥을 먹여 주었다.
휘청 거리며 넘어지는 놈을 뒤로 하고 그 앞에 있던 괴인을 잡았다.
콰직!
서 있던 자리가 유리 조각처럼 갈라졌다. 발 끝에서부터 힘을 끌어 모으고 잡았던 괴인을 위로 던져 올렸다.
휘익!
화창한 낮 아래를 장식하는, 벌레 같은 구름 한 점이었다.
그것이 아직 하늘에 떠 있을 동안 난 재빠르게 벨트에 손을 올려 버클을 돌렸다.
[DUBHE.]벨트에선 백색의 고리가 형성되었고, 그것은 조금의 지체 없이 내 몸을 감쌌다.
녹색이었던 갑주는 순백으로 물들었고 두 손엔 곰의 발톱같이 날카롭고 투박한 클로(claw)가 생겨났다.
두베.
큰곰자리의 알파성이며 북두칠성의 첫 번째 별.
천추(天樞)라고도 불리는 이 별은 북두칠성 중 가장 북극성에 가까이 자리하고 있다.
탐랑(貪狼).
내가 가진 별들 중 가장 으뜸이며 생기를 다스려야 할 이 별의 힘은.
모순적이게도, 내가 가진 그 어떤 별보다 생명을 앗아가는 데 특화되어 있다.
[SET. 백웅쌍뢰극(白熊雙雷據).]자라난 클로에서 찌릿한 감각이 느껴졌다. 육안으로도 확인 가능할 전류의 흐름이 날카로운 쇠붙이에 흐르기 시작했다.
백록(白綠)의 별빛이 차고 넘칠 만큼 두 손에 모여들었으며, 이 별의 힘이 모일 동안 수많은 괴인 역시 내 곁으로 다가왔다.
오른발을 축으로 하여 몸을 회전 시키고, 양 손에 있던 클로를 두 번 휘저었다.
그 힘만으로도 땅을 뒤집으며 바위를 가루로 만들만한 것이었다. 가까이 있던 괴인들의 몸은 풍압에 찢겨졌고 멀리 있어 제대로 반경에 닿지 못한 괴인 역시 땅에 발을 붙이지 못하고 몸이 잠시 떴다.
그러나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할퀸 자리에 번개가 일기 시작했다.
콰과과광─!
흰 색의 벼락은 조금의 자비도 없이 숨을 잃지 않은 괴인들에게 죽음을 선사해주었다.
탄 내와 피 냄새, 부셔진 건물의 냄새들이 뒤섞이며 호수에 돌을 던진 것만 같은 파문이 대지에 일었다.
땅에 피어난 비 없는 폭풍이며 번개의 파도로 이뤄진 쓰나미.
그야말로 재앙.
[백웅쌍뢰극(白熊雙雷據) 발현 성공. 재현율 40%.]백웅쌍뢰극(白熊雙雷據).
흰 색의 곰이 발톱을 세워 할퀴자 그 자리에 거대한 번개가 내리 꽂힌다.
역시 벌레 잡기엔 전기 파리채지.
애벌레와 닮은 괴인들의 사지가 여기저기 흩뿌려진 광경을 눈으로 쓱 훑음과 동시에, 벨트의 버클에 다시 손을 올렸다.
“아직 한 마리 남았지.”
내가 아까 머리 위에 띄워 놨던 괴인 한 마리가 버둥거리며 떨어지는 중이었다.
다시 모습을 원래의 녹색 갑주로 되돌리고.
몸을 굽히고.
허리를 돌리고.
시점을 똑바로.
[SET. 역성(逆星).]주먹에 칙칙한 녹색의 불빛이 휘감겼다.
괴인은 떨어지고, 난 주먹을 올렸다.
거꾸로 올라가는 별. 하늘을 향해 용솟음 치는 별빛과 함께 괴인의 몸이 폭발하였다.
[역성(逆星) 발현 성공. 재현율 58%.]슬슬 전투가 몸에 익기 시작했다.
어느 때에 어떤 기술을 써야 할지 감이 잡힌단 뜻이었다.
싸움에 문외한이던 사람이 이틀 만에 능숙해지다니. 이엔 벨트의 뛰어남만이 아니라 한재중 씨의 몸도 한 몫 했겠지.
역시 중학생 때 폭력 집단을 뒤집어 놓으신 몸이다.
참 대단한 힘이다. 다시 한 번 실감했다.
이렇게 힘을 실감하는 만큼 생각하게 된다.
이 힘은 위험하다.
위기감이 한 발 먼저 몸을 휩쓰니 우월감 따위는 올 새도 없이 바위에 막힌 파도처럼 부숴 흩어졌다.
‘이런 힘을 내가 사적으로 운용하면 어쩌려고….’
개인이 가져 제약 없이 사용하기엔 너무나 거대하다.
퀘스트란 제도로 통제하려 해도 그 강제성은 지극히 적다. 막말로 퀘스트가 열리지 않을 때 욕망대로 이 힘을 휘두른다면 그 누가 이걸 막을 수 있겠는가?
가난하고 춥고 배고픈 청년.
합법적인 방법으로는 이 벨트의 무작위적인 퀘스트로 인해 그 고난을 해소할 길이 멀어 보인다.
그러나 조금만 시선을 돌리면 무수한 가능성의 길이 열려 있다. 폭력이 통할 유용한 먹잇감들은 현대 사회에도 넘쳐 흐르고 있으니. 자연으로 돌아가 약육강식을 재현하면 될 일.
‘물론 안 할 거지만.’
그 순간 괴인이지. 아, 이미 마법 소녀도 때렸겠다 괴인인 건 매한 가지인가.
하지만 아직은 내가 나를 괴인이 아니라 생각하고 있으니 상관 없다.
중요한 건 마음 가짐 아니겠나.
일단 수호자라 불린 만큼 뭘 수호하는진 몰라도 퀘스트 대상 외의 자들에게 손을 뻗을 생각은 없다.
마법 소녀와 본격적으로 척 질 일을 내가 굳이 왜 해야 하는가.
아니, 애초에 이런 힘은 조금 더 정의롭고 힘에 대한 신념이 있는 사람에게 전해줬어야 하는 거 아니었나?
‘내 뭘 믿고 수호자의 자리를 떠 넘긴 거야.’
심지어 돈도 안 나와서 빡쳐 죽겠는데.
벨트의 의중을 조금도 짐작할 수 없다.
‘내 생각을 읽을 수 있으면서 다물고 있는 거 봐라….’
알아서 추측하란 건가? 가증스럽긴.
[모든 괴인을 격파하였습니다.]하긴, 이런 고민도 다 사치다. 당장 살아남기에 급급해서 괴인 다 죽인다 맨이 된 새끼가 무슨 호화롭게 고찰을 하고 있어.
옛날 그리스 철학자 그 놈들도 노예들이 자기 일 대신 다 해주니 시간이 넘쳐 흐르고 여유로우니 철학 따윌 생각할 수 있던 거겠지. 등 따시고 배부르니 부르주아의 트림 소리를 내뿜을 겸 본질이니 인간이니 지껄인 거 아니겠어?
일단 난 살 생각만 하자. 내 코가 석잔 데 누굴 지키겠단 생각을 하고 있어. 배고파 죽겠는데.
시선을 돌려보니 마법 소녀의 전광판이 있었다.
보기만 해도 마음의 양식이 차오르는듯한 아름다움. 덕질하던 때와는 조금 감상이 달라지긴 했다.
‘쟤네들은 적어도 돈은 받겠지….’
물론 목숨 걸고 행동하는 만큼 돈은 당연히 받아야 하겠지만. 지금 나에겐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잠깐. 아니지, 저 나이에 이 만큼의 관심을 받으며 목숨 걸고 괴인과 싸우라는 건 학대다.
심지어 나처럼 벨트의 도움도 없을 텐데. 나중 가면 별 세 개씩은 기본으로 가지고 있는 괴인이 나온다.
‘누가 누굴 부러워 한 건지….’
웃음이 새어 나왔다.
다시 생각해보니 부러워 할 게 아니라 동정을 해야 될 사람들이었다.
“불쌍하기도 하지.”
“뭐가 그렇게 불쌍한데요?”
뭐지 환각인가. 배고파서 헛 것을 보는 건가.
‘이런 미친….’
안타깝게도 환각이 아니었다. 내 본 그곳엔 분명히 마법 소녀가 존재하고 있었다. 아까 막 헤어진 레드 베가만이 아니라.
“좀 많군.”
핑크 데네브에 골든 알데바란, 화이트 다비흐. 그리고…….
블루 시리우스 까지.
아주 단체로 몰려 왔다.
그 광경은 가히 아름다운 보석 상자라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덕질하던 캐들이 일렬로 늘어서 있다. 압도적인 기백. 기쁨에 목이 메이고 공포에 손이 떨린다.
나에겐 저주받은 보석에 한 없이 가까운, 사랑해 마지 않을 두려운 빛들.
“언제부터 눈치채고 있던 거죠?”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군.”
“시치미 떼지 마요.”
“….”
눈치라니 뭘. 언제부터 거기 있던 건데. 벨트야 이런 건 좀 알려줘라.
[주위에 다수의 마력을 감지.]왜 지금 알려주는 거니.
뭐 하나 내 뜻 대로 돌아가지 않는 세상이다.
한숨을 뱉고 싶은 걸 억지로 참아내며, 다시 집중 하여 주위를 둘러 보았다.
‘설마….’
카메라. 어떤 별빛보다 위협적인 인공적인 불빛.
누가 지금 이 풍경을 찍고 있지는 않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벌써부터 구역질이 몰려 온다.
“경고하지. 넌 지금 S급 괴인으로서.”
“카메라.”
“뭐?”
“카메라 없어?”
이들을 대표한 듯이 입을 연 블루 시리우스의 말을 끊으면서 난 내 말을 고수했다. 미안한 일이지만 이게 사람 트라우마에 연관 된 일이라.
직접 겪은 일도 아닌데 내가 왜 이렇게 예민하게 반응해야 하는지 억울해 죽을 거 같다.
“카메라? 그런 건 왜?”
“…뻔하죠!”
의문스레 되묻던 블루 시리우스의 말에 레드 베가가 답했다.
“저 괴인은 지금 자기가 이길 거라고 확정하고 있어요! 우리가 지는 광경을 TV에 생중계로 내보내고 싶은 거에요!”
내가?
“네? 진짜요? 엄청 기분 나쁩니다!”
“거만하군… 재밌는 녀석이야.”
왜 그걸 다 아무런 의심 없이 믿는 거지? 물론 겉모습이 괴물 같긴 하다만 그렇다고 타인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걸 우월감으로 삼는 열등감에 찌든 머저리는 아니란 말이다.
오히려 이 폭력 사태를 근절 시키기 위해 방금 전까지도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억울하네.
“웃기는군.”
난 바로 반박했다.
“내가 왜 그런 하찮은 놀이를 즐겨야 하는 거지?”
카메라가 있었다면 저런 말은 안 했겠지.
반응을 보니 다행히 언론에 알리지 않은 긴급 소집이었던 모양이다.
카메라는 없다.
난 그렇게 확신했다.
다시 말해 내가 단전 깊숙히부터 끓어 오를 패닉을 느끼지 않아도 된단 뜻이다. PC방에서 느낀 그 손가락의 떨림이나 어지러움을 다시 느끼는 건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그러나 여기서 가만히 있으면 소식을 들은 놈들이 어슬렁어슬렁 찾아오겠지.
벨트도 잠잠한 걸 보니 추가적인 퀘스트도 없고, 여기서 마법 소녀 다섯 명과 대치할 이유는 전무하다.
시급히 떠나자.
“이봐 너희들.”
“뭐, 뭐지. 바로 오는 건가!”
“안심해. 오늘의 목적은 너희가 아니었으니까.”
어제와 마찬가지로 다시 한 번 안심의 말을 해준 다음, 벨트에 손을 올렸다.
“뭐, 뭐?! 웃기지 마. 난 겁먹지 않았어. 지금 당장 나랑 다시 붙….”
“격투기 선수도 한 번 싸우고 나면 15일을 쉰다고 하더군. 너 어제 날아가면서 많이 힘들었을 텐데, 그렇게 열정을 불태우기 보단 휴식을 택하는 게 낫지 않겠어?”
아니 애가 미쳤나. 어제 오늘 바로 이어서 싸운다고? 프로 격투기 선수도 K.O 당한 다음 날은 안 싸우겠다.
달깍. 버클이 돌아가는 소리.
[ALKAID.]북두칠성에서 가장 동쪽에 위치한, 마지막 별 알카이드.
동양에서 해석한 북두칠성의 모양 중 하나는 관을 끌고 가는 처녀들이었다.
그렇기에 끝자리에 있는 알카이드를 ‘관을 인도하는 자’와 동일 시 하여. 가장 불길한 별로 여겼다.
요(妖).
불길한 별이며.
요(搖).
육안으로 볼 때 가장 깜빡이는 별.
알카이드의 힘에는 모습의 변화 따윈 없다.
다만 깜빡이는 별처럼 은밀하고, 요사롭게 사라질 뿐.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정중한 인사와 함께.
뿌연 안개가 넓게 흩뿌려졌다. 그 안개를 머금은 내 몸은 투명해지다가 다시 나타나길 반복했다. 점멸하는 별의 모습.
그렇게 깜빡이다 안개에 몸을 맡기며 모습을 감췄다.
알카이드.
퀘스트 완료 직후에만 사용할 수 있는 도주용의 폼.
**
“워우… 무서웠다.”
한 사람만 봐도 기백이 대단했던 마법 소녀가 단체로 날 노려보니 심장이 쪼그라드는 기분이었다.
역시 도주는 연기와 함께가 국룰이지!
아무튼 이렇게 오늘도 살아남는 데 성공했다.
‘살아남는 걸로 충분한 삶이라니 참으로 야생적이네.’
분에 넘치는 힘이 주어졌으면서 생각하는 게 고작 생존인가.
자신의 하찮음에 비웃었다.
내가 재현해야 할 이상적인 모습은 무엇인가. 나는 무엇을 수호해야 하는가.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했으면서 현대 사회 속에서 고작 생존의 기쁨을 부르짖는 꼴이란.
앞서 했던 허탈한 고민을 계속해봤자 결국 결론은 같았다.
아무리 힘이 있어도 지금은 그런 고민이 다 사치란 것 역시 사실. 고뇌는 언제나 생존 위에서 지어져야 할 집이다.
아직 괴인과의 싸움에서 아쉬운 것도 없으니 지금은 고뇌할 적기가 아니다.
‘그러니까 빨리 생활 기반이나 만들자.’
그 이후에는 조금 여유가 생기겠지. 끼니와 제 잘 곳도 해결하지 못한 난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아니기에 행복할 수 없다.
고통 속 흐려진 판단에서 내려진 결론이 정상적일리 없다.
내가 이동한 곳은 은행. 수중의 돈이 얼마 인지 모르는 나지만 뭔가 계좌라도 있지 않을까 싶어 여길 찾아오게 되었다.
‘그동안은 퀘스트 때문에 어디 가질 못했으니까.’
근데 잠깐, 퀘스트라면 응당 해결했을 때의 보수가 있지 않나?
불응 시의 대가도 있다면 당연히 수행 시의 보상도 있어야 할 텐데.
이따 벨트에게 물어 보면 될 일이다. 일단 내 잔고를 확인하기 위해 은행의 문을 밀었으나.
덜컹.
“어, 뭐야.”
닫혔다. 말도 안 돼. 시간이 벌써 그렇게 되었다고? 아직 운영시간이 끝날 때가 아닐 텐데.
그런 의문을 느낄 때 쯤, 옆에 인쇄된 종이가 붙어있음을 보았다.
-근처에서 일어난 괴인 습격으로 인해 오늘은 일찍 닫습니다.
“아악!”
난 누군가에게 맞은 거처럼 소리 질렀다. 카드 잔액이 부족합니다는 이미 당했고 끼니 해결하느라 삼 만원이 반도 안 남았는데! 그걸론 모텔도 못 들어가는데!
오늘은 이대로 노숙이 확정되는 건가!!
별은 많이 보겠네.
천장이 없으니까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