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nsform or death RAW novel - Chapter 63
Chapter 63 – 짐승의 꼬리 (1)
조아윤은 한가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어제 있던 여러 복잡한 일들에 정신과 감정을 필요 이상으로 소비하지 않기로.
물론 실패했다.
“…왜 연락 안 오지.”
하염없이 핸드폰 안을 바라보았다. 하늘 중심에 태양이 다다랐을 때도 연락은 올 기미가 없었다. 분명 연락처를 줬을 텐데, 잃어버리기도 하였나.
아니면 무슨 변이라도 만나 연락을 할 수 없게 된 것인가.
자살 상담과 기억 상실과 북두칠성의 괴인과 그가 남긴 말. 뭐 하나 신경을 긁지 않는 게 없었다. 하나하나가 피곤하고 피를 말리게 했다.
그녀는 호텔 침대에 가만히 누워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집에 가기는 싫었다. 한재중의 흔적이 남아 있을 것 같아 싫었다. 괜히 후회에 빠질 거 같았다.
좀 더 물어볼 걸. 좀 더 캐볼걸. 그냥 집에 계속 있으라 할 걸. 이 따위 자그만 후회들을.
게다가 원래 집을 썩 좋아하지도 않았다.
조아윤은 종종 이렇게 호텔 방을 빌려 지내곤 한다.
피곤한 일이 있거나 앞으로 피곤해질 거 같거나 할 때 그렇다.
낯설고 개인적인 장소는 좋다.
방해하는 존재 아무 것도 없이, 진정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으니까.
지금쯤 인터넷에선 난리가 벌어졌을 거다. 어제 피난시키는 도중 욕을 한 것이 영상으로 찍혔던 모양이다.
영웅이 이래도 되냐면서 또 태도 문제가 불거지겠지.
핑크 데네브에겐 대단히 익숙해진 일이다.
처참한 승률에 일관적으로 불량한 태도, 좋은 여론이 만들어지긴 힘들다.
몇몇 사람에겐 그 불량한 태도가 사회에 대한 저항 같이 보여 ‘사이다’라는 감성을 준다곤 하지만, 조아윤에겐 조금도 그럴 의도가 없었다.
‘작은 체구에서 오는 당당함’이라니, 누구 놀리는 것도 아니고.
안티가 많은 연예인의 팬은 내부적으로 단결이 강화된다고 한다. 핑크 데네브의 팬들도 그랬다.
예전 인터뷰에서 말한 어렸을 땐 가수를 꿈꿨다는 말이 와전되며 핑크 데네브는 ‘가수의 꿈을 속으로 삭이면서도 마법 소녀 일을 놓지 않는 사실은 꿈 많고 기특한 소녀’가 되었으며.
실제로 이를 이용한 이미지 마케팅을 위해 마법 소녀 협회가 밀어 붙여 앨범까지 나왔다. 신나는 락 음악이었다.
어이가 없었다. 핑크 데네브가 좋아하는 건 잔잔한 인디 감성의 노래들이었다.
락은 그냥 있어 보여서 집에 포스터를 붙여놓았을 뿐이지 딱히 좋아하지 않는다.
피어싱이 많고, 화장이 진하고, 입이 거칠고, 행동가짐이 거침 없고, 힙하고, 이 따위 이미지는 일종의 방어 기제에 지나지 않는다.
뭘 해도 얕보이고, 뭘 해도 싫어할 거라면, 그 싫어할 이유를 내 쪽에서 선사해주겠다는 삐뚤어진 마음이 첫 시작이었다. 적어도 이렇게 강한 이미지들을 덧 씌운다면 그나마 나을 것이란 마음에 자신을 치장했다.
본래의 모습이 아닌, 이상의 재현.
본인이 되고 싶은 동경의 재현에 가까웠다.
멋대로 욕하는 것도, 멋대로 치켜세워지는 것도 사양이다.
그냥 아무 관심 없이 지내고 싶다.
조아윤은 핸드폰을 침대 아무데나 던져 버리고 여러 미혹들을 끊어내기 위해 노력했다. 고민이나 걱정은 좋을 게 하나 없다. 해결이 되지 않는단 점에서 더욱 그렇다. 마음의 안정을 추구하자.
당연하게도 실패했다. 멍하니 천장만을 바라보았다.
불 꺼진 고급 조명이 햇빛을 받아 윤곽을 빛냈다.
어차피 블루 시리우스의 연애 사건 이후 인터넷의 여론을 살피는 건 반쯤 포기했다. 사실 인터넷을 자주 들여다 보지도 않는다. 해봤자 귀여운 동물 영상 조금 보고 말지.
문득 어제 들었던 비르고의 말을 떠올려보았다.
‘이 일을 억지로 한다고…?’
피식 웃음 새어나왔다.
‘당연한 소리를 하고 있어. 당장 언제 뒤져도 이상하지 않는데다 뭘 해도 욕이나 먹는 일을 누가 좋아해. 미친 년들 아니면 좋아 할 리가….’
미친 년이 꽤 많다는 걸 깨달으며 조아윤은 몸을 뒤집어 베개에 얼굴을 파 묻었다.
“이딴 일이 뭐가 좋다고….”
조아윤은 진심으로 이해할 수 없었다.
일 년에 몇 번씩 우리들의 은퇴나 죽음의 기사를 접하면서, 그 나이가 전부 젊은 이들임을 알면서, 왜 마법 소녀를 하고 싶어하는가.
왜 사기란 걸 알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마법 소녀 학원에 등록하는가.
왜 우릴 동경하는가. 시기하는가.
사람을 도우며 말라 가는 일이 뭐가 좋다고.
부우웅.
핸드폰에서 진동이 울렸다. 평소처럼 시큰둥하고 있다가 어제 한재중에게 메모를 준 걸 떠올리자 재빨리 뭄을 일으켜 휴대폰 화면을 바라보았다.
모르는 번호로 문자가 와 있었다. 원래 같았다면 번호를 알아낸 악질적인 팬이라 생각했겠지만 오늘 만큼은 달랐다.
문자의 맨 첫 줄에는 잊을 수 없는 이름 석자. 한재중이란 글자가 떠올라 있었다.
조아윤은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헤실헤실 웃었다.
“왜 이제야 연락을….”
문자는 놀라울 정도로 정중한 문체로 이뤄져 있었다.
내용은 미사여구에 비해 별 것 없었다.
오랜만에 진득하게 이야기 나눌 수 있어 기뻤다. 그간 얼굴 비치지 못해 미안했다. 다음 번에 또 보자. 이 따위의 상투적인 내용이 구구절절히 이어져 있었다.
“아니 이 양반이 진짜…!”
올라갔던 입꼬리는 어느새 축 내려져 있었다. 원하는 내용 따윈 없었다. 기억 상실증, 괴인과 엮인 일에 대한 인과를 알려주던가 아니면 구체적인 재회 일시를 잡던가, 하다 못해 전화로 해주던가.
짜증이 나 다시 한 번 휴대전화를 아무렇게나 침대 위에 던졌다.
다시 한 번 괴인의 말이 떠올라 머리가 혼란스러워졌다.
“미친 딕 퍽커 새끼… 시발 철학자도 아니고 존나게 돌려 말하기는… 한재중은 여기 없어? 날 살리는 게 목적이야? 그게 뭔 개소린데!! 아아 시발 제대로 말을 못하냐고 왜애!!!”
팡팡! 이불을 두드리며 울분을 풀어냈다.
아는 게 너무 없으니 함부로 추론하기도 어렵다.
어렵다 못해, 두렵다.
만일 그가 진실로 괴인이라면 어째야 하는가. 설령 괴인이 아니더라도 깊은 연관이 있음은 사실인데, 그게 괴인의 활동에 도움을 주는 관계였다면? 처벌해야 하는가?
무지는 두렵다.
때로는 무지 이상으로 아는 것이 두렵다.
호기심과 지적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다가가고 싶으면서도, 그 진실의 너머에 어떤 결과가 올지 몰라 두렵다.
그 때 다시 한 번 휴대폰에서 진동이 울렸다. 짧은 진동이 아닌, 연속적인 진동. 전화가 걸려왔단 신호였다.
조아윤은 재빠르게 휴대폰에 손을 뻗어 귀에 가져다 댔다.
“아, 드디어 연락할 마음이 들었어?”
“아윤… 아?”
“으헷?! 서, 선배….”
한재중이 아니라 윤설화였다. 뒤에 육두문자도 준비하고 있었는데. 하마터면 대단한 실례를 저지를 뻔했단 생각에 등이 오싹해졌다.
안 그래도 그녀에게 숨기는 사안이 있었다. 괜시리 마음 한 구석이 죄책감으로 무거워졌다.
“아, 아니 방금 말은 선배에게 한 게….”
“아하, 장난 전화인 줄 알았구나? 괜찮아. 나야. 윤설화.”
“네, 네…?”
“너 엄청 자주 걸려 왔잖아. 장난 전화. 팬인지 안티인지 모를 사람에게… 최근 들어 줄었다 생각했는데 또 시작했나 보네?”
윤셜화는 오히려 걱정스럽단듯이 물었다. 그 태도가 조아윤의 양심을 더욱 자극했다.
“역시 전화 번호 이제 슬슬 바꾸는 게 어때…?”
자주 듣던 말이었다. 마법 소녀인 만큼 사생팬 따위의 족속들이 번호를 알아내는 일도 적지 않다.
하지만 조아윤은 몇 년 간 그런 악질적인 전화에 시달리면서도 번호를 바꾸지 않았다. 언젠가 그가 연락을 줄 까봐. 이 따위 믿음에 기댄 탓이었다.
“아… 미안해! 이런 소리 하려고 전화한 건 아니었는데… 그게 아니라, 데네브 너 오늘 저녁에 시간 돼?”
“그, 그럼! 당연히 되지! 왜, 무슨 일 있어?”
“아니 별 건 아니고… 오랜만에 같이 술 좀 마실까 해서.”
“술은 안 되지.”
단호하게 끊어냈다.
“왜, 왜애! 괜찮잖아! 나 전에 마신 이후로 한 번도 입 안댄 거 아니? 알잖아아~ 딱 한 잔만! 응? 우리 같이 마신지 좀 됐잖니!”
전화기 너머 울상이 된 윤설화의 표정이 그려졌다. 조아윤은 긴장이 풀어져 피식 웃었다. 아무리 숨기는 게 있다 해도 이 사람 앞에선 마음이 편해진다.
“알았어. 딱 한 잔만이다! 으이? 알지?”
“그럼! 선배만 믿어!”
**
“한 잔은 염병….”
“재중아… 내가 미안해… 돌아와 줘… 아니… 돌아오지 않아도 되니까… 히끅! 행복해 줘….”
조아윤은 자신보다 여러모로 커다란 여인을 부축하며 길을 걸었다.
당연하게도 블루 시리우스, 윤설화였다.
150cm가 아슬아슬하게 안 되는 왜소한 몸으로 170cm가 넘는 그녀를 짊어지는 건 힘든 일이었다.
“거 선배… 야 선배! 정신 차려어!”
“으흑… 아윤아… 너라도 있어줘서 정말 고마워… 고마워….”
윤설화는 그 작은 몸에 안기고 안아지며 알코올내 섞인 슬픔과 감사를 몇 번이고 전했다.
“…고맙긴 무슨. 내가 더 고맙지. 아니다, 지금은 안 고맙다. 스스로 걸어 이 년아 제발! 이게 선배냐!”
거기에 무심히 대꾸했다. 조아윤에게 있어 저 고맙단 말은 언제 들어도 어색했다.
그녀는 과거를 떠올려 보았다.
아직 어릴 적, 이보다 더 몸이 작을 적, 왜소한 탓으로 여러 괴롭힘을 받던 때를.
별 형편 없는 이유로 배척 받고 있던 때, 구해준 사람들이 있었다.
“이런 게 우리나라 짱 먹었다니 세상도 참 말세네… 알콜 중독자한테 모든 걸 의지하는 사회라니 참 어둠이 깊다. 그치 선배?”
“나아… 알콜 중독, 히끅! 아니야… 아윤이는 귀여운데 말은 안 귀엽네에….”
“그래 지 얘긴지 알면 그나마 낫다. 아직 제대로 간 건 아니구나?”
지금 어깨에 얹어진 그녀와 심장에 얹어진 그였다.
핑크 데네브의 영웅 활동은 당시의 그들을 조금 따라하는 것에 지나지 않다. 조아윤은 그리 단언할 수 있었다.
이딴 일 조금도 하기 싫지만, 세상에 자신처럼 두려움에 떠는 이가 있다고 생각하니 이를 악물며 나설 수 밖에 없었다.
조아윤은 잠시 윤설화를 앉혀놓고 택시를 부르기 위해 전화기를 꺼냈다. 욕하는 문자 몇 개와 부재중 전화 몇 개가 있었지만 전부 차단했다. 이미 한재중의 번호는 등록해둔 후였다.
“아윤아… 넌… 내가 밉지 않아…? 나 때문에 모든 게 망가졌는데…?”
윤설화는 여전히 술주정을 하는 중이었다. 심각할 정도의 자기 비하. 한재중이 없어진 이래론 계속 이런 상태였다. 아마 평소에도 참을 뿐이지 지금 알코올에 취해 드러난 저 것이 그녀의 본 모습일 것이다.
한숨을 참으며 조아윤은 전화기를 들었다. 굳이 저 말에 대꾸하진 않았다. 어차피 그녀 안에서 죄인은 자신 혼자라 확정내린 상태다. 무슨 말을 해도 듣지 않는다.
화면을 조작하던 그녀의 손이 멈췄다.
-크륵.
도시에서 들리기엔 어색한 소리가 가까이서 들려 왔다. 짐승이 으르렁대는 소리.
-크르륵.
-으르르르.
하나가 아니다. 여러 군데에서 동시에 울렸다.
“이런 시발…!”
괴인들의 무리다.
조아윤은 오늘 밤이 상당히 길어지는 데다 휴식도 제대로 못 취할 것을 예상하며 마스코트를 잡았다.
백조의 형태를 하던 마스코트가 순식간에 리본으로 변하고. 그걸 허공에 휘두르며 중얼거렸다.
“드레스 업.”
[Dress up your star!]**
“변신.”
눈 앞에 있는 수상한 자가 그리 중얼거렸다. 허리에 벨트를 차는 시늉을 하는 중이었다.
“하하하, 물론 나는 못해. 나에겐 이걸 쓸 가능성이 없거든.”
목동 자리의 괴인, 보티스였다.
“장난을 하고 싶으면 네가 좋아 죽는 어린양들 한테나 하지. 난 바쁘다.”
차오르는 숨을 갈무리 하며 그가 중얼거렸다.
여기까지 오는 데 조금의 쉼도 없었다. 파도처럼 밀려 오는 괴인들을 전부 도륙내며 이 곳에 당도했다.
와쳐의 몸엔 피나 오물, 긁힌 상처가 가득했다.
“응, 물론 아니지.”
목동 자리의 괴인은 헤헤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허리에 대고 있던 벨트를 살랑살랑 흔들며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
“전에 말했지? 이거 준다고. 하지만 조건이 있어! 내가 내는 퀴즈 하나를 맞추면 돼! 그게 뭐냐면….”
“마법 소녀 그린 아크투루스.”
와쳐가 손을 뻗었다.
“빨리 벨트를 내놓고 네가 아는 모든 정보를 읊어라.”
그는 상당히 조급해 보였다.
“난 여기서 무슨 일을 저지른 거지?”